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오 왕의 총리 다니엘을 향한 음모
단 6:1-9
1 다리오가 자기의 뜻대로 고관 백이십 명을 세워 전국을 통치하게 하고
2 또 그들 위에 총리 셋을 두었으니 다니엘이 그 중의 하나이라 이는 고관들로 총리에게 자기의 직무를 보고하게 하여 왕에게 손해가 없게 하려 함이었더라
3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고관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한지라
4 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고자 하였으나 아무 근거, 아무 허물도 찾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5 그들이 이르되 이 다니엘은 그 하나님의 율법에서 근거를 찾지 못하면 그를 고발할 수 없으리라 하고
6 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모여 왕에게 나아가서 그에게 말하되 다리오 왕이여 만수무강 하옵소서
7 나라의 모든 총리와 지사와 총독과 법관과 관원이 의논하고 왕에게 한 법률을 세우며 한 금령을 정하실 것을 구하나이다 왕이여 그것은 곧 이제부터 삼십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의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이니이다
8 그런즉 왕이여 원하건대 금령을 세우시고 그 조서에 왕의 도장을 찍어 메대와 바사의 고치지 아니하는 규례를 따라 그것을 다시 고치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매
9 이에 다리오 왕이 조서에 왕의 도장을 찍어 금령을 내니라
단 6:1-9 / [사자굴에 던져진 다니엘] 다리오는 자기가 다스리게 된 제국을 120 지방으로 나누어 120명의 지방장관을 각각 임명하여 온 제국을 다스리게 하였다. 2) 또한 중앙 행정을 맡아 보게 하려고 총리를 세 사람 두었는데 다니엘은 세 총리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120명의 지방장관은 각각 그 담당 총리에게 지방일을 보고해야 하고 그 총리들은 또한 보고받은 각 지방일을 왕에게 보고해야 하였다. 이렇게 온 제국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왕이 잘 알아 아무런 문제가 없게끔 조직을 갖추게 한 것이다. 3)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사실은 다니엘이 다른 총리들이나 지방장관들보다도 훨씬 더 일을 잘해 낸다는 것이었다. 이는 그가 사리분별이 분명하고 또 일을 처리하는 데에도 매우 신속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왕은 제국 전체를 다니엘에게 맡겨 일을 보게 하려고 마음먹었다. 4) 이러한 사실을 눈치 챈 다른 총리들과 지방장관들은 나라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하면 다니엘을 걸고 넘어져 고소할 수 있을까 하고 모함하기에 골몰하였다. 하지만 아무리 허물을 찾아내려 해도 또 잘못을 발견하려고 해도 도무지 찾아낼 길이 없었다. 다니엘이 나라 일을 보는 과정에서 도무지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또한 허물이 될 만한 일을 전혀 하지 않은 까닭이다. 5) 그러자 사람들간에는 다니엘에 대해 이런 말이 오갔다. `다니엘을 걸고 넘어지려면 다른 일을 가지고는 도저히 불가능하다. 그러니 이제 그가 믿는 종교에 대해서 시비를 걸어야 무슨 빌미라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6) 그래서 총리들과 지방장관들은 다니엘을 고소할 빌미를 함께 모여 의논하고는 왕 앞으로 나아가 이러한 건의를 올렸다. `임금님, 만수무강하소서. 7) 이 제국의 모든 총리와 각 지방장관과 또 고문관과 총독들이 모여 이러한 결의를 하였습니다. 임금님께서는 저희들의 결의를 어명으로 공포하셨으면 합니다. 곧 다음과 같은 금지령을 내리셨으면 합니다. 앞으로 삼십 일 동안 임금님 외에는 그 어떤 신이나 그 누구에게도 빌거나 기도하지 못하게 금지령을 내려 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만일 이 금지령을 어기는 자가 있으면 가차없이 사자굴에 던져 넣는다는 조항도 아울러 덧붙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8) 그러니 임금님, 이 금지령을 어명으로 선포하여 주시기를 빕니다. 곧 이 어명을 조서로 꾸며 임금님의 도장을 찍어 우리 제국 메대와 바사 안에서 결코 바뀌지 않는 법령으로 공포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9) 그러자 다리오왕이 이 금지령에 도장을 찍어 어명으로 공포하였다.
6장은 다니엘이 이방 궁정에서 겪는 여섯 가지 일 중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6장에서는 다니엘의 세 친구가 억울하게 풀무불에 던져졌으나 죽지 않고 살아난 일과 비슷한 사건이 다니엘에게 일어납니다. 사건의 등장인물과 계기는 다르지만 두 사건은 하나님께서 신앙인들이 박해받는 상황을 통해 당신의 일을 이루시며, 박해받는 상황에서 믿음의 사람들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왕이 그를 세워(1-3) 다니엘에게는 점령국의 포로 출신이라는 태생적인 약점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느부갓네살 왕과 벨사살 왕, 다리오 왕으로 이어지는 통치 기간에도 고관의 직위를 잃지 않습니다. 다니엘은 정권의 변화란 외부 조건에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탁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를 고발할 수 없으리라(4-5) 다리오가 세운 123명의 관리 중 다니엘을 시기한 122명의 관리들이 다니엘을 고발하려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신실했던 다니엘에게서 아무런 허물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들은 하나님을 향한 그의 신실한 믿음과 올곧은 신앙을 올무로 하여 다니엘을 제거하려는 음모를 꾸밉니다.
