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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정묘지(山頂墓地) 1 / 조정권
겨울산을 오르면서 나는 본다.
가장 높은 것들은 추운 곳에서 얼음처럼 빛나고, 얼어붙은 폭포의 단호한 침묵. 가장 높은 정신은 추운 곳에서 살아 움직이며 허옇게 얼어터진 계곡과 계곡 사이 바위와 바위의 결빙을 노래한다. 간밤의 눈이 다 녹아버린 이른 아침, 산정(山頂)은 얼음을 그대로 뒤집어 쓴 채 빛을 받들고 있다. 만일 내 영혼이 천상(天上)의 누각을 꿈꾸어 왔다면 나는 신이 거주하는 저 천상(天上)의 일각(一角)을 그리워하리. 가장 높은 정신은 가장 추운 곳을 향하는 법 저 아래 흐르는 것은 이제부터 결빙하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침묵하는 것. 움직이는 것들도 이제부터는 멈추는 것이 아니라 침묵의 노래가 되어 침묵의 동렬(同列)에 서는 것. 그러나 한 번 잠든 정신은 누군가 지팡이로 후려치지 않는 한 깊은 휴식에서 헤어나지 못하리. 하나의 형상 역시 누군가 막대기로 후려치지 않는 한 다른 형상을 취하지 못하리. 육신이란 누더기에 지나지 않는 것. 헛된 휴식과 잠 속에서의 방황의 나날들. 나의 영혼이 이 침묵 속에서 손뼉 소리를 크게 내지 못한다면 어느 형상도 다시 꿈꾸지 않으리. 지금은 결빙하는 계절, 밤이 되면
물과 물이 서로 끌어당기며 결빙의 노래를 내 발밑에서 들려 주리. 여름 내내 제 스스로의 힘에 도취하여 계곡을 울리며 폭포를 타고 내려오는 물줄기들은 얼어붙어 있다. 계곡과 계곡 사이 잔뜩 엎드려 있는 얼음 덩어리들은 제 스스로의 힘에 도취해 있다. 결빙의 바람이여, 내 핏줄 속으로 회오리 치라. 나의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나의 전신을 관통하라. 점령하라. 도취하게 하라. 산정의 새들은 마른 나무 꼭대기 위에서 날개를 접은 채 도취의 시간을 꿈꾸고 열매들은 마른 씨앗 몇 개로 남아 껍데기 속에서 도취하고 있다. 여름 내내 빗방울과 입맞추던 뿌리는 얼어붙은 바위 옆에서 흙을 물어뜯으며 제 이빨에 도취하고 바위는 우둔스런 제 무게에 도취하여 스스로 기쁨에 떨고 있다. 보라, 바위는 스스로의 무거운 등짐에 스스로 도취하고 있다. 허나 하늘은 허공에 바쳐진 무수한 가슴. 무수한 가슴들이 소거(消去)된 허공으로, 무수한 손목들이 촛불을 받치면서 빛의 축복이 쌓인 나목(裸木)의 계단을 오르지 않았는가. 정결한 씨앗을 품은 불꽃을 천상의 계단마다 하나씩 바치며 나의 눈은 도취의 시간을 꿈꾸지 않았는가. 나의 시간은 오히려 눈부신 성숙의 무게로 인해 침잠하며 하강하지 않았는가. 밤이여 이제 출동 명령을 내리라. 좀더 가까이 좀더 가까이 나의 핏줄을 나의 뼈를 점령하라, 압도하라, 관통하라. 한때는 눈비의 형상으로 내게 오던 나날의 어둠. 한때는 바람의 형상으로 내게 오던 나날의 어둠. 그리고 다시 한때는 물과 불의 형상으로 오던 나날의 어둠. 그 어둠 속에서 헛된 휴식과 오랜 기다림 지치고 지친 자의 불면의 밤을 내 나날의 인력으로 맞이하지 않았던가. 어둠은 존재의 처소(處所)에 뿌려진 생목(生木)의 향기 나의 영혼은 그 향기 속에 얼마나 적셔두길 갈망해 왔던가. 내 영혼이 내 자신의 축복을 주는 휘황한 백야(白夜)를 내 얼마나 꿈꾸어 왔는가. 육신이란 바람에 굴러가는 헌 누더기에 지나지 않는다. 영혼이 그 위를 지그시 내려누르지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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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놀트 뵈클린의 <망자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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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갈나무 숲의 수도원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artchive.com%2Fartchive%2Ff%2Ffriedrich%2Fcloister_cemetery.jpg) Cloister Cemetery in the Snow, 1817-19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artchive.com%2Fartchive%2Ff%2Ffriedrich%2Fsea_of_fog.jpg) Wanderer Above the Sea of Fog, 1818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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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코프 반 로이스달 <유대인 공동묘지>
11월이 되면 “바하”의 칸타타를 듣고 12월이 되면 오라토리오, 마태 수난곡같은 장엄한 곡들을 들으며 한해를 정리하면서 자신의 시세계를 다짐해 본다는 조 정권 시인은 1990년대에 그의 연작시 <산정묘지>가 프랑스의 “리베라시옹”지에 의해 대대적으로 소개되면서 그의 뛰어난 시세계가 해외에서도 조명을 받게 되었으며 그는 현존하는 세계의 대표적 시인 15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몇 안 되는 서울 출신 시인 중에 한 사람인 조 정권 시인은 자신의 시세계에 영향을 준 3사람을 꼽는다면 첫째 불교에 귀의 했다가 환속하여 시인으로 활동하다 잠적해 버렸다는 특이한 삶을 살다간 시인 “김 달진” 선생, 두번째로는 괴테와 동시대를 비극적으로 살다 불행하게 생을 마감한 후 100여년 만에 괴테보다도 위대한 시인으로 재조명을 받은 독인 시인 “휄더린 (Freidrich Holderlin)” 그리고 세 번째로 “교향곡 2번, 부활”로 유명한 독일의 위대한 작곡가 “말러 (Mahler)”와 그의 음악이라고 한다.
우리도 조 정권 시인의 특이한 형식의 장시 <산정묘지 1>을 통하여 정점을 향해 나아가는 “가장 높은 정신” 세계를 따라가 보고 또 위대한 작곡가들의 음악도 들어보면서 새해를 시작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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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권 시인
- 출생
- 1949년 2월 22일, 서울
- 학력
- 중앙대학교 영어교육,수학
-어디/조정권-
시인에게
어디라는 곳
그 어디라는 곳이 있었을까.
