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30일 오늘의 역사
2023년 일본으로부터 대동여지도 환수
국내에 공개된 적 없던 새로운 형식의 '대동여지도'가 일본에서 돌아왔다. 이번에 환수된 지도는 대동여지도 목판본에 동여도의 지리정보를 붓글씨로 추가한 것이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을 통해 일본에서 환수한 23첩짜리 대동여지도를 공개했다. 목록 1첩, 지도 22첩으로 구성됐다. 전체를 펼치면 세로 약 6.7m 가로 4m 크기다.
일반에 널리 알려진 대동여지도는 목판본이다. 즉, 대량 인쇄가 가능하도록 나무에 그림을 새겨 찍어냈다. 조선의 지도 제작자인 김정호(1804~1866·추정)가 1861년 처음 제작·간행한 책자 형식의 지도첩이다. 1864년에 재간했다. 1책부터 22책에 이르는 책자를 모아 펼치면 한반도 전도가 되는 접이식 지도다. 축적은 약 16만분의 1이다. 국내에는 성신여대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 등에 35부 정도가 남아있다.
동여도는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제작하기 전 모본(母本)으로 삼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 전도다. 붓으로 쓴 채색 필사본으로, 목판을 제작해야 하는 대동여지도보다 많은 지명과 주기(註記)를 수록하고 있다. 교통로와 군사시설 등 지리 정보와 1만8000여개에 달하는 지명이 실려 있다. 목록 1첩과 지도 22첩 등 총 23첩이다. 현재 한국에는 규장각 등에 네 점이 소장돼있다.
이번 환수본은 동여도와 대동여지도가 합쳐진 지도다. 동여도의 내용이 대부분 적혀 있어 상세한 지리정보를 제공한다. 백두산 일대가 묘사된 2첩의 경우 대동여지도 목판본에는 없는 '백두산정계비'와 군사 시설 간 거리가 쓰여 있다. 울릉도 일대를 그린 14첩엔 울릉도행 선박의 출발지와 소요 시간까지 적혀 있다.
2019년 슬로바키아 대선, 40대 환경운동가 카푸토바 후보 당선, 슬로바키아 첫 여성대통령
2018년 일본군 위안부(성노예) 피해자 안점순 할머니 세상 떠남
2016년 영화배우 송중기(드라마 ‘태양의 후예’ 유시진 대위 역) 연예인 최초로 ‘뉴스9’ 출연
2012년 미국 우주인 닐 암스트롱 달에 착륙한 적 없다고 고백, NASA는 부인
2010년 보람상조 그룹, 횡령혐의로 압수수색
2010년 3월 30일 국내 최대 규모의 상조회사 보람상조 그룹에 대해 검찰이 전격 압수수색했다. 회사 대표가 가족과 친인척 등의 명의로 계열사를 운영하면서 거액의 고객 돈을 빼돌린 혐의다.
부산지검 특수부(부장 차맹기)는 30일 오전 서울 강남구 역삼동 보람상조 본사를 비롯해, 의정부 보람병원 등 20여개 계열사와 부산 남구 용호동 최모(52) 회장 자택 등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이고 그룹 부회장으로 있는 최 회장의 형(62)을 체포했다. 최 회장은 현재 미국에서 가족과 함께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은 보람상조를 비롯해 장의업체·병원·건설회사 등 여러 개의 계열사를 가족과 친인척 명의로 운영하면서 고객이 맡긴 100억원대에 달하는 돈을 빼돌려 부동산을 사들이는 등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보람상조 그룹은 국내 상조업계 최대 규모 업체로 20여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으며, 회원수만 75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람상조개발, 보람상조라이프 등 계열사를 주력으로 내세워 장의 사업을 하고 있다. 1991년 부산의 작은 상조회사에서 출발해 급성장을 이뤄 현재 3000여 명의 직원과 300개가량의 전국 지점·영업소를 두고 있으며, 장례식장·예식장·스튜디오·드레스숍 등도 자체 운영하고 있다.
2009년 리비아 밀항선 침몰 300여명 사망·실종
북아프리카 리비아의 연안에서 2009년 3월 30일 여성과 어린이 다수를 포함한 아랍·아프리카계 불법이민자 250여명을 태우고 이탈리아로 향하던 소형 목선 한 척이 강풍으로 침몰해 20여명이 숨지고 200여명이 실종됐다. 로이터 통신은 전복된 선박이 두 척 이상이며, 총 사망·실종자가 300명을 넘는다고 보도했다.
