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法華經)을 수지(受持)하고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면 즉(卽) 오종(五種)의 수행(修行)을 구족(具足)하느니라."
오종(五種)의 수행(修行)을 구족(具足)하느니라..
수지(受持) 독(讀) 송(誦) 해설(解說) 서사(書寫)의 오종(五種)의 수행(修行) 중에 독(讀) 송(誦) 해설(解說) 서사(書寫)의 사종(四種)을 생략(省略)하고 오직 수지(受持)의 일행(一行)으로써 성불(成佛)하리라..제목공덕어서(題目功德御書)
공덕(功德)은 전(前)의 공덕(功德)에 비(比)하면, 전(前)의 공덕(功德)은 조상(爪上)의 흙과 같고, 법화경(法華經)의 제목(題目)의 공덕(功德)은 시방(十方)의 흙과 같으니라.
전(前)의 공덕(功德)은 한방울의 물과 같고, 제목(題目)의 공덕(功德)은 대해(大海)와 같다 .
전(前)의 공덕(功德)은 와력(瓦礫)과 같고, 제목(題目)의 공덕(功德)은 금은(金銀)과 같으며, 전(前)의 공덕(功德)은 형화(螢火)와 같고, 제목(題目)의 공덕(功德)은 일월(日月)과 같다고 하는 경문(經文)이니라.
어서 1300쪽"니치렌(日蓮)이 어떠한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일인지 용수(龍樹) 천친등(天親等)·천태(天台) 묘락등(妙樂等)조차도 나타내시지 않았던 대만다라(大曼茶羅)를 말법(末法) 이백여년경(二百餘年頃)에 비로소 법화홍통(法華弘通)의 기치(旗幟)로서 나타내 드리느니라. 이것은 결코 니치렌(日蓮)의 자작(自作)이 아니로다"
법화홍통(法華弘通)의 기치(旗幟)로서 나타내 드리느니라.
이것은 결코 니치렌(日蓮)의 자작(自作)이 아니로다
"다보탑중(多寶塔中)의 대모니세존(大牟尼世尊)·분신(分身)의 제불(諸佛)을 판목(版木)으로 한 본존(本尊)이니라.""한 번 묘호렌게쿄라고 봉창하면, 일체의 불 일체의 법 일체의 보살 일체의 성문(聲聞) 일체의 범왕(梵王) 제석(帝釋) 염마(閻魔) 법왕(法王) 일월(日月) 중성(衆星) 천신(天神) 지신(地神) 내지(乃至) 지옥(地獄) 아귀(餓鬼) 축생(畜生) 수라(修羅) 인천(人天) 일체중생의 심중의 불성을 오직 한 마디로 불러 나타내시는 공덕은 무량무변하니라. 나의 기심의 묘호렌게쿄를 본존으로 숭앙하고, 나의 기심 중의 불성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고 불리어서 나타나심을 부처라고 하느니라. 비유컨대 새장 속의 새가 울면 하늘을 나는 새가 모이면 새장 속의 새도 나가려고 함과 같으니라. 입으로 묘법을 봉창하면 나의 몸의 불성도 불리어서 반드시 나타나시고, 범왕 제석의 불성은 불리어서 우리들을 지키시고, 불보살의 불성은 불리어서 기뻐하심이라."
법화초심성불초(法華初心成佛抄) 56세 미노부이 어본존(御本尊)을 결코 타처(他處)에서 구(求)하지 말지어다. 다만 우리들 중생(衆生)이 법화경(法華經)을 수지(受持)하고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흉중(胸中)의 육단(肉團)에 계시느니라. 이것을 구식심왕진여(九識心王眞如)의 도(都)라고 하느니라. 십계구족(十界具足)이라 함은 십계(十界)가 일계(一界)도 빠짐없이 일계(一界)에 있음이라, 이에 의(依)해서 만다라(曼陀羅)라고 하며 만다라(曼陀羅)라고 함은 천축(天竺)의 이름으로서 여기서는 윤원구족(輪圓具足)이라고도 공덕취(功德聚)라고도 이름하느니라. 이 어본존(御本尊)도 다만 신심(信心)의 이자(二字)에 들어 있으니 이신득입(以信得入)이란 이것이니라.장문이지만 대어본존님의 상모에 관한 내용과 신(信)의 중요성에 대한 중요한 어서말씀 - 니치뇨부인답서(日女夫人答書) 전편
작성자:세계광선유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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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장문이지만 대어본존님의 상모에 관한 내용과 신(信)의 중요성에 대한 중요한 어서말씀 - 니치뇨부인답서(日女夫人答書) 전편
"니치렌(日蓮)이 어떠한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일인지 용수(龍樹) 천친등(天親等)·천태(天台) 묘락등(妙樂等)조차도 나타내시지 않았던 대만다라(大曼茶羅)를 말법(末法) 이백여년경(二百餘年頃)에 비로소 법화홍통(法華弘通)의 기치(旗幟)로서 나타내 드리느니라. 이것은 결코 니치렌(日蓮)의 자작(自作)이 아니로다"
법화홍통(法華弘通)의 기치(旗幟)로서 나타내 드리느니라.
이것은 결코 니치렌(日蓮)의 자작(自作)이 아니로다
"다보탑중(多寶塔中)의 대모니세존(大牟尼世尊)·분신(分身)의 제불(諸佛)을 판목(版木)으로 한 본존(本尊)이니라."
상주대만다라 대어본존님 상모에 도현되어 있는 분신(分身)의 예 :
인법일개(人法一箇)의 니치렌(日蓮) = 상행보살(上行菩薩) = 불경보살(不輕菩薩)
약왕보살(藥王菩薩) = 천태대사(天台大師) :
남악대사(南岳大師)는 관음(觀音)의 화신(化身)이요, 천태대사(天台大師)는 약왕(藥王)의 화신(化身)이라 등(等)운운(云云).(어서 519쪽)
여러 번 와서 대승(大乘) 등(等)이 되어 법(法)을 넓혔으며, 약왕보살(藥王菩薩)은 천태대사(天台大師)가 되고, 관세음(觀世音)은 남악대사(南岳大師)가 되었으며, 미륵보살(彌勒菩薩)은 부대사(傅大士)가 되었느니라.(어서 1128쪽)
미륵보살(彌勒菩薩)의 재탄 부대사(傅大士)의 어서말씀 속의 예 :
부대사(傅大士)의 석(釋)에 가로되 「조조(朝朝)·부처와 함께 일어나며 석석(夕夕) 부처와 함께 눕고 시시(時時)로 성도(成道)하며 시시(時時)로 현본(顯本)함이라」라고 운운(云云).(어서 737쪽)
상주대만다라 대어본존님 상모의 구체적인 모습 :
"그러므로 수제(首題)의 오자(五字)는 중앙(中央)에 걸리고 사대천왕(四大天王)은 보탑(寶塔)의 사방(四方)에 좌정(坐定)하고 석가(釋迦)·다보(多寶)·본화(本化)의 사보살(四菩薩)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보현(普賢)·문수등(文殊等)·사리불(舍利弗)·목련등(目連等)이 무릎을 꿇고·일천(日天)·월천(月天)·제육천(第六天)의 마왕(魔王)·용왕(龍王)·아수라(阿修羅)·그 외(外)에 부동(不動)·애염(愛染)은 남북(南北)의 이방(二方)에 진(陣)을 치고·악역(惡逆)의 달다(達多)·우치(愚癡)의 용녀(龍女)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삼천세계(三千世界)의 사람의 수명(壽命)을 빼앗는 악귀(惡鬼)인 귀자모신(鬼子母神)·십나찰녀(十羅刹女) 등(等)·뿐만 아니라, 일본국(日本國)의 수호신(守護神)인 천조태신(天照太神)·팔번대보살(八幡大菩薩)·천신칠대(天神七代)·지신오대(地神五代)의 신(神)들·통틀어 대소(大小)의 신기등(神祇等)·체(體)의 신(神)이 줄지어 있으니 여타(餘他)의 용(用)의 신(神)이야 어찌 빠질소냐,"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이 어본존(御本尊) 속에 주(住)하시어 묘법(妙法) 오자(五字)의 광명(光明)에 비추어져서 본유(本有)의 존형(尊形)으로 되니 이를 본존(本尊)이라고 하느니라."
체(體)의 신(神)과 용(用)의 신(神)에 대하여
"체(體)의 신(神)이 줄지어 있으니 여타(餘他)의 용(用)의 신(神)이야 어찌 빠질소냐"를 이해하시기 위해서는 아래의 어서말씀의 예를 보시면 의미는 조금 다르지만 '범부(凡夫)는 체(體)의 신력(神力)·삼세(三世)의 제불(諸佛)은 용(用)의 신력(神力)이고 신(神)이란 심법(心法)..'의 말씀을 통해 이해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십종(十種)의 신력(神力)을 나타내서 상행보살(上行菩薩)에게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를 부촉(付屬)하심이니 이 신력(神力)이란 십계삼천(十界三千)의 중생(衆生)의 신력(神力)이니라. 범부(凡夫)는 체(體)의 신력(神力)·삼세(三世)의 제불(諸佛)은 용(用)의 신력(神力)이고 신(神)이란 심법(心法) 역(力)이란 색법(色法)이며 역(力)은 법(法) 신(神)은 묘(妙)이니라. 묘법(妙法)의 신력(神力)이므로 십계(十界)가 모두 신력(神力)이니라. 연화(蓮華)의 신력(神力)이므로 십계청정(十界淸淨)의 신력(神力)이니라, 통틀어 삼세제불(三世諸佛)의 신력(神力)은 이 품(品)에 다하였으며 석존출세(釋尊出世)의 신력(神力)의 본의(本意)도 이 품(品)의 신력(神力)이로다. 소위(所謂)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신력(神力)이며, 십계개성(十界皆成)이라고 말하는 이외(以外)에 제불(諸佛)의 신력(神力)이란 없으며 일체(一切)의 법문(法門)이 신력(神力)이 아님이 없느니라 운운(云云)."(어서 800쪽)
"이러한 어본존(御本尊)을 공양(供養)해 드리시는 여인(女人)은 현재(現在)에는 행운(幸運)을 초래(招來)하고 후생(後生)에는 이 어본존(御本尊)이 좌우(左右) 전후(前後)에 다가서서 어둠에 등불과 같고 험난(險難)한 곳에서 강력(强力)한 종복(從僕)을 얻은 것과 같이 저쪽으로 돌고, 이쪽으로 다가와서 니치뇨부인(日女夫人)을 둘러싸고 지켜 주시리라. 결단코 명심하여 유녀(遊女)가 나의 집에 접근하는 것을 꺼리듯이 방법자(謗法者)를 방지(防止)하시라, 악지식(惡知識)을 버리고 선우(善友)에게 친근(親近)하라 함은 이것이니라."
