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계는 멈추지 않는다
유기섭
현관 책장 위에서 먼지를 이고 있는 작은 시계를 집었다. 오랜 시간 시선에서 멀어져 잠자고 있는 시계를 달래기도하고 윽박지르기도 했다. 좀처럼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다. 멈춰서 있은 지 오랜 시계, 평상시와는 다른 애착으로 바라본 어느 날 오후. 그 시계는 20년 전으로 시간을 돌려놓았다. 입행 20주년을 맞아서 제작된 동기생들의 기념시계, 작고 앙증맞게 생겼지만 사나운 바람과 힘든 세월의 역사를 안고 굳게 시간을 지키다 언제부터인가 멈춰서있다. 배터리가 수명을 다한 탓일까. 그보다는 은행의 기운이 다한 날, 그 시계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더욱이 시계 받침대에는 그때까지 재직해있던 동기생들 이름 55인의 명단이 새겨져있다. 몇 명의 이름은 칠이 벗겨져 철자가 떨어져 나갔다. 시간이 더 지나면 그 이름도 잊혀질까봐 작은 종이에 적어서 덧붙여 놓았다. 모두 소중한 이름들, 청운의 뜻을 품고 모였던 동기들이다. 비록 지금은 각자의 사정에 따라서 삶의 모습들이 달리 엮여져 나가지만 언제 어디서나 반가이 두 손 잡을 인연이다.
오래전 서설이 내리던 1월초 사령장을 들고 첫출근을 하던 날, 기쁨과 두려움이 엉켜서 하루 종일 어떻게 보냈는지 머리가 하얘졌었다. ‘말은 제주도로 사람은 서울로’ 라는 세상 사람들의 말처럼 나도 천릿길 서울을 첫근무지로 희망했다. 그때만 하여도 산으로 둘러싸인 시골 작은 마을의 청년이 서울로 직장을 구해서 떠난다는 것은 화젯거리였다. 변변한 직장을 구하기가 어려웠던 때 ‘화이트 칼라’의 대명사인 은행원이 된다는 것은 곧 세상을 모두 얻는 것과 같았다. 한 번씩 고향을 찾을 때는 그전보다 의젓해지고 나도 모르게 말씨나 행동이 달라진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각인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예금권유를 위하여 가가호호 방문하던 일, 어깨띠를 두르고 대로변에서 전단지를 나눠주며 고객을 유치하던 일, 모두가 추억 속의 일들이다. 고객방문은 날씨가 궂은 날에 더 감동을 준다던가,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고전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지금은 직원들과는 얼굴을 대하지 않고도 웬만한 일들은 모두 처리할 수 있다. 기계화의 영향으로 편리하고 빨라서 좋지만 어떤 때는 너무 삭막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은행일의 특성상 무미건조하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바로 그 감정을 오늘날 내가 손님의 입장이 되어서 느끼게 될 줄이야.
‘상업은행’호, 격변의 시대를 맞은 큰 배는 세계화속에서 새로운 금융질서에 부응하기위하여 부득이 항해를 멈추고 일부의 사람을 내려놓는 아픔의 시절을 맞는다. 최초의 민족은행, 근대사회로 변천하는 시점에 깃발을 높이 세웠던 금융의 선도자는 조용히 닻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금융 선진국에서도 은행이 문을 닫는 예가 많다고는 들었지만, 우리의 경우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 선뜻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모든 생명체는 언젠가 소멸하고 새로운 생명이 그 자리를 대신 이어받고 만남과 이별이 순환하는 세상사 아니던가.
그때 배에서 내린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한때는 방황하였지만 곧 다시 새로운 배로 갈아타고 항해를 계속하고 있다. 상업은행의 창립정신을 이어가는 배는 앞으로도 멈추지 않고 나아갈 것이다. 잠시 걸음을 멈추었던 작은 시계도 기지개를 켠다.
며칠 전에는 친구의 딸 결혼식장에서 본 친구들의 모습이 진한 정감을 불러 일으켰다. 머리털이 하얗게 변하고 얼굴엔 세월의 흔적이 그려져 있는 동기들, 세파에 그을린 얼굴엔 주름이 지고 머리엔 서리가 내렸지만 마음은 옛날의 젊음 그대로 활기차다. 젊음을 고스란히 몸 바쳐 일한 ‘상업은행’호의 후신이 힘차게 전진하기를 빈다. 오래도록 돌보지 않았던 현관위 작은 시계를 보며 생기를 가다듬는다. 나약해져가는 삶에 새로운 의지를 북돋워주는 작은 시계에서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굳은 의지를 본다. 시계와 함께 멈추지 않는 나날을 설계하는 동기들이 같이하는 한 그 시계도 쉼 없이 시간을 엮어나갈 것이다.
그 시계는 멈추지 않는다 - 2024년 6월 2일 일요일 상은 퇴직자 카톡방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