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Philippines)
- 동남아시아 -
▶ 개관 : 위치 - 아시아 대륙 남동 해안
국가 - 필리핀 Philippines
인구 - 약 11,733만명 세계 13위[24,04,23]
종족 - 말레이인(96%), 기타, 인도네시아인
GDP - 약 4,409억100만 달러 세계 36위
수도 - 마닐라 (한국과 -1시간 차)
면적 - 약 30만㎢ (한반도의 1.4 배)
언어 - 필리핀어, 영어
관련 - 날씨 정보
화폐 - 필리핀 페소 PHP 환율정보
종교 - 로마 가톨릭(75%), 이슬람교, 필리핀 독립교회파(아글리파이파)
정부 형태 - 대통령 / 대통령
국가번호 - 63
필리핀의 2개의 주요섬은 북부의 루손 섬, 남부의 민다나오 섬이다.
필리핀 중부의 비사얀 제도는 파나이, 네그로스, 세부, 레이테, 사마르 섬으로
구성되며, 민도로 섬은 루손 섬 바로 남쪽에 있고, 팔라완 섬은 서부에 외따로
떨어져 있다.
▶ 약사 : 1000년경부터 중국 상인들이 필리핀의 여러 섬을 방문하고 거주했다고 전해
지나 중국과 인도 양국이 끼친 영향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15세기초 필리핀 사람들은 대부분 이동농경·사냥·고기잡이를 하며 살았으며
정령숭배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1521년 페르난두 마젤란에 의해 유럽인들이
필리핀을 발견했으며, 뒤이어 16세기 말엽 민다나오 섬 지역을 중심으로 이슬
람교가 소개되었다. 이 무렵 필리핀 북부와 중부 전지역이 무력으로 스페인
식민지가 되면서 모든 주민들은 명목상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민다나오 섬 및 좀더 남서쪽에 있는 술루 제도에 살고 있는 이슬람교도들인 모
로족은 스페인 사람들에게 완전히 정복되지 않았다.
마닐라의 중앙정부는 19세기까지도 중세적·독재적 경향을 지니고 있었으며,
마닐라 시 역시 압제적인 종교 중심지로서 여러 섬들을 지배하는 한편 상업 중
심지로서 중국의 비단과 멕시코의 은의 중계항 역할을 했다. 1830년대부터 마
닐라는 외국 시장에 문호를 개방했고, 설탕과 마닐라삼에 대한 유럽의 수요를
충당하는 과정에서 상업적 농업이 크게 성장했다. 19세기말 유럽 유학중 민족
주의 사상에 고무된 필리핀의 부유한 지주층의 자녀들이 귀국하여 1896년에
폭동사건을 일으켰으나 스페인 군대에 진압되었다.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 뒤 필리핀 제도는 미국에 할양되었으나 필리핀 내
독립운동은 1906년까지 수그러들지 않았다. 미국은 처음부터 필리핀의 자치와
궁극적 독립을 위해 필리핀 국민을 훈련시킨다는 명목으로 미국의 패권주의를
합리화했다.
1935년 정치적·경제적 독립을 꾀하기 위해 필리핀 연방이 수립되었지만 이러
한 노력은 제2차 세계대전과 뒤이은 일본의 침략과 점령 때문에 지연되었다.
필리핀은 1944~45년 미군에 의해 해방을 맞이한 후, 1946년 7월 4일 미국 정
부를 본뜬 정부를 세우고 필리핀 공화국 수립을 선포했다. 초대 대통령으로는
마누엘 로하스가 선출되었다. 1965년 페르디난드 E.마르코스가 대통령에 선출
되었고, 1969년에는 최초로 필리핀의 재선 대통령이 되었다.
1972년 마르코스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계속 집권했으며, 계엄령을 공식 해제
한 1981년부터는 대통령령으로 통치했다. 1983년 야당 지도자 베니그노
S.아키노 2세가 귀국길에 마닐라 공항에서 피살되자, 마르코스 정권에 대항해
온 반정부 세력의 저항이 더욱 격렬해졌다. 이런 난국을 모면하려고 1986년 2
월 앞당겨 실시한 대통령 선거에서 마르코스는, 야당후보이자 베니그노의 미망
인인 코라손 아키노를 누르고 공식 승자로 선포되었지만, 마르코스의 명백한
부정선거는 폭동을 야기시켰고, 이 폭동으로 그는 권좌에서 물러났다.