그가 목 맨 곳이
어디 라는 곳이.
시인에게 어디 라는 곳은
없다.
어디 라는 곳은 어디로 라는 곳조차도 모르는
곳.
누구에게나 선택은 옳았다
그게 막힌 길이었다는 사실만 빼면.
시인에게 어디 라는 곳은 중요하지 않다.
시인은
그 어디라는 곳마저 데리고 가버리니까
괜히 온 길을 둘둘 말아 가버리니까
그냥 가버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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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가 월하 김달진문학관
찬식 2010.12.19.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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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원을지나 진해방향으로 승용차로 5분정도 지나면 웅동에 도착한다.
면사무소 방향으로 우회전 그리고 직진하여 다리를 건너면 소사리인데
그 곳에 김달진시인의 생가와 함께 김달진문학관이 있다
김달진시인은 나의 할아버지와 사촌지간인 작은 할아버지이다
김달진시인은 해방후 1940대 청년문학가협회의 부회장을 지내신 분이다
당시 청년문학가 협회의 회장에는 유치환, 부회장에는 서정주 김달진이었다
중등학교 교과서에 김달진시인의 시가 실리기도 했다
유치환 서정주시인등과 함께 대등하게 대한민국의 문학을 이끌어왔음에도
그 활약상에 비하면 유치환 서정주시인보다 많이 알려지지 않아 안타깝다
문학관이 있는 소사리는 수원지와 용추폭포가 있는 곳으로 풍광이 뛰어난 곳이다.
김달진시인의 생가 옆집 옆집이 저의 외가가 있었던 곳으로 김달진시인의
대표작인 '열무꽃'의 배경인 개울이 외가집 앞에 흐르고 있었다.
어릴 적 외가에 가서 사촌들과 그 개울가에서 물놀이 하던 추억들이 삼삼거린다.
문학관 바로 옆에는 김씨 박물관이 있는 데 그 곳에 가면
60 ~ 70년대의 추억을 되살릴 수 있는 볼거리 골동품들이 많이 있어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40년전으로 돌아 갈 수 있다
저의 본가는 소사리 길 건너마을 바다가 있는 영길이란 곳인데
이 곳에는 그 유명한 이미자 노래 '황포돛대'의 노래비가 흰돌메 공원가기전
범선카페앞에 세워져 있다.
이 노래의 가사는 어릴 적 영길만의 추억을 회상하여
이 곳 사람인 이용일씨가 작사하였다
이 노래비 바로 뒤 언덕 양지바른 곳에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영면해 계신다
유년시설 방학때만 되면 부산에서 웅동 영길리 할머니댁으로 가곤했는데
지금은 40분이면 갈 거리를 그 당시에는 반나절이 걸렸다
손자가 오면 집 앞에 있는 영일만의 개펄에 뛰어나가 바지락 한 소쿠리 가득 캐어오셨다
그리고선 싱싱한 바지락으로 된장찌게를 바로 끓여 상을 차려주시고는
맛나게 먹는 손자를 한 참 쳐다보며 행복해하든 할머니
세상에 가장 행복한 모습이 제 새끼입에 곡식들어가는 모습이고
그 다음이 제 논에 봇물 들어가는 모습이라 하지 않아던가
지금도 나는 할머니가 끓여주시던 영일만 갯펄에서 갓 캔 바지락 된장찌게를 잊지 못한다
지금은 고향마을 뒷동산에 누워계시는 나의 할머니가 그립다
안타까운 일은 부산신항이 조성되어 추억의 개펄 영일만이 사라지고 없다는 것이다
한때 웅동에는 김달진시인의 친족 김해김씨 군수공파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다
이 곳 진해웅동 김해김씨 군수공파 후손들의 집안은 장관 판사 장군 시인 학자, 교육자등을
배출하므로서 그 고장에서 유명세를 떨친 명망있는 집안이다
김달진시인의 조카가 김영삼정부시절에 감사원장을 지낸 김영준씨이다
나도 그 일가의 한 사람이라 부끄럽지 않은 혈족을 두어 내심 조금은 자랑스럽게 여기긴 하나
사회적으로 큰 공헌이나 불우한 이웃들을 위해 큰 봉사를 한 것도 아니니
바깥으로 드러내어 자랑할 거리는 아닌 것 같다
지금은 후손들이 부산 서울 대구등으로 전국 곳곳으로 많 이 흩어져 살고 있으나
아직도 웅동 곳곳에는 남은 일가들이 거주하고 있다
이 김달진문학관을 소개하고자하는 것은 김달진시인이
저의 집안 작은 할아버지인 까닭이기도하고
용원 녹산등지에 횟집 나들이 갈 때 쉬이 들러
소사리의 빈 들녁과 시골의 겨울풍경등 그 곳의 뛰어난 풍광을 감상하고
문학관도 방문할 수있는 곳이라 소개하고자 하는 것이다.
매년 김달진 문학제가 진해에서 성황리에 열리고 있다
전국적 유명시인이 참가하여 치루어지는는 큰 문학축제인데
내가 유명시인이 아니라서 그런지 한 번도 초대를 받지 못하였다
부산에서 열리는 큰 축제나 다른 고장에서 열리는 전국적 축제에는 초청되는데
주최측에서 나의 일가인 김달진 할아버지 축제에는 초대해주지 않으니 아이러니하기도하다
내가 떠벌리지 않으니 김달진시인의 일가인 줄 어떻게 알 수 있겠냐만은
내 천성이 떠벌리는 것은 죽으라 싫어하니 어쩔 수 없는 것이리리라
초청한다면 작은 할아버지 앞에서 내 영혼의 울림, 색소폰을 멋드러지게 연주해 드릴텐데.
