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3일 오늘의 역사
2019년 국방부와 경찰청, 제주 4.3사건 제주도민 희생에 대해 71년 만에 처음 유감과 애도 표시
2018년 남북평화협력 기원 남북예술단 합동공연 ‘우리는 하나’(평양)
2014년 프로배구 삼성화재 한국 프로스포츠 사상 첫 챔피언결정전 7연속 우승
2013년 북한이 개성공단 진입금지시킴.
2012년 미국 댈러스에 하루 동안 토네이도 12개 발생
2010년 애플, 태블릿 PC '아이패드' 출시
애플의 태블릿 PC(스크린을 손가락이나 펜으로 터치하는 식으로 조작할 수 있는 휴대형 PC) 아이패드가 2010년 4월 3일(현지시각) 미국에서 공식 출시됐다.
뉴욕·샌프란시스코 등 미국 주요 도시들의 애플 스토어와 전자제품 유통점인 베스트바이엔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었다. 하지만 이날 아이패드를 기다리는 행렬은 온라인 주문·배송이 병행되면서 3년 전의 아이폰 출시 당시 보다는 길지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이패드의 최고 마케터 역할을 해온 애플의 최고 경영자 스티브 잡스는 이날 실리콘밸리 지역의 애플 매장에 깜짝 등장했다. 그는 팔로알토 시내의 애플 매장에 검은색 후드와 청바지 차림으로 나타나 진열대를 둘러봤다.
타임스와 뉴스위크는 아이패드 시판에 맞춰 스티브 잡스를 커버스토리로 다뤘다. 워싱턴포스트는 “오바마가 아닌 사람이 두 주요 주간지의 표지를 동시에 장식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라며 스티브 잡스가 아이패드를 통해 새로 쓰는 역사의 의미를 보도했다.
이번에 판매에 들어간 제품은 16기가바이트(GB)가 499달러, 32기가는 599달러, 64기가는 699달러로 무선인터넷 사용이 가능하다. 애플 측은 아직 한국 출시시점을 확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국내에서 아이폰이 출시 4개월여 만에 50만대 이상 팔린 것을 참작하면 이르면 5월 출시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 업계의 전망이다.
한편 아이패드의 낸드플래시는 삼성전자, LCD 패널은 LG디스플레이 제품이 사용됐다.
2009년 민노총 회원들, 모터쇼 행사장서 선지 뿌리다 연행
2009년 4월 3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KIN TEX)에서 개막한 '2009 서울모터쇼' 행사장에서 민주노총 소속 회원들이 기자회견 도중 선지(동물의 피)를 뿌리는 퍼포먼스를 벌이다 경찰에 무더기로 연행됐다. 고양경찰서와 일산경찰서는 이날 민주노총 산하 전국금속노동조합 비정규직투쟁본부(본부장 김형우) 소속 회원 40명(고양서 16명·일산서 24명)을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과 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연행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이날 오전 11시쯤 킨텍스 1홀 3번 게이트 앞에서 비정규직 보호와 처우 개선에 관한 기자회견을 하던 중 기아차 모닝에 선지를 뿌리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이를 제지하던 의경을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행사장 건물 밖에서 진행되던 기자회견이 갑자기 시위 양상으로 변질돼 이들을 연행했다"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GM대우와 (기아차 모닝을 생산하는) 동희오토, 쌍용자동차, 기륭전자 소속 비정규직 등 50여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우리는)모터쇼의 그늘에서 강제 휴업, 임금 삭감, 대량 해고로 죽어가며 생계를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국의 자동차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피'로 만들어진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겠다"며 준비해온 모닝 1대에 선지를 뿌리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또한 "비정규직 무슨 죄냐, 우선 해고를 중단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경찰과 대치했다.
이날 개막식에는 한승수 국무총리를 비롯해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 이만의 환경부 장관,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미국대사, 윤여철 한국자동차공업협회 회장 등 주요 인사들이 참석했다.