로렌스 하트(Hart) 국제이민기구(IOM) 리비아 사무소 대표에 따르면 밀항선이 정원을 초과한 상태에서 강풍을 만나 침몰한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함께 출항했다가 표류 중 구조된 한 선박의 경우 정원이 75명이지만 365명이 타고 있었다.
이 선박들은 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 인근 해안 마을인 시디 베랄에서 출항했으며 리비아 해상 30㎞ 지점에서 사고를 당했다.
IOM에 따르면, 2008년 한 해에만 3만3000명이 북아프리카 연안에서 이탈리아의 람페두사 섬으로 낡은 배를 타고 밀항한다. 아프리카의 불법 이민자들은 해안선이 1770㎞에 달하는 리비아에서 주로 유럽행 밀항을 시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4년 한국 ‘고속철 시대’ 개막, 고속철(KTX) 개통
1992년 착공 이후 12년 만에 경부고속철도(KTX)가 완공돼 2004년 3월 30일 오전 서울역 광장에서 대통령 권한대행인 고건 국무총리와 강동석 건설교통부 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개통식을 가졌다. 이날의 고속철도 개통은 경부선에 열차가 달리기 시작한 지 꼭 100년째를 맞는 날이라 그 의미가 더했다. 고속열차의 실제 상업운행은 4월1일을 시작으로 대구·부산은 물론 전철화한 호남선을 이용해 광주·목포로도 운행됐다.
KTX는 ‘예약대기제’를 도입해 예약·예매가 끝나 구입할 수 없는 이용자들의 불편을 덜어주었다.
1905년 경부선 개통 당시 서울~부산 주행에는 무려 17시간이나 걸렸다. 이날 개통된 KTX는 서울~부산을 2시간40분에 주파했다. 100년 전의 첫 열차에 비교하면 6.4배, 현재의 새마을호보다는 1.6배 빠른 속도다.
2004년 송두율씨. `반국가단체의 간부 또는 기타 지도적 임무에 종사`한 혐의로 징역 7년 선고
지난 1991년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에 선임돼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 서열 23위의 장의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반국가단체의 간부 또는 기타 지도적 임무에 종사’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송두율씨에 대해 2004년 3월 30일 징역7년의 중형이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4부는 이날 송씨가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서 저술활동을 통해 북한 체제를 찬양·미화하고 남한체제를 편향적으로 비판해 주체사상을 국내에 확산시키는 등 북한을 위한 지도적 임무에 종사한 범죄사실을 인정, 이같이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송씨는 자신을 ‘경계인’으로 포장, 남한에 대해서는 냉엄한 비판을 가하면서 북한 체제는 찬양·미화하고 주체사상을 국내에 확산시켜 맹목적 친북세력과 근거 없는 반체제 인사를 양산했다”고 밝혔다.
반면 송씨측 변호인은 “법원의 유죄판결은 20년 전 냉전 반공 논리에 사로잡혀 공판과정에서 드러난 실체적 진실을 무시한 반이성적 판결”이라며 반발했다.
2004년 현정은 회장, 현대엘리베이터 주총서 등기이사에 선임
“현정은 회장 찬성 77.8%, 반대 22.2%’”. 2004년 3월 30일 경기도 이천 본사에서 열린 현대엘리베이터 주총에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압도적인 표차로 등기이사에 선임, 경영권 방어에 성공했다. 이에 따라 2003년8월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의 자살 직후 시작된 조카며느리(현정은 회장)와 시삼촌(정상영 KCC명예회장) 간의 현대그룹 경영권 분쟁은 조카며느리의 승리로 끝났다. KCC(금강고려화학)측은 주총 직후 “주총 결과를 100% 받아들이며, 앞으로 현대그룹 경영권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밝혀, 결과에 깨끗이 승복했다.
주총에서 현 회장측이 승리한 데에는 전날(29일) 법원이 KCC의 현대엘리베이터 보유지분 7.5%에 대해 의결권 행사를 제한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법원의 결정으로 KCC의 유효지분이 8.61%로 급락, 현 회장측 지분 30.5%를 크게 밑돌게 됐다.