"이 어본존(御本尊)을 결코 타처(他處)에서 구(求)하지 말지어다. 다만 우리들 중생(衆生)이 법화경(法華經)을 수지(受持)하고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흉중(胸中)의 육단(肉團)에 계시느니라."
"이것을 구식심왕진여(九識心王眞如)의 도(都)라고 하느니라. 십계구족(十界具足)이라 함은 십계(十界)가 일계(一界)도 빠짐없이 일계(一界)에 있음이라, 이에 의(依)해서 만다라(曼陀羅)라고 하며 만다라(曼陀羅)라고 함은 천축(天竺)의 이름으로서 여기서는 윤원구족(輪圓具足)이라고도 공덕취(功德聚)라고도 이름하느니라. 이 어본존(御本尊)도 다만 신심(信心)의 이자(二字)에 들어 있으니 이신득입(以信得入)이란 이것이니라."
"결단코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만 봉창(奉唱)하여 부처가 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라, 신심(信心)의 후박(厚薄)에 달려 있으며, 불법(佛法)의 근본(根本)은 신(信)으로써 근원(根源)으로 하느니라."
결단코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만 봉창(奉唱)하여 부처가 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라..
"오직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만 봉창(奉唱)하면 멸(滅)하지 않는 죄(罪)가 있겠는가, 오지 않는 복(福)이 있겠는가. 진실(眞實)이고 심심(甚深)하니 이를 신수(信受)할지어다." 성우문답초(聖愚問答抄) 497쪽의 말씀과 같이..
"결국(結局) 천태(天台) 묘락(妙樂)의 석(釋)은 분명(分明)히 신(信)으로써 본(本)으로 삼았으며, 저 한왕(漢王)도 의심(疑心)하지 않고 대신(大臣)의 말을 믿었기에 물결치던 강(江)물이 얼어서 건너갔느니라. 돌에 화살이 박힌 것은 이것도 역시 아버지의 원수라고 생각한 지신(至信)때문이었으니 하물며 불법(佛法)에 있어서랴."
"법화경(法華經)을 수지(受持)하고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면 즉(卽) 오종(五種)의 수행(修行)을 구족(具足)하느니라."
오종(五種)의 수행(修行)을 구족(具足)하느니라..
수지(受持) 독(讀) 송(誦) 해설(解說) 서사(書寫)의 오종(五種)의 수행(修行) 중에 독(讀) 송(誦) 해설(解說) 서사(書寫)의 사종(四種)을 생략(省略)하고 오직 수지(受持)의 일행(一行)으로써 성불(成佛)하리라..
"이 묘법(妙法) 등(等)의 오자(五字)를 말법(末法)·백법은몰(白法隱沒)의 시(時) 상행보살(上行菩薩)·출세(出世)하시어 오종(五種)의 수행중(修行中)에는 사종(四種)을 약(略)하고 오직 수지(受持)의 일행(一行)으로써 성불(成佛)하리라고 경문(經文)에 엄연(嚴然)히 있느니라." (어서 783쪽)
《 본문어서 》
니치뇨부인답서(日女夫人答書)
建治三年 八月 五十六歲御作
어본존(御本尊) 공양(供養)을 위(爲)하여 엽전(葉錢) 오관(五貫)·백미(白米) 한바리·과자(菓子) 보내주신 그 수량(數量)대로 받았소이다. 대저 이 어본존(御本尊)은 재세(在世) 오십년 중(五十年中)에는 팔년(八年)·팔년간(八年間)에도 용출품(涌出品)에서 촉루품(囑累品)까지 팔품(八品)에 나타나셨느니라. 그런데 멸후(滅後)에는 정법(正法)·상법(像法)·말법(末法) 중(中)에서 정상이천년(正像二千年)에는 아직 본문(本門)의 본존(本尊)이라고 하는 이름조차도 없었으니, 하물며 나타나셨을리가 있으리오. 또한 나타낼 수 있는 사람도 없었으며, 천태(天台) 묘락(妙樂) 전교(傳敎) 등(等)은 내심(內心)에는 깨달아서 알고 있었지만 까닭이 있었는지 말로 나타내지는 않았느니라. 저 안연(顔淵)이 들은 것을 의중(意中)에는 깨달았다 할지라도 말로는 나타내지 않은 것과 같다. 그런데 불멸후이천년(佛滅後二千年)이 지나서 말법(末法)의 초(初)의 오백년(五百年)에 출현(出現)하시게 된다는 것은 경문(經文)에 혁혁(赫赫)하고 명명(明明)하며, 천태(天台) 묘락등(妙樂等)의 해석(解釋)에도 분명(分明)하니라.
이에 니치렌(日蓮)이 어떠한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일인지 용수(龍樹) 천친등(天親等)·천태(天台) 묘락등(妙樂等)조차도 나타내시지 않았던 대만다라(大曼茶羅)를 말법(末法) 이백여년경(二百餘年頃)에 비로소 법화홍통(法華弘通)의 기치(旗幟)로서 나타내 드리느니라. 이것은 결코 니치렌(日蓮)의 자작(自作)이 아니로다, 다보탑중(多寶塔中)의 대모니세존(大牟尼世尊)·분신(分身)의 제불(諸佛)을 판목(版木)으로 한 본존(本尊)이니라. 그러므로 수제(首題)의 오자(五字)는 중앙(中央)에 걸리고 사대천왕(四大天王)은 보탑(寶塔)의 사방(四方)에 좌정(坐定)하고 석가(釋迦)·다보(多寶)·본화(本化)의 사보살(四菩薩)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보현(普賢)·문수등(文殊等)·사리불(舍利弗)·목련등(目連等)이 무릎을 꿇고·일천(日天)·월천(月天)·제육천(第六天)의 마왕(魔王)·용왕(龍王)·아수라(阿修羅)·그 외(外)에 부동(不動)·애염(愛染)은 남북(南北)의 이방(二方)에 진(陣)을 치고·악역(惡逆)의 달다(達多)·우치(愚癡)의 용녀(龍女)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삼천세계(三千世界)의 사람의 수명(壽命)을 빼앗는 악귀(惡鬼)인 귀자모신(鬼子母神)·십나찰녀(十羅刹女) 등(等)·뿐만 아니라, 일본국(日本國)의 수호신(守護神)인 천조태신(天照太神)·팔번대보살(八幡大菩薩)·천신칠대(天神七代)·지신오대(地神五代)의 신(神)들·통틀어 대소(大小)의 신기등(神祇等)·체(體)의 신(神)이 줄지어 있으니 여타(餘他)의 용(用)의 신(神)이야 어찌 빠질소냐, 보탑품(寶塔品)에 가로되 「여러 대중(大衆)을 접(接)하여 모두 허공(虛空)에 있음」 운운(云云). 이들의 불(佛) 보살(菩薩)·대성(大聖) 등(等)·통틀어 서품(序品) 열좌(列座)의 이계팔번(二界八番)의 잡중등(雜衆等)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이 어본존(御本尊) 속에 주(住)하시어 묘법(妙法) 오자(五字)의 광명(光明)에 비추어져서 본유(本有)의 존형(尊形)으로 되니 이를 본존(本尊)이라고 하느니라.
경(經)에 가로되 「제법실상(諸法實相)」 이것이니라. 묘락(妙樂)가로되 「실상(實相)은 반드시 제법(諸法)·제법(諸法)은 반드시 십여(十如) 내지(乃至) 십계(十界)는 반드시 신토(身土)」 운운(云云). 또 가로되 「실상(實相)의 심리(深理) 본유(本有)의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 등(等)이라고 운운(云云). 전교대사(傳敎大師)가 가로되 「일념삼천(一念三千) 즉(卽) 자수용신(自受用身)·자수용신(自受用身)이란 출존형(出尊形)의 불(佛)」 문(文). 그런 고(故)로 미증유(未曾有)의 대만다라(大曼茶羅)라고 삼가 이름하였느니라. 불멸후(佛滅後)·이천이백이십여년(二千二百二十餘年)에는 이 어본존(御本尊)은 아직 출현(出現)하시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니라.
이러한 어본존(御本尊)을 공양(供養)해 드리시는 여인(女人)은 현재(現在)에는 행운(幸運)을 초래(招來)하고 후생(後生)에는 이 어본존(御本尊)이 좌우(左右) 전후(前後)에 다가서서 어둠에 등불과 같고 험난(險難)한 곳에서 강력(强力)한 종복(從僕)을 얻은 것과 같이 저쪽으로 돌고, 이쪽으로 다가와서 니치뇨부인(日女夫人)을 둘러싸고 지켜 주시리라. 결단코 명심하여 유녀(遊女)가 나의 집에 접근하는 것을 꺼리듯이 방법자(謗法者)를 방지(防止)하시라, 악지식(惡知識)을 버리고 선우(善友)에게 친근(親近)하라 함은 이것이니라.
이 어본존(御本尊)을 결코 타처(他處)에서 구(求)하지 말지어다. 다만 우리들 중생(衆生)이 법화경(法華經)을 수지(受持)하고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흉중(胸中)의 육단(肉團)에 계시느니라. 이것을 구식심왕진여(九識心王眞如)의 도(都)라고 하느니라. 십계구족(十界具足)이라 함은 십계(十界)가 일계(一界)도 빠짐없이 일계(一界)에 있음이라, 이에 의(依)해서 만다라(曼陀羅)라고 하며 만다라(曼陀羅)라고 함은 천축(天竺)의 이름으로서 여기서는 윤원구족(輪圓具足)이라고도 공덕취(功德聚)라고도 이름하느니라. 이 어본존(御本尊)도 다만 신심(信心)의 이자(二字)에 들어 있으니 이신득입(以信得入)이란 이것이니라.
