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9일 태릉선수촌 다목적체육관에서 실시한 오후 훈련을 마친 남자농구대표팀 선수들이 강정수 코치(뒷모습)로부터 지시사항을 듣고 있다.(사진 김대영)
2002년의 영광을 다시 한번. 월드컵 축구 얘기가 아니다. 한국남자농구는 2002년 부산아시아경기대회에서 ‘만리장성’ 중국을 무너뜨리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금메달을 따냈다. 12월 카타르 도하에서 다시 한번 위력을 떨쳐 보일 국가대표팀의 중심에는 서장훈, 김주성, 김민수, 하승진 등 2m가 넘는 ‘빅맨’들이 있다. SPORTS 2.0은 출정을 20여 일 앞둔 남자농구대표팀을 만났다.
11월 9일 낮 12시 서울시 노원구 공릉동에 있는 태릉선수촌. 남자농구대표팀 선수들이 오전 훈련을 마치고 삼삼오오 짝을 지어 선수촌 식당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대표팀 소집 직전까지 2006-07 프로농구 정규시즌 경기와 7일 끝난 제43회 대학농구연맹전을 치른 선수들은 조금 피곤해 보였다. 농구선수들이니 당연히 키가 컸지만 대표팀 ‘맏형’ 서장훈(32,207cm,서울 삼성)과 김주성(26,205cm,원주 동부) 그리고 하승진(21,223cm)과 김민수(24,201cm,경희대)가 단연 눈에 띄었다.
그동안 수많은 국제대회에 파견한 대표팀 가운데 이번 도하아시아경기대회에 출전하는 대표팀의 평균신장이 가장 크다. 2m 이상 선수 4명이 합류한 것도 처음이다. 당초 대표팀 명단에 들어있던 김진수(17,205cm,미국 사우스켄트고)까지 도하행에 합류했다면 2m 이상 선수가 5명이 될 수도 있었다. 김진수가 빠진 게 아쉽고 최고 전력이 아니라는 평가를 듣기도 하지만 적어도 신장에 있어서는 다른 아시아 국가에 밀리지 않는 선수단을 꾸리게 됐다.
1980년대 초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한국남자농구는 신선우(창원 LG 감독), 이충희(동국대 감독), 김현준(작고), 허재(전주 KCC 감독), 강동희(원주 동부 코치) 등 키는 크지 않지만 다재다능한 선수들이 국가대표팀의 주축을 이뤘다. 그들은 소속팀에서나 대표팀에서 모두 절정의 기량을 뽐냈다. 이들의 전성기 때 농구는 겨울철 최고 인기 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1982년 뉴델리아시아경기대회에서 중국을 극적으로 물리치고 금메달을 딴 이후 한국은 높은 신장을 자랑하는 중국의 ‘벽’에 막혀 번번이 눈물을 흘렸다.
허재, 강동희와 함께 중앙대학교 전성시대를 이끈 김유택(XPORTS 해설위원)과 한기범이 각각 198cm, 207cm의 키로 더블 포스트를 구축하면서 한국농구는 고공시대를 열었다. 거기에 휘문중학교 재학 시절부터 국내 최장신 센터로 관심을 받던 서장훈이 1993년 대표팀에 합류하면서 중국을 꺾을 희망을 보게 됐다.
8년 동안의 아쉬움, 그리고 찾아온 우승
어느 정도 장신화에 성공한 한국남자농구대표팀은 1994년 히로시마아시아경기대회에서 중국을 누르고 12년 만에 우승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결과는 2위였다. 반면 여자대표팀은 우승을 차지해 아시아 최강 자리를 지켰다.
1998년 방콕에서 열린 아시아경기대회에서 다시 정상 도전에 나선 한국은 이번에도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신?구조화가 잘됐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이번에야말로 중국을 물리치고 1위 자리에 오르겠다는 각오는 대단했지만 역시 중국의 높이를 넘지 못했다. 축구에서 중국이 한국을 만나면 경기 내용을 떠나 결과에서 늘 한국에 밀린 것처럼 한국남자농구는 중국 앞에서만큼은 한없이 작아졌다. 물론 2위도 결코 부끄럽지 않은 성적이지만, 어쨌거나 1982년 이후 아시아경기대회와 한국남자농구의 인연은 멀어 보였다.
