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2ST Fan Fiction : B2SF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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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의 방_제22 편
w. 로시난테
"도슨트(* docent,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일정한 교육을 받은 뒤 일반 관람객들을 상대로 전시물과 작가에 대해 두루 안내하는 일) 하던 애가 갑자기 그만 두게 되서, 우선은 네가 그걸 좀 맡아 줬으면 좋겠어. 너 서양미술 전공했으니까 조금만 공부하면 어렵지 않을 거야. 이건 이번 전시회 작품 목록. "
세빈은 자신에게 갤러리의 아르바이트를 주선해 준 선배가 건낸 종이 뭉치를 받아 들었다.
"이번 기획 전시, 우리 관장님이 굉장히 신경 많이 쓰신 전시거든? 잘 좀 부탁할게. "
"네. 열심히 해볼게요. "
아르바이트생임에도 불구하고 사무실 안에 번듯한 자리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세빈은 자신의 자리에 앉아 방금 전 받아든 종이 뭉치를 읽기 시작했다.
다행히 가장 최근에 들었던 수업인 현대 미술과 관련된 기획 전시여서 작품 해설을 읽는 것에 막힘이 없었다.
갤러리에 출근해 자신의 집무실로 들어가던 윤경은 사무실의 가장 입구쪽 자리에 앉아 무언가를 집중해서 보고있는 사람을 발견하곤 걸음을 멈췄다.
"누구? "
"아. 제 대학 후배인데, 이번 기획 전시 도슨트 담당하기로 한 친구입니다. 세빈아, 인사드려. 우리 관장님이셔. "
"안녕하세요. 한세빈이라고 합니다. "
윤경은 제게 꾸벅 인사를 하는 세빈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얼마 전에 우리 갤러리 자선행사 왔었죠? 그때 본 것 같은데.. "
"아. 기억하고 계셨네요! "
"수아랑 같이 왔었죠? "
"네. 맞아요. "
행사의 주최자였으니 그 날 최소 백 명의 손님은 응대했을텐데 잠깐 스치듯 인사를 한 저를 기억하고 있는 윤경에 세빈은 내심 감탄했다.
"그 날 보니까 우리 두준이랑도 아는 사이인 것 같던데. "
"수아랑 같이 몇 번 뵌 적 있어요. "
"아. 그래요? 수아랑 많이 친한가보네. "
"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친구인데, 지금은 제일 친한 친구에요. "
"그렇구나. 이것도 우연인데 앞으로 잘 해봐요, 우리. "
세빈은 윤경이 먼저 내민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주름 하나 없이 팽팽한 손과 잘 다듬어진 손톱, 과하지 않은, 그렇지만 충분히 고급스러운 팔찌며 반지가 최상위 클래스는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
"세빈이 너 윤두준 씨랑 아는 사이야? "
"친한 건 아니에요. 제 친구가 그 분이랑 어릴 때부터 친한 사이여서 인사 몇 번 나누고 밥 한 번 먹은 게 전부에요. "
"그 분, 우리 갤러리 직원들 사이에서 완전 핫한 인물인데. "
"아. 정말요? "
"응. 관장님이 금이야 옥이야 하는 막내 아드님이시잖아. 관장님 집무실 책상에 그 분 사진도 놓여있어. "
"에. 다 큰 아들인데요? "
"엄청 극성이셔. 다른 데서는 되게 쿨하신데, 자기 아들한테는 완전 꼼짝 못하시더라. 하긴, 나 같아도 내 아들이 그렇게 잘났으면 쿨한 엄마는 못될 것 같기도 하고. "
선배의 말에 시현이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
지난 번 행사에서 만났던 두준이 잔뜩 피곤한 얼굴로 목을 이리저리 꺾던 것이 조금은 이해가 됐다.
요섭은 모니터를 들여다 보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지난 학기에 이어 이번 학기에도 미술 관련 교양 과목을 신청했는데, 교양 필수 과목이어서 다른 친구들과 함께 들었던 지난 학기와 달리, 이번엔 일반 교양 강좌여서 미술에 관심이 있는 요섭 혼자 독강을 하는 수업이었다.
'현대 추상 미술과 관련된 전시회 관람 후 감상문 쓰기' 라는 제목의 과제는 중간 고사를 대체하는 중요한 과제였다.
독강을 하는 수업이고, 조별 과제가 아닌 개인 과제이니 혼자 전시회를 가야한다는 사실은 지극히 당연했는데, 문제는 해당 전시회의 주최 미술관이었다.
요섭이 포털 사이트를 통해 국내의 여러 미술관 사이트를 검색해 본 결과, 현재 자신이 갈 수 있는 가장 좋은 현대 미술 전시회는 Y 갤러리에서 주최하는 것이었다.
다른 미술관의 상설전도 있었지만, 이번 Y 갤러리 주최의 전시회가 우리나라 미술사상 가장 많은 현대 미술 작품을 전시하는 것이라며 매스컴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기도 해서 대부분의 학생들이 이 전시회를 갈 것으로 예상됐다.
그렇기 때문에 요섭으로서도 굳이 이 전시회가 아닌 다른 전시회를 다녀오는 튀는 행동을 해서 점수에 좋은 영향을 미칠 리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다만, 혹시라도 전시회에서 두준의 어머니나 그녀의 수행 비서와 마주치면 어쩌나, 하는 노파심이 들었다.
"주말에는 직원들도 출근 안 하겠지...? "
대학생인 저로서는 주말보다 평일에 가는 것이 한산한 분위기에서 작품을 감상하기에 좋았지만, 왠지 갤러리 직원들도 주말에는 근무를 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토요
일 오전에 냉큼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음은 피트 몬드리안의 만년의 대표작인 '브로드웨이 부기 우기(Broadway Boogie-Woogie)입니다. 2차 세계대전에 불안을 느낀 몬드리안은 1940년에 미국 뉴욕으로 이주했는데, 그의 나이 68세였습니다. 몬드리안은 뉴욕의 자유롭고 역동적인 분위기와 반듯하게 직각으로 구획된 거리, 하늘 높이 치솟은 마천루로 이루어진 도시 경관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브로드웨이 부기 우기'는 그가 뉴욕의 음악과 무용에 영감을 얻어 그린 그림입니다. 제목의 '브로드웨이'는 많은 분들이 아시는 것처럼 뮤지컬로 유명한, 뉴욕의 대표 거리 이름이구요, '부기 우기'는 1920년대 후반 미국 남부 흑인 피아니스트들이 오른손으로 자유롭게 연주하는 애드리브를 의미합니다. 1930년대 이후 스윙재즈가 인기를 얻으면서 백인 밴드가 부기우기를 연주해 널리 유행한 이후로 상업성을 띤 대중음악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전의 몬드리안의 추상화들이 검은 선을 이용해 구획을 구분했던 것과 달리 이 작품은 검은 선은 사라지고 밝은 색으로 채색한 사각형들을 여러 개 이어 붙인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점이 특이합니다. "
요섭은 작품을 설명하는 도슨트의 말을 중간중간 메모하며 작품을 감상했다.
