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교로 개종하기 전에 있었던 나라들인 – 옮긴이 잉걸. 아래 ‘옮긴이’) 옛 페르시아 제국(아케메네스 제국이나 사산 제국 – 옮긴이)에는 ‘임금은 “파르”를 지니면서 나라를 다스린다.’는 믿음이 있었는데,
이 ‘파르’는 “(조로아스터 교의 – 옮긴이) 신(神)이 임금에게 베푸는 축복이자,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힘”을 일컫는 말이었다.
만약 이것을 받은 임금이 나라를 잘 다스리지 못하거나 타락하면, 신은 임금에게서 이것을 거두어간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을 잃은 임금은 쫓겨나거나, 죽임을 당한다.
→ ‘BBC Earth(비비씨 어스)’ 방송국의 다큐멘터리인 < 페르시아인 – 이란의 역사 >에서
▶ 옮긴이의 말 :
페르시아 제국, 그러니까 옛 이란의 관념인 ‘파르’는, 동(東)아시아(한국/조선 공화국/유구[琉球 : 루추]/비엣남[Vietnam]/제하[諸夏 : 수도 북경(北京)])의 전통 관념인 ‘천명(天命)’과 닮았다.
천명도 – 서주(西周) 시대부터의 설명에 따르면 – 하늘(天)이 임금에게 주는 것이며, 임금은 그것을 얻어야 새 나라를 세우거나, 나라를 다스리거나, 백성/신하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고,
만약 임금이 덕을 잃거나 나라를 잘 다스리지 못하면, 하늘(천[天]이라는 한자로 쓰나, 의역하자면 ‘하늘의 신’인 천신[天神]이다)은 그 천명을 거두어가서(그러니까, 임금이 ‘천명을 잃어서’,) 임금과 나라(또는 정권)가 망하게 한다는 관념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슬람 이전의 페르시아는 (비록 그 위치와 겉으로 드러난 문화는 다르지만) 옛 동아시아 나라들과 비슷한 점이 꽤 있는데, 천명 사상과 비슷한 파르 사상이라든지, 임금을 ‘왕들의 왕’, 그러니까 ‘황제’라는 뜻을 지닌 ‘샤한샤’로 부른 점이라든지, 오래전부터 여름지이(‘농경’)에 바탕을 둔 나라와 문명을 세우고, 북쪽이나 동북쪽의 초원지대에 살던 유목민족/기마민족(스키타이인이나, 튀르크계 민족들)과 맞서 싸웠다는 점, 그리고 그 유목민족들을 막으려고 장성을 쌓았다는 점(이 장성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설명하고자 한다)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참고로, 전기 고리[高麗]와 후기 고리도 천리장성[千里長城]을 쌓아 적의 침략에 대비했다. 전자는 괵튀르크 제국과 제1 당[唐] 왕조를 경계했기 때문에 그랬고, 후자는 요나라[키타이]를 경계했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
나는 (다른 점들뿐 아니라) 이런 비슷한 점들도 동아시아인인 한국인들이 이란의, 나아가 온 페르시아권(圈)[오늘날의 이란뿐 아니라, 아프가니스탄이나 타지키스탄 공화국도 포함하는 개념이다. 이는 이들이 한때 페르시아 제국의 일부분이었거나, 이란인과 같은 인도 – 유럽 어족에 속하는 말을 쓰고 핏줄도 같은 사람들이 사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는 이른바 ‘화교(華僑)’ 사회와 홍콩과 대만(臺灣)과 마카오와 제하(諸夏)가 – ‘한어(漢語)’를 쓰고 중화사상을 따르는 ‘한족(漢族)’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회/도시/나라이기 때문에 - ‘중화권(中華圈)’이라는 이름으로 한데 묶여서 불리는 사실과 같고,
필리스틴이나 아랍에미리트나 오만이나 예멘이나 이라크나 사우디아라비아나 레바논이나 수리야나 요르단이나 쿠웨이트나 카타르나 바레인이나 미스르나 리비아나 튀니지나 알제리나 모로코나 서사하라나 북[北]수단이나 소말리아나 지부티나 에리트레아에 사는 아랍인들이 아랍어와 아랍인이라는 인식 때문에 나라를 뛰어넘어 ‘아랍권’으로 불리는 것과도 같으며,
오늘날의 튀르키예 공화국이나 카자흐스탄이나 우즈베키스탄이나 투르크메니스탄이나 키르기스스탄이나 동(東)투르키스탄의 위구르인이나 (극동 시베리아 동북쪽에 있는) ‘사하’ 공화국(흔히 ‘야쿠티아’로 알려졌으나, 올바른 이름은 ‘사하’다)에 사는 튀르크계 민족들이 튀르크어와 튀르크인이라는 인식 때문에 ‘범(凡. 여기서는 “모두”/“모든”이라는뜻으로 쓰였다) 튀르크 권’으로 불리는 것과도 같다]의 갈마(‘역사[歷史]’를 일컫는, 순수한 배달말 낱말)와 문화와 정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여겨 이 다큐멘터리의 설명을 소개하기로 했다.