2002년 부산아시아경기대회에서 한국은 주최국이었지만 남자 농구에서는 금메달을 기대하지 않았다. 당시 중국은 미국프로농구(NBA) 2002년 신인 드래프트 1순위 지명자인 야오밍(226cm,휴스턴 로키츠)을 포함해 역대 최고 전력이라고 평가됐다. 세대교체도 순조로워 아시아 어느 나라보다 탈아시아에 성공했다는 말을 들었다. 우승 후보 0순위였다.
한국은 연세대 재학생이던 방성윤(서울 SK)과 김승현(대구 오리온스), 김주성 등 ‘젊은 피’가 가세했고 서장훈이 건재했지만 문경은, 전희철(이상 서울 SK), 이상민, 추승균(이상 전주 KCC)등 주전들의 노쇠화가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필리핀과의 준결승전에서 경기 종료 직전 이상민의 3점 슛이 림을 가르지 못했다면 안방에서 결승전에 오르지 못하는 망신을 당할 뻔했다. 결승전에서 한국은 4쿼터 종료를 앞두고 중국에게 리드당해 또다시 2위에 그치는 게 아닌가 했다.
그러나 끝까지 경기를 포기하지 않은 한국은 김승현이 상대 패스 두 개를 가로채는 데 성공해 경기를 연장으로 끌고 갔다. 김승현은 연장전에서도 어시스트와 도움 수비를 성공하며 한국의 102-100 승리에 한몫을 했다. 20년 만에 중국을 제치고 거둔 감격스런 우승이었다.
2005년 도하의 비극 그리고 또 다른 시작
2002년 부산아시아경기대회 우승으로 천당의 맛을 본 한국남자농구는 지난해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아시아남자농구선수권대회에서 역대 최악인 4위를 기록하면서 지옥으로 떨어졌다. 한국은 지난 8월 일본에서 열린 세계남자농구선수권대회에서 중국, 레바논, 카타르 그리고 개최국 일본이 아시아 대표로 뛰는 것을 바다 건너에서 지켜봐야 했다. 도하에서의 실망스러운 성적은 그동안 미뤄왔던 세대교체를 단행하는 계기가 됐다.
최부영 국가대표팀감독은 8월 11일부터 15일까지 벌어진 2006 월드바스켓볼챌린지(WBC)를 앞두고 세대교체를 시행할 것을 밝혔다. 당장 성적이 좋지 않을 수도 있었다. WBC 때 한국은 혹시나 하는 기대를 했지만 결과는 4패였다. 그러나 터키와 이탈리아를 상대로 가능성을 보였다. WBC를 마치고 3개월이 지나 도하아시아경기대회에 나갈 대표팀이 다시 소집됐다. 아시아경기대회 장소는 1년 전 한국남자농구가 치욕을 당했던 바로 그곳이다.
물론 2002년과 같은 최고의 성적을 기대하는 건 다소 무리일 듯하다. 야오밍이 빠졌지만 왕즈즈가 가세한 중국은 여전히 버거운 상대다. 주최국 카타르는 오일 달러를 앞세워 미국 출신 선수들을 귀화시키며 전력을 강화했다. 최근에는 NBA 선수 출신인 자바리 스미스까지 합류했다. 레바논도 국적만 레바논이고 미국에서 선수생활을 한 선수들이 다수 포진했다. 1990년대 초반부터 귀화선수를 대표팀에 포함시켰던 일본도 최근 또 다른 귀화선수를 대표팀에 발탁했다.