니치렌(日蓮)의 제자단나등(弟子檀那等)·정직사방편(正直捨方便)·불수여경일게(不受余經一偈)라고 무이(無二)로 믿음으로써·이 어본존(御本尊)의 보탑(寶塔) 안에 들어 갈 수 있느니라·미덥고 미덥도다. 어떻게든 후생(後生)을 깊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시라, 결단코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만 봉창(奉唱)하여 부처가 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라, 신심(信心)의 후박(厚薄)에 달려 있으며, 불법(佛法)의 근본(根本)은 신(信)으로써 근원(根源)으로 하느니라. 그러므로 지관(止觀)의 四에 가로되 「불법(佛法)은 바다와 같다. 오직 신(信)만이 능(能)히 들어감」이라고, 홍결(弘決)의 四에 가로되 「불법(佛法)은 바다와 같다, 오직 신(信)만이 능(能)히 들어 감이란 공구(孔丘)의 말씀도 역시 신(信)을 첫째로 했느니라, 하물며 불법(佛法)의 심리(深理)에 있어서랴. 신(信)이 없이 어찌 들어 가겠느뇨. 고(故)로 화엄(華嚴)에 신(信)을 도(道)의 근원(根源) 공덕(功德)의 모(母)로 하느니라」 등(等), 또 지(止)의 一에 가로되 「어떻게 원(圓)의 법(法)을 듣고 원(圓)의 신(信)을 일으키며 원(圓)의 행(行)을 세워서 원(圓)의 위(位)에 주(住)하리오」 홍(弘)의 一에 가로되 「원신(圓信)이라고 함은 이(理)에 의(依)하여 신(信)을 일으키고 신(信)을 행(行)의 본(本)으로 함」 운운(云云). 외전(外典)에 가로되 「한왕(漢王)이 신하(臣下)의 말을 믿었으므로 하상(河上)의 물결이 갑자기 얼었으며, 이광(李廣)이 아버지의 원수(怨讐)라고 생각하였기에 풀속의 돌이 화살을 삼키었다」라고 했느니라. 결국(結局) 천태(天台) 묘락(妙樂)의 석(釋)은 분명(分明)히 신(信)으로써 본(本)으로 삼았으며, 저 한왕(漢王)도 의심(疑心)하지 않고 대신(大臣)의 말을 믿었기에 물결치던 강(江)물이 얼어서 건너갔느니라. 돌에 화살이 박힌 것은 이것도 역시 아버지의 원수라고 생각한 지신(至信)때문이었으니 하물며 불법(佛法)에 있어서랴. 법화경(法華經)을 수지(受持)하고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면 즉(卽) 오종(五種)의 수행(修行)을 구족(具足)하느니라. 이 사실(事實)은 전교대사(傳敎大師)가 입당(入唐)하여 도수화상(道邃和尙)을 만나 뵙고 오종돈수(五種頓修)의 묘행(妙行)이라고 하는 것을 상전(相傳)받으셨느니라. 니치렌(日蓮)의 제자단나(弟子檀那)의 간요(肝要)는 이 이외(以外)에 구(求)하지 말지어다. 신력품(神力品)에 설(說)함. 상세(詳細)하게는 또 다시 말하겠나이다. 공공근언(恐恐謹言).
건치삼년(建治三年) 八月 二十三日 日蓮花押
니치뇨부인답서(日女夫人答書)"니치렌(日蓮)의 혼(魂)을 먹물에 물들여 넣어서 썼으니 믿으실지어다"
니치렌(日蓮)의 혼(魂)을 먹물에 물들여 넣어서 도현하신 대어본존님을 믿으실지어다.
"니치렌(日蓮)의 혼(魂)은 바로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니치렌(日蓮)의 혼(魂)이 바로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므로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제목을 제대로 정확하게 온정성을 다해서 부르고 불리어서 니치렌(日蓮)의 혼(魂)과 하나가 되어야 함.
그래야 어본불 니치렌대성인님과 하나되어 24시간 내내 환희 중의 대환희의 금강불괴의 위대한 불계의 생명상태를 유지하게 되고 끝없이 즐겁고 행복한 삶을 만끽하면서 중생소유락의 삶을 살고 또 살아가게 되는 것임
오직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만 봉창(奉唱)하면 멸(滅)하지 않는 죄(罪)가 있겠는가, 오지 않는 복(福)이 있겠는가. 진실(眞實)이고 심심(甚深)하니 이를 신수(信受)할지어다.
성우문답초(聖愚問答抄 ) 가마쿠라에서 44세에 술작 497쪽
"오직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만 봉창(奉唱)하면.."
일념(一念)에 억겁(億劫)의 신로(辛勞)를 다하면 본래(本來) 무작(無作)의 삼신(三身)이 염념(念念)에 일어나느니라,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정진행(精進行)이니라.
어의구전(御義口傳) 미노부에서 57세에 술작 790쪽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정진행(精進行)이니라"상주대만다라 대어본존님 상모에 도현되어 있는 분신(分身)의 예 :
인법일개(人法一箇)의 니치렌(日蓮) = 상행보살(上行菩薩) = 불경보살(不輕菩薩)
약왕보살(藥王菩薩) = 천태대사(天台大師) :
남악대사(南岳大師)는 관음(觀音)의 화신(化身)이요, 천태대사(天台大師)는 약왕(藥王)의 화신(化身)이라 등(等)운운(云云).(어서 519쪽)
여러 번 와서 대승(大乘) 등(等)이 되어 법(法)을 넓혔으며, 약왕보살(藥王菩薩)은 천태대사(天台大師)가 되고, 관세음(觀世音)은 남악대사(南岳大師)가 되었으며, 미륵보살(彌勒菩薩)은 부대사(傅大士)가 되었느니라.(어서 1128쪽)
미륵보살(彌勒菩薩)의 재탄 부대사(傅大士)의 어서말씀 속의 예 :
부대사(傅大士)의 석(釋)에 가로되 「조조(朝朝)·부처와 함께 일어나며 석석(夕夕) 부처와 함께 눕고 시시(時時)로 성도(成道)하며 시시(時時)로 현본(顯本)함이라」라고 운운(云云).(어서 737쪽)장문이지만 대어본존님의 상모에 관한 내용과 신(信)의 중요성에 대한 중요한 어서말씀 - 니치뇨부인답서(日女夫人答書) 전편
작성자:세계광선유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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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장문이지만 대어본존님의 상모에 관한 내용과 신(信)의 중요성에 대한 중요한 어서말씀 - 니치뇨부인답서(日女夫人答書) 전편
"니치렌(日蓮)이 어떠한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일인지 용수(龍樹) 천친등(天親等)·천태(天台) 묘락등(妙樂等)조차도 나타내시지 않았던 대만다라(大曼茶羅)를 말법(末法) 이백여년경(二百餘年頃)에 비로소 법화홍통(法華弘通)의 기치(旗幟)로서 나타내 드리느니라. 이것은 결코 니치렌(日蓮)의 자작(自作)이 아니로다"
법화홍통(法華弘通)의 기치(旗幟)로서 나타내 드리느니라.
이것은 결코 니치렌(日蓮)의 자작(自作)이 아니로다
"다보탑중(多寶塔中)의 대모니세존(大牟尼世尊)·분신(分身)의 제불(諸佛)을 판목(版木)으로 한 본존(本尊)이니라."
상주대만다라 대어본존님 상모에 도현되어 있는 분신(分身)의 예 :
인법일개(人法一箇)의 니치렌(日蓮) = 상행보살(上行菩薩) = 불경보살(不輕菩薩)
약왕보살(藥王菩薩) = 천태대사(天台大師) :
남악대사(南岳大師)는 관음(觀音)의 화신(化身)이요, 천태대사(天台大師)는 약왕(藥王)의 화신(化身)이라 등(等)운운(云云).(어서 519쪽)
여러 번 와서 대승(大乘) 등(等)이 되어 법(法)을 넓혔으며, 약왕보살(藥王菩薩)은 천태대사(天台大師)가 되고, 관세음(觀世音)은 남악대사(南岳大師)가 되었으며, 미륵보살(彌勒菩薩)은 부대사(傅大士)가 되었느니라.(어서 1128쪽)
미륵보살(彌勒菩薩)의 재탄 부대사(傅大士)의 어서말씀 속의 예 :
부대사(傅大士)의 석(釋)에 가로되 「조조(朝朝)·부처와 함께 일어나며 석석(夕夕) 부처와 함께 눕고 시시(時時)로 성도(成道)하며 시시(時時)로 현본(顯本)함이라」라고 운운(云云).(어서 737쪽)
상주대만다라 대어본존님 상모의 구체적인 모습 :
"그러므로 수제(首題)의 오자(五字)는 중앙(中央)에 걸리고 사대천왕(四大天王)은 보탑(寶塔)의 사방(四方)에 좌정(坐定)하고 석가(釋迦)·다보(多寶)·본화(本化)의 사보살(四菩薩)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보현(普賢)·문수등(文殊等)·사리불(舍利弗)·목련등(目連等)이 무릎을 꿇고·일천(日天)·월천(月天)·제육천(第六天)의 마왕(魔王)·용왕(龍王)·아수라(阿修羅)·그 외(外)에 부동(不動)·애염(愛染)은 남북(南北)의 이방(二方)에 진(陣)을 치고·악역(惡逆)의 달다(達多)·우치(愚癡)의 용녀(龍女)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삼천세계(三千世界)의 사람의 수명(壽命)을 빼앗는 악귀(惡鬼)인 귀자모신(鬼子母神)·십나찰녀(十羅刹女) 등(等)·뿐만 아니라, 일본국(日本國)의 수호신(守護神)인 천조태신(天照太神)·팔번대보살(八幡大菩薩)·천신칠대(天神七代)·지신오대(地神五代)의 신(神)들·통틀어 대소(大小)의 신기등(神祇等)·체(體)의 신(神)이 줄지어 있으니 여타(餘他)의 용(用)의 신(神)이야 어찌 빠질소냐,"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이 어본존(御本尊) 속에 주(住)하시어 묘법(妙法) 오자(五字)의 광명(光明)에 비추어져서 본유(本有)의 존형(尊形)으로 되니 이를 본존(本尊)이라고 하느니라."
