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혈연이었지~~/ 임 선영
동고도리 익산 금마
우리 아버지 탯줄을 이빨로 끊었다는 쌈 할머니 살던 옴팡집도 있고 초가집도 있고 기와집도 있고
양철집도 있고 똥찍간도 있고 거기서
옹기종기 모여 살고 모여 들어 추억을 만들던 남은 언니 오빠 동생들
전주에 "궁" 이라는 한식집에 초대되어 조카 가 내는 한 턱을 먹는
감개가 무량한 날이다.
떠난 사람들 가득하지만 남아있는 인연들 모여들어 옛 추억 젖는 날.......
그 아들 낳은 언니 선 보는 날 선 보는 남자 보고 싶어 달려와 급히
변을 보다가 똥항에 빠져
고자리 득실득실하던 다리를 옥담집 뒤 냇물로 데려가
" 방정맞은 이 가시네 이 좋은 날 무신 수선야, 이년아!"
하시면서 머리 쥐여 박으며 씻기던 엄마 그리워 그리워
가슴을 울렁대며 눈물 나올라하여 이름도 멋지게 달라진 화장실에 가
소리 없이 눈물 훔치는 날~~~~
대문이 동네에서 제일 크다하여 대문집, 대나무 숲 속에 집이 있다 하여 대섭집
양철 지붕을 하고 동네 가운데 있다 하여 간데 집 또는 양철집, 사정거리 사거리에
논과 밭 다 지니고 있다 하여 사정거리 집, 아저씨가 전주 형무소에 다닌다 하여
형무소집, 늘 빨래를 하고 다니던 한샘 옆에 시집가 산다 하여 한샨말 고모집
우리 집 뒷집은 옛날 포도청 감옥이 있던 자리라 옥담집
곤형, 장형, 팔다리를 뿌려트리는 주리형 틀어서 죽던 사람 많아 집터가 세다고
소문난 그 집은 27 연대 연대장을 하던 오빠가
거기에 제일 크고 현대식의 멋진 한옥집을 지어 살았었다.
군인들 잔치하는 날이면 솜씨쟁이 우리 엄마는 불러가서 집엘 안 오시면
손님 있다고 못 오게 하니 가지는 못하고 우리는 무서워서 뒷집에 대고
엄마엄마 부르며 울다 잠들던 밤.
임씨네 집성촌 금마면 동고도리, 그야말로 옹기종기 모여 살며
대문 열고 동네가 유치원이었고 마당이 놀이터였고 친척이 친구이고
동네가 내 집이라 집에 아무도 없어도
" 큰 엄마 배고파요 집에 아무도 없어요" 하면
" 아이고 이리 오너라 배고프지 새끼 놓고 어디 갔다냐
장 보러 전주 갔다냐 솜리 갔다냐 " 하던
꿈 같던 시절 이렇게 만나는 날은 난 나이를 잊고 그 요새말로 그 돈 생기지 않는
쓰잘 떼기 없는 옛일에 젖어 젖어 입을 놀리지 않으면 손가락이라도
움직여 글이라도 써 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말 공장 글 공장 노인네가 되었다.
그 옛날 할아버지들 경성사범을 나오셔서 사정거리 할아버지도 교장 선생님
지경에 사시는 막내 할아버지도 교장 선생님 너무도 인물들 출중하셔서
집안에 하얀 두루마기 입고 흰 고무신 신고 지팡이 들고 들어서시면
각 집안 며느리들 코가 땅 닿도록 절하며 지팡이 받아 마루 끝에 얌전히 놓고
반주 상 차려 할머니랑 놓아드리고 흰 고무신 우물가에 가지고 가서
더 깨끗이 닦아 마루 끝에 엎어 놓으면 하룻밤 주무시고 가시는 날은
아끼던 비단 이불 사랑방에 깔던 날 노란 귀여운 놋요강 머리맡에 놓이고
호야 불 켜 놓고 나오시면 들어가신 할아버지 기침 소리, 아~ 그리운 그 소리.
잔칫날 갔았었지~~~ 난 그런 날들을 잊을 수가 없어, 그 나이 된 지금
그 회상을 먹고 쓰고 그리며 산다.
소중하고 그립고 그 멋진 지금은 누구도 경험할 수 없는 추억의 재산들...
다~~~~ 보고 싶어 어느 날은 눈물을 줄줄 흘리는 세월이다.
그 기억을 되살리게 하는 혈연들 만나는 날.....
햇빛 보게 낳아 놓고 잘 길러 지방의 아픈 이웃들 돌 봐 주워 자랑스러운 조카 키워놓고
다른 나라로 떠나신 언니의 혈연이 얌전한 맛깔스러운 전주 음식을 먹여주고
나누어 주는 선물을 가득 안고 올라오며 참 인연의 소중함이 가슴을 울린다.
우리 집안으로 시집 온 며느리 한 분이
" 시집 오고 보니 임 씨가 참 크게 출세 한 사람은 없어도 머리 좋고
참 양반스런 집안이에요"
"그렇고 말고"
그 소리가 어찌나 다정하고 정스런지 가슴을 찡하게 만든다.
"이렇게 예쁘게들 잘 사는데 다들 어디 간 거야 보고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