금령을 내니라(6-9) 다니엘의 대적들은 다리오 왕이 30일 동안 신이든 사람이든 왕을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무엇을 구하지 못하게 하는 법령을 선포하도록 만듭니다. 이 일은 왕권 강화를 위한 법률을 제정하여 시행하라는 신하들의 충성스러운 직언과 명분 아래 이루어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다니엘이 신앙적인 이유로 법령을 거스를 수밖에 없도록 하여 그를 제거하려는 모략의 추진이었습니다. 지금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궁중 신하들의 치열한 권력 투쟁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사탄의 도전과 반역입니다.
적용: 당신 삶의 복잡한 인간관계와 갈등, 그것 때문에 일어나는 사건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영적 전쟁이란 것을 알고 있습니까? 깨어서 살아갑시다.
이태원에 가게를 차린 40대 남자가 장사가 되지 않자 간절히 기도드렸습니다. “월수입이 천 만 원이 되면 200만원을 헌금하겠습니다.” 다음 달부터 갑자기 장사가 잘 되어 그는 800만을 벌었습니다. 그러자 사나이는 하나님께 다시 기도를 드렸습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하나님, 먼저 당신의 몫을 떼어놓고 주시다니요.”
< 설 교 >
'마음이 민첩한 자'
단 6:1-9
제국은 바뀌었지만
1. 역사가 바뀌었습니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대제국 바벨론은 무너졌고, 페르시아(메데-바사)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다니엘서 6장은 이제 페르시아 왕 다리오의 시대의 일입니다. 새로운 제국의 왕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제국을 통치할 120명의 고위 관리를 한꺼번에 교체하는 대대적이고 거국적인 인사를 펼칩니다(단6:1-2). 한 나라의 정권이 바뀌어도 이전 정권의 권력자들은 그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당연합니다. 새로운 정권이 마음껏 일하려면 이전 정권의 권력자들이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죠. 하물며 나라와 민족이 완전히 바뀌는 상황에서는 오죽하겠습니까? 그런데 2절을 보면 단 한 사람만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습니다. 다니엘입니다. 다니엘은 청년의 때로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온 사람으로 바벨론 왕들의 신뢰를 받아 나라를 다스리는 높은 권력의 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시간은 흘러 그의 나이는 80이 훌쩍 넘은 노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어떻게 보아도 권력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할 숙청대상 1호였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나라가 바뀌고 80이 훌쩍 넘어 은퇴할 나이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왕의 절대적 신뢰를 받고 있었습니다. 왕은 새로운 제국을 다스리는 최고 책임을 그에게 맡겼습니다. 도대체 다니엘에게는 어떤 특별한 점이 있었던 것일까요?
루아흐 야티라
2. 성경은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한 사람’(단6:3)이라고 기록합니다. 바로 이것 때문이었습니다. 마음이 민첩하다는 말은 사람의 마음을 잘 읽는 처세에 대한 말이 아닙니다. 마음이 민첩하다는 것은 형세와 상황을 잘 읽어내는 지혜로움 그 이상의 어떤 의미입니다. 여기에서 마음이 민첩하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루아흐(영) 야티라(탁월하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다니엘은 그 영이 탁월했기에 왕의 사랑과 신뢰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영이 탁월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 그와 함께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마음이 민첩한 자의 특징(1). 지혜의 탁월함
3. 하나님의 영이 늘 함께 거했던 사람, 그가 바로 다니엘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한 다니엘은 제국 최고의 엘리트 교육을 받은 그 어떤 사람들보다 지혜로웠습니다. 이 땅의 지혜를 넘어서는 하늘의 지혜가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오늘 코비드로 인해 길을 잃은 것 같은 우리에게, 이 험한 세상 속에서 자라가고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세상의 지혜와 지식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욱 절실한 필요는 하늘의 지혜가 부어지는 것입니다.
마음이 민첩한 자의 특징(2). 존재의 탁월함
4. 마음이 민첩한 사람의 첫 번째 특징이 하늘의 지혜가 있다는 것이라면, 두 번째 중요한 특징은 그가 깨끗하고 거룩한 삶을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어린 시절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와 그의 젊은 대부분의 시절을 제국 최고의 권력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제국이 바뀌어 또 다른 새로운 제국이 들어섰을 때에도 그의 입지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은 이민사회 자수성가 스토리의 입지전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자서전을 썼어도 몇 번을 쓰고도 남을 성공신화를 이룬 사람이 바로 다니엘이었습니다. 지금은 80이 넘은 다니엘 어르신은 자신이 이룬 것을 바라보며 충분히 자랑스러워 할 수도 있었고, 현재 자신이 누리고 있는 것들을 충분히 당연한 것으로 여길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끝까지 겸손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붙들어 여기까지 인도하시는 이가 그리고 놀랍도록 축복해주신 이가 누구신지를 잠시라도 잊지 않았습니다. 바로 하나님이셨습니다.