2001년 김운용씨 IOC위원장 출마 성명 발표
김운용 대한체육회장 겸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집행위원(70)이 제8대 IOC위원장 출마를 공식선언했다.
김회장은 3일 GAISF(국제경기연맹총연합회) 사무국이 있는 모로코의 몬테카를로 메트로폴 팰리스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IOC는 주체하기 힘든 거대한 공룡의 몸집으로 변했으며 올림픽 기본 이념은 지나친 상업주의와 프로화로 훼손돼 이를 바로 잡기 위해 위원장 선거에 나선다” 고 선언했다.
미국올림픽위원회 최초의 여성 및 흑인 부위원장인 애니타 디프란츠(49)와 헝가리 외교관 출신의 팔 슈미트(59), 벨기에의 자크 로게 유럽지역 NOC 연합회장(59), 캐나다의 리처드 딕 파운드 세계반도핑기구 위원장(59) 등은 모두 출마를 선언하고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2003년 부위원장에 선출되었다
2001년 역사를 왜곡하는 일본 역사교과서 문부과학성의 검정통과
사실 왜곡과 과거 미화적 사관으로 우려를 낳아온 일본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의 2002년도 중학교 역사교과서가 2001년 4월 3일 문부과학성의 검정을 최종 통과해 2002년 부터 일선 중학교에서 교재로 사용됐다. 문부과학성은 이날 “해당 교과서에 대해 식민지배를 정당화한 부분이나 가해행위를 축소한 대목 등 총 137곳의 수정 지시를 내렸고 출판사측이 이를 수용함에 따라 합격 처리키로 결정했다” 고 발표했다.
문제의 교과서는 검정을 통해 한일합병이 합법적이었다는 기술이 삭제되고, 3·1운동에 대한 일제의 무력탄압 기술이 추가되는 등 많은 대목이 개선됐으나, 가해 역사의 기술을 최소화하고, 일제침략이 아시아 해방에 기여한 듯한 뉘앙스를 주는 등의 문제점은 여전해 계속 논란을 빚었다. 한국 정부는 이날 검정절차가 완료된 8종의 일본 중학생용 역사교과서 가운데 5종의 교과서가 군대 위안부 문제를 언급하지 않는 등, 우리의 관심 부분이 전반적으로 축소, 완화됐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일본 역사 교과서 1차 평가내용을 공개한 후, 성명을 발표, “일본의 일부 교과서가 여전히 자국 중심주의적 사관에 입각해 과거의 잘못을 합리화하고 미화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데 대해 깊은 유감의 뜻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고 밝혔다. 남경 대학살 등 일제와 악연이 많은 중국도 신화통신 발표를 통해 일본의 역사왜곡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한 데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2001년 한국문학번역원 개원
2001년 4월 3일 우리 문학의 번역 및 해외 출간사업을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담당할 한국문학번역원이 현판식을 갖고 공식 출범했다. 한국문학번역원은 이날 오후 종로구 평동 서진빌딩 5층 사무실에서 김한길 문화관광부 장관과 안병희 초대 국어연구원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현판식을 갖고 공식 업무에 들어갔다.
한국문학번역원은 기존 문예진흥원의 번역 관련 업무와 한국문학번역금고의 기능을 통합해 설립된 것으로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촉진하고 문학활동의 국제교류를 적극 지원한다. 특히 세계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우수 작품의 번역 출판을 지원하고, 국내외 번역전문가와 출판사, 문인, 한국학 연구단체 사이의 협력망과 포럼 구축을 지원한다. 또 국내외 젊은 작가들의 상호 연수와 교류를 통해 문학지평의 확대를 도모하기로 했다.
