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자연 서정성 이미지의 형상화와 진실
--박순호 제1시집 『바람 숲에 살고 지고』
김 송 배
(시인. 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
1. 바람과 숲, 나뭇잎 등과의 교감
일찍이 프랑스의 사상가 파스칼은 그의 『팡세』에서 “자연이 모든 것을 말할 수 있고 신학(神學)까지도 말할 수 있다는 것을 그로부터 배우는 사람들이야말로 자연을 깊이 존중하는 사람이다”라는 명언(名言)으로 우리 인간들에게 자연이 주는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 시인들이 만유(萬有)의 자연과 교감하면서 시를 창작하지 않으면 시(詩)의 위의(威儀)나 본령(本領)에의 깊은 진실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지 못하는 일반적인 자연관에 머무는 감상적인 창작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 박순호 시인이 상재하는 제1시집 『바람 숲에 살고 지고』에서는 <책을 내면서>에서 언급했듯이 “지금은 어린이 숲 해설가로 소일하면서 숲을 즐기고 시를 쓰는 낭만주의자로 살고 있습니다.”는 그의 진솔한 기술(記述)과 같이 그 삼라만상(森羅萬象)의 현장에서 그가 착목(着目)하는 외적인 사물(시적 소재)에 대하여 그 광경이 보여주는 형태를 그림을 그리듯이 보여주는(showing) 현상과 그의 시야에 들어온 사물들이 내면 깊숙이 감춰진 스토리나 메시지를 들려주는(telling) 형식의 시법으로 작품을 완성하고 있어서 우리들의 공감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봄
이슬비 부슬부슬 내리는 양촌 에는
새싹 돋아나고 나무 풀들은 예쁜 꽃을 피운다
향기에 벌 나비 날아들고 청량한 물소리
새들도 노래 불러주는 아름다운 계절
자연 그대로 소식을 아이들에 들려준다
여름
맑은 공기 더위를 식혀주는 그늘숲이 참 좋다
풀벌레 곤충 매미 울음에 관한 이야기
생명체는 어떻게 태어나 목숨 다하는 이야기에
쥐 죽은 듯하다 손 들고 질문이 쏟아진다
천진난만 소리에 즐겁고 관찰한 보람을 느낀다
가을
후손 번식으로 익어가는 풍요로운 계절이다
다람쥐 청설모 산새 짐승에 양보받아
도토리 등 여러 열매 조금씩 가지고 온다
정성으로 손질해 친환경 작품 만들 약속은
아이들 환호성이 창밖까지 들린다
겨울
오색 갈아입은 이파리 휘날리며 발아래 내려앉고
내년을 기약하는 이별의 아쉬움 남긴다.
북풍한설 나뭇가지 휘파람 불어도 예쁜 눈꽃 피었네.
낙엽 방석 위에 하얀 눈 이불 덮고 동면 덜어간 너
강남 간 제비 풀잎 물고 오는 날 일어나리라
--「바람 숲에 살고 지고」 중에서
박순호 시인은 이 시집의 표제시 「바람 숲에 살고 지고」의 작품에서는 자연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바람이나 숲에 대한 동반된 삶의 형태를 시적으로 투영하고 있다. 그는 이 자연의 섭리가 사계절의 순환에 따라서 천태만상(千態萬象)의 이미지를 창출하고 있어서 그가 지향하는 시적인 진실의 탐구에 몰입하고 있어서 춘하추동(春夏秋冬)의 정경(情景)을 형상화함으로써 우리들의 공감을 흡인(吸引)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봄”에서 이슬비, 새싹, 예쁜 꽃, 벌 나비, 청량한 물소와 새들의 노래를 시적인 대상물로 끌어와서 계절의 미감적 이미지를 활용하고 있으며 “여름”에서는 맑은 공기, 그늘숲, 풀벌레, 곤충, 매미 등의 생명체에 대한 논의에 보람을 느끼고 있으며 “가을”에서는 다람쥐, 청설모, 산새 짐승, 도토리 열매 등 풍요로운 계절에서 “친환경 작품 만들 약속”으로 변모하게 되고 “겨울”에는 오색 