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해설 시간 이미지의 재생과 서정적 자아 인식 --홍중완 시집 『해 오름』 김 송 배 (시인. 한국문인협회 자문위원) 1. 우주 섭리와 전환점에 대한 인식 일찍이 노르웨이 해양학자 난센은 그의 저서 『일기』에서 인생에 있어서 제일 큰일은 자기를 발견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대들은 고독과 사색이 때때로 필요한 것이라는 말로 우리들에게 현실적인 적절한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자신에 대하여 돌아보거나 사유(思惟)하는 정점에는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성에서 재생하는 체험의 산물(産物)로써 지나간 추억으로 인해서 형성된 현상은 우리들의 생활현장뿐만 아니라, 인생관이나 가치관 정립에도 상당한 영향력이 가미되는 것은 미국의 사상가 에머슨의 말처럼 인간은 모두 삶의 도상에서 분투하는 탐구자이기 때문이다. 여기 홍중완 시인이 상재하는 시집 『해 오름』의 원고를 일별하면서 이러한 눌변(訥辯)을 먼저 늘어놓는 것은 작품 전체에서 풍기는 시향(詩香)이 그가 존재해온 지금까지의 시간성에서 모든 형태의 정서가 그의 지성적인 지각으로 투영시킨 차원 높은 시혼(詩魂)들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습관으로/ 함양하는 모습과 자발적인 참된 인격은/ 어느 새 세월을 지나보면 모두의 노력이다.(「새기는 마음」 중에서)”라는 그의 내심(內心)과 같이 이 시집 전체의 작품의 흐름은 바로 자발적인 참된 인격을 위한 노력을 암묵적으로 적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하나 둘 헤아려 보았던가봐 늘상하게도 눈 익음을 맞추노라면 온누리는 오름에 자욱과 박자를 두드리려 하네 우주의 섭리는 그대로 순리인 것을 사푼히 옮겨 놓은 듯 이어질 뿐 한 아름에 보듬어선 넘쳐도 보이듯이 양팔 가득히 감아서 모아지려고 오름의 기운에 용솟음은 휘엉청 춤바람이 너울로 유유히 그려가는 우주 속 엔진에는 심오함에 변화를 일구려는 듯 새 물망에 주룽주룽 달리려도 해맑은 기상의 오름에 숲속 세상에는 쭈욱 뻗어나가 일품 세상의 해 오름으로 다다르지. --「해 오름-해가 솟아오르는 현상」 전문 이 “해 오름”은 이 시집의 표제시가 되는데 그의 설명대로 “해가 솟아오르는 현상”이라는 시적인 상황 설정은 우주의 섭리와 순리에서 심오함을 인식하듯이 그의 심중에는 이미 세상 만물의 존재이유와 그 가치를 명징(明澄)하게 간파하면서 그의 진정한 진실을 탐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온누리는 오름에 자욱과 박자를 두드리려 하네”와 “오름의 기운에 용솟음은 휘엉청 춤바람” 그리고 “쭈욱 뻗어나가 일품 세상의 해 오름으로 다다르지.”라는 어조(語調-tone)에서 그가 최초에 작심(作心)하는 의도적인 시법(詩法)이 잘 현시되어 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가 우주의 섭리에서 긍정하는 작품 「우주의 화음」 중에서도 “금상첨화의 화음으로 다가온 반가움에/ 전해주는 손짓에 그려 내는 목소리 미학에/ 어울려 유유히 아름다움을 더해 가네.”라는 너그러운 화해의 결론으로 그의 시적인 진실을 분사(噴射)하고 있는 것이다. 가만히 지나온 시간을 하나 둘 헤아려보면 미진했던 한 점을 꼽아 보고 또 돌아보곤 언젠가는 이 시간이 오기로 했던 만큼이나 동안도 준비의 흐름에 소홀함이 없었는가 움켜쥔 새 일의 전환은 행복으로 가지려고 온종일 생각하고 고대하면서 기대했던 만큼 그나마도 새 점은 다시 실천하기에 이르려면 열의로 어떡하든 부족함이 많은 것 같기에 그 기운이 열린 고비의 계기로 집중이련가 부득부득 설치고 또 다른 방향 이은 기대로 참 좋은 느낌으로 새 일에 이어 실어 가련다. --「전환점–다른 방향이나 상태로 바뀌는 계기」 전문 홍중완 시인은 다시 현실적인 삶(real life)의 범주에서 갈구(渴求)하는 시적인 여망(輿望)은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다른 방향이나 상태로 바뀌는 계기”라는 부제(副題)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그가 현존하는 일상적인 형태의 삶에서 방향 전환을 시도하려는 지향점의 예비적인 어조들이 잠재해 있음에 유념하게 된다. 