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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즐거운 산행 이야기 스크랩 국민의 품으로 돌아온 `서울성곽` 돌기-제2구간-
왕마구리 추천 0 조회 46 09.10.20 09:59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 서울성곽 돌기 ▶

 

▲ 인왕산을 오르면서 뒤돌아본 능선따라 이어지는 서울성곽 전경

 

【 서울성곽의 역사 】

*사적 제10호

1392년 개성 수창궁에서 조선 왕조를 개국한 태조는 즉위한 지 한 달도 못되어 한양 천도를 명하고, 태조4년(1395) 경복궁, 종묘, 사직단의 건립이 완성되자 곧바로 정도전이 수립한 도성 축조 계획에 따라 서울성곽을 수축하기 시작하였다.

서울성곽은 북악산(342m), 낙산(125m), 남산(262m), 인왕산(338m)을 잇는 총 길이 59,500자(약 18.20km)의 성곽으로 평지는 토성, 산지는 산성으로 계획되었다. 이 방대하고 시급한 사업을 농한기에 완성하기 위하여 이듬해인 1396년 1,2월의 49일 동안 전국에서 11만 8천명을 동원하여 성곽의 대부분을 완공하엿고, 가을 농한기인 8.9월의 49일 동안에 다시 79,400명을 동원하여 봄철에 못다 쌓은 동대문 구역을 완공하는 동시에 4대문과 4소문을 준공하였다.

그 후 27년이 지나 세종은 서울성곽을 전면 석성으로 축성하는 대대적인 보수 확장 사업을 벌렸다. 세종4년(1422) 1월 겨울 농한기에 전국에서 약 32만명의 인부와 2,200명의 기술자를 동원하여 완공하였다. 서울의 인구가 약 10만명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규모의 공사였고, 이 공사로 인해 발생한 사망자 수만 872명에 달했다. 이것이 서울성곽의 골격이다.

이후 서울겅곽을 재정비했던 숙종30년(1704)까지 260년간 서울성곽은 부분적인 보수만 있었을 뿐 큰 붕괴는 없었다. 본래 서울성곽은 도성을 방어할 목적으로 쌓았지만 정작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서울성곽은 제구실을 하지 못해 선조가 의주로 피난하였기 때문에 성곽 자체는 전란으로 인한 큰 피해는 없었다.

1704년, 숙종은 일부 신하들이 청나라와의 조약을 들어 반대하는 것을 물리치고 서울성곽을 대대적으로 정비하고, 나아가 북한산성까지 쌓으며 도성의 방어체제를 정비하였다. 이것이 근대 사회로 들어오면서 의도적으로 헐어내기 이전의 서울성곽이다.

이후 1899년 서대문과 청량리 사이 전철이 부설되면서 동대문과 서대문 부근의 성곽 일부가 헐려 나갔고, 이듬해는 용산과 종로 사이 전차 부설을 위해 남대문 부근을 철거하게 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들어서면서 서대문과 혜화문(동소문)이 헐리며 사실상 서울의 평지 성곽은 모두 철거되어 오늘날에는 총 길이 18.20km 중 산지 성곽 10.50km만 남게 되었다.

2006년 문화재청과 서울특별시는 서울을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하여 서울성곽을 가능한 옛 모습으로 복원하는 계획을 수립하고 그 정비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 서울성곽 돌기코스 】

(제1구간)자하문고개/버스정류장→창의문/창의문안내소→전망대→백악마루갈림길↔백악산(북악산, 백악마루 342m)→청운대(293m)/쉼터→곡장갈림길↔곡장→촛대바위→숙정문→말바위안내소→말바위/화룡공원갈림길→와룡공원→서울과학고 후문/도로→경신고담장→경신고--→한성대입구역/4호선

 

▲ 서울성곽 안내도

 

(제2구간)한성대입구역/4호선--→경신고→혜화문(동소문)→암문→낙산(125m)→암문-(창신성곽길)→흥인지문(동대문)→동대문운동장→광희문(남소문)→신당동성당-(서울성곽'장충지구')→팔각정쉼터/전망대→남소문터→국립극장(해오름극장)/남산공원입구→목멱산(남산 262m)/서울타워+남산봉수대→남산관리사무소+안중근기념관→숭례문(남대문)→서소문(소의문)/멸실→이화여고→강북삼성병원/돈의문(서대문)터:멸실-(서울성곽'청운지구')→인왕산(338.2m)→창의문 

 

 

▲ 서울성곽 개념도

 

【 산행거리 】총 18.2km

 

◀ 제2구간(경신고~목멱산~인왕산~창의문) 성곽 돌기 ▶

 

▲ 인왕산 정상에서 바라본 창의문으로 이어지는 서울성곽과 주변 일대의 전경

 

【 서울성곽 제2구간 코스 】경신고-(혜화문길)→혜화문(동소문)→한성여대입구(삼선교)역/4호선-(낙산근린공원 성곽주변 환경정비 공사장)→암문→낙산(125m)→암문-(창신성곽길/낙산공원)→흥인지문(동대문)→동대문운동장→광희문(남소문)→신당동성당-(서울성곽'장충지구')→팔각정쉼터/전망대+성곽끝지점→남소문터/포장도로→국립극장(해오름극장)/남산공원입구-(남산순환도로)-(성곽탐방로)→남산서울타워직전 순환도로-(서울성곽 따라 진행)→목면산(남산 262m)/서울타워+팔각정+봉수대-(성벽따라 진행)→남산관리사무소/안중근기념관→숭례문(남대문)→상공회의소→서소문(소의문)/멸실→배재빌딩→러시아대사관→이화여고 백주년기념관→창덕여중담장→옛 MBC방송국/경향신문→강북삼성병원/돈의문(서대문)터:멸실→서울교육청앞→홍난파가옥-(인왕산등산로/서울성곽'청운지구')→인왕산(338m)→창의문

