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면천읍성[唐津沔川邑城]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에 있는 조선 전기의 읍성.
개설
당진면천읍성은 조선 시대 면천군 관아와 행정 소재지를 외침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하여 소재지의 외곽을 둘러 돌로 쌓았던 조선 초기의 전형적인 평지 읍성이다. 면천읍성은 정확한 축성 시기가 문헌 기록에 남아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1439년(세종 21) 윤 2월에 축성을 시작하여 같은 해 11월에 3,235척을 완성한 것으로 나와 있고, 성벽에서 발견된 명문석(銘文石)에도 쌓은 시기를 기미년(1439년)으로 새겨 놓아 『조선왕조실록』의 기록과 일치한다.
위치
당진면천읍성은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몽산길 14[성상리 696-1]에 있다. 국지도 70호선을 따라 면천면 소재지를 지나다 보면 길 왼쪽으로 성벽이 보인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당진면천읍성 성벽의 성돌에서 명문석이 몇 개 발견되었다. "석성종면(石城終面)", "진잠시면(鎭岑始面)", "기미년/옥천시면/장육십척/사촌(己未年沃川始面/長六十尺/四寸)", "기미년옥천/종말//기미년 결성수공/사십육척팔촌 시면(己未年沃川/終末//己未年 結城受工/四十六尺八寸 始面)", "공주시면(公州始面)" 등 다섯 덩이가 발견되었는데, 그중 한 덩이에는 옥천의 끝과 결성의 시작을 같은 돌에 새겼다. 그리고 남문 부근에서 발견된 "공주시면"이라 새긴 돌은 발견 당시 글자가 뒤집혀 있었다. 이것으로 보아 당시에도 무너져서 다시 쌓았음을 알 수 있다.
현황
당진면천읍성은 서쪽 성벽 일부를 제외하고는 허물어져 원형을 알 수 없는데, 현재 당진시에서 복원 사업을 추진 중이다. 2001년에 서벽 일부를 복원하여 현재 남아 있는 서벽의 높이는 3.6m 정도이며, 안쪽 부분을 사다리꼴 모양으로 비탈지게 쌓아서 바닥의 너비는 6.8m. 윗부분의 너비는 2.4m이다. 2013년에는 2001년에 개축한 부분에 이어서 서쪽 치성(雉城)[성벽의 일부를 돌출시켜 쌓은 구조물]까지, 2014년에는 남벽 일부와 남문 성루를 복원하였다.
의의와 평가
당진면천읍성은 축성 시기가 확실하고, 또 성돌에 축성에 동원된 지역과 부역 범위를 새겨 놓은 명문석이 남아 있어 조선 초기 축성 연구의 자료로 활용 가치가 크다. 1993년 12월 31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91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남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참고문헌
당진군지 편찬 위원회, 『당진군지』(당진군, 1997)
『면천읍성』(당진군, 1999)
충청남도 역사 문화원, 『문화 유적 분포 지도: 당진군』(충청남도·충청남도 역사 문화원, 2004)
면천면지 편찬 위원회, 『신판 유서 깊은 면천』(면천면, 2013)
『한 권으로 읽는 당진 문화유산』(당진 문화 재단, 2016)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천주교합덕성당[天主敎合德聖堂]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에 있는 성당.
개설
1890년 설립된 성당으로 아산 공세리 성당과 더불어 충청남도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다. 조선 시대 내포 천주 교회를 계승한 성당으로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신앙 공동체이다.
설립 목적
조선 시대 내포 천주 교회를 계승하여 옛 신자들의 순교 정신을 현실에 구현하며 지역의 복음화에 바탕을 두어 사회에 헌신하고자 설립하였다.
