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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마음 쉼터 스크랩 사람의 마음과 말(마태복음 12:33-37)
꿈나무 추천 0 조회 49 11.06.04 06:1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향해 그들이 성령을 대항하는 용서 받지 못할 훼방 죄를 지었다고 격렬하게 비난한 직후 말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예수님을 정죄하는 대부분의 말들이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에 의해 저질러졌고 그들은 예수님을 향해 사탄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낸다고 비난했다.

지금 예수님은 가장 엄숙한 경고 중의 하나를 말씀하시고 그 과정에서 사람들의 마음의 성격에 대한 진리를 설명하신다.

 

 

33절에서 예수님은 나무도 좋고 실과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실과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실과로 나무를 아느니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나무와 그 열매가 일치한다는 명백한 격언을 예로 들면서 짧은 비유로 경고를 시작한다.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산출하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산출한다.

 

하라고 번역된 그리스어 포이에오는 여기서 상징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영어 번역에서 “make” 로 사용된 이 말은 진흙으로 그릇을 굽거나 나무로 의자를 만드는 것처럼 어떤 것을 물질적으로 창조하거나 건설하는 것을 가리킨다.

영어에서처럼 이 말은 어떤 것에 대해 마음에 작정하는 생각이나 평가나 판단을 비유적으로 언급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일반적 지적은 너희들이 나와 내 사역에 대해 너희 마음을 확정해야 한다 내가 악한 일을 한다고 하든지 내가 선한 일을 한다고 하든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 나는 악하면서 선한 일을 할 수 없고 선하면서 악한 일을 할 수 없다 만일 내가 선한 일을 한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며 내가 만일 악한 일을 한다면 사탄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어떤 악한 능력도 부어주시지 않으며 사탄은 어떤 선한 능력도 부어주지 않는다라는 것이었다.

 

예수님의 특별한 지적은 병과 죽음은 너희들이 스스로 인식하는 것처럼 죄의 결과다. 귀신이 들린 것은 명백히 사탄이 하는 짓이요 악한 일이다 그러므로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일으키며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죄의 파괴적인 역사에서 인간을 구출해 내는 선한 일일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내가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한 것이지 사탄의 능력에 의한 것이 아니다 너희들은 내가 사탄의 능력으로 선한 일을 한다고 비난하지만 너희들은 성령의 사역을 사탄에게 돌리는데 그것은 최고로 용서 할 수 없는 훼방이요 모독이다라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다시 자기 의를 가진 바리새인들의 완악한 마음과 비논리를 공개적으로 드러내었다.

예수님이 지적하신 것처럼 자신의 사역은 자신의 선과 신적 능력을 증명하였다.

요한복음 5:36에서 예수님은 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 곧 나의 하는 그 역사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거하는 것이요라고 하였다.

 

 

34절 전반부에서 예수님은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라고 반문하셨다.

 

예수님은 선하고 나쁜 나무의 비유를 직접 바리새인에게 적용시키면서 너희는 측량할 수 없이 나쁜 나무들 보다도 더 나쁘다. 너희들은 진실로 독사 새끼들이다라고 하셨다.

 

이것은 세례 요한이 세례 받으러 자신에게 나왔던 위선적인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에 대해 사용했던 말과 같은 것이며 예수님이 성전에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 대항하여 선포한 의 시리즈에서 사용했던 것이다.

 

거짓된 부도덕을 전파했던 자들은 그것이 드러날 때 크게 저항한다.

그러나 그 저항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신자들이 그런 자들의 악을 드러내는 것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

사랑과 겸손의 이름으로 우리가 거짓 희망을 사람들에게 주는 종교나 철학을 드러내는데 실패하거나 도전하기를 실패할 때 우리가 사랑이나 겸손을 가진 것이 아니라 죄를 짓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들의 죄가 위선적이며 자기 의를 갖고 있으며 훼방적이었을 때 그들의 면전에서 그들을 정죄하는데 주저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죄에서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지만 그들의 심각한 잘못을 소극적으로 다루므로 그들이 그 잘못을 강화하도록 돕기 위해 오지 않았다.

예수님은 인기에 연연하지 않았고 사람보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데 관심을 두셨다.

예수님은 악을 행하며 그 죄를 최소화하려는 자들에게 격려를 주므로 사람을 좋게 하지도 않았고 그런 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고 하지도 않았다.

 

바리새인들을 독사 새끼라 부르는 것은 그 당시 모든 사람이 이해했던 강력한 탄핵이었다.

독사는 팔레스타인과 지중해 연안에 서식하는 독사에 대한 일반적 통칭이었다.

독사는 독으로 사람을 죽일 뿐 아니라 속임수를 쓴다.

그 독사들은 바위나 나무 가지에 스스로를 감아 갑자기 공격했다.

어미 독사는 일반적으로 많은 알을 낳고 그 알에서 독사새끼들이 벌레처럼 기어 나온다.

 

바리새인들은 종교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위험했다.

