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 이후 한반도] "北 오판이 '한반도 전쟁' 가장 큰 요인"

[violetk]

오는 11월 2일 미국 대선 이후 한반도에는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북핵 위기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한반도는 지금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한반도 위기에는 남북한 당사자뿐 아니라 미국, 일본, 러시아, 중국 등 주변국의 첨예한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고, 무엇보다 대선 이후 미국의 대(對) 한반도 정책이 어떻게 표출되느냐가 관건이 되고 있다. 2005년 한반도를 둘러싸고는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 가능성부터 북한 김정일 정권의 ‘자연붕괴론’까지 온갖 시나리오가 난무하고 있다. 주간조선은 창간 특집호를 맞아 ‘위기의 한반도’를 바라보는 미국, 일본, 중국의 입장 차이와 시각을 해외 전문가를 동원해 긴급 진단했다. 또 한국갤럽과의 공동 여론조사를 통해 북핵 위기와 북한 정권을 바라보는 한국인의 시각을 분석했다. <편집자주>

한국의 여론조사들을 살펴보면 한국에선 미국이 북한을 선제공격할 가능성에 대해 많은 우려가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 상당수는 심지어 한국의 국가안보에 북한보다 오히려 미국이 더 큰 위협을 가하고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관리들이 그 같은 가능성을 수시로 부인하며 미국은 평화적인 외교 해결방식을 추구하고 있다고 누차 확인시켜주는데도 불구하고, 일부 오피니언 리더들과 많은 한국인들은 수긍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 흔히 회자되고 있는 더욱 황당한 시나리오 중 하나는 주한미군을 한강 이남으로 이동 배치한 것이 북한 공격을 위한 사전 준비라는 것으로, 이는 참으로 실소(失笑)를 자아내는 생각이다. 세계 곳곳의 논객들은 이라크에 석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다고 시사하는 것을 즐기는 것 같다. 이러한 추측은 이해하기에 간단하기 때문에 믿기도 쉽다.

만약에 미국이 자국의 경제적 이해를 보호하기 위해 이라크를 공격했다면, 한국 사람들은 왜 미국이 한국 내에 있는 미국의 경제적 이해를 위험에 처하게 하면서까지 북한과의 분쟁을 시작할 것으로 믿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미국은 한국 내에 석유 못지 않은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한국은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이고, 미국의 최대 무역 상대국이며, 수십억달러의 미국 투자를 받고 있는 나라다. 게다가 중요한 동북아 시장에서 분쟁과 같은 어떤 사태가 벌어질 경우, 그 대가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막대할 것이다. 서울에는 수만 명의 미국 민간인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많은 오해들에도 어느 정도 사실은 포함돼 있다. 궁극적으로, 주한미군의 한강이남 배치 결정은 미군의 전투능력 향상에 보탬이 된다. 지난 수십 년 동안의 ‘인계철선(引繫鐵線·선제공격을 받을 때 미군이 자동개입하는 경계선)’ 논리에 따르면, 한국 내에 전진 배치돼 있던 미군의 최우선 역할은 미국이 어떤 분쟁이든 개입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보증으로 ‘죽는 것’이었다.

더더욱 중요한 사실은 안보적 현실 문제이다. 북한의 위협, 특히 수십 년간의 경제난을 겪은 북한의 위협을 과장해서 말해서는 안되지만, 북한은 이라크가 아니다. 2003년에 미국이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을 공격하기로 결정했을 때 이라크에는 제1차 걸프전 때 이미 지리멸렬해진 2류 군대만이 남아있었다.

북한 군사력, 이라크와는 달라

북한 인민군은 세계 5위 규모이며, 그 중 70% 가량이 비무장지대(DMZ) 100㎞ 이내에 전진 배치돼 있다. 게다가 북한은 수백 기의 스커드미사일과 노동미사일을 이미 배치해놓은 상태이며, 이 중 상당수는 생화학무기를 탑재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더군다나 DMZ에 근접해 있는 서울은 북한의 장사정포 사거리 안에 들어있어 사실상 인질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때문에 워싱턴에는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을 옹호하는 진영은 사실상 없다.