변천
천주교 합덕성당은 아산 공세리 성당과 더불어 충청도에 처음으로 설립된 성당이다. 합덕성당의 시작은 1890년 초대 주임으로 프랑스 선교사 퀴를리에 신부를 내포 지역으로 파견한 데서 비롯된다. 이전에도 두세(Doucet) 신부가 방문하여 판공을 치르곤 하였으나 주임 신부의 역할은 아니었다. 아직 박해의 영향이 남아 있어서 성당을 설립할 만한 여건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퀴를리에 신부가 처음부터 합덕[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합덕리]에 자리를 잡은 것은 아니었다. 그가 쓴 사목 보고서를 보면 초기 2년 동안은 어느 곳에 성당을 세워야 할지 고심하였다. 한때 서산 소길리[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금학리]에 자리를 잡은 적도 있으나 1892년 양촌[충청남도 예산군 고덕면 상궁리]으로 가서 정착하였다. 양촌에서 내려다 보이는 신리는 다블뤼 주교, 위앵 신부, 오메트르 신부가 거처하던 곳으로 조선 시대 박해 기간 중 수많은 순교자들이 배출된 곳이었다. 퀴를리에 신부는 신자들의 숫자 보다는 과거 내포 천주 교회의 중심지였던 신리의 영성적 의미에 더 큰 의미를 두어 양촌에 자리 잡았다.
얼마 후 퀴를리에 신부는 미래의 가능성을 고려하여 교통이 편리한 창말, 즉 현재의 합덕성당이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기기로 결정하였다. 1898년 합덕으로 성당을 이전하면서 사제관과 성당을 짓기 시작하였고 이듬해 1899년에 완공하였다. 합덕으로 이주했을 당시 주변에는 2~3호 정도의 신자들만이 살고 있었으나 개종 운동이 일어나고 신자들이 이주하면서 교우촌으로 변모하였다. 교세가 증가하자 1929년에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큰 성당을 지으며 또 한 차례 도약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합덕성당은 1908년 서산, 1927년 예산, 1939년 당진 성당을 각각 분가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대전 교구가 설정되던 1948년 충청남도 지역에서 가장 큰 성당이었다. 1960년에 이르러서는 신자 수가 4,459명에 이르자 그 해에 신합덕성당을 또 한 차례 분가해 주었다. 하지만 산업화에 따른 이농 현상으로 지역 인구가 급격히 감소함에 따라 합덕성당의 신자 역시 빠르게 감소하였다. 2015년 말 기준으로 합덕성당은 합덕읍 합덕리, 점원리, 도리, 옥금리, 신석리, 세거리, 우강면 일부, 예산군 상궁리를 관할하고 있으며 신자 수는 941명이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1890년 설립 당시부터 고아들을 신자들 가정에서 양육하도록 하다가 일제 강점기부터는 성당 구내에 고아원을 마련하여 사회 복지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7년에는 매괴 학교를 설립하여 지역 여성들의 교육에도 일일을 담당하였으며, 2008년에는 유스호스텔을 설립하여 청소년들의 교육 활동에도 공헌하였다.
현황
2015년 말 기준으로 합덕성당은 합덕읍 합덕리, 점원리, 도리, 옥금리, 신석리, 세거리, 우강면 일부, 예산군 상궁리를 관할하고 있으며 신자 수는 941명이다. 합덕성당에는 1998년 도지정 문화재가 된 성당 건물 외에도 과거 신부들이 거주하던 옛 사제관을 복원해 놓았으며, 청소년들을 위한 유스호스텔이 운영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합덕성당은 신자들의 신앙 성숙은 물론 여러 측면에서 지역 사회에 영향을 주었다. 보육원을 설립하여 고아들을 양육하는 데에 일익을 담당하였다. 매괴 학교와 유치원을 설립하여 교육 활동에도 참여하여 합덕 지역 발전에도 공헌하였다. 또한 오랜 역사와 문화재로 지정된 성당 건물로 말미암아 내포 지역 전체를 대표할 만한 종교, 문화 유산으로 꼽히고 있다.
참고문헌
구합덕 본당 100년사 자료집 편찬 위원회, 『구합덕 본당 100년사 자료집』(천주교 구합덕 교회, 1990)
김정환 엮음, 『내포 천주교의 역사와 문화』(당진시·내포 교회사 연구소, 2012)
천주교 대전 교구 편, 『교세 통계표』 2015년(천주교 대전 교구, 2016)
출처:(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당진 합덕 수리민속박물관[唐津合德水利民俗博物館]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합덕리에 있는 공립 박물관.