이 사실을 한시도 잊지 않았기에 다니엘은 화려한 이방의 궁중에서도 하나님의 뜻대로 거룩하고 정결한 삶을 늘 살아왔습니다. 시기와 질투심에 눈이 먼 대적들은 다니엘의 허물을 찾아 그를 무너뜨리려 했지만 그들은 다니엘에게 어떤 허물도 찾지 못했습니다(4절). 이것이 바로 진정한 영성 즉 하나님의 영으로 탁월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백성들이, 교회가 세상의 지탄과 미움을 받는 이유는 우리가 깨끗한 손과 발을 잃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존재(Being)가 거룩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5. 다니엘과 같이 오늘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여 모든 지혜와 존재됨의 탁월함으로 하나님과 세상 앞에 칭찬받고 인정받는 믿음의 종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믿음의 사람 다니엘! (단 6:1-10)
다니엘은 유다 왕 여호야김 때 바벨론의 느브갓네살왕의 침입을 받아(B.C598) 다른 귀족들의 자녀들과 함께 인질로 잡혀간 귀족 청년입니다. 그런데 그 바벨론이 멸망을 받아 메대 사람 다리오가 나라를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다리오 왕은 전국에 120명의 방백을 세웠습니다. 그들로 하여금 나라를 다스리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 위에 총리 셋을 세웠습니다. 방백들을 감독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총리 셋 중 한 사람이 바로 다니엘이었습니다.
다니엘은 워낙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다니엘은 자연히 다리오 왕의 신임을 얻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굴려온 돌이 박힌 돌을 뽑는다' 는 말이 있듯이 유대에서 포로로 붙들려 온 사람이 다른 방백들 보다 더 우수한 인정을 받자 시기와 질투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을 제거하려고 은밀히 약점을 캐 보았으나 아무 틈이나 허물을 전혀 발견 할 수 없었습니다. 이에 그들이 머리를 짜내어 고안해 낸 방법이 다니엘의 하나님께 대한 견고한 신앙심을 역이용하려는 음모를 꾸미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왕을 부추겨서 하나의 법령을 만들었는데 왕의 권위를 실어주겠다는 명분으로 앞으로 30일 동안 왕 이외에 누구에게든지 무엇을 구하거나 또는 어떤 신에게 기도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를 사자 굴에 집어던진다는 내용입니다.
다니엘은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와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다니엘을 고소할 거리를 찾던 사람들은 '얼씨구나'하면서 다니엘을 다리오 왕에게 고발합니다. 그러니까 다니엘을 기도했기에 사자굴속에 들어갔고, 기도했기에 사자 굴에서 건짐도 받았습니다.
오늘 우리도 다니엘의 신앙을 배우고 본받아 승리하는 신앙인 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목소개!▶
우리나라는 건국역사 이래 최초로 여성이 총리를 하고 있습니다. 총리는 말 그대로 나라의 살림살이를 총괄하여 다스리는 직분입니다. 그래서 내각을 이끄는 지도력과 통치자를 보좌하는 능력이 있어야 하고 또 덕망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 여러 곳에 총리직을 감당한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최초로 등장하는 사람은 요셉입니다. 그는 약관 서른에 대 애굽의 총리에 등극했습니다.
성경에는 그에 비할 만큼 능력 있는 총리 한사람이 또 있습니다. 그가 다니엘입니다. 그는 포로 출신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벨론 느브갓네살 왕 밑에서 고위 관직을 받았습니다.
그 바벨론이 망하고 메데 왕 다리오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을 때에도 그는 수석 총리에 발탁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멸망한 바벨론의 신복이었는데도 새 왕조 메대 왕조의 다리오 왕의 절대적 신임을 받은 자였습니다. 이 정도 되면 그 사람의 인격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주경 신학자 '베이컨'은 다니엘에 대해서 첫째 도덕적으로 모범적이고, 둘째 인격적으로 모범적이며, 셋째 신앙적으로 모범적이었다고 말했습니다.
1. 다니엘, 그는 어떤 사람입니까?
다니엘의 이름의 뜻은 '하나님은 나의 심판'이라는 의미입니다. 다니엘은 그 이름의 글자 뜻대로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게 부끄럽지 아니하게 살았습니다.
①그는 민첩한 사람이었습니다(3).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민첩했다'는 말은 ㉠예민한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예민하고 영적으로 예민한 사람입니다.
㉡빨리빨리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기회주의자나 환경, 여건에 휩싸여 약삭빠르게 움직이는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라면 생명을 걸고 달려드는 그런 사람입니다.
㉢업무의 뛰어남을 보여준 사람입니다. 전문화 시대에 업무처리의 탁월함이 있어야 소속된 직장에서 크게 기여하는 인물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있으나 마나한 사람이 아니라, 없어서는 안될 사람으로 일터에 존재하여야 합니다.
㉣'뛰어난 영'이 그의 속에 있었다는 뜻입니다. 여기 '뛰어난 영'은 하나님의 성령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곧 하나님의 성령이 그의 속에 충만하여 모든 행동이 성령의 지배를 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할/ 성령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이 능력자입니다. /믿/
②뛰어난 사람입니다(3).
"총리들과 방백들 위에 뛰어나므로" 앞서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무리에 속해서 뒤섞여서 이리저리 어울려 다니고 뒤에서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에 뛸 만한 믿음과 열심과 충성이 있는 사람이 앞서 가는 사람입니다.
전심전력하는 사람이요 복음의 진보를 나타내는 사람입니다. 우리도 본받아야 합니다.
③왕에게 인정받은 사람입니다(3).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한지라" 왕 앞에 윗사람 앞에 인정을 받은 것입니다.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부모에게 인정받는 자녀는 효자입니다. 선생에게 인정받는 학생은 우등생입니다.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성도는 축복 자입니다. /믿/
다니엘은 원수조차도 그를 인정했습니다. 5절에 다른 총리들과 방백들이 "다니엘은 그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그 틈을 얻지 못하면 그를 고소할 수 없으리라" 할 정도로 다니엘은 그의 청렴함과 신앙태도가 분명했습니다.