단정한 검정색 투 피스 정장에 컬이 굵은 갈색 웨이브 머리를 차분하게 늘어뜨린 도슨트는 목소리 마저도 안정적이고 발음도 정확한 편이어서 마치 아나운서나 성우가 해설을 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게다가 손에 들고 있는 태블릿 pc를 이용해 몬드리안의 이전 작품들을 보여주기도 해 요섭 같은 초심자로서는 말로만 듣는 것보다 훨씬 이해가 쉬웠다.
요섭은 도슨트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거나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는데, 그럴 때면 상대방 역시 가벼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디야? 」
「무슨 과젠대? 오래 걸려? 」
「데리러 갈까? 」
「통화 가능해? 」
「나 심심해ㅠㅠ」
토요일이면 으레 정오 무렵이 되어야 일어나는 두준인지라 일부러 아침 일찍 전시회를 보러 왔는데, 무슨 바람이 분 건지 아침 9시부터 제게 집으로 오라는 두준의 전화에 '과제 때문에 오전에 외출을 해야한다. '고 했더니 전시회를 보는 내내 메신저로 저를 들들 볶는 두준이다.
생각 같아서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관람이 끝날 때까지 무시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도슨트의 해설을 녹음하면서 메모도 휴대폰으로 하는 중이어서 두준이 보내는 메시지를 고스란히 읽을 수 밖에 없었다.
「여기서 통화 못해. 나가서 전화할게. 」
「어딘데 통화 못해? 극장? 」
메시지를 보내기가 무섭게 답장이 온다.
두준과 메시지를 주고 받느라 해설을 조금 놓친 요섭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서양미술의 이해 과제중. 다 보고 전화할테니 메시지 그만 보내. 」라고 메시지를 보낸 뒤 메신저 어플의 알림을 꺼버렸다.
40여 분의 도슨트 프로그램이 끝난 후 요섭은 해설을 듣지 않은 다른 작품들도 유심히 관람했다.
"혹시 대학생이세요? "
"네? 아... 네. "
"어쩐지. 아까 해설 들으실 때도 되게 집중해서 들으시더니 지금도 그러신 것 같아서요. "
아까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도슨트가 곁으로 다가와 제게 말을 걸었다.
도슨트의 말에 요섭은 멋쩍은듯 웃었다.
"과제가 뭔지 물어봐도 될까요? "
"현대 추상미술과 관련된 전시회 관람하고 감상문 쓰는 거에요. 중간고사 대체 레포트라 중요해서 저도 모르게 집중했나봐요. "
"미술학도세요? "
"아니요. 교양 강의요. "
"남학생이 주말에 혼자 미술관에 온 게 신기해서 유심히 봤는데, 교양 강의도 들으신다니까 더 신기하네요. "
"하하. 그냥 좀 관심이 있어서요. "
"레포트 쓰실 거면 아까 보셨던 <브로드웨이 부기우기>에 대해 다루시는 거 추천할게요. 몬드리안의 대표작인 <빨강, 파랑, 노랑의 구성> 아시죠? 아까 보여드리기도 했는데."
"네. 되게 유명한 그림이잖아요. "
"몬드리안의 '구성' 연작 중에 몬드리안이 파리에서부터 그리기 시작해서 1942년에 뉴욕에서 완성한 작품이 있어요. 둘 다 뉴욕에서 그린 작품이고 적은 수의 선으로 캔버스를 분할했던 이전과 달리 많은 선들로 캔버스 전체를 작은 사각형들로 분할했다는 점이 비슷하긴 한데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검은 선을 이용해 공간을 구분했다는 점에서 <브로드웨이 부기우기>랑은 확실히 차이가 있어요. 이외에도 몬드리안의 작품 중에는 비슷한 느낌의, 빨강, 파랑, 노랑의 원색과 선과 면을 이용한 구성주의적인 작품들을 많으니까 이런 것들을 비교해 보시면 어떨까요? "
도슨트의 말에 요섭의 얼굴이 밝아졌다.
"어떻게 써야할지 막막했는데,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해주셨어요! 감사합니다! "
"뭘요. 제가 이번 주부터 도슨트 처음 하는 건데, 아까 제 설명 잘 들어주셔서 무지 감사했거든요. "
상대가 눈을 찡긋하며 웃자 요섭도 상대를 따라 웃었다.
"고맙습니다. 세빈 씨. "
요섭은 도슨트의 재킷에 부착된 네임태그에 적힌 이름을 불렀다.
세빈은 제 이름을 불러준 요섭에게 작게 목례를 하고는 다른 관람객들을 향해 걸어갔다.
요섭은 세빈의 추천대로 <브로드웨이 부기우기>를 좀 더 유심히 살펴본 후 전시실을 빠져나왔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
[목 말라서 깼는데 물 마시고 나니까 잠이 안 오더라고. 별로 피곤하지도 않고. 어디야? 과제 다 했어? ]
[응. 관람은 끝났으니까 집에 가서 레포트만 작성하면 돼. ]
[어디냐니까? 아까부터 물어보는데 왜 대답을 안해? ]
[어딘지 알면, 뭐. 데리러 오게? ]
[데리러 갈까? 현대 추상미술이랑 관련된 거면, 국립현대미술관? 아니면, 너 혹시 Y 갤러리 갔어? ]
[내 과제 주제 어떻게 알았어? ]
[네가 내 테스크탑에 강의 계획서 다운받아 놨잖아, 바보야. 포털 검색해보니까 지금 추상미술이랑 관련된 전시회 두 군데 있던데, 어디로 갔어? ]
[Y 갤러리... ]
[그래? 그래. 기사 보니까 거기서 하는 게 역대 최다 작품 전시라더라. ]
[화난 거 아니지? ]
[내가 왜 화를 내. 진짜 데리러 갈까? 간만에 밖에서 데이트 할래? ]
[아직 점심 안 먹었지? ]
[응. 나 방금 전에 씻어서 옷만 입으면 되거든? 그 근처에 아무 것도 없으니까 그 안에 있는 카페에서 조금만 기다려. 한남동에 괜찮은 피자집 있어. 거기 가자. ]
요섭은 주위를 둘러봤다.
