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글쓰기 / 이재룡 (2)
삶을 쓰다
2011년 말에 출간된 <삶을 쓰다>는 그간 낱권으로 출간된 작품 중 대표작을 뽑아 모든 선집이다. 거기에 실린 작품은 출간 순서가 아니라 작품 내용에 해당되는 삶의 순서대로 정렬되었다 작품과 삶이 충실히 호응한다는 고백이나 다름없는 편집 방식이다. 이 선집에는 열두 편의 작품에 앞서 백여 쪽에 달하는 분량이 사진과 해당 시기 일기 또는 작품에서 발췌된 짧은 글이 실려 있다. 일종의 사진 일기에 해당하는 이 대목을 펼치면 조부와 부모 세대의 사진부터 아직 얼굴 윤곽도 제대로 잡히지 않은 유아기 적의 모습, 학창 시절과 반항성 많은 청소년기를 거쳐 결혼 시절의 행복한 모습, 그리고 첫아이를 낳은 산모의 모습에 이어 성공한 작가의 표정에서 항암치료로 인해 머리칼을 완전히 잃어버린 중년의 얼굴과 마침내 손녀를 안고 있는 할머니 모습까지, 한 인간의 인생행로가 일목요연하게 전개된다. 그 몇 장의 사진첩을 넘기다보면 아무리 파란만장한 삶이라도 결국 돌 사진과 영정 사진에 낀 몇 갈피의 추억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아니 에르노의 표현에 따르면 그녀의 글을 돌이킬 수 없는 "사진에서 무엇인가를 구해내는 일*"에 매달렸다고 할 수 있다. 작가가 세월에서 건져 올려 글로 남긴 것을 토대로 그녀의 삶을 거칠게나마 요약해보자. *2011년 작 <세월들>의 마지막 문장
아니 에르노는 1940년 노르망디의 릴본에서 태어나 여섯 살 무렵 이브토로 이주해 그곳에서 줄곧 유년기를 보낸다. 전쟁 중 시설의 대부분이 파괴된 소토시의 풍경, 부둣가, 공장, 술집, 재건축을 위해 곧 허물어질 처지에 있는 가옥 들이 그녀가 "사랑하는 풍경"이었다.
가난한 소작농이었던 조부 세대를 뒤이은 작가의 부모 역시 농촌에서 살다가 소도시 공장 노동자가 되었다. 1028년 결혼한 부모는 노동자 신분에서 벗어나 식료품 가게와 술집을 겸한 작은 카페를 운영하게 된다. 농부, 노동자에서 가까스로 자영업자로 신분이동에 성공한 아버지는 그가 차지한 사회적 '자리'에 대한 자부심과 더불어 언제라도 다시 전락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 다소 위축된 가장이었던 반면, 어머니는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적극적으로 투쟁하는 억척어멈으로 작품에 묘사되었다.
식품점에 쌓여 있는 군것질거리를 친구들에게 뽐내고 주정뱅이를 바깥으로 내동댕이치는 아버지 완력을 존경했던 어린아이의 자부심은 사립학교에 입학하면서 처참하게 깨진다. 동급생 부모의 우아한 중산층 생활 방식과 자기 부모의 투박한 일상을 비교하게 되면서 작가는 부모와 심리적 단절을 결심하고 자신의 열등감을 우수한 학업성적으로 보상하려 한다. 선망과 질투, 열등감과 자부심이라는 내면적 갈등은 그녀의 전 작품에 고루 깔린 배움이 된다. 빈곤층의 화자가 부르주아지에게 느끼는 내면적 갈등은 사립학교 입학과 더불어 시작되어 청소년기의 대학 시절에 이르기까지 집요하게 그녀의 마음에 뿌리를 내린다. 막연하게 느끼던 계층 간의 이질감은 청소년기에 만난 남자친구로부터 처음 들은 "계급", "착취" 등과 같은 이념적 해석도 가능했지만 어린 시절의 작가는 크게 공감하지 못한다. 부모의 천박한 언행과 옷차림은 천부적 성품에서 비롯된 것이라 극복할 수 없는 숙명이라 믿었던 작가는 1970년대 초에 접한 피에르 부르디외의 사회학을 통해 물질적 기준에 의해 구분된 빈부의 구분법은 언어, 생활 방식, 취향과 같은 비물질적 영역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2002년 <르몽드>에 기고한 피에르 부르디외의 사망 추도문에서 아니 에르노는 자신의 소설에서 추구했던 것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한 그의 연구에 큰 빚을 졌다고 고백했다.
수치심
열세 살에 학업을 멈춘 아버지는 물질적 자산뿐 아니라 상징 재산의 축적에서도 빈곤을 면치 못했음을 눈치챈 작가는 설령 빈곤에서 벗어나도 부모의 몸에 밴 습관이나 가치관, 즉 사회학 용어를 빌리자면 '아비투스'를 떨쳐버릴 수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다. 그리고 그것은 부모 세대에 한정된 진리가 아니라는 사실이 그녀에게는 고통과 수치의 근원이 된다. 부엌에서 몸을 씻고 취객의 저속한 농담을 감수하며 마당 구석의 변소를 사용하고 술집 다락방에서 추위에 떨며 자야 했던 작가는 대학 기숙사에서 처음 샤워기와 수세식 변기를 만나고 음식, 옷차림에서부터 음악, 연극에 이르기까지 부모의 취향과는 전혀 다른 생활 세계로 진입한다. 이후, 교수 자격시험에 합격하고 결혼을 통해 시부모로부터 반듯한 대접을 받으며 비로소 세련된 중산층 지식인이 된 것에 자부심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남편과 시부모의 친절과 예의범절이 중산층의 위선과 가식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부차적으로 깨닫게 된다.
