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냇가에 버티고 서 있는 해오라기(백로), 너는 무슨 일로 그렇게 하루 종일 거기에 서 있느냐. 아마도 물 속에서 노는 고기를 노리고 있는 모양인데, 물 속에서 무심히 천진스럽게 놀고 있는 고기를 엿보아 어떻게 하자는 것이냐? 생각건대, 해오라기 너나 물고기나 다 같이 같은 물에서 살고 있는 사이이니, 좀 잊어 버리는 것이 어떠하냐"
동족이나 한 이웃이나 마찬가지인데, 그렇게 잡아먹으려고 기를 쓰는가 말이다. 제발 살생(殺生)일랑 그만 두었으면 좋겠다. 인간 세상에서 서로 물고 뜯는 일도 좀 없었으면 좋겠구나.
작자는 선조 임금으로부터 영창대군의 보필을 부탁받은 , 이른바 유교 칠신(遺敎七臣)의 한 사람이다. 그가 계축화옥(광해군이 영창대군을 죽이고, 인목대비를 폐모시킨 사건)에 연루된 관계로 파직 유배되었으며, 대북(大北)과 소북(小北)파의 피비린내나는 당쟁의 소용돌이를 겪었으니, 이 시조도 그것을 개탄한 것이다.
또 한편으로 보면, 초장의 '해오랍아'는 '권력자'를 상징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중장의 '고기'는 '해오라비'에 대한 희생물로서 약자를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종장의 ' 한 물'은 '한 나라 · 공동체'를 뜻한다. 즉, 약육강식의 권력구조의 표본을 보여주는 것으로, 그러한 비인간적인 사회의 풍습을 꼬집으며 훈계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당대의 사회적 현실을 직설적으로 공박하지 않고, '냇가의 해오라기'와 '물 속의 고기'에 은유하여 점잖게 풍자한 데에서 작자의 대학자적인 풍모가 엿보인다.
* 해오랍아 → 해오라기(백로)야 * 무스 일 → 무슨 일로 * 여어 → 엿어, 엿보아서, 노려보아 * 무슴하려는다 → 무엇하려느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