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부들의 발자취(5) -- 초기 변증가 교부(1)

[성한눈。]

제3장 초기 변증가 교부

교부학에서 ‘초기 변증가’(ἀπολογήται/apologetae/Early Apologists)들이라고 하면, 2～3세기 전반에 기독교에 대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의 근거 없는 비방 내지는 중상모략, 나아가 기독교에 대한 로마 제국의 핍박에 대항하여, 기독교의 진리성을 문필활동(文筆活動)을 통해 증명하려고 시도한 사람들을 말한다. 이들은 기독교에 대한 이교도들의 공격에 대하여 선한 행실로만 대응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기독교가 어찌하여 미신(迷信)이나 사교(邪敎)가 아니라 진리의 종교, 구원의 종교가 되는가를 이론적으로 증명하고자 했다.

초기 변증가로 중요한 사람은 다음과 같다.

▢ 코트라토스(125년경 변증서 씀)

▢ 아리스티데스(2세기 전반 활약)

▢ 순교자 유스티누스(100?～?165)

▢ 타티아노스(110?～?180)

▢ 아테나고라스(타티아노스와 동시대인)

▢ 안디옥의 감독 데오빌로(115～181/191)

▢ 사데의 감독 멜리톤(+190?) 디오그네트서의 저자(3세기 초에 저술 활동?)

▢ 마누키우스의 펠릭스(2세기 후반～3세기 전반)

이 교부 중에 라틴어를 사용하는 로마 제국 서부에서 태어난 사람은 마누키우스의 펠릭스 한 사람뿐이고, 로마 제국 밖의 오리엔트 지방에서 태어난 사람은 타티아노스밖에 없다. 나머지 여섯 사람은 모두 헬라어를 사용하는 로마 제국 동부에서 태어났거나, 그 지역에서 활약하였으므로 ‘희랍 변증가’(Greek Apologists)로 분류된다.

타티아노스는 비록 앗수르 출신의 변증가이지만, 대표적인 희랍 변증가인 순교자 유스티누스의 제자였으므로 보통 희랍 변증가로 분류된다.

제1절 변증가 교부 출현의 역사적 배경

1. 교회 내부적 배경

변증가 출현의 역사적 배경을 외적인 면에서 살펴보면, 기독교에 대한 유대인과 이방인들의 비판 내지는 중상모략 그리고 유대인 및 로마 제국에 의한 기독교 박해가 변증가 출현의 중요한 원인이었다.

그러나 기독교 내부로 눈을 돌려보면, 1세기 말경부터 새로 기독교로 개종해 오는 지식계층에 속한 사람들이 포함되게 된 사실이 변증가의 출현의 중요한 역사적 배경이 된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아는 대로 당시 로마 제국은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 아래 있었다.

헬레니즘 문화를 일으킨 헬라인들은 신화(μῦθος/mythos)에만 집착하지 아니하고, 인간의 이성(λόγος/ratiō/logos)을 중요시하였다. 이 점에서는 로마 사람들도 큰 차이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초기 변증가들은 기독교가 결코 이성에 반하는 미신이나 사교가 아니라, 도리어 희랍 사람들이 추구하던 진선미에의 이상을 충족시켜 주고도 남음이 있는, 유일한 참된 가르침이라는 것을 밝히고자 노력하였다.

2. 변증가 출현의 사상적 배경

가. 중기 플라톤주의(130 BC~AD 2세기 후반)

초기 변증가들 대부분은 철학적으로 중기 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므로 초기 변증가들의 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영향을 미친 중기 플라톤주의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플라톤은 주전 387년경 자기 고향 아테네에서 아카데미라고 하는 학당(學堂)을 설립하였는데, 이곳을 중심으로 하여 구 플라톤학파, 혹은 아카데미 학파가 형성되었다.

중기 플라톤 철학은 유일신의 존재를 전제로 한 형이상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것은 플라톤이 희랍의 전통적 종교인 다신교를 타파할 필요성을 느꼈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나 플라톤의 사후 아카데미 학파는 쾌락주의, 회의주의, 경험주의 경향으로 흘러 종교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으나 주전 1세기 중엽에 이르러, 중기 플라톤학파가 등장하면서 종교적인 문제가 다시 플라톤주의자들의 주요 관심사가 되었다.