제 예상대로 안내 데스크와 매표소, 아까 보았던 도슨트를 제외하고는 갤러리의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없었다. 게다가 주말이라 관람객도 많아서 그 많은 인파 속에서 누군가 자신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섭은 전시실 출구 앞 소파에 앉아있던 몸을 일으켰다.
[얼른 와. 한 시간 내로 안 오면 갈 거야. ]
[예, 마님. 금방 달려가겠습니다요. ]
두준의 농담에 풉, 하고 웃음이 터졌다.
조금 걷더라도 번화가까지 나가서 기다릴걸. 아니다. 미리 약속 장소에 가 있을걸. 이것도 아니다. 차라리 밖에서 데이트 같은 건 하지 말고 곧장 집으로 갈걸.
요섭은 카페테리아에서 주문한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심과 동시에 자신의 선택을 후회해야 했다.
"오래간만이네요. 그쵸? "
"네.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
"염려해 준 덕분에요. 그런데 갤러리에는 어쩐 일로? "
"교양 수업 과제 때문에 전시회를 봐야해서요. "
'이사실'이라는 문패가 달려있는 윤경의 집무실은 지난 번 갔던 호텔 펜트하우스 만큼은 아니어도 그에 못지 않게 고급스럽고 넓었다.
방의 한쪽 면이 유리로 되어있는 방은 갤러리 건물이 주변 건물들보다 지대가 높은 언덕 위에 위치한 탓에 탁 트인 시야와 저 멀리로 한강까지 보이는 훌륭한 조망권을 갖추고 있었다.
요섭은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등지고 앉은 터라 뒷통수며 등이 점점 뜨거워지는 느낌이 들어 더욱 긴장이 됐다.
제대로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곁눈질로 힐끔힐끔 쳐다본 윤경은 언제나와 같이 기품이 있고 우아했다.
눈매가 길게 찢어지고 턱선이 발달한 두준과 달리 크고 쌍꺼풀이 진 눈과 전형적인 계란형의 얼굴을 가진 윤경은 서구적인 외모여서 두준과는 외향적으로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동 양식이나 취향 같은 것은 두준이 어머니를 꼭 빼닮았구나, 싶었다.
가령,
"푸흐..! 아, 죄송합니다. "
"무슨 재미있는 생각을 했나봐요? "
"형이 커피 취향은 어머니를 닮은 것 같아서요. 두준이 형도 이렇게 휘핑 크림을 높이 쌓아서 먹던데. "
한두 모금이면 마실 수 있는 작은 잔을 전부 덮은 걸로도 모자라서 마치 고봉밥처럼 휘핑크림이 높게 쌓여있는 윤경의 에스프레소 잔을 본 요섭이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다른 단 건 별로 안 좋아하는데, 에스프레소 위에 올리는 휘핑 크림은 좋더라구요. 달콤쌉쌀해서. "
"근데 라떼나 다른 음료에 올라가는 휘핑크림은 싫어하시죠? "
"두준이도 그런가요? "
"네. 예전에 한 번은 제가 마시던 카페 모카를 빼앗아서 마시더니 잔뜩 인상을 찌푸리더라구요. 크림이 느끼하다나? "
"나랑 똑같네. "
"이사님 아들이니까요. "
요섭의 말에 윤경이 빙긋 웃었다.
긍정적인 윤경의 반응에 용기가 생긴 요섭은 제가 알고 있는 두준의 취향에 대해 마구 이야기를 쏟아냈다.
어떤 부분에서는 윤경이 맞장구를 쳐주기도 하고, 또 어떤 부분에서는 자신이 모르는 두준의 모습을 이야기하는 요섭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그러나 윤경에게 가장 인상 깊게 다가온 것은 요섭의 표정이었다.
두준의 이야기를 하는 내내 미소를 짓는 요섭의 얼굴이 마치 봄 햇살처럼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Rrrr
[나와. 나 지금 입구 앞이야. ]
[벌써? ]
[신호가 완전 예술이었어. ]
[음... ]
[음...? 왜? ]
[나 지금 이사님이랑 같이 있는데, 들어와서 인사 드리고 가는 게 어때? ]
[이사님이 누구야. 우리 엄마? ]
[응. ]
[엄마랑 같이 있다고? 지금? ]
[그렇대도. ]
[왜? ]
[로비에서 우연히 마주쳤어. 이사님이 카페테리아보다 더 맛있는 커피 주셨다? ]
마치 '나 지금 기광이랑 밥 먹고 있어. '라고 말하는 것처럼 평온한 요섭의 목소리에 두준이 관자놀이를 긁적이면서 차를 주차장 방향으로 몰았다.
[10분만 기다려. 주차하고 갈게. ]
[응! ]
"오늘 형이랑 같이 점심을 먹기로 했는데, 기왕 여기까지 온 김에 인사 드리고 가면 좋을 것 같아서요. 요즘 형이 회사 때문에 많이 바쁜 것 같길래 이사님도 자주 못 보실 것
같아서.. 아.. 혹시 저랑 형이랑 같이 있는 모습을 다른 사람들이 보면 곤란할까요...? "
이 갤러리는 창업주인 두준의 할아버지가 20여 년을 공들여 수집한 작품들로 시작해 두준의 아버지가 직접 건축 과정에 참여해 만들어진, 윤씨 집안 식구들에게 대단히 의미있는 곳이었다.
두준이 세 살 되던 해에 개관을 했는데, 이제 막 뛰고 걷던 어린 두준도 테이프 커팅식에 참석했었고, 초등학생 시절 내내 갤러리에서는 미술 수업을, 10분 거리에 위치한 아트홀에서는 악기 수업을 받았던, 두준 자신에게도 의미 있는 장소였다.
그러나 고등학생이 되고, 수험 공부와 바깥 세상에 더 관심을 갖게 되면서 두준의 기억에서 점점 잊혀지기 시작했고, 성인이 된 후로는 아예 발길을 끊게 된 곳이기도 했다.
스무 살 이후로 두준이 갤러리를 찾은 것은 딱 두 번 있었는데, 한 번은 작년 겨울, 수능이 끝난 고3 학생들의 체험학습 지도교사로 온 것이었고, 다른 한 번은 몇 달 전 자선 행사에 참여한 것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 방문인 오늘까지.
우연인지 필연인지, 이 세 번의 방문이 모두 요섭과 관련돼 있었다.
갑작스러운 두준의 방문 소식에 눈이 동그래진 윤경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고개를 저었다.
첫 만남에서 두준과 그룹 계열사에 동행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해 요섭의 속을 긁었던 것은 자신이었는데, Y 그룹의 상징과도 같은, 게다가 제 직장이기도 한 이곳에 두준과 요섭이 함께하도록 허락한 것도 자신이라니.