(덧붙이자면, < 페르시아인 - 이란의 역사 >의 설명에 따르면 페르시아 사람들이 서기 7세기 이후 이슬람교로 개종하기는 했어도[그러나 개종은 주로 도시에서 이루어졌고, 시골에서는 서기 13세기에도 조로아스터 교 신자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서 시골에서도 무슬림이 된 사람들이 늘어나, 오늘날 볼 수 있는 것처럼 대다수가 무슬림인 사회구조가 나타나기는 했지만 말이다 – 잉걸의 보충설명], ‘파르’ 관념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이슬람교로 개종한 뒤에는 파르 관념이 ‘이슬람교의 가르침을 제대로 따르지 않는 임금이나 지도자는, 그 지지를 잃어 쫓겨나는 것이 당연하다.’라는 식으로 조로아스터 교의 신 대신 알라가 임금이 나라를 다스릴 힘을 준다는[나아가 빼앗기도 한다는] 내용으로 바뀌었고, 비록 힘을 주는 주체는 바뀌었으나, ‘임금에게 나라를 다스릴 힘을 주시는 분도 신이요, 그것을 빼앗는 분도 신이시다.’라는 사상의 기본 구조는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 혁명이나 반란을 일으켜 사회를 바꾸려는 이란 사람들은 이런 변형된 파르 사상을 자신들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수단으로 삼았으며, 서기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을 일으켰던 호메이니와 그의 지지자들도 당시 샤[페르시아 말로 ‘왕’]였던 ‘팔레비 2세’를 몰아낼 때 이 사상에 바탕을 둔 말과 행동을 했다.
말할 것도 없이, 그로부터 마흔네 해가 흐른 오늘날에는 호메이니가 새운 이란 공화국이 – 오늘날의 젊은 이란 사람들에게 - ‘타도 대상’이 되어서 공격받고 있지만, 적어도 그 나라가 처음 세워질 때에는 이런 식으로 이란 사회에서 먹힐 수 있는 이란의 전통 관념과 사상을 내세웠다는 점은 헤아려야 한다.
사실, 서주 왕조 이후에 천명 사상을 내세우며 세워진 제하 왕조들 – 예를 들면, 한[漢]나라나 명[明]나라 – 도 나중에는 썩고 타락하며 ‘타도 대상’으로 낙인찍혔고, 처음에는 지지를 받으며 세워졌고, 똑같이 천명 사상을 내세웠던 후기 고리[高麗] 왕조도 나중에는 썩고 타락하여 이성계에게 무너지고 말지 않았던가?
‘천명’을 내세우며 옛 임금이나 압제자나 점령군을 타도했던 왕조가, 세월이 흐르고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고인 물은 썩듯이] 자신들이 지녔던 천명을 잃어버리고, 자신들의 옛 적처럼 ‘타도 대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시아파 이슬람교와 결합한 파르 사상을 내건 이란 공화국의 ‘타락’[시민들을 잔인하게 억압하는 정권이 되었으니까]도 그런 관점으로 파악하고 분석해야 한다)
- 단기 4356년 음력 1월 24일에, 이란에 자유가 찾아오기를 바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란인 스스로 자신의 정부와 싸워서 얻어내야 하는 것이며, 바깥세상(예를 들면, 국제연합[UN]을 비롯한 국제기구)의 도움은 부수적인 것이어야 하고, 설령 한국인을 비롯한 다른 나라 사람들이 서기 1979년 이후의 이란 공화국을 비판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 이전의 페르시아 문화나 갈마나 이란 사람들에 대한 증오나 공격으로 이어져서는 안 되며(둘은 엄격하게 구분해야 한다. 그리고 후자는 존중받아야 하고!), 미국이나 나토군이나 시온주의자(‘시오니스트’. 자칭 ‘이스라엘 공화국’)의 이란 침략은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잉걸이 올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