중기 플라톤학파는 하나님의 초월성, 하나님과 세계의 무한한 질적 차이를 강조하는 경향을 지녔으며, 그 결과 인간이 하나님을 인지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불가지론(agnosticism)에 빠지지 않기 위하여 하나님과 인간의 세계를 매개하는 매개자 혹은 매개자군(媒介者群)을 상정하고, 이 매개자 혹은 매개자군이 하나님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 사이에 있는 중간 세계에 거하면서, 하나님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매개한다고 생각하였다.

중기 플라톤학파는 또 인간을 ‘소우주’(小宇宙)로 보고 마치 ‘대우주’(大宇宙)에 ‘세계 이성’(世界 理性, τοῦ κόσμου λόγος) 또는 ‘세계혼’(世界魂, ψυχὴ τοῦ κόσμου)이 있는 것처럼, 우리 인간 속에도 ‘이성’(λόγος) 또는 ‘영혼’(ψυχή)이 있어서, 하나님의 세계로 ‘상승’(ἀνάβασις)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중기 플라톤주의자들은 ‘지식’(ἑπιστήμη)에 관한 플라톤이 그의 책 『테아이테토스』(Θεαίτητος/Theaetētus)에서 제시한 바 있는 ‘가능한 한 하나님을 닮는 것’(ὁμοίωσις τῷ θεῷ κατὰ τὸ δυνατόν)을 인생의 최고의 목표로 삼았다.

이런 플라톤과 플라톤주의자들의 영향으로 수많은 기독교 사상가들이 ‘하나님의 모방’(imitatiō Deī) 내지는 ‘그리스도의 모방’(imitatiō Chrīstī)을 기독교인의 삶의 이상으로 추구하였다.

나. 헬라파 유대교의 지혜론과 로고스론

주전 334년 알렉산더 대왕(356 BC, 재위 336～323 BC)이 페르시아 원정을 시작한 이래, 지중해 해안지역에 흩어져 살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 가운데 상당수가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게 되었고, 이에 따라 주전 3세기부터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 중심으로 헬라파 유대교가 등장하게 되었다.

헬라파 유대인들 가운데는 히브리어를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으므로 주전 3세기 중엽 헬레니즘 세계의 중심 도시였던 알렉산드리아에서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하여 주전 2세기 후반에 헬라어 구약성경인 『칠십인경』에는 히브리어 구약성경에는 없는 일곱 권의 외경(ἀπόκρυφα/apocrypha)이 포함되었다. 『칠십인경』에는 희랍 사상이 많이 나타나는데, 희랍 사상의 영향은 『칠십인경』 중에서도 특히 『칠십인경』에 포함된 구약 외경에서 더 현저히 나타난다.

알렉산드리아에서 활약한 필론(φιλων/Philon, BC 25/10?～AD 45/50)은 헬라파 유대인 중 가장 대표적인 사상가로서 로고스론을 발전시켰으며, 기독교 교부들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으므로, 철학사뿐 아니라, 신학사(神學史)에서도 매우 중요한 인물로 취급되고 있다.

필론은 아리스토불로스에 이어, 성경을 풍유적(Allegorical)으로 해석하는 방법을 발전시켰고, 이러한 그의 성경해석 방법을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오리게네스와 밀라노의 암브로시우스, 히포 레기우스의 아우구스티누스와 같은 기독교 교부들이 이어받아, 성경의 문자적 해석뿐 아니라 영적 해석을 시도하게 되었다.

로마 제국은 유대인들에 대하여 비교적 관대했지만, 때때로 유대인을 박해할 때도 있었다. 예컨대 주후 38년 당시 이집트의 총독이었던 아빌리우스 플라쿠스(Avillius Flaccus)는 이집트의 유대인들을 박해하였고, 칼리굴라(Caligula, 재위 37～41) 황제는 유대인들에게 황제숭배를 강요하기 위해, 유대인의 회당에 자기의 조상(彫像)을 세우도록 하였고, 비록 유대인들의 반대로 실행되지는 못했지만, 예루살렘 성전에도 자기의 조상(彫像)을 세우고 싶어 하였다. 이에 필론은 『반(反) 플라쿠스론』, 『가이우스에게 파송된 사절단』 등의 책을 써서, 유대인의 유일신 신앙을 변호하였다. 필론은 『모세의 생애』와 『제가설』(諸假說)이라는 책을 통해서도 유대교를 변증하였다. 이로써 필론은 유대교 변증가가 되었고, 고대의 기독교 변증가들의 선구자적 역할을 하였다. 또한, 필론은 주후 39년 말에서 40년 초 사이에 알렉산드리아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의 대표 자격으로 로마로 가서 칼리굴라 황제 앞에서 유대교를 변증하였다.