현대그룹 현정은(玄貞恩) 회장은 30일 현대엘리베이터 주총에서 승리한 직후 “현대그룹 경영권을 둘러싼 소모적인 지분경쟁에서 벗어나게 돼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현 회장은 ‘주주님께 드리는 글’을 통해 “이번 주총을 계기로 현대그룹은 과거의 모든 의구심을 깨끗이 청산하고 안정적인 경영권 확보를 통해 현대그룹 재도약의 전기를 마련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투명경영, 책임경영, 주주중시 경영을 통해 기업가치를 극대화해 현대그룹의 재도약을 이루어 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2003년 한국정보통신기능대학 개교
2003년 미셸 콴(미국), 세계피겨스케이팅 선수권에서 5번째 우승
2000년 현대그룹, 각 계열사 대표로 구성된 경영자협의회를 폐지
1998년 독일 BMW사, 영국의 롤스로이스사 매입
1998년 아르메니아 대통령으로 로베르트 코차리안 당선
로베르트 코차리안 아르메니아 총리(43)가 1998년 3월 30일 구공산당 서기장 출신인 카렌 데미르치안 후보(65)를 누르고 총투표자의 59.48%를 획득해 당선됐다.
이로써 코차리안은 지난 2월 카스피해 연안에 위치한 나고르노 카라바흐 지역 분쟁을 둘러싼 의회의 압력으로 사임한 레본 테르 페트로시안 전 대통령의 뒤를 이어 빈국 아르메니아를 이끌게 됐다.
민족주의자로 알려진 코차리안은 1997년 3월 총리에 임명되기 전까지 아제르바이잔 영토 안에 마치 섬처럼 자리잡고 있는 나고르노 카라바흐 지역의 지도자로 활동했다. 그는 1988년부터 6년간 이 지역을 둘러싸고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간에 벌어진 민족종교전쟁의 종식에 주역을 맡아 민족적 영웅으로 부상했다. 나고르노 카라바흐 지역을 아제르바이잔으로부터 독립시켜 아르메니아에 통합한다는 숙원을 이뤄낸 것이다.
1995년 자민련 창당(총재 김종필)
1994년 뇌사자 심장 첫 원거리 이식성공
뇌사 환자로부터 적출한 심장을 구급차로 이송, 3시간이 지난 뒤 다른 병원 환자에게 이식하는 수술이 1994년 3월 30일 국내최초로 성공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는 같은 병원내에서 심장적출과 동시에 심장 이식을 한 적은 있었어도 이처럼 원거리 병원으로 옮겨 수술을 한 것은 처음이었다.
이는 국내 전지역이 헬기 등으로 3시간 이내의 거리라는 점을 감안할 때, 심장 제공자의 지역과 관계없이 이식수술이 가능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대 구로병원에서 이루어진 심장적출 수술은 서울대병원 김기봉 교수가 실시했으며, 대동맥 절단 후 심장근육의 산소 소모량을 줄이기 위해 적출한 심장을 영상 4도로 냉각된 심근보존용액에 담아 이송했다.
1991년 박영균 WBA 페터급 세계챔피언 획득
1991년 외교통상부 산하 한국국제협력단 창립
1990년 대한항공-아에로플로트, 서울-모스크바간 취항
1990년 일본, 재일교포3세에 영주권 부여
1990년 한국, 루마니아와 대사급 외교관계 수립
1990년 화가 남관 사망
1990년 3월 30일, 우리나라 근대화단의 또 하나의 별 남관(南寬) 화백이 노환으로 별세했다. 1911년 경북 청송에서 태어나 14세에 도일, 도쿄 다이헤이오 미술학교를 졸업하고 광복 때까지 일본에서 작품활동을 한 남관은 김환기나 이응로가 추상과 구상을 함께 한 것과 달리 오직 추상만 고집, 이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한국 추상화단의 거목이다.
6ㆍ25때는 종군화가로 살상과 파괴의 비극적 현장을 다루는 기록화를 제작했으나 1955년 전쟁의 황량한 기억을 안고 파리로 떠났다. 한편으로는 그림공부를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파괴된 인간에 대한 기억들을 되살려 전쟁으로 파괴된 인간들을 소재로 한 그림을 주로 그렸다.