갈아입은 이파리, 이별의 아쉬움, 북풍한설, 눈꽃, 동면 등의 계절이 제공하는 이미지들을 잘 보여주거나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는 결론적으로 “숲/ 풀, 나무모인 곳을 숲이라 한다./ 살아가는 한 가닥의 생명줄이라 하겠다./ 산소와 그늘 맑은 공기로 피로를 풀어준다./ 숲을 좋아해서 어린이 숲 해설사가 되었다./ 산과 들판을 다니며 풀과 나무를 관찰하고 있다”라는 어조(語調-tone)로 바람과 숲에 대한 그의 진정한 동행이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아지랑이 피는 날
청운의 꿈 안고 세상에 나와
자연 섭리로 꽃 형제 나란히
영롱한 햇빛 받아 하루같이
유년을 보낸 잎
따가운 햇살 그늘막 되어주고
시집보낸 누이 예쁜 열매 맺어
바람에 흔들리고 햇빛에 더울세라
한 가족 화목 속에 장년 된 잎
소슬바람 소매 끝 스치고 떠날 차비
가는 길 아쉬운 길 내년을 기약하며
예쁘게 화장하고 파란 하늘 높이 높이
훨훨 날아가는 단풍잎
앙상한 가지 끝에 외로운 붉은 잎 하나
삭풍아 불지마라 저 잎 새 떨어지면
실가지 외로워진다
--「나뭇잎 사랑」 전문
그는 다시 숲에서 항상 마주하는 나뭇잎에 대한 사랑을 지나칠 수가 없는 것이다. 거기에는 “아지랑이 피는 날/ 청운의 꿈 안고 세상에 나와/ 자연 섭리로 꽃 형제 나란히/ 영롱한 햇빛 받아 하루같이/ 유년을 보낸 잎”이 장년의 잎이 되고 “가는 길 아쉬운 길 내년을 기약하며” 날아간 단풍잎이 되어 이제는 마지막 연의 결론처럼 “앙상한 가지 끝에 외로운 붉은 잎 하나/ 삭풍아 불지마라 저 잎 새 떨어지면/ 실가지 외로워진다”는 사계절의 변모(變貌)와 같이 인생의 한생을 비유적으로 응시(凝視)한 이미지들이 우리들의 사유(思惟)를 집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작품 「솔밭 길」 「산사의 기도」 「숲 속의 아이들」 「소백산 휴양림」 등에서 그가 표추출하고자 하는 친자연적인 이미지들이 그의 진솔한 서정성으로 적시되고 있어서 숲 해설사로서의 본분과 더불어 시의 위의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2. 사계절의 향훈에서 탐구하는 시간성
조순호 시인은 지금까지 자연환경 특히 숲이나 나무 풀 등에서 동반자적인 위치에서 탐색한 춘하추동 사계절에 대한 변화의 섭리에서 다양한 이미지를 창출하면서 자신의 대자연관을 투영해 왔는데 이제는 사계절에 대한 좀더 깊은 인식을 통해서 시적인 원류를 탐구해보는 시법을 읽을 수 있게 한다.
그는 우선 작품 「봄날」 중에서 “봄 햇살 내려앉은 봄/ 자주 찾는 도서관 모퉁이 야트막한 왕재산// 뒷걸음 산책길 돌아서면은/ 찬바람 보낸 길섶 옥잠화 떡잎 반기고.// 풀꽃 목련 산수유 개나리 벚꽃/ 라일락도 뒤질세라 향기 품어낸다.”는 봄의 정경이 한 폭의 수채화로 그려지는데 이는 봄의 향기가 바로 한 계절의 시작으로 온 천지에 진동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는 사계절을 고르게 응시하면서 관망하고 거기에 자신의 서정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투영하는 시법은 그의 자연관이 바로 계절의 순환에서 창출하는 이미지들이 작품으로 형상화해서 그가 평소에 간직한 순수한 내면의 풍정(風情)이 아주 간결하게 적시(摘示)함으로써 그의 시적인 주제가 다정하게 현현되고 있는 것이다.
양지바른 두렁 밑 쑥부쟁이 움터고
응달진 얼음 녹아 실 계천 물소리
고향 아낙네 귀밑머리 스치네.
햇살 쏟아지는 논밭 갈이 얼룩소
송아지 뒤따르고
이랴 어서 가자
소모는 농부 값진 땀방울
소슬바람
잎사귀 예쁘게 화장하고
오곡백과 황금 들판 넘실대니
쌓인 피로 어디 가고 어깨춤 두둥실
풍년일세 농부님 행복하네.