독사새끼들처럼 그들은 이곳 저곳을 쑤시고 다니면서 그들이 만든 전통을 사람들에게 전수하여 가르쳤다.

후에 마태복음 23:15에서 예수님은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라고 그들에게 말했다.

그들의 비성경적이며 율법적인 전통은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항하여 동료 유대인들의 마음에 독을 뿌렸고 그들의 위선적 자기 의는 다른 사람들에게 꼭 같은 악한 자세를 퍼뜨렸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본성적으로 너희들이 악한데 어떻게 훼방과 불 경건이 너희에게 기대되지 않겠느냐? 너희들이 선한 것을 말할 수 있겠느냐?”라고 하셨다.

악하다는 것은 악할 뿐이기 때문에 악만 산출하는 인간 본성적 마음의 타락을 가리킨다.

 

이것은 사람의 죄로 인한 타락한 인간 유산이다.

로마서 3:9-10 12절과 23에서 바울은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3:9-10) 다 치우쳐 한 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3:12)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3:23)”라고 로마 교인들에게 설명했다.

 

구약 역시 인간의 악한 마음을 확실히 보여준다.

아담의 죄로부터 인간은 미움과 타락과 살인과 거짓말과 모든 다른 악으로 특징되었다.

다윗은 시편 51:5에서 자신이 죄의 성질을 뱃속에서부터 물려받았다고 하였다.

예레미아는 예레미아 17:9에서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고 선언했다.

 

 

34절 후반부-35절에서 예수님은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고 하였다.

 

마음에 있는 것을 입으로 말한다는 말은 인간에 대한 성경적 원리를 가장 기본적으로 보여준다.

인간 내부에 있는 것을 그 입이 외부로 증거한다.

야고보는 야고보서 3:2에서 입으로 죄짓지 않는 사람은 완전한 사람이라고 하였다.

 

이 원리에 대한 가장 직접적 예는 바리새인들의 마음에 품은 악이 성령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었던 예수님을 사탄의 힘으로 그렇게 했다고 비난하여 성령을 모독하고 훼방한 데서 볼 수 있다.

그 바리새인들은 악한 말을 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의 마음이 악으로 가득 찼기 때문이다.

그들 자신의 말로 그들은 스스로를 정죄했다.

 

성경에서 마음은 감정의 자리 이상의 생각과 의지의 자리다.

마음은 어떤 사람의 인격을 나타내며 그가 말하는 것은 그의 마음자리가 어떤지를 나타낸다.

말할 때 그 입은 단지 마음에 있는 것을 재생산할 뿐이다.

같은 상징을 사용하여 예수님은 마태복음 15:18-19에서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라고 설명했다.

 

가득한 것이라는 말로 번역된 그리스어 명사 페리세우마는 크게 풍부함을 가리키며 넘치도록 채워지는 것을 말한다.

예수님의 상징을 따라 말하면 마음으로부터 가득 채워진 생각들이 말의 형태로 입을 통해 나온다.

마음에 가득한 것은 입으로부터 흘러 넘친다.

 

어떤 사람에 대항하여 나쁜 뜻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느낌을 말로 표현한다.

정욕적인 생각으로 가득 찬 사람은 그들의 생각을 행동이나 말로 나타낸다.

계속적으로 분노하며 미워하는 사람들은 말로 그들의 느낌을 드러낸다.

같은 방법으로 참으로 사랑하고 친절하며 생각하는 사람들은 말이나 행동으로 그들의 느낌을 나타낸다.

 

엘리후는 욥이 자신의 죄를 확신하도록 촉구하였던 세 친구들을 오랫동안 기다린 후 그 마음에 있는 것을 말했다.

욥기 32:18-20에서 그는 내게 말이 가득하고 내 심령이 나를 강박함이니라 보라 내 가슴은 봉한 포도주 같고 세 가죽 부대가 터지게 됨 같구나 내가 말을 발하여야 시원할 것이라 내 입을 열어 대답하리라고 하였다.

 

야고보는 그 원리를 이해하여 혀에 대한 힘있는 경고를 하였다.

야고보서 1:26에서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제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 것이라라고 하였고

3:8에서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고 하였다.

바울은 로마서 3:13-14에서 인간의 타락한 성질에 대해 저희 목구멍 열린 무덤이요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입술에는 사의 있고 에는 저주와 악독 가득하고라고 하였다.

입은 마음의 궁극적 표현이다.

잠언 23:7에는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그가 너더러 먹고 마시라 할지라도 그 마음은 너와 함께 하지 아니함이라고 하였다.

 

이 원리를 확장하여 예수님은 그 적극적인 면과 소극적 면을 말했다.

35절에는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고 하였다.

 

쌓은이라고 번역된 그리스어 태사우로스라는 말은 창고 또는 보물 창고를 의미하는 것으로 여기서는 말의 창고를 가리킨다.

어떤 사람의 마음은 그의 생각과 야망과 욕망과 자세와 충성의 창고다.

입은 그 마음의 창고에서 그 쌓은 것을 끌어낸다.