하지만 선제공격 가능성이 절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 정부가 기존의 많은 ‘금지선(red-line)’들을 지워버렸거나 무시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금지선은 남아 있다. 만약에 북한이 핵무기 물질이나 기술을 전파하거나, 그런 시도를 하고 있다는 실질적인 정보가 있을 경우, 어느 미국 지도자라도 그것을 묵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는 여전히 어려운 문제다. 1994년 미국은 북한 영변의 핵 원자로와 재처리 시설을 타깃으로 한 국부공격(局部攻擊·surgical strike)을 준비했었다. 당시까지 유일하게 알려졌던 이 장소는 북한의 플루토늄 재처리와 무기화 위협에 맞서 비교적 분명한 대응방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했다.

이어 고농축우라늄(HEU)에 의한 북한의 두 번째 핵무기 프로그램이 등장하면서 또 국부공격 가능성의 대상이 됐다. 상황은 지난 2년간 더욱 악화됐고, 북한은 과거 영변의 냉각수조(水槽)에 보관하며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받아왔던 8000개의 폐연료봉을 무기화 했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간단히 말해서, 미국이 오늘날 국부공격을 감행하려고 해도 10년 전보다 훨씬 더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북한군의 70%가 DMZ에서 100㎞ 이내에 전진 배치돼 있고, 한국 전역을 사정거리로 한 중·단거리 미사일과 서울을 사거리 안에 두고 있는 그 많은 포대(砲隊)들을 감안할 때, 국부공격이란 북한이 전혀 반격하지 않을 것을 전제로 한 엄청난 도박이 될 것이다.

좀더 현실적으로 생각해봐도, 국부적인 것이 됐든 다른 형태가 됐든 북한에 대한 어떤 공격도 북한의 반격 가능성을 염두에 둔 사전 준비가 뒷받침돼야 한다. 서울에 미칠 위험 때문에 북한에 대한 어떤 행동도 북한의 반격 효능을 국한시키기 위해 처음부터 압도적인 것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한 시나리오는 당연히 상당한 준비가 필요하고, 따라서 사전 예고 없이 이뤄지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애매한 한국 정부 태도가 더 위험

미국의 선제공격에 대한 전망에 집중하다 보면 진정한 가능성과 한반도 분쟁의 진정한 위험성에 대한 주의력을 흐트러뜨리게 된다. 서울은 미국이 유발하는 무력충돌 가능성에 더 우려를 하고 있지만, 가장 실제적인 한반도에서의 전쟁 발발 시나리오는 북한의 오판에 의한 것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위기를 제지하기 위해 무슨 일이든 마다하지 않아 온 역대 한국 정부들의 노력이 실질적으로는 전쟁 위험성을 더 높일 수도 있다. 최근 수년 동안 한국 정부는 많은 점에서 북한의 변호사 내지는 대리인 역할을 자임해왔다. 북한의 행동과 발언을 최대한 호의적으로 묘사하고, 북한 행위의 중대성을 축소하려 애를 쓰는가 하면, 북한에 도발적인 것이라고 생각되는 국제사회의 요구들을 완화시키려고 시도해왔다.

이러한 한국의 행동과 발언들은 북한으로 하여금 핵무기 프로그램을 계속 보유할 수 있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하거나, 북한이 직면한 근본적인 선택들에 대한 환상에 마냥 머물도록 함으로써 북한의 오판 위험성을 더 높이고 있는지 모른다.

어떤 전쟁 시나리오에서든 한국은 전쟁의 참화를 비켜갈 수 없다는 점에서 “전쟁은 선택의 대상이 아니다”는 한국의 입장은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그 입장을 고수할 수만은 없다. 단순히 입장을 설명한다고 해서 그것이 사실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말 중에 “전쟁에 대비하는 것이 평화를 수호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 중 하나”라는 것이 있다. 이것이 지난 40여년간 한·미 동맹의 근간을 이뤄왔다. 양국간 동맹이 향후 평화 수호에 성공적인 것이 되느냐 여부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한 미국과 한국의 대비 능력에 달려있다.

대선(大選)을 앞두고 있는 부시 대통령과 민주당 후보인 존 케리 상원의원은 제1차 TV토론에서 미국의 대(對)북한 정책에 뜻밖의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그 과정에서 이 복잡하고 어려운 위기는 ‘다자간 대화’ 대 ‘양자간 대화’라는 두 개의 대조적인 슬로건으로 축약됐다. 최소한 새로운 접근법을 시도해보겠다는 케리 진영의 의지가 현재의 난국 돌파를 위한 약속으로 비쳐질 수 있다.