세찬 바람 진눈깨비 가지 끝에 매달리고
문풍지 울음 울고 동지섣달 춥다한들
무 배추 김장하고 등 따습고 배부르니
어화둥둥 놀아 보세
--「사계절」 전문
박순호 시인은 먼저 “사계절”이라는 제재(題材)로 그의 사유의 범주(範疇)에서 지워지지 않는 정감적인 어조가 작품의 주제(主題-theme)로 조형(造形)하는 순정미가 넘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일년이라는 시간성에서 주변의 생활 반경의 변화와 이 변화에 따른 자신의 정신적 혹은 지향적인 가치관 정립에 상당한 투여(投與)를 하는 그의 열정이 계절과 화해하고 융합하는 그의 진정성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그는 “응달진 얼음 녹아 실 계천 물소리”(봄)와 “소모는 농부 값진 땀방울”(여름), “오곡백과 황금 들판 넘실대니”(가을) 그리고 “문풍지 울음 울고 동지섣달 춥다한들”(겨울) 등의 상황으로 사계절의 풍광(風光)을 묘사하여 자연과 우리 인간들의 고유 정서가 작품으로 형상화하는 시적인 전개가 우리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면서 공감의 영역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박순호 시인은 사계절에 대한 작품의 변화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봄 : 강남 갔든 제비 부부/ 처마 밑에 집 짓고// 우물가에 감나무 / 노랑 잎 돋아나는 봄 (「봄」 중에서)
-여름 : 숨 막히는 회색 먹구름 밀려오고/ 우당탕 천둥 번개 소낙비 내리쳐도/ 반바지 밀짚모 자 괭이든 농부님은/ 논두렁에 춤을 춘다(「여름 1」 중에서)
-가을 : 황금빛 치장한 들판/ 꽃꽂이해놓은 듯/ 아름다운 단풍/ 알알이 떨어지는 밤송이(「가 을비 내리고」 중에서)
-겨울 : 세찬 바람 홑바지 지나간다./ 동짓달 긴긴밤 진눈깨비 날리고/ 성난 삭풍 문풍지 울 음 크게 울린다(「홑바지 겨울」 중에서)
봄 햇살 내려앉은 봄
자주 찾는 도서관 모퉁이 야트막한 왕재산
뒷걸음 산책길 돌아서면은
찬바람 보낸 길섶 옥잠화 떡잎 반기고.
풀꽃 목련 산수유 개나리 벚꽃
라일락도 뒤질세라 향기 품어낸다.
자연도 기후를 먹고
인생도 시대를 먹고
모두는 시류에 살고
식목일 돌아오고
먼 옛날 헐벗은 산천 나무 심기 기억에
내가 사는 공동주택 메마른 화단
영산홍 측백 회양목 맥문동 정성으로 심어놓고
봄비 오기 기다리는 마음
--「봄날」 전문
박순호 시인은 사계절 중에서도 유독히 봄(春節)에 대한 이미지에 몰입하고 있다. 이는 봄의 이미지나 상징은 만물의 생명이 재생하거나 새롭게 태어나는 생명성의 계절로서 자연이나 인간이나 동일한 정감으로 예찬(禮讚)하면서 활기를 감수(甘受)하게 된다.
그는 봄의 서정에서 공유하는 향훈(香薰)은 봄 햇살과 “풀꽃 목련 산수유 개나리 벚꽃 / 라일락도 뒤질세라 향기”에서 감응(感應)하고 있는 것이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날(春日)에서 “자연도 기후를 먹고/ 인생도 시대를 먹고/ 모두는 시류에 살고”라는 화자(話者)의 인생론적인 가치관도 투영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그는 “내가 사는 공동주택 메마른 화단/ 영산홍 측백 회양목 맥문동 정성으로 심어놓고// 봄비 오기 기다리”고 있다는 순수 서정미를 분사(噴射)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 봄에 대한 이미지뿐만 아니 사계절 전체에 대하여 봄=「봄이 오는 소리」 「봄날」 「봄 달래」 여름=「여름 2」 가을=「가을」 「가을 바람」 「갈바람 불어오면」 겨울=「눈 오는 날」 「문 앞에 서성이는 겨울」 등의 작품 소재에서 계절감각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어서 그의 순수서정의 심연(深淵)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3. 사친이효(事親以孝)-시적 형상화