체(體)의 신(神)과 용(用)의 신(神)에 대하여
"체(體)의 신(神)이 줄지어 있으니 여타(餘他)의 용(用)의 신(神)이야 어찌 빠질소냐"를 이해하시기 위해서는 아래의 어서말씀의 예를 보시면 의미는 조금 다르지만 '범부(凡夫)는 체(體)의 신력(神力)·삼세(三世)의 제불(諸佛)은 용(用)의 신력(神力)이고 신(神)이란 심법(心法)..'의 말씀을 통해 이해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십종(十種)의 신력(神力)을 나타내서 상행보살(上行菩薩)에게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를 부촉(付屬)하심이니 이 신력(神力)이란 십계삼천(十界三千)의 중생(衆生)의 신력(神力)이니라. 범부(凡夫)는 체(體)의 신력(神力)·삼세(三世)의 제불(諸佛)은 용(用)의 신력(神力)이고 신(神)이란 심법(心法) 역(力)이란 색법(色法)이며 역(力)은 법(法) 신(神)은 묘(妙)이니라. 묘법(妙法)의 신력(神力)이므로 십계(十界)가 모두 신력(神力)이니라. 연화(蓮華)의 신력(神力)이므로 십계청정(十界淸淨)의 신력(神力)이니라, 통틀어 삼세제불(三世諸佛)의 신력(神力)은 이 품(品)에 다하였으며 석존출세(釋尊出世)의 신력(神力)의 본의(本意)도 이 품(品)의 신력(神力)이로다. 소위(所謂)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신력(神力)이며, 십계개성(十界皆成)이라고 말하는 이외(以外)에 제불(諸佛)의 신력(神力)이란 없으며 일체(一切)의 법문(法門)이 신력(神力)이 아님이 없느니라 운운(云云)."(어서 800쪽)
"이러한 어본존(御本尊)을 공양(供養)해 드리시는 여인(女人)은 현재(現在)에는 행운(幸運)을 초래(招來)하고 후생(後生)에는 이 어본존(御本尊)이 좌우(左右) 전후(前後)에 다가서서 어둠에 등불과 같고 험난(險難)한 곳에서 강력(强力)한 종복(從僕)을 얻은 것과 같이 저쪽으로 돌고, 이쪽으로 다가와서 니치뇨부인(日女夫人)을 둘러싸고 지켜 주시리라. 결단코 명심하여 유녀(遊女)가 나의 집에 접근하는 것을 꺼리듯이 방법자(謗法者)를 방지(防止)하시라, 악지식(惡知識)을 버리고 선우(善友)에게 친근(親近)하라 함은 이것이니라."
"이 어본존(御本尊)을 결코 타처(他處)에서 구(求)하지 말지어다. 다만 우리들 중생(衆生)이 법화경(法華經)을 수지(受持)하고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흉중(胸中)의 육단(肉團)에 계시느니라."
"이것을 구식심왕진여(九識心王眞如)의 도(都)라고 하느니라. 십계구족(十界具足)이라 함은 십계(十界)가 일계(一界)도 빠짐없이 일계(一界)에 있음이라, 이에 의(依)해서 만다라(曼陀羅)라고 하며 만다라(曼陀羅)라고 함은 천축(天竺)의 이름으로서 여기서는 윤원구족(輪圓具足)이라고도 공덕취(功德聚)라고도 이름하느니라. 이 어본존(御本尊)도 다만 신심(信心)의 이자(二字)에 들어 있으니 이신득입(以信得入)이란 이것이니라."
"결단코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만 봉창(奉唱)하여 부처가 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라, 신심(信心)의 후박(厚薄)에 달려 있으며, 불법(佛法)의 근본(根本)은 신(信)으로써 근원(根源)으로 하느니라."
결단코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만 봉창(奉唱)하여 부처가 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라..
"오직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만 봉창(奉唱)하면 멸(滅)하지 않는 죄(罪)가 있겠는가, 오지 않는 복(福)이 있겠는가. 진실(眞實)이고 심심(甚深)하니 이를 신수(信受)할지어다." 성우문답초(聖愚問答抄) 497쪽의 말씀과 같이..
"결국(結局) 천태(天台) 묘락(妙樂)의 석(釋)은 분명(分明)히 신(信)으로써 본(本)으로 삼았으며, 저 한왕(漢王)도 의심(疑心)하지 않고 대신(大臣)의 말을 믿었기에 물결치던 강(江)물이 얼어서 건너갔느니라. 돌에 화살이 박힌 것은 이것도 역시 아버지의 원수라고 생각한 지신(至信)때문이었으니 하물며 불법(佛法)에 있어서랴."
"법화경(法華經)을 수지(受持)하고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면 즉(卽) 오종(五種)의 수행(修行)을 구족(具足)하느니라."
오종(五種)의 수행(修行)을 구족(具足)하느니라..
수지(受持) 독(讀) 송(誦) 해설(解說) 서사(書寫)의 오종(五種)의 수행(修行) 중에 독(讀) 송(誦) 해설(解說) 서사(書寫)의 사종(四種)을 생략(省略)하고 오직 수지(受持)의 일행(一行)으로써 성불(成佛)하리라..
"이 묘법(妙法) 등(等)의 오자(五字)를 말법(末法)·백법은몰(白法隱沒)의 시(時) 상행보살(上行菩薩)·출세(出世)하시어 오종(五種)의 수행중(修行中)에는 사종(四種)을 약(略)하고 오직 수지(受持)의 일행(一行)으로써 성불(成佛)하리라고 경문(經文)에 엄연(嚴然)히 있느니라." (어서 783쪽)
《 본문어서 》
니치뇨부인답서(日女夫人答書)
建治三年 八月 五十六歲御作
어본존(御本尊) 공양(供養)을 위(爲)하여 엽전(葉錢) 오관(五貫)·백미(白米) 한바리·과자(菓子) 보내주신 그 수량(數量)대로 받았소이다. 대저 이 어본존(御本尊)은 재세(在世) 오십년 중(五十年中)에는 팔년(八年)·팔년간(八年間)에도 용출품(涌出品)에서 촉루품(囑累品)까지 팔품(八品)에 나타나셨느니라. 그런데 멸후(滅後)에는 정법(正法)·상법(像法)·말법(末法) 중(中)에서 정상이천년(正像二千年)에는 아직 본문(本門)의 본존(本尊)이라고 하는 이름조차도 없었으니, 하물며 나타나셨을리가 있으리오. 또한 나타낼 수 있는 사람도 없었으며, 천태(天台) 묘락(妙樂) 전교(傳敎) 등(等)은 내심(內心)에는 깨달아서 알고 있었지만 까닭이 있었는지 말로 나타내지는 않았느니라. 저 안연(顔淵)이 들은 것을 의중(意中)에는 깨달았다 할지라도 말로는 나타내지 않은 것과 같다. 그런데 불멸후이천년(佛滅後二千年)이 지나서 말법(末法)의 초(初)의 오백년(五百年)에 출현(出現)하시게 된다는 것은 경문(經文)에 혁혁(赫赫)하고 명명(明明)하며, 천태(天台) 묘락등(妙樂等)의 해석(解釋)에도 분명(分明)하니※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 봉창(奉唱)할 때 제목(題目)의 빛이 무간(無間)에 이르러 즉신성불(卽身成佛)시킴이라.(어서 712쪽)
제목(題目)의 빛..
빛은 입자(지수화풍공(地水火風空))와 파동(쿄(經)) =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
※ 법력(法力)과 불력(佛力) :
법력(法力) 즉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힘 즉 에너지
불력(佛力) 즉 불성의 힘 즉 에너지석가(釋迦) 다보(多寶)의 이불(二佛)도 생사(生死)의 이법(二法)이니라. 그러하므로 구원실성(久遠實成)의 석존(釋尊)과 개성불도(皆成佛道)의 법화경(法華經)과 우리들 중생(衆生)의 셋은 전(全)혀 차별(差別)이 없다고 깨달아서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바를 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의 혈맥(血脈)이라고 하느니라. 이 일은 다만 니치렌(日蓮)의 제자(弟子) 단나(檀那) 등(等)의 간요(肝要)이며, 법화경(法華經)을 가진다고 함은 이것이로다. <중략>
과거(過去)의 생사(生死)와 현재(現在)의 생사(生死)와 미래(未來)의 생사(生死)·이 삼세(三世)의 생사(生死)에서 법화경(法華經)과 떨어지지 않는 것을 법화(法華)의 혈맥상승(血脈相承)이라고 하느니라. <중략>
총(總)하여 니치렌(日蓮)의 제자(弟子) 단나(檀那) 등(等)은 자타피차(自他彼此)라는 마음없이 수어(水魚)라고 생각을 해서 이체동심(異體同心)이 되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바를 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의 혈맥(血脈)이라고 하느니라, 더구나 지금 니치렌(日蓮)이 홍통(弘通)하는 바의 구극(究極)은 이것이니라. 만약 그렇다면 광선유포(廣宣流布)의 대원(大願)도 이루어질 것이니라. <중략>
기필(期必)코 기필(期必)코 강성(强盛)한 대신력(大信力)을 다하여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임종정념(臨終正念)이라고 기념(祈念)하시라. 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의 혈맥(血脈)은 이 외(外)에 절대(絶對)로 구(求)하지 말지니라,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생사즉열반(生死卽涅槃)이란 이것이로다. 신심(信心)의 혈맥(血脈)이 없이는 법화경(法華經)을 가질지라도 무익(無益)하니라.
생사일대사혈맥초((生死一大事血脈抄) 사도에서 51세에 술작 1337~8쪽
"셋은 전(全)혀 차별(差別)이 없다고 깨달아서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바를 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의 혈맥(血脈)이라고 하느니라. 이 일은 다만 니치렌(日蓮)의 제자(弟子) 단나(檀那) 등(等)의 간요(肝要)이며, 법화경(法華經)을 가진다고 함은 이것이로다"
법화경(法華經)을 가진다고 함은 이것이로다..