윤경은 제 스스로가 모순되다 느꼈지만, 지난 자선 행사 이후로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제 앞에 코빼기도 비추지 않는 두준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요섭이 다행이라는 듯 작게 한숨을 내쉬는 것을 본 윤경은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 자신의 책상으로 가 서랍을 열었다.
커피를 마시느라 살짝 지워진 립스틱을 다시 바르고, 손목과 귀 뒤에 향수를 뿌렸다.
책상 옆에 세워진 전신 거울을 한 번 보고는 입고 있던 와인색의 트렌치 코트를 벗고 행거에 예비로 걸려있던 재킷들을 손으로 훑다가 가장 무난한 흰색 재킷을 골라 입었다.
마치 데이트를 앞두고 설레는 여인처럼 보이는 윤경의 일련의 행동을 본 요섭이 윤경에게 보이지 않게 고개를 숙이고 웃었다.
그래 놓고는 두준이 오기 직전에 다시 자리로 돌아와 마치 무슨 일이 있었냐는듯 여유 있는 표정으로 소파에 앉는 것을 보자 참지 못하고 웃음이 터졌다.
"뭐가 그렇게 재밌어? "
때마침 두준이 뚱한 얼굴로 이사실 안으로 들어왔다.
두준의 옷차림을 본 요섭은 또 다시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옷이 그게 뭐니? "
"이게 요즘 젊은 애들 사이에서 유행이래. "
며칠 전 저녁에 만나 식사를 하다가 요섭이 무심코 '요즘은 정장만 입어서 진짜 아저씨 같아. '라고 했던 말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던 모양이다.
군데군데 헤지고 올이 나간 건 물론이고, 오른쪽 무릎은 아예 뻥 뚫리기까지 한 디스트로이드 진은 제가 아는 두준의 옷장에서는 결코 나올 수 없는 옷이었다.
윤경의 타박에 민망해진 두준이 괜히 툴툴대며 요섭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소파에 앉자 아예 무릎뼈가 도드라진 것을 본 요섭이 손가락으로 두준의 무릎을 콕콕 찌르며 '옷이 이게 뭐야. '하고 속삭였다.
그러자 두준 역시 작은 목소리로 '네가 자꾸 아저씨 같다고 해서. '라고 대답했다.
"엄만 왜 토요일인데도 출근했어? "
"엄마 보통 주말에 하루, 평일에 하루 쉬거든? "
"아. 그래? "
"엄마가 출근을 하는지, 퇴근을 하는지, 전시회를 여는지, 해외를 나가는지, 관심도 없지? "
"그거 다 일일이 챙길 거면 내가 엄마 비서하지, 뭐하러 비싼 월급 주고 사람을 써? "
"월급 많이 주면 엄마 따라다니긴 할래? "
"아아니. "
장난스럽게 말꼬리를 늘이며 웃는 모습이 낯설만큼 오래간만이다.
윤경은 괜시리 머리카락을 귀 뒤로 한 번 넘겼다.
손가락에 두준이 오기 전 바꿔 끼웠던 진주 귀걸이가 느껴졌다.
어려서부터 제가 색이나 무늬가 화려한 옷을 입거나 알이 크고 번쩍이는 액세서리를 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던 두준이다.
아까까지 입고 있던 와인색의 트렌치 코트는 두준이 좋아하지 않을 옷이었기에 급한 대로 두준이 좋아할 만한 심플한 재킷으로 갈아입고, 귀걸이와 목걸이도 그에 어울리는 것으로 바꿨다.
이제 겨우 두 번 만난, '아들의 남자 애인'이라는 다소 불편한 관계인 요섭의 앞에서 그렇게 분주한 모습을 보였던 것은 순전히 두준의 마음에 들고 싶은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두준은 평소의 두준이라면 질색을 했을 부러 남루하게 만든 찢어진 청바지에 마치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요섭이 입은 것과 비슷한 체크 무늬 셔츠를 입었다.
아마 제가 그랬던 것처럼, 제 취향을 포기하고서라도 요섭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마음이었으리라.
"맞다. 형 커피 마실 때 휘핑크림 이렇게 쌓아 올려서 마시잖아. 그거 이사님 닮았더라? "
"어려서부터 엄마가 그렇게 먹는 걸 보고 배워서 그래. "
"나는 이사님만 뵀을 때는 형이랑 하나도 안 닮은 줄 알았는데, 이렇게 같이 있는 거 보니까 좀 닮은 것 같기도 해. "
"뭐가 닮았는데? "
"웃을 때 닮았어. 살짝 미소만 지어도 입꼬리가 이렇게 샥, 올라가는 거. "
"지금 그거 흉내라고 내는 거야? 내가 언제 이렇게 웃었냐? "
요섭이 손가락으로 제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올리자 두준이 요섭이 한 것보다 과장되게 손가락으로 입꼬리를 쭉 끌어올리며 요섭을 놀렸다.
평소처럼 제게 장난을 거는 두준의 손가락을 콱 깨물려던 요섭이 맞은 편에 앉은 윤경의 눈치를 한 번 보고는 '내가 언제 그렇게 오버했다고 그르냐... '하며 말꼬리를 흐렸다.
"얘 지금 엄마 앞이라고 되게 내숭 떤다. "
윤경이 두 사람의 대화에 소외감이 들려는 순간, 두준이 먼저 윤경에게 말을 걸었다.
제게 먼저 말을, 그것도 이렇게 가볍고 유쾌한 말을 건내는 두준이 낯설어서 윤경이 입꼬리만 살짝 끌어당겨 웃었다.
윤경이 웃자 요섭이 '저렇게! 이사님 웃으실 때 형이랑 입매 완전 똑같아. '라고 말하며 분위기를 띄웠다.
그 후로 한 십여 분 서로의 안부를 주고 받던 두준이 슬슬 일어날 기미를 보였다.
마음 같아서는 함께 점심 식사도 하고, 두준과 좀 더 시간을 보내고 싶은 윤경이지만 혹시 제가 그러면 두준이 싫어할까 부러 제가 약속이 있는 것처럼 이만 일어나라고 말을 꺼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두준의 반응이 섭섭하긴 하지만, 그래도 오늘 정도면 두준과 저의 관계는 매우 좋은 편에 속했으니 오늘은 더는 욕심 내지 않기로 한다.
"다음에 밥이나 같이 먹어요. "
이사실을 나서기 전 내뱉은 두준의 말에 윤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게 허리를 90도로 접어 인사하는 요섭에게도 가볍게 인사를 하고 두 사람이 나간 후에도 한참을 배웅하던 출입문 근처에 서있었다.