1958년 살롱 드 메에 초대돼 한국 화가로서는 최초로 국제무대에 진출했고, 1966년 망통비엔날레에서는 피카소ㆍ타피에스 등 거장들을 물리치고 대상을 받아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후 파리ㆍ런던ㆍLA 등 해외에서 특히 많은 전시회를 가져 파리 국립현대미술관, 룩셈부르크 국립미술관, 퐁피두 센터 등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을 만큼 국제적인 작가로 인정받았다. 그는 주로 인간의 내면세계를 상형문자와 같은 형상을 통해 표현했으며 해ㆍ달ㆍ고성 등 영원한 생명을 지닌 것들을 작품소재로 즐겨썼다.
1983년 청진항, 일본-중국 무역중계지로 확정
1982년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범 검거
1981년 레이건 미국 대통령 피격
1981년 3월 30일, 레이건 미 대통령이 워싱턴의 힐튼 호텔을 나서며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다 가슴에 총탄을 맞았다.
1981년 3월 30일 오후 2시 26분. 미국 워싱턴이 5~6발의 총성과 함께 피로 물들었다.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의 힐튼 호텔에서 열린 미국노동총동맹산별회의(AFL-CIO)에서 연설을 마치고 대통령 전용차에 오르고 있었다. 이때 자신을 향해 환호하던 군중들에게 회답하기 위해 왼손을 드는 순간, 불과 3미터 정도 거리에서 총격을 받은 것이다.
이날 레이건 대통령을 수행중이던 제임즈 브래디 백악관 대변인과 비밀 경호원, 경찰 등이 저격을 받고 그 자리에서 쓰러져 중태에 빠졌다. 특히 브래디 백악관 대변인은 이마에 총격을 받고 쓰러져 차디찬 콘크리트 바닥을 피로 물들였다. 레이건은 곧바로 조지 워싱턴대학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다. 그는 촌각을 다투는 그 와중에도 수술실에 들어온 의사들을 향해 “공화당원들이요?”라며 여유있게 농담을 건지기도 했다고 한다. 다행히 탄환이 심장으로부터 12Cm정도 떨어진 왼쪽 폐에 박혀 성공리에 수술을 마쳤고, 그는 70세의 노령답지 않게 빠른 속도로 건강을 회복했다.
이날의 사건은 존 워크노 힝클리라는 25세 청년이 저지른 범행으로, 뜻밖에도 그는 갑부의 막내 자제였다. 그는 평소 당시 10대 여배우 조디 포스터를 짝사랑해오다 이날 최후의 편지 1통을 쓰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그 내용인 즉, “조디, 부디 마음을 돌려 내가 이 역사적 행위를 통해 당신으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해주길 바라오. 언제까지나 당신만을 사랑할 존 힝클리가.”
1978년 호남선 대전-이리구간 복선 개통
1973년 한국방송윤리위원회 창립
1973년 `함성`지 사건 관련, 대학생 김남주 이 강, 교사 박석무 등 구속
1972년 박정희 대통령, 북한에 5개항 평화원칙 제시
박정희 대통령이 1972년 3월 30일 육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유시를 통해 북한 평화 공세가 위장임을 강조하고, 위장이 아님을 증명 할 수 있는 5개 항목의 선행조건을 제시했다.
1. 4대 군사노선의 강행으로 표시되고 있는 무력적화통일의 즉각 포기 2. 비무장지대 안에 구축해 놓은 모든 군사진지의 즉각 철거와 8천 8백명의 무장군인 및 무기를 즉시 철수시킬 것 3. 무장간첩의 남파를 즉각 중지하고 이들 무장간첩을 훈련해 온 모든 비무장특수부대를 완전해체할 것 4. 불법납치된 KAL기와 그 승무원 승객 및 무고히 납북된 어부와 어선들을 즉각 송환할 것 5. 남북적십자회담에 대해서도 성의를 보여 하루속히 대한적십자사의 제의를 수락할 것 등 5개항을 제시했다. 이날 제시된 5개항 평화 원칙은 우리가 얼마나 남북관계에 기대하고 인내하고 있는지를 시사해 주고 있다.
1972년 대구일보, 창간 19년 만에 자진폐간
1967년 과학기술처 신설, 원자력원을 원자력청으로 개칭
1967년 나토군사령부 파리철수 완료
1966년 신민당 창당(총재 윤보선)
1965년 베트공, 사이공 미국대사관 폭파, 218명 사상
1965년 무즙 파동
서울 고등법원 특별부 이명섭 부장판사는 1965년 3월 30일 소위 `무즙 파동`에 관련된 전기중학입시 합격자 확인소송사건에 대해 문제의 자연과 18번의 정답은 출제취지로 보아 “무즙도 정답으로 보아야 하므로 전기중학입시에서 불합격한 38명을 합격으로 처리해야한다” 고 판결했다.
