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남철수 당시 미군의 작전상황도 / Cowart, Glenn C(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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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흥남부두에 운집한 피난민들과 후퇴하는 군인과 뒤석여 있다.
뒤에 보이는 배가 메러디스 빅토리 호(195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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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러디스 빅토리 호에 승선한 북한 피난민들(1950. 12) / 러니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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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난민들로 가득 찬 메러디스 빅토리 호의 갑판아래 화물창(1950 .12) / 러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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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난민들이 흥남부두에서 소형어선 등 구할 수 있는 모든 배를 구해 오르고 있다.(195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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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군과 피난민이 흥남항을 모두 떠난 후, 미해군 90상륙지원단 소속의 폭파팀이 흥남부두에 있는
물자와 장비들을 폭파시키고 있다.
앞에 보이는 배는 폭파를 지원하고 있던 미 전함 Begor 호(1950. 12. 24) / 미 해군 역사센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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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난민으로 가득 차 있는 메러디스 빅토리 호 갑판(1950. 12) / 러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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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박3일의 항해 끝에 거제 앞바다에 도착, 섬에 내리기 위해 상륙정(LST)으로 옮겨 타고있는 피난민
1950. 12. 25 / 러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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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0 명의 피난민을 무사히 구출하고 메러디스 빅토리 호가 시애틀 항으로 들어오자
이를 알리는 <시애틀 포스트 인텔리전스>誌의 기사(195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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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러디스 빅토리 호 선장 L. 라루(당시 37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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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러디스 빅토리 호 상급선원 R. 러니(당시 2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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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남구조 작전이 끝난 지 거의 10년이 되어, 메러디스 빅토리 호의 선장이었던 레너드 라루(마리너스 수사)
왼쪽 / 미 상선훈장 중 최고의 영예인 '공로훈장'을 받고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대신해 뮬러 상무장관이 훈장을 수여하고 있다.(1960. 8. 24) / 러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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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러디스 빅토리 호의 상급선원이었던 로버트 러니(왼쪽)가 미국 정부로부터 단체표창과 장식띠를 받은 후
흥남철수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맨 우측은 정일권 당시 주미 한국대사(1960. 8. 24) / 러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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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통령 표창창
이들은 단기 4283년 12월 22일 흥남철수작전에 있어 수많은 시민들이 공포에
쌓인 공산군 지역으로부터 마지막 탈출할 기회를 엿보고 있을 무렵 흥남항에
입항하여 최후 발악을 시도하는 공산군의 장해를 물리치고 유엔군과의 긴밀한
연락을 취하면서 7,636톤급 화물선에 부녀자 14,000 명을 싣고 위험한 항해를
연삼일 계속하여 안전지대인 부산항에 이르럿던 것이니 이 인도적이고 숭고한
정신에 입각한 사명의 수행과 모범적인 기독교정신은 한국민에게 영원히 기억
될 것이므로 그 공적을 가상하여 이에 표창장을 수여함
단기 4238년 12월 22일부터 동 25일까지의 기간중 복무한 메레디스 빅토리호
승무원 전원에게 대통령 수장을 패용할 권한을 부여함
단기 4291년 5월 20일(서기 1958년)
대 통 령
이장을 562호로써 표창부에 기입함
국무원 사무국장 신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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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상선박물관 전경 / 명예의 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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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배(Gallant Ship) 전시실 / 중앙이 메러디스 빅토리 호 표창 동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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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러디스 빅토리 호 관련자료 보관함. 박물관장인 상선사관학교 Smith교수는 편집자에게 보관함을
직접 가져다주며 자료열람 및 촬영을 허용하였다.(2012.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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末年의 마리너스 수사 / 휠체어 탄 분(성 바오로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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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비 준공식의(2005. 6)의 러니 변호사와 현봉학 박사(1922~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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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재향군인회 회장으로부터 향대휘장을 받는 러니 변호사(2006. 2)
![](https://t1.daumcdn.net/cfile/cafe/232AF04854B0631822)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내의 메러디스 빅토리 호(실물크기의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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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너스 수사의 묘석(뉴저지주 뉴튼 수도원내 공동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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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상선학교 입구 / 뉴욕 롱아일랜드 킹스 포인트(20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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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카페 들락거리며 노는데초보 금동화의 무지를 권용석 대감이 말끔히 해결해 주었읍니다.
한번 고쳤다가 날리고 또 엇 저녁에 여러시간 수작업으로 마쳤다고 하니
그 수고에 대하여 어찌 감사드려야 할지? 좌우간 좋은 친구와 훌유한 카페지기를 두었읍니다.
참고로, 제가 올린 졸 번역본의 부록으로 본인이 KIST 원장 시에 감사를 지낸 남광수(49회) 후배가
수집하고 편집한 사진들이고, 용량이 커서 쪼개서 여러 화일로 올렸던 것을 권대감이 말끔히 정리해 주셨읍니다.
다시 엄청 감사
술 딱 한잔만 사세요...ㅎ
정말 소중한 글과자료 감사합니다.
지난날 군에 있을때 많은 연구와공부를 했지만, 까맣게 잊어버렸는데
이렇게 생생하게 설명해주니, 고맙고 한편으로는 부끄럽습니다~~~~
세월이 지나고, 세상이 많이 변했다해도 결코 잊지는 말아야지요~~~
어제 영화보고 감동이었는데...
아이에게 현대사의 일부도 스토리로 보여줄 겸 작은 딸과 함께.
좋은 자료 구체적인 설명 감사~
37세에 불과한 선장이
이런 결단을 할 수 있다는데
그저 놀라울 뿐이다
그런 영웅 하나를 만나는데
우리에겐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 건지~?
거기에는 현봉학박사(1922~2007)의
설득이 대단했다고 하더군요.
국제시장 영화에서는
현봉학박사 役으로
김무성 새누리당대표의 아들이 연기했지요
국제시장 영화에 나오는 배의 실물사진이 바로 여기의 사진들이군요.
영화를 보면서 어찌나 많이 울었던지... 소리를 낼 수도 없고 눈물은 줄줄 흐르고
얼마나 당황스러웠던지~~~
이 배가 그 많은 피난민을 싣고 떠날때는 정말 감격했고,
오랜만에 심금을 울리는 영화를 보면서 마음껏 카타르시스를 했지요.
사진과 영상으로 보이는 것보다 속에 관심가질 사실도 많아요.
1950년 12월 말 흥남에서 중공군을 피해 고향을 떠난 14,000명을
안전하게 태우고 온 이 배는 90년 말 영국 회사에 팔려 중국 상해근방 조선소에서 해체되어
고철로 녹아 없어 졌읍니다.
지난 10여년 이상 매년 6.25 전후에 프레스 클럽 앞 6.25 사진 전시가 있음에도
많은 국민들은 지나쳤읍니다.
내가 재 번역한 책이 진중 문고로 모든 병영 막사에 보급햇음에도
아마도 다른 정권시기 탓으로) 거의 읽히지 않았읍니다.
그간 TV 방송에도 메레디즈 빅토리 얘기가 보도 여러번 보도 되었지요.
이재서야 많은 국민들이 역사의 한구석을 보고 얘기하고 시작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