오후에 있을 도슨트 프로그램까지 남는 시간에 선배의 서류 작업을 도와주기로 한 세빈은 파티션 너머로 이사실의 문을 계속 힐끔거렸다.
자신의 작품 설명을 듣고, 설명이 끝난 후에 가볍게 대화까지 나눴던 앳된 대학생이 관람실에서 사라진 지 30분도 채 되지 않아 직원 전용 공간에, 그것도 무려 윤경을 따라 들어오는 것을 보고 주위 사람들에게 '누군지 아느냐. '고 물었지만 다들 처음 보는 사람이라며 고개를 저었었다.
그래서 그저 '아. 이사님이 개인적으로 아시는 분이구나. 신기하네. '라고만 생각하고 다시 서류로 시선을 돌렸더랬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사무실에 모습을 드러낸 두준에게는 세빈 뿐 아니라 모든 직원들의 시선이 쏠렸다.
저에게 몰린 시선이 민망했는지 조금도 시선을 돌리지 않고 정면만 보고 걸어 비서가 열어주는 문 안으로 쑥 들어가 버린 두준이었다.
처음에는 갑작스러운 두준의 등장에 무슨 일일까 궁금해 하기도 하고, 두준의 외모나 스펙을 놓고 이리저리 수다를 떨기도 하던 직원들의 흥미가 조금씩 떨어져 갈 때였다.
"아야! "
이사실 문을 열고 다시 모습을 드러낸 두준은 이번에는 먼저 들어갔던 요섭과 함께였다.
자신들의 뒤로 이사실 문이 닫히고 윤경의 모습이 사라지자 요섭의 이마에 작게 꿀밤을 놓는 두준이다.
요섭은 이마를 쓱 문지르며 무어라 작게 궁시렁거렸다.
입을 오물거리며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것을 유심히 보더니 이내 말뜻을 이해했는지 피식 웃으며 뒷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는 빠른 걸음으로 먼저 사무실을 빠져가가는 두준이었다.
요섭은 두준이 빠른 걸음으로 제 시야에서 사라지자 잰걸음으로 두준의 뒤를 따라갔다.
두 사람이 사라지자 직원들은 다시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세빈이 너 윤두준 씨랑 아는 사이라고 하지 않았어? "
"네? 아.. 네.. 못 보셨나봐요. "
"아쉽다. 오늘은 목소리 한 번 들어보나 했는데. "
"목소리요...? "
"응. 자주 오지도 않지만 지난 번에 왔을 때도 입 꾹 다물고 이사실 들어갔었거든. 나와서도 직원들이랑 눈 마주치니까 목례만 하고 갔어. 원래 말수가 적으신가봐? "
"듣고 보니 그런 것 같아요. "
"지난 번 경매 행사 때 야근했던 사람들 말 들어보니까 그 날도 말은 거의 안하고 이사님 옆에 묵묵히 서계셨다더라. "
"말하는 것보단 듣는 걸 더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
"성격이 원래 무뚝뚝하구나. "
"근데 아까 그 학생 머리 쓰다듬어주는 거 봤어? 되게 자상해 보이던데. "
"그치! 막 그 학생이 투덜대는 거 보고 웃는데, 되게 귀여워하는 표정이었어. "
"이사님도 아시고 윤두준 씨도 아는 사람이면, 누구지? 친척인가? "
"그 집에 저렇게 큰 조카 없을걸. 제일 큰 손녀가 올해 고등학생일텐데. "
"누군지 궁금하다. 실장님께 여쭤 볼까? "
"아서라. 괜히 입 잘못 놀려서 찍히지 말고. "'
갤러리에는 관람 시간 이외의 시간이나 휴관일에 매스컴을 통해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재계 인사들이나 미술계 유명인들이 자주 방문했다. 드물긴 해도 연예인들이 방문할 때도 있었다. 이런 사람들은 작품을 감상하기도 하지만 구입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갤러리에 중요한 고객들이었다.
때문에 갤러리 직원들은 자신들이 보고 들은 그들에 대한 어떠한 것도 외부로 유출하지 못하도록 교육을 받는다.
한시적으로 근무를 하는 세빈조차 출근 첫 날에 가장 강력하게 요구받았던 것이 입단속을 잘하는 것이었다.
회사 내에서의 일을 밖에서 얘기할 수 없기 때문에 직원들은 삼삼오오 모였다 하면 자신들이 보고 들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 중에서도 윤경과 관련된 것들은 매일 화제거리가 되었다.
윤경의 패션, 바른 립스틱과 향수, 먹은 것, 마신 것, 만난 사람. 그러나 단연 최고의 인기는 그녀의 가족과 관련된 것이었다.
세빈은 두준이 떠난 후에도 한참을 티타임용 테이블에 모여 앉아 두준에 대해 떠드는 직원들을 보며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배님. 저 오후 프로그램 준비 때문에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말씀 나누세요. "
"그래. 수고해~ "
사무실을 나온 세빈은 관람실로 걸음을 옮겼다.
<브로드웨이 부기우기> 앞에 서서 저와 나란히 서서 이야기를 나누던 요섭을 떠올려 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무심코 보았던 요섭의 왼손 약지에 끼워진 반지가 처음 만났던 날부터 내내 두준의 손에 끼워져 있던 것과 닮았다는 사실을.
요섭은 제 귓가에 대고 일부러 호흡을 거칠게 내뱉는 두준의 행동에 웃음이 나왔다.
점심을 먹고 간만에 바람을 쐬자는 두준의 제안에 강변북로를 타고 교외로 나온 것까진 좋았다.
주말 오후여서 길이 막혀 남한강변을 끼고 자리한 분위기 좋은 카페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커피를 마시며 두준이 곧 가게 될 지방 출장 이야기며, 중간고사 이야기, 주중에 요섭이 엄마와 데이트를 했던 이야기 같은 일상적인 대화들을 나누다 보니 날이 완전히 저물어 근처에 유명한 고깃집에서 저녁까지 거하게 먹었더랬다.
커피는 이미 낮에 여러 잔 마셨으니 이제 집으로 돌아가려나보다, 생각했던 요섭은 저에게 낯선 길임에도 두준이 차를 모는 코스가 집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눈치챌 수 있었다.
어디 가냐는 요섭의 질문에도 실실 웃기만 할 뿐 대답이 없던 두준이 차를 멈춘 곳은 불빛이라고는 자신들이 지나왔던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에 설치된 가로등이 전부인 텅 빈 공터였다.