이 파동은 경기 중학교 등의 명문교에 응시했다가 자연과 18번 때문에 불합격한 이종호군 등 42명이 자연과 18번을 “서울시 교육위원회에서 잘못 채점해서 떨어졌다” 며 교장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해 일어난 것이다. 자연과 18번 문제는 ‘엿을 만들때 엿기름 대신 넣어도 좋은 것은?’ 이라는 문제였다. 학부모들은 무즙으로 엿을 만들어 오고 찬합에 무즙을 가득 담아오는 등 희한한 증거자료를 제출하며 재판에 임했다.
재판부는 문제가 된 자연과 18번은 객관적으로 해석할 때 엿을 만드는 과정에서 당화작용에 대한 물음으로 해석돼 교사용 교과내용에 제시된 엿을 만드는 방법 중의 하나인 디아스타제 사용법을 참작, 이 디아스타제가 포함된 무즙이라고 답을 썼다해도 이는 정답으로 보아야 한다고 판시했다.
따라서 행정소송을 낸 38명(4명은 중도에 소송취하)의 학생들은 구제됐다. 하지만 ‘무즙’ 을 정답으로 썼으나 소송을 걸지 않은 370여 명의 학생들은 혜택을 받지 못해 또 다시 항의가 그치지않았으며 특히 중도에 서울시 교육위원회 간부의 권유로 소송을 취하한 4명의 학부모들은 더욱 심하게 반발했다. 이 와중에 승소한 학생들이 전학하는 틈을 타 15명이 부정 입학했다가 들통나는 일도 있었다.
결국 38명의 학생에게만 전학을 허용하는 것으로 최종결론이 났지만 이 파동으로 청와대 비서실장과 문교부 장차관, 서울시교육감 등 8명이 사표를 제출했다.
1963년 박정희, 윤보선, 허정 3자회담
1953년 중국 주은래, 한국전쟁 휴전회담 재개 제안
1912년 모로코, 프랑스와 페스조약을 맺고 프랑스 보호령으로 편입
1902년 소설가 나도향 출생
1895년 프랑스 소설가 장 지오노 출생
1895년 회계법 반포
1856년 크림전쟁 종식
1853년 네덜란드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 출생
1844년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폴 베를렌 출생
1758년 지우개 달린 연필특허
1746년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 출생
1493(조선 성종 24) 생육신 매월당 김시습(1435-1493) 사망
1445(조선 세종 27) 『태평요람』 완성
1108(고려 예종 3) 윤관 여진족 물리치고 개선
686년 원효대사 입적
불교를 대중화하여 중생을 구하는 일에 힘을 쏟은 원효대사가 686년 3월 30일 입적했다. 신라 진평왕 39년(617년)에 태어난 원효는 소년시절 화랑도에 몸을 담았으나 깨달은 바가 있어 31세 되던 648년(진덕여왕 2년) 황룡사에서 머리를 깎았다.
원효는 34세 때 의상과 당나라에 불교를 배우러가다 고구려군에 붙잡혀 귀환했다. 그는 10년 뒤 다시 의상과 도당길에 오르지만 여행도중 해골에 고인 물을 식수인줄 알고 먹고는 깨달음을 얻어 유학을 포기하고 서라벌로 돌아간다. “진리는 결코 밖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 는 깨달음을 얻은 이 일화는 유명하다.
또한 원효는 생전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현존하는 것만도 22권이며, 전하지 않는 것까지 포함하면 2백40권이나 된다. 그의 ‘금강삼매경론’ 은 중국 고승들로부터 세계적인 대작이란 절찬을 받았고, ‘대승기신론소’ 역시 중국 승려들이 ‘해동소’ 라 부르며 즐겨 인용한 명저였다. ‘십문화쟁론’ ‘유심안락도’ 등도 당과 일본에 큰 영향을 미쳤다. 원효의 사상은 화쟁사상, 일심사상, 무애사상으로 모아진다. 문화체육부는 신라시대 빼어난 학승이자 사상가요, 민중교화승인 원효대사를 1993년 6월의 문화인물로 선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