④틈도 허물도 없는 사람입니다(4).
"다니엘을 고소할 틈을 얻고자 하였으나 능히 아무 틈, 아무 허물을 얻지 못하였으니"
다니엘은 포로이며 이방인입니다. 자기네들과는 정치노선이 같질 않습니다. 거기다가 타협이나 흥정도 없습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뽑아낸 샘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니엘에게서 틈이나 허물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아무 틈. 아무허물도 찾지 못했습니다 한마디로 다니엘의 삶이 얼마나 구별된 삶이며 성결한 삶이었던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순결한 삶이요 정직하고 진실한 삶입니다. 다니엘이 처음 바벨론에 포로로 붙잡혀 왔을 때 왕은 유다 청년 몇 사람을 뽑아 엘리트 훈련을 시키기로 하고, 그들에게 특혜를 베풀어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먹게 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거절하고 채소만 고집했습니다. 당황한 것은 왕의 신하였습니다. 만일 다니엘이 채소만 먹겠다고 고집하다가 얼굴이 상하고 체중에 변동이 생기면 왕의 문책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왕의 진미를 먹은 소년들과 채식을 하는 우리의 얼굴을 비교해 보아서 보이는 대로 처분하라고 하고 10일을 시험해 보게 합니다.
그리고 10일 후에 모였더니 왕의 진미를 먹은 소년들보다 다니엘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윤택해 진 것을 보여줍니다. 다니엘은 아무리 조건이 좋고 기회가 좋아도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이라면 거절하는 용기도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구별되게 산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시대를 아무 틈. 아무 허물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 때문에 구별되게 살아야 합니다. 흠 없는 사람으로 허물이 없는 사람으로 인정받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진실하고 정직한 사람을 찾으시며 그들을 통하여 역사를 새롭게 하시며 변화시켜 나가십니다.
털어서 먼지 없는 사람이 없다는 속담도 있는데 다니엘은 아무리 털어도 먼지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 비결이 어디에 있습니까? 탐심을 물리치고 신전의식 속에 살아야 합니다. 요셉이 이렇게 살았고, 모세도, 다니엘도 신전의식 속에 살았습니다. 모든 허물과 죄는 탐심에서 출발합니다. 이것만 벗을 수 있으면 천하를 다스릴 수 있습니다.
왜 롯이 망했습니까? 왜 게하시가 문등병자 되었습니까? 왜 가롯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했습니까? 왜 아나니아 삽비라 부부가 헌금하고 죽임을 당합니까? 전부 탐심이 문제였습니다.
왜 고위 공직자가 뇌물을 받습니까? 그가 돈이 없어 받을까요? 먹을 것이 없고 잠잘 곳이 없어 받을까요? 아닙니다. 얼마든지 넉넉한데 그 중심 속에 욕심과 탐심은 만족을 모릅니다. 절대로 채워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눅12:15절에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고 하셨으며, 바울은 골3:5절에서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⑤충성을 다한 사람입니다(4).
다니엘은 신앙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나라의 일을 보는데 있어서도 충성되어 청렴결백한 삶을 살았습니다.
충성은 질적인 면에서는 진실해야 하고, 양적인 면에서는 마음과 뜻을 다하는 전심전력의 삶이어야 하고, 시간적인 면에서는 처음과 나중까지 변함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다니엘은 시종일관 충성스러운 사람이었습니다. 80세가 넘는 그의 삶 전체가 청렴결백했고, 공직자로서의 충성스러운 삶을 살았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때의 어느 장군의 이야기입니다. 한번은 박정희 대통령께서 군대의 장성들과 술자리를 하였는데 박대통령이 친히 장군들에게 술을 한잔씩 돌렸습니다. 영광스러운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한 장군은 "나는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술을 먹지 않습니다." 라며 대통령의 술잔을 정중히 거절했다고 합니다.
장군이 술을 거절하자 대통령은 그 술잔을 장군의 옷에 부었다고 합니다. 그 자리에 참석한 모든 장성들이 그 장군을 염려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날 박대통령은 자기소신을 밝히고 맡은 일에 충성하는 그 장군을 1계급 특진시키고 더 좋은 보직을 주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대개 사람을 두려워하면 타협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타협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신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할/
잠29:25절에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또한 잠14:27절에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라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오늘의 다니엘을 찾고 있습니다. 이렇게 암울하고 어두운 우리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속에서 이 시대의 다니엘을 지금도 찾고 계십니다.
2. 그의 믿음을 받쳐준 원동력이 무엇인가? 기도입니다.
①다니엘은 기도의 사람입니다(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그가 총리가 된 후에도 기도생활은 계속되었습니다. 왜 다니엘이 그처럼 기도에 힘썼습니까?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포로로 붙들려 와서도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총리가 된 후에도 하나님 중심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기도생활을 계속한 것입니다.
우리도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환경이 어떻게 변하든지 다니엘과 같이 어려운 자리에 처해도 기도하는 성림의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다니엘은 국무총리의 자리보다 하나님을 더 생각했고, 바벨론 왕보다 하나님을 더 높이고 경외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를 시기하고 미워하는 사람들이 왕 이외에 다른 신에게나 사람에게 기도하는 사람은 사자 굴에 집어넣는다는 법을 공포케 했지만 그런 것을 개의치 않고 언제나 하던 대로 기도했습니다.