한 번 웃고자 한 말이지 본 심중의 뜻은 아니다
곧 나의 문학관과 음악관을 지을 것이니 서운할 것은 없어리라
지금 용원에는 대구가 제철이라 뜨끈 뜨끈하고 시원한 대구탕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하얀 쌀밥으로 식후경하면 좋을 듯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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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달진 문학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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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사리의 구천동 계곡 소사리의 황금들판
문학관에서 바라 본 생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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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무꽃과 생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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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가의 대나무 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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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기간 82세 (1907 ~ 1989)
진해시 웅동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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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하 김달진시인의 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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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포돛대 노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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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포돛대' 노래비 건너편의 범선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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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t1.daumcdn.net/cfile/blog/15691606494B8CC7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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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edrich Hölderlin
Lauffen 1770 - Tübingen 1843
The German lyricist Johann Christian Friedrich Hölderlin was born in 1770 in Lauffen am Neckar. According to his mother's wishes, he attended the Latin grammar school in Nürtingen and later the evangelical monastic schools in Denkendort and Maulbronn. While studying at the University of Tübingen, Johann Christian Friedrich Hölderlin met his fellow students 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and Friedrich Wilhelm Joseph von Schelling. They became friends and influenced each other in their artistic endeavours. In 1793-94 Friedrich Hölderlin met the famous German author Friedrich Schiller, who found Hölderlin a position as a tutor for the family of Charlotte von Kalb in Waltershausen im Grabfeld. He lost this position after a short while because he lacked the strictness required of a teacher. From 1794 Hölderlin studied theology at the University of Jena and met Johann Wolfgang von Goethe. In 1796 he starting working as a tutor again, this time for the family of the Frankfurt banker Jakob Gontard. There he became acquainted with Gontard's wife, Susette, with whom he fell in love and who later influenced the character Diotima in his epistolary novel "Hyperion." Gontard became aware of this fact and felt his honor violated; therefore, Hölderlin had to leave both his job and his residence on short notice. He fled to Homburg to his friend Isaac von Sinclair. During his financial troubles, he was supported for a time by his mother and his patron, Friedrich Schiller. For three months in 1801, Friedrich Hölderlin went to Hauptwil, Switzerland, where he tutored the younger sister of the businessman Emanuel von Gonzenbach.
In 1802 Hölderlin worked in Bordeaux, France, as the tutor for the children of the Consul from Hamburg, the wine merchant Meyer. After only a few months, Hölderlin returned to Swabia. On his return to Stuttgart, his physical condition had worsened to the point that his friends did not recognize him on account of his confused state. This is when the news of Susette Gontard's death from rubella reached him. Hölderlin then went back to his mother in Nürtingen to work on his translations of Sophokles and Pindar. In 1804 his friend Sinclair, the head of the government of Hesse-Homburg, gave Hölderlin a position as court librarian, where he wrote for the Landgrave Friedrich V von Hessen-Homburg the hymn "Patmos," among others. In 1805 he published his "Nighthymns" and his most famous poem "Halves of Life" ("Hälfte des Lebens"). His friend Sinclair was arrested in February of 1805 for high treason by Elector Friedrich II von Württemberg. Hölderlin was suspected as a co-conspirator. Only by the official health report on Hölderlin by the Homburg doctor and court apothecary Müller was Hölderlin able to escape extradition. In the report from April 9, 1805, he was described as having succumbed to insanity, his nerves shattered, and was brought to the Authenrieth Clinic in Tübingen. In 1807 he was placed in the care of the family of Ernst Zimmer, a carpenter in Tübingen. There he lived the remaining 36 years of his life in a tearoom in the so-called Hölderlin Tower in Zimmer's house overlooking the Neckar Valley. Johann Christian Friedrich Hölderlin died in Tübingen in 1843.
Poems by Friedrich Hölderlin
In English translation by David Constantine
A sampling from the book |
Friedrich Hölderlin Selected Poems translated by David Constantine |
Second, expanded edition 1996 Published by Bloodaxe Books, Newcastle upon Tyn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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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pencil sketch of Hölderlin done the year before his death.
Ages of Life
Euphrates' cities and Palmyra's streets and you Forests of columns in the level desert What are you now? Your crowns, because You crossed the boundary Of breath, Were taken off In Heaven's smoke and flame; But I sit under clouds (each one Of which has peace) among The ordered oaks, upon The deer's heath, and strange And dead the ghosts of the blessed ones Appear to me.
'Another day'
Another day. I follow another path, Enter the leafing woodland, visit the spring Or the rocks where the roses bloom Or search from a look-out, but nowhere
Love are you to be seen in the light of day And down the wind go the words of our once so Beneficent conversation...
Your beloved face has gone beyond my sight, The music of your life is dying away Beyond my hearing and all the songs That worked a miracle of peace once on
My heart, where are they now? It was long ago, So long and the youth I was has aged nor is Even the earth that smiled at me then The same. Farewell. Live with that word always.
For the soul goes from me to return to you Day after day and my eyes shed tears that they Cannot look over to where you are And see you clearly ever again.
'Once there were gods'
Once there were gods, on earth, with people, the heavenly muses And Apollo, the youth, healing, inspiring, like you. And you are like them to me, as though one of the blessed Sent me out into life where I go my comrade's Image goes with me wherever I suffer and build, with love Unto death; for I learned this and have this from her.
Let us live, oh you who are with me in sorrow, with me in faith And heart and loyalty struggling for better times! For such we are! And if ever in the coming years they knew Of us two when the spirit matters again They would say: lovers in those days, alone, they created Their secret world that only the gods knew. For who Cares only for things that will die the earth will have them, but Nearer the light, into the clarities come Those keeping faith with the heart's love and holy spirit who were Hopeful, patient, still, and got the better of fate.
The Journey
Suevia, my mother, happy land! You also are like your more shining sister Lombardy over there Flowed through by a hundred streams And trees in plenty, white with blossom or reddish And the darker, deep, full green, the wild trees And the Alps of Switzerland overshadow you too, Neighbourly; for near the hearth of the house Is where you live and you can hear Inside from silvery vessels The spring rushing that issues From pure hands when touched
By warm rays Crystal ice and tipped over By the lightly quickening light The snowy summit drenches the earth With purest water. For that reason You are born loyal. Hard Living near the source to quit the place. And your children, the towns On the long lake in the haze On the willowy Neckar and on the Rhine All think Nowhere would be better to live.
'When I was a boy'
When I was a boy A god often rescued me From the shouts and the rods of men And I played among trees and flowers Secure in their kindness And the breezes of heaven Were playing there too.
And as you delight The hearts of plants When they stretch towards you With little strength
So you delighted the heart in me Father Helios, and like Endymion I was your favourite, Moon. 0 all
You friendly And faithful gods I wish you could know How my soul has loved you.
Even though when I called to you then It was not yet with names, and you Never named me as people do As though they knew one another
I knew you better Than I have ever known them. I understood the stillness above the sky But never the words of men.
Trees were my teachers Melodious trees And I learned to love Among flowers.