만약 자신이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것처럼 납치를 당한 것이라면 딱 어울릴 법한 장소였다.
두준이 왜 자신을 이런 곳으로 데리고 왔을지는 안 봐도 뻔했다.
차에서 뽀뽀라도 할라 치면 누가 볼까 질색을 하는 요섭과 달리 두준은 차 안에서 무언가 은밀한 일을 도모하고자 끊임 없이 시도하곤 했다.
당신 변태냐, 라는 제 말에도 지금처럼 능글맞게 웃으며 제 기분이 나쁘지만 않다 싶으면 입술부터 들이밀곤 하는 두준인지라 오늘도 차를 멈추자마자 안전벨트를 풀고 제 쪽으로 넘어오는 두준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런 제 반응에 용기를 얻은 두준이 아예 레버를 당겨 시트까지 뒤로 젖히고 제 몸통을 양 다리 사이에 넣고 꽉 고정시키기까지 하자 '오늘에야말로 갈 때까지 가겠구나. '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지 마. "
"왜. "
"아까 고기 많이 먹어서 배 나왔잖아. "
요섭의 티셔츠를 목까지 끌어올린 두준이 요섭의 말에 푸흐흐 웃었다.
하지 말라고 하니 더 하고 싶어지는 청개구리 심보가 발동해 마치 아기 엄마들이 아기 배에 대고 하는 것처럼 입술을 묻고 바람을 불어넣자 간지러운지 요섭이 몸을 비틀었다.
아닌 게 아니라 저녁을 거나하게 먹었더니 윗배가 아기들처럼 볼록 나온 것이 귀여웠다.
"아기 같아. "
"아기한테 이래도 되는 거야? "
"아기 같긴 해도 진짜 아기는 아니잖아. "
"그래서, 아기 아니라고 이렇게 야하게 굴어도 되는 거야? "
"급해서 그래. 급해서. 월요일에 출장 가면 당분간 못 볼 거 아니야. "
"그렇다고 차에서 이러냐?! "
"급해서 그렇대도. "
"진짜 변태 같아. "
"응. 네 서방이 좀 그렇다. "
제가 무슨 말을 해도 자체 필터링을 시키는지 제 손을 깍지껴 잡고 부드럽게 입을 맞추는 두준의 행동에 요섭이 결국 눈을 감고 입맞춤에 응했다.
몸에서 발산되는 열기와 거친 호흡으로 인해 후끈해진 실내 공기에 등으로 땀이 쏟아졌다.
요섭은 땀에 젖은 제 몸이 흔들릴 때마다 가죽 시트와 맞닿아 쩍쩍 소리를 내는 것이 부끄러워 두준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
"왜 이렇게 인상을 써. 많이 힘들어? "
"나 자세 불편해... 다리 아파. "
"네가 위로 올라갈래? "
"응.. 자기가 누워라. "
제 다리에 앉은 요섭이 몸을 몇 번 움직이자 가만히 누워있던 두준이 레버를 당겨 시트를 세웠다.
그 덕에 두준과 거의 마주보고 앉게 된 요섭이 아랫배까지 묵직하게 차오르는 느낌과 함께 눈 앞이 하얗게 번쩍이는 것을 느꼈다.
그 다음부터는 두준이 시키지 않아도 적극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등에서는 땀이 비오듯 쏟아지고 허리가 더는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뻐근해질 때가 되어서야 요섭이 몸에 힘을 빼고는 두준의 품으로 축 늘어졌다.
행여 요섭의 머리가 천장에 닿을까 손바닥으로 연신 요섭의 머리를 감쌌던 두준이 손을 내려 땀으로 범벅이 된 요섭의 등을 쓸어내렸다.
"너무 좋다. "
"나도... "
"거봐. 이렇게 좋아할 거면서 날 그렇게 변태 취급을 해? "
"변태 같은 건 맞아. 단지 내가 당신한테 물들었을 뿐이지. "
두준은 큭큭대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요섭은 후덥지근한 차 안을 환기시키기 위해 창문을 내렸다.
선선한 가을 바람과 함께 귀뚜라미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이런 외진 장소는 어떻게 아셨나? 전에도 와보셨나봐? "
"많-이 와봤지. "
"뭐야? "
"한참 올 때는 한 달에 두세 번은 왔었지. 한 번 오면 다음 날 아침에야 돌아가고. "
"... 죽을래? "
요섭이 두준을 노려보며 밤바람처럼 서늘하게 말했다.
세상에서 요섭을 놀리는 것을 제일 재미있어 하는 두준은 괜히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휘파람을 불었다.
요섭은 손바닥으로 땀으로 끈적해진 두준의 뒷목을 찰싹 소리가 나게 때렸다.
"너 자꾸 나 때리면 우리 엄마한테 이른다? "
"무..뭐! 내가 뭐!! "
"우리 엄마가 무섭긴 한가보다. 말을 다 더듬고. "
"그럼 안 무섭겠어? 그 엄청난 아우라도 모자라서 당신 어머니이시기까지 하니 무섭고 어려운 건 자연스러운거지? "
"아까 보니까 전-혀 안 그래 보이던데? "
"그럼 고개 푹 숙이고 묻는 말에 겨우 대답이나 하면서 찌질거려야겠어? "
"아-니. 잘했어. 예뻐. "
"화제 돌리지 말고, 누구랑 왔는데? 언제? 나 만나서면서도 그러고 다녔냐? "
"화나? 질투나? "
"야! "
빙글빙글 웃으며 대답을 회피하던 두준이 요섭이 소리를 빽 지르자 아예 박장대소를 하기 시작했다.
두준과 살을 맞대고 앉아 있으니 웃느라 평소보다 크게 오르락 내리락 하는 두준의 가슴이 제게 그대로 느껴졌다.
요섭은 심술난 얼굴로 두준의 가슴을 콱 깨물었다.
"여기서 10분만 더 가면 낚시터 나와. 낚시에 한창 미쳐 있을 때 현승이랑 밤 낚시하러 많이 왔었거든. "
"... 진짜? "
""응. 진짜. 궁금하면 현승이한테 물어봐. "
"흥이다! 넌 나 놀리는 재미에 살지? "
"응. 오늘은 붕어가 아니라 인어 공주를 낚았네. "
"인어 공주는 무슨. 닭살스럽게. "
"너 예쁘다고. 그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빨간 머리 여자애보다. "
"그런 말 하지마! 소름 돋아! "
요섭이 질색을 하자 두준은 애니메이션의 OST인 'Part of your world'를 흥얼거렸다.
