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술에 취해 부벽정에서 논 이야기) - 김시습(金時習, 1435∼1493) 바른♥국어
[줄거리] 송도(松都)에 사는 문객(文客) 홍생(洪生)이 평양에 갔다가 밝은 달밤에 부벽루(浮碧樓)에 올라 취흥에 겨워 시를 지었더니 갑자기 기자의 후예라는 미녀가 나타나서, 위만(衛滿)에게 기자의 후손이 멸망한 것을 애통해 하며 이 세상에 살 재미가 없어 하늘에 올라가 선녀가 되었노라고 하였다.
밤새도록 그들은 시로 화답하며 놀았으나, 새벽이 되니 그 선녀는 “옥황상제의 엄명이라 돌아가야 한다”며 바람처럼 사라졌다. 그 후로 홍생은 꿈에도 그녀를 못 잊어 자리에 눕고 말았다. 하루는 꿈에 동녀가 나타나 “우리 아가씨께서 당신을 모셔오라고 하여 왔노라”고 하였다. 꿈에서 깬 홍생은 목욕재계하고 있다가 곧 세상을 떠났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홍생이 하늘에 가서 선녀와 함께 산다고 하였다
[핵심 정리]
*형식 : 한문소설, 단편소설 *연대 : 조선 세조 때
*문체 : 역어체 *성격 : 전기적, 낭만적
*주제 : 수천 년 전의 기씨 여인과의 사랑
[이해와 감상]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의 한문 소설집 《금오신화(金鰲新話)》에 실린 5편 중 한 단편. 이 작품은 시가 태반을 차지하고 있는데, 같은 금오신화 내의 작품인 <만복사저포기>가 불교적이요, <이생규장전>이 유교적이라면, 이 작품은 도교적이다. 도교의 중심 사상은 신선사상인데, 이와 같은 신선담을 표현한 것은 작자 자신이 가지고 있던 신선 사상이 반영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작품은 평양(平壤)의 부벽루(浮碧樓)에서 선녀와 더불어 논 이야기로서,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인 작자는 이 작품 속에서 기자(箕子)를 들어 단종을 폐위시킨 세조의 처사를 은연중 비난하였고, 죽은 여자의 혼령이 산 사람처럼 나타나 주인공과 어울렸다는 점에서 명혼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만남이 꿈속의 일인 것 같다는 설정은 몽유소설과 상통하지만, 꿈의 시작과 끝을 불분명하게 해서 한층 더 미묘한 분위기를 조정했다. 도가적인 취향과 주체적인 사관을 내면적인 신념으로 승화시킨 작품으로 볼 수 있고, 시애 설화와도 관련이 있다.
[문제]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앞부분의 줄거리] 개성 부호가의 아들 홍생(洪生)은 팔월 한가위를 맞아 평양에 왔다가 친구 이생(李生)이 벌인 잔치에 와서 술이 취한 뒤, 잠이 오지 않아 부벽정(浮碧亭)에 올라 시를 읊었다.
오늘이 한가위라 저 달빛은 곱구나.
외로운 옛 성터를 바라볼수록 슬프도다.
기자묘(箕子廟) 뜰 앞에는 늙은 숲이 우거지고
단군사(檀君祠) 벽 위에도 담쟁이가 얽히었네.
영웅은 자취 없어 어디로 돌아갔느뇨.
초목만 의희(依稀)*한데 몇 해나 되었더냐.
옛날이 더욱 그립구나 둥근 달만 의구하도다.
맑은 빛이 흘러흘러 객의 옷에 비치네.
어느덧 밤이 깊어 돌아오려 할 때에 서쪽에서 갑자기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홍생은 속으로 생각했다.
‘아마 시 읊는 소리를 듣고 절에 있는 중이 찾아오는 것이겠지?’
그러고는 앉아서 기다리니 뜻밖에도 아름다운 한 여인이 나타났다. 그 여인을 두 아이가 좌우에서 모시고 따르는데, 한 아이는 옥 파리채*를 들었고 다른 아이는 비단 부채를 들고 있었다. 여인의 위의(威儀)는 정제하고 그 몸가짐이 귀족집 처녀 같았다.
그녀가 말했다. / “아까 그대가 읊은 시는 무엇을 의미한 것입니까? 의아하게 생각지 말고 나에게 다시 들려주세요.”
홍생은 그 시를 빠짐없이 다시 들려주었다. 여인은 웃으면서 말했다.
“그대와는 시를 논할 만하구려.” < 중략 >
홍생이 그 음식을 먹는 동안 그 여인은 홍생의 시에 화답하는 시를 계전*(桂箋)에 써서 시녀를 시켜 홍생에게 건넸다.
홍생은 그 시를 읽고 매우 기뻐, 그녀가 빨리 돌아갈까봐 좋은 이야기로 만류하려고 이렇게 물었다.
“미안하지만 당신의 성씨와 보계*(譜系)를 듣고자 하옵니다.”