박순호 시인의 작품에서 또 하나 특이하게 발견되는 것은 부모에 대한 효(孝) 정신의 발현으로 자신의 일생에서 불망(不忘)으로 남아 있는 효심(孝心)에 대한 시적 형상화에 공감할 수 있는 자신만의 소회(素懷)를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일찍이 「부모은중경」 중 “열째, 끝없는 자식사랑으로 애태우시는 은혜를 노래하노라.” 대목에서 “깊고 무거운 부모님의 크신 은혜/ 베푸신 큰 사랑 잠시도 그칠 새 없네./ 앉으나 일어서나 마음을 놓치 않고/ 멀거나 가깝거나 항상 함께 하시네./ 어머님 연세 백 세가 되어도/ 팔십된 자식을 항상 걱정하시네./ 부모님의 이 사랑 언제 끊어지리이까/ 이 목숨 다할 때가지 미치오리.”라거나 신라시대 원광법사가 설법한 「세속오계」 중에서의 사친이효 사상을 실천이라도 하듯이 그는 부모에 대한 효 의식을 다양하게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 효심은 가족 사랑이라는 범주에서 살펴보면 지금은 생존하지 않는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회상의 장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이다. 작품 「어릴 때는 모르고」 전문에서 “부모님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는 줄/ 나는 몰랐네.// 낮에 논밭에서 힘들게 일하고도 / 밤늦게 호롱불 밑에서 길쌈하는 줄/ 나는 몰랐네.// 무명옷 굽은 허리 밭매고 지게 지고/ 바지 궁둥이 붉은 흙 묻은 줄/ 나는 몰랐네.// 한평생 자식위해 일만 하다 / 돌아가신 부모님 은혜, 부모가 되고/ 이제 알았다”는 어조와 같이 시적 화자인 자신의 진솔한 참회(懺悔)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가지 말라 가기 싫다
마지막 숨 몰아쉬는
동짓달 초여드레 새벽
삭풍 불어 된서리 내린 삭갈이 논
맨발 뛴 14살 자식 통곡 소리
수야 마을 소 침쟁이 모셔 온들 소용없네
논밭은 하늘 바라보는 천수답
6.25.사변 국토는 쑥밭 되고
가장으로 살기 위해 몸부림치다
달구지에 척추 부서진 몸 어이할꼬
가난이 불효던가 병원 갈
생각조차 못 하였네
백약이 소용없고 2년간 고생하다
59세 떠나가신 아버지
어머니 혼자되고
어린것이 가장되고
어린 학도병 형님
장남으로 울고만 있었네
--「떠나가신 날」 전문
박순호 시인은 먼저 아버지가 “떠나가신 날”에 대한 심정을 재생하고 있는데 마지막 숨 몰아쉬는 장면이나 “맨발 뛴 14살 자식 통곡 소리”라는 상황 설정에서부터 “가난이 불효던가 병원 갈/ 생각조차 못 하였네/ 백약이 소용없고 2년간 고생하다/ 59세 떠나가신 아버지”의 한많은 생애를 돌아보면서 무엇보다도 이제는 혼자된 어머니에 대한 연민(憐憫)의 정감이 넘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장남인 형님이 애통해하는데 그 형님(박순허)도 중학교 과정 3학년때 학도병으로 지원하여 대구 팔공산 전투에서 부상을 당하고 3급 상이용사로 살아온 참전용사였지만 전쟁 후유증으로 불혹에 돌아가신 형님, 충효(忠孝)를 겸비한 가족의 일원이 아버지 떠나가신 후의 애한(哀恨)이 잘 묘사되어 있는 것이다.
봄바람 살랑이고 새록새록 잠든 아기
어머니 입가 미소 짓고
더우면 더울세라 추우면 추울세라
온몸으로 감싸주고
눈비에 병날세라 근심 걱정 마다 않고
자식 위해 살아온 어머니
집 떠난 자식 위에
장독대 정화수 놓고 기도하는 마음
어찌 알리요.
어린 자식 부모 되어 찾아가니
반기던 그 모습 어디 가고
빈 마당 눈 덮인 장독대만 남아있네
소리 내어 불러도 아무런 대답 없고
양지바른 산소 앞에 흐느끼다 일어서니
하얀 머리 할미꽃 허리 굽어 웃고 있다
--「어머니」 전문
다음은 “어머니”에 대한 효성의 어조가 구슬프게 들려온다. 우선 그는 “소리 내어 불러도 아무런 대답 없고/ 양지바른 산소 앞에 흐느끼다 일어서니/ 하얀 머리 할미꽃 허리 굽어 웃고 있다”는 결론에서 이해할 수 있듯이 “자식 위해 살아온 어머니”의 자식 사랑을 이제사 “어린 자식 부모 되어 찾아가니/ 반기던 그 모습 어디 가고 / 빈 마당 눈 덮인 장독대만 남아있네”라는 통탄(痛嘆)의 메시지만 그의 뇌리에 엄습(掩襲)하고 있어서 우리들 모두가 공감하는 사모곡(思母曲)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작품 「그리운 어머니-어머니 제삿날」 중에서도 “황토밭 사과나무 아름답게 꽃 피는/ 음력 사월 열이레 기일이 돌아온다./ 안개비 내리고 창가 흐르는 물방울 / 하늘에 계시는 어머니 눈물 같으리”라는 어조로 “이 삼 년간 힘든 세월 백약이 소용없고/ 한세상 보낸 80년 하늘나라 가신 엄마”에 대한 갸륵한 효성을 이해하게 된다.