힘을 빼고 나른하게, 마치 가사를 읊조리듯 부르는 두준의 멜로디에 요섭이 곧추 세웠던 허리를 다시 늘어뜨리고 두준의 품에 안겼다.
귓가에 울리는 두준의 목소리와 가을 밤바람의 조화에 금방이라도 잠이 쏟아질 것 같았다.
"졸려? "
"응. "
"한숨 잘래? "
"아...니. "
"왜. 한숨 자. "
"시간 아깝잖아... 모레 되면 한동안 못 볼텐데. "
"차 놓고 갈 거니까 보고 싶으면 그거 가지고 보러 와. "
"내 운전 실력을 믿어? 나도 날 못 믿겠는데. "
"그럼 택시 타고 와. "
"가면 언제 온댔지...? "
"예상은 한 달 보는데, 길어질 수도 있대. "
"두부랑 양갱은 내일 오후에 애견학교에 데리고 간다고 했어. "
"이참에 앉아, 엎드려 말고, 다른 것도 좀 배워 왔으면 좋겠다. 빵야- 하면 쓰러지는 척 하는 거나 원반 던지기 같은 거. "
"원반 던지기 하기엔 아직 너무 어리지 않나? "
"나이는 어려도 네가 하도 잘 먹여서 커졌잖아. 토이푸들이라더니 속았어. 이건 뭐, 그냥 푸들 치고도 우량아야. "
"왜. 그래도 귀엽잖아. "
"네가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는데 안 귀여우면 그게 정상이야? "
"거기서 그러는데 주인이 너무 자주 보러 오면 강아지들이 집중을 못한대. 그럼 자기도 없고 두부랑 양갱도 없고 나 무지 심심하겠다. "
"이참에 우리 엄마랑 친해져보는 건 어때? "
"장난해? "
"왜. 어차피 나한테 시집 올 건데, 시어머니랑 미리미리 친해 놓으면 좋잖아? 아까 보니까 엄마가 너 좋게 보는 거 같던데. "
"그거야 내가 자기한테 와서 인사하고 가라고 했으니까 그랬던 거지. 내가 그 얘기 안 했으면 인사 드릴 생각도 없었지? "
"오늘 엄마가 출근을 했을 거라고 생각도 안했지. "
"가만 보면 자기 엄마한테 진짜 못되게 굴어. 잘 좀 해드려. 아까 당신 오기 전에 이사님이 얼마나 설레하셨는 줄은 알아? "
"설레긴... "
"진짜야. 자기 온다는 말씀 드리니까 바로 일어나셔서 화장 고치시고 재킷이랑 액세서리도 전부 바꾸셨어. 이사님이 화려한 옷 입는 걸 별로 안 좋아하나봐? "
"응. 안 좋아하는 게 아니라 싫어해. "
"내가 보기엔 자기 오기 전에 입고 계셨던 옷이 더 예뻤는데 본인 취향보다 자기 취향에 맞추시더라고. 당신이 오늘 내 생각해서 찢어진 청바지에 체크 무늬 셔츠 입은 것처럼. "
진지한 요섭의 말에 요섭의 등을 토닥이던 두준이 움직임을 멈췄다.
"자기야. "
"응. "
"나는 처음에는 이사님이 되게 극성이시고 심하게 말하자면 당신한테 집착하는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솔직히 좀 싫었어. 지금도 막 좋은 건 아니야. "
"응.. "
"근데 오늘 보니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내가 당신의 마지막 사랑인 것처럼, 이사님께는 당신이 마지막 사랑이겠구나... "
"..... 기특하네. 그런 생각을 다 하고. "
"나는 자기랑 이사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이서하 씨랑 이사님 사이에 있었던 일 때문에 아직도 이사님을 원망하는 거라면 이제 그만 했으면 좋겠어. "
요섭은 고개를 들어 두준의 눈을 빤히 쳐다봤다.
두준도 요섭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이서하 씨랑 헤어져서 나랑 만날 수 있었던 거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이사님이 그렇게 밉지 않을 것 같은데... 내가 너무 주제 넘은 건가? "
"요섭아. "
"응. "
"네가 나보다 낫다. 내가 너였으면 우리 엄마 꼴도 보기 싫을텐데. "
"내가 또 착한 걸로는 둘째 가라면 서럽잖아. 그러니까 당신 같은 남자도 이렇게 거둬준 거지. "
"그렇긴 하지. "
"나 없는 동안 일도 열심히 배우고 이사님도 가끔 찾아뵙고, 지금보다 더 멋진 남자 되어있으면 내가 지금보다 훠어얼씬 더 많이 예뻐해줄게. "
"지금 당장 고치기는 힘들어. 그래도 네가 한 말 명심해서 노력해볼게. "
"응. 착하다. 우리 두준이. "
"여우 같은 마누라. 이런 내조법은 누구한테 배웠나 몰라. 타고난 건가? "
"음... 아마도? "
제 턱을 손으로 간질이며 베시시 웃는 요섭에 두준도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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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편 이해를 돕기 위하여.
요섭이 갤러리에서 감상한 작품. 피트 몬드리안의 <브로드웨이 부기우기, Broadway Boogie-woogie, 1942-43>, 뉴욕 근대미술관
세빈이 요섭과 나눈 대화에서 등장한, 몬드리안이 뉴욕에서 완성한 <구성 연작 10번>, 런던 테이트 갤러리 소장
마지막으로 몬드리안의 '구성' 연작 중 가장 널리 알려진 1930년의 작품. 개인 소장, 뉴욕
* 몬드리안의 '구성' 연작은 디자이너 입생로랑의 드레스에 모티브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 <브로드웨이 부기우기>를 언급한 이유는 3월 1일까지 예술의 전당에서 이 작품이 전시되기 때문입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직접 보실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서요. :)
특히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2월 24일) 오후 6시에서 8시까지는 '문화가 있는 날'로 티켓값이 반값이라는 tip 도 살포시 적어봅니다.
* 세빈의 해설은 제가 그동안 전시회에서 들었던 도슨트 프로그램을 떠올리며 최대한 비슷하게 묘사해보려고 했는데, 미술에 대한 지식이 그리 깊지 못하다보니 조금 부끄럽습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읽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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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이 무르익어가는 목요일 밤에 인사드립니다. 로시난테입니다.
이번 편은 쓰다 지우다, 쓰다가 컴퓨터가 제멋대로 꺼져서 써놓은 분량이 날아갔다가. 우여곡절이 많았던 편입니다.
전편 말미에 상황의 급전개를 예고했었는데, 어떻게 읽으셨는지 궁금합니다.