2000년 미국 연방지법, 마이크로소프트(MS)사에 반독점법 위반 판결
미국 연방지법이 2000년 4월 3일 마이크로소프트(MS)사가 개인용 컴퓨터 영체제(OS) 시장에서 갖는 독점권을 남용, 反독점규제법인 `셔먼법`의 주요항목들을 위반했다고 판결했다. 이에따라 지난 1998년 10월 미 법무부와 19개주 검찰총장이 합동으로 MS사를 대상으로 제기한 독점 여부에 관한 소송은 근 18개월 만에 원고측이 일단 승리를 거두었다.
이번 판결은 1999년 11월 MS사의 막대한 시장 지배력은 경쟁사에 손해를 끼칠 수 있다는 `사실 인정(Findings of Fact)`을 통해 어느정도 예견됐었다.
이번 판결의 기준이 됐던 셔먼 독점금지법은 경제력 집중을 막기 위해 1890년 제정된 법으로 경제 주체들의 활발한 자유경쟁이 시장경제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는 힘이라는 미국식 믿음과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1911년 록펠러가 소유한 `스탠더드 오일 트러스트`가 이에 근거해 34개의 기업으로 분리된 바 있다
2000년 `2000년 총선시민연대` 낙선대상자 86명 발표
총선시민연대가 2000년 4월 3일 낙선대상자 86명을 공개하고 본격적인 낙선운동에 돌입했다. 총선연대는 이날 정동이벤트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공천반대자 64명과 반인권전력인사, 납세비리자, 저질언행자 22명 등 모두 86명의 낙선대상자를 공개했다. 당별로는 한나라당 28명, 민주당 16명, 자민련 18명, 민국당 8명, 무소속 13명, 한국신당 3명이었다.
총선연대는 특히 이 가운데 22명을 `집중 낙선운동 대상자`로 선정, 총선연대 대표단이 총선기간중 지역구에 상주하며 버스투어나 전화걸기 등 총력을 기울여 낙선운동을 벌였다. 선거결과 낙선대상자 86명중 59명, 집중낙선대상자 22명중 15명이 낙선해 낙선율이 거의 70%에 육박해 총선연대 관계자들까지도 놀라게 했다. 특히 수도권의 경우 대상자 20명중 19명이 낙선하는 이변을 낳기도 했다.
한편 대법원은 총선 이듬해 2월, 16대 총선에서 총선시민연대가 벌인 낙선운동은 선거법 위반이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의 판결은 시민단체가 정치개혁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실정법을 어긴 데 대해 법원이 엄정한 법집행 의지를 강조한 것으로 풀이됐다.
1998년 제2차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영국 런던에서 개최(~4일)
제2차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이 1998년 4월 3일부터 4일까지 영국 런던에서 열렸다. 회의에서는 당시 가장 시급한 과제였던 아시아 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상호협력 방안 등을 논의했다. 그 결과 `아시아-유럽 신탁기금`이 설치됐다.
한국의 제안에 의해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구체적 지원방안으로 `고위 기업인 투자촉진단 파견 계획`이 발표됐다. 또 `아시아-유럽 비전그룹`이 공식 출범하게 되었고 그 의장국으로 우리나라가 선정됐다.
정부는 2차 아셈의 성과에 대해 1.우리 경제의 대외신인도를 제고하고 2.실리위주의 세일즈 외교를 전개했으며 3.아셈의 새로운 역할 정립에 기여했고 4.우리 정부의 대북 포용 정책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 확산 등을 꼽았다.
1998년 조영식 경희학원장 `간디평화상` 수상
조영식(77) 경희학원장이 1998년4월3일 간디평화재단이 수여하는 올해의 ‘간디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간디평화상은 89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설립된 간디평화재단이 매년 간디식 비폭력 세계평화주의 실현에 기여한 인물들에게 주는 권위있는 상. 지금까지 지미 카터, 미하일 고르바초프, 넬슨 만델라, 아웅산 수지 여사, 케니스 볼딩 교수 등이 수상했으며, 조 학원장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이 상을 받게 된다.