1) 헬라파 유대인의 지혜론

헬라파 유대인들이 발전시킨 지혜론의 성경적 근거는 잠언 1장부터 9장까지다. 여기에서 지혜(חָכְמָה/σοφία/sapientia)는 의인화되어 있는 인격체(πρόσωπον/persōna) 내지는 실체(ὑπόστασις/substantia)로 나타날 때가 많다. 특히 잠언 8장 22절 이하에서는 지혜가 창조의 매개자로 묘사되어 있다(잠 8:30).

잠언에서 이미 시작된 지혜의 의인화나 실체화는 구약 외경, 특히 헬라파 유대인이 기록한 외경과 위경(僞經)에서 더욱 진전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집회서』(集會書)와 『지혜서』(智慧書)』를 통해서 잘 관찰할 수 있다.

2) 필론의 로고스론

필론은 플라톤의 철학과 스토아 철학 등 희랍 철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필론은 희랍 철학을 매우 중요시하여 모세와 이스라엘의 족장들을 현자(賢者) 내지는 철학자로 묘사하며, 플라톤과 같은 희랍 철학자들을 성령의 인도함을 받은 사람들로 생각한다.

필론이 로고스론을 고안한 것은, 초월적 하나님이 어떻게 가시적인 세계와 관련을 맺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였다.

필론은 ‘무에서의 창조’(creātiō ex nihilō)를 믿지 않는다. 그는 플라톤주의들과 비슷하게 가시적 세계, 곧 피조 세계가 영원 전부터 존재하던 카오스(χάος/chaos) 상태의 ‘물질’(ὕλη)을 재료로 하여 만들어졌다고 본다. 필론이 보기에 물질은 악의 근원이다. 인간의 죄성도 인간이 물질로 구성된 육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필론은 육신(σῶμα)이 ‘영혼의 무덤’(σῆμα τῆς ψυχῆς)이라는 플라톤주의자들의 생각에 동조한다.

필론은 중기 플라톤학파와 마찬가지로, 초월적인, 곧, 불가시적이고 불변적인 하나님과 가변적인 물질로 구성된 가시적 피조 세계 사이의 무한한 질적 차이를 강조하였다. 그렇다면 초월적 하나님과 가시적 피조 세계 사이에는 아무런 가교가 없는가? 이러한 문제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필론은 중기 플라톤학파와 비슷하게 하나님과 세계 사이를 연결해주는 매개자 혹은 매개자군을 상정하였다.

필론에게 있어서 이 로고스는 플라톤 철학에서 나오는 ‘이데아의 세계’(κόσμος νοητός/mundus intellegibilis)의 총체와 같으며, 스토아 철학에서 나오는 ‘세계혼’(ψυχὴ τοῦ κόσμου) 혹은 ‘세계 이성’(τοῦ κόσμου λόγος)과 같다. 필론은 로고스를 ‘하나님의 형상’(εἰκὼν Θεοῦ) 혹은 ‘하나님의 첫아들’(πρωτόγονος υἱός) 혹은 ‘제2의 하나님’(δεύτερος Θεόδ)이라고 불렀다. 또한, 필론은 스토아 철학자들과 같이 로고스를 ‘인간의 원형’(ἄνθρωπος κατ‘ εἰκόνα) 내지는 ‘세계의 원형’(κόσμος κατ‘εἰκόνα)이라고도 불렀다.

필론은 유대인 철학자로서 유대교의 천사론(天使論)을 수용하였다. 그래서 필론은 로고스를 천사의 대표라고 생각하였다. 필론에 의하면, 천사의 대표로서 로고스는 하나님의 ‘창조의 도구’(ὄργανον τῆς κτίσεως)로 사용되었고, 또 하나님의 계시를 중개하는 역할을 감당한다. 필론은 로고스를 ‘생성되지 않은 자’(ἀγένητος)라고도 할 수 없고, ‘생성된 자’(γενητός)라고도 할 수 없다고 하여, 로고스가 하나님과 세계 사이의 중간적 위치에 있음을 나타내고자 했다. 하지만 필론은 유대교 신봉자로서 그리스도께서 육신이 되신 로고스라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았다.