설립 목적
합덕 수리 민속 박물관은 조선 3대 저수지 중 하나였던 합덕제를 기념하고 지금은 거의 사라진 수리 농경 문화를 이해하고 선조들의 지혜를 느끼고 체험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변천
2000년 12월에 박물관 공사를 착공하였으며, 2002년 12월에 준공하였다. 2003년 12월에 내부 인테리어 공사 착공, 2004년 7월에 준공하였다. 2004년 9월에 체험장 토지를 매입하여 12월 체험장 공사를 착공했다. 2005년 8월에 준공하였으며, 2005년 10월에 박물관을 개관하였다. 2007년 12월 민속 생활사 박물관 협력 기관으로 선정되었으며, 2008년 5월 제1종 전문 박물관으로 등록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제1 전시실에는 합덕제의 기원, 축조 방법, 한국의 수리 역사, 수리 도구 등을 전시하고 있으며, 제2 전시실에는 합덕을 포함한 당진 지역의 문화를 이해하기 쉽게 연출하였다. 특히 체험장에는 수리 민속과 관련된 여러 가지의 체험 도구를 연중 사용해 볼 수 있게 조성되어 있다.
체험 시설로는 초가 및 온돌 등 농민들의 주요 생활 공간이었던 곳을 재현하여 아궁이, 온돌, 장작 패기, 멍석 짜기, 돌절구, 맷돌 체험 등 그곳에서 이루어졌던 의식주 문화를 체험하도록 하고 있다. 농경 문화 체험은 우리 민족의 근원인 농업을 전통 방식에 의거 재현에 볼 수 있는 공간으로 씨 뿌리기부터 갈치 씨 뿌리기, 김매기, 거두기, 타작, 도리깨질 등 추수까지의 전 과정을 체험해 볼 수 있다. 허수아비 제작 및 지게 지기, 제방 다지기 등의 체험장은 선조들의 해학과 멋이 담겨 있는 허수아비를 제작해 보고, 각자의 개성을 살려 만들어 보는 공간이다. 도정 기구 체험장은 논과 밭에서 수확한 곡식을 먹기 좋게 만드는 과정을 체험해 보는 공간이다. 도량형 기구 체험장은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저울 등을 사용해보고 홉, 되, 말, 저울, 톱, 대패, 끌 등 선조들의 도량 단위를 배워보는 체험장이다. 놀이 문화 체험장은 선조들의 놀이 문화가 지금과는 판이한데 연, 팽이, 썰매, 민속 악기, 씨름, 윷놀이 등 그들의 놀이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가를 직접 몸으로 느껴보는 공간이다. 수리 문화 체험장은 무자위, 용두레, 맞두레, 펌프 등 농사를 짓기 위해 가장 필요했던 물을 다룬 기구들을 체험하는 공간이다.
현황
2017년 합덕 민속 수리 박물관 대지 면적은 4,918㎡, 수장고, 전시실, 영상실을 갖춘 건물 면적은 869㎡이다. 전시물은 7종 12개의 모형, 15종 19개의 유물, 36종 61개의 게시물 등 소장 유물은 무자위 등 681점이 있다. 또한 체험장은 대지 면적 11,171㎡, 시설물은 초가 5식, 연못 1식, 장독대 1식, 우물 1식이 있다. 체험·전시물은 체험 도구 44종 66개, 전시 도구 91종 237개가 있다. 개관 시간은 오전 9:00~18:00, 휴관일은 매주 월요일과 추석, 설날 등 명절당일, 관공서 공휴일 다음날이다.
의의와 평가
합덕 민속 수리 박물관은 수리 시설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다채로운 시설을 갖추고 있어 기존에 보는 박물관을 탈피하여 몸으로 느끼고 체험하는 박물관을 지향하고 있다.
참고문헌
내부 자료(합덕 민속 수리 박물관, 2016. 11. 22)
당진시청(http://www.dangjin.go.kr)
출처:(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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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4 작성자 명사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