최근 전 좀 많이 지쳐 있었어요.
성격이 다른 사람들의 기분에 민감하고 눈치를 많이 보는 편인데
요새 그런 식으로 다른 사람 눈치 보는 상황에 처하는 경우가 많았고,
크지는 않지만 타인과의 약간의 마찰..
'내가 왜 이런 말을 들어야 하지?' 라고 생각하게 되는 일들이 좀 있었거든요.
그래서 좀 쉬고 싶었어요.
'내가 저 사람에게 어떤 사람으로 비춰질까?'를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타인과의 대화를 최소화하고 내 내면을 객관적으로 바라 볼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어요.
그렇게 선택한 템플 스테이..
목적의 성과는 반반..
그곳도 사람이 있는 곳이라 걸어오는 대화를 피하지 못하고 어찌 보면 사회에 있을 때보다 더 많은 수다를 떨었고..
(첫 날은 새벽 1시, 둘째날은 12시 반에 잤으니..;; 원래 9시면 자야 하는 곳인데..ㅎㅎ)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자연을 느끼고..
생각보다는 짧았지만 오롯이 혼자 되는 시간 안에서 마음이 많이 평화로워졌고..
예상과는 달리 타인과의 대화 안에서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었거든요.
제가 갔던 절은 경북 성주에 있는 심원사라는 절이었어요.
템플스테이 관련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절의 홈페이지를 들어가 보며 프로그램 비교를 하여 찾았는데,
2박 3일을 머물 수 있고, 약간의 불교문화 체험과 주변 산 트래킹등이 포함되어 있는 게 맘에 들어 선택을 했어요.
혹시나 2~30명의 사람들과 북적거리며 숙소를 쓰고..
시간 맞춰 프로그램 진행 되는 곳이면 제대로 쉴 수 있을까 살짝 걱정을 했었는데 그런 걱정은 기우..
이름이 잘 알려진 절이 아니라 그런지 총 참여 인원은 7명이었고,
(나, 같은 나이 또래의 아가씨 1명, 초중학교 자녀를 둔 5인 가족)
꽤 큰 넓이의 깨끗한 방을 혼자 사용하였거든요.
(욕실이 딸려 있는 독방이었는데 변기에 비데도 있었어요~ㅎㅎㅎㅎ)
프로그램 일정은 대충 이래요..
첫날은 오후 4시에 일정 시작인데 간단한 절과 불교문화 소개 - 저녁공양 - 타종 체험 - 저녁예불 - 108배 - 연등과 염주 만들기 -취침
둘째날은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새벽예불 - 108배 - 아침공양 - 산책 - 스님과의 대화(차 마시며..) - 휴식 - 점심공양 - 휴식 - 근처 식물원 다녀오기 - 저녁공양 - 저녁예불 - 108배 - 향과 향주머니만들기 - 취침
셋째날은 새벽예불 - 108배 - 아침공양 - 주변 산 트래킹 - 휴식 - 소감문 작성 - 점심공양 - 회향
프로그램은 거의 1~2시간 정도로 짧게 진행되고..
중간 중간 휴식시간이 많아 멍 때리기도 하고.. 책도 보고.. 낮잠도 자고..
새벽예불 반드시 참석이라던가 108배를 꼭 해야 한다던가 하는 강요를 하는 곳이 아니라
자유롭게 프로그램에 참석하고 원하는 만큼 숨을 고를 수 있는 곳이었어요.
이 곳 템플스테이 이름은 구수헌(龜睡軒)이라고 하는데..
'거북이가 쉬어 가는 집' 이라는 의미라고 하더라구요.
둘째 날 합류한.. 이 곳이 너무 좋아 세번째로 방문했다는 어떤 부부의 말처럼
물속을 열심히 헤엄치던 거북이가 잠시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숨을 쉬는..
속세에서 여기 저기 치이며 아둥바둥 살다가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그런 곳이었어요.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은 절마다 다르고..
그 절의 분위기마다 체험 위주로 빡빡하게 진행되는 곳도 있고,
좀 스파르타 식으로 엄격하게 절의 규칙에 따라야 하는 곳도 있고 그렇다고 하더군요.
전 그런 것 전혀 모르고 선택한 건데 제 목적에 맞게 좋은 곳을 발견한 셈이었죠.
저렇게 자유롭게 낮시간을 보내고..
밤에는 저와 또래의 아가씨, 그리고 보름 정도 절에 머무를 예정이라는 19살 소녀와 수다..ㅎㅎ
그냥 이것도 인연인데 통성명이나 하죠 하는 맘으로 차 한잔 하자고 모인 자리였는데,
이런 절에 들어올 정도면 다들 맘 속에 사연 하나씩 갖고 있고..