"기필(期必)코 기필(期必)코 강성(强盛)한 대신력(大信力)을 다하여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임종정념(臨終正念)이라고 기념(祈念)하시라. 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의 혈맥(血脈)은 이 외(外)에 절대(絶對)로 구(求)하지 말지니라"
"기필(期必)코 기필(期必)코 강성(强盛)한 대신력(大信力)을 다하여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임종정념(臨終正念)이라고 기념(祈念)하시라"
"혈맥(血脈)은 이 외(外)에 절대(絶對)로 구(求)하지 말지니라"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의 본의(本意)는 무상(無上)이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무상중(無上中)의 극무상(極無上)이니라. 이 묘법(妙法)을 가리켜 무상보취(無上寶聚)라고 설(說)하셨느니라, 보취(寶聚)란 삼세(三世)의 제불(諸佛)의 만행만선(萬行萬善)의 제바라밀(諸波羅蜜)의 보(寶)를 모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이 무상보취(無上寶聚)를 신로(辛勞)도 없고 행공(行功)도 없이 일언(一言)으로 수취(受取)하는 신심(信心)이며, 불구자득(不求自得)이란 이것이니라
어의구전(御義口傳) 미노부에서 57세에 술작 727쪽처음으로 나의 마음이 본래(本來)의 부처라고(신심(信心)의 모습) 아는 것을 즉(卽) 대환희(大歡喜)라고 이름한다,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환희중(歡喜中)의 대환희(大歡喜)이니라.
어의구전(御義口傳) 미노부에서 57세에 술작 788쪽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환희중(歡喜中)의 대환희(大歡喜)이니라"
우리가 조석으로 행해왔든 근행 즉 방편품이나 여래수량품의 자아게 등이라고 하시지않고 왜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환희중(歡喜中)의 대환희(大歡喜)이니라'라고 하셨는지를 깊이 사색해봐야 함.석가(釋迦) 다보(多寶)의 이불(二佛)도 생사(生死)의 이법(二法)이니라. 그러하므로 구원실성(久遠實成)의 석존(釋尊)과 개성불도(皆成佛道)의 법화경(法華經)과 우리들 중생(衆生)의 셋은 전(全)혀 차별(差別)이 없다고 깨달아서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바를 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의 혈맥(血脈)이라고 하느니라. 이 일은 다만 니치렌(日蓮)의 제자(弟子) 단나(檀那) 등(等)의 간요(肝要)이며, 법화경(法華經)을 가진다고 함은 이것이로다. ※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란 ?
청정(10의 -21승/0.0000000000000000000001) ~ 보탑(7500km×3750km) ~ 동서남북(東西南北)·팔방(八方)· 및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의 외(外)·사백만억나유타(四百萬億那由佗)의 국토(國土) ~ 우주대(宇宙大)에 걸친 일체의 존재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 = 지수화풍공(地水火風空) :
오행(五行)이란 지수화풍공(地水火風空)이며 오대종(五大種)이라고도 오온(五蘊)이라고도 오계(五戒)라고도 오상(五常)이라고도 오방(五方)이라고도 오지(五智)라고도 오시(五時)라고도 하는데, 오직 일물(一物)·경경(經經)의 이설(異說)이며, 내전(內典)·외전(外典)·명목(名目)의 이명(異名)이니라. 금경(今經)에 이를 개회(開會)하여 일체중생(一切衆生)의 심중(心中)의 오불성(五佛性)·오지(五智)의 여래(如來)의 종자(種子)라 설(說)했으니 이는 즉(卽)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이니라. 이 오자(五字)로써 인신(人身)의 체(體)를 만드느니라, 본유상주(本有常住)이고 본각(本覺)의 여래(如來)이며, 이를 십여시(十如是)라 하고 이를 유불여불(唯佛與佛)·내능구진(乃能究盡)이라 함이라, 불퇴(不退)의 보살(菩薩)과 극과(極果)의 이승(二乘)은 조금도 모르는 법문(法門)인데 원돈(圓頓)의 범부(凡夫)는 초심(初心)부터 이를 아는고(故)로 즉신성불(卽身成佛)하니 금강불괴(金剛不壞)의 체(體)니라. <중략>
석가여래(釋迦如來)·오백진점겁(五百塵點劫)의 당초(當初)· 범부(凡夫)로 계셨을 때에 자신(自身)은 지수화풍공(地水火風空)이라 아시고서 즉좌(卽座)에 깨달음을 여셨느니라(어서 568쪽)
※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 봉창(奉唱)할 때 제목(題目)의 빛이 무간(無間)에 이르러 즉신성불(卽身成佛)시킴이라.(어서 712쪽)
제목(題目)의 빛..
빛은 입자(지수화풍공(地水火風空))와 파동(쿄(經)) =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
※ 법력(法力)과 불력(佛力) :
법력(法力) 즉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힘 즉 에너지
불력(佛力) 즉 불성의 힘 즉 에너지"자신(自身)을 공양(供養)하시는 것이며 자신(自身)이 또한 삼신즉일(三身卽一)의 본각(本覺)의 여래(如來)이니라
이렇게 믿으시고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 봉창(奉唱)하시라
이곳이 바로 보탑(寶塔)의 주처(住處)이니라"
공덕(功德)은 전(前)의 공덕(功德)에 비(比)하면, 전(前)의 공덕(功德)은 조상(爪上)의 흙과 같고, 법화경(法華經)의 제목(題目)의 공덕(功德)은 시방(十方)의 흙과 같으니라. 전(前)의 공덕(功德)은 한방울의 물과 같고, 제목(題目)의 공덕(功德)은 대해(大海)와 같다. 전(前)의 공덕(功德)은 와력(瓦礫)과 같고, 제목(題目)의 공덕(功德)은 금은(金銀)과 같으며, 전(前)의 공덕(功德)은 형화(螢火)와 같고, 제목(題目)의 공덕(功德)은 일월(日月)과 같다고 하는 경문(經文)이니라.
제목공덕어서(題目功德御書) 1300쪽제목 : 법계(法界)는 묘호(妙法)이고 법계(法界)는 렌게(蓮華)이며 법계(法界)는 쿄(經)니라.
법계(法界)란 ?
크게 나누어 세계·우주 전체와 진리 그 자체인 진여를 의미합니다.
이 둘을 종합하면 인과의 이치에 지배되고 있는 범위를 뜻합니다.
원래는 18계의 하나로서 의식의 대상인 법경이나 대승불교의 진여·법신과 같은 말입니다.
대개의 경전과 논서들은 일체법을 총괄해 법계로 봅니다.
여기서의 법(dharma)은 경험적 사실로서의 존재(사물·현상)를 의미하고, 계(dhātu)는 원래 요소·종류의 의미였던 것을 불교에서 영역·성질의 뜻으로도 사용한 것입니다.
제목 :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에 대한 이해를 도울 유튜브 영상 '시간과 공간은 하나다' 와 '시간과 공간은 에너지다'
1. '시간과 공간은 하나다' : 시간과 공간은 그 자체로 인간의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외적 세계를 인식할 때의 주관적인 틀로 파악하려고 하기 때문에 구분해서 보지만 시공간은 일체임.
무시무종 무량무변의 구원즉말법과 십계호구와 색심.의정불이 생명원리에 의해 본인묘의 즉신성불도 가능하게 되는 것임.
2. '시간과 공간은 에너지다' : 대우주의 실체인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는 법력(묘법의 에너지.힘)과 불력(불계.불성의 에너지.힘)이고 이 법력과 불력을 용출.끌어올려(자행) 사용하기(화타행:세계광선유포) 위해서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와 하나되는 행위인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창제행을 통한 신력과 행력으로 법력과 불력을 용출시키며 자행화타를 실천하려고 하고 있는 것임.
24시간 내내 환희 중의 대환희의 강력한 불계의 생명력을 계속 유지하게 되는 것임.
칠난즉멸(七難卽滅)·칠복즉생(七福卽生)이란 이것이니라, 나이는 젊어지고 복(福)은 쌓일 것이외다 . 황공(惶恐)·황공(惶恐).(어서 1135쪽)제목 : 십나찰(十羅刹)과 천조태신(天照太神)과 석존(釋尊)과 니치렌(日蓮)은 일체(一體)의 이명(異名)이며 본지수적(本地垂迹)의 이익(利益) 광대(廣大)하니라
석존(釋尊) = 니치렌(日蓮)
십나찰(十羅刹) = 석존(釋尊) = 니치렌(日蓮)
천조태신(天照太神) = 니치렌(日蓮) = 석존(釋尊)
십나찰(十羅刹)과 천조태신(天照太神)과 석존(釋尊)과 니치렌(日蓮)은 일체(一體)의 이명(異名)
본지수적(本地垂迹) : 신의 본지는 부처이고 이 세상을 구하기 위해 임시로 신의 모습을 나타냄
불본신적(佛本神迹)이라고 함
‘부처가 주(主), 신이 종(從)’이야말로 불교의 사고방식임
석존(釋尊)은 2월15일 입멸하셨고 니치렌(日蓮)은 그 다음날인 2월16일 탄생하심.
"니치렌(日蓮) 은 천상(天上)·천하(天下)의 일체중생(一切衆生)의 주군(主君)이고 부모(父母)이고 사장(師匠)이니라"
석존(釋尊) = 니치렌(日蓮) 은 천상(天上)·천하(天下)의 일체중생(一切衆生)의 주군(主君)이고 부모(父母)이고 사장(師匠)이니라..구자(九字)는 구존(九尊)의 불체(佛體)이며, 구계즉불계(九界卽佛界)의 표시(表示)이니라. 묘(妙)란 법성(法性)이고 호(法)란 무명(無明)이며 무명(無明) 법성(法性)이 일체(一體)임을 묘호(妙法)라 하느니라. 렌게(蓮華)란 인과(因果)의 이법(二法)이고, 이것 또한 인과일체(因果一體)이니라. 쿄(經)란 일체중생(一切衆生)의 언어(言語) 음성(音聲)을 쿄(經)라고 하느니라. 석(釋)에 가로되, 성불사(聲佛事)를 함을 이름하여 쿄(經)라 한다고, 혹(或)은 삼세상항(三世常恒)임을 쿄(經)라고 하느니라. 법계(法界)는 묘호(妙法)이고 법계(法界)는 렌게(蓮華)이며 법계(法界)는 쿄(經)니라. 렌게(蓮華)란 팔엽구존(八葉九尊)의 불체(佛體)이니라, 차근차근히 이를 생각할지어다, 이상(已上).