조 학원장은 82년부터 남북한 이산가족재회운동을 주도했고, 제36차 유엔총회에서 ‘세계평화의 날’ 제정을 제안해 86년부터 매년 9월 셋째주 화요일을 세계평화의 날로 만든 장본인이다.
간디평화재단은 “세계평화의 날 제정, 이산가족 재회운동, 평화복지대학원 설립 등 비폭력을 통한 평화 구현에 힘쓴 조 학원장의 노력을 인정한다” 고 시상 이유를 밝혔다
1997년 대한적십자사, 10억 상당 구호품 북한 발송
1996년 양평 남한강서 만원버스 추락 - 40여명 사상자 발생
3일 오후 5시 30분께 경기도 양평군 강하면 전수리 힐하우스 호텔 앞 308번 지방도 언덕길에서 양평읍에서 강하면쪽으로 가던 금강운수 소속 시내버스(운전사 김성환.35)가 길옆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50여m 아래 남한강으로 굴러 떨어져 운전사 김씨와 이현술씨(39.강하면 전수리) 등승객 19명이 숨지고 이덕우군(17.학생.강하면 성덕리 687) 등 45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날 사고는 양평읍에서 장날 승객과 하교길의 학생 등 60여명을 태우고 강하면으로 가던 시내버스가 사고 지점에서 갑자기 길 옆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언덕으로 굴러 떨어져 일어났다.
사고가 나자 경찰관, 공무원, 군인 등 2백여명과 육군 20사단 소속 헬기 및 고무보트 등이 동원돼 구조작업을 벌였으나 날이 어두워진데다 물살이 워낙 세고 수심이 깊어 구조에 어려움을 겪었다.
사고가 난 시내버스는 양평읍과 강하면 성설리 사이를 운행하는 버스로 이날은 5일마다 서는 양평 장날인데다 학교가 끝나는 시간이라 승객이 많아 피해가 컸다.
양평군은 사고가 나자 군청 재난관리과에 사고대책본부(본부장 민병채 군수)를 설치하는 한편 사고 현장에서 사망자 신원 확인과 부상자 이송 및 버스 인양작업에 나섰다.
1992년 방상훈 조선일보 부사장, 한국데이타베이스산업진흥회 신임회장에 추대
1992년 소설가 이병주 별세
소설가 이병주씨(71)가 1992년 4월 3일 오후 4시 지병으로 별세했다. 이씨는 원로이면서도 역사소설은 물론 당대현실을 민첩하게 작품화한 시대작가로 꼽혀왔다. 지난 1965년 44세의 나이에 중편 ‘소설 알렉산드리아’로 등단한 뒤 대하소설 ‘지리산’ 등 80여권의 소설을 펴냈다.
이씨는 일제 강점기부터 최근에 이르는 긴 체험을 바탕으로 우리 근.현대사의 이면과 진실을 독특하게 그려낸 언론인 출신의 역사소설가였다. 그의 작품의 특징은 스토리의 다양한 굴곡 속에서 오는 흥미와 그 핵심에 접근하는 독특한 역사의식과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변색되어 가는 인간상과 가치관을 신랄하게 비판한 것이다. 특히 그는 철저한 자료수집 없이는 집필에 임하지 않는 작가정신을 발휘, 후배작가들로부터 고집쟁이로 불렸다.
광복이후의 역사적 사건을 다룬 ‘관부연락선’ ‘산하’ ‘지리산’에 이어 지난 1987년 펴낸 ‘남로당’ 은 작가 개인에 의한 현대사의 완성으로 불릴 정도였다. “태양에 바래지면 역사가 되고 월광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는 명언을 자주 인용했던 그의 일생 역시 이제 역사가 됐다
1991년 영국 소설가 그레이엄 그린 별세
수많은 추리소설로 세계의 독자들을 사로잡았던 영국의 소설가 그레이엄 그린. 영국 런던 근교 버크햄스테드란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옥스퍼드대학을 졸업한 후 1926년부터 4년간 타임스의 부편집인으로 일했으며 1929년 발표한 소설 ‘내부의 나’가 호평을 받으면서 작가로 데뷔했다.
