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가(輓歌)
상여를 메고 갈 때 부르는 노래, 혹은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노래이다.
輓 : 수레 끌 만(車/7)
歌 : 노래 가(欠/10)
출전 : 최표(崔豹)의 고금주(古今注)
만(輓)은 ‘수레를 끌다’이고, 가(歌)는 ‘노래를 부르다’의 뜻으로 수레를 끌면서 부르는 노래 즉, 상여를 메고 갈 때나 죽은 사람을 애도하여 부르는 노래를 뜻한다.
만가(輓歌)는 장례식(葬禮式) 때 상여(喪輿)를 매고 가는 사람들에 의해 불려지는 노래로, 바꾸어서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는 의미로 사용된다. 영어의 엘레지(Elegy)에 상당(相當)한다.
상여(喪輿)를 메고 갈 때 선소리꾼(상두꾼)이 부르는 노래로, 죽은 사람을 애도하여 이승에서 행적을 기리고 저승에서 좋은 곳으로 가라는 뜻을 담고 있으며, 죽음을 인생무상(人生無常), 슬픈 이별로 표현하는 구전민요(口傳民謠)의 하나이다.
우리의 상여(喪輿) 소리는 상두가(상두는 상여의 낮은 말), 상부소리, 영결소리, 향도가, 향두가, 해로가라고도 하며, 각 지방마다 그 가사는 다르나 모두 다 인생무상을 담는다.
한(漢)나라 고조(古祖) 유방(劉邦)이 즉위하기 직전의 일이다. 한(漢)나라 창업 삼걸(三傑) 중 한 사람인 한신(韓信)에게 급습 당한 제왕(齊王) 전횡(田橫)은 그 분풀이로 유방(劉邦)이 보낸 세객(說客) 역이기를 삶아 죽여 버렸다.
이윽고 고조(古祖)가 즉위하자 보복을 두려워한 전횡(田橫)은 500여 명의 부하와 함께 발해만(渤海灣)에 있는 지금의 전횡도(田橫島)로 도망갔다. 그 후 고조는 전횡이 반란을 일으킬까 우려하여 그를 용서하고 불렀다.
전횡은 일단 부름에 응했으나 낙양(洛陽)을 30여리 앞두고 스스로 목을 찔러 자결하고 말았다. 포로가 되어 고조를 섬기는 것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전횡의 목을 고조에게 전한 두 부하를 비롯해서 섬(島)에 남아 있던 500여명도 전횡(田橫)의 절개를 경모(敬慕)하여 모두 순사(殉死)했다.
그 무렵, 전횡(田橫)의 문인(門人)이 해로가(薤露歌) 호리곡(蒿里曲)이라는 두 장(章)의 상가(喪歌)를 지었는데 전횡(田橫)이 자결하자 그 죽음을 애도하여 노래했다.
◼ 해로가(薤露歌)
薤上朝露何易晞
부추 잎의 이슬은 어찌 그리 쉬이 마르는가
露晞明朝更復落
이슬은 말라도 내일 아침 다시 내리지만
人死一去何時歸
사람은 죽어 한 번 가면 언제 다기 돌아오나
◼ 호리곡(蒿里曲)
蒿里誰家地
호리는 뉘 집터인고
聚斂魂魄無賢愚
혼백을 거둘 땐 현우가 없네
鬼伯一何相催促
귀백은 어찌 그리 재촉하는고
人命不得少踟躕
인명은 잠시도 머뭇거리지 못하네
이 두 상가(喪歌)는 그 후 7대 황제(皇帝)인 무제(武帝) 때에 악부(樂府) 총재인 이연년(李延年)에 의해 작곡되어 해로가(薤露歌)는 공경귀인(公卿貴人), 호리곡(蒿里曲)은 사부서인(士夫庶人)의 장례시에 상여꾼이 부르는 만가(輓歌)로 정해졌다고 한다.
이러한 해로가(薤露歌)와 호리곡(蒿里曲)에 관한 내용은 고금(古今)의 음악편(音樂篇), 진서(晉書)의 예지편(禮志篇), 고시원(古詩源)의 해로가(薤露歌)와 호리곡(蒿里曲)등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만가(輓歌)는 우리나라 구전민요(口傳民謠)의 하나로서 상여(喪輿)를 메고 갈 때 부르는 노래이다. 따라서 구비(口碑) 전승(傳承)으로서의 민중(民衆)문학(文學)인 동시에 민속(民俗)인 것이다.