그는 이러한 상태에 몰입하게 된 것은 지나온 시간과 언젠가 오기로 했던 시간의 융합에서 “준비의 흐름에 소홀함이 없었는가”를 자문(自問)하면서 “움켜쥔 새 일의 전환은 행복”이라는 진중(鎭重)한 각오와 결단으로 “그 기운이 열린 고비의 계기로 집중이련가/ 부득부득 설치고 또 다른 방향 이은 기대로// 참 좋은 느낌으로 새 일에 이어 실어 가련다.”라는 결론에 도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전환점에 대한 집약(集約)은 작품 「결심이 설 때」 중에서 “한 계단 더 높은 곳으로/ 언덕의 도약은 계속되려니// 불끈 두 손을 움켜쥐면/ 기운찬 힘의 감지가 스민다”거나 작품 「마지막에는」 중에서도 “새 길을 열려는 창대한 힘으로/ 그 시작의 막다른 새 이음은/ 훌렁케도 출발의 길을 재촉한다.”는 어조로 그가 결심한 도약의 행보를 위해서 웅대한 존재의 장을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2. 시간성에서 재생하는 그리움 홍중완 시인은 시간성에 대한 집념을 강하게 시적으로 투영하고 있다. 이 시간 개념은 현실적인 부조화에 대한 성찰적인 사유를 응집할 수 있는 절대적인 통로로 작용하기 때문에 많은 시인들이 응용하는 시적인 전개 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잘 아는 바와 같이 시간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도 포괄하는 생존의 범주에서 체득(體得)한 정감(情感-sentiment emotion) 즉, 오욕칠정(五慾七情)의 생리적인 현상들이 하나의 이미지로 발원하여 작품을 완성하게 하는 중요한 모티브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정감에서도 대체로 우리 인간들이 체험하는 희노애락 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에서도 애(슬픔)와 애(사랑)에 대한 영원 불망(不忘)의 애환들이 작품의 주제로 설정되는데 홍중완 시인도 이 시간 속에는 추억이 다수 상기(想起)하는 시법을 읽을 수 있는데 이 추억에서는 그리움이 상존(常存)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역동으로 사이의 시간을 살펴보며 그 속에 연록의 그림을 그려 본다 시간의 흐름이 겹겹이 쌓여서인지 푸르름의 추억은 그리움으로 남아서 교정의 시화전을 마음 어귀에 채워 서로 나누며 손잡고 새겼던 축제들 토닥토닥 친구의 우정도 다독이면서 옛 교정의 시화전에 그려진 화폭은 가슴에 찬 푸른 햇살이 깃들여져 추억 속의 그리움에 시간을 거스른다 술렁이던 마음 속의 시화전 풍광이 선하게 이어져 준비에 한창이던 교정의 연록으로 그려진 시간 속에 그때 추억은 보람된 촉매제이었네 지금도 그날의 5월의 향기 내음에 철쭉의 추억을 뇌리에 회상해 본다. --「회상의 시간」 전문 그렇다. 홍중완 시인이 회상하는 시간에서의 추억은 다양하게 현현되고 있다. 그가 살펴본 역동(力動)의 시간에는 교정의 연록 풍광 그림과 푸르름의 추억, 교정 시화전 축제, 가슴에 찬 푸른 햇살 그리고 5월의 향기 등등 아름답게 각인(刻印)된 추억들이 그의 뇌리에서 시간과 더불어 존재감을 재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추억의 정점(頂點)은 그리움의 시간이다. 그는 “푸르름의 추억은 그리움으로 남아”라거나 “추억 속의 그리움에 시간을 거스른다”는 어조에서 알 수 있듯이 그가 회상하는 시간에는 “시간=추억=그리움”이라는 등식이 성립된다. 시간 속의 추억은 “보람된 촉매제”의 정감을 적시하고 있음을 간과(看過)하지 못한다. 그는 작품 「기대어 생각」 중에서 “저 멀리 어딘가엔// 그리움의 시간에 기대어// 헤아린 별나라로/ 두둥실 구름 위에/ 꿈나래 펼치련가.” 또는 작품 「평일」 중에서도 “저마다 각자의 일상은 누군가를/ 바라보는 자태로 시간을 허락하며/ 우리는 그 속으로 이어 달린다.”는 보편적인 일상생활에서도 시간과의 연계성을 배제하지 못하는 습성이 있는 것이다. 