전 세계를 폭넓게 여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권력과 영광’ ‘제3의 사나이’ 및 ‘조용한 미국인’ 등의 작품을 만들어냈다. 이 작품들로 많은 갈채를 받았고 많은 작품을 영화화해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그의 작품들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토대로 신이나 종교, 또는 인간에 대한 심오한 통찰과 의문을 제기했고, 그 중 성공적인 작품은 상당수가 정치색채를 띠었다. 특히 그의 작품들은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면서도 번번이 탈락, ‘영원한 후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1983년 인수봉 등반사고 7명 사망
1981년 공정거래위원회 직제 공포
1979년 중국, 소련-중국상호원조조약의 폐기 소련에 통고
1979년 서울지검 율산그룹 신선호 사장 거액횡령혐의로 구속(율산사건)
1974년 긴급조치 4호 선포 (민청학련 사건)
박정희 대통령이 1974년 4월 3일 밤 10시 "반체제운동을 조사한 결과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이라는 불법단체가 불순세력의 조종을 받고 있었다는 확증을 포착했다"고 발표하면서 긴급조치 제4호를 발동, 학생들의 수업거부와 집단행동을 일체 금지시켰다.
구체적인 내용은 민청학련과 관계된 일체의 활동을 금지하고 관련자들은 영장 없이 체포, 구속해 사형, 무기, 5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한다는 전대미문의 야만적 내용이었다. 당시 민청학련이라는 명칭은 시위 유인물에만 존재하는 가상의 조직체였다.
1973년 8월 김대중 납치사건을 도화선으로 반독재-반유신체제 운동이 본격화되자 이에 앞장 선 대학생-지식인-종교인 등의 활동을 무마시킬 필요에서였다.
4월 25일 악명 높았던 중앙정보부는 민청학련의 배후에 공산단체인 인혁당 조직과 조총련계 일본공산당, 국내 좌파 혁신계가 복합적으로 관련돼 있다며 1,024명의 체포자 가운데 54명을 군법에 회부, 구속기소했다. 구속된 54명은 비상군법회의에서 인혁당 재건위 관계자 8명이 사형선고를 받고 1975년 4월 9일 새벽에 갑작스레 처형됐고, 민청학련 관련자 29명은 1심에서 사형 7명, 무지징역 7명, 징역 15~20년을 선고받았다가 2심과 대법원을 거치면서 감형돼 단계적으로 풀려났다.
당시의 재판은 발언 제지, 경고, 휴정, 퇴정 명령, 항의 소동 가운데 사상 유례 없는 빠른 속도로 진행됐으며 재판과정에서 강신옥 변호사가 변론 도중에 법정 구속되는 세계 사법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1979년 10월 26일 박대통령의 암살과 더불어 유신체제가 종언을 고한 뒤 이 사건으로 처벌받았던 사람들은 복권되었다.
1970년 격렬비열도 근해 간첩선 사건
1968년 브라질과 우루과이 잇는 꽁꼬르디아다리 완공
1968년 서산무장공비사건 발생
1967년 국가배상법 발효
1966년 일본 동경지방에 지진. 철도운행 1시간 중단
1965년 한-일 교섭 3대 현안(어업, 청구권, 교포지위) 요강에 가조인. 한-일교섭 일단락
1964년 미국 파나마와 국교 재개
1962년 아랍연합(아랍에미레이트) 등 6개국이 유럽경제공동체(EEC)에 대립하는 아프리카 공동시장 창설을 제안
1958년 한국정부 미국에 국토통일방안 각서 전달
1955년 미국-영국-프랑스 3국 유엔(UN) 군축위원회 소집 요구
1954년 부산진 대형 화재
1954년 4월 3일 부산시내 부산진으로부터 좌천동에 걸쳐 큰화재가 발생했다. 때마침 불어오는 동북풍에 세력이 강해진 불은 약 1시간30분간 만에 진화됐다.