I grew up in the arms of the gods.
Titles of the original poems: Lebensalter, Wohl geh ich täglich..., Götter wandelten einst..., Die Wanderung, Da ich ein Knabe war...
From the back cover of Friedrich Hölderlin Selected Poems:
FRIEDRICH HÖLDERLIN (1770-1843) was one of Europe's greatest poets. The strange and beautiful language of his late poems is recreated by David Constantine in these remarkable verse translations. This is a new edition of Constantine's widely-praised HÖLDERLIN Selected Poems, containing several new translations, including one of the great elegy Bread and Wine. The odes and hymns are more fully represented and there are further extracts, in an equivalent English, from Hölderlin's extraordinary German versions of Sophocles. Notes on the poems have also been expanded. This new volume is a stimulating introduction to the work of a poet who, writing around 1800, addresses us ever more urgently as the millenium ends.
'Hölderlin is a poet we can read with our own atrocious times in mind. He is a deeply religious poet whose fundamental tenet is absence and the threat of meaninglessness. He confronted hopelessness as few writers have, he was what Rilke called "exposed"; but there is no poetry like his for the constant engendering of hope, for the expression!, in the body and breath of poems, of the best and most passionate aspirations' - David Constantine
'Constantine goes for an "equivalence of spirit" in a more familiar idiom. This is at once a bold and humble undertaking, and has produced poetry of a remarkable luminosity and intensity, written in rhythms and cadences which recreate, both in their extremities of grief and their urgent hope, the immediacy of the original' - Karen Leeder, Oxford Poetry
David Constantine has published five books of poems, three translations and a novel with Bloodaxe. His latest poetry books are Selected Poems (1991), a Poetry Book Society Recommendation, and Caspar Hauser (1994), a poem in nine cantos. His co-translations include editions of Henri Michaux and Philippe Jaccottet in the Bloodaxe Contemporary French Poets series. His critical introduction to the poetry of Friedrich Hölderlin was published in 1988, and his translation of Goethe's novel Elective Affinities in 1994, both from OUP. He is Fellow in German at the Queen's College, Oxford.
Friedrich Hölderlin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Johann Christian Friedrich Hölderl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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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n |
20 March 1770(1770-03-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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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러 / 교향곡 2번 c 단조 "부활(復活)"
G. Mahler - Symphony No.2 in C minor "Auferstehung(Resurr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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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stav Mahler (1860~1911)
[작품 배경]
"음악은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삶의 생기를 복돋게 하는 포도주와 같고, 나는 인류가 정신적인 만취에 빠지도록 포도주를 권하는 바커스이다." 이러한 베토벤의 유명한 한 마디를 만일 말러가 했다고 할지라도, 이는 전혀 어색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어느 작곡가의 음악도 말러의 음악만큼 강한 독주를 청중하게 제공한 적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베토벤의 위대한 업적과 그의 중량감은, 뒤를 잇는 작곡가들에게 있어서 하나의 극복할 수 없는 과제였다. 그의 손에서 교향곡은 그 어느 음악 장르보다 다이나믹하고 농축된 음악적 표현형식이었다. 한편 나폴레옹 전쟁이 시작되면서 등장하기 시작한 사회질서 변화의 징조는 새로운 음악적 표현 지평선을 열어주는 계기가 되었으며,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진행된 오케스트라 조직 및 구조의 변화 발전은, 교향곡이라는 형식이 가장 다양하고 다면적인 음악의 파레트가 될 수 있다는 점을 확인시켜 주었던 것이다.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이 초연된 지 10년도 못되어서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이 등장하였고, 19세기가 끝나기 전에는 이미 브루크너의 8번 교향곡이나 말러의 2번 교향곡과 같이 '맘모스' 캔버스를 활용하는 작품이 등장했던 것이다. 이 모든 작업이 추진되는 배후의 음악적 버젼은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의 존재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베를리오즈로부터 비롯되어 리스트에 의해 발전된 표제적 교향곡, 특히 리스트의 교향시(1848-1882)에서 엿보이는 테마의 변형에 관한 원칙은 말러에게 강한 영향력을 미쳤으며, 여기에 말러는 교향곡과 가곡의 융합이라는 새로운 차원을 가게 되는 것이다.
거대한 규모의 2번 교향곡을 작곡하기 위해 말러는 6년이라는 기간을 소요했다.(1888-1894) 작곡은 라이프치히 시절인 1888년 1월에 시작 되었고 1888년 1월 20일 말러는 미완성으로 끝난 베버의 오페라 'Die drei Pintos'를 완성하여 초연했는데, 그는 그 직후부터 교향곡 제2번의 1악장 작곡에 착수하였다. 나탈리-바우어 레히너에 따르면 1악장의 '죽음의 행진'을 작곡할 당시 말러는 꽃과 화환들에 둘러 쌓여 죽은 듯 고요하게 누워있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곤 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공연에서 받은 꽃과 화환들은 그의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이 북새통을 견디다 못한 집주인에 의해서야 나중에 치워졌다고 한다.
이 기간은 또한 브루크너의 8번, 드보르작의 9번, 프랑크의 d단조, 시벨리우스의 '쿨레르보'(Kulirvo), 그리고 닐센의 1번 교향곡등, 일련의 다양한 시다고 이루어졌던 시기이기도 하였다. 다시 말하자면 교향곡의 발전에 있어서 '수확기'였던 것이다.
말러의 '부활' 교향곡은 이러한 시기, 즉 음악의 발전방향에 있어서 새로운 전기를 맞는 시기에 핵심적인 작품으로 이해될 수 있는 중요한 교향곡이다.
'부활'로부터 비롯된 성악이 가미된 교향곡의 출현은, 이후 말러 자신의 '대지의 노래'로 이어졌을 뿐만 아니라 벤자민 브리튼의 '봄' 교향곡, 그리고 쇼스타코비치의 14번 교향곡으로 이어지게 된다. 한편 첫 악장의 비극적이고 드라마틱한 요소는 말러의 순수 관현악 교향곡 5번과 6번에서 그 맥락이 이어지고 있기도 하다.
'부활' 교향곡의 거대한 차원은 교향악에 있어서 하나의 신기원이었다. 첫 악장 하나만으로도 25분이 넘는 대작인 이 곡은, 비록 뒤를 잇는 작품에 그 자리를 내주었으나 당시로서는 가장 대규모적인 작품이었던 것이다.(베를리오즈의 '로미오와 줄리엣' 또한 그 스케일 면에서 대작임에는 분명하나 교향곡의 장르에 포함된다고는 볼 수 없다.)