조서에 어인을 찍었다는 것은(9절) 변경이나 위반이 일체 용서되지 않는 표시입니다. 이 법을 어기는 자는 사자 굴에 집어넣어 죽인다고 했습니다. 다니엘을 이 세상에서 끊으려고 하는 저들의 사악함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다니엘은 이렇게 죽음을 알고도 전에 행하던 대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참으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다니엘은 숨거나 도망하지도 않았고, 낙심하지도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만 믿고 나갔습니다.
다니엘의 문제는 어찌 보면 간단한 문제입니다. 기도를 30일 포기하면 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는 기도합니다. 그리고 사자 굴로 들어갑니다.
왜 그가 자기를 지켜보고 있는 정적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도 예전 하던 대로 기도했을까요? 이것이 사단의 올무인줄도 알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믿는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위대하심을 알았습니다. 그는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그 분의 허락이 없이는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기에 사단의 올무에서 승리한 것입니다.
②우리는 여기서 다니엘의 기도를 분석해 보고 배워야 합니다(10).
⑴'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기도했습니다.
이것은 목숨을 내 놓고 기도한 것입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기도했습니다. 이런 기도는 하늘 문이 열립니다.
엘리야 시대에 3년 6개월 간 비가오지 않았습니다. 하늘 문이 굳데 닫혀 있었습니다. 이 때 하늘 문을 연 것은 바로 엘리야의 기도였습니다. 목숨을 걸고 기도하면 하늘 문이 열립니다.
약5:17-18절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년 육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 이같이 닫힌 하늘 문을 열어 비를 오게 한 것도 기도였습니다. 사업이 막혀 있습니까? 사업의 문이 열리도록 기도하세요! 몸이 아프십니까? 치료해 달라고 기도하세요! 하나님은 치료의 하나님이십니다. /할/
다니엘은 기도하지 못 할 상황이 되어도 기도했습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기도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억지로 기도했습니까? 아닙니다. 기쁜 마음으로 즐겁게 했습니다. 억지로 하면 기쁨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것은 억지로 하는 것입니다. 헌금도 억지로 하는 헌금을 원치 않으십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솔직하게 기도하며 자발적으로 기도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입니다.
⑵'자기 집에 돌아가서' 기도했습니다.
기도는 지정된 장소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있는 그 곳이 바로 기도하는 자리입니다. /할/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사업장에서도, 차안에서도, 길 가다가도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어주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믿/
마7:7-8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1887년 미국 뉴멕시코 주 샌안토니오의 작은 마을에 한 소년이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너무나 가난해서 오늘은 이 곳 내일은 저 곳 물건을 팔러 다니는 행상 노릇을 하면서 아들을 데리고 다니며 장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잠자리이었습니다. 때로는 노숙할 때도 있었고, 때로는 연기가 가득한 헛간에서 잘 때도 있었고, 때로는 차에서 잘 때도 있었고, 때로는 여러 사람과 쪼그리고 좁은 공간에서 같이 잘 때도 있었습니다.
어느 날 어느 가게 집 귀퉁이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쪼그리고 자야 했는데 아버지가 아들에게 "추우냐?" '조금 요" "조금만 참아라 좋은 날이 오겠지?" "그래요. 아버지. 그런데 저에게는 꿈이 하나 있어요" '무슨 꿈인 데" "이 다음에 내가 크면 호텔을 지을 거예요. 그리고 사람들을 아주 편하게 자게 만들어 줄 거예요" "그래, 너희 꿈이 꼭 이루어질 것이다.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자구나" 이런 대화를 하면서 두 부자는 손을 꼭 잡고 기도를 하고 잠에 들었습니다.
그런 불편한 자리에서 기도한 것이 그의 일생을 뒤바꾸어 놓고 말았습니다. 1924년 드디어 달라스에 큰 '힐튼'호텔을 지었습니다. 1939년에는 캘리포니아에, 뉴욕에, 일리노이에 '힐튼'호텔을 세웠습니다. 이것이 세계 '힐튼'호텔의 시작이 된 것입니다. /믿/ 여러분, 어느 곳이든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⑶'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기도했습니다.
여우는 죽을 때 꼬리를 고향을 향하고 죽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항상 조국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성전을 그리워하면서 기도하는 다니엘의 구체적인 기도 자세를 엿볼 수 있습니다. 지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중입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해 달라며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하는 것은 구체적인 기도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늘을 우러러 보면서 기도하는 것도 참으로 좋은 자세입니다. /아멘!/
⑷'전에 행하던 대로' 기도했습니다.
기도는 습관화가 되어야 하고 체질화가 되어야 합니다. /할/ 습관이 귀합니다. 예수님도 습관을 좇아 기도하셨습니다.
눅22:39절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좇았더니"
히10:25절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그렇습니다. 좋은 습관이 좋은 신앙 인을 만듭니다. /할/
⑸'하루 세 번씩' 기도했습니다.
정기적인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루 세 번씩 기도했습니다. 다윗 왕도 저녁과 아침과 정오 이렇게 세 번 기도했습니다.
시55:16-17 "나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로다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
행3장에 베드로와 요한이 정기적인 기도시간에 성전 미문에서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를 일으켰습니다. /할/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믿/
⑹'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경건된 자세요, 겸손의 자세입니다. 피눈물나는 기도의 자세요, 부르짖는 기도입니다. 이왕이면 경건한 자세를 가지고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모세처럼 두 팔을 벌리고 기도하는 것도 좋은 자세입니다. 엘리야 처럼 두 무릎 사이에 고개를 묻고 기도하는 것도 좋은 자세입니다. 기도에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3. 다니엘은 감사의 사람입니다.