로망, 얼만큼이나 더 만날 수 있는가 그나마 온기로는 주변을 감싸안아 주며 날마다 접하려고 아침이 연속되지만 이제는 먼 데로도 다시금 회상해 본다 그날이 다가오려나 보기엔 오늘도 재촉한 시간은 유수히 흐르고 리듬은 파고에 쉼 없는 시간 속으로 라이브 진수를 거드름 없이 보이려 오리라 학수고대의 기도엔 기다림 쉴새없이 시간은 가까워져 온다 대지는 뜀박질에 힘이 되어 내딛고 해오름 바라보며 새 일상을 다진다 기대해 보란 듯 자긍심 채워 갈거나. --「그날이 오리라 기대해」 전문 홍중완 시인은 여기에서도 회상의 시간은 지속된다. “이제는 먼 데로도 다시금 회상해 본다”는 그의 상상력에는 “로망, 얼만큼이나 더 만날 수 있는가”라는 의문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다. 로망, 지나간 옛 로맨스의 추억, 그날이 언제인가. 오리라는 학수고대의 기도는 “오늘도 재촉한 시간은 유수히 흐”를 뿐이다. 그러나 그는 “기다림 쉴새없이 시간은 가까워져 온다/ 대지는 뜀박질에 힘이 되어 내딛고/ 해오름 바라보며 새 일상을 다진다”는 시간성이 제공하는 기다림이 가까이 다가옴을 신뢰하면서 기대에 대한 자긍심을 채우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기대는 작품 「하나 둘 셋」 중에서 “오늘은 무슨 좋은 일이 얼마만큼 있을까”라고 자문하면서도 “출발선은 보이지 않는 신호음을 기다린다/ 둘레는 허연 테두리로 감싸고 있는데도/ 늘어나는 시간만큼 힘이 더 솟는다.”는 기다림의 묘미를 설파(說破)하고 있어서 시간과 기다림의 미학은 언제나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이어 다가오는 다음날을 알기에/ 살포시 시간을 비벼 본다(「오늘」 중에서)”, “느슨하고 제법 여유 있는 아침에/ 재충전의 햇살이 다가오면/ 바빴던 시간은 휴식으로 채워진다(「주말」 중에서)”, “끝은 머리다 하면서 시간을 재촉하기로/ 돌아가고픈 시작은 끄트머리 매듭에 맡긴다.(「끄트머리」 중에서)”는 등의 어조에서 그가 사유하는 내면 중심에는 시간과 동행하는 삶에서 추구하려는 다채로운 존재의 형식을 탐색하고 있는 것이다. 3. 자연서정과 농촌 정경의 향수 홍중완 시인은 자연 서정을 망각하지 않는 서정시인이다. 그가 착목(着目)하는 사물, 곧 자연 현상들이 바로 작품으로 연결되는 시적인 본성을 소유한 자연존중의 절대성을은 그의 기제(機制)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자아 인식의 축을 다채롭게 추적하는 의미적인 해석을 읽었으며 한편 시간성에 대한 집념으로 존재의 전개방식 등에 천착(穿鑿)하였지만 이제는 자연현장에 시선을 멈추면서 그가 평소에 간직한 친자연적인 감응(感應)으로 만유(萬有)의 자연과 교감하고 있는 것이다. 일찍이 프랑스의 모랄리스트 파스칼은 그의 「팡세」에서 자연이 모든 것을 말할 수 있고 신학(神學)까지도 말할 수 있다는 것을 그로부터 배우는 사람들이야말로 자연을 깊이 존중하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자연과 인간의 공통된 존재이유를 설명하고 있어서 우리들이 자연교감에서 획득하는 정서의 안온한 지향점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자연현상과 친밀한 정감으로 소통하는 시법에는 두 가지의 경향을 살펴볼 수가 있는 이를 비정적 타자성(非情的 他者性)이라 시법으로 정리하는데 이를 감상적 오류(誤謬)라고 해서 자연의 인격화에는 동화(同化-assimilation)로서 시인이 그 자연을 자신 속으로 끌어와서 그것을 내적 인격화하는 원리와 또 하나는 투사(投射-project)로서 자연 속에 자신을 상상적으로 투여하는 원리를 원용(援用))하는 시법을 많이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양광을 받은 꽃들이 활짝 피어나더니 지난 삼사월 냉랭한 흙을 밀치고 올라와 꽃망울들도 햇살을 받아 만개를 한다 상큼하게 퍼진 아름다운 5월의 햇빛은 허리를 휘감듯이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와서 우리를 상큼하게 하는 빛으로 스미어오고 풍광의 오월을 밝히는 화사한 꽃사래는 이 계절에도 빛을 둘러싼 감동의 연출이다 손에 잡히는 순간 꽃망울은 터지고 있는데 꽃샘추위가 지나고 나니 만개를 하나 보다 축제로 어우러지는 캠퍼스의 푸르름이 옛 추억의 회상을 환하게 연출함으로 신록의 거듭에 푸르른 햇살은 영글어 간다. --「푸르른 햇살」 전문 홍중완 시인은 우선 자연이 존재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를 햇살에서 탐구하고 있다. 