【 산행일자 】2009년 3월 14일(토)

【 산행시간 】총 6시간 58분 소요(휴식 및 중식시간 : 2시간 7분 포함)/실제 : 4시간 51분 소요

【 참 가 자 】천 영면(단독산행)

【 교 통 편 】대중교통 이용

<< 갈 때 >> 부천시청앞(09:04)→송내역/1호선(09:22~09:32)→동대문역-(환승/4호선)→한성대입구역 #5번출구(10:31)-(도보로 이동)→경신고교문(10:40)

<< 올 때 >> 자하문고개 버스정류장(17:31~17:40)-(#1020번 시내버스)→경복궁역/3호선(17:46~17:57)→종로3가역-(환승/1호선)→부천역(19:00~19:05)→부천시청앞(19:18)

** 시내버스 노선(자하문고개→경복궁역) : #212번, #1020번, #7022번 시내버스

【 산 행 기 】

 이번 제2구간은 국민의 품으로 돌아온 창의문에서 말머리 사이의 백악산 구간의 서울성곽 대신 2008년 2월10일~11일 사이 광적인 한 노인의 방화와 문화재청의 문화재 관리 소홀이 겹쳐 우리나라 현존하는 성문 중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며 600년이 넘게 수도 서울의 관문으로 자리를 지켜오던 국보1호인 숭례문(남대문)이 우리의 곁을 떠나버린 화재의 현장을 지나게 된다.

화재 발생 1년 1개월여가 지났지만 숭례문 복구 현장을 지날 때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여전히 가시지 않았으며, 복구기간(2008.2.~2012.12.)이 끝난 5년 후에는 옛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서 언제든지 위풍당당하게 우리들을 맞이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하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보1호로서의 상징성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또한 대한민국 근대 체육의 보람이었으며, 국민 체육의 산실이었던 동대문의 동대문운동장이 근대체육의 상징성을 대표하는 근대 문화유산으로 지정하여 보존하자는 주장과 개발에 반대한다는 체육계 및 관련 단체의 반발을 무시하고 서울시의 재개발 계획에 따라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 파크'라는 디자인 센터의 공사가 한창 진행 중에 있었다.

근대 건축물로 역사적 잔존 가치가 충분함에고 개발이라는 논리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동대문운동장을 지나면서, 일제강점기에 사라져버린 서울성곽을 다시 복원하여 국민의 품으로 돌려 놓겠다며 한창 유물 발굴조사를 실시하고 있어 사라져 버린 동대문운동장의 아쉬움에 일부라도 보상을 받는 기분이 들었다.

10:31=>한성대입구역/4호선

     #5번출구로 나와 삼청터널 방향으로 약 150여m 정도를 도로따라 진행하면 '성북구의 아름다운 나무'인 느티나무 1그루가 있는 삼거리에 이르게 되고, 삼거리에서 좌측의 '경신고길' 따라 오르면 오늘 서울성곽 돌기 시작점인 경신고 교문에 이르게 된다.

 

▲ 경신중고 교문

▲ 뒤돌아본 서울성곽 따라 혜화문 가는 주택가 골목길

 

10:40=>경신중,고 교문

     좌측으로 학교 담장을 따라 진행하면 , 학교 담장은 이내 끝이 나고, 주택가 골목길인 '혜화문길'이 이어지는데 우측으로 주택가 축대에 성벽의 흔적들이 남아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약 7분 후 정자가 있고 주변이 잘 단장된 혜화문에 이르게 된다.

 

▲ 길 건너 바라본 혜화문

♧ ♧ 혜화문(惠化門)

*소재지:서울특별시 종로구 혜화동 일대

 

혜화문은 도성의 4소문 중 동쪽에 위치한 문으로 조선 태조5년(1396) 9월에 도성의 축성과 함께 지어졌다. 본래의 이름은 홍화문(弘化門)이었는데 창경궁의 동문을 홍화문이라고 이름지었기 때문에 중종6년(1511)에 혜화문으로 개칭하였다.

그 후 건립 당시의 문루가 없어져 영조20년(1744)에 문루를 건축하였고, 북대문인 숙정문이 항상 닫혀있어서 동소문인 혜화문이 북대문의 역할까지 맡았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빈번하게 통행을 했다.

일제 강점기인 1928년에 도시계획이라는 명목 아래 이 문루는 헐리었고 1937년에는 석문까지 없어지고 말았다. 1975년부터 1980년까지 6년간에 걸쳐 서울 도성을 복원하였는데 도성의 일부인 혜화문은 1992년부터 3년에 걸쳐 현 위치로 변경, 복원되었다.

 

10:47~10:50=>혜화문

     원 위치에서 약간 옆으로 이전하여 복원된 혜화문 앞에는 '홍화문터'란 표석과 '혜화문 복원공사(92.12.27.~94.10.18.) 준공표지판' 표석이 나란히 자리를 잡고 있다. 종로구와 성북구의 경계선을 따라 이어지는 서울성곽은 8차선 포장도인 '동소문길'로 잠시 그 흔적이 끊어졌다가 도로 건너 높은 축대 위 언덕 산자락을 따라 계속 이어진다.