10절 '하'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어떤 성도가 열심히 기도를 해도 자기에게 특별한 응답이 없어서 몹시 실망하고 있던 어느 날 꿈을 꾸게 되었는데, 천사의 손에 이끌려서 하늘 보화창고를 보게 되었답니다.
천사가 그를 이끌고 한 창고를 보여주었는데 창고가 텅텅 비어있었습니다. "이 창고는 어떤 창고입니까?" 물었더니 "간구 창고입니다.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울며 매달려서 이것 주십시오. 저것 주십시오. 애원하고 간구 할 때마다 이 보화 창고를 열고 다 나누어주어서 빈 창고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옆 창고로 인도해 가는데 보니까 더 큰 창고가 있었는데 보화가 하늘 천장까지 가득히 쌓여있는 것이었습니다.
"이 창고는 무슨 창고입니까?" "감사창고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감사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려고 쌓아 두었던 보물창고입니다. 그런데 성도들이 하도 감사를 하지 않기 때문에 그대로 보물이 쌓여져 있습니다" 이 성도가 크게 깨닫고 범사에 감사하기 시작하자 모든 문제가 잘 풀리기 시작하더니 모든 일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들만 생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믿/
시50:14-15절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다니엘은 감사하면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기도할 수 있다는 자체가 감사입니다. 대통령에게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얼마나 감사할까요? 대통령이 내 사정을 들어 준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런데 기도는 만 왕의 왕 되신 하나님께 말씀드리는 기회요, 하나님이 우리의 내 하소연을 들어 주시는 기회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눅17장에 보면 예수님이 열 명의 문둥병자를 낫게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아홉 명은 감사하지 못했습니다. 신앙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찰스 브라운'이라는 사람이 주님께 감사하지 않았던 아홉 명의 심리를 아주 재미있게 추리해 놓았습니다.
첫 번째 사람은 "병이 진짜 나은 것인지 아닌지 한 번 확인해 봐야겠어." 그러면서 의원에게 달려갔다고 했고, 두 번째 사람은 "병이 낫기는 했지만 과연 이것이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을 것인지?" 재발할지도 또 후유증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좀 더 두고보아야겠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사람은 "천천히 주님을 찾아보면 될 것 아닌가?" 나중에 보자는 사람은 믿을 수가 없습니다. 네 번째 사람은 "이제 보니 나병이 아니었던 것 같아!" 그러니 감사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 사람은 "약간 나은 정도야." 겉에 있는 부스럼은 떨어져도 아마 속에는 아직도 나병이 남아있을지 모른다며 감사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여섯 번째 사람은 "제사장에게 가서 감사를 드렸을 것이다." 일단 제사장에게 뛰어가서 자기의 몸을 보이고 나서 나았다는 것을 완전히 보장받고 난 뒤에 마음대로 거리를 활보하면서 돌아다녀야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일곱 번째 사람은 "주님께서 나를 위해 특별히 애쓰신 것도 별로 없는데 뭐…" 사실 예수님이 하신 것이라고는 말씀하신 것밖에는 없었습니다. "너희 몸을 제사장에게 가서 보여라." 약을 발라주신 것도 아니고, 상처부위에 손을 얹고서 애써 안수 기도해 주신 것도 아니니까 특별히 예수님께 감사할 것이 없다는 생각입니다.
여덟 번째 사람은 "이런 것은 랍비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인데 뭐…" 별로 대단한 일이 아니니까 감사할 일도 없다는 것입니다. 아홉 번째 사람은 "사실 나는 이미 회복되고 있었다고." 예수님 때문에 자기가 나은 것이 아니고, 나을 때가 되어서 저절로 나았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아홉 사람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열 번째 사람은 돌아와서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는 단순했습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하나 신경도 쓰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자기의 병을 낫게 해 주셨으니까 당연히 예수님께 돌아가서 감사 드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께 되돌아가서 엎드려 사례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상하게 여기시며 물으셨습니다.
"너희 열 사람이 다 나음을 받지 아니했느냐? 나머지 아홉은 어디 있느냐?" 그리고 "일어나서 가라.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할/ 영혼까지 구원받는 축복이 임했습니다. /할/
▶감사는 감사의 마음으로 보면 모든 것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의 마음을 잃어버리고 원망의 마음을 품으면 모든 것이 원망과 불평으로 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저는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줄줄 나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수도꼭지를 트는 일이 여러 번 있습니다. 세수하기 위해서, 양치질하기 위해서, 설거지를 하기 위해서, 또 화장실의 일을 볼 때도 꼭지를 틀어야 됩니다. 이런 경우에 물이 제대로 나오는 것을 보면서 감사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면 다른 모든 면에서도 감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번 물난리 때 강원도 어느 동네에서는 6일 동안 수돗물이 안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기자들이 찾아가서 형편을 물었을 때 주민 한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수돗물이 안나오니까 지옥입니다."
아무리 입을 옷이 있고 먹을 양식이 있고 타고 다닐 승용차가 있어도 수돗물이 안 나오면 우리의 생활은 지옥으로 변합니다. 그렇게 중요한 수돗물이 콸콸 나오는데도 감사하는 마음을 못 느끼고 살아오는 것이 우리의 일상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이제부터 감사하십시다. 감사는 찾아서 하는 것입니다.