이 “푸른 햇살”에서 시적인 상황설정에서 “양광을 받은 꽃들이 활짝 피어나더니/ 지난 삼사월 냉랭한 흙을 밀치고 올라와/ 꽃망울들도 햇살을 받아 만개를 한다”는 어조에서부터 “신록의 거듭에 푸르른 햇살은 영글어 간다.”는 결론에 이르기까지 “5월의 햇빛”이 적시하는 메시지는 자연이 “이 계절에도 빛을 둘러싼 감동의 연출이다”라는 서정적인 시혼이 우리들을 공감의 영역으로 흡인(吸引)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서정은 작품 「둘레길」 중에서 “초록이 무르익어 생태 숲자락이 있어/ 벚꽃길 소나무길이 절정이라더니/ 금세 개나리가 활짝 피어오르는 길” 또는 「그리움2」 중에서도 “푸르름을 연주하는 산야는/ 발걸음으로 반주를 더해 간다// 계곡은 물줄기의 화음으로/ 귓전을 튀겨 주며 박자를 맞춘다”는 어조는 바로 그가 평소에 구현하려는 자적(自適)의 내면 진실이 자연과의 동화하거나 자연속에 투사하는 시법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나무에 물이 스미어 올라오는데 봄기운을 타서 적시어 보자면 산나물 맛이 어떠할 거나 쟁기 메니 곡우물 맛이 달더라 봄비에 봄빛을 더하여 모내기로 요긴한 단비가 풍년으로 파종을 디딤으로 햇살에 영글어서 들판의 햇볕이 이글거리며 다가와 온기가 퍼져 세상 속으로 스며 든다 써레 다져서 백곡을 기름지기에 문빗장 걸고 달구지 끌고 나서니 자욱한 운무에 비치는 서곡이다 기름지게 봄 햇살의 진수를 누리며 농군의 일도 논 따라 밭 따라 들썩이며 봄으로 단장한 푸르른 들판이어라 지금도 곡우에 비 오는 날의 쟁기는 우리 맘에도 제철을 맞이하듯이 새봄의 기운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봄갈이」 전문 홍중완 시인은 다시 계절적인 여운에서 농촌의 정경을 시적 상황으로 도입해서 작품을 완성하고 있는데 이는 농촌 서정에서 시적인 원류(源流)를 탐색하여 작품을 전개하는 시적인 구조는 더욱 정감을 촉진하는 그의 시안(詩眼)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그는 봄기운과 산나물, 쟁기 와 곡우물, 봄비, 모내기, 파종, 쎄레, 달구지 등등 농기구나 농번기의 상황들이 작품 전체를 관류(灌流)하고 있으며 특히 “농군의 일도 논 따라 밭 따라 들썩이며/ 봄으로 단장한 푸르른 들판이어라”거나 “지금도 곡우에 비 오는 날의 쟁기는/ 우리 맘에도 제철을 맞이하듯이/ 새봄의 기운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라는 농경사회의 풍광이 우리들의 공통적인 이미지가 형상화하는 자연서정의 백미(白眉)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작품 「단오 맞이」 「모내기」 등등 농촌 정경이 담뿍 넘치는 이미지들이 풍성한 작품으로 형상화하고 있어서 그의 서정적 자아를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4. 봄의 향연과 자연회귀의 본령 홍중완 시인은 자연 서정 중에서도 유독히 봄 향기에 대하여 그의 사유를 집중해서 투영하고 있다. 이는 지천으로 넘치는 만물의 형상에서 창출한 이미지도 의미 깊은 주제로 정리되지만 그는 계절적인 시간에서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섭리를 순응하는 인간들의 순수한 서정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현대 시법에서 시창작의 요체(要諦)에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은 작품의 전개나 흐름에서 작품 전면에서 풍기는 과정에서 우리들에게 형형색색의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카메라로 정밀하게 촬영하여 보여주기(showing)의 형태로 작품을 완성하는경우와 다른 하나는 작품 전체를 하나의 스토리로 들려주는(telling) 형태로 구분해서 설명하고 있음에 유념하게 되는 것이다. 그다지 디비도 생생한데 대지의 향연 위한 트림인가 흙담에도 새싹이 돋네 산등성 따라 정상 오르메 희망 가득한 세상이다 겨우내 묵은 때를 털어내고 싱그러움 부를 수 있는 곳 세상은 온통 봄빛에 부시어 영롱한 얼굴에 환히 비친 곳 나뭇가지에도 자연 머금은 수줍은 연녹색에 생기 더하여 봄날의 향연은 시작된다 어여 냉이 캐어 봄맛 보자꾸나 봄동으로 담근 맛이 더 달다. --「향연의 시작」 전문 홍중완 시인은 봄날의 향연이 시작되는 정경을 보여주면서도 “대지의 향연 위한 트림인가” 또는 “어여 냉이 캐어 봄맛 보자꾸나/ 봄동으로 담근 맛이 더 달다.”