도로 언덕마루에는 횡단보도가 없어 좌측 방향으로 도로를 따라 100여m 정도 내려가 한성대입구 사거리에 위치한 한성대입구(삼선교)역 지하도를 이용 도로를 건넌다. 처음 경신고로 접근하기 위해 빠져나왔던 #5번출구로 내려가 #4번출구로 나와 도로를 따라 언덕마루로 다시 이동을 한다.

도로 건너 혜화문과 마주하는 언덕마루의 축대 위 서울성곽에 접근하기 위해, 언덕마루 주변의 축대를 살펴보았지만 성벽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길을 발견할 수가 없어 한성대입구역 방향으로 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오다 S-OIL주유소 옆 골목길인 '천사길'로 들어간다. 잠시 진행하여 삼거리에서 우측의 '천사1길'이란 골목길 방향으로 산 능선위로 보이는 서울성벽에 접근하기 위해 진행을 한다. 골목길을 따라 오르면 서울성벽과 맞닿는주택가 골목길 끝부분에 공사용 차단막이 설치되어 있고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11:02)

 

 

▲ 낙산근린공원 조성공사가 진행인 서울성곽

 

성북구 쪽, 즉 서울성곽 성밖으로 '낙산근린공원' 서울성곽 주변 환경 정비공사가 한창 진행중에 있다. 차라리 종로구 방향으로 넘어가 카톨릭대학교에서 낙산공원 산책로를 따랐으면 별 부담없이 진행이 가능하였을텐데 황당하기만 하다. 잠시 망설이다가 마침 동네 주민 한 분이 계셔 성벽을 따라 진행할려고 하는데 혹시 다른 길이 없냐고 물어보니, 좌측 골목 공사장 그물망 터진 곳으로 들어가 공사장으로 성벽을 따라 낙산까지 진행을 하라고 말씀하시며, 공사장 근무자가 제지를 하면 미안하다고 말하고 얼른 지나가라고 알려주신다.

터진 그물망으로 성벽 옆으로 접근하니 성벽 밑의 주택들은 모두 철거를 하여 폭 10여m 정도로 공간을 확보해 둔 상태이다.

성벽을 우측에 두고 공사가 진행중인 현장을 따르면 정면으로 한성대학교 캠퍼스가 조망이 되고, 공사 현장이 끝나는 '장수길' 주택가 포장도로에 이르게 된다.(11:08~11:10)

'장수길' 도로를 따라 진행하면 우측으로 보이는 서울성곽은 기단의 초석들은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나 상층부는 모두 복원된 흔적이 역력하다.

다시 '낙산근린공원'  조성 공사장이 시작(11:14)되고 우측 공사장으로 들어 성벽과 철망팬스 사이의 잡목과 쓰레기들이 여기저기 지저분하게 널려있는 성곽길을 따라 고갯마루에 오르니(11:17) 성벽으로 낙산공원으로 들어서는 암문이 나타난다. 암문을 통해 성내인 낙산공원으로 진입하니 낙산 정상이다.

낙산까지 진행하는 동안 공사 관계자는 한 명도 만나지 않아 별 문제없이 진행이 가능하였다.

 

▲ 낙산 정상의 암문

▲ 낙산 정상의 공원 모습

 

♧ ♧ 낙산(駱山)

 

낙산은 산모양이 낙타의 등과 같다하여 낙타산(일명 타락산) 또는 낙산이라고 불리게 되었으며, 서울 종로구와 성북구에 걸쳐 자리한 산으로 서울 도성의 동산(東山)에 해당된다. 낙산은 남산, 인왕산, 북악산과 함께 서울 내사산의 하나로 풍수지리상 서쪽 우백호 인왕산에 대치되는 동쪽 좌청룡에 해당된다.

산 전체가 화강암 암반으로 되어 있으며, 예전에는 숲이 우거지고 깨끗한 수석과 약수터가 있었다고 한다.

또한 서쪽 산록에 있던 쌍계동은 암석이 기이하고, 수림이 울창하여 물이 흐르는 절경으로 삼청, 인왕, 백운, 청학동과 더불어 도성의 5대 명승지로 꼽혔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왕의 아우 인평대군의 거소인 석양루가 있었고, 이화정과 영조때의 문인 이심원이 지은 일몽정 등 많은 정자는 왕족, 문인, 가인들이 즐겨 찾던 곳이었다. 동촌 이씨의 세거지를 비롯하여 후일 지붕 이수광이 지붕유설을 저술한 곳인 비우당 등 유적이 많은 곳이다.

 

11:29~11:37=>낙산(125m)

     정상에 서서 서울성벽을 뒤돌아보니 지나온 백악산과 가야할 인왕산, 그리고 그 뒤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북한산의 암릉과 백운대가 조망이 되고, 성벽 너머 좌측으로는 한성대학교 교정, 그리고 그 너머로 불암산과 수락산이 희미하게 서울을 감싸고 있는 것이 보인다. 또한 우측 1시 방향으로는 가야할 남산이 조망이 된다.

 

▲ 낙산에서 바라본 인왕산(좌)과 백악산(우)

▲ 낙산에서 조망된 남산과 서울시가지 전경

 

공원 광장에 설치된 이정표(↑비우당, 체육시설, 버스정류장/↓전망광장, 베드민턴장, 혜화역)을 확인하고, 직진의 도로따라 진행하면 공원 입구에 도로삼거리가 나타난다. 입구에는 '낙산' 안내문이 있다.

도로 좌측으로 성벽 밖으로 빠져나가면 우측 성벽 밖으로 이어지는 산책로가 나타나는데 '창신성곽길'이란 이정표가 보인다.