어의구전(御義口傳) 미노부에서 57세에 술작 709쪽눈의 공덕(功德)이란 법화불신(法華不信)의 자(者)는 무간(無間)에 타재(墮在)하고 믿는 자(者)는 성불(成佛)한다고 보는 것을 가지고 눈의 공덕(功德)이라고 하느니라, 법화경(法華經)을 봉지(奉持)하는 곳에 눈의 팔백(八百)의 공덕(功德)을 얻느니라, 눈이란 법화경(法華經)이며 이 대승경전(大乘經典)은 제불(諸佛)의 안목(眼目)이라고.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자(者)는 눈의 공덕(功德)을 얻느니라 운운(云云). 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운운(云云).
어의구전(御義口傳) 미노부에서 57세에 술작 762쪽법사(法師)란 오종법사(五種法師)이고 공덕(功德)이란 육근청정(六根淸淨)의 과보(果報)이니라, 결국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자(者)는 육근청정(六根淸淨)이니라, 그러므로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법(法)의 스승으로 되어, 큰 덕(德)이 있느니라, 공(功)이란 행(幸)이라는 것이며 또한 악(惡)을 멸(滅)함을 공(功)이라 하고 선(善)을 생(生)함을 덕(德)이라고 하느니라, 공덕(功德)이란 즉신성불(卽身成佛)이고 또 육근청정(六根淸淨)이니라, 법화경(法華經)의 설문(說文)과 같이 수행(修行)함을 육근청정(六根淸淨)이라고 알아야 하느니라 운운(云云). <중략>
눈의 공덕(功德)이란 법화불신(法華不信)의 자(者)는 무간(無間)에 타재(墮在)하고 믿는 자(者)는 성불(成佛)한다고 보는 것을 가지고 눈의 공덕(功德)이라고 하느니라, 법화경(法華經)을 봉지(奉持)하는 곳에 눈의 팔백(八百)의 공덕(功德)을 얻느니라, 눈이란 법화경(法華經)이며 이 대승경전(大乘經典)은 제불(諸佛)의 안목(眼目)이라고.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자(者)는 눈의 공덕(功德)을 얻느니라 운운(云云). 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운운(云云).
어의구전(御義口傳) 미노부에서 57세에 술작 762쪽제목 : 극락(極樂)이란 시방법계(十方法界)의 정보(正報)인 유정(有情)과 시방법계(十方法界)의 의보(依報)인 국토(國土)가 화합(和合)하여 일체삼신즉일(一體三身卽一)이니라.
법성(法性)의 연저(淵底)·현종(玄宗)의 극지(極地)인 고(故)로 극리(極理)라고 하느니라,
이 무상(無相)의 극리(極理)인 적광(寂光)의 극락(極樂)은 일체유정(一切有情)의 심성(心性)속에 있어서 청정무루(淸淨無漏)이니라.
이를 이름하여 묘법(妙法)의 심연대(心蓮臺)라 하며,
이런 고(故)로 심외무별법(心外無別法)이라고 하느니라.
본각(本覺)의 생시(生時)를 가지고 나의 심성(心性)을 밝히면 생(生)할 시초(始初)도 없는 고(故)로 죽게 될 끝도 없으니, 이미 생사(生死)를 떠난 심법(心法)이 아니겠느뇨.
겁화(劫火)에도 타지 않고,
수재(水災)에도 썩지 않으며,
검도(劍刀)에도 잘리지 않고,
궁전(弓箭)에도 맞지 않고,
개자(芥子)속에 들어가도 개자(芥子)도 넓어지지 않고,
심법(心法)도 줄어들지 않고,
허공(虛空)속에 꽉 차도 허공(虛空)도 넓지 않고,
심법(心法)도 좁지 않으며,
선(善)에 배반(背反)함을 악(惡)이라 하고,
악(惡)에 배반(背反)함을 선(善)이라고 한다. 법화(法華)의 행자(行者)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자(者)가 방법(謗法)의 공양(供養)을 받지 않음은 탐욕(貪欲)의 병(病)을 제거(除去)하느니라.
법화(法華)의 행자(行者)가 매리(罵詈 : 꾸짓고 욕함)를 당(當)한다 해도 인욕(忍辱 : 욕됨을 참고 용서함)을 행(行)함은 진에(瞋恚 : 뜻에 맞지않을 때 일어나는 증오심이나 노여움)의 병(病)을 제거(除去)하느니라.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는 시인어불도결정무유의(是人於佛道決定無有疑 : 이 법화경을 행하는 사람은 성불하는데 전혀 의심없음)라고 성불(成佛)을 각지(覺知)함은 우치(愚癡 : 매우 어리석고 못남)의 번뇌(煩惱 : 마음과 몸을 괴롭히는 욕망이나 분노 따위)를 치유(治癒)하느니라. 그러므로 대양약(大良藥)은 말법(末法)의 성불(成佛)의 감로(甘露 : 하늘에서 좋은 징조로 내린다는 단맛이 나는 이슬)이니라.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함은 대양약(大良藥)의 본주(本主:본래의 소유자 즉 주인)이니라.대저 석존(釋尊)의 출세(出世)는 주겁(住劫) 제구(第九)의 감(減)·인수백세(人壽百歲)의 시(時)이니라. 백세(百歲)와 십세(十歲)와의 중간(中間)에 재세오십년(在世五十年)·멸후이천년(滅後二千年)과 일만년(一萬年)이니라, 그 중간(中間)에 법화경(法華經) 유포(流布)의 시는 두 번 있으니, 소위(所謂) 재세(在世)의 팔년(八年)·멸후(滅後)에는 말법(末法)의 초(初)의 오백년(五百年)이니라, 그런데 천태(天台)·묘락(妙樂)·전교(傳敎) 등은 소급(遡及)해서는 재세(在世) 법화경(法華經)의 설시(說時)에도 빠지셨으며, 내려와서는 멸후(滅後)·말법(末法)의 시(時)에도 태어나시지 않게 되니, 중간(中間)이란 것을 한탄하시고 말법(末法)의 초(初)를 그리워하신 글이니라.
예(例)를 들면 아사타선인(阿私陀仙人)은 실달태자(悉達太子)가 출생(出生)하신 것을 보고 슬퍼하여 가로되, 현생(現生)에는 구십여세(九十餘歲)이니 태자(太子)의 성도(成道)를 볼 수 없느니라. 후생(後生)에는 무색계(無色界)에 태어나므로 오십년(五十年)의 설법(說法)의 자리에도 열석(列席)할 수 없으며, 정(正) 상(像) 말(末)에도 태어날 수 없다고 한탄(恨歎)했음과 같으니라. 도심(道心)이 있는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듣고서 기뻐하시라. 정상이천년(正像二千年)의 대왕(大王)보다도 후세(後世)를 생각하는 사람들은 말법(末法)의 지금의 백성(百姓)인 것이니라. 이것을 믿지 않을손가, 저 천태(天台)의 좌주(座主)보다도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는 나인(癩人)이 될지어다.
선시초(撰時抄) 미노부에서 54세에 술작 260쪽제목 : 정상이천년(正像二千年)의 대왕(大王)보다도 후세(後世)를 생각하는 사람들은 말법(末法)의 지금의 백성(百姓)인 것이니라.
저 천태(天台)의 좌주(座主)보다도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는 나인(癩人)이 될지어다.
《 본문어서 》
대저 석존(釋尊)의 출세(出世)는 주겁(住劫) 제구(第九)의 감(減)·인수백세(人壽百歲)의 시(時)이니라. 백세(百歲)와 십세(十歲)와의 중간(中間)에 재세오십년(在世五十年)·멸후이천년(滅後二千年)과 일만년(一萬年)이니라, 그 중간(中間)에 법화경(法華經) 유포(流布)의 시는 두 번 있으니, 소위(所謂) 재세(在世)의 팔년(八年)·멸후(滅後)에는 말법(末法)의 초(初)의 오백년(五百年)이니라, 그런데 천태(天台)·묘락(妙樂)·전교(傳敎) 등은 소급(遡及)해서는 재세(在世) 법화경(法華經)의 설시(說時)에도 빠지셨으며, 내려와서는 멸후(滅後)·말법(末法)의 시(時)에도 태어나시지 않게 되니, 중간(中間)이란 것을 한탄하시고 말법(末法)의 초(初)를 그리워하신 글이니라.
예(例)를 들면 아사타선인(阿私陀仙人)은 실달태자(悉達太子)가 출생(出生)하신 것을 보고 슬퍼하여 가로되, 현생(現生)에는 구십여세(九十餘歲)이니 태자(太子)의 성도(成道)를 볼 수 없느니라. 후생(後生)에는 무색계(無色界)에 태어나므로 오십년(五十年)의 설법(說法)의 자리에도 열석(列席)할 수 없으며, 정(正) 상(像) 말(末)에도 태어날 수 없다고 한탄(恨歎)했음과 같으니라. 도심(道心)이 있는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듣고서 기뻐하시라. 정상이천년(正像二千年)의 대왕(大王)보다도 후세(後世)를 생각하는 사람들은 말법(末法)의 지금의 백성(百姓)인 것이니라. 이것을 믿지 않을손가, 저 천태(天台)의 좌주(座主)보다도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는 나인(癩人)이 될지어다.
