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개 무인도 거느린 완도 금당도
완도 금당도는 보성만에 자리잡은 아늑한 섬이다. 우리땅 최남단은
해남의 땅끝. 완도의 금당도는 위도 상으로는 해남 읍내보다 남쪽에,
땅끝보다는 북쪽에 있다. 해남에서 봄배추가 출하되고 황토밭에 감자
를 심을 무렵이면 금당도에도 바다와 들에 봄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장흥 회진항에서 배를 탔다. 철부선엔 소금을 가득 실은 화물차들이
가득하다. 미역을 거둬들여 염장을 할 때 쓰는 소금이다. 금당도의
봄은 미역농사로 시작된다. 주민들은 2월 중순부터 부지런히 미역을
거둬들이고 있다.
금당도 앞바다는 미역 어장을 오가는 배들로 분주하다. 소형 어선들
이 자그마한 크레인으로 밧줄을 들어올린 뒤 다닥다닥 붙어있는 미역
줄기를 뜯어내 운반선에 옮긴다. 뭍에서는 미역을 소금에 버무려
봄햇살에 널어 말린다. 바다에 띄워 놓은 100m짜리 밧줄 하나에
붙어있는 미역줄기는 1t. 7만원에서 많게는 10만원 안팎을 받는다.
한 집에 보통 300줄에서 500줄 정도를 거둬들이니 미역으로 연간
2천만~3천만원 소득을 올리는 셈이다. 미역철은 4월20일까지 이어
지고, 5월부터는 다시마를 수확한다. 6월부터는 톳이 나온다.
금당도 앞바다는 여객선이 오가는 뱃길만 빼고는 모두 양식장이다.
섬이 양식장에 둘러싸인 형국. 섬 앞바다에는 크고 작은 부표들이
어지럽게 떠있다. 뭍의 어느 들판보다도 광활한 미역밭이 펼쳐져
있다. 금당도는 동쪽의 고흥반도와 서쪽의 장흥반도 사이에 있다.
따라서 항상 파도가 잔잔하고 수온이 적당한 천혜의 어장이다.
어부들이 모두 물일을 나간 섬은 조용하다 못해 고요하다. 섬안
곳곳의 밭에는 벌써 보리가 푸릇하다. 고랑을 따로 파지 않고 씨앗을
뿌려놓아 멀리서 보면 꼭 잔디밭 같다. 밭 한쪽 귀퉁이에는 누렁소가
한가롭게 봄볕을 쬐고 있다. 그리고 또 육산리에 가면 이곳이 섬인지
육지인지 미끼지 않을 풍경이 펼쳐진다. 이는 간척지로 조성된 광활
한 평야의 농지와 이곳에 농수를 조달할 거대한 저수지가 호수처럼
펼쳐져 있다.
“옛날에는 정말 부촌(富村)이었어라. 집집마다 김을 했는디 1960년
대말 70년대 초에 김 한 톳(100장)에 2,000~3,000원이나 했다요.
김값이 금값이었제. 당시는 개도 500원짜리 지폐를 물고다닌다고
했응께.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김값이 똑같으니 어민들도 많이 힘
들지라.” 1975년 6,400명이었던 인구가 85년도엔 4,000명으로
줄었고, 지금은 576세대, 1,370명에 불과하다. 한때 13곳이나 됐던
김공장은 지금 3곳으로 줄었다. 그나마 ‘물김’도 금당도가 아닌 다른
곳에서 들여와 가공만 한다고 한다.
금당도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아담한 섬. 면적 13.91㎢로 초등학교
(예전엔 분교 2곳 포함 5곳의 초등학교가 있었다)와 중학교, 우체국,
농협, 파출소, 이발소, 노래방, 단란주점이 한 곳씩 있다. 미용실은
2곳, 교회는 3곳이다. 목욕탕과 주유소는 없다. 경기가 좋았던
70년대에는 술집이 4곳이나 됐고, 집집마다 젓가락 장단을 맞추는
작부가 3~4명씩 있었다고 한다. 이중 ‘청와대’라는 술집이 가장
장사가 잘 됐는데 벌써 오래전에 순천 송광사의 말사로 바뀌었다.
주말이면 섬은 오히려 더 조용해진다. 면사무소, 우체국, 농협 등
관공서 직원들이 가족들을 만나러 뭍으로 나가버리기 때문이다.
한때는 부자섬이었던 곳이라 주민들의 교육열도 유난히 높다.
육순, 칠순의 노인들도 대부분 육지의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
녹두장군’ ‘암태도’ ‘자랏골의 비가’를 쓴 작가이며 현 광주문화원장
으로 계시는 송기숙씨가 바로 금당도 출신이다.