그 이야기들을 풀어 놓다 보니 밤 늦은 줄도 모르고 이틀이나 저리 수다를 떨었네요..
그 중 제 또래의 아가씨는 청소년 심리 상담을 하는 분이래요.
제가 좀 막힌 게 많아 보였는지 둘째 날 스님과의 대화 직후 맘이 풀어진 상태였을 때 기습적으로 제게 질문을 했고..
그렇게 하나 둘 이야기를 풀다 보니 정말 다른 사람에게 말한 적 없는 깊은 이야기까지 하게 되었어요.
(제가 말하기 꺼려하고 말을 돌리려고 하면 그런 식으로 도망가지 말라고 질책하며 다 얘기하게 만들더군요..
역시 전문가는 뭐가 달라도 다른 듯..;;)
속으로 '이게 문제일까?' 싶던 것들을 입 밖으로 꺼내 놓고 보니 내가 객관적으로 보였고..
그 아가씨 덕분에 제가 그 곳에 갔던 목적 중 하나를 이루게 된 셈이죠..
지금은 그런 생각도 들어요..
내가 그 아가씨를 만나기 위해 7시간이나 걸려 가며 그 절로 찾아 갔던 게 아닐까 하는..
누군가 나와 그 아가씨를 그 곳에서 만나도록 미리 안배해 놓았던 게 아닐까 하는..
이건 좀 너무 운명론적인가?ㅎㅎ
어쨌든 이번 템플스테이는 저에게 있어서는 100% 득이 되는 체험이었어요.
그냥 어영부영 흘려 보낼 수도 있었던 2박 3일..
그곳에서 쉬고 왔더니 일주일은 푹 쉰 것마냥 마음이 평안하고 너무 좋네요..
너무 먼 곳으로 간 탓에 기린닮은 아이님의 커피 벙개 신청해 놓고 길이 막혀 참석하지 못한 것이 하나의 흠이라면 흠이었지만..
(혹시 이 글을 보실 지는 모르겠지만, 기린닮은 아이님 정말 죄송합니다 ㅠㅠ)
제가 템플스테이 간다고 했을 때 관심가져 주신 분들이 몇 계셔서 이렇게 긴 후기를 쓰게 됐는데요..
현재 마음이 힘든 분이시든.. 그저 가볍게 자연 속에서 쉬고 싶은 분이시든..
템플스테이를 계획하고 있으시다면 전 적극 추천하는 바입니다.
혹시 더 궁금한 게 있으시다면 아는 범위 내에서 열심히 대답해 드릴게요~^^
아래는 제가 머물렀던 곳의 사진입니다.
(마지막 사진이 정견당이라는 템플스테이 숙소에요)
p.s. 저를 상담했던 친구 말이 "언니한테는 다른 것보다 일탈이 필요해요" 라고 말해 줬는데..
일탈이라..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일단 여름에는 혼자 터키 여행 갈 예정이에요.
그 밖에 다른 아이디어 있음 추천해 주세요~^^;;
저두 막연하게 템플가고 싶다 생각했었는데 딴거한다고 미루지 말구 꼭 다녀와야겠어요...
후기가 많은 도움이 된듯 합니당..
미루지 말고 꼭 가보시길 권합니다.^^ 후기가 도움이 됐다니 기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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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 2일에 4만원, 2박 3일에 8만원이에요..^^ 다른 절도 1박 2일에 4~5만원으로 다 비슷한 수준이더라구요 ㅎㅎ
좋은시간이었을거 같아요~저도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드는데..;;힘든건 없었나요?부지런해야할듯ㅠㅠ
밤 늦게까지 수다 떨고 다음 날 4시에 일어나는 게 좀 힘들었어요 ㅠㅠ
제대로 9시에만 잔다면 그닥 힘든 점은 없을 듯 싶어요..ㅎㅎ
저도 작년에 송광사로 템플 다녀왔었는데, 또 가고 싶네요..
살면서 가장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한 시간이였네요~ ^^
정말 마음이 너무 좋았어요 ^^ 다음에 또 맘이 힘들어지면 찾아 가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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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가보세요.. 맘이 한결 평온해질 거에요 ^^
오직 돈을벌기위한 목적으로 살다보니 ( 결혼할가족을 위함이지만 ) 삶의 여유가없어요
가끔 이런곳에서 그동안 바쁘게살다가 잊어버렸던 나를 찾아보는것도 좋을듯합니다
종교인들이 오래 건강하게 사는이유가 늘 마음의 여유가 있어서가 아닐까해요 ^^
마음의 여유를 갖고 살아야 하는데 생각처럼 잘 안 되죠.. 조급해지고 타인에 휘둘리다 지치고..
그런 것들에서 완전히 떠나서 잠시 맘을 가라앉히는데 참 좋은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