말러의 '부활'은 그 형성 과정에서부터 그 다면성을 암시하였다. 첫 악장, 'Todetenfeier"(죽음의 제전)을 위한 악상을 말러가 염두에 두기 시작한 것은 이미 1887년이었다. 이 때는 1번 교향곡이 아직도 교향시의 형태로서 준비되고 있었던 시기였다. 자필악보가 완성된 시기느 말러가 부다페스트 오페라를 이끌고 있었던 1888년 가을이었다.
'죽음의 제전'이라는 표제적인 타이틀과 함께 악보에는 'c단조 교향곡-제 1악장'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후 1884년에 이르는 시기까지는 말러가 이 악장을 단일 교향곡으로 완성하려는 희망을 포기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는데, 왜냐하면 그가 이후에 c단조 교향곡이라는 명기를 지워버리고 '죽음의 제전'이라는 표제만을 남겨놓고 있기 때문이다. 부다페스트와 함부르크 오페라에서 빡빡한 스케줄의 지휘활동을 하고 있었던 당시의 말러는-그는 당시 한 달에 19회에 이르는 연주회를 소화하고 있었다-그 반대급부로서 활발한 창작활동의 제약을 감수해야만 했을 것이다. 그가 다시 작곡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은 1893년 여름이 되어서였고, 2악장과 3악장이 그 면모를 갖추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였다.
물론 그 중에서 3악장은 '이상한 뿔피리를 가진 소년'(1892-1899)에 포함되는 "Des Antonius von Padua Fischpredigt"를 확대 편곡된 관현악 버전이었다.(그는 또한 1번 교향곡에서는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의 'Ging heut'morgen ubers Feld'를 사용한 바 있다.) 이 교향곡이 원래부터 5악장의 작품으로 구성되었는지 알 수 없느나, 4악장의 '원광'(Premordil light)또한 '뿔피리' 가곡집에서 비롯된 작품이다. 모든 위대한 작곡가들이 난제로 여기는 마지막 악장의 전개에 이어서 말러는 테마의 사용이나 감정적인 기복이라는 모든 면에서 첫 악장으로 회귀하고 있다.
이 악장이 1894년 2월 말러가 베를린에서 당대의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였던 한스 폰 뷜로우의 장례식에서 들었던 소년들의 합창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일선의 존재하고 있으나, 그렇게 단순한 이유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말러는 이미 폰 뷜로우의 죽음 이전에 이 악장의 구성에 몰두하고 있었고(도날드 미첼의 저서 '구스타프 말러 : 뿔피리 시애'(1975, 런던)에 말러가 아더세이들에게 보낸 편지를 참조, p.175-178)의 장례식에서의 말러의 경험은 단지 지금까지 인식하고 있지 못했던 것을 일깨워 구체화하는 역할을 한 것이라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또한 폰 뷜로우의 장례식의 경험에서 비롯된 바는, 이전에 분명하지 않았던 표제음악적인 개념이 명확해 졌다는 사실이었다.
말러는 1901년의 글에서 드라마적인 프로그램을 설명한바 있는데, 그의 표제적인 음악에 대한 이중성(후에 이에 대한 거부로 이어졌음)이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번에서 4번에 이르는 교향곡 작품이 내포하는 표제적인 성격을 간과할 수 없음을 부연설명하고 있기도 하다. 첫 악장 '죽음의 제전'에서 사랑하는 이의 무덤 곁에 서있는 사람들은 죽은 이의 사랑, 투쟁, 열정 그리고 희망이 그들의 눈앞에 흐르고 있음을 경험하게 된다. 초연이 거행된 몇 달후인 1896년에 말러는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죽은이는 D장조 교향곡의 주인공인 영웅인 것이다…" 이렇게 진지하면서도 감정의 격한 순간에, 사람들은 일상생활의 어수선함 속에서 망각하고 지내던 궁극적인 의문과 마주서게 된다. 삶과 죽음의 의미는? 죽음 이후의 존재는 무엇인가? 인생은 혼란스러운 꿈일 뿐인가, 아니면 그 어떤 의미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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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iště, 말러 생가
[작품 해설]
중간의 세악장은 간주곡 형식을 염두에 두고 작곡되었다. 랜틀러 형식의 안단테 악장에서는 과거의 행복했던 순간들을 회상하며(영웅의 삶에 찬란히 비추는 햇빛)또한 젊음에 대한 기억과 잃어버린 순수함에 대한 그리움을 회상한다. 스케르쪼 3악장에서 주인공은 현실로 돌아온다. 믿음에 대한 회의가 온통 밀려들어오는 것이다. 그는 혼란스러운 소동을 보면서, 또한 어린아이들의 순진한 이해를 갖는다. 사랑이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잃어버린 사람은 그 자신과 신에 대해 좌절하게 된다.
4악장 '원광'(Urlicht)에서 아침의 꾸밈없는 믿음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오게 된다. "나는 주님의 어린양이며, 그에게 돌아가리!"피날레 악장에서 우리는 삶의 의미가 과연 무엇이냐는 혼란스런 의무에 다시 지견하게 되고, 분위기는 다시 첫 악장으로 돌아간다. 부름의 소리가 들리는데, 모든 생명의 종말이 예고되며 심판의 날이 오고 있음이 선언된다. 대지는 공포에 떨고 무덤이 열리면서 죽은 자들이 다시 세상으로 돌아와 끝이 보이지 않는 행렬을 이루게 된다.
지상의 위대함과 왜소함, 왕과 거지, 옳은 자와 그른 자들이 모두 순례자의 행렬을 이루며 자비와 구원을 바라는 울음소리가 귓가에 진동한다. 세상의 종말을 알리는 트럼펫 소리가 메아리치고, 뒤를 잇는 무시무시한 저각 뒤에 나이팅게일의 노랫소리가 마치 지상의 삶에 있어서 마지막 메아리처럼 저 멀리서 들려오기 시작한다. 이제 천국의 합창이 저 멀리서 들려오기 시작한다. "부활하리라, 너는 부활하리라! 신의 축복이여! 찬란한 빛이 우리의 존재에 스며들어 축복을 내리오! 심판도, 죄인도 없으리. 위대한 사랑은 만물에 자비와 영광을 내리리!"