“예, 이 몸은 옛날 은왕(殷王)의 후예요 기씨(箕氏)의 딸입니다. 나의 선조 기자(箕子)님께서는 처음 이 땅에 오셔서 모든 예법과 정치를 한결같이 탕(湯)왕의 유훈을 따라 팔조(八條)의 금법(禁法)을 세웠습니다. 그리하여 오래도록 문화가 빛났는데 갑자기 국가와 민족이 비운에 빠져, 나의 선고(先考) 준왕(準王)께서는 필부의 손에 패하여 드디어 국가를 잃으시고, 위만(衛滿)이 틈을 타서 보위(寶位)를 도적하니 나 같은 약질은 이때를 당하여 스스로 절개를 지키기로 맹세하고 죽기만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마침 거룩한 선인이 나타나셔서 나를 어루만지면서 하시는 말씀이 ‘내 본디 이 나라의 시조(始祖)로서 부귀를 누린 뒤에 바닷섬에 들어가 선인이 된 지 벌써 수천 년이 되었느니라. 그대는 나와 함께 상계(上界)에 올라가 즐겁게 노는 것이 어떻겠느냐?’ 하시기에 곧 응낙하였더니, 그분은 나를 데리고 자기가 살고 있는 곳에 이르러 별당을 지어 나를 접대하고, 또 나에게 삼신산의 불사약을 주셨습니다. 이 약을 먹고 나니 갑자기 몸이 가벼워지고 기분이 상쾌해져서, 공중에 높이 떠서 우주를 굽어보며 세계의 명승지를 빠짐없이 유람하였는데, 어느 날 가을 하늘이 맑고 유난히 밝은지라 별안간 멀리 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달나라에 올라 광한청허지전(廣寒淸虛之殿)을 구경한 후 수정궁(水晶宮) 안으로 가 항아(姮娥)를 방문하였더니, 항아는 내 절개가 곧고 글월에 능통하므로 꾀어 이르기를 ‘인간 세상에도 명승지가 없지 않으나 모두 풍진이 소란하니, 어찌 청천에 한 번 솟아 흰 난조를 타고 맑은 향내를 계수에 뿜으며 옥경(玉京)에 설렁이고 은하에 목욕하는 것과 같겠느냐?’ 하고는 즉시 나를 향안(香案)의 시녀로 하여금 양쪽에서 모시게 하니 그 기쁨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저녁에 갑자기 고국 생각이 간절하여 하계의 인생을 내려다보니, 산천은 의구하나 인물은 간데없고 명월은 내를 덮고 백로는 티끌을 씻은지라, 옥경을 하직하고 슬며시 내려와 조상님 무덤을 배알한 후 부벽정에 올라 시름을 달래려 하였는데 마침 당신을 만나 한없이 기쁘기도 하고 또한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더구나 노둔(駑鈍)한 붓을 들어 아름다운 시에 화답했으니, 시라고 하기엔 부끄럽지만 마음속에 품은 생각을 대충 말한 것입니다.”
[뒷부분의 줄거리] 여인이 신선 세계로 돌아간 후, 꿈속에 시녀가 나타나 여인이 홍생의 문재(文才)를 아껴 선계의 벼슬을 명령하였음을 알린다. 홍생은 잠에서 깨어 깨끗하게 목욕을 한 뒤에 향을 태우며 잠깐 누웠다가 세상을 떠난다. 시간이 지나도 시신의 얼굴빛이 변하지 않자 사람들은 홍생이 신선이 되었다고 추측했다.
-김시습, <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
*의희(依稀): 거의 비슷하다. *옥 파리채: 선종(禪宗)의 중이 번뇌와 어리석음을 물리치는 표지
*계전(桂箋): 계수나무 잎 *보계(譜系): 혈통 관계
1. 위 글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서술자가 직접 개입하여 주제 의식을 강화하고 있다.
② 인물이 추리 과정을 통해 특정 사건의 의미를 탐색하고 있다.
③ 시간의 입체적 구성으로 사건의 새로운 국면을 암시하고 있다.
④ 공간적 배경의 이동으로 갈등의 다양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⑤ 인물의 진술을 통해 과거의 사건들을 요약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2. <보기>는 ‘여인’이 홍생의 시에 화답한 시의 일부분이다. ⓐ~ⓔ 중, 옛 성터의 의미와 가장 유사한 것은?
<보기> 옛성을 바라보니 ⓐ대동강이 여기로구나.
푸른 물결 맑은 모래 울어 예는 저 ⓑ기러기
ⓒ기린은 오지 않고 고운 님을 여읜 뒤에
ⓓ퉁소 소리 끊어지고 ⓔ높은 무덤뿐이로다.
① ⓐ ② ⓑ ③ ⓒ ④ ⓓ ⑤ ⓔ
3. 위 글을 <보기>와 관련지어 감상했을 때, 이에 대한 해석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견해 1] 작가와 홍생을 동일시하는 경우
▷ 홍생의 처지와 심리를 작가 의식으로 본다. 작품 속에서 홍생은 선계와 교류하고, 결국 선계로 들어간다. 현실에서 자신의 뜻을 펼 수 없었던 작가는 이러한 홍생의 모습을 통해 삶의 고뇌와 회의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던 자신의 바람을 형상화하고 있다.
[견해 2] 작가와 여인을 동일시하는 경우
▷ 여인의 말에 나타난 역사의식을 작가 의식으로 본다. 조상에 대한 자긍심을 통해 역사에 대한 작가의 애정을 드러냈고, 나라가 패망했을 때 절개를 지키기로 맹세한 것은 세조의 왕위 찬탈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① [견해 1]로 볼 때, 홍생의 시에 드러난 무상감은 작가의 현실에 대한 회의와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② [견해 1]로 볼 때, 홍생이 뛰어난 문재(文才)로 선계의 벼슬을 받은 것은 작가 자신의 소망을 투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③ [견해 2]로 볼 때, 절개를 지키기 위해 죽기를 기다렸다는 여인의 말에서 세조 정권에 항거하는 작가의 의식으로 볼 수 있다.
④ [견해 2]로 볼 때, 여인의 답변 중에서 기자의 예법 정치를 강조한 부분은 작가의 문화적 자긍심을 담아낸 것으로 볼 수 있다.
⑤ [견해 2]로 볼 때, 여인이 선계(仙界)에 있다가 부벽정을 찾은 것은 현실을 초월하고 싶은 작가의 욕구를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4. ㉠에 가장 어울리는 한자성어는?
① 천우신조(天佑神助) ② 금과옥조(金科玉條) ③ 학수고대(鶴首苦待)
④ 흥진비래(興盡悲來) ⑤ 간담상조(肝膽相照)
<정답> 1⑤-지문에서 ‘여인’은 성씨와 보계를 묻는 홍생의 질문에 자신의 과거 내력을 요약하여 말하고 있다. 따라서 정답은 ⑤번이다.
2⑤-‘옛 성터’는 과거의 영화로운 시절을 잃어버린 후에 느끼는 무상감이 드러나는 배경으로, 여인의 시에서는 ‘높은 무덤’의 의미와 동일하다. 따라서 정답은 ⑤번이다.
3⑤-[견해2]로 볼 때, 여인이 선계에서 부벽정을 찾아 온 것은 고국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다. 작가의 현실 초월 욕구는 [견해1]에 해당한다. 따라서 정답은 ⑤번이다.
