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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이꺼 스크랩 순흥 안씨 시조및 본관의 유래
쟁이 추천 0 조회 62 11.10.29 17:0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순흥안씨(順興安氏) : 시조 : 안자미(安子美)


시조 자미는 고려 신종때 흥위위 보성별장을 지내고 흥령현에 정착 세거하였으며 신호위 상호군에 추봉 되었으므로 후손들은 순흥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왔다.
순흥안씨는 자미의 세 아들 영유, 영린, 영화 등을 파조로 한 3파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주자학의 태두인 향은 영유의 손자인데, 고려 원종 때 18세의 어린 나이로 문과에 올라 도첨의중찬에 이르렀으며, 교육 발전을 위해 [섬학전] 이라는 육영재단을 설치하여 후진을 양성하는 등 유학 진흥에 힘써 우리나라 최초의 주자학자로 일컬어진다.
그의 문하에서 백이정, 우탁 등의 석학이 배출되어 이제현, 이색 등에 계승되었으며 다시 권근, 변계령 등으로 유학의 전통을 면면히 이어 내려왔다.
특히 향을 제향하는 소수서원은 최초의 사액서원으로 알려졌으며 이어 전국 각지에 많은 서원이 세워져 사림의 근거지로 발전되어 왔다.

            ◎느낌이 있어서
     등불을 밝히는 곳마다 염불하는 소리
     노래를 부르는 집마다 굿하는 소리
     오직 공자의 사당은
     뜰에 풀만 돋아나고 사람도 없네

그의 아들 우기는 우부승지와 상호군을 지내고 순평군에 봉해졌으며 손자 목은 공민왕 때 통헌대부에 책록되어 정당문학을 역임하였다.
영화의 증손인 석은 충렬왕 때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벼슬을 사양하고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그의 세 아들이 뛰어났는데, 둘째 아들 축은 원나라 제과에 급제하여 첨의찬성사, 감춘추판사로 각 왕대의 실록을 편찬하였다.
또한 경기체가로 국문학사에 빛나는 [관동별곡], [죽계별곡] 등을 지었고 뒤에 흥령군에 봉해졌다.
셋째 아들 보도 19세에 문과에 급제하고 원나라 제과에 합격한 후 공민왕 때 정당문학에 이르렀으며, 넷째 아들 즙이 대제학에 오르고 순흥군에 봉해져 가문의 중흥을 이룩하였다.
축의 아들인 종원은 17세 때 문과에 급제하고 순성보조공신으로 순흥군에 봉해졌으며, 문하찬성사, 판삼사사 등을 거쳐 흥령부원군에 진봉되었고 조선개국 후 영삼사사에 올랐다.
그의 아들 경공은 조선개국공신으로 한성부판윤을 거쳐 태종 때 집현전 대제학에 이르고 흥령부원군에 봉해지니 아들 순과 숭효와 더불어 가문을 번성시켰다.
순흥안씨는 조선 중종 때부터 명종대에 걸쳐 전성기를 누렸는데, 중종 때 공조판서를 지낸 침과 좌의정을 역임한 당, 명종 때 호조판서를 지낸 위와 좌의정에 올랐던 현, 그리고 정 등이 유명하였다.
침은 세조 때 문과에 급제한 후 여러 청환직을 거쳐 대사성, 대사헌 등을 역임하고 지돈령부사에 이르렀으며 특히 해서에 능하여 서예가로도 명성을 얻었다.
당은 성종 때 친시문과에 급제한 뒤 사성으로 [성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중종 때 이과의 옥사를 다스려 정란공신에 책록되었고, 대사헌 및 각조의 판서를 거쳐 좌의정에 이르렀다.
그 후 기묘사회 때 조관조 등의 인재들을 구하려다 모함을 받아 파직되고 신사무옥 때 아들 처겸과 함께 사사 되었다.
호조판서를 역임한 위는 [경국대전]을 찬수한 석학이며, 군략가였다.
위의 동생 현은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한성판윤, 이조판서를 거쳐 좌의정에 올라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또한 침의 손자로서 문장과 글씨에 능하고 그림에도 뛰어난 소질을 지닌 정은 중종 때 현량과에 선발되어 양성현감 등을 지낸 유능한 인재였다.
근대 인물로는 대한의 독립을 위해 평생을 일제에 투쟁한 창호와 대한의군 참모총장 겸 특파독립대장으로 의병군을 이끌고 독립투쟁에 앞장섰던 중근이 유명하였다.
창호는 [참되자 일하자 미쁘자 날쌔자]의 4대 정신을 지표로 흥사단을 조직하였고 [참배나무에는 참배가 열리고 돌배나무에는 돌배가 열린다 독립국의 자격이 있는 국민에게는 독립국의 열매가 열린다. 동포여! 힘을 기르소서 나라가 없을 때 한집과 한몸이 있을 수 없고 민족이 천대받을 때 혼자만이 영광을 누릴 수는 없다.]며 한국의 정신적 독립운동을 주도 하였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중장이 수여되었다.
준근은 하르빈 역에서 원흉 이또오 히루부미를 사살하고 [장부는 비록 죽을지라도 마음이 쇠와 같고 의사는 위태로움에 임할지라도 기운이 구름 같도다] 라는 마지막 유서를 남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와같이 순흥안씨는 독립운동가를 많이 배출하였는데, 특히 중근의 종제 명근과 대한민국회를 조직하고 부회장을 지낸 무, 그리고 희제와 세환 등이 유명하였다.
이외에도 우리나라 최초의 비행사였던 창남과 애국가를 작곡하여 국민의 정신적 산실을 마련한 익태 등이 순흥안씨의 가문을 더욱 빛냈다.



경남 함안군 가야면 신음리
전북 남원군 이백면 일원
경북 예천군 용궁면 월오리
경남 함안군 대산면 일원
황해도 연백군 화성면 송천리
평남 안주군 신안주면 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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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렬자

순 수 락

병 상 동

혁 찬 엽

효 중 길

현 전 용

태 준 홍

근 주 정

성 항 제

균 기 수

회 령 염

行列子

淳 洙 洛

柄 相 東

爀 燦 燁

孝 重 吉

鉉 銓 鏞

泰 準 洪

根 柱 楨

性 恒 悌

均 基 壽

會 令 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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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렬자

영 택 구

만 화 무

원 우 덕

재 기 규

진 수 건

해 막 호

집 포 간

용 광 형

주 주 곤

흠 연 철

行列子

泳 澤 求

萬 華 茂

愿 愚 德

宰 起 奎

鎭 銖 鍵

海 漠 浩

集 포 幹

容 光 亨

周 疇 坤

欽 鍊 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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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렬자

준 원 윤

 

 

 

 

 

 

 

 

 

行列子

濬 源 潤

 

 

 

 

 

 

 

 

 

소수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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