최부영 감독은 “중국도 어렵지만 카타르를 비롯한 중동지역 나라들이 더 걱정된다”고 밝혔다. 편파 판정이 드세기로 이름난 곳이기 때문에 한국에 대한 만만치 않은 견제도 이겨내야 한다. 서장훈도 “대회에 나서기도 전에 이런 말을 한다고 오해하는 팬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번 대회는 개최국의 텃세를 고려해야 한다. 팬들도 이 점은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대표팀의 현재 상태는 어떨까? 서장훈, 김주성, 김민수, 하승진의 가세는 분명 높이에서만큼은 큰 힘이 된다. 그러나 방성윤, 김승현의 부상은 악재다. 대표팀에서 재활치료를 담당하고 있는 남혜주 씨는 “선수들의 몸 상태를 100점이 최고라고 한다면 현재 선수들은 70~80점 정도”라고 설명했다. 그는 “프로선수들이나 대학선수들 모두 경기를 막 치르고 와 지친 상태”라고 덧붙였다. 다행인 점은 김승현이 허리 부상에서 회복 중이어서 13일께부터는 정상적인 훈련이 가능하다는 것. 왼쪽 발목을 다친 방성윤도 진단 결과 인대가 끊어지거나 하는 큰 부상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최부영 감독은 “선수 교체는 없다. 두 선수 모두 카타르로 간다”면서 “이 둘을 교체하면 선수 구성이 더 복잡해진다”고 급작스러운 변화보다는 안정을 택했다. 그는 “일단 팀에 합류해서 재활에 신경을 쓰라고 주문했다”고 설명했다. 김승현이 부상에서 완벽하게 회복하지 못할 경우 양동근(울산 모비스)과 김태술(연세대)의 출전시간이 늘어날 전망이다. 그러나 양동근이 정규시즌 경기에서 허벅지를 다쳐 정상 컨디션이 아니라는 게 마음에 걸린다. 방성윤의 공백은 김성철(인천 전자랜드), 송영진(부산 KTF), 이규섭(서울 삼성), 양희종(연세대)으로 메울 수 있다. 올시즌 개막직전까지 발목 부상에 시달렸던 이규섭은 “다친 부위는 많이 회복됐다. 열심히 뛰어 팀에 도움이 되는 선수가 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이들은 전형적인 슈팅가드는 아니지만 모두 정확한 외곽슛 능력을 갖췄다. 센터 자리는 서장훈이 주전이다. 김주성과 함께 더블 포스트를 형성할 가능성이 크다. 서장훈-하승진 동시 기용은 스피드에 약점이 있기 때문에 가능성이 적다. 김민수는 탄력이 좋아서 서장훈 또는 김주성과 함께 코트에 나설 수 있다.
한국이 상대할 팀들은?
이번 아시아경기대회에서 한국은 1라운드 경기를 치르지 않는다. 한국은 주최국인 카타르와 함께 2라운드 A조에 속했다. 이란과 요르단이 같은 조에 속해 있다. 4개조로 나뉘어 1라운드를 거친 4개 팀이 2개 팀씩 A, B조에 편성된다. 1라운드 결과에 따라 한국은 모두 중동팀들과 경기를 치를 수도 있다. 8강에는 A, B조 4위 팀까지 진출해 녹다운 방식으로 우승팀을 가른다.
중국과 일본은 나란히 2라운드 B조에 속해 있다. B조의 레바논은 강팀이지만 혼란스러운 자국 사정으로 대회 참가가 불투명한 상태다. 만약 레바논이 도하에 오지 못한다면 중국, 일본은 손쉬운 2라운드를 치르게 된다. 한국이 4강에 진출한다면 중국, 일본 중 어느 한 팀과 반드시 만나게 된다. 한국은 중동세를 넘어야 메달권을 바라볼 수 있다. 한국으로서는 어느 대회보다 힘든 경기가 예상된다. 하지만 섣부른 예측은 금물이다.
태릉선수촌 다목적체육관에서 만난 유수종 여자대표팀감독은 “(남자대표팀에는)경험이 풍부한 선수들이 많이 있고 (여자팀과 비교해)실전 감각이 있다. 예선을 통과해 분위기를 잘 타면 일을 낼 팀은 남자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낙관적인 예상과 달리 8강 진출 실패 또는 메달권 탈락이라는 성적표를 받을 수도 있다. 선수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대표팀에 선발됐기 때문에 당연히 긍지를 느낀다. 국가대표로 뽑히지 못한 선수들에게 모범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최부영 감독과 강정수, 이민현 코치 모두 “세대교체 과정에서 진통을 겪을 수 있다. 새 대표팀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번 대회는 선수들에게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남은 시간은 20여 일. 대표팀은 회복훈련에 이어 다음 주부터 일주일에 3번씩 연습경기로 실전 감각을 유지하고 문제점으로 지적된 조직력을 강화한다.
SPORTS2.0 제 25호(발행일 11월 13일) 기사
류한준 기자
첫댓글 이번 대회는 어느때 보다 힘든 위치에 있는것 같은데...,.. 김승현 방가의 부상.. 중동팀들 귀화선수들도 있고.. 무엇보다도 계속 발전하고 있는 중국......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제서야 세대교체 시작.. 개인적으로 우승은 못하더라도 가능성만이라도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그래도 2002년의 영광을 잊을 수는 없겠지요!! 힘들겠지만 최선을 다해 좋은결과가 나왔으면 합니다!!
저기 김승현 오룐스 옷입고 머리 내리고 있넹ㅋㅋ 얼굴보니깐 몸도 괜찮은 듯.. 멋진 경기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