제2절 코드라토스

코드라토스(Κοδράτος/Quadrātus/Kodratos)는 기독교 역사상 최초의 변증가로서, 125년경 사상 최초로 기독교를 변증하는 변증서를 썼다.

1. 생애

코드라토스에 대한 사료는 남아 있는 것이 별로 없어서 그의 생애에 대하여 아는 것은 한계가 있다.

코드라토스는 속사도 교부로 분류되기도 하는데, 이는 카이사르의 감독이고, 최초의 교회사가(敎會史家)인 유세비오스와 최초의 라틴어 성경(불가타)번역자인 히에로니무스(Eusebius Sophronius Hieronymus, 347~420)가 그를 사도들의 직제자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2. 저작

코드라토스는 125년경 당시 로마 제국의 황제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Trajanus Hadrianus, 76~138, 재위: 117~138)에게 변증하는 글을 바쳤다.

그의 글은 기독교 역사상 최초의 변증서이지만, 일실되고 지금은 단편 하나만 남아 있는데, 이 단편은 유세비오스의 『교회사』에 남아 있다. 이 단편의 문체는 설교체로서, 사도들과 교회가 얻은 신비한 경험들이 기독교의 진리성을 입증해주고도 남는다고 설파한다. 유세비오스의 교회사에 남아 있는 코드라토스의 단편 중 일면은 다음과 같다.

하오나, 우리 구주의 사역은 영원한데, 이는 그의 사역이 참된 까닭이니이다. 병 고침을 받은 자들과 죽음에서 부활한 자들 - 이들이 어찌 병 고침을 받고, 어찌 죽음에서 부활하였는지를 사람들은 목격하였사오며, 이뿐 아니라 또한 그들이 항상 함께 있었던 것도 보았사오니, 구주께서 지상에 계실 때뿐 아니라 구주께서 떠나신 후에도 이들은 상당 기간 생존해 있었사오며 사실 이들 중 몇 사람은 오늘날까지 생존해 있나이다.

교부 히에로니무스는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코드라토스의 변증서를 본 다음, 기독교에 대한 ‘아주 큰 박해’를 중단시킨 것처럼 기록하고 있으나, 이것은 사실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하드리아누스는 기독교에 대한 ‘아주 큰 박해’를 가한 적이 없으나, 그렇다고 기독교에 대한 박해를 완전히 중단하는 명령을 내린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125년경 당시 소아시아 지방 총독 미누키우스 푼다누스(Minucius Fundānus)에 칙재서(勅裁書)를 보내, 지방민들이 기독교인들을 고발해 올 경우,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한 지침을 하달하면서 기독교를 박해하려는 적극적인 의지를 드러내 보이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 칙재서를 보낸 시기가 코드라토스가 변증서를 하드리아누스 황제에게 보낸 시기와 거의 일치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코드라토스의 변증서를 받아보고 기독교에 대한 관용정책을 펼치기로 마음먹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것도 무리가 있다.

제3절 아리스티데스

아테네의 철학자였던 마르키아노스 아리스티데스(Μαρκιανὸς Άριστείδης/Mārciānus Aristīdēs)는 코드라토스보다는 약간 늦게 변증서를 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코드라토스의 변증서는 일실되었으므로, 아리스티데스의 변증서가 현재까지 남아 있는 기독교 변증서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1. 생애

아리스티데스의 생애에 대하여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단지, 아리스티데스가 그의 『변증서』 서두에서 자기 자신을 ‘아테네의 철학자’라고 소개하고, 또 성경의 불가타 번역자인 교부 히에로니무스가 아리스티데스를 ‘언변이 매우 뛰어난 아테네의 철학자요, 철학자의 망토를 입고서 예수 그리스도 제자의 길을 간 사람이라고 평가한 것으로 보아 그가 희랍인으로 아테네 출신의 기독교 철학자로서, 기독교 신앙을 변증하기 위하여 노력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아리스티데스-

아리스티데스는 2세기 전반에 아테네와 혹은 희랍의 어느 지역에서 활약한 것으로 추정된다.