 

 

▲ 흥인지문으로 이어지는 창신성곽길

 

성곽을 우측에 두고 '창신성곽길'인 산책로를 따라 내려가면 암문(11:41), 좌측으로 정자 쉼터, 우측으로 암문이 있는 곳(11:46), 정자 쉼터와 '서울(낙산)성곽길' 안내판(11:48)을 차례로 지나게 된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산책로를 따라 편하게 이어가 '창신성곽길'이 끝나는 지점(11:51)을 통과하고 잠시 도로따라 내려서면 '흥인지문(동대문)'이 위치한 동대문에 이르게 된다.

 

▲ 동대문 일대 전경

♧ ♧ 흥인지문(興仁之門, 동대문)

*보물 제1호

*소재지: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6가 69번지

 

이 문은 서울 성곽의 동쪽 성문이다. 흔히 동대문으로 불리는 이 문은 태조6년(1397)에 처음 세웠으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낡고 기울어 고종5년(1868)부터 이듬해 3월까지 성문을 쌓고 2층 문루를 다시 지었다. 중앙에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을 두고 그 위에 정면 5칸, 측면 2칸의 2층 문루를 세웠으며 다시 그 위에 처마를 4면에 두는 우진각 지붕을 하였다.

처마 끝은 여러 개의 나무로 짜 맞추어 댄 다포양식의 건물로서, 세밀한 부분의 건축 기법이 연약하고 장식 위주로 되어 있어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양식이 잘 나타나 있다. 또한 문 밖에 반달 모양의 옹성을 쌓았는데 이는 습기가 많고 지대가 낮은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방편으로 보인다.

 

 

▲ 측면에서 바라본 흥인지문 

 

▲ 정면에서 바라본 흥인지문 

 

11:52~11:58=>흥인지문(동대문)

     좌측 동대문역 #1번출구로 내려가 역 지하도를 이용하여 도로를 건너 #6번출구로 나오면 흥인지문 앞 광장에 이르게 되고, '흥인지문' 안내판을 대하게 된다. 도로를 따라 청계천을 건너고 '동대문디자인 플라자&파크' 신축과 일제강정기 때 강제로 철거되어 사라져버린 서울성곽 복원을 위한 발굴이 한창 진행중인 옛 동대문운동장에 도착을 한다.

 

▲ 청계천

 

공사장 차단막 틈새로 공사 현장을 몇차례 들어다 보며 옛 동대문운동장을 좌측에 끼고 돌아 나가면 을지로와 퇴계로가 만나는 삼거리(12:11)에 도착을 한다. 한양공고 직전 동대문운동장역 #2번출구 앞 횡단보도를 건너면 우측으로 흥인지문 직전 끊어졌던 서울성곽이 광희문을 시작으로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 광희문

♧ ♧ 광희문(光熙門)

 

서울성곽 광희문은 태조5년(1396)에 건립한 서울성곽 8문 중의 하나로 시구문 또는 수구문이라고도 하였으며, 서소문과 함께 시신을 내보내던 문이다.

태조5년 도성을 축조할 때 창건되었으며, 세조4년(1422) 개축된 것으로 추측된다.

1975년 서울성곽을 다시 옛 모습대로 수축할 때 현재와 같이 복원하였다.

 

12:14=>광희문

     광희문을 돌아 성벽을 끼고 오르면 새로 축조, 복원된 성벽은 약 100여m 정도 이어지다 주택가를 만나면서 다시 사라진다. 성벽이 끝나는 곳에서 주택가 골목길로 들어 '수구문길'을 따라 내려서면 2차선 포장도로(12:20)에 이르게 되고, 좌측으로 10여m를 내려가면 우측으로 '성당길'이 보인다.

'성당길' 따라 진행을 하면 우측 골목길 끝으로 높게 쌓아올린 주택가 축대에서 옛 성곽의 일부가 축대의 기초석으로 이용되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

 

▲ 천주교 신당동성당

▲ 장충체육관과 신라호텔 전경

▲ 동호로 건너 다시 시작되는 '장충지구' 서울성곽

 

12:26~12:52=>신당동성당+장충체육관/중식

     성당 앞을 지나 잠시 진행하면 동호로인 넓은 대로가 나타나고, 길 건너로는 서울성곽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성곽 우측으로는 장충체육관이 위치해 있고 그 뒷편으로 신라호텔 건물이 조망이 된다.

길 건너 장충체육관 옆 기사식당에서 제육볶음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다시 나타난 서울성곽옆 성곽길을 따라 진행을 한다. 20여m 정도 도로를 따르면 우측 성곽 옆으로 별도의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으며, 입구에는 '서울성곽 시대별 축조기법'과 '서울성곽(장충지구 1,053m)' 안내문이 있다.

 

 

▲ 성곽에 바짝 붙어 이어지는 장충지구 성곽길

▲ 일부 구간에서 신라호텔의 담장역할을 하는 성곽

 

성곽의 일부가 신라호텔 담장 역할을 하는 우측에 있는 성벽에 바짝 붙어 이어지는 성곽길을 따라 오르면 암문(13:02)을 지나 옛 타워호텔과 남산이 가까이서 조망이 되는 조망명소인 팔각정 쉼터에 이르게 된다.

 

▲ 옛 타워호텔 뒤 낮은 봉우리에 설치된 팔각정 쉼터 조망대

▲ 팔각정에서 조망된 옛 타워호텔과 남산 전경

 

13:08~13:13=>팔각정쉼터/전망대

     옛 타워호텔 뒷편의 낮은 봉우리에 설치된 팔각정으로 '서울시 선정 우수조망명소'란 안내판이 있고, 팔각정 위에 오르면 한창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중인 옛 타워호텔, 그리고 가야할 남산이 지척으로 다가와 있고, 금호동 일대가 시원하게 조망이 된다.