이날 화재는 미군 소방관 입회하에 10여명이 송유관을 수리하고 있을 때 파열된 송유관에서 휘발유가 새어나와 개천일대에 유출된 것을 마을사람이 휘발유의 진부를 알기 위해 물통에 담아와 성냥불을 붙여보다가 발생했다. 처음엔 불이 붙지 않아 다시 개천으로 내려가 기름이 많은 곳에서 담아다 불을 붙이자마자 발화되어 이에 놀라 불을 끄기 위해 물통을 팽개친 것이 개천으로 흘러들어가 큰 화재로 번지게 된 것이다.
또한 휘발유 송유관에 구멍이 생긴 것을 미리 알고 있었음에도 이를 방치한 관계기관에도 책임이 돌아갔다. 이날 화재로 37명이 사망하고 140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전소가옥은 640동에 달하고 이재민은 3,711명에 달했다
1954년 한국산업은행 발족
1953년 TV가이드 창간
1952년 소련 쿠바와 단교
1950년 미국 작곡가 쿠르트 바일 사망
1950년 이범석 국무총리 사임
1948년 미국 의회 마샬플랜 가결. 대외경제원조법 성립
1948년 제주 4ㆍ3사건
제주도에서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여 일어난 인민항쟁.
단독선거 반대 투쟁에 나선 제주도민들에 대한 경찰 및 서북청년단 등 우익단체의 무차별 테러가 심하여 주민들의 분노와 불만이 고조된 상태였는데, 미군정 초기부터 지속된 인민위원회-대중들과 경찰-우익단체 사이의 갈등이 마침내 무장충돌로 발전하여 이후 한라산을 근거지로 하는 유격전이 1949년까지 전개되었다. 남로당의 김달삼이 주도.
4.3사태 당시 주장은 미군철수, 망국단독선거 절대반대, 투옥중인 애국자석방, 이승만 매국도당 타도, 경찰대와 테러 집단 철수’ 등이었는데 토벌대의 초토화 작전에 의해 유격대와 주민이 상당수 살상 당했다. 토벌대의 공식 발표에 따르더라도 ‘폭도 사살 약 8천명, 포로 약 7천 명, 귀순 약 2천명, 군경 전사 209명, 부상 142명, 이재민 약 9만명, 민간사상자 3만명’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제주도는 5.10 선거를 치르지 못했고, 제주도 파병을 거부하는 여순반란 사건이 일어났다
1948년 통일독립운동자협의회 결성
1938년 숙명여자전문학교 설립
1936년 역사가 호암 문일평 사망
1930년 독일의 정치가 콜 출생
1925년 중앙도서관 개관(장서 1만2000권)
1923년 일본 공산당 기관지 `적기` 창간
일본공산당 합법기관지 `적기`가 1923년 4월 3일 창간됐다. `적기`는 3월호로 종간한 `전위`와 학술잡지 `사회주의연구`, 1922년 11월호 이래 재정난으로 휴간하고 있는 `무산계급`의 3개 잡지를 통합, 새로운 기관지로 창간됐다.
그러나 4월 7일 내무성은 `적기`라는 문자는 혁명을 의미하기 때문에 즉시 명칭을 바꾸라`고 통보했다. 더욱이 6월 5일 제1차 공산당사건으로 적기사가 경찰에 압수수색을 받아 편집부 전원이 검거됐다. 이 때문에 `적기`는 불과 3개월간의 당기관지로 끝을 내렸다
1922년 스탈린 소련공산당 초대 서기장 취임
1922년 4월 3일, 스탈린이 소련공산당 초대 서기장에 취임했다. 스탈린의 권력장악을 예고하는 신호탄이었지만, 서기장이 전날 열린 공산당대회에서 막 신설된 직책이다보니 이 같은 상황을 예측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서기장은 서기국의 장(長)이고, 서기국은 원래 정치국에 배속돼 있다가 업무가 많아지면서 독립한 기구였다. 이때만 해도 서기장은 여러 직책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으나 곧 핵심으로 자리잡으면서 소련 공산당이 붕괴될 때까지 최고 권력을 행사해왔다.