이 밖에도 자신의 아픔, 또는 “당신”의 고통에 대해도 많은 애정의 어조가 있지만 특히 “산수가 훌쩍 넘게까지 말없이 옆에 있어 주는 집사람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따스한 말 이제 지면으로 해 봅니다 앞으로 사는 날까지 당신의 손을 꼭 잡고 가겠습니다/ 울타리가 되어주는 아들 며느리 딸과 사위, 귀여운 손녀 손자까지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늘 기원하고 있음/ 알아주기 바랍니다.(「고마움을 전하면서」 중에서)”라던 “당신”도 지금은 “봉창 없는 삼베옷 한 벌 갈아입고/ 동전 한 잎 입에 물고 황천길은 어디던가/ 머나먼 북망산천 가는 길은 어디던가 (「초혼(招魂)」 중에서)”라는 애절한 정감의 메시지만 분출하고 있는 것이다.
4. 고향 서정과 그리움의 진원지
박순호 시인은 자신의 사유에서 최대한 동원시킬 수 있는 추억의 대상은 일일이 소환(召喚)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진솔하게 적시되고 있어서 누구나 아련한 향수에 젖어보는 회상의 시법에서 공유하는 메시지를 읽게 한다.
그는 먼저 고향하면 “그립다// 생각난다// 보고 싶다// 가고 싶다(「고향 생각」 중에서)”는 간단명료한 어조로 자신의 진솔한 심정을 표출하고 있는데 이는 고향이 어쩌면 나의 생명성이 발원한 부모들의 생거지(生居地)이며 내가 이 세상을 출발한 모태(母胎)인 고향을 잊을 수가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는 작품 「태어난 곳」 중에서도 “앞산 아래 냇물 구비 흐르고/ 오순도순 살아가는 정겨운 마을--중략--그리운 고향마을 왔건만/ 보고 싶은 사람들 보이지 않는다”는 향수에 대한 이미지는 바로 그리움의 대상으로써 그의 심안(心眼)에서 언제나 아른거리고 있어서 옛시에 말하기를 “산천은 의구(依舊)하되 인걸(人傑)은 간데 없네”라는 시적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하늘은 그대로인데
옛 친구 보이지 않고 혼자 서있네
산과 들은 그대로인데
흐르는 개천물 보이지 않네
마을 집은 그대로인데
닭울음, 개짖는 소리 들리지 않네
밭가는 얼룩소 어디로 가고
송아지 울음소리 들리지 않네
오일 장터 할머니 막걸리 선술집
젓가락 장단 들리지 않네
눈감고 생각하니 모두가 옛날이네
--「고향」 전문
어느 날 떠났다가 나그네로 찾아온 고향, 어찌보면 허망하기도 하고 인생무상까지도 연결된다. 이러한 향수나 추억은 자신의 인생을 관조하면서 한편으로는 성찰의 개념까지도 변전(變轉)하게 한다. 고향의 모든 추억이나 애환(哀歡)의 재생은 곧 존재에 대한 성찰이며 현실적인 화해의 해법으로 가치관을 정리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황량한 고향 “하늘은 그대로인데/ 옛 친구 보이지 않고 혼자 서있네”라는 탄식의 어조는 모두 “옛날”이라는 희노애락(喜怒哀樂)의 원천(源泉)에서 고적(孤寂)한 객(客)으로서의 회한(悔恨)을 되새기고 있어서 우리 모두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의 공유된 인식을 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고향은 경상북도 청도의 신도리라는 곳이다. 새마을 개량, 산림녹화 등으로 보리고개도 없어져서 살기 좋은 마을, 그 옛날의 그 시절의 기억만 생생하게 가슴 깊이 각인(刻印)되어 있는데 “앞산 아래 냇물 구비 흐르고/ 오순도순 살아가는 정겨운 마을// 빨래하는 아낙네 방망이 소리--중략--돌다리 건너 산비탈 사과밭거름 주고 풀 뽑는 부모님 (「태어난 곳」 중에서)”의 정경은 자취를 감추고 영원히 찾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소풍
골짜기 능선에 넓은 죽 바위
풀 갈잎 밀어내고 전설로 앉아있네.
