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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제목 : 은비령 지은이 : 이순원 출판사 : 현대문학 출판일 : 2003. 01,20 책가격 : 8,000원
특이사항 : 1996년 발표한 이순원의 중편소설로 제42회 현대문학상 수상(1997) 권해준 이 : 마음이 통하는 친구를 인터넷을 통해 만났다. 아직 잘 알지는 못하지만 서로에게 끌림을 알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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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
1997 제42회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인 『은비령』에는 수상작인 이순원의 「은비령」, 수상작가 자선작인 「영혼은 호수로 가 잠든다」, 그리고 수상후보작들과 역대 현대문학상 수상자들의 신작들이 실려 있다. 「은비령」은 죽은 친구의 아내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여리고 따스한 손길로 어루만지고 있는 작품으로서, 혜성과 별, 눈(雪)과 산(山)의 품 속에서 인간다움의 의미와 인연의 소중함을 묻고 있다. 읽을수록 가슴 깊이 전달돼 오는 감응 속에서 우리는 숨어 있는(隱) 비밀(秘) 같은 삶을 조금씩 깨닫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수상후보작인 이윤기의 「뱃놀이」는 단편소설의 전형적 구조를 보여주며, 이혜경의 「떠나가는 배」는 가족의 의미와 그 그늘을 살피고 있다. 한편 전경린의 「고통」은 사랑이 남긴 상처의 의미를 무섭도록 처절하게 묻고 있으며, 김인숙의 「풍경」은 가눌 수 없는 마음의 방황을 단아한 풍경(風景) 속에 풍경(風磬) 소리로 드리우고 있다. 그 외의 수상후보작 공선옥의 「그 여자 난주」, 김병언의 「금색 크레용」, 서하진의 「타인의 시간」 등도 나무랄 데 없는 가작(佳作)들로서 참다운 소설의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줄거리> 은비령
주인공 나는 소설가로 아내와는 이혼 상태와 다름없는 별거 중이다. 내게 사랑하는 여자가 생겼다. 마음의 소금짐이 더해지는 그 여자와의 사랑으로, 나는 그 소금짐을 덜어내기 위해 길을 떠난다. 격포로 예정된 길이 은비령으로 바뀌고 급기야는 별을 가슴에 담고 돌아온 여행길이었다.
여자는 내가 소설로 방향을 바꾸기 전, 은비령에서 고시공부를 함께 하던 친구의 아내였다. 행정고등고시에 합격하여 공무원이었던 친구의 행복한 아내였던 여자를 보고 나는 바람꽃을 떠올린다. 그리고 우연히 과부가 된 그녀를 만난다. 우연한 만남이 사랑으로 이어지고 나는 그녀와의 결합을 마음먹고 친구가 죽은 장소인 격포로 가려 했다가 눈소식을 듣고 은비령으로 향한다.
눈길에서 차가 고장나고 다음날 뒤쫓아 달려온 그녀를 만나게 된다. 둘은 부부로 오인한 옛 하숙집의 노인네들 때문에 한 방을 쓰게 된다. 어색한 잠자리를 피하기 위해 밤산책을 나온 둘은 밤늦게 별자리를 관측하는 남자로부터 은하계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2천 5백만년을 주기로 다시 되풀이되는 사람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여자는 2천 5백만년 후를 기약하고 혼자 떠난다.
이 소설은 남녀의 사랑을 다룬 소설이다. 불꽃 튀는 청춘남녀의 뜨거운 사랑이 아니고 여자는 과부로, 남자는 별거 중인 상태로 있는 중년의 사랑이다. 그들 사이에는 죽은 친구에 대한 심적 부담이 가로막고 있다. 남자는 심적인 부담을 벗어버리기 위해 길을 떠난다. 그리고 은비령에서 영원한 사랑을 확인하고 다시 돌아와 있는 것이다.
작가는 서해 페리호 전복사건과 때아닌 눈이 내리는 이상기후를 모티브로 삼고 있으며 교통방송 진행자의 멘트를 상당부분 인용하여 사실적인 배경을 짙게 하고 있다. 은비령은 한계령의 어느 부분을 지칭하고 있다고 하나 현실적인 공간은 아니다. 주인공의 차가 은비령의 경계에 들어서자 시계가 멈추어 버린 것이 암시하듯 그곳은 아름답고 순수한 사랑을 꿈꾸기에 적합한 상상의 세계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작가소개> 이순원
상고를 1,2등으로 졸업하면 한국은행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을 듣고, 1972년에 강릉상업고등학교에 입학하지만 왼손잡이라 다른 아이들만큼 능숙하게 주판을 놓을 수가 없어서 이순원은 은행원이 되는 대신 고랭지 농사를 지어 돈을 벌기로 결심한다. 이후 학교를 그만두고 대관령으로 올라가 농군이 되지만 고된 농사일을 체력이 감당하지 못해 2년 뒤 학교로 돌아가야 했다. 그 시기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눈부셨던 시절로 남아 있다. 앞으로도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를 짓고 싶다고 한다.
1978년에 나온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때까지도 소설에는 소설적인 문장이 따로 있는 줄로만 생각했던 그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통해 간명하고 정확한 단문이 얼마나 아름다운 소설 문장인가를 깨닫게 된다.
이순원은 데뷔 이후 왕성한 필력으로 문단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이순원 문학은 작가가 비관주의자임을 명료하게 드러내는데 그것은 이 세상에서 아름다운 것들을 실현하는 것에 대한 비관이다. 이러한 비관주의는 부정적인 대상물을 찾아 극단적으로 부정적 요소를 과장하고 도드라지게 형상화하거나 역으로 작고 연약하고 위태로운 가치나 존재들에 대한 관심으로 형상화된다.
이순원의 작품세계는 「수색」연작들을 전후로 하여 성격을 달리하는데, 「압구정동」시리즈를 비롯한 「수색」연작 전의 작품들이 현실에 대한 발언의 수위가 높은 작품이고, 연작 이후의 작품들에선 구체적 삶의 체험과 내면세계가 밀도 높게 반영되어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순원의 후기 작품들이 작가의 사적 체험을 소재로 하면서도 개인적인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보편적 가치의 차원으로 확대시킨다는 것이다.
<심사평> - 제42회 `현대문학상` 소설부문 심사위원 : 김윤식 김화영 조정래
이순원 씨의 「은비령」은 정겹다. 아무리 각박하게 살아온 사람이라도 뒤돌아보면 지난날의 삶의 길 모퉁이에 놓인 아늑한 한구석이 있는 법. 꼭 한번 있었던 일도 늘 그랬던 것처럼 회상되는 것이 기억의 본질이다. 프루스트가 찾아낸 잃어버린 시간도 이 원리에 따랐던 것. 「은비령」의 선 자리의 정겨움은 이 원리에서 왔다. <은비령>이라는 제목과 더불어 돌연 방향을 바꾸는 길의 흐름도, 쏟아지는 눈도, 수줍은 사랑도, 혼자 별을 보러 떠난 사람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설이 암시하는 공간과 시간의 광대무변한 넓이, 그리고 그 넓이가 암시하는 사유도 아름답다. 「은비령」은 중편소설다운 무게와 균형을 갖춘 수작이다. 심사위원들이 별다른 이견 없이 만장일치를 이루었던 것은 정확한 문장, 자연스러운 구성, 무리없는 전개 등이 이루어낸 작품의 완성도 때문이었다. 작가가 고향 <강원도>를 작품들로 살려내고 있는 것은 아름다운 노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