①다니엘의 감사는 '고난 중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지금 고난이 닥쳐왔습니다. 핍박이 닥쳐왔습니다. 목숨을 내어놓아야 할 무서운 핍박이 다가왔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감사는 감사할 수 있을 조건 때문에 하는 감사보다도 감사할 수 없는 조건에서도 감사하는 것은 차원 높은 감사입니다. 바울이 말한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은 무조건적인 감사를 의미합니다.
여러분, 감사는 조건 없는 감사가 진짜 감사입니다. 왜 이런 감사를 해야 하는가? 우리들이 받은 은혜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구원에 은혜! 하나님의 자녀된 은혜! 선택해 주신 은혜! 뽑아 일꾼으로 세워주신 은혜! 얼마나 감사합니까?
②감사는 배우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감사를 배우십시다. 신앙생활은 배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선 사람들이 잘 해야 합니다.
▶어떤 목사님이 앵무새를 키웠답니다. 앵무새는 훈련을 받아서 성도가 오면 "할렐루야. 아멘"하며 인사를 합니다. 참으로 신통합니다.
이걸 보고 어떤 집사님이 자기도 앵무새를 사다가 키웠답니다. 그런데 교인들이 오면 이 앵무새는 "병신 꼴값하네!"하는 겁니다. 아무리 고치려해도 안되더랍니다. 그래서 집사님의 앵무새를 목사님의 새장에다 넣었답니다. 목사님의 앵무새를 닮아서 "할렐루야. 아멘"할 줄 알고 넣었는데 날이 갈수록 이상한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집사님의 앵무새가 목사님의 앵무새를 닮은 게 아니라 목사님 앵무새가 집사님의 앵무새를 닮아서 "병신 꼴값하네" 하더랍니다.
4. 다니엘의 기도의 결과는 무엇인가?(16-17)
"이에 왕이 명하매 다니엘을 끌어다가 사자 굴에 던져 넣는지라. 이에 돌을 굴려다가 굴 아구를 막으매 왕이 어인과 귀인들의 인을 쳐서 봉하였으니 이는 다니엘 처치한 것을 변개함이 없게 하려 함이었더라"
다니엘을 시기하던 사람은 마치 기다렸듯이 왕에게 고소하고 왕은 다니엘을 구하고 싶지만 방법을 없었습니다. 다리오 왕은 자신이 내린 명령으로 인하여 다니엘을 사자 굴에 넣고 인을 처서 봉했습니다.
▶여기까지 보면 실패한 다니엘의 모습 같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고난 뒤에 찬란한 부활의 새 아침이 옵니다.
다니엘은 주린 사자들이 우글거리는 굴속에 던져졌습니다. 이때 다니엘이 사자의 밥이 되었던가요? 시체로 나왔던가요? 아닙니다. 다니엘은 사자굴 속에서도 형통할 수 있었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의 믿음입니다.
▶22절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치 아니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의 앞에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나님은 다니엘을 사자의 굴에서 살려내셨습니다. 하나님이 굶주린 사자들의 입을 막으셨습니다. 짐승의 본능을 제어하셨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의 생명을 보존하셨습니다. /할/
①다니엘의 사자 굴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여기 '이미'라는 말을 기억해야 합니다. 다니엘이 사자굴 속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천사가 와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사자 굴도 천사 굴이 될 수 있습니다. /믿/
②패배의 장소가 승리의 장소로 바뀌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에게는 패배가 없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야벳느고는 지극히 뜨거운 풀무 불 속에 던져 졌으나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아니했습니다.
오히려 그것으로 인하여 느부갓네살 왕이 놀라 급하게 일어나서 현장을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다(단3:24-25)고 외치게 했습니다.
실로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임마누엘의 신앙은 모든 패배의 장소가 승리의 개선문으로 바뀌게 만듭니다. /아멘!/
③이 일로 인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 하게 되었는데 하나님은 3가지 일을 하셨습니다.
⑴다니엘의 대적 자들을 다 제거하셨습니다(24).
"왕이 명을 내려 다니엘을 참소한 사람들을 끌어오게 하고 그들을 그 처자들과 함께 사자굴에 던져 넣게 하였더니 그들이 굴 밑에 닿기 전에 사자가 곧 그들을 움켜서 그 뼈까지도 부숴뜨렸더라."
왕은 다니엘을 음모에 빠뜨린 자들과 가족들까지 사자 굴에 넣습니다. 다니엘을 대적한 자들은 결국 사자들의 밥이 되고 맙니다. 여기 참소한 사람들은 다니엘을 해친 사람들이요, 다리오 왕에게는 간신 배들입니다. 다리오 왕이 그들을 사자 굴에 던지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이 사자 굴에 채 들어가기도 전에 사자들이 모두 달려들어 움켜서 뼈까지 부서뜨렸습니다.
여기 '참소 한다'는 말은 '이간질한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여기 참소하는 것은 마귀들의 무기입니다. 그리고 참소한 자의 종말은 사자 굴이요, 지옥 불입니다.
⑵다리오 왕이 참 하나님이 누구인지 알게 되고 그를 찬양하게 했습니다.
25-27절 "이에 다리오 왕이 온 땅에 있는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들에게 조서를 내려 가로되 원컨대 많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사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치 않으실 자시며 그 나라는 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자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니라 하였더라"
다리오 왕은 조서를 내려 다니엘을 사자의 입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리고 온 백성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온 나라에 조서를 보냅니다. 다니엘의 믿음이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기회가 됩니다. /아! 멋있습니다./
⑶다니엘을 더 형통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28).