4①-①천우신조(天佑神助):하늘과 신령의 도움, ②금과옥조(金科玉條):금이나 옥처럼 귀중히 여기어 꼭 지켜야 하는 법칙이나 규정, ③학수고대(鶴首苦待):몹시 애타게 기다림, ④흥진비래(興盡悲來):즐거운 일이 다하면 슬픈 일이 닥쳐온다는 뜻으로, 세상일이 돌고 돌아 순환됨을 가리키는 말, ⑤간담상조(肝膽相照):서로 속마음을 터놓고 친하게 사귐.
[지문] 평양은 옛 조선의 도읍이었다. 주(周)나라 무왕(武王-중국 주나라 문왕(文王)의 아들로 이름은 발(發). 여상(呂尙)을 태사(太師)로 하고 아우 단(旦)과 협력하여 폭군 주(紂)를 토벌하고 은(殷) 왕조를 멸망시킨 후 주 왕조를 창건)이 상(商)나라(고대 중국의 왕조인 은(殷)나라. 시조는 탕왕(湯王)이며 17대 왕인 반경(盤庚)에 이르러 박(亳)에 도읍을 정하고 국호를 은이라 칭하였다. 기원전 1122년에 주무왕에게 멸망당함)를 정벌한 후 기자(箕子-고대 중국 은나라 말기의 현인. 은왕 주(紂)의 친척이라고도 하며, 주나라 무왕에게 바른 정치를 위한 아홉 가지 조항인 홍범구주를 전하였다고 한다. 조선에 들어와서 기자조선을 세웠다는 주장도 있으나 확인되지 않음)를 찾아가니 기자는 무왕에게 홍범구주(洪範九疇)를 설파하였다. 이에 무왕은 조선을 기자에게 주고 임금으로 봉한 후 신하로서 대하지 않았다.
평양의 빼어난 곳을 말하자면 금수산(錦繡山-평양 북쪽 50리에 있는 진산(鎭山))과 봉황대(鳳凰臺-평양 서쪽 10리에 있는 누대(樓臺)), 능라도(綾羅島-평양 동남쪽 40리에 있는 섬), 기린굴(麒麟窟-부벽루(浮碧樓) 아래에 있는 굴. 고구려의 시조인 동명왕이 기린마(麒麟馬)를 타고 이곳으로 들어갔다고 함), 조천석(朝天石-기린굴 남쪽에 있는 바위. 동명왕이 이곳에서 승천했다고 함), 추남허(楸南墟-추남터. 어느 곳인지는 알려지지 않음) 등이 있는데 모두 옛 유적들이다. 영명사(永明寺-금수산 부벽루의 서쪽 기린굴 위에 있는 절)의 부벽정(浮碧亭-부벽루)도 그중 하나이다.
영명사는 동명왕이 건립한 구제궁(九梯宮)의 터에 있다. 평양성 외곽에서 동북쪽으로 20리쯤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큰 강을 굽어보고 넓은 평원을 바라보며 아득히 끝을 찾을 수 없으니 진정으로 빼어난 경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놀잇배와 장삿배가 저녁 무렵 대동문(大同門-평양성의 동문(東門)) 너머 버드나무 숲이 우거진 물가에 정박하면 사람들은 조류(潮流)를 따라 올라와서 이곳을 마음대로 구경하고 극진한 즐거움을 맛본 후 돌아가곤 했다.
정자 남쪽에는 돌을 깎아 만든 층계가 있는데 그 왼편은 청운제(靑雲梯), 오른편은 백운제(白雲梯)라고 새기고 화주(華柱)를 세웠으니 호사가들이 감상할 만했다.
천순(天順-명나라 영종(英宗)의 연호. 천순 초년이면 조선 세조(世祖) 2년(1457년)에 해당) 초년, 송경(松京-개성)에 홍씨 성을 가진 부유한 사람이 있었는데, 나이는 젊고 용모가 수려해 의젓한 풍도(風度)가 있었으며, 또한 문장에도 뛰어났다.
중추절이 되자 친구들과 함께 실을 사기 위하여 포목을 배에 싣고 성 안에 들어와 강가에 정박해 두었다. 성 안의 이름 있는 기생들은 모두 성문 밖으로 나와 그에게 눈길을 주었다.
성 안에 살던 오랜 친구인 이 서생은 그를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다. 거나하게 취한 홍 서생은 배로 돌아갔는데, 밤공기가 서늘하여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장계(張繼-중국 당나라의 시인으로 자는 의손(懿孫))의 ‘풍교야박(楓橋夜泊-제목은 ‘야박풍교(夜泊楓橋)’. 그 내용은 ‘밤새 소리 구슬픈 달밤 서리는 가득 내려 / 강가에 고깃배 불 근심을 더해 주네 / 고소성 밖 쓸쓸한 산사 / 울리는 종소리 뱃전에 울리네’)’을 떠올리니 맑은 흥취를 참을 수 없었다. 작은 배를 타고 달빛을 받으며 노를 저어 올라가며 흥취가 다하면 돌아가리라고 생각했다. 이윽고 부벽정 아래에 도착하였다.
홍 서생은 뱃줄을 갈대숲에 매어 두고 사다리를 타고 누대에 올라갔다. 난간에 의지하여 경치를 바라보며 맑은 목소리로 시를 읊었다. 이때 달빛은 바다와 같이 넓게 비추고 물결은 비단과 같이 곱게 흔들렸다. 기러기는 물가 백사장에서 울고 학은 소나무에 내린 이슬에 놀라니, 그 서늘한 기운은 맑고 넓은 하늘나라 궁전에 올라온 것만 같았다.
옛 도읍을 바라보니 하얀 성가퀴(성 위에 쌓은 낮은 담)에는 연기가 끼어 있고 쓸쓸한 성에는 물결이 부딪치고 있었다. 홍 서생은 맥수은허(麥秀殷墟-망국(亡國)의 슬픔. 기자(箕子)가 은나라의 도읍터에 무성히 자란 보리를 보고 탄식하며 지은 노래의 이름)의 탄식이 북받쳐, 이에 여섯 수의 시를 지었다.
“허무한 마음 이기지 못해 패강(浿江-대동강) 정자에서 시를 읊으니
구슬픈 강물 소리 애간장 끊는구나. / 옛 나라 장한 기운은 이미 사라졌나.