그러므로 만가(輓歌)는 전통 문화의 중요한 유산(遺産)이며 어느 면에서는 기록문학(記錄文學)에 비할 수 없는 절실(切實)한 생활 그 자체(自體)이기도 하다.
만가(輓歌)는 쉽게 상여소리, 상부소리, 영결 소리라고 하며 또 향도가(香徒歌), 향두가(香頭歌), 상두가(喪土歌), 상두가(常頭歌), 해로가라고도 한다.
향도가(香徒歌)란 신라(新羅)와 고려(高麗) 시대의 향도(香徒)라는 일종의 신앙(信仰)단체에서 연유(緣由)된 것으로, 불교(佛敎)와 무속(巫俗)의 두 요소가 내포(內包)된 단체(團體)가 부르는 노래였다.
김유신(金庾信) 장군의 화랑도(花郞道)를 일명 용화향도(龍華香徒)라고 한 것을 보면 신라(新羅)의 화랑(花郞)이 불교(佛敎)와 고유 신앙의 요소를 내포한 단체였음을 알 수 있다.
또 고려(高麗) 숙종(肅宗) 때는 승려(僧侶)와 일반인(一般人)으로 구성된 만불회(萬佛會)라는 신앙(信仰)단체가 있어서 그 모임에 든 사람을 만불향도(萬佛香徒)라 했다.
그래서 향도(香徒)란 요즘 단원(團員)이나 회원과 같은 말로, 죽은 사람들이 합창(合唱)하는 상여(喪輿)노래를 향도가(香徒歌)라 했다.
향도(香徒)들이 상여(喪輿)를 운상(運喪)하게 된 것은 맹인(盲人)을 영천(靈泉) 영지(領地)에 극락(極樂)시킨다는 신앙적(信仰的) 요소가 내포돼 있었다. 향도(香徒)가 향두(香頭)로 변음되어 향두가(香頭歌)가 된 것이다.
상여(喪輿)의 낮은말로 상두(喪土)란 말이 있다. 여기서 土는 뿌리를 의미하는 뜻에서 '두'로 발음(發音)한다.
남의 것을 가지고 제 낯을 내는 사람을 비꼬는 속담(俗談)으로 '상두술 낯내기'라는 말이 널리 쓰이고 있는 것처럼, 상여 소리를 상두가(喪土歌)라고도 했는데 여기서 상두가(喪土歌)란 어휘(語彙)가 생겼을 것이다.
해로가(薤露歌)란 솔잎에 묻은 이슬에서 나온 말로 인생무상(人生無常)을 의미(意味)하는 낱말이다. 여기서 '솔'은 소나무의 솔이 아니라 달래과에 속하는 다년초 식용 식물부추를 의미하는 호남 지방의 방언(方言)이다.
간밤에 내린 이슬이 부춧잎에 방울방울 맺혀 있다가 아침에 해가 뜨면 가장 먼저 떨어진다는 데서 허무한 인생을 비유한 것이다.
한(漢)나라 때 생긴 말로 주로 귀족(貴族)사회에서 쓰였다. 그리고 만가(輓歌)를 호남(湖南)지방에서는 상부가(喪扶歌),제주도(濟州道)에서는 답산가(踏山歌)라 일컫는다.
상부가(喪扶歌)란 옛날 향약(鄕藥)의 상부상조(相扶相助)에서 나온 말이요, 갑산가(踏山歌)란 상여(喪輿)를 메고 산(山)으로 올라간다는 데서 그렇게 쓰인 것이다.
영어(英語)로 엘레지(Elegy)다. 즉 죽은 이를 위해서 애도(哀悼)와 비탄(悲歎)을 나타내는 노래나 시(詩)다.
이 Elegy는 그리스의 elegos 즉 갈대피리란 뜻으로서 당초에는 피리를 반주(伴奏)하는 만가(輓歌)의 일종을 지칭했으나 후에 심사나 명상 등을 싣는 데 적합한 시 형식을 지칭하게 되었고, 근세에 이르러서는 고인에 대한 애도와 비탄의 감정을 나타내는 서정시(抒情詩)를 지칭하게 되었다.
우리가 만가(輓歌)라 하면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가사를 노래화한 것을 이른다. 만가(輓歌)에는 상여(喪輿)를 메고 묘지를 향하면서 부르는 노래와 매장(埋葬)한 뒤에 흙을 다질 때 부르는 노래가 있다.
특히 후자(後者)는 '달구지'라고 따로 말하기도 한다. 지금은 거의 소멸되었지만 봉분(封墳)까지 환전히 다 끝마치고 돌아오면서 부르는 '산하지'라는 허전한 노래가 있다.