키 작은 선생님 전설 이야기
소풍 나온 반 친구 귀 쫑긋
큰 눈 뜨고 숨소리 죽였다.
밭일
먼동 틀 때 밭에 나가 어둑하면 돌아오고
온 식구 모여앉아 고추 된장 꽁보리밥
상추 삼에 저녁 먹고 평상 위에 누웠으니
별 총총 둥근달은 내려 보고 웃었지!
소 풀 먹임
앞산 뒷산 꽃 필 적에 벌 나비 날아들고
온갖 잡새 노래하며 춤춘다.
풀 뜯는 어미 소 송아지 뒤 따르고
소모는 아이 즐거운 콧노래 귓전에 맴돌고
모두가 추억이라네.
--「추억」 전문
누구나 고향에 대한 추억은 무궁무진하다. 박순호 시인도 주마등(走馬燈)으로 지나간 유년의 형상들이 이제는 추억으로 생성한다. 그의 추억은 대체로 농촌의 풍물이 넘치는 안온한 서정성의 보고(寶庫)에서 창출한 영원히 잊지 못할 인생 체험의 집약이다. 인생의 존재 이유로 동행한 칠정(七情-喜怒哀樂 愛惡慾)이 살아온 과거의 생활 단면으로 재생하는 이미지들이 한 편의 작품으로 창작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유년에서부터 청년 시절까지 농촌 풍광과 함께 그려낸 자연 풍경화처럼 그의 추억은 시작된다. 일단 “소풍”이라는 동심(童心)의 기억은 “골짜기 능선에 넓은 죽 바위/ 풀 갈잎 밀어내고 전설로 앉아있”으며 “밭일”이라는 제재에서는 “먼동 틀 때 밭에 나가 어둑하면 돌아오고/ 온 식구 모여앉아 고추 된장 꽁보리밥/ 상추 삼에 저녁 먹”는 낭만적인 추억과 “소 풀 먹임”에서는 “풀 뜯는 어미 소 송아지 뒤 따르고/ 소모는 아이 즐거운 콧노래 귓전에 맴”도는 그의 심중(心中)에는 이와같은 불망의 추억들이 지금도 회상의 날개를 달고 그를 시상(詩想)으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추억은 작품 「품앗이」 중에서 “초저녁달 뜨면/ 마당에 모깃불 피어놓고// 호박 얇게 썰어 넣은/ 누룽국 밤참으로 허기 채우고// 경쾌한 노랫소리/ 새끼 꼬는 손놀림이 빨라지네”라거나 「풍속」 중에서 “정월 보름 날/ 정갈한 새끼줄에/ 하얀 종이 둘러놓고// 동네 안녕과 풍년/ 기원하는 제 올리고/ 정성으로 기도한다.” 또는 「추억에서」 중에서도 “정월 보름/ 솔 갈비 쌓아 달집 태우던/ 그리움/ 아련히 떠오르고”라는 잊혀져가는 애환들이 그리움으로 형상화하고 있어서 그의 서정적 시혼(詩魂)은 공감의 영역을 확대하고 잇는 것이다.
이제 박순호 시집 『바람 숲에 살고 지고』 읽기를 마무리한다. 그는 “문학을 접하면서 삼라만상 안에 나름대로 사랑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책을 내며> 중에서)”라는 그는 문학이 제공하는 다양한 사유의 확대, 인식의 변화 등을 통해서 자연과 인간이 소통(疏通)하는 인생 황혼기에서 최대의 행운과 동행할 수 있음을 그는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바람과 숲 등 자연친화에서 사계절이 제공하는 시간성의 향훈 그리고 사친(思親)에 대한 효성과 가족애에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관조의 미학과 마지막으로 고향 서정에서 그리움의 진원지를 명민(明敏)하게 되돌아보는 시법으로 이 시집을 완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바람 부는 대로/ 구름은 따라가고// 세월 가는 대로/ 나이도 따라가고// 바람 따라 세월 따라/ 인생도 따라가네// 인생 가는 대로/ 젊음도 그리움도// 어느새/ 꿈처럼 따라가네 (「가는 인생」 전문)”라는 인생론의 관조나 성찰의 언어처럼 박순호 시인도 이제는 자연 사랑 인간 사랑이라는 인본주의(humanism)의 경지를 함유(含有)하고 있는 것이다. 시집 발간을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