선시초(撰時抄) 미노부에서 54세에 술작 260쪽대저 생(生)을 받았을 때부터 죽음을 면(免)치 못한다는 사리(事理)는 귀(貴)한 천황(天皇)에서 비천(卑賤)한 백성에 이르기까지 사람마다 이를 알고 있다 해도 실(實)로 이를 중요시(重要視)하고 이를 한탄하는 자(者)는 천만인(千萬人)에 일인(一人)도 없느니라. 무상(無常)이 현기(現起)함을 보고는 소원(疎遠)을 두려워하고 친근(親近)을 한탄한다고 하지만, 앞선 자는 허무하고 남은 자는 현명한 듯이 생각하여 어제는 그 일 오늘은 이 일이라 해서 헛되이 세간(世間)의 오욕(五慾)에 얽매여, 백구(白駒)의 그림자는 지나가기 쉽고 양(羊)의 걸음이 가까이 옴을 모르고, 헛되이 의식(衣食)의 옥(獄)에 묶이고 헛되게 명리(名利)의 구멍에 떨어져 삼도(三途)의 옛마을에 돌아가, 육도(六道)의 거리를 윤회(輪回)할 것을 지각 있는 사람이면 누군들 한탄하지 않으리요, 누군들 슬퍼하지 않으리요.무상(無相)의 극리(極理)란 달과 바람과 같은 생시(生時)인 이 몸의 심성(心性)의 적광(寂光)의 극락(極樂)이니라. 이 극락(極樂)이란 시방법계(十方法界)의 정보(正報)인 유정(有情)과 시방법계(十方法界)의 의보(依報)인 국토(國土)가 화합(和合)하여 일체삼신즉일(一體三身卽一)이니라. 사토불이(四土不二)로서 법신(法身)의 일불(一佛)이며, 십계(十界)를 신(身)으로 함은 법신(法身)이니라. 십계(十界)를 심(心)으로 함은 보신(報身)이니라. 십계(十界)를 형(形)으로 함은 응신(應身)이니라. 십계외(十界外)에 부처는 없고 부처 외(外)에 십계(十界)가 없어서 의정불이(依正不二)이고 신토불이(身土不二)니라. 일불(一佛)의 신체(身體)임을 가지고 적광토(寂光土)라 하며, 이런 고(故)로 무상(無相)의 극리(極理)라 하느니라. 생멸무상(生滅無常)의 상(相)을 떠난 고(故)로 무상(無相)이라 하며, 법성(法性)의 연저(淵底)·현종(玄宗)의 극지(極地)인 고(故)로 극리(極理)라고 하느니라, 이 무상(無相)의 극리(極理)인 적광(寂光)의 극락(極樂)은 일체유정(一切有情)의 심성(心性)속에 있어서 청정무루(淸淨無漏)이니라. 이를 이름하여 묘법(妙法)의 심연대(心蓮臺)라 하며, 이런 고(故)로 심외무별법(心外無別法)이라고 하느니라. 이것을 일체법(一切法)은 개시불법(皆是佛法)이라고 통달해료(通達解了)함이라 하느니라. 생(生)과 사(死)의 둘의 이(理)는 생사(生死)의 꿈의 이(理)이고, 망상(妄想)이며 전도(顚倒)이니라. 본각(本覺)의 생시(生時)를 가지고 나의 심성(心性)을 밝히면 생(生)할 시초(始初)도 없는 고(故)로 죽게 될 끝도 없으니, 이미 생사(生死)를 떠난 심법(心法)이 아니겠느뇨. 겁화(劫火)에도 타지 않고, 수재(水災)에도 썩지 않으며, 검도(劍刀)에도 잘리지 않고, 궁전(弓箭)에도 맞지 않고, 개자(芥子)속에 들어가도 개자(芥子)도 넓어지지 않고, 심법(心法)도 줄어들지 않고, 허공(虛空)속에 꽉 차도 허공(虛空)도 넓지 않고, 심법(心法)도 좁지 않으며, 선(善)에 배반(背反)함을 악(惡)이라 하고, 악(惡)에 배반(背反)함을 선(善)이라고 한다. 고(故)로 심외(心外)에 선(善)이 없고 악(惡)이 없으며, 이 선(善)과 악(惡)에서 떨어짐을 무기(無記)라고 하느니라.
삼세제불총감문교상폐립(三世諸佛總勘文敎相廢立) 미노부에서 58세에 술작 563쪽
니치렌(日蓮)의 자비(慈悲)가 광대(曠大)하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만년외(萬年外)·미래(未來)까지도 유포(流布)하리라. 일본국(日本國)의 일체중생(一切衆生)의 맹목(盲目)을 여는 공덕(功德)이 있으며, 무간지옥(無間地獄)의 길을 막았느니라. 이 공덕(功德)은 전교(傳敎)·천태(天台)보다도 초과(超過)하고 용수(龍樹)·가섭(迦葉)보다도 뛰어났느니라. 극락백년(極樂百年)의 수행(修行)은 예토(穢土)의 일일(一日)의 공덕(功德)에 미치지 못하고 , 정상이천년(正像二千年)의 홍통(弘通)은 말법(末法)의 일시(一時)만 못하니라. 이는 오로지 니치렌(日蓮)의 지혜(智慧)가 뛰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때가 그렇게 시킬 뿐이로다. 봄은 꽃이 피고 가을은 과실(菓實)을 맺고,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추운데, 때가 그렇게 만드는 것이 아니겠느뇨.
보은초(報恩抄) 미노부에서 55세에 술작 329쪽
전교대사(傳敎大師)라고 이름하시어, 수구(秀句)라고 하는 서(書)를 만드셨는데 「능화(能化)·소화(所化) 다같이 역겁(歷劫)이 없으며, 묘법경(妙法經)의 힘으로 즉신(卽身)으로 성불(成佛)함」이라고 용녀(龍女)의 성불(成佛)을 정(定)해 두시었다. 그런데 당세(當世)의 여인(女人)은 즉신성불(卽身成佛)은 어렵겠지만, 왕생극락(往生極樂)은 법화(法華)를 의지하면 의심(疑心)할 바 없으니 , 비유컨대 강하(江河)가 대해(大海)에 들어가기 보다도 쉽고, 비가 공중(空中)에서 떨어지는 것보다도 빠르게 되는 일이니라.
법화경제목초(法華經題目抄) 기요스미(淸澄)에서 45세에 술작 948쪽혹시(或時)는 천상(天上)에 태어나서 오쇠(五衰)를 받았노라. 이와 같이 삼계(三界)의 사이를 차륜(車輪)과 같이 돌고 부자(父子) 사이에도 어버이는 어버이다움, 자식은 자식다움을 깨닫지 못하며, 부부(夫婦)로서 해후(邂逅)한 것도 해후(邂逅)임을 모르니 미혹(迷惑)함은 마치 양목(羊目)과 같으며 어둡기는 낭안(狼眼)과 같도다. 나를 낳으신 모(母)의 유래(由來)도 모르고 생(生)을 받은 나의 몸도 죽음의 끝을 알지 못한다. 아아, 받기 어려운 인계(人界)의 생(生)을 받고 만나기 어려운 여래(如來)의 성교(聖敎)를 만났으니 일안(一眼)의 거북이가 부목(浮木)의 구멍을 만난 것과 같으니라. 이번에 만약 생 사(生死)의 결박(結縛)을 끊지 아니하고 삼계(三界)의 농번(籠樊)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슬플 것이로다, 슬플 것이로다.
성우문답초(聖愚問答抄) 가마쿠라에서 44세에 술작 474~5쪽우리들은 무시이래(無始已來) 무명(無明)의 술에 취(醉)하여 육도(六道)·사생(四生)을 윤회(輪回)하고 혹시(或時)는 초열(焦熱)·대초열(大焦熱)의 불길에 목이 메었고, 혹시(或時)는 홍련(紅蓮)·대홍련(大紅蓮)의 얼음에 갇히고 혹시(或時)는 아귀(餓鬼)·기갈(飢渴)의 슬픔을 만나서 오백생(五百生)동안 음식(飮食)의 이름조차도 듣지 않았으며, 혹시(或時)는 축생(畜生)·잔해(殘害)의 고통을 받았는데 작은 것은 큰 것에 먹히고·짧은 것은 긴 것에 감겨지는 것을 잔해(殘害)의 고(苦)라고 함이라. 혹시(或時)는 수라(修羅)·투쟁(鬪爭)의 고(苦)를 받고 혹시(或時)는 인간(人間)으로 태어나서 팔고(八苦)를 받으니 생(生)·노(老)·병(病)·사(死)·애별리고(愛別離苦)·원증회고(怨憎會苦)·구부득고(求不得苦)·오성음고(五盛陰苦) 등(等)이니라. 대저 생(生)을 받았을 때부터 죽음을 면(免)치 못한다는 사리(事理)는 귀(貴)한 천황(天皇)에서 비천(卑賤)한 백성에 이르기까지 사람마다 이를 알고 있다 해도 실(實)로 이를 중요시(重要視)하고 이를 한탄하는 자(者)는 천만인(千萬人)에 일인(一人)도 없느니라. 무상(無常)이 현기(現起)함을 보고는 소원(疎遠)을 두려워하고 친근(親近)을 한탄한다고 하지만, 앞선 자는 허무하고 남은 자는 현명한 듯이 생각하여 어제는 그 일 오늘은 이 일이라 해서 헛되이 세간(世間)의 오욕(五慾)에 얽매여, 백구(白駒)의 그림자는 지나가기 쉽고 양(羊)의 걸음이 가까이 옴을 모르고, 헛되이 의식(衣食)의 옥(獄)에 묶이고 헛되게 명리(名利)의 구멍에 떨어져 삼도(三途)의 옛마을에 돌아가, 육도(六道)의 거리를 윤회(輪回)할 것을 지각 있는 사람이면 누군들 한탄하지 않으리요,두려워 해야 함은 심법(深法)을 비방(誹謗)함과 그리고 방법(謗法)의 지식(知識)이니라, 결정코 사람으로 하여금 두려운 아비옥(阿鼻獄)에 들어가게 한다. 악지식(惡智識)을 친근(親近)하여 악심(惡心)이어서 부처에게 피를 내게 하고, 그리고 부모(父母)를 살해(殺害)하고 모든 성인(聖人)의 목숨을 끊고, 화합승(和合僧)을 파괴(破壞)하고 또한 모든 선근(善根)을 끊는다 해도, 염(念)을 정법(正法)에 이음으로써 능(能)히 그 곳을 해탈(解脫)하리라. 만약 또 여인(餘人)이 있어서, 심심(甚深)한 법(法)을 비방(誹謗)하면 그 사람은 무량겁(無量劫)에도 해탈(解脫)을 얻지 못하리라. 만약 사람이 중생(衆生)으로 하여금 이와같은 법(法)을 각신(覺信)하게 하면, 그는 바로 나의 부모(父母)이자 또한 선지식(善知識)이로다. 그 사람은 바로 지자(智者)이며 여래(如來) 멸후(滅後)에 사견전도(邪見顚倒)를 돌려서 정도(正道)에 들어가게 하기 때문에, 삼보청정(三寶淸淨)의 신(信)·보리공덕(菩提功德)의 업(業)이니라」 등(等) 운운(云云).대저 현인(賢人)은 안온(安穩)하게 살면서 위험(危險)을 한탄(恨歎)하며, 영인(佞人)은 위험(危險)에 처(處)해서 안온(安穩)을 한탄(恨歎)한다, 대화(大火)는 소수(小水)를 외포(畏怖)하고, 대수(大樹)는 소조(小鳥)를 만나 가지를 꺾이니 지인(智人)은 공포(恐怖)하리라, 대승(大乘)을 비방(誹謗)하는 고(故)로. 천친보살(天親菩薩)은 혀를 자르려 하고 마명보살(馬鳴菩薩)은 목을 자르기를 원(願)하고 길장대사(吉藏大師)는 몸을 육교(肉橋)로 하고, 현장삼장(玄弉三藏)은 이를 영지(靈地)에서 점(占)치고 불공삼장(不空三藏)은 의문(疑問)을 천축(天竺)에서 해결(解決)하고 전교대사(傳敎大師)는 이를 이역(異域)에서 구(求)하였다.
