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산단 조성 ‘속도’…농지 보전 ‘뒷전’

[임지연]

전국 후보지 대부분 농촌지역 대규모 농지전용 가능성 높고 정부주도 개발 막기 쉽지않아 전문가 “식량안보 악영향 우려 기존산단 운영 먼저 파악해야”

정부가 최근 확정해 발표한 대규모 국가첨단산업단지 조성지에 적지 않은 농지가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개발 명목으로 우량농지가 대규모 전용되면 정부가 주요 국정과제로 제시한 식량주권 확보 등에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우려된다.

최근 정부는 신규 국가산단 후보지 15곳을 선정해 발표했다. 눈에 띄는 건 규모다. 15개 지역에 들어서는 국가산단 면적은 모두 4076만㎡(1200만평)로, 가장 작은 산단도 면적이 93만㎡(28만평)에 달한다.

정부는 이들 산단을 조성해 국토 전체에 첨단산업 생산거점을 만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지역 안배를 위해 지방자치단체가 신청한 대로 대부분 산단후보지가 조성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일각에선 벌써 ‘맹탕’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미 조성된 산단도 가동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면밀한 수요 파악 없이 후보지를 지정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대전 유성갑)은 15일 후보지 선정 직후 페이스북에 “수도권(경기 용인)의 반도체클러스터는 삼성 등 기업 수요가 있는 반면 다른 지역들은 산단 조성이나 기관과 기업 유치 등 구체적 계획이 없어 실현 가능성에 의문이 든다”고 밝혔다.

실제 후보지 가운데 한곳인 충남 홍성은 이미 10개의 산단이 들어서 있다. 하지만 전체 면적 337만㎡에서 실제 분양 면적은 60%인 200만㎡에 그친다. 장정우 공익법률센터 농본 정책팀장은 “홍성지역 마을마다 산단 선정을 환영하는 펼침막이 걸렸지만 구체적인 조성 계획 등은 전혀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라면서 “신규 산단을 개발할 게 아니라 기존 산단을 활용할 계획부터 세워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계획에 농지가 대규모로 전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정부는 국가산단 부지에 농지가 얼마나 포함되는지 공개하지 않았지만 전체 15개 후보지 가운데 12곳이 농촌으로 분류되는 읍·면 지역인 만큼 적지 않은 농지가 편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전북 익산에 들어서는 ‘국가식품클러스터 2단계’ 부지만 해도 208만2644㎡(63만평)의 농업진흥지역(절대농지)이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는 사전협의절차를 통해 우량농지가 후보지에 과도하게 포함되지 않도록 조정했다는 입장이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사전협의 없이 추진한 기존 국가산단이 실시계획 승인 단계에서 농지전용 문제로 지지부진해지는 사례가 있었다”면서 “이번에는 산단 입지를 정하면서 농정 당국과 적정성 등을 협의했다”고 밝혔다. 국가식품클러스터 2단계도 당초 제안서에 농업진흥지역 297만5206㎡(90만평)가 포함됐던 것을 농림축산식품부가 요구해 일부 조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는 산단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속도를 발목 잡는 모든 요소를 해제하겠다’고 밝혔다. 사전협의된 수준에서 개발이 이뤄지도록 농지 규제 등을 크게 완화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하지만 사전협의가 면밀하게 이뤄졌는지는 미지수다.

농식품부는 ‘사전협의 때 농지전용 심사기준 등에 관한 세부지침이 없다’는 점을 문제로 인식했고, 올해 ‘산단 등 사업부지 검토단계부터 편입농지의 적정성 여부를 면밀히 심사할 수 있도록 기준(훈령)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하지만 이런 기준을 마련하기도 전에 대규모 농지전용을 위한 사전협의가 완료된 것이다.

국토부와 농식품부는 “향후 ‘농지법’이 정한 절차대로 추진할 것”이라는 원론적 입장만 밝히고 있다. 이를 두고 대규모 농지전용은 농지법에 따라 반드시 농식품부 장관의 허가를 거쳐야 하지만 범정부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추진하는 산단 조성 사업에 농식품부가 제 목소리를 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최근 성명을 내고 “산단 조성 명목으로 농업진흥지역을 해제·개발하는 것은 국가적으로 더 큰 우려를 낳을 것”이라면서 “기존에 농지를 훼손하고 조성한 산단이 애초 목적대로 운영되는지부터 제대로 파악하고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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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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