승용차로 한 바퀴 돌아보는 데 1시간이면 족한 섬이지만 곳곳에
경승이 자리하고 있다. 파도처럼 오르락 내리락 하는 고갯마루에
선 크고 작은 섬들이 아름답게 뿌려져 있는 다도해가 바라다보인다.
금당도는 허우도와 비견도 등 3개의 유인도와 대화도, 중화도,
소화도, 시루섬, 질마도 등 15개의 무인도를 거느리고 있다. 소나무
를 셀 수 있을 정도로 자그마한 섬부터 수평선을 가로막은 제법 큰
섬까지 모양도 크기도 제각각이다.
동쪽으로는 거금도, 서쪽으로는 약산도와 고금도, 남쪽으로는 금일
도 같은 큰 섬들이 금당도를 둘러싸고 있다. 금당도는 다도해의 다른
섬처럼 해돋이와 해넘이가 아름답다. 새벽녘 무인도를 징검다리
삼아 새벽 동살을 등에 지고 어장으로 나가는 어선의 모습은 평화롭다.
고금도 너머 섬과 섬 사이로 떨어지는 일몰도 긴 여운을 남긴다.
일출 포인트는 면사무소 앞 헬기장. 산길로 10분 정도 오르면 된다.
일몰은 해안도로변 어디서든 볼 수 있다. 코끼리바위, 병풍바위,
스님바위, 부처바위 등 바다에서 바라보는 금당도의 기암은 더욱 절경
이다. 부채바위와 병풍바위는 단면이 육각형으로 된 화산암 주상절리
로 돼 있다. 금당도 선착장에는 금당도의 명소 사진을 붙여놓았다.
도시 사람들에게는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섬. 아득한 곳에 몽환
처럼 떠있는 금당도의 봄빛이 찬란하다. ▲여행길잡이 서울에서는
서해안고속도로를 타는 것이 가장 빠르다. 종점인 목포IC에서 빠져
나와 해남 방면을 택한다. 고가도로로 내려가 두번째 신호등에서
1차선으로 옮겨 타면 국도 2호선. 목포 방조제를 넘어 콘돌님의 고향
인 장흥으로 이어진다. 해남으로 들어가지 말고 영암과 강진을 지나
장흥까지 달린다. 장흥읍 못미쳐 오른쪽으로 국도 23호선 갈림길이
두번 나온다. 첫번째는 강진 마량, 두번째는 장흥 대덕 가는 길이다.
어차피 순환선이라 다시 만나게 되지만 두번째 갈림길로 들어가는
것이 더 빠르다. 대덕 방향으로 가다 보면 회진포구 이정표가 보인다.
회진항에서는 오전 7시·10시·12시, 오후 2시·4시30분 배가 들어간다.
40분 거리. 운임은 어른 2,000원, 어린이 1,000원. 승용차는 1만2천
원(편도). 승용차 한 대에 운전자 1명 승선료가 포함돼 있다. 현지에는
대중교통편이 없고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거리에 따라 2,000~5,000
원. 섬에는 주유소가 없기 때문에 장흥에서 미리 기름을 채워가는 것
이 좋다. 회진항(전화: 061-867-0912), 금일농협 금당지소(전화:061-
843-9717). 고흥 녹동항에서도 오전 6시부터 오후 2시까지 하루 6차
례 배가 떠난다. 45분 소요. 녹동항(842-2266). 완도항에서는 하루
1차례 배가 다닌다. 2시간 걸린다. 금당면사무소(전화:550-5610)
식당 4곳, 여관 1곳이 있다. 아리랑식당(843-7071), 오거리식육
식당(844-0024), 광주식당(843-9742) 등에서 백반과 생선회 등을
내놓는다. 식당에서 민박도 할 수 있다. 섬에서 유일한 여관인 대일장
(843-9727)에서 식사도 할 수 있다. 금당도 앞바다는 전국의 낚시꾼
들로부터 최고로 사랑받는 감성돔(막돔) 서식지로 유명하다. 4월부터
는 감성돔 낚시철. 배를 빌리는 데는 하루 15만원 정도 한다. 여관이나
식당에 부탁하면 선주를 알선해준다.
그리고 또 여기서 정리하지 못한 각 마을마다 가지고 있는 전설과
기암괴석 및 마을의 명소들이 많은데 이를 일일이 이글에 정리하지
못함을 아쉽게 생각한다. 이름 만큼이나 아름다운 섬 금당(金塘)에
꼭 한번 찾아보기를 추천한다. 경향신문에 추천여행지로 기사로
올랐기에 또한 나의 고향이기에 반가움으로 이를 리메이크 하여
소개했습니다.
송주~
첫댓글 까마득히 녹동에서 배타고 금산으로 소록도로 다니던 옛날 생각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