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산행하기 좋은 계절이다. 늘 우리곁에 말없이 둘서서서 건강과 휴식을 나눠주는 학산도 등산객으로 붐빈다. 학산의 가을을 살짝 들여다 본다.
학산은 표정이 다양하다. 계절마다 계곡과 능선이 들고 나는 등산로마다 모두 다르다. 능선길은 가파르고 오르기가 힘들다. 메마르고 땅이 거칠다. 계곡 길은 완만하고 여유롭다. 촉촉하고 그늘이 깊다.
사람이 사는 마을마다 산에 오르는 길이 나있다. 시내 쪽부터 짚어보면 서학동과 경계 언저리 첫 번째 입구가 두레마을 뒷길일 듯 하다. 학산 정상까지 이동거리가 제일 긴 코스다. 좀 옮겨서 덕적골산장을 지나면 덕천사 입구길이 나온다.
지안리즈 아파트 뒷길을 따라 걸어가다 보면 약수터가 나온다. 먹을 수 없다는 표지판이 있으나 떠가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받아다가 끓여먹는다고들 한다. 등산로 안내도가 큼지막하게 서 있다. 계곡에서 능선으로 바뀌며 이어진 등산로 입구다.
산아래 길을 좀 돌면 완산중학교 뒷길(약수터1길) 입구가 나온다. 침목으로 놓은 계단이 급경사로 서서 입구를 알린다. 길이 완만하고 쉽게 오르내릴 수 있다고 한다. 코오롱아파트와 인근 주민들이 애용하는 길이다. 더 돌아가면 푸른마을 뒤로 학소암 가는 길이 있다. 학소암까지는 포장이 되어 차도 오를 수 있다. 학소암 뒷길은 바윗길로 험한 편이다. 길옆에 쌓은 돌탑들이 볼 만하다.
좀더 돌면 송정써미트 뒷길로 갈 수 있다. 맏내골방죽(맏내제)이 산입구에서 반긴다. 아마도 더 가면 또 입구가 있을 것이다. 구이면 동적골까지 사람 살고 농ㅇ사짓는 곳곳에 산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소개하지 못한 입구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고 송정써미트 뒷길로 산에 올라본다. 맏내골방죽을 지나면 등산로 정비사업이 막 이루어져 아직 다져지지 않은 길로 이어진다. 비탈밭이 가을걷이 뒤로 듬성듬성 빈 모습으로 드러나 있고, 미루나무 감나무 같이 사람 산 흔적들이 곳곳에서 보인다. 숲이 좋다. 삼림욕 하기에 제격이다. 계곡이 가물어 쫄쫄거린다.
골짜기로 가을이 스며들었다. 성질 급한 나무부터 물이 들었다. 대개는 리기다소나무고 아카시나무에 오리나무가 큰 키를 자랑한다. 빽빽한 나무들, 쓰러진 고목들, 축축한 흙길, 숲에서 풍기는 촉촉한 냄새가 가끔 들리는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와 섞인다. 계곡이라 넝쿨식물들도 발달해 있다.
더 올라가다 보면 놓인 다리가 또 보인다. 이런 걸 생색내기라고 해야할지, 잘 했다고 해야 할지 실제로 망설이게 된다. 가을바람이 나무들 사이로 솔솔 불다 지나친다. 노랗게 물든 나무는 개죽나무 아니면 그 사촌이나 되는 나무다.
학산 정상은 빠르지 않게 꾸준히 가면 40~50분 정도 걸린다. 정상은 학이 알을 품었던 둥우리처럼 움푹 패여있다. 군사훈련용 참호인지, 분화구가 굳어서 생긴 웅덩이인지 상상도 해본다. 소원성취를 비는 마음으로 둘레를 세바퀴 돌아본다.
학산 꼭데기에서 내려오다 보광재로 가본다. 흑석골에서 구이 방면으로 넘어가던 고갯길이라고 안내판이 서있다. 정자도 늙은 느티나무 사이로 지어져 있다. 지금은 이용되지 않는 버려진 고갯길, 많은 사연을 안고 잊혀져 가고 있다.
고덕산은 상당히 멀고 험한 코스도 드물게 있어서인지 보광재에서 1시간이 조금 넘게 걸린다. 송정써미트에서부터 고덕산까지 4시간 남짓이면 왕복할 수 있다. 고덕산 정상 부근은 완연한 단풍으로 물들었다. 길위에 낙엽이 쌓여 미끄럽다. 구이도 모악산도 가까이 보이고, 전주 시내도 한눈에 보인다.
흑석골로 내려가 보면 먼저 약수터를 만나고 두 개의 건넌다리를 지나면 정자가 하나 더 나온다. 무엇보다 길고 그윽한 골짜기에 빠져든다. 역시 숲이 울창하고 고요하다. 전주 가까이에 이런 깊은 계곡과 숲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거꾸로 전주는 산 속의 고을이겠다.
그 사이 된서리를 맞아 단풍이 채 들기도 전에 고스라진 나뭇잎이 바람에 살랑인다. 가을, 설악과 내장을 그리워만 하다가 포기한 분들에게 천혜의 뒷산 학산과 고덕산을 권하고 싶다. 물병 하나, 간식 조금, 지팡이에 따뜻한 옷을 챙기면 준비는 끝이다. 지금이라도 네 시간 작정하고 가을을 만끽하러 옆집 친구 한 명 불러 나서보면 어떨까. 더 늦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