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송정역을 오가는 날씬한 미녀, KTX
대전 발 0시 50분 새벽 열차, 숨이 차면 쉬었다 떠났다. 송정리역에서 기차가 쉬는 참에 화부들은 기관(汽罐)의 조개탄을 갈았다. 이때다. 차창 가에는 순간에 상인들이 엉겨 붙었다.
“김밥이요, 김바압…. 계란 있어요 삶은 달갸알….”
“내 배 사세요, 가고1)배요, 나주 배….”
“군밤이요, 뜨끈뜨끈한 군바암 있어요. 군고구마 있어요.”
꽤-액 꽤-애액…. 정말로 기차는 화통을 삶아먹었나 보다. 목청을 돋우며 목포로 떠나는 밤이었다. 증기 기관차는 미카 몇 호던가. 조개탄에 그을려 차량 번호도 보이지 않는다. 기차는 떠난다며 목쉰 소리로 또 ‘칙 칙 폭 포, 칙칙 폭포’ 숨을 고르다가 ‘꽤-액 꽤-애액’ 목청을 돋구며2) 떠났다.
이때다. 넝마바구리가3) 땅에 끌리듯 달려갔다. 기차의 배설 찌꺼기 조개탄을 뒤지러 달려가는 꼬마치4)들이다. 어프러지고,5)다치고, 얻어듣는6) 일은 안중에도 없는 꼬마치들. 먼저 달려가 불이 벌건, 덜 탄 조개탄을 주워야 했다. 몇 푼의 돈이 그냥 타고 있기 때문이다. 솜털이 보얘야 할 얼굴에서 반짝반짝 석탄 윤이 났다. 똥그란 두 눈동자가 함께 반짝였다. 옷에서도 석탄 검정 윤기만이 반지르르 흘렀다. 50, 60년대 송정리역에는 아이들의 모습이 우리 생활 형편의 거울이었다.
지난 세월은 그리움인가.그때 그 모습조차도 기적소리와 함께 그리움으로 맴돌고 있다. 세월 먹고 변천한 송정리역! 역명도 송정리역→ 송정역→ 광주송정역으로 바뀌었다. 바뀐 건 또 있다. 전남 광산군 송정리에서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동으로 주소도 바뀌었다. 세월은 KTX인가 보다. 도마뱀처럼 제 꼬리를 자꾸자꾸 짤라7)먹고 변신을 거듭한다. 속력도 자꾸 빨라진다. 지금 오가는 KTX는 날씬한 미녀처럼 흔적 없이 왔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방언>
1) 가고 ‘바구니’의 방언(강원, 전남, 충북).
2) 돋구다 위로 끌어 올려 도드라지거나 높아지게 하다. ⇒규범 표기는 ‘돋우다’이다.
3) 바구리 ‘바구니’의 방언(경남, 전라, 제주, 충청).
4) 꼬마치 ‘꼬마’의 방언(전라).
5) 어푸러지다 ‘엎어지다’의 방언(전남).
6) 얻어듣다 ‘꾸중을 듣다, 꾸지람을 듣다’의 방언(전남).
7) 짜르다 동강을 내거나 끊어 내다. ⇒규범 표기는 ‘자르다’이다.
첫댓글 조개탄으로 가던 그 증기기관차는 빛바랜 추억의 사진으로 나에게도 가슴 깊이 남아 있습니다. 서울역에서 야간 열차를 타고 세월아 내월아 가노라면 어느덧 대전역에 도착했지요. 대전발 0시 50분의 주인공이었습니다. 호남선과 경부선이 이곳에서 선로를 바꾸느라 정차 시간이 여느 역보다 길었던 모양입니다. 열차가 멈추자마자 사람들은 마치 달리기경주의 출발점처럼 이때다 싶게 뛰어나갔어요. 그들이 향하는 곳은 역 플랫폼에 성냥갑처럼 지어진 작은 가락국숫집이었습니다. 멸치를 우려낸 육수에 툭 담긴 평범한 국수였어요. 고명으로 얹어진 유부, 쑥갓 조금, 약간의 김 부스러기, 고춧가루가 몇 개 둥둥 떠 있었습니다. 면은 익은 듯 설익은 듯 가늠하기도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열차가 떠날까 봐 뒤돌아보며 먹는 그 맛은 특별했지요. 시장하던 탓에 후루룩 젓가락에 말아 넘기면 언제 목구멍을 넘어갔는지 간 곳이 없었습니다. 먹지 않으면 마치 큰 손해라도 볼 것처럼 모두들 허겁지겁 서둘렀어요. 출발을 알리는 역무원의 호루라기 소리에 입가를 훔치며 우르르 뛰던 그 시절의 풍경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던 이야기 입니다. 저는 손대기 쯤의 나이에 엄마 따라 기차에서 부라보콘 먹었던 달콤한 기억이 납니다.
아득한 옛날이 아니지요
엊그제 같습니다만 세월은 미녀를 데려왔네요
비둘기호 통일호
우등열차 새마을호 KTX
비둘기타고 서울 맨처음갈때가72년도인것 같네요
10시간 남짓 갔어요 지금도 각인된것은 오산 미군비행장 불빛이 엄청나게 많았던것이 남아요 계란 사먹었지요
내려올땐 대전역에서 가락국수 어찌나 맛있던지 꿀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