거대한 구조물과 같은 '부활' 교향곡에서 엿보이는 스케일의 장중함은 연주에 참여하는 악단과 합창단의 규모를 보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교향곡 연주에 필요한 구성요소는 10개의 호른, 8-10개의 트럼펫, 4성부의 목관악기군, 일곱 개의 팀파니, 철금(glockenspiel), 종을 포함하는 타악기 부문, 두 그룹의 하프와 오르간 등이며, 더불어 가능한 한 큰 규모로 구성된 현악부가 가세하게 된다. 여기에 두 명의 솔로이스트와 대규모 합창단이 등장하게 된다.
말러는 1895년 베를린에서의 초연을 직접 지휘하였다. 필자(로버트 레이튼)는 학생시절이었던 1940년 말에서 1950년 초반 사이에 에곤 벨레즈(영국의 저명한 음악비평가이자 음악학자 : 역자주)에게 지휘자로서 말러의 인상을 물어보았던 기억이 있다. 벨레즈는 말러의 연주회나 리허설을 직접 참관한 경험이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포디움에서의)말러는 토스카니니와 발터를 합쳐 놓은 인물이라고 상상하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는 토스카니니의 힘과 발터의 인간적인 매력, 따뜻함을 동시에 지닌 인물이었으니까." 벨레즈는 말러가 리허설 도중에 객석에 앉아있는 뮤지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는 것을 기억하기도 했다. "후대의 지휘자가 음악회장의 음향적 조건을 십분활용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내 악보에 대한 자의적인 수정도 개의하지 않을 것이다."
첫 악장은 실로 뛰어난 교향적인 업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 풍부한 멜로디의 전개가 탁월하다. 청중은 무자비한 열정의 비극적인 드라마로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긴 연주 시간에 걸친 대규모 스케일의 악장이 전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팽팽한 긴장감과 농축된 전개는 지속된다. 이 위대한 교향 악장은 청중이 기나긴 행로에 접어들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데, 이러한 환상을 지속시키는데는 여러 가지 수단이 사용되기도 한다.
모티브의 변형과 그 근원이 되는 악상이 계속 유기적으로 맞물리면서 전개되는 방법이 가장 기본적인 작품전개의 수단이다. 서로 연관성을 갖는 조성의 역동성에서 파생되는 긴장감을 끌어내는 것 또한 이러한 수단 중의 하나인데, (그 수단이 고전적인 것이거나, 아니면 수단 중의 하나인데, 그 수단이 고전적인 것이거나, 아니면 말러나 닐센이 사용하던 진보적인 방식임에 상관없이) 조성의 지향성보다는 그 조성이 변화하는 정도의 차이에 따라 이루어내는 긴장감이라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이 악장의 소나타 구조 속에는 여러 가지의 모티브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첼로와 콘트라베이스의 강력한 리듬에 의한 부점이 가미된 거대한 장송 행진곡이나 E장조의 노스텔지아 멜로디등이 이러한 요소이다.
조성은 어느 순간 eb단조의 'Dies ire'로 변하는데, 이는 장조의 형태로서 교향곡의 대단원을 장식한다. 악장이 끝날 무렵에는 매우 독특한 패시지가 등장하는데, C장조의 3화음이 돌연 단조로 변환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음정과 음계의 이중성은 말러에게 있어서 독특한 표현의 도구가 되어주는 지원이었다. 첫 악장에서 중량감과 스케일의 벨런스를 유지하는 것이 말러에게 있어서 가장 큰 당면 과제였다면, 그 결과는 거대한 피날레의 등장이었다. 마지막 악장은 음악사적인 기념비이며, 종반부에서는 오라토리오에 가까운 장중함을 보여주고 있다.
제릭 쿠크(Deryck Cooke)의 말을 빌리면 다음과 같다(구스타프 말러 : Introduction to his Music, 런던 1980년). "말러는 그의 음악을 표현하는 매체(수단)로서 순수 음악 형식인 교향곡을 택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베토벤, 브람스, 그리고 시벨리우스와 직접 비교된다. 그러나 사실은 그 어떠한 비교조차도 불가능할 것이다. 왜냐하면 말러의 교향곡은 근본적으로 그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2번 교향곡 '부활'은 음악 장르로서의 교향곡에 대해 전혀 다른 개념을 부여하게 된 첫 작품이다. 천문학적인 개념으로 설명하자면, 말러의 교향곡은 적색거성(red giants)이고, 시벨리우스의 그것은 백색왜성(white dwarfs)인 셈이다.
(http://www.classickorea.co.kr/v8/cs_study/study_view.php?bd_id=22&uid=2386)
[오케스트라 편성]
대편성 오케스트라.
플루트 4 (2는 피콜로 겸함), 오보에 4 (2는 잉글리시 호른 겸함), 클라리넷 5, 파곳 4 (1은 콘트라파곳 겸함), 호른 10 (4는 무대 밖 멀리서), 트럼펫 8-10 (4-6는 무대 밖 멀리서), 트럼본 4, 튜바,팀파니 7 (6은 무대 위 3명의 주자, 1은 무대 밖 멀리서), 심벌즈 2 (1은 무대 밖 멀리서), 큰북 2 (1은 멀리서), 트라이앵글 (1은 멀리서), 작은북, 글로켄슈필, 탐탐 2 (고저 2), 종 3, 오르간,하프 2 (늘려도 무방), '가능한 대규모의' 현 5부, 소프라노 독창 (5악장), 알토 독창 (4, 5악장), 혼성 합창 (5악장) 으로 구성된다.
[작품 구성]
1악장 알레그로 마에스토소
Allegro maestoso C단조 4/4박자, 소나타 형식. '완전히 성실하고 또 장엄한 표출로써'라고 지시.
작곡은 순조로워서 같은 해 8월9일 1악장의 총보가 완성되었고, 다음 달인 9월 10일 프라하에서 최종본이 만들어졌다. 이 악장의 자필 원고를 보면 첫 페이지에 '장례식'이라는 제목이 붙어 잇고 그 아래에는 '교향곡 c 단조'와 '1악장'이라고 쓰여져 있지만, 교향곡 c 단조는 지워진 흔적이 보인다. 결국 '장례식'이라는 제목이 언제쯤 등장한 것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으며 말러가 장례식'을 교향곡의 한 부분으로 확장하고 싶어하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
당초 '장례제전'(Totenfeier) 이었던 제목답게 말러는 해설에서 '장례식'을 상징하며, '사후 세계가 존재하는가 등의 질문을 던지는 악장이며 그 답을 종악장에서 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말러는 출판에서는 이 해설은 삭제해버렸다고 한다. 상당히 강렬한 느낌의 곡으로, 이 곡을 혹평했던 한스 폰 뷜로우는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도 이 곡에 비하면 하이든의 교향곡에 지나지 않는다" 라고 말할 정도였다.