다른 지방에서는 볼수없고 오직 해남군(海南郡)과 고흥군(高興郡) 일부지역에서만 간긴히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는데 돌아오면서 부르는 노래까지를 총칭하여 만가(輓歌)라 한다.
⏹ 만가(挽歌)
수레(상여)를 끌면서 부르는 노래, 즉 죽은 사람을 위해 부르는 노래를 말한다.
한고조 유방은 한신(韓信)에게 제(齊)나라를 치도록 했다. 한신이 군사를 이끌고 제나라를 치러 간 사이, 유방의 명을 받은 역이기(酈食其)가 세 치 혀로 제나라를 항복시켰다.
이 이야기를 들은 한신은 제나라 정벌을 중지할 생각을 했다가 괴통(蒯通)의 건의에 따라 제나라를 공격했다.
비록 한왕이 밀사 역이기를 보내 제나라의 항복을 받아 내긴 했지만 한신에게 제나라 공격을 중지하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는 것과, 한낱 유생에게 공을 넘길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제나라에서는 역이기의 설득에 넘어가 한나라에 항복하기로 하고 군사를 거두었는데, 한신은 그 틈을 타 제나라를 습격하여 수도 임치까지 육박해 들어갔다.
제왕 전광(田廣)과 재상 전횡(田橫)은 역이기가 자기를 속였다고 생각하고 역이기를 삶아 죽이고 달아나, 초나라 항우에게 사신을 보내 구원병을 요청했다. 그러나 구원병도 한신에게 패했고, 전광은 한신에게 잡혀 처형당하고 말았다.
전횡이 제나라의 왕이 되었으나, 미처 군사를 정비하기도 전에 한나라 장군 관영(灌嬰)이 쳐들어와 제나라를 평정해 버렸다. 이후 한고조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고 즉위했다.
전횡은 주벌을 당할까 봐 두려워 500여 명의 부하와 함께 바다 가운데 있는 섬으로 들어가 숨어 살았다. 고조는 전횡이 반란을 일으킬까 우려하여 그를 용서하고 불렀다.
전횡은 처음에는 거절하다가 나중에 일단 부름에 응했으나, 낙양을 30여 리 앞두고 그곳에 머물며 빈객들에게 말했다.
“나는 처음 한나라 왕과 함께 남쪽을 바라보고 고(孤)라 일컬었는데, 지금 한나라 왕은 천자가 되었고 나는 도망친 포로의 몸으로 북쪽을 향하여 그를 섬겨야 하오. 이 치욕을 정말 참을 수 없소. 나는 남의 형을 삶아 죽였는데 앞으로 그 동생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같은 군주를 섬겨야 하오.(역이기의 동생 역상(酈商)은 한나라의 장군이 되었다.) 비록 그가 천자의 조서를 두려워하여 나를 어떻게 하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내 어찌 스스로 마음속으로 부끄러운 생각이 없겠소? 또한 폐하께서 나를 보고자 하시는 까닭은 내 얼굴을 한번 보려는 것에 지나지 않소. 폐하께서는 낙양에 계시니 지금 내 목을 베어 삼십 리를 말로 달려가면 모습이 썩지 않아 알아볼 수 있을 것이오.”
그리고 마침내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전횡의 목을 고조에게 전한 두 부하를 비롯해서 섬에 남아 있던 500여 명도 전횡의 절개를 경모하여 모두 순사했다.
고조는 눈물을 흘리며 애도를 표했고, 왕자의 예를 갖추어 장례를 지내 주고, 두 사람의 식객을 도위(都尉)에 임명했다. 이 이야기는 사기(史記) 전담열전(田儋列傳)에 나온다.
그 무렵, 전횡의 문인이 '해로호리가(薤露蒿里歌)'라는 상가(喪歌)를 지었다. 전횡이 자결하자 그 죽음을 애도하면서 이 노래를 불렀는데, 최표(崔豹)의 고금주(古今注)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해로와 호리는 전횡의 문인에게서 나왔다. 전횡이 자살하자 문인들이 비통하게 여겨 슬픈 노래를 만들었는데, 사람의 목숨은 부추 위의 이슬과 같아 쉬이 마른다고 했다. 또한 사람이 죽으면 혼백이 호리로 돌아간다고도 했다. 그래서 두 개의 장으로 되어 있다. 이 상가(喪歌)는 효무제 때에 궁중 악사인 이연년이 두 개의 장을 나누어 두 곡을 만들었는데, '해로가'는 공경귀인의 장례에, '호리가'는 사대부나 서민의 장례 시에 상여꾼에게 부르게 했다. 세상에서는 이를 만가(挽歌)라고도 했다.