팔각정을 기점으로 동호로에서부터 이어지던 서울성곽은 이곳에서 다시 끊어지고, 옛 서울성곽이 지나던 능선에는 타워호텔 리모델링 공사장에서 설치한 공사용 차단막이 설치되어 있어 진행에 어려움이 따른다.

차단막 옆으로 일부 남아 있는 능선을 따르기도 하고, 공사장 현장으로 진입하여 진행하기도 하여 한남동과 장충동을 잇는 4차선포장도로인 '장충단길' 고갯마루에 내려서니 '남소문터'란 표석이 시멘트 옹벽위에 설치가 되어 있다.

 

▲ 옛 남소문터가 있었던 장충단길 고갯마루

 

13:25=>남소문터/4차선포장도로

      '남소문터(南小門址) : 서울의 소문으로 세조때 세웠으나 예종원년(1469) 음양설에 따라 철거, 그후 일제시대 주초마저 없어지게 되었다'라고 적혀있는 표석이 있다. 장충동 방향으로 도로 따라 잠시 내려서면 국립극장 입구에 이르게 되고, 신호등있는 횡단보도를 건너면 남산공원이 시작이 된다.

 

 

▲ 남산공원 안내판 

 

▲ 국립극장인 '해오름극장' 

 

13:28~13:37=>국립극장(해오름극장)/남산공원입구

     좌측으로 '남산공원' 글씨형 안내판과 1970년 10월 2일 재일본대한민국거류민단에서 세운 재일교포 김용환지사 동상이 있으며, 정면으로는 국립극장인 '해오름극장' 건물이 보인다.

 

▲ 남산공원 도로삼거리의 이정표

▲ 남산 정상인 서울타워로 이어지는 순환도로

 

남산 정상의 서을타워로 이어지는 남산공원 진입도로(버스이외는 진입금지)를 따라 진행하면 이정표(←N서울타워 2.1km, 남산케이블카 2.6km, 팔각정 2.14km/→석호정(궁도장) 610m, 산책로 3.5km, 약수터 50m)가 설치된 도로삼거리, 좌측 도로를 따라 완만하게 오르면 도로 좌, 우측으로 서울성곽이 나타나고 우측 성곽입구에 이정표(↑N서울타워 2km/→성곽탐방로, 남산산악회 300m/↓국립극장 300m)가 있으며 탐방로인 나무계단길이 시작된다.

 

▲ 남산공원 성곽탐방로 입구

 

13:43~13:47=>남산 성곽탐방로입구

     총연장 250m의 성곽탐방로 나무계단 오르막길을 따라 성곽을 우측에 두고 가파르게 오르면 (13:54), 좌측으로 편안한 산책로가 잠시 이어지고 체육시설과 넓은 공터가 있는 '남산산악회' 2층 건물이 나타난다. 건물 좌측으로 보이는 정자로 올라 정자를 끼고 우측으로 멀찌감치 떨어져 산정으로 오르는 서울성곽과 나란히 오랫만에 산길을 따라 오르면 산 정상에 통신시설물이 보이고 출입을 막는 철망팬스가 나타난다.

성곽은 철망팬스 안으로 진행하여 산 정상을 넘어 이어지고, 산길은 통신시설물을 우회하는 좌측 사면길로 이어진다. 편안하게 사면길을 따라 정상의 시설물을 우회하고 성곽탐방로 입구에서 헤어졌던 남산 순환도로에 다시 내려선다.

 

▲ 남산순환도로 양쪽으로 이어지는 서울성곽

 

도로를 따라 진행하여 고갯마루에 이르면 도로 좌, 우로 다시 성벽의 모습이 보이고, 고갯마루를 지나 성벽을 좌측에 두고 진행하여 서울타워 직전 Y자 갈림길이 있는 주차장에 도착을 한다.

14:12~14:15=>남산직전주차장/갈림길

     성벽을 기준으로 양쪽으로 갈라지는 Y자 갈림길에는 이정표(↖서울역, 남산도서관, 남산공원관리사무소/↗N서울타워, 남산케이블카, 팔각정)가 있다. 우측의 도로따라 잠시 오르면 남산 정상에 이르게 된다.

 

▲ 서울타워에서 뒤돌아본 서울성곽이 이어지는 남산능선

▲ 서울타워에서 바라본 남쪽의 한강일대의 전경

▲ 남산 봉수대에서 조망된 인왕산/우측으로 북한산 비봉능선

▲ 남산 봉수대에서 조망된 백악산과 그 뒤로 웅장한 북한산 산줄기

 

 

▲ 남산 팔각정 

 

▲ 남산 봉수대 

 

♧ ♧ 남산 봉수대지(烽燧臺址)

*서울시 기념물 제14호

*소재지:서울특별시 중구 예장동 8-1

 

남산봉수대는 전국의 봉수가 최종적으로 집결되던 중앙봉수대이다. 남산의 옛 이름인 목면산에 위치하여 목면산 봉수대라고도 불리었고, 서울에 있다고 하여 경봉수라고도 한다.

봉수제도는 변경의 긴급한 사정을 불이나 연기를 이용하여 중앙이나 또는 변경의 다른 요새에 알리는 동시에 해당지역의 주민에게도 알려 빨리 대처하도록 하기 위한 목적에서 실시된 것이다. 조선시대에서는 전국 각지의 정보를 받아 병조에 종합하고 병조는 이를 매일 승정원에 보고하고 국왕에게 알리도록 하였는데 변란이 있으면 밤중이라도 즉시 승정원에 보고하였다.