이에 니치렌(日蓮)이 어떠한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일인지 용수(龍樹) 천친등(天親等)·천태(天台) 묘락등(妙樂等)조차도 나타내시지 않았던 대만다라(大曼茶羅)를 말법(末法) 이백여년경(二百餘年頃)에 비로소 법화홍통(法華弘通)의 기치(旗幟)로서 나타내 드리느니라. 이것은 결코 니치렌(日蓮)의 자작(自作)이 아니로다, 다보탑중(多寶塔中)의 대모니세존(大牟尼世尊)·분신(分身)의 제불(諸佛)을 판목(版木)으로 한 본존(本尊)이니라. 그러므로 수제(首題)의 오자(五字)는 중앙(中央)에 걸리고 사대천왕(四大天王)은 보탑(寶塔)의 사방(四方)에 좌정(坐定)하고 석가(釋迦)·다보(多寶)·본화(本化)의 사보살(四菩薩)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보현(普賢)·문수등(文殊等)·사리불(舍利弗)·목련등(目連等)이 무릎을 꿇고·일천(日天)·월천(月天)·제육천(第六天)의 마왕(魔王)·용왕(龍王)·아수라(阿修羅)·그 외(外)에 부동(不動)·애염(愛染)은 남북(南北)의 이방(二方)에 진(陣)을 치고·악역(惡逆)의 달다(達多)·우치(愚癡)의 용녀(龍女)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삼천세계(三千世界)의 사람의 수명(壽命)을 빼앗는 악귀(惡鬼)인 귀자모신(鬼子母神)·십나찰녀(十羅刹女) 등(等)·뿐만 아니라, 일본국(日本國)의 수호신(守護神)인 천조태신(天照太神)·팔번대보살(八幡大菩薩)·천신칠대(天神七代)·지신오대(地神五代)의 신(神)들·통틀어 대소(大小)의 신기등(神祇等)·체(體)의 신(神)이 줄지어 있으니 여타(餘他)의 용(用)의 신(神)이야 어찌 빠질소냐, 보탑품(寶塔品)에 가로되 「여러 대중(大衆)을 접(接)하여 모두 허공(虛空)에 있음」 운운(云云). 이들의 불(佛) 보살(菩薩)·대성(大聖) 등(等)·통틀어 서품(序品) 열좌(列座)의 이계팔번(二界八番)의 잡중등(雜衆等)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이 어본존(御本尊) 속에 주(住)하시어 묘법(妙法) 오자(五字)의 광명(光明)에 비추어져서 본유(本有)의 존형(尊形)으로 되니 이를 본존(本尊)이라고 하느니라.
경(經)에 가로되 「제법실상(諸法實相)」 이것이니라. 묘락(妙樂)가로되 「실상(實相)은 반드시 제법(諸法)·제법(諸法)은 반드시 십여(十如) 내지(乃至) 십계(十界)는 반드시 신토(身土)」 운운(云云). 또 가로되 「실상(實相)의 심리(深理) 본유(本有)의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 등(等)이라고 운운(云云). 전교대사(傳敎大師)가 가로되 「일념삼천(一念三千) 즉(卽) 자수용신(自受用身)·자수용신(自受用身)이란 출존형(出尊形)의 불(佛)」 문(文). 그런 고(故)로 미증유(未曾有)의 대만다라(大曼茶羅)라고 삼가 이름하였느니라. 불멸후(佛滅後)·이천이백이십여년(二千二百二十餘年)에는 이 어본존(御本尊)은 아직 출현(出現)하시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니라.
이러한 어본존(御本尊)을 공양(供養)해 드리시는 여인(女人)은 현재(現在)에는 행운(幸運)을 초래(招來)하고 후생(後生)에는 이 어본존(御本尊)이 좌우(左右) 전후(前後)에 다가서서 어둠에 등불과 같고 험난(險難)한 곳에서 강력(强力)한 종복(從僕)을 얻은 것과 같이 저쪽으로 돌고, 이쪽으로 다가와서 니치뇨부인(日女夫人)을 둘러싸고 지켜 주시리라. 결단코 명심하여 유녀(遊女)가 나의 집에 접근하는 것을 꺼리듯이 방법자(謗法者)를 방지(防止)하시라, 악지식(惡知識)을 버리고 선우(善友)에게 친근(親近)하라 함은 이것이니라.
이 어본존(御本尊)을 결코 타처(他處)에서 구(求)하지 말지어다. 다만 우리들 중생(衆生)이 법화경(法華經)을 수지(受持)하고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흉중(胸中)의 육단(肉團)에 계시느니라. 이것을 구식심왕진여(九識心王眞如)의 도(都)라고 하느니라. 십계구족(十界具足)이라 함은 십계(十界)가 일계(一界)도 빠짐없이 일계(一界)에 있음이라, 이에 의(依)해서 만다라(曼陀羅)라고 하며 만다라(曼陀羅)라고 함은 천축(天竺)의 이름으로서 여기서는 윤원구족(輪圓具足)이라고도 공덕취(功德聚)라고도 이름하느니라. 이 어본존(御本尊)도 다만 신심(信心)의 이자(二字)에 들어 있으니 이신득입(以信得入)이란 이것이니라.
니치렌(日蓮)의 제자단나등(弟子檀那等)·정직사방편(正直捨方便)·불수여경일게(不受余經一偈)라고 무이(無二)로 믿음으로써·이 어본존(御本尊)의 보탑(寶塔) 안에 들어 갈 수 있느니라·미덥고 미덥도다. 어떻게든 후생(後生)을 깊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시라, 결단코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만 봉창(奉唱)하여 부처가 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라, 신심(信心)의 후박(厚薄)에 달려 있으며, 불법(佛法)의 근본(根本)은 신(信)으로써 근원(根源)으로 하느니라. 그러므로 지관(止觀)의 四에 가로되 「불법(佛法)은 바다와 같다. 오직 신(信)만이 능(能)히 들어감」이라고, 홍결(弘決)의 四에 가로되 「불법(佛法)은 바다와 같다, 오직 신(信)만이 능(能)히 들어 감이란 공구(孔丘)의 말씀도 역시 신(信)을 첫째로 했느니라, 하물며 불법(佛法)의 심리(深理)에 있어서랴. 신(信)이 없이 어찌 들어 가겠느뇨. 고(故)로 화엄(華嚴)에 신(信)을 도(道)의 근원(根源) 공덕(功德)의 모(母)로 하느니라」 등(等), 또 지(止)의 一에 가로되 「어떻게 원(圓)의 법(法)을 듣고 원(圓)의 신(信)을 일으키며 원(圓)의 행(行)을 세워서 원(圓)의 위(位)에 주(住)하리오」 홍(弘)의 一에 가로되 「원신(圓信)이라고 함은 이(理)에 의(依)하여 신(信)을 일으키고 신(信)을 행(行)의 본(本)으로 함」 운운(云云). 외전(外典)에 가로되 「한왕(漢王)이 신하(臣下)의 말을 믿었으므로 하상(河上)의 물결이 갑자기 얼었으며, 이광(李廣)이 아버지의 원수(怨讐)라고 생각하였기에 풀속의 돌이 화살을 삼키었다」라고 했느니라. 결국(結局) 천태(天台) 묘락(妙樂)의 석(釋)은 분명(分明)히 신(信)으로써 본(本)으로 삼았으며, 저 한왕(漢王)도 의심(疑心)하지 않고 대신(大臣)의 말을 믿었기에 물결치던 강(江)물이 얼어서 건너갔느니라. 돌에 화살이 박힌 것은 이것도 역시 아버지의 원수라고 생각한 지신(至信)때문이었으니 하물며 불법(佛法)에 있어서랴. 법화경(法華經)을 수지(受持)하고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면 즉(卽) 오종(五種)의 수행(修行)을 구족(具足)하느니라. 이 사실(事實)은 전교대사(傳敎大師)가 입당(入唐)하여 도수화상(道邃和尙)을 만나 뵙고 오종돈수(五種頓修)의 묘행(妙行)이라고 하는 것을 상전(相傳)받으셨느니라. 니치렌(日蓮)의 제자단나(弟子檀那)의 간요(肝要)는 이 이외(以外)에 구(求)하지 말지어다. 신력품(神力品)에 설(說)함. 상세(詳細)하게는 또 다시 말하겠나이다. 공공근언(恐恐謹言).
건치삼년(建治三年) 八月 二十三日 日蓮花押
니치뇨부인답서(日女夫人答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