황량한 성터는 옛 자취 그대로인데. / 백사장 달빛 어려 기러기 갈 길 잃고
연기 걷힌 뜰 위엔 반딧불만 날아다녀. / 풍경은 쓸쓸하고 세상은 바뀌었으니
한적한 산사(山寺)에선 종소리만 울리도다.
옛 궁궐 바라보니 가을 풀만 쓸쓸해 / 구름 가린 섬돌은 길조차 아득하네.
기생과 놀던 관사(館舍) 옛 터 잡초만 무성하고 / 성가퀴에 뿌연 달빛 밤까마귀 울고 가네.
풍류스럽던 옛 영광 먼지가 되었으니
적막한 빈 성 안엔 질려(蒺藜-납가새. 납가새과의 1년초. 높이 1미터 가량으로 해변의 모래밭에서 자람)만 널려 있네.
오직 강물만이 옛 모습 그대로니 / 도도히 흘러내려 서쪽 바다로 가는구나.
패강(浿江)의 물은 쪽보다 푸른데 / 천고의 흥망이야 감당하기 어렵겠지.
금정(金井-우물)엔 물 말라 노박덩굴만 얽혔는데 / 이끼 낀 돌담은 나무들로 덮여 있네.
타향 풍월이야 천 수나 읊었고 / 옛 왕조 정회에 술이 반쯤 취하는데,
마루엔 환한 달빛 졸음은 달아나니 / 밤이 깊을수록 계수나무 그림자 길어지네.
한가위 달빛이야 곱고도 고운데 / 옛 성 바라보니 정한(情恨)만 솟구쳐.
기자묘(箕子廟-평양성 내에 있는 기자의 사당) 뜰 앞엔 큰 나무 늙어 가고
단군사(檀君祠-단군의 사당) 벽 위엔 여라(女蘿-송라(松蘿). 이끼의 한 종류) 푸르도다.
스러진 영웅들 지금은 어디 있나. / 듬성한 초목들 몇 해나 되었는지.
오직 그 옛날 둥근 달만 남아 있어 / 맑은 빛 흘러내려 옷깃을 비추도다.
동산에 달 뜨니 까막까치 날아오르고 / 깊은 밤 찬 이슬 옷 속으로 스며들어.
천년 전 살던 모습 다한 지 오래이고 / 만고의 산하라지만 성곽은 사라졌네.
동명왕 조천(朝天)하고 돌아오지 않았으니 / 세상에서 전한 말씀 그 누가 전해 줄까.
금수레 기린마(麒麟馬) 어디로 가 버렸나. / 잡초 자란 행차길로 스님 홀로 지나가네.
정원에 무성한 풀 가을이슬에 시들었고 / 청운교 백운교는 마주보고 걸려 있네.
수군(隋軍) 영혼들 울부짖는 여울목(고구려 영양왕 때 수나라 군사 10만이 침범하였다가 청천강에서 대패한 사실을 가리킴)
슬피 우는 매미는 동명왕의 화신(化身)일까.
연기 덮인 치도(馳道-천자가 거동하는 길)에 보연(寶輦-임금이 타는 가마)은 다니지 않아
행궁 솔밭에는 저녁종 울려퍼지네. / 높이 올라 시 지어도 감상해 줄 이 없건만
달 밝고 바람 맑으니 흥은 가시지 않네.”
홍 서생은 시 읊기를 마치고 손바닥을 어루만지며 일어나서 주춤주춤 춤을 추었다. 그는 매 한 구가 끝날 때마다 몇 차례씩 흐느껴 울었다. 비록 뱃전을 두드리고 피리를 불면서 화답해 주는 음악은 없었지만, 마음속 깊이 강개(慷慨)함을 느꼈다. 이는 깊은 골짜기에 숨어 있는 교룡(蛟龍)이 춤을 추게 하고, 외딴 배 위의 과부가 눈물 흘릴 만하였다.
시 읊기를 마치고 돌아가려 하니, 시간은 이미 삼경(三更)이 되었다. 갑자기 발자국소리가 들렸다. 서쪽으로부터 누군가 다가오고 있었다. 홍 서생은 영명사의 스님이 시를 읊는 소리를 듣고 놀랍고 의아하게 여겨 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앉아서 오는 사람을 기다리니 나타난 사람은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머리를 갈라땋은 두 명의 시녀가 여인의 좌우에서 따라오고 있었는데, 한 사람은 옥자루가 달린 불자(拂子-중국산 얼룩소의 긴 꼬리를 묶어 자루를 단 먼지털개)를 가지고 있었고, 한 사람은 얇은 비단으로 만든 부채를 들고 있었다. 여인은 몸가짐이 엄숙하고 차림이 단정하여 귀한 집안의 처녀 같았다.
홍 서생은 계단에서 내려와 담장 틈에 몸을 피하고 그들을 살펴보았다. 여인은 남쪽 난간에 기대어 서더니 달을 바라보며 조그만 소리로 시를 읊었다. 그 풍류스러운 태도에는 엄숙함과 순서가 있었다. 시녀가 비단으로 만든 자리를 받들고 다가갔다. 여인은 안색을 고치고 자리에 앉아 낭랑한 목소리로 말하기를,
“여기서 누가 시를 읊는 것을 들었는데, 그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나는 꽃과 달의 요정이 아니며, 걸음마다 연꽃이 피던 반비(潘妃)도 아니다. 다행히 오늘밤 장공만리(長空萬里) 구름 걷힌 광활한 하늘에 얼음바퀴 같은 달 뜨고 은하수는 맑으니, 계수나무 열매는 떨어지고 경루(瓊樓-달 속에 있다는 백옥으로 만든 누각. 즉, 백옥루(白玉樓))는 서늘하다. 한 잔 술에 시 한 수 읊으며 그윽한 정을 이야기하려 했건만, 이같이 좋은 밤을 어찌 보내리.”
홍 서생은 한편으로는 두렵고 한편으로는 기뻤지만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가늘게 기침을 했다. 여인은 소리가 나는 곳으로 시녀를 보내어 청하였다.
“주인아씨께서 모시고 오라십니다.”