선한 마음의 창고에서 선한 것이 나오고 악한 마음의 창고에서 악한 것이 나온다.

야고보서 3:11에는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뇨라고 하였다.

 

 

36-37에서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고 하셨다.

 

사람들의 말이 그들 마음의 정확한 척도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심판 날에 그들의 말에 대하여 심문을 받을 것이다.

그들의 말로 어떤 사람은 의롭다 함을 받고 어떤 사람은 정죄함을 받게 된다.

구원과 정죄는 말과 행위에 의한 것이 아니지만 그들은 그 말과 행동에 의해 드러난다.

말과 행동은 어떤 사람의 영적 조건에 대한 객관적 증거다.

심판 날에 예수님이 누가 그 영원한 나라에 속한 것인지 아닌지를 평가할 때 그 기준은 그 사람의 말을 포함할 것이다.

 

구약과 신약의 일치된 가르침은 구원이 믿음을 통한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한다.

예수님의 지적은 말이 구원과 정죄의 기초라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참된 증거라는 것이다.

구속 받은 사람들의 말은 다르다.

왜냐하면 그들의 말은 새롭게 된 마음에서 우러나오기 때문이다.

순수하고 전심으로 찬양하는 말은 새 마음에서 나온다.

 

우리는 선한 행위로 구원 받은 것은 아니지만 선한 행위를 위해 구원 받았다.

로마서 10:10에는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라고 하였고

15:18에는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기 위하여 나로 말미암아 말과 일이며 표적과 기사의 능력이며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라고 하였다.

구원은 선한 말을 산출할 것이다.

그런 이유와 그런 의미에서 말은 의롭다 함이나 정죄함을 가져온다.

 

불 경건한 사람은 그들의 말에 대해 영원히 정죄 받을 것이다.

그들이 말한 것은 중생 받지 못한 그들의 마음의 충분한 증거다.

예수님은 훼방과 같은 극단에 이 경고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부주의하게 말한 모든 것에 대해 심판 날에 설명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무익한이라고 번역된 그리이스어 아르고스의 기본적인 의미는 쓸데 없는, 비 생산적인, 가치 없는이라는 뜻이다.

그와 같은 말은 응답할 필요가 없는 부적합한 말들을 포함한다.

위선적인 말들도 주의 없고 가치 없는 말에 포함된다.

비록 자기 의식을 가지고 전통적이고 도덕적이며 복음적인 단어를 쓸 때에도 그들의 말이 하나님 앞에서 주의 없고 가치 없는 것일 수도 있다.

그와 같은 계산된 위선은 더 큰 심판을 받을 것이다.

 

기독교인의 말은 마음에서 하나님이 변화시켰던 역사를 반영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인간성 때문에 계속적인 주의를 필요로 한다.

시편 141:3에서 시인은 여호와여 내 입 앞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라고 기도했다.

 

그러나 불신자들의 구속 받지 못한 마음에서 나오는 모든 말은 영적 가치에 관해 무가치하다.

그들의 악한 말들은 명백히 가치가 없다.

가장 일반적 악한 말들 가운데는 정욕과 속임수와 저주와 압제와 거짓말과 파멸과 허영심과 험담과 어리석음과 다변과 자만과 천박한 말과 미움 등이 있다.

 

불신자들의 주의 깊지 못하고 무가치한 말들은 역시 선하게 보이는 것들을 포함한다.

왜냐하면 그 말들이 구속 받은 의로운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선한 것도 악한 마음에서 나올 수는 없다.

 

사람은 그 자신의 말을 들음으로 자신의 영적 조건을 체크할 수 있다.

기독교인은 악한 행위에 빠질 수 있는 것처럼 악한 말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습관적인 말은 그들의 습관적 행동이 의로워질 것처럼 순수해 질 것이다.

 

이 메시지가 구원 받은 사람과 구원 받지 못한 사람, 즉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 모두에게 적용되지만 여기서 예수님은 훼방하고 모독하는 바리새인들에 의해 극단적으로 나타나는 불신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불신자들에게 심판의 날은 정죄 받을 궁극적이고 영원한 심판에서 정점을 이룬다.

기독교인들의 죄는 갈보리에서 해결되었고 그리스도의 구속하는 피가 그들의 신앙으로 사함을 얻게 한다.

모든 기독교인은 구원 받은 후에 그 혀로 죄를 범하지만 그리스도의 희생은 그들이 저지른 다른 모든 죄를 덮고도 남는다.

그러나 불신자의 악한 말과 행위는 그들을 대항한 증거로 남을 것이다.

 

요한 계시록 20:12 15절은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으니…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라고 하였다.

생명 책에 불신자들의 이름은 열거되지 않았고 그들은 불못에 던져진다고 하였다.

 

과학자들은 소리의 파동이 결코 완전히 없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인간 역사에서 말해지는 모든 것은 영원히 남아 다시 재생될 것이다.

인간의 모든 말과 행위는 오는 심판에서 증거로 사용되도록 완전히 보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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