소나타 형식이지만 특이하게도 전개부가 대단히 큰 규모로 확장되어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제시부에서는 거친 c단조의 제1주제가 제시되고 이어 e플랫장조의 서정적인 제2주제가 연주된다. 이어서 소위 '리스트의 십자가 화음'이라 불리는 화음으로 구성된 제3주제가 연주된다. 전개부에선 이 세개의 주제들이 새로운 소재와 결합해 발전한다. 전개부는 둘로 나뉘는데 첫번째 전개부에서는 제2주제에 이어 전원풍의 새로운 소재가 등장한다. 두번째 전개부에서는 여러가지 동기들이 등장한다.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 마지막 악장의 소위 '진노의 날' 동기와 유사한 동기, '십자가 동기', '부활 동기'들이 잇달아 등장해 곡의 중요한 동기들을 암시하고 있다.
재현부에서는 다시 제시부의 형식을 따르면서 제2주제는 전개부에서 등장했던 전윈풍 멜로디와 결합해 등장한다. 작곡가는 1악장 끝난 뒤 적어도 5분의 휴식을 두라고 악보에 지시하고 있다. 이는 아마도 장대하고 격렬한 1악장의 느낌을 정리할 여유를 청중들에게 주려는 의도인듯 하다.
2악장 안단테 모데라토
Andante moderato A flat장조 3/8박자 '아주 즐겁게, 절대로 서두르지 말고'라는 지시. 2개의 트리오를 가진 렌틀러 (오스트리아 민요).
1891년 출판업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말러가 이 곡을 그 자체로서 단순히 '교향시'라고 부르고 있는데다가 1888년에서 1902년 사이에는 가곡집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에 들어갈 곡들을 작곡하느라고 상당히 바쁜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1888년 1월에서 5월까지 라이프치히에 있는 동안 말러는 나중에 안단테 모데라토' 악장에 쓰이게 되는 두 멜로디를 스케치하는데, 처음부터 이 멜로디를 교향곡에 쓰려고 했던 것은 아니지만 편지에 따르면 말러는 이 멜로디에 많은 애책을 가졌던 것 같다.
이 악장은 말러 자신의 해설에 의하면 '죽은 영웅의 생전의 행복한 과거에의 회상'이라 한다. 크게 두 주제가 번갈아 가면서 연주되는데, 첫번째 주제는 말러가 즐겨 사용하는 렌틀러 형식이며, 두번째 주제는 좀더 스케르초에 가깝다. 파리 공연당시 드뷔시와 그의 친구들이 중도에 나가버린 대목도 바로 2악장을 연주하는 대목에서 였다고 하는데 드뷔시가 중도에 나가버린 이유는 이 곡의 형식이 너무 진부해서 였다고. 드뷔시의 그런 행동은 말러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는 후문이 전한다.
3악장 스케르쪼 '부드럽게 흐르는 운동감을 가지고
C단조 3/8박자. In ruhig fließender Bewegung(온화하게 흐르는 움직임으로). 3부 형식의 스케르초.
1893년 슈타인바흐에서 여름 휴가를 보내는 동안 말러는 교향곡과 가곡집에 동시에 손대기 시작해 작곡은 상당히 빠르게 진행되어 7월 한달 동안 4악장 '원광(原光)'과 3악장의 기초가 되는 가곡 물고기에게 설교하는 파우다의 성 안토니우스 2악장 '안단테 모데라토', 3악장 '스케르쪼' 등이 모두 작곡되었다. 말러의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 가곡집 중 '물고기에 설교하는 파두아의 성 안토니우스(Des Antonius von Padua Fischpredigt)의 멜로디를 바탕으로 작곡되었다. 말러 자신의 해설에 의하면 '신념을 완전히 잃어, 인생에서 믿음에 대한 회의와 혼란'을 그렸다고 한다. '물고기에 설교하는 파두아의 성 안토니우스'의 멜로디와 또 다른 새로운 주제가 번갈아 가며 연주된다. 말러는 '유머스럽게' 연주하라고 지시하고 있긴 하지만 연주되는것은 시니컬한 느낌이 더 강하다.
4악장 'Uricht(원광)
D flat장조 4/4박자. Sehr feierlich, aber schlicht (극히 장엄하게, 하지만 간결하게) 알토 독창
1893년의 겨울, 말러가 그의 친구 요제프 푀르스터에게 보낸 편지에서 새로운 교향곡을 위해서 '장례식'을 포함한 세 악장이 준비되었다고 언급한 것을 보면 '원광(原光)'을 애초에 교향곡에 포함시킬 의도는 아니었던 듯 하다. 곡을 살펴보면서 말러와 푀르스터는 1악장의 규모가 상당히 큰 바람에 같은 규모의 피날레를 작곡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동의했다.
"Urlicht (원광)"은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의 시에서 작곡한 곡이다. 말러 자신의 설명에 의하면 '죽음에의 동경' 이나 '신념의 재탄생'을 묘사했다고 한다. 알토의 독창으로 어둡고 우울한 느낌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희망을 담고 있기도 하다.
5악장 스케르초의 템포로, 몰토 리테누토, 마에스토소
소프라노, 알토, 합창의 피날레.
2부 Molto ritenuto. Maestoso
3부 소프라노,알토,합창의 피날레.
전체 3부분으로 나눌수 있는 대단히 장대한 스케일의 피날레 악장이며 가장 중요한 악장이라 할수 있다. 스케르초 템포로 연주하는 제1부는 5악장 전체의 제시부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이어 호른으로 '황야에서 외치는자'(Wild herausfahrend)로 불리는 주제가 연주회장의 가장 높은 곳에서 울려퍼진다.