서생은 조심스럽게 나아가 절을 하고 꿇어앉았다. 여인은 그다지 공경하지 않은 태도로 그저 말하기를,
“그대도 이곳으로 올라오십시오.”
시녀가 낮은 병풍으로 그들 사이를 언뜻 가렸기 때문에, 그들은 단지 얼굴의 반만을 서로 볼 수 있었다. 여인은 조용히 말했다.
“그대가 방금 전 시를 읊던 사람 같은데, 그 시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내게 그것을 설명해 주십시오.”
홍 서생은 한 자 한 자 외워 설명해 주었다. 여인은 웃으며 말하기를,
“그대는 역시 나와 더불어 시를 논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여인은 시녀에게 즉시 명하여 술상을 내오게 하였다. 차려진 음식들은 인간 세상의 것들과는 달라 보였다. 시험 삼아 씹어보았지만 굳고 단단하여 먹을 수가 없었다. 술 또한 써서 마실 수가 없었다. 여인은 빙그레 웃으며 말하기를,
“속세의 선비가 어찌 신선이 마시던 백옥례(白玉醴)와 규룡(虯龍-용의 새끼로 뿔이 돋쳤다는 전설상의 동물)을 잡아 만든 홍규포(紅虯脯)를 알겠습니까?” / 이어 시녀에게 말하기를,
“너는 속히 신호사(神護寺-평양 서남쪽 4리 창관산(蒼觀山)에 있는 절)로 가서 공양밥을 조금 얻어 오너라.”
시녀는 분부대로 절로 갔다가 잠시 후에 밥을 얻어 돌아왔다. 하지만 반찬이 없었다. 여인은 다시 시녀에게 말하기를,
“너는 주암(酒巖-평양 동쪽 90리에 있는 바위 이름. 아래에는 용이 살고 있음)으로 가서 반찬을 가져오너라.”
잠시 후 잉어구이를 가지고 돌아왔다. 홍 서생은 그것을 먹었다. 다 먹고 나니 여인은 이미 그의 시에 대하여 그 뜻을 화답하는 시를 향내 나는 종이 위에 써놓았다. 그녀는 시녀로 하여금 시를 가져다가 홍 서생에게 전하게 했다. 그 시는 다음과 같았다.
“오늘 밤 동쪽 정자엔 달빛도 밝은데 / 그 같은 맑은 얘기에 이는 감개 어찌할꼬.
나무는 푸른 일산(日傘)처럼 펼쳐 있고 / 강물은 넘쳐흘러 흰 비단처럼 둘러 있네.
새 같은 세월이야 홀연 지나갔지만 / 물결 같은 세상은 변하고 또 변했겠지.
오늘 저녁 품은 정회 그 누가 알아주리.
뜸한 종경(鐘磬-종과 경쇠) 소리만이 옛 터에서 들려오네.
옛 성 남쪽 바라보니 강줄기 갈리는데 / 푸른 물결 하얀 모래에 기러기 떼 울고 가네.
기린마(麒麟馬) 돌아오지 않으니 용은 이미 승천했고
퉁소소리 이미 끊겨 남겨진 것은 흙무덤뿐.
촉촉한 청람(晴嵐-맑게 갠 날 저녁 멀리 보이는 산에 어려 있는 푸르스름하고 흐릿한 기운. 이내 또는 남기(嵐氣))에 시흥(詩興)이 일어나니
인적없는 절간도 술에 반쯤 취한 듯.
구리 낙타 가시덤불로 떨어짐을 참고 보았으니(한 시대의 영화가 허망하게 몰락하는 것을 가리킨다. 《진서(晋書)》 ‘색정전(索靖傳)’의 인용으로 원문은 다음과 같다. “색정은 먼 앞일을 예측하는 식견이 있어 장차 천하가 난리 속으로 빠져들 것을 알았다. 그는 낙양궁 안에 서 있는 구리 낙타를 가리키며, ‘반드시 네가 가시덤불 속에 있는 것을 보겠구나’라고 탄식하였다.”)
천 년의 영화로움은 뜬구름이 되었구나.
풀 아래 애매미 쉴새없이 울어대고 / 높은 정자 올라서니 상념이 아득해.
비 그치고 구름 끼니 지난 일 서글퍼 / 낙화유수(落花流水) 바라보면 세월은 빛과 같아.
깊어지는 가을날 조수(潮水) 소리 장하고 / 누각 잠긴 강물엔 서늘한 달빛만.
그 옛날 바로 이곳 얼마나 화려했나. / 무너진 성 성근 숲은 보는 이 슬프게 해.
금수산(錦繡山) 아래라서 비단을 덮었는지 / 강가의 단풍나무 옛 성터를 가리우네.
어디서 울리는 걸까, 쓸쓸한 다듬이 소리. / 어여차 뱃노래 싣고 고깃배 돌아오네.
암벽에 기댄 늙은 나무 담쟁이 얽혀 있고 / 풀숲에 누운 잘린 비석 이끼에 덮여 있네.
말없이 난간 잡고 옛일을 가슴 아파하니 / 달빛과 물소리 모든 것이 슬픔일세.
듬성듬성 옥경(玉京-옥황상제가 거처하는 천상(天上)의 수도)에 뜬 별
은하수 맑고 투명해 달빛은 교교하네.
옛날의 영광도 이젠 모두 허사 되어 / 다음 세상 알 수 없어 이승에서 만났구나.
좋은 술 한 동이에 마땅히 취해 보세. / 속세의 삼척검(三尺劍)일랑 모두 접어두고.
만고의 영웅들도 흙먼지가 되었으니 / 세상에 헛되이 남은 것 죽은 뒤의 이름이라네.
밤은 어찌 이리 깊어만 가는가. / 낮은 성벽에 걸린 달은 둥글어 가네.
그대는 지금부터 속세를 떠났으니 / 나와 함께 마음껏 즐기리라.
강 위의 경루(瓊樓)에는 사람들 흩어지고 / 섬돌 앞의 고운 나무 첫 이슬 내리는데,
이후 다시 만날 날을 알고 싶다면 /
봉래산(蓬萊山) 복숭아 익고(신선들이 먹는 복숭아는 삼천 년에 한 번씩 열매를 맺는다고 함) 푸른 바다 말라야 하네.”