'출신 성분과 고향을 버리고 딴 세계에 유배된 망명객'이라는 자의식은 그녀의 작품에서 집요하게 반복된다. 2008년에 개최된 학술회의에서 아니 에르노의 작품세계를 다양한 각도로 다룬 논문들이 통칭하여 "둘 사이에 낀 작품"이라고 이른 것은 그녀의 작품세계를 요약한 적절한 제목이다. 아니 에르노의 작품에는 하층민과 중산층 사이에 낀 경계인이 느끼는 불편한 자의식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1996년 10월에 탈고한 <부끄러움>은 "6월 어느 일요일 오후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이려 했다"는 충격적인 문장으로 시작된다. 어린 시절에 목격한 아버지의 폭력은 아버지의 타고난 천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부모가 처한 사회적 - 경제적 조건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는 작가의 해명도 역시 부르디외의 사회학에서 영향을 받은 부분이다. 열두 살의 어린 소녀가 목격한 부모의 천박한 행동은 줄곧 수치심을 야기했고, 작가는 그것을 글로 옮기며 또 다른 수치심을 느끼는 악순환에 빠진다(예컨대 이런 식이다. 나는 나의 출신 성분이 부끄럽다. 그런데 그런 수치심을 글로 옮겨 만천하에 드러내는 일은 나를 낳아준 계급을 배반하는 짓이기 때문에 더욱 수치스럽다).
작가의 수치심은 대체로 물질적 열등감에서 비롯한 것이다. 초기 소설에서는 사춘기 소녀가 겪는 성적 호기심과 이성의 육체에 대한 관심과도 연관되어 있다. 취객들의 음란한 농담과 하층민의 비교적 자유로운 언어를 일찌감치 접한 작가는 초기 작품에서 성과 관련된 어휘를 거리낌 없이 구사했다. 자신의 낙태 경험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첫 소설에서부터 그녀의 성과 육체에 대한 묘사는 성적 금기와 위선적 도덕률을 고의적으로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자신이 인지한 갈등과 불만은 계급성에서 비롯된 것이며, 정신분석에서 논하는 욕구불만과는 무관하다는 주장도 그런 태도를 뒷받침했다. 그러나 비록 남루한 현실이지만 독실한 신앙심에서 자부심을 추구했던 어머니는 그녀에게 수치심에 근거한 종교적 윤리를 강요했다. 오로지 육체만이 삶의 자산인 빈곤층이었지만 딸의 신분상승을 위해 희생을 감수했던 부모는 기독교에 입각한 순결한 육체를 강요했고 화자는 몸에 대한 부모의 실제적 태도와 그들이 전하는 기독교 윤리 사이에서 괴리와 갈등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2003년에 발간한 문학평론가이자 작가인 프레데리크 이브자네와의 대담집 <칼 같은 글쓰기>에서 자신의 글이 한 우물만 팠다는 작가의 고백은 바로 이러한 경계인의 의식과 관련되어 있다. 빈곤층 출신의 여자가 성장하고 사랑하고 결혼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모멸감과 소외의식이 <빈 장롱> <그들이 말한 것 혹은 말하지 않은 것>, 그리고 <얼어붙은 여자> 등의 소설 형식을 빌려 자유분방한 언어로 표현된 반면, 1984년에 발표해 르노도상을 받은 <자리>는 작가의 글쓰기 태도에 중요한 변곡점을 형성한다. 누보로망의 영향을 받은 습작품을 투고했으나 출판사로부터 거절을 당한 작가는 1963년 대학 학부과정을 마치고 훗날 남편이 될 필립 에르노늘 만나고, 1964년 1월 임신과 낙태를 경험한다. 프랑스 동부 소도시 안시에서 교사생활을 하면서 그녀는 당시 불법이었던 낙태를 합법화하기 위한 여성 모임의 일원으로 맹렬히 활동했다. 이때 집필한 첫 소설 <빈 장롱>은 스무 살의 화자가 원치 않는 임신으로 괴로워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훌륭한 학업성적은 자신이 처한 고통을 해결해줄 수 없고, 특히 그동안 읽었던 무수한 문학작품도 무용하다는 생각은 이후 그녀의 작품에서 줄곧 되풀이되며, 자신의 글을 '소설에 대한 전쟁 선포'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새로운 형식의 글을 모색하던 작가는 1963년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을 읽고 큰 용기를 얻는다. 그녀가 막연히 추구하던 글쓰기의 전형을 발견한 그녀는 패렉을 주시했지만 '올리포 그룹'에 가입한 이후의 페렉 작품들에서는 딱히 감명을 받지 못하던 중 1978년에 발표한 <나는 기억한다>를 읽고 비로소 사회학적 글쓰기의 전형을 발견하게 된다. 그간 문학이 놓쳐버렸던 소소한 사물이나 사건을 통해 시대와 세데를 환기시키는 페렉의 기법은 아니 에르노의 2008년 작 <세월들>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