대단히 극적인 상황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제법이군. ' 정도의 평가는 받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즐겁게 읽어주세요. :)
제가 1월에 올렸던 새 연재글의 소개글을 보시고 <그 남자의 방>의 후속으로 생각하신 분들이 많았는데요.
아직 <그 남자의 방>은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습니다. 조금 늦더라도 서둘러 결말을 맺지 않을 생각입니다.
제가 조금 느리게 걷더라도, 늘 기다려주시고, 돌아오면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보람을 느끼실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저와 함께 계속 달려주세요. :)
날씨가 춥지는 않은데, 바람이 스산한 시기입니다. 모두 감기 조심하시고, 평안한 밤 되세요.
thanks to)
체리사랑 님, 멍개 님, 유나리 님, 두미 님, 바보비슷두 님, 하트 님, 건방진붕어 님, XD편애모드 님, 사랑훼이 님, 어쨋든 님,
요정님 님, 계속함께하자 님, 복사에너지 님, 비스트꼽사리 님, 벗뜨ILOVEYOU 님, 그리고 비밀댓글 달아주신 많은 분들.
p.s. <그 남자의 방>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느낌을 제게 이미지로 만들어서 보내주시기까지 했던 독자님. 고맙습니다! :)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02.19 00:19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02.19 00:34
첫댓글 헐 출장을 한달씩이나 가여..? 그동안세빈이가 뭔짓할꺼같아오.. 잘보고가요!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02.19 01:10
아 넘좋아여.. 갠적으로 제취향인 그남자의 방... 격하게 애정해요... 뭔가 큰 에피소드는 없었지만 엄청 퍼인트가 많네요...^^ 우선 저 눈에가시같은 세빈양... 한건할거같은 느낌이 스물스물... 뭐 두섭이의 사랑을 더 견고하게 해줄 촉매제 역할을 해준다면야 뭐 ... ㅎㅎ 이사님의 요섭에대한 심경의 변화가 분명 있었을거같다라는 느낌이... 정말 여우같은 며느리같앗어요 요섭이 ㅎㅎ 두준이의 한달출장이 좀걸리긴하지만 ^^ 울똑띠 요섭이는 잘 견뎌?내줄거라 믿고잇겟어요~~ 작가님~ 그남자의방 오래오래 계속 보고싶어요 진심2000%에요~~
결말이 얼마 남지 않을꺼라 생각했는데 다행이에요!!!!
요섭이의 행동에 두준이의 어머니가 저렇게 행동하다니 ㅎㅎ
점수 딴거 확실하겠죠?!!!!!!
두준이의 출장....ㅠㅠ
부디 요섭이에게 아무런일이 없기를!!!!
잘 보고갑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02.19 05:25
세빈이가 이상한짓(?)을 하지않길 바라며ㅡㅠㅠ
겨우 행복해진 애들한테 더이상의 갈등은 다메..☆이사님의 감정이 요섭이한테 호의적으로 바뀌었기를..!!!!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02.19 09:37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02.19 09:51
두준이는 출장을 한달씩이나 가다니..요섭이 외로워서 어떡하죠??그나저나 세빈이 저 여자가 둘의 관계를 눈치챘으니 분명 가만히 있을 것 같지는 않는데...요섭이가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두준이어머니와 함께 셋이 사소한 얘기나누면서 가벼운 분위기의 만남 보기 좋았어요!!!ㅎㅎㅎㅎ이번편도 잘 보고 갑니다!!
출장이라니,..! 출장이라녀!!ㅠ 저 여우같은 ㄱㅣ지배,..! 무슨 일이 일어나진 않겠죠? 그럴거라 믿어요..ㅠㅠ 어머님도 만나뵙고!!! 앞으로도 지금같길 바라여.. 잘 읽고 갑니다! 천천히 가도 좋아여 ~~!
무려 한달이나 출장이라니..... 두준이 어머님과 함께 있는 모습이 이제 조금씩 더 자연스러워지고 즐거이 보이길 바랍니다. 사실 오늘 보인 모습도 충분히 좋았지만 더더더더 예쁨받는 요섭이를 기대하거든요 ㅋㅋㅋ 세빈이.... 홀로 마련한 루트가 참 똑똑하네요. 그치만 더이상 아무짓도 하지않길..ㅠㅠㅠㅠㅠ 잘보고갑니다
으아 으아 너무 달달하고 훈훈하니 좋네요ㅠㅠ그런ㄷㅔ 세빈이 반지를 알아차려버려서 뭔가..일을 낼까봐 조마조마... 게다가 한 달의 출장이라니...ㅜㅜㅜㅜ너무 긴 거 아닙니까 흑흑...그 남자의 방 이번 퍈도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아... 이사님과 요섭이가 친해지면 좋겠어요 ㅠㅠㅠ 근데 걸림돌은 세빈입니다 하필 그 때 와서 괜히 반지도 막 그렇게 알아버리고..... 그러면 안 된다고요!!! 네!? 근데 세빈이가 뭘 해도 두준이는 넘어가지 않을 것이란 걸 알고 있지만요 ㅠㅠ 괜한 노파심입니다.... 마지막 차에서... 크.... 제 취향..저격!!!!!!!! 작가님 사랑해요! 다음 편 기다릴게요!
요섭이와 두준이 엄마가 한발짝 더 가까워진 느낌이네요ㅎㅎ요섭이 하는 행동에 어느 누가 싫어할수있겠어요ㅎㅎ근데 세빈이 둘의 사이를 알아채다니ㅜㅜ무슨 짓을 할지 불안하네요 게다가 한달출장에..둘은 그래도 변함없겠지만요..요섭이 놀리는거 좋아하는 두준이와 어른스러운 행동의 요섭이의 모습은 언제봐도 달달하고 설레네요ㅎㅎ둘의 달달함이 계속됐으면 좋겠습니다~담편 기다릴게요~
저도 작가님과 그 남자의 방으로 계속 함께 소통하고 싶어요! 물론 새로운 작품이 나와도 소통할테지만요ㅎㅎ 요섭이가 참 내조를 잘하는 것 같아요! 상대방의 마음을 잘 헤아릴 줄도 알고 똑 부러지는게 두준이가 홀딱 반할만 하네요ㅋㅋ세빈이가 둘의 관계를 알아버린 것 같네요ㅠㅠ제발 별 일 없기를..그나저나 요섭이는 두준이도 없고 심지어 두부랑 양갱이까지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요? 다정하고 달달한 둘 너무 보기 좋네요! 이번편도 너무 잘 봤습니다! 다음화도 기다리겠습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02.21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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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02.25 01:04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02.28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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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빈이..불안하네요 두사람사이를 알게된거같으니 뭔가 일을펼칠거같기도하고....잘보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