홍 서생은 그 시를 읽고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그녀가 돌아갈까 봐 두려웠다. 홍 서생은 계속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물었다.
“감히 물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당신의 성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가문에 대해서도 알고 싶습니다.” / 여인은 한숨을 쉬고 말했다.
“나는 은(殷) 왕조의 후예인 기(期)씨의 딸입니다. 내 선조(기자(箕子)를 말함)는 이 땅의 왕으로 봉해지셔서 예악(禮樂-행동을 신중하게 하는 예의와 마음을 온화하게 하는 음악)과 전형(典刑-전통의 법식(法式)) 모두 탕왕(湯王-중국 은나라 초대 왕으로 본명은 이(履), 또는 대을(大乙). 하(夏)나라 걸왕(桀王)을 내쫓고 왕위에 올라 도읍을 박(亳)에 정하고 국호를 상(商)이라고 함)의 가르침에 따라 행하셨습니다. 팔조(八條-사람으로서 명심해야 할 여덟 가지 조항. 살인, 상해, 도둑질, 강간 등을 금하는 내용을 담고 있음)로써 백성들을 가르치니 그 찬란한 문물은 천 년을 이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라의 운세가 쇠하여 재앙과 환난이 닥치게 되니 선고(先考-돌아가신 아버지, 곧 기자조선의 마지막 왕인 준왕(準王). 기원전 2세기경 중국 하북 지방의 위만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마한(馬韓) 땅으로 가서 한왕(韓王)이 되었다고 함)께선 보잘것없는 도적에게 패하니, 마침내 나라를 잃게 되었습니다. 위만(衛滿-위만조선의 창시자. 중국 연(燕)나라 사람으로, 많은 유민들을 거느리고 기자조선에 귀순하였다가 모반을 일으켜 나라를 빼앗음)이 이 시운(時運)을 타고 왕위를 차지하니 기자조선의 왕업은 여기서 끊어진 것입니다. 연약한 나는 어지러운 지경으로 빠져들어 정절을 지킬 생각으로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홀연 신인(神人)이 나타나 나를 어루만지면서 말하기를, ‘나는 이 나라의 시조이다. 나라를 세운 후 바다 가운데 있는 섬으로 들어가 신선이 되었으니 이미 수천 년을 살아왔다. 너는 능히 나를 쫓아 하늘나라의 궁전으로 가서 아무 근심 없이 즐거움을 누리지 않겠느냐?’ 하시었습니다. 나는 그 말을 따랐습니다. 그분은 마침내 나를 이끌고 거처하시던 곳으로 가서 따로 별당을 지어 나를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나로 하여금 현주(玄洲-신선이 사는 곳인 십주(十州) 중 하나)의 불사약(不死藥)을 먹게 하시니, 몇 달이 지나자 갑자기 몸이 가벼워지고 기운이 건강해지더니 새처럼 하늘을 날 수 있게 된 것이 마치 속기(俗氣)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게 된 것 같았습니다. 그 후로 나는 하늘 위를 노닐고 사방을 날아다니며 동천복지(洞天福地-신선들이 산다는 전설상의 지명)와 십주삼도(十洲三島-신선들이 산다는 전설상의 지명)를 빠짐없이 유람했습니다. 하루는 가을 하늘이 맑고 옥황상제가 계시는 궁전이 밝게 빛났습니다. 달빛이 물과 같으니 달 속의 섬계(蟾桂-두꺼비와 계수나무. 모두 달 속에 있다고 함)가를 바라보며 갑자기 먼 곳으로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드디어 달에 올라 광한전(廣寒殿-달 속에 있다고 하는, 항아(姮娥)가 사는 전각)에 들어가서 수정궁(水晶宮) 안에 있는 항아(姮娥)를 만났습니다. 항아는 내가 정절이 굳고 문장을 잘한다고 칭찬하며 말하기를, ‘아래 세상의 선경(仙境)은 비록 복지(福地)라고 하지만 모두 번잡함을 피할 수 없는 속세에 불과하오. 어찌 하늘나라에서 백로를 타고, 붉은 계수나무의 맑은 향기를 맡으며, 푸른 하늘 달빛과 어울려 옥경(玉京) 위를 노닐고, 은하수에서 헤엄치는 것과 같으리요?’ 하고는, 즉시 나를 향안(香案-옥황상제 앞에 놓는 향로를 받치는 상)을 받드는 시녀로 삼아 곁에 있게 해주니, 그 즐거움을 어찌 말로 형용하겠습니까? 하지만 오늘밤 문득 향수가 일어났습니다. 하루살이 같은 인간 세상을 돌아보고 싶지는 않지만, 고향을 그리는 마음에 곁눈질하니 산천 경물(景物)은 그대로이나 사람은 옛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얀 달빛이 연기와 먼지를 가리고 맑은 이슬이 흙과 잡초 위에 내렸기에, 옥경을 잠시 하직하고 하계로 내려와 조상의 묘를 참배하고 이 부벽정에 올라 정회를 풀고 있던 참입니다. 우연히 당신을 만나니 기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합니다. 그대의 옥구슬같이 훌륭한 문장에 얼떨결에 둔한 붓으로 화답했으니, 감히 글을 지었다고 할 수 없고 단지 내 마음을 술회한 정도로만 알아두십시오.”
홍 서생은 두 번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면서 말했다.
“아래 세상의 어리석은 백성이니 초목과 한가지로 썩는 것을 달게 받고 있습니다. 어찌 왕손이신 천상의 선녀와 더불어 시를 화답하는 것을 바랐겠습니까?”
홍 서생은 자리에 앉았다. 아까의 시는 이미 한 번 보고 기억한 터라 다시 엎드려 말하기를,
“어리석은 소인은 전생의 업(業)이 많아 신선의 음식은 먹을 수 없지만, 요행히 자획(字劃)은 조금 알고 있는 터라 선녀께서 지으신 시를 대충 이해할 수 있으니, 진실로 기이한 일입니다. 본디 네 가지 좋은 일은 함께 갖춰지기 어려운 법입니다.(중국 남송의 시인 사영운(射靈運)의 “세상의 여러 일 중 좋은 시절, 아름다운 경치, 그것을 감상하는 마음, 그리고 그것을 즐기는 일 등 네 가지는 함께 하기 어렵다. 그런 이유로 이것들을 네 가지 좋은 일이라고 한다.”라는 말을 인용) 청하건대 다시 한 번 ‘강가 정자에서 가을밤에 달을 감상하다’라는 제목으로 40운의 시를 지어 저를 깨우쳐 주십시오.”