남산 봉수대의 5개 봉수대는 전국의 5개 주요 간선로에서 보내오는 봉수를 받았는데,

제1봉수대는 함경도-강원도-양주 아차산

제2봉수대는 경상도-충청도-광주 천림산

제3봉수대는 평안도 강계-황해도-한성 무악 동봉

제4봉수대는 평안도 의주-황해도 해안-한성 무악 서봉

제5봉수대는 전라도-충청도-양천 개화산에 이르는 봉수를 받았다.

전국적으로 총 673개소의 봉수대가 있었고 전국 어느 곳에서 올리던 간에 12시간 내에 남산 봉수대에 도착하도록 하였다. 서울시는 '남산 제모습찾기운동'의 일환으로 김정호가 만든 한반도 지도의 청구도 등 관련자료를 검토하여 1993년 현 위치에 5개소 중 1개소를 복원하였다.

 

14:17~14:35=>목면산(남산 262m)/서울타워+남산팔각정+봉수대

     엣 이름이 목면산인 남산 정상에는 서울타워 전망대가 있으며, 광장 윗쪽으로 팔각정이 있다. 성벽이 이어지는 남산관리사무소 방향의 내리막 입구 우측으로는 남산봉수대터에 복원된 봉수대가 보인다.

계단길이 주를 이루는 긴 내리막을 내려서면 남산관리사무소와 안중근기념관에 이르게 된다. 서울성곽은 관리사무소로 내려서기 얼마 전 또 다시 끝이 나고, 서울성곽은 인왕산 직전까지 일제강점기와 도심지역의 개발로 숭례문(남대문)을 제외하고는 서소문, 서대문인 돈의문 등도 함께 사라져 버렸다. 물론 지금은 2008년 2월 10일 방화로 국보1호마저 소실되어 그 모습을 볼 수 없지만...

 

▲ 남대문으로 향하며 뒤돌아본 서울타워

▲ 남산의 잔존하는 남대문 방향의 서울성곽 끝

▲ 안중근기념관

 

14:50~14:53=>남산관리사무소/안중근기념관

     서울시교육연구정보원 앞 추억의 남산 계단길을 내려서 백범광장을 가로지르고 힐튼호텔 앞 삼거리(14:58). 횡단보도를 건너 남대문 방향으로 내려가면 도로 좌측으로 짧은 거리지만 복원된 일부 성곽을 발견할 수 있다.

 

▲ 숭례문 복구 현장

▲ 2008년 2월 10일~11일 숭례문 화재 현장 사진들

 

◀ 숭례문의 화재 전 옛 모습

 

 

♧ ♧ 숭례문(崇禮門)

*국보 제1호

*소재지: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 4가 29번지

 

이 문은 서울성곽의 정문이다. 또한 도성의 남쪽에 있어 남대문으로도 불린다. 태조7년(1398)에 처음 건립된 후 세종30년(1448)에 크게 고쳐 지었다.

석측 중앙에 무지개 모양의 문인 홍혜문이 있으며 정면 5칸, 측면 2칸인 2층 문루를 세우고 다시 그 위에 처마를 4면에 두는 우진각 지붕을 얹었다.

처마 끝은 여러 개의 나무로 짜 맞추어 댄 전형적인 다포양식의 건물로서, 현존하는 성문 건물로서 우리나라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건물 내부의 위층 바닥은 널빤지로 깐 널마루이고 아래층 바닥은 홍예의 윗면인 중앙칸만이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짠 우물마루일 뿐 다른 칸은 흙바닥으로 되어 있다. 문에 걸린 현판인 편액의 글씨에 관하여는 여러가지 설이 있으나 '지붕유설'에는 양녕대군이 쓴 것이라 기록되어 있다.

숭례문의 편액이 어느 문의 편액과 달리 세로로 쓰여있는 것은 숭례의 두 글자가 위,아래로 있을 경우 불꽃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로써 경복궁을 마주 보는 관악산의 불기운을 누르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15:03~15:16=>숭례문(남대문)

     2008년 2월 10일~11일 온 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던 한 노인의 방화로 600여년간 수도 서울의 관문으로 국보1호의 자리를 지키며 웅장한 자태를 자랑하였던 숭례문이 지금은 복원 공사를 위해 차단막에 쌓여 있다. 아쉬운 마음에 복원 공사장 주위를 한바퀴 돌아보고 2012년 다시 옛 모습을 찾고 국민의 품으로 되돌아 오기를 기원하며 무거운 발길을 돌려 상공회위소 앞으로 향한다.

상공회의소 건물 좌측의 도로를 따라 중앙일보사 사옥 앞을 지나 서소문로에 이르고, 도로를 건너기 위해 우측의 시청 방향으로 100여m 정도 진행을 한다. 도로를 건너 다시 역으로 중앙일보사 맞은 편으로 이동, 사라져 버린 소의문(서소문 15:25)을 뒤로 하고 골목길로 접어 들어 진행하면 옛 배재학당 자리에 들어선 배재빌딩과 배재공원이 나타나고, 정면으로 러시아대사관이 길을 막고 자리를 잡고 있다.

원 서울성곽길은 러시아대사관 부지를 지나 이화여고 교정을 가로지르고 창덕여중 담장을 이어가는 것으로 추정이 되지만 건물들이 자리를 잡고 있으며, 또한 출입이 자유롭지 못하여 잠시 우회하기로 한다.