스탈린은 레닌의 병이 악화된 틈을 타 서기장의 위상을 높이며 권력기반을 급속히 강화해나갔다. 스탈린은 시베리아에서 4년간 유배생활을 했다는 것 말고는 딱히 내세울 것이 없는 혁명가였다. 마르크스 이론에 밝은 것도, 조직활동이나 연설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볼셰비키와 멘셰비키가 갈등할 때 레닌의 볼셰비키를 따른 것은 두고두고 스탈린에게 행운이었다. 서기장 취임도 레닌이 추천한 덕분이었다.
1924년 레닌이 사망하자 스탈린은 카메네프, 지노비예프와 3두체제를 결성, 최대 정적 트로츠키를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스탈린의 포악한 성격을 문제 삼은 레닌의 유서가 뒤늦게 알려졌지만 이미 권력은 스탈린의 손에 넘어간 상태였다. 뒤이어 지노비예프와 카메네프가 축출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1929년 음모와 모략으로 반대파를 제거한 스탈린은 소련의 절대 권력자로 올라섰다. 스탈린은 강제징수한 곡물을 토대로 급속한 공업화에 성공했고, 곧이어 '피의 숙청'을 시작했다. 1936년~1939년 사이에 139명의 당중앙위원 가운데 98명이 총살되고 1,966명의 대의원 중 1,108명이 체포됐다.
권력 외에는 관심 없었던 스탈린은 평소 검소하고 절제된 생활을 유지하며 철권통치를 이어나갔다. 집권 24년 동안 그의 권력욕을 위해 시행된 정적제거와 국민 탄압으로 소련은 그야말로 동토가 됐다.
1906년 서울~신의주 499km 잇는 경의선 개통
1906년 4월 3일, 서울과 신의주를 잇는 총 길이 499km의 경의선이 개통됐다. 이어 1908년 4월에 부산∼신의주 간 급행열차 융희호(隆熙號)가 운행되고 1911년 11월에 중국 안동∼신의주 간 압록강철교가 완성돼 부산을 떠난 열차가 만주까지 달리게 됨으로써 일제는 바야흐로 대륙진출의 확실한 교두보를 마련하게 됐다.
이 결과 도쿄를 출발한 여행객과 물자가 시베리아까지 갈 수 있게 됐고 1913년에는 런던행 여행티켓까지 발매했다. 당초 경의선은 프랑스 파브릴사와 한국인이 운영하는 대한철도회사에 부설권이 있었으나 이 회사들이 자금조달에 곤란을 겪으면서 권리가 소멸돼 어정쩡한 상태에 놓여있었다.
이 틈을 타 평소 경의선 부설이 대동아공영권의 명운을 좌우한다고 믿어온 일본은 러일전쟁 발발과 함께 철도대대를 상륙시켜 불법으로 경의선 부설에 착수했다. 일본의 강요는 결국 우리 정부로 하여금 50여년간의 임대조약을 맺어 부설권을 일본에 넘기게 했다. 철도사에 유례가 없는 2년이라는 짧은 공사기간, 6만2000원에 불과한 마일당 건설비(당시 세계철도 평균치 16만원)는 일본의 토지수탈과 강제동원으로 보충했다
1898년 미국의 잡지 발행인 루스 출생 - 타임지, 포춘지, 라이프지
1897년 독일 작곡가 브람스 사망
1881년 이탈리아 총리(1945-53) 데 가스페리 출생
1860년 미국, 포니 익스프레스(Pony Express : 조랑말 속달우편)제도 가동 시작
1783년 미국 최초의 단편 소설작가 워싱턴 어빙 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