아름다운 여인은 고개를 끄떡이고는 붓에 먹을 찍어 단번에 내려 썼다. 그 모양은 구름과 연기가 서로 얽힌 듯했다. 홍 서생이 달려가 읽어 보니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달빛 교교한 부벽정 / 높고 먼 하늘엔 옥 같은 이슬.
맑은 빛 하한(河漢-은하수)에 잠기니 / 상서로운 하늘 기운 오동나무를 뒤덮도다.
밝고 깨끗한 삼천 리 강산에 / 곱고 고운 십이루(十二樓-신선들이 산다는 열두 개의 누각).
비단 구름은 티끌 하나 없는데 / 산들바람은 눈앞을 스치네.
넘실넘실 흐르는 물 따라 / 띄엄띄엄 떠나는 배.
쑥대로 만든 문틈 엿보고 / 모래톱 물억새꽃 살짝 비추는데.
들리는 듯 예상곡(霓裳曲-악곡의 이름으로 ‘예상우의곡(霓裳羽衣曲)’의 약자. 월궁(月宮)의 음악을 모방했다 한다. 여기서는 달나라의 음악) / 옥도끼는 눈에 선해.
진주조개는 패궐(貝闕-조개로 장식한 대궐. 즉, 용궁)에 / 물소떼는 염부(閻浮-염부제(閻浮提) 혹은 염부주(閻浮洲). 불교에서 말하는 수미사주(須彌四洲) 중 하나로 수미산 남쪽 바다 가운데 있는 염부나무가 무성한 큰 섬이다. 인간 세계를 총칭하는 말로 사용)로.
지미(知微-당나라 때 술사(術士)인 조지미(趙知微). 도술을 써서 장마 중에도 달을 보며 즐길 수 있었다고 함)와 달을 보고
공원(公遠-당나라 때 술사인 나공원(羅公遠). 지미와 함께 놀았다고 함) 좇아 놀아 보세.
달빛에 놀란 위작(魏鵲-위나라의 까막까치. 삼국시대 위나라 조조의 시 중 ‘달 밝고 별 총총한데 까막까치 남으로 가네.’라는 구절이 있음)
달그림자에 헐떡이는 오우(吳牛-오나라 소. 오나라는 더운 지방이기 때문에 소가 달을 보고도 태양인 줄 알고 헐떡인다고 함).
달빛은 청산벽해(靑山碧海)에 / 은은히 맴돌고 있네.
그대와 더불어 문을 열고 / 흥 따라 주렴(珠簾)을 거둬 보세.
이백(李白)은 술잔 멈추고(이백의 ‘파주문월(把酒問月)’ 중 ‘푸른 하늘에 달 있은 지 얼마나 되었나, 나 지금 잔 멈추고 달에게 한 번 물어 보네.’라는 구절을 인용)
오강(吳剛)은 계수나무 베었지.(오강은 한나라 때 사람으로 신선술을 배우다가 잘못을 저질러, 달나라에 귀양 가서 계수나무를 베었다고 함)
흰 병풍은 광채가 찬란하고 / 비단 휘장 곱게 수놓았네.
보물 거울은 걸려 있고 / 얼음 바퀴는 구르는데,(보물 거울, 얼음 바퀴는 모두 달을 가리킨 말)
잔잔한 금빛 물결 / 어찌나 유유한지.
검을 뽑아 요사한 두꺼비(달 속에 있다는 월섬(月蟾)을 가리킴)를 베고
비단 그물 넓게 펼쳐 교활한 토끼놈(달 속에 살고 있다는 준토(㕙兎)를 가리킴) 잡아 보세.
하늘엔 비 개이고 / 오솔길 연기 끊겼네.
누각을 둘러싼 천 그루 나무들 / 섬돌에 서서 만 길 못 굽어보네.
누가 관하(關河-함곡관과 황하. 여기서는 타향(他鄕))에서 길을 잃었는가,
고향에서 요행히 동무를 만났다네.
도리화(桃李花)처럼 서로를 아끼며 / 술잔을 주고받아,
좋은 시로써 각촉(刻燭-초에 금을 새겨놓고 그 눈금까지 타들어가기 전에 무엇인가를 겨루는 것. 옛날 선비들이 일정한 운을 놓고 시를 지을 때 주로 사용했다고 함)을 다툴지니
술은 물론 투호(投壺-화살을 던져 병 속에 넣어서 승부를 가리는 놀이)까지 있지 않는가. / 화로에서 타오르는 오은(烏銀-검은 은, 즉 숯을 가리킨다. 맹교의 ‘답우인증탄시(答友人贈炭詩)’ 중 ‘푸른 산 하얀 초가집 어진 사람 살고 있으니, 숯도 검은 은처럼 귀히 여기네.’를 인용) 조각
솥에선 물거품 보글보글. / 용연향(龍涎香-향의 일종. 용이 교미할 때 바다로 흘러나간 정액(精液)을 말려서 만들었다고 함)은 수압(睡鴨-향로의 일종. 청동으로 졸고 있는 오리를 만들고 그 안에 향을 피워 향 연기가 오리의 부리에서 피어나는 것처럼 보이게 함)에서 피어오르고
맑은 술은 나무 술잔에서 찰랑이네. / 소나무 위에선 학의 울음소리
벽 뒤에선 애매미 울음소리. / 호상(胡牀-접고 펼 수 있는 중국식 의자)에서 못다한 얘기야
물가로 나아가서 더할 수 있겠지.
흐릿하게 보이는 황폐한 성 / 쓸쓸한 초목은 빽빽하기만 해.
푸른 단풍은 흔들흔들 / 누런 갈대는 우수수.
선경(仙境)은 광활한데 / 인세(人世)는 빠르게 돌아가네.