러시아대사관과 배재빌딩 사이의 배재공원을 통해 우측으로 진행, 러시아대사관 정문과 상업등기소 앞 도로를 따라 '정동길'과 '덕수궁길'이 만나는 삼거리(15:33)로 나와 삼거리에서 '정동길'을 따라 '이화여고 백주년기념관' 입구 정문(15:36)과 창의여중 교문을 차례로 지나 새문안길이 지나는 정동사거리에 이른다.

15:40=>옛MBC문화방송 정동사옥/경향신문

     경향신문 사옥 앞 횡단보도를 건너 맞은 편으로 보이는 강북삼성병원에 이르게 되는데 이곳 또한 멸실되어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서울성곽 4대문의 하나였던 서대문인 돈의문터이다.

15:43=>돈의문(서대문)터/강북삼성병원

     강북삼성병원 우측의 도로따라 오르면 서울시교육청(15:46)앞을 지나 '서울복지재단' 건물이 들어선 축대가 끝나는 사거리(15:48)에 이르게 되는데 우측 오르막 도로 입구에 이정표(→구세군영천교회, 홍파동 홍난파가옥 100m)가 있다.

우측으로 오르면 소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공원 우측으로 서울성곽의 일부 흔적이 남아 있으며 산마루에는 기상청 시설물이 자리를 잡고 있다. 공원이 끝나는 곳에 '대한민국 근대 문화유산'인 홍난파가옥이 있다.

 

 

▲ 서울시교육청 

 

▲ 홍난파가옥 이정표 

 

▲ 홍난파가옥 소공원의 서울성곽 흔적

▲ 홍난파가옥

 

♧ ♧ 홍난파

봉숭아를 비롯한 많은 가곡과 동요 백곡을 남기신 난파 홍영후(1984.10.~1941.8.30.) 선생은 우리나라 맨 처음 바이얼리니스트로 1936년에는 경성방송 관현악단을 창설하여 지휘하신 방송음악의 선구자이시다.

 

15:54=>홍난파가옥

     골목길을 따르면 구세군 영천교회 앞을 지나 ㅏ자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보이는 '양의문교회' 방향으로 오르면 남산 이후부터 사라졌던 서울성곽이 다시 나타나게 되는데(성안으로 진행하는 길), 갈림길에서 직진을 하면 사직터널 위 갈림길에 이르게 된다. 사직터널 위 갈림길에서 좌측의 내리막을 따르면 사직터널 입구 도로로 내려서게 되므로 직진의 오르막을 따라가 420년된 보호수인 은행나무에서 은행나무를 끼고 우측으로 진행하면 서울성곽을 만나게 된다(성밖으로 진행하는 길).

 

▲ 인왕산 서울성곽이 다시 시작되는 사거리/성벽 우측이 인왕산등산로겸 산책로

 

16:02~16:08=>인왕산 서울성벽'청운지구'시작/사거리

     도로 때문에 성벽이 일부 끊어진 사거리이다. 성벽 안길인 우측에는 '↑사직공원, 조망명소'란 이정표가 있고, 성벽 바깥길인 좌측 길 입구에는 '↑역사탐방로'란 도로표지판이 있다.

우측의 최근에 정비된 듯한 산책로를 따라 성 안으로 진행을 하기로 한다.

 

▲ 산책로 중간의 조망명소에서 바라본 백악산과 그 밑에 자리잡은 청화대

▲ 산책로 중간의 조망명소에서 뒤돌아본 남산과 시가지 전경

▲ 인왕산 오름길에서 조망된 인왕산과 서울성곽

 

복원된 성벽을 좌측에 두고 오르면 우측으로 조망명소가 있는데 이곳에 서면 우측으로 북악산과 그 밑으로 자리 잡은 청화대가, 뒤돌아보면 지나온 남산의 서울타워가 아련하게 조망이 된다.

넓고 잘 정비된 등산로를 따르면 철문이 나타난다.

 

 

▲ 인왕산 오름길 중간에 철문과 시멘트 포장도로

 

▲ 도로건너 철문 안에 설치된 이정표 

 

▲ 나무계단 오름길

▲ 성벽 옆으로 나있는 등산로겸 산책로

 

16:17=>철망문/시멘트포장도로

     철문 입구에 '서울성곽(청운지구)/인왕산,돈의문북쪽~창의문/규모:1,585m"란 안내문이 있다. 철문을 빠져나가 시멘트 포장도로를 건너 계단길이 시작되는 철문을 다시 들어서면 우측에 이정표(↑정상 0.99km/←독립문공원 1.2km/→인왕산길 0.2km)가 있다.

계속되는 돌계단과 나무계단길을 오르면 좌측으로 달팽이바위가 보이고, 군부대 시설물이 있는 좌측 봉우리 철망팬스에서 우측의 서울성곽길을 벗어나 좌측으로 잠시 내려서면 달팽이바위가 있는 전망대에 이르게 된다.

 

▲ 달팽이바위

▲ 달팽이바위 옆 전망바위에서 내려다 본 인왕산의 서울성곽

 

전망바위에서 잠시 지나온 인왕산 성곽을 내려다 보고, 군부대 철망팬스로 되돌아 올라와 서울성곽길을 따른다. 철계단을 오르면 우측으로 밧줄난간이 설치된 암봉 전망대에 오르게 되는데 범바위이다.

 

▲ 범바위 오르는 철계단

 

16:34=>범바위/암봉전망대

     다시 철계단을 내려서면 성벽 위로 조성된 등산로를 잠시 따르고, 감시초소가 있는 갈림길에 이르게 되는데 인왕천약수터갈림길이다.