하지만 평양이 케리 후보의 대화 의지 표명을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시절의 포용정책을 향한 회귀 전조(前兆)로 받아들인다면 그야말로 큰 착각이다. 근본적인 정책을 두고 봤을 때, 케리의 북한 접근법이 오히려 부시 행정부의 그것보다 훨씬 강경한 것이 될 수도 있다.

미국 정계의 격언 중에 “오직 닉슨만이 중국에 갈 수 있었다”는 말이 있다. 미국 내에 반(反)공산주의 정서가 팽배해 있던 시절, 중국 지도부를 포용하는 정치적 여유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닉슨이 대표적 보수파였기에 가능했다는 얘기다. 만약에 공산주의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입장의 민주당 대통령이었다면 그런 시도가 오히려 정치적 자살행위가 됐을 것이다.

이러한 역학구도는 오늘날의 미국에서도 적용된다. “오직 부시만이 북한을 그냥 내버려둘수 있다”는 것이다. ‘케리 행정부’는 북한의 도발과 비타협성에 강력하게 대응하라는 정치적 압력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케리 행정부는 뭔가 덜할 것이라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케리가 부시 행정부를 가장 강력히 비난하는 것 중 하나는 부시가 북한의 분명한 핵 개발 시나리오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케리의 아시아 담당 보좌진이나 새 행정부가 구성될 경우, 요직을 맡게 될 인사들의 면면을 잠깐 살펴봐도 북한은 거의 환상을 가질 수 없다. 케리 진영의 많은 보좌진이 핵 확산 반대에 정평이 나있는 인물들임은 잘 알려져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9·11 테러가 공화당뿐 아니라 민주당에도 충격을 주었다는 사실이다.

위험 요인에 대한 미국의 참을성이 클린턴 시절보다 훨씬 적어졌다. 게다가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더 이상 부인하지 않고 있어 모호성이 사라진 현 상황에서 공화·민주, 어느 당이 됐든 1994년의 미·북 제네바 핵 합의와 같은 해결방식을 내놓는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할 일이다.

협상해도 요구사항 강도 높을 것

케리 행정부가 북한과의 협상에 응한다고 할지라도 요구사항의 강도는 결코 낮춰지지 않을 것이다. 포장은 어찌 됐든, 미국은 계속해서 북한 핵 프로그램의 완전하고 검증이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해체를 요구하게 될 것이다.

케리의 접근법이 대화의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바꿀 수도 있는 반면, 케리 행정부가 현재의 난국 해결을 위해 서두르기보다는 위기를 신속히 전면으로 부상시킬 가능성도 있다.

북한과의 진지한 어떤 협상에 관해서 반드시 자문해봐야 할 중요한 문제는 “북한이 ‘No’라고 말하면 그 때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하는 것이다. 북한을 그냥 내버려두는 정치적 여유를 누릴 수 없는 케리 행정부는 더 이상 핵 비확산체제의 훼손이나 북한의 비타협성에 따른 사태 진전의 실패를 감내할 여유가 없게 될 것이다.

고든 플레이크 - 미국 뉴멕시코주 태생. 유타주 브링검영 대학과 데이비드 M. 케네디센터에서 라오스의 경제개혁으로 석사 학위. 미국 한국경제연구소(The Korea Economic Institute)의 연구ㆍ학술국장으로 근무. 1999년 2월부터 맨스필드 연구소장으로 근무. 한국에서 수년간 생활했고 북한도 네 차례 방문. 한국ㆍ일본ㆍ중국 등지를 여행하며 연구ㆍ강연 활동을 하고 있고 미국과 아시아 언론에 한반도 문제에 대해 정기적으로 기고하고 있음.

고든 플레이크의 한반도 위기 전망

1. 미국은 대북 선제공격을 하지 않을 것이다.

2. 세계 5위의 군사력을 가진 북한은 2류 군대만 남은 이라크와 다르다.

3. 그러나 북한이 핵무기 물질·기술을 전파한다는 실질정보가 있으면 미국은 묵과하지 않는다.

4. 가장 실제적인 한반도에서의 전쟁 발발 시나리오는 북한의 오판에 의한 것이고, 한국 정부의 북한 옹호 태도가 북한의 오판 위험을 높일 수 있다.

5. ‘케리 행정부’의 북한 접근법은 부시보다 더 강경할 수 있다.

고든 플레이크 미국 맨스필드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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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조선에서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