옛 궁전엔 벼와 기장 이삭 / 들판 사당에는 가래나무와 뽕나무 덩굴.
방취(芳臭-향기로운 냄새와 나쁜 냄새. 여기서는 옛 국가의 흥망)는 부서진 비석으로 남으니
흥망이야 물가 갈매기들에게나 물어 볼까.
섬아(纖阿-달의 신. 여기서는 달)는 차고 또 기우는데
누괴(累塊-구해(九垓) 또는 구주(九州). 여기서는 세상의 사람들)는 얼마나 하루살이 같은지.
옛 궁궐은 절이 되고 / 옛 임금은 호구(虎丘-춘추시대 오왕 부차가 월왕 구천과의 싸움에서 전사한 부친 합려를 이장한 무덤 이름. 이장 후 사흘 만에 흰 호랑이가 무덤을 지켰다고 해서 이러한 이름이 붙여졌다. 여기서는 왕이 묻힌 무덤)에 묻혔네.
반딧불 휘장에 어른거리네, / 깊은 숲 도깨비불처럼.
옛일에 눈물 흘려도 / 지금 슬픔은 더해만 가네.
단군(檀君)의 자취 목멱산(木覓山-평양 동쪽 40리에 있는 산)에 남았고
기자(箕子)의 도읍 해자(垓子-성 밖으로 둘러 판 못)만 남았는데,
굴 속엔 기린마(麒麟馬)의 자취
너른 평원엔 숙신(肅愼-고조선시대 만주 모란강(牡丹江)과 연해주 일대에서 살던 퉁구스족으로, 여진이나 말갈의 전신)의 화살.
난향(蘭香-두난향(杜蘭香). 한나라 때 선녀의 이름으로 신선인 장석과 사랑을 나눴다고 함)은 하늘나라로 돌아가야 하고
직녀(織女)도 푸른 용을 타고 올라가야 하네.
선비는 붓을 멈추고 / 선녀는 감후(坎侯-공후(箜篌)의 다른 이름. 하프와 비슷한 동양의 현악기)를 멈추었네.
이 노래 끝나면 이별인데 / 깨끗한 바람 위로 노 젓는 소리만.”
여인은 쓰기를 마치자 붓을 허공에 던지고는 사라져 버렸다. 홍 서생은 그녀가 간 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여인은 사라지기 이전 시녀로 하여금 말을 전하게 하였다.
“옥황상제의 명이 지엄하여 나는 이제 난새를 타고 갑니다. 우리의 맑은 이야기가 다하지 않았으니 마음 깊숙이 섭섭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잠시 후 한 줄기 회오리바람이 땅을 휩쓸어 홍 서생이 앉아 있던 자리를 걷어 갔다. 여인이 쓴 시도 사라졌는데, 역시 간 곳을 알 수 없었다. 대개 이런 이유는 선계의 신비한 이야기를 인간 세상에 전파하기를 꺼리기 때문일 것이다.
홍 서생은 말을 잊고 서서 방금 전 겪은 일을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꿈같기고 했고 아닌 것 같기도 했으며, 사실 같기도 했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홍 서생은 난간에 기댄 채 생각을 정리하였다. 그녀가 한 말을 모두 기록하였다. 좋은 인연을 신기하게 만난 것이라고 생각되었지만, 마음속의 정회를 다 풀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워 시 한 수를 지었다.
“양대(陽臺)에서 하룻밤 운우지락(雲雨之樂) / 어느 해에 그녀 다시 퉁소 불며 돌아올까.
흐르는 물결이야 무정타 하지만 / 슬피 울며 이별 없는 세상으로 가는 듯하구나.”
시를 읊기를 마치고 사방을 살펴보니 산사(山寺)에서 종소리가 울리고 물가 마을에서는 닭울음소리가 들렸다. 달은 이미 서산을 넘어갔고 샛별만이 반짝이는데, 단지 뜰 안에선 쥐가 찍찍거리고 마루 아래에선 풀벌레만 울 뿐이었다.
서생은 쓸쓸하고 슬프며, 숙연하고 두려운 생각도 들어 더 이상 부벽정에서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다. 배를 타고 돌아오는데 우울함이 쌓이고 쌓인 채 먼저 대었던 물가에 정박하니, 친구들이 다투어 물었다. / “어젯밤에 어디서 잤는가?”
서생은 속여서 말하기를, / “어젯밤 낚싯대를 들고 달빛을 따라 장경문(長慶門-평양성 안에 있는 장경사(長慶寺)의 문) 밖 조천석(朝天石) 근처에서 비단잉어 낚시를 했지. 그런데 날씨가 추워 물이 차가워 한 마리도 낚지 못했으니, 이 어찌 안타까운 일이 아니겠나.”
친구들 중 누구도 그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 후 홍 서생은 여인을 그리워하는 마음 때문에 병을 얻어 집으로 돌아왔다. 정신이 어지럽고 말하는 것이 예전 같지 않았다. 병상에 누워 오랫동안 일어나지 못하더니, 어느 날 꿈속에서 엷게 단장한 어떤 여인이 나타나 말하기를,
“주인아씨께서 선비님에 관한 얘기를 옥황상제께 말씀하셨습니다. 상제께서는 당신의 재주를 아까워하시며, 하고(河鼓-견우성(牽牛星)의 다른 이름)의 막하(幕下)에 예속시켜 하늘 관리로 삼으셨습니다. 상제께서 직접 내리시는 명이니 어찌 피할 수 있겠습니까?”
홍 서생이 깜짝 놀라는데 꿈이 깨었다.
홍 서생은 집안사람들에게 일러 목욕재계(沐浴齋戒)를 하고 새 옷을 갈아입은 후 향을 피우고 땅을 청소하고는 뜰에 자리를 마련하게 하였다. 그는 턱을 괴고 잠시 누워 있더니, 잠시 후 세상을 떠났다. 그날은 구월 보름이었다.
빈소를 차린 지 며칠이 지나도록 얼굴색이 변하지 않으니, 사람들은 그가 신선을 만나 죽음의 질곡(桎梏-차꼬와 수갑, 굴레)에서부터 해탈한 것이라고 말했다.
바른♥국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