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이 승천하던 날
(제10대 집행부의 마지막 문학기행을 마치고 나서~ )
세상은 눈에 보이는 세계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로 나뉘어져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는 눈에 보이는 세계와는 비교할 수가 없는 무궁의 세계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고 와서, 눈에 보이는 세계로 그려내어서 보여주는 사람이 神人이고, 작가이고, 예술가다. 나는 원고지 10매의 수필 한편에도 그 속에다가 나만이 본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담아내려고 애를 쓴다. 수필가협회 제10대 집행부를 맡아서 많이 힘들었던 일은 내가 보고 있는 세계를 어떻게 회원님들께 보여드리는가 하는 일이었다. ‘제10대 집행부의 마지막 문학기행’을 기획하면서 작품을 쓰듯이 많이 고민하고 연구를 했다. 행위에다 정신을 담아내지 못하면 생명이 없는 죽은 수고가 되는 때문이다.
초안으로 올라온 “부산 유엔공원 ⇒ 광안리 해변 ⇒ 요산김정한 문학관” ”만으로는 뭔가 허전하다. 용을 그리고도 눈이 없으면 깡철(강철이: 밤이면 불을 밝히고 바다 위를 날아다닌다는 전설상의 동물)이 된다. 무엇으로 용의 눈을 그릴까 고심하고 있는데 준비 팀에서“명례 성지”를 찾아냈다. 쾌재를 부르며 무릎을 쳤다. 청년 때 배운 소요리 문답서 제1문의 물음이 불국사 범종소리처럼 “웅웅”거리며 들려왔다.
“사람의 제일 된 목적이 무엇이더뇨?”
“신석복 마르코, 그는 왜 살 길을 버리고 순교의 길을 걸어갔느뇨?”
내 앞을 살아 간 힘없는 한 작가가 들려주고 있는 “사람답게 살라는 말이 무엇이더뇨?”
“천만리 남의 땅에서 산화한 저 수 많은 이국의 청년들은 누구를 위해 종을 울렸느뇨?”
"신석복 마로코님의 묘소에서 "건축가 승효상이 그려 놓은 빛과 소금은 무엇이더뇨?"
그리고 마지막에
“문학의 제일 된 목적이 무엇이더뇨?”
진달래 꽃비 오듯 지는 명례성지의 석양을 마주하고 예정에 없던 “영무(靈舞)”를 감상하던 내 속에서는
“사람아!”
“사람아!”
“사람아!”
하는 탄식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마지막 건배사를 하라고 한다.
사람이 연출해 낼 수 없는 정말로 정성을 다해서 살아낸 사람에게만 은혜로 주어지는 그때 그 절묘한 순간의 때를 맞춰서 깔아지는 타는 노을을 배경으로
우리 모두는
“사랑해!”
“당신을!”
하고 외쳤다. 우리가 함께 그려낸 용 한마리가 낙동강 700리 굽이굽이 흐르는 물줄기를 타고 하늘로 승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땅에는 빛과 소금으로 길을 만들어 간 우리 정신문화의 흔적이 길이길이 아름다운 역사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