 

▲ 인왕천약수터갈림길의 이정표

▲ 인왕천약수터갈림길에서 바라본 정면의 인왕산 암봉

 

16:36=>인왕천약수터갈림길

     이정표(↑정상 0.30km, 창의<자하>문 1.9km/→인왕천약수터 0.19km/↓사직공원 1.54km)가 있는 갈림길이다. 인왕산 등산로의 백미인 안전시설이 설치된 바위지대 오름길을 극복하고 헬기장(16:43)과 이정표(↑창의<자하>문 1.6km/↓사직공원 1.79km,독립문공원 2.14km)를 차례로 지나면 공터 전망봉인 인왕산 정상이다.

 

 

 

▲ 인왕산 정상을 오르는 바위지대

 

 

▲ 인왕산 정상의 삼각점 

 

▲ 인왕산 정상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삼각점이 설치된 큰 바위 

 

16:45~16:56=>인왕산(338.2m)

     정상 중앙에는 커다란 바위 하나가 자리를 잡고 있고, 그 위에 삼각점(서울487/1984복구)이 설치되어 있다. 주위에는 테이블이 있는 쉼터가 있으며, 사방으로 시야가 확보되어 조망이 뛰어난 곳이다.

 

▲ 인왕산 정상에서 바라본 북한산 암릉

 

북쪽으로는 북한산 비봉능선이 힘차게 문수봉으로 이어지는 것이 , 동쪽/우측으로는 백악산으로 이어지는 서울성곽이 시원하게 조망이 된다.

쉼터 의자에 앉아 커피 한 잔에 간식시간을 가지며 11분간 체류.

 

 

▲ 인왕산 정상에서 창의문으로 내려가는 등산로

▲ 등산로 중간에 설치된 이정표

 

암봉인 정상 우측 사면으로 나있는 등산로 따라 철계단을 두 차례 내려서면 창의문으로 이어지는 새롭게 복원된 서울성곽이 나타난다. 성벽을 따라 이정표(17:03, ↑창의<자하>문 1.35km/↓정상 0.3km, 사직공원 2.04km)를 지나고 인왕산길 갈림길의 이정표(17:06, ↑창의<자하>문 1.16km/→인왕산길 0.39km/↓정상 0.49km)를 지나자말자 정면으로 군시설물이 성벽을 끼고 자리를 잡고 있어 철망과 철문이 설치되어 있으며,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좌측으로 성벽을 넘어 성밖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로 내려서는 철계단이 있어 이를 이용, 내려서서 성밖의 등산로를 약 150m 정도를 따르면 다시 성벽을 넘어 성안으로 들어오게 된다.(17:13) 군부대를 우회한 셈이다.

 

▲ 성벽을 넘어 성밖으로 나가는 계단길

▲ 성벽을 넘어가며 성벽위에서 바라본 인왕산에서 내려오는 서울성곽과 성밖의 성벽을 따라 나있는 등산로

▲ 성밖으로 내려서는 철계단 구조물

▲ 성밖 성벽 옆 등산로

▲ 성안으로 다시 넘어들어와 성벽 옆 계단길 따라.../우측은 군부대 팬스

 

성벽 옆 돌계단길을 약 250여m 정도를 내려가면 이번에도 군 시설물 때문에 '통행금지' '등산로없음'이란 푯말이 부착된 목책이 성곽길을 막고 있으며, 우측으로 우회하도록 이정표(→인왕산길 0.07km, 청운어린이집 0.23km/↓정상 0.94km, 사직공원 2.03km)가 설치되어 있다.

 

▲ 인왕산길갈림길의 이정표와 성곽길을 막아둔 목책

 

17:18=>인왕산길갈림길

     우측의 계단길을 내려서면 이정표(←창의<자하>문 0.64km/↑청운어린이집 0.15km/→사직공원 2.03km/↓정상 1.01km)가 설치된 철문이 나타난다. 철문을 통과하고 2차선 포장도로인 '인왕산길'에 내려서서 도로를 건너 좌측으로 내려간다.

 

▲ 인왕산길

 

17:20=>인왕산길/포장도로

     산책로인 도로 갓길을 따르면 정자(17:24)가 있고, 노송 한그루가 있는 다시 시작되는 성곽 옆 전망대를 지나 내려서면 도로 건너 창의문이 보이고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자하문고개이다.

 

▲ 자하문고개로 내려서기 전의 정자/뒤로 백악산이 보인다.

 

17:29=>자하문고개

     내려서면 입구에 '인왕산 등산안내도'가 잇다. 우측으로 50여m를 내려서면 자하문버스정류장이 있다.

 

▲ 자하문고개로 내려서기 직전 바라본 도로 건너에 위치한 창의문

 

17:31=>자하문고개 버스정류장

     약 10여분 가까이 기다리다 경복궁역행 버스에 몸을 싣고 서울성곽의 아쉬운 종주를 마감한다. 현재 진행중인 서울성곽 복원 공사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다시 한 번 더 서울성곽 돌기를 도전해 보기로 한다. 그리고 도시화로 사라져버린 성곽 약 18.2km 전체를 복원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 최대한 많은 구간이 옛 모습을 찾고, 화재로 소실된 숭례문과 멸실된 서대문인 돈의문, 소의문인 서소문 등이 북원되어 국민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기대해 본다.

그 날이 진정한 국민의 품으로 돌아온 서울성곽이 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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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11.03 20:54

    첫댓글 사진잘보고갑니다 저도 한번돌고십읍니다 그때 부탁드리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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