이어 시작되는 2부는 전체의 전개부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두개의 전개부가 나타나며 1,3악장에서 보여줬던 의문과 의심을 재확인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갑자기 행진곡이 튀어나오는가 하면, 무대 뒤에서도 따로 편성된 오케스트라의 악기들의 흥겨운 소리가 침통한 주제를 연주하는 무대의 오케스트라의 소리들과 더불어 '성과 속의 공존'이라는 말러 음악의 극과 극을 오가는 성향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후 3부로 이어지는데 무대 뒤의 오케스트라에서 금관과 플루트, 피콜로가 엉키는 나이팅게일의 울음소리가 나타나고 이어 합창이 무반주로 부활의 찬가를 노래하기 시작한다. 합창과 독창자들이 부르는 텍스트는 클롭슈톡의 '부활'에 기반하고 있긴 하지만 말러는 클롭슈톡의 시를 그대로 쓰지는 않았다. 말러는 자신이 만족할만한 가사를 찾아서 성서부터 니체까지 뒤졌지만 만족할만한 가사를 얻지 못하자 결국 말러 자신이 직접 가사를 써서 클롭슈톡의 부활과 합쳤다고 한다. 합창의 무반주 부활의 찬가 이후, 알토의 독창이 이어지고 합창에 이어 소프라노와 알토의 2중창으로 전환이 일어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합창이 가세하여 "죽은 후 부활하여 신에 의해 영생이 주어질 것"이라고 노래하며 곡은 장대하게 마무리 된다.
[4,5악장 가사]
4악장 "원광"(Urlicht)
O Röschen roth! Der Mensch liegt in größter Noth! Der Mensch liegt in größter Pein! Je lieber möcht ich im Himmel sein. Da kam ich auf einen breiten Weg: Da kam ein Engelein und wollt’ mich abweisen. Ach nein! Ich ließ mich nicht abweisen! Ich bin von Gott und will wieder zu Gott! Der liebe Gott wird mir ein Lichtchen geben, Wird leuchten mir bis in das ewig selig Leben!
오 붉은 장미여 인간은 크나큰 고난 속에 있고 큰 고뇌 속에 있다. 나는 오히려 천국에 있고 싶다. 나는 넓은 길을 만났다. 한 천사가 와서 나를 데려가려고 찾는데 아! 난 천국에 그냥 천국에 머물고 싶다 나는 신에게로 와서 신에게로 돌아가야 한다! 사랑하는 신은 나에게 빛을 주실것이다. 영원한 행복과 생명을 얻기 까지 비춰줄 것이다.
5악장 "부활"(Die Auferstehung)
Aufersteh'n, ja aufersteh'n Wirst du, Mein Staub, Nach kurzer Ruh'! Unsterblich Leben! Unsterblich Leben wird der dich rief dir geben! Wieder aufzublüh'n wirst du gesät! Der Herr der Ernte geht und sammelt Garben
uns ein, die starben! O glaube, mein Herz, o glaube: Es geht dir nichts verloren! Dein ist, ja dein, was du gesehnt! Dein, was du geliebt, Was du gestritten! O glaube Du wardst nicht umsonst geboren! Hast nicht umsonst gelebt, gelitten! Was entstanden ist Das muß vergehen! Was vergangen, auferstehen! Hör' auf zu beben! Bereite dich zu leben! O Schmerz! Du Alldurchdringer! Dir bin ich entrungen! O Tod! Du Allbezwinger! Nun bist du bezwungen! Mit Flügeln, die ich mir errungen, In heißem Liebesstreben, Werd'ich entschweben Zum Licht, zu dem kein Aug'gedrungen! Mit Flügeln,die ich mir errungen Werde ich entschweben. Sterben werd'ich, um zu leben! Aufersteh'n, ja aufersteh'n wirst du, mein Herz, in einem Nu! Was du geschlagen zu Gott wird es dich tragen!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 1860년 7월 7일 - 1911년 5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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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헤미아 태생의 오스트리아 작곡가이자 지휘자이다. 후기낭만파의 거장 말러는 그의 생애 동안에는 위대한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한 명으로서 가장 잘 알려졌으나, 그는 사후에 중요한 후기 낭만파 작곡가로 인식되었다.
초창기에 쓴 극소수의 실내악곡을 제외하면 대부분 교향곡이나 가곡을 작곡했다. 그는 음악사에서 후기 낭만주의로 분류되지만, 실제로 그는 근대 음악과 현대 음악의 다리 역할을 한 작곡가이다.
그의 곡은 후기 낭만주의의 특징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즉, 거대한 규모와 곡 길이, 극단적인 감정 표현, 형식의 자유로움, 반면 화성의 진행이나 악기의 사용에서는 현대음악과 유사한 경향이 많이 등장한다. 때문에 그의 음악은 현대음악 작곡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으며, 특히 쇤베르크는 말러 음악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특히 그의 아홉 개의 완성된 교향곡과 연가곡 (특히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와 '죽은 아이를 위한 노래'), 그리고 교향곡과 연가곡의 합성인 "대지의 노래"가 유명하다.
그는 “교향곡은 하나의 세계와 같이 모든 것을 포함해야 한다”는 생각에 따라 작곡하였고, 교향곡을 길이와 우주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시야 모두에 있어서 새로운 발전의 단계로 올려놓았다. 그는 그의 교향곡 일부에 니체 와 괴테의 철학, 중세 종교 상징주의와 영성을 표현하는 가사를 사용했다. 그의 작품은 이제 세계 주요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기본 레파토리의 일부가 되었다.
특히 그의 아내가 거부할수없는 매력과 아름다움으로 팜므 파탈의 대명사처럼 전해지면서 요즘 주목받고 있다. 20세기 초반의 가장 비극적인 예술작품들은 한 여인(Alma Mahler-Werfel,1879~1964)을 모티브로 삼았다. 알마의 첫 남편이 구스타프 말러이다.
말러의 6번 교향곡은 ‘비극적’이란 제목과 달리 부드럽고 장엄하다. 천상의 소리라는 ‘알마의 테마’가 귀를 사로잡는데, 19살 아래의 아름다운 아내를 위한 곡이다. 그는 관능적이고 지적인 알마에게 무섭게 집착했다고 한다. 그녀를 독점하려고 집에 감금하는 광기를 부렸을 정도였다. 말러의 교향곡은 두 사람의 비극적 결말을 예고 한다.
알마 말러 베르펠
말러우표
[Austria Carinthia지방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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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슈트(Kalischt), 보헤미아(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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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국제상사수출부 원문보기▶ 글쓴이 : 이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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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성스레이 올려주신글에 감동을 먹고
감사의인사 드림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따뜻하고 포근한글 많이올려 주시길 바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