2. 저작

아리스티데스의 저작으로 알려진 것은 『변증서』 하나뿐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일실(逸失)된 것으로 여겼다가 1878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아르메니아(Armenia) 출신의 학자들에 의해 아르메니아어로 된 단편이 라틴어로 번역, 출판됨에 따라, 이 책의 내용이 단편적이나마 알려지게 되었다. 1889년에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교수였던 J. 렌들 헤리스(J. Rendel Harris)가 시내산의 성 캐더린(St. Catharine) 수도원의 성약 도서관에서 시리아로 된 번역본을 발견하고, 1892년경 역시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수인 J. 아미티지 로빈슨(J. Armitage Robinson)이 중세 초기에 기록된 『발람과 요아삽의 생애』(The Life of Balaam and Joasaph)라는 책 속에 나오는 나콜(Nachor)의 기독교 변증이 아리스티데스의 『변증서』를 거의 그대로 인용한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함으로써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시리아 역에는 수신자의 정보가 애매하게 되어있으나 5세기 이후 기록된 아르메니아어로 된 이 책의 단편은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Hadriānus, 76~138)를 수신자로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이 자료만으로는 수신자를 확정하기에 미흡하다.

수신자의 문제는 저작 연대와도 밀접하게 연관된다. 이 책의 기록연대에 대하여 교회사가 유세비오스의 기록과 교부 히에로니무스의 기록 그리고 아르메니아어로 된 이 책의 단편의 기록에 의하여 이 책이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인 125년경 기록되었을 것으로 가정한다. 즉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123년부터 로마 제국 동부지방을 순행하여, 124년 8월에는 에베소에 머무르고, 124년 말부터 125년 초까지는 아테네에 머무른바 있는 데, 이때 아리스티데스가 기독교에 대한 『변증서』를 써서, 하드리아누스 황제에게 바쳤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리스티데스의 『변증서』에는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후계자인 안토니우스 피우스(Titus Aelius Hadriānus Antōnīus Pius)의 이름이 나타나는 것을 보아 이 책의 수신자는 안토니우스 피우스 황제이고, 기록 연대도 안토니우스 황제가 단독으로 통치하던 기간인 138년에서 147년 사이일 것으로 추정하는 학자들이 많다. 만약 이 책의 기록연대가 하드리아누스 황제와 안토니우스 피우스 황제의 공동통치 기간이었다면 기록연대는 138년경이 될 것이다.

3. 사상

가. 기독교 변증

아리스티데스는 이방인들 앞에서 기독교를 변증하기 위해서는 기독교가 추구하는 목적과 철학이 추구하는 목적이 근본적으로 같다고 주장할 필요를 느꼈다. 그래서 아리스티데스는 기독교가 추구하는 목적은 철학이 추구하는 목적과 마찬가지로 ‘진리’(ἀληθεία)이며, 바로 이점이 철학의 도시 아테네에서 철학자(φιλόσοφος)로 활약하고 있는 자신이 지적하고 나선다는 것을 분명히 하였다. 아리스티데스는 물론, 기독교가 ‘일종의 철학’이라는 말을 명시적으로 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기독교가 철학이 그토록 추구하던 ‘진리’를 이미 발견했고, 철학자인 자신이 기독교가 발견한 ‘진리’를 변호하기 위해 나선다는 것을 천명함으로써 기독교가 철학과 매우 가까운 사이임을 인식시키고자 하였다.

아리스티데스에 의하면, 미신과 우상숭배가 횡행하던 시대에 기독교인들이 유일하게 참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가졌다는 것 자체가, 기독교가 참된 진리를 발견했다는 증거가 되었다. 아리스티데스는 이것을 실증하기 위하여 인류를 야만인, 헬라인, 유대인, 기독교인으로 구분하였다.

아리스티데스의 생각에는 ‘야만인’이나 ‘헬라인’의 공통된 특징은 다신교도(οἱ τούς πολλούς σεβένοι θεοὺς)였다. 이 점에서 메소포타미아에 거주하는 ‘갈대아인’이나 나일강 유역에 거주하는 ‘이집트인’이 ‘헬라인’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반면, ‘유대인’은 유일신 신앙을 가졌다는 점에서 헬라인이나 다른 다신교를 믿는 민족보다는 나았다. 그렇지만 ‘유대인’은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서, 율법과 예배의식 등 외적인 것에 치중하였고, 천사를 우상화하는 잘못도 범하였다. 이에 비해 기독교인들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바로 믿을 뿐 아니라, 그 믿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아리스티데스는 말하였다.

