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
김초엽과 김원영 지음『사이보그가 되다』
사이보그
는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와 ’유기체organism'의 합성어이다. 1960년대 NASA에서 인간을 우주로 보내기 위해 상상된 이 사이보그는 ‘기술에 의해 개조된 우주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증강된 인간’을 의미한다. 영화 ‘형사 로보캅이나 윈터 솔저’, 마블시리즈의 영웅들이 그 예가 될 것이다. 지금은 이 개념이 손상된 인체와 기술이 만나는 다양한 면모를 설명하는데 사용된다. 예를 들어 ‘인공심장, 인공 고관절, 인공와우, 휠체어, 보청기’등이 그렇다. 장애인 보조공학 경기인 ‘사이배슬론cybathlon'도 사이보그와 애슬론(경기)의 합성어이기도 하다. 저자들은 사이보그를 장애와 기술이 일체로 결합된 존재로 정의하고, 사이보그로서 각자의 몸을 분석한다. 그리고 ‘누가 어떤 방식으로 사이보그가 되는지’를 묻고, ‘몸과 기술과 사회가 어떻게 재설계되어야 하는지 상상하고 제안‘한다. 저자 김초엽은 후천적 청각장애인으로 보청기를 사용하고 있고, 김원영은 선천적 골격장애로 휠체어를 타고 다닌다. 초엽은 과학을 전공하고 SF소설을 쓰고 있으며, 원영은 작가이자 배우이며 변호사로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활동한 바 있다.
휴머니즘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이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유롭고 합리적인 이성적 존재는 저절로 발현되는 것은 아니고 교육을 통해 가능하다고 본다. 이 교육이 바로 인문학이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서는 과학기술이 인문학의 역할을 이어받는다. 이른바 트랜스휴머니즘. 이제 인간은 NBIC(나노기술, 생명공학기술, 정보기술, 인지과학)을 통해 ‘더 강하고,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오래살고, 똑똑하고, 잘 협력할 수 있는’존재가 되어 화성으로 이주하여 신세계를 열게 된다. 그러나 휴머니즘의 시대에도 모든 인간이 ‘인간’은 아니었다. 그 기준은 백인 남성, 이성애자, 비장애인이었다. 또한 원형으로서 인간의 본 모습은 있기나 한 것인가? 오히려 과학기술은 인간이라는 개념을 더 해체하는 쪽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디지털 정보과학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코드화하여 그 경계를 무너뜨릴 가능성이 높다. 우리의 기억과 정보와 이성이 결국 뇌세포와 시냅스들의 결과라면, 이를 복제한 디지털 월드는 누구라고 할 수 있을까? 또한 절단된 신체와 신경망으로 완전 일체화된 부속품은 나인가 아닌가? 이렇게 ‘인간’에 대한 관념이 오히려 해체될 것이라는 관점이 (비판적)포스트 휴머니즘이라고 한다.
저자 원영은 트랜스휴머니즘이 보는 사이보그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존재로서 인간의 주체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간다면, 포스트휴머니즘에서 보는 사이보그는 인간을 이질적인 것들이 뒤섞인 잡종적인 존재로 만든다고 말한다. 하여 트랜스 휴머니즘에 들어있는 비장애중심주의와 능력차별주의를 간파해야 한다. 이 관점은 장애는 극복되어야할 대상이고 극복된 장애의 모습은 강화된 휴먼이고 과학기술이 그 일을 해낼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 관점은 장애는 당사자의 문제이며, 사회와 환경이 어떤 몸을 장애화할 수 있음을 간과한다. 또한 장애가 ‘그 사람의 삶에 새겨지는 경험이며, 치료가 반드시 답이 될 수는 없고 어떤 이들은 장애인으로 살아가기를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 사실 청각장애인이 인공와우 수술 하고 소리를 듣는다고 해서 다 기뻐할 것이라는 생각하면 오산이다. 일부의 청각장애인은 지금처럼 살아온 자신의 모습이 더 자신답다고 느낄 수 있다. 또한 수화는 그 자체로 하나의 언어고 문화다. 한국어가 커버 못하는 표현과 상상력을 수화는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사이보그가 되다.
이 문장은 일종의 비판적 은유다. 저자들은 강화된 인간으로 장애를 극복한 인간만을 사이보그로 보지 말고, 지금 현재 자신만의 모습으로 인정받고 살아가는 것도 진정한 사이보그의 모습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개인적 편차가 있어 누구는 보조수단을 던져 버리는 것으로, 누구는 그 것과 일체화되는 것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삼을 수 있다. 문제는 기술에 압도되고 주류의 시선에 자신의 의견이 무시된 채 끌려가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크든 작든 장애를 경험하고 결국 장애를 갖는다. 이를 인정하고 자신만의 사이보그가 되어 살아가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일전에 어떤 일로 내가 갖고 있는 장애를 따져 본 적이 있다. 3~4가지는 된다. 그 것이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지 장애는 장애다. 초엽과 원영의 사이보그에 대한 담론을 따라 가면서 내 장애를 어떻게 바라보고 남의 장애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궁구하게 된다. 또한 저자들도 언급했듯이 모든 장애가 일률적이지 않고 각 자 처한 위치에 따라 생각과 대처가 다를 것이다. 하여 어떤 사이보그로 살지는 각 자의 선택이다. 다만 우리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서로 포용하는 태도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책익는 마을 원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