마르코스 축출 직후인 1986년 2월 25일 코라손 아키노가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러나 아키노 정부는 출범 당시의 기대만큼 정국안정과 개혁에 성공하지 못
했다. 마르코스의 부인인 이멜다가 1991년말 6년간의 망명생활 끝에 귀국하여
대통령선거 출마를 선언하기도 했으나 마르코스 정부 전복에 견인차 역할을
했던 피델 라모스 국방장관이 아키노의 지지에 힘입어 1992년 5월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 경제 : 필리핀 경제는 주로 농업·경공업·서비스업에 기반을 두고 있다. 20세기말에
이르러 정부 간섭이 늘어나긴 했지만 시장경제가 지배적이다. 물가는 구매력
보다 더 빨리 상승된 반면 임금은 동아시아에서 최저 수준이다. 실성장률이
마이너스 상태인 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다른 개발도상국들과 비슷하다.
총노동력의 2/5 이상이 종사하는 농업은 국내총생산(GDP)의 1/4을 차지한다.
농민 다수가 소작농이며 국토 1/4 이상이 경작 적합하나 관개시설 부족하다.
정부와 여러 국제기구들이 관개농지를 넓히려는 여러 사업을 후원하고 있지만
농업의 자급자족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쌀이 주요농산물이며, 몇몇 섬에서
는 옥수수 재배가 주종을 이루기도 한다. 쌀의 경우 다양한 개량종들이 선을
보였고 다량의 비료가 현재 사용되고 있지만 산출량은 크게 늘지 않고 있다.
굴지의 코코넛 생산국으로 코코넛열매와 코프라뿐 아니라 코코스야자유를
주로 수출한다. 사탕수수·바나나·파인애플 등도 널리 재배되며, 외화 수입원으
로서 종래의 마닐라삼과 담배를 대신한다.
만연된 불법 벌목행위와 아직도 존속하고 있는 이동농경방식 때문에 필리핀의
삼림은 계속 고갈되고 있다. 질 좋은 목재와 베니어판이 일본·영국·미국으로
대량으로 수출된다. 광업은 GDP에서 적은 비율을 차지하지만, 구리·금·철광석
등은 외화 수입원으로 적지 않은 몫을 한다. 제조업은 GDP의 1/4을 차지하며
총노동력의 1/10을 고용한다. 주요 제조업으로는 식품가공, 음료·석유제품·섬
유·신발 등의 생산이 손꼽힌다. 정부는 전기 및 전자 기기 조립업을 포함한 노
동집약형 산업의 육성에 적극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도로는 1/7 정도만 포장
되어 있으며, 마닐라와 막탄 섬의 세부 근교에 국제공항이 있다.
필리핀 제1의 항구는 마닐라에 있다. 그러나 수송 하부구조가 빈약하여 늘어
나는 농산물량을 처리하는 데 커다란 걸림돌이 되고 있다. 전기 및 전자 제품
과 부품, 코코넛 제품, 의류, 과일과 야채, 설탕과 설탕제품 등을 수출하며, 광
물연료·자본재·곡물·화학제품 등은 수입한다. 무역수지는 종종 역조현상을 보
인다. 주요 무역 상대국은 미국과 일본이고 해외 근로자들이 보내는 송금이 중
요한 외화 수입원이다. 정부의 예산 지출은 전통적으로 수입을 초과해왔지만
1994년을 넘어서며 흑자로 돌아섰는데 외채는 1980년 이후 갑자기 늘어났다.
▶ 대한 관계 : 1949년 3월 3일 정식으로 외교관계가 수립되었다. 1954년 1월 양국에
상주공관이 설치되었고, 1958년 2월에 각각 대사관으로 승격되었다.
북한과는 미수교 상태이지만 1970년 이후 국제정세의 변화에 따라 실리노선을
취하면서 북한과의 수교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1996년의 대한 수출액은 5억 8,133만 달러, 대한 수입액은 19억 602만 달러
이다. 1997년 현재 교민은 1,500명, 체류자는 6,499명이다.
▶ 여행 정보 : 치안상태-불안 / 긴급연락처 : 대사관 (63-2)856-9210
팁문화 : 호텔, 레스토랑에서 서비스에 따라 10~20페소
무사증 체류기간 30일, 일방적 면제
전압 : 220 / 230 / 240V 콘센트 3구 100 / 110 / 120V 콘센트 2구
9:16
세계테마기행 - 필리핀 1부 섬속의 섬 아에타족 - 길이: 9:16
[세계테마기행] 화산과 물의 땅, 필리핀, 1~4부
https://www.youtube.com/watch?v=rH-XEqppJV0 < 2:15: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