특별히 그는 기독교의 하나님 신앙이 기독교인들의 높은 수준의 윤리적 생활을 가능하게 한다고 믿었다. 기독교인들의 윤리적 생활의 증거는 ‘형제들의 연합’(ἀδελφότης)으로서 로마 제국과 같은 노예제 사회에서 노예들도 형제로 받아들여지며, 육신으로는 서로 형제가 아닌 사람들도 그리스도 안에서는 서로 형제가 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아리스티데스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믿고 또 그 믿음에 합당하게 높은 윤리적 생활을 하는 기독교인들을 가리켜 ‘새 백성’(λαὸς καινός/gēns nova/a new people)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인류가 ‘야만인’, ‘헬라인’, ‘유대인’, ‘기독교인’으로 구분되어 있다는 전제하에서 기독교인에게 붙인 명칭이라는 점에서, 기독교의 절대성, 또는 타 종교에 대한 우월성에 대해 변증가 아리스티데스가 가졌던 자의식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나. 신론

아리스티데스는 그의 『변증서』 제1장 1절에서 우주 만물 곧, 하늘과 땅과 바다, 그리고 해와 달과 그 밖의 피조물의 아름다움을 바라볼 때, 경탄을 금할 수 없다고 주장함으로써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그의 신앙을 우주론적으로 증명하고자 시도한 다음, 제1장 2절부터 6절까지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설명한다.

그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제일의 부동의 원동자’(πρῶτον κινοῦν ἀκίνητον)로 파악하고, 이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고, 또 우주 만물의 운행을 주장하신다고 믿었다.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하나님 추론의 방식을 원용한 것이다.

아리스티데스에 의하면 하나님은 초월적 존재이시다. 초월적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긍정문으로 설명하고자 한 아리스토텔레스와는 달리, 초월적 하나님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파악할 수 없으므로 이 하나님의 속성을 긍정문으로 설명하기보다는 부정문으로 설명해야 한다는 의견을 취했다. 그러므로 아리스티데스는 ‘부정신학’(否定神學, theologia negātīva)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아리스티데스는 부정신학의 선구자답게 하나님을 ‘낳음을 받지 않으셨으며, 창조되지 않으셨고, 아무것에도 포함되지 않으시며 … 시작도 없고 끝도 없으며, 불후적(不朽的)이고, 불사적(不死的)이며, 불가해적(不可解的)’이라고 말하고, 또 하나님은 ‘아무런 부족함이 없으시며,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라고 말한다. 그에 의하면, 하나님은 이름이 없으시다. 그것은 ‘이름을 가진 모든 것은 피조물에 속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또 형체도 없으시며, 여러 요소의 복합체도 아니신데, 이것 역시 하나님은 피조물이 아니라 창조주이시기 때문이다. 그는 하늘도 하나님을 포함하지 않는다고 하였지만, 이것은 스토아 철학의 범신론을 반대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된다.

다. 기독론

아리스티데스는 그의 『변증서』 제2장 6절에서 그리스도는 ‘성령으로’(ἐν πνεύματι ἁγίῳ)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ὁ υἱὸς τοῦ θεοῦ τοῦ ὑψίστου),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διὰ τὴν σωτηρίαν τῶν ἀνθρπων) ‘하늘에서 내려오사’(ὁ υἱὸς τοῦ θεοῦ τοῦ ὑψίστου), 동정녀에서 나셨으나 원래 태어나지 않으셨고, 흠이 없는 분이 ’육신을 취하사’(σάρκα ἀνέλαβε)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로고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가 사용한 ‘하늘로부터 내려오사’(ἀπ‘ οὐρανοῦ καταβἀς)라는 표현은 요한복음 3장 13절에도 나오는 표현으로, 아리스티데스가 사도 요한의 그리스도 선재설(先在說)을 받아들였다는 증거가 된다.

아리스티데스는 또한 성령 기독론의 신봉자로 생각된다. 그것은 그가 그리스도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ὁ υἱὸς τοῦ θεοῦ τοῦ ὑψίστου)로서 ‘성령으로’(ἐν πνεύματι ἁγίῳ) 하늘로부터 내려오셨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성령으로’(ἐν πνεύματι ἁγίῳ)라는 말을 ‘성령 안에서’(in the Holy Spirit) 혹은 ‘성령을 통하여’(through the Holy Spirit)라는 뜻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 말은 ‘선재(先在) 하신 그리스도’(the preëxistent Christ)가 ‘성령으로’(as the Holy Christ) 계셨던 분, 다시 말해 성령과 동일한 분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교학실]

귀한 자료 감사합니다. 교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