는 등의 어조로 봄에 관한 정감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서 그는 보여주면서 들려주는 시적인 구조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흙담에 돋는 새싹이나 나뭇가지에 맺힌 연녹색의 자연 등은 봄날의 항연을 알리는 서정성에 심취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그는 “싱그러움 부를 수 있는 곳” 혹은 “영롱한 얼굴에 환히 비친 곳”이라는 어느 한 장소에서 온통 세상에 눈부시는 봄빛에서 그는 주제를 명민(明敏)하게 정리하고 있는 것이다. 대체로 봄에 관한 이미지나 상징은 새로운 탄생이나 새 희망과 기원을 통해서 한 해를 출발하는 것에서 다양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데 홍중완 시인은 일찍이 소동파가 읊은 “봄밤의 한 때는 천금에 값하고 꽃에는 맑은 향과 달에는 그늘이 있구나(春肖一刻直千金 花有淸香月有陰)”와 같은 봄의 정취를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덮어진 틈새로 솟는 푹신한 기운이 비집어 움트는가, 비치어 깨어나는가 음률이 대지에 맞닿는 합주 소리로 막 지난 겨울의 해빙으로 움틔워 머물 여름을 준비하고 채비하기에 저만치 간 가을이 우선 다지었던가 아지랑이 일렁이며 스치는 소리에도 꽃씨는 꿈틀 싹이 오를 듯 눈을 뜬다 구름에 노닐다 머물러 앉은 씨앗은 촉촉한 생기로 부둥켜 기운을 얻고 등 틔운 대지는 부풀기를 시도하며 마음의 향연으로 어우르며 조율하면서 연록의 봄은 원기를 더해 그려 간다. --「연록의 봄」 전문 여기 “연록의 봄”에서도 동일한 순수 서정의 이미지를 접하게 되는데 다만 “소리”라는 청각적인 이미지를 추출하는 특징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봄의 기운이 움트는 소리와 깨어나는 소리가 “음률이 대지에 맞닿는 합주 소리로” 또는 “아지랑이 일렁이며 스치는 소리”가 연록의 봄 소리로 그의 청각을 자극하고 있어서 그가 결론으로 적시한 “등 틔운 대지는 부풀기를 시도하며/ 마음의 향연으로 어우르며 조율하면서/ 연록의 봄은 원기를 더해 그려 간다.”는 정취에 우리들은 공감을 흡인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는 봄의 이미지를 더욱 살리기 위해서 “막 지난 겨울의 해빙”이나 “머물 여름을 준비” 그리고 “저만치 간 가을” 등 사계절의 시간성에서도 많은 스토리를 할애하고 있어서 그의 내면에는 흐르는 마음의 향연을 더욱 정감적인 시심(詩心-poetical feeling)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자연서정에 몰입하는 연유는 시인들이 내적인 정서의 빈곤을 충족시키는 촉매제의 한 축을 담담하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작품 「봄내음」 「봄이 오면」 등등에서 그의 잔잔한 서정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홍중완 시집 읽기를 마무리해야겠다. 그는 시집 전체를 통해서 그가 시적인 발원으로 정착시킨 서정적인 자아를 탐색하는 순수성을 전편에서 감지하게 되는데 먼저 우주의 섭리에서 순응미학의 수용과 전환점을 모색하면서 시간성에서 재생하는 그리움의 환원 그리고 자연 향연에서 탐색하는 자연 친화의 본령에서 그의 작품 창작의 원류를 확인할 수 있게 한다. 미국의 현대시인 카알 샌드버그는 시는 인간의 언어라는 대단히 가소성(可塑性)이 있는 재료로 행해지는 예술이라 점을 강조하듯이 홍중완 시인도 궁극적으로 섭리와 순리를 수긍하는 인본주의(humanism)의 범주에서 소통하려는 시정신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어서 앞으로 대성을 지향하는 시인으로 주목하게 된다. 시집 출간을 축하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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