薤露, 蒿里, 送哀歌也. 出田橫門人. 橫自殺, 門人傷之, 爲悲歌. 言人命如薤上之露, 易晞滅也. 亦謂人死, 魂精歸於蒿里, 故有二章. 至孝武帝時, 李延年乃分二章爲二曲, 薤露送公卿貴人, 蒿里歌送士夫庶人, 使挽樞者歌之, 世亦呼挽歌.
◼ 해로가
薤上朝露何易晞
부추 위의 이슬은 쉬이도 말라라
露晞明朝更復落
이슬은 말라도 내일 아침 다시 내리지만
人死一去何時歸
사람 죽어 한번 가면 언제 다시 돌아오나
◼ 호리가
蒿里誰家地
호리는 뉘 집터인고
聚斂魂魄無賢愚
혼백 거둘 때는 현명하고 어리석음도 없네
鬼伯一何相催促
귀백은 어찌 그리 재촉하는고
人命不得少踟蹰
인명은 잠시도 머뭇거릴 수 없는 것인가
'해로호리가'를 설명한 최표의 '고금주'에서 '만가'가 유래했다. 만가에서 '만'은 挽으로도 쓰고 輓으로도 쓴다. 만가는 다음의 전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만가는 한무제 때의 역부들이 부르던 노동자들의 노래였는데, 그 소리가 애절하여 마지막 길을 보내는 예(장례)에 쓰게 되었다.
挽歌出於漢武帝役人之勞歌, 聲哀切, 遂以爲送終之禮.
(晉書 禮志)
노가(勞歌)는 노동자들의 노래라는 뜻 외에도 우수와 슬픔의 노래, 석별의 노래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 歌(노래 가)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하품 흠(欠; 하품하는 모양)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소리를 길게 빼서 노래함의 뜻을 가진 哥(가)가 합(合)하여 노래를 뜻한다. 歌(가)는 본디 哥(가)가 나타내는 말의 다른 글자이다. ❷회의문자로 歌자는 ‘노래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歌자는 哥(노래 가)자와 欠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금문에서는 言(말씀 언)자와 可(옳을 가)자가 결합한 訶(꾸짖을 가)자가 ‘노래하다’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하지만 소전에서 訶자가 ‘꾸짖다’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면서 哥(노래 가)자에 欠(하품 흠)자가 결합한 歌자가 따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哥자에 이미 ‘노래하다’라는 뜻이 있지만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의 欠자를 응용해 본래의 의미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歌(가)는 일정한 명사(名詞) 뒤에 붙어 노래의 이름이나 종류(種類)를 나타내는 말로 ①노래, 가곡(歌曲), 가사(歌詞) ②시체(詩體)의 이름 ③악기(樂器)의 이름 ④노래하다, 읊다 ⑤노래를 짓다 ⑥칭송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굽을 곡(曲), 노래 악(樂), 노래 요(謠), 노래 구(謳)이다. 용례로는 노래를 잘 하는 사람을 가객(歌客), 노래를 잘 부르는 여자를 가녀(歌女), 노래를 부르거나 짓는 사람을 가인(歌人), 노래를 부름을 가창(歌唱), 여자 가수를 우아스럽게 이르는 말을 가희(歌姬), 노래 부르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을 가수(歌手), 노래와 음악을 가악(歌樂), 노래와 춤을 가무(歌舞), 가극이나 가곡 등에서 노래 내용이 되는 글을 가사(歌詞), 노래 부르는 소리를 가성(歌聲), 승리하여 기뻐서 부르는 노래를 개가(凱歌), 사랑하는 이를 그려 부르는 노래를 연가(戀歌), 슬픈 가락의 노래를 비가(悲歌), 곡조에 맞추어 노래를 부름 또는 그 노래를 창가(唱歌), 큰 소리로 노래를 부름 또는 그 노래를 호가(浩歌), 찬미의 뜻을 표한 노래를 찬가(讚歌), 축하하는 뜻으로 부르는 노래를 축가(祝歌), 노래와 춤과 음악을 가무음곡(歌舞音曲), 사방에서 들리는 초나라의 노래라는 사면초가(四面楚歌), 온 천하가 태평함을 칭송한 노래를 강재지가(康哉之歌), 비장한 노래로 심하게 탄식한다는 비가강개(悲歌慷慨), 큰소리로 떠들고 마구 노래 부름을 고성방가(高聲放歌), 아침으로는 노래하고 밤으로는 거문고를 탄다는 조가야현(朝歌夜絃)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