"이 다니엘이 다리오 왕의 시대와 바사 사람 고레스 왕의 시대에 형통하였더라."
다니엘은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 메대왕, 다리오, 그리고 바사왕 고레스 대까지 3국에 걸쳐 형통하는 통치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형통은 1회용이 아닌 시대를 초월하는 형통입니다. 다니엘은 시대를 초월해서 형통한 복을 받았습니다. 그는 바벨론 나라에 포로로 잡혀가서 하나님의 축복으로 그 나라에서 국무총리가 되었는데 다니엘이 재직 중에 나라가 2번이나 바뀌었고, 왕들이 4명이나 바뀌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여전히 총리가 되었습니다. ▶첫 번째로 바벨론 나라의 느부갓네살 왕입니다. 두 번째는 그의 아들 벨사살 왕입니다(단5:1). 세 번째는 다리오 왕입니다(단5:31). 마지막 네 번째는 고레스왕입니다. 오늘 본문은 다리오 왕 때의 일입니다. 다니엘은 나라가 바뀌었는데도 그 나라의 국무총리로 재직하게 됩니다. 우리나라 국무총리 자리는 길어봐야 일년이고, 어느 총리는 단 며칠에 끝난 사람도 있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기독교는 기도하는 종교입니다.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킵니다. 오늘도 기적은 기도하는 사람들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다니엘을 도왔던 '천사'는 하늘의 사역자입니다. 성도가 문제를 놓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돕는 천사를 보내어 위기에서 보호하십니다. 다니엘의 사자 굴에 나타났던 하나님의 사자는 오늘도 우리가 기도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사자를 보내십니다.
전에 행하던 대로
단 6:10
오늘 본문을 보면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라고 했습니다. 이 조서가 어떤 조서입니까?
단6:7-8 / 나라의 모든 총리와 지사와 총독과 법관과 관원이 의논하고 왕에게 한 법률을 세우며 한 금령을 정하실 것을 구하나이다 왕이여 그것은 곧 이제부터 삼십 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의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이니이다 그런즉 왕이여 원하건대 금령을 세우시고 그 조서에 왕의 도장을 찍어 메대와 바사의 고치지 아니하는 규례를 따라 그것을 다시 고치지 못하게 하옵소서
놀라운 일은 다리오 왕이 이 황당한 법을 군소리 없이 바로 통과시킨 것입니다.
단6:9 / 이에 다리오 왕이 조서에 왕의 도장을 찍어 금령을 내니라
메데 파사 제국에서는 왕을 신의 대리인이나 신들의 화신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왕과 왕의 법령이 완전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왕이 한 번 도장을 찍고 발표한 법안은 그 순간부터 결코 변치 않으며 절대적인 구속력을 가졌습니다. 명령을 내린 왕도 번복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법령을 선포하기 전에 수없이 많은 검토 작업을 거치기 마련이었습니다. 그런데 왕이 너무나 쉽게 허락을 해 주었습니다.
좀 더 깊이 들어가서 이 상황을 이해하려면 당시 다리오 왕의 심정을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메데 파사는 이제 막 바벨론을 정복하고 세계의 패자로 등극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제국 내부에는 새로운 주인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은 반항 세력들이 많았습니다.
또한 다리오 왕은 군사력을 손에 쥐고 정복 전쟁을 벌이고 있는 고레스 왕이 과도정부의 수반으로 세운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얼마 지나지 않아 고레스 왕이 전쟁에서 돌아오면 그는 물러나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고레스 편 인줄 알았던 정부의 고위관리들이 자신에게 힘을 실어주는 제안을 했으니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것도 “나라의 모든 총리와 지사와 총독과 법관과 관원이 의논하고”한 일이라니 말입니다. 왕은 그들의 말에 현혹되었습니다. 정말로 모든 신하가 자신만을 높이려 한다고 믿고 싶었습니다.
늙은 다리오 왕은 전쟁 밖에 모르는 조카 고레스보다 덕망 있는 자신에게 신하들의 마음이 끌려오고 있다는 착각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이 법안의 목표가 다니엘을 죽이려는 것이라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다니엘을 사지로 몰아넣을 법안에 사인을 하고 말았습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았습니다. 큰 위기를 만난 것입니다. 사실 다니엘이 큰 위기를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단2:12-13 / 왕이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 70년 전 사건) 이로 말미암아 진노하고 통분하여 바벨론의 모든 지혜자들을 다 죽이라 명령하니라 왕의 명령이 내리매 지혜자들은 죽게 되었고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도 죽이려고 찾았더라
다니엘은 이 위기를 어떻게 대처했습니까?
단2:18-19 /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이 은밀한 일에 대하여 불쌍히 여기사 다니엘과 친구들이 바벨론의 다른 지혜자들과 함께 죽임을 당하지 않게 하시기를 그들로 하여금 구하게 하니라 이에 이 은밀한 것이 밤에 환상으로 다니엘에게 나타나 보이매 다니엘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여러분, 위기에는 양면이 있습니다. 위기로 인해 파멸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위기가 기회가 되어 오히려 더 잘 되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단2:48-49 / 왕이 이에 다니엘을 높여 귀한 것이나 선물을 많이 주며 그를 세워 바벨론 온 지방을 다스리게 하며 또 바벨론 모든 지혜자의 어른을 삼았으며 왕이 또 다니엘의 요구대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세워 바벨론 지방의 일을 다스리게 하였고 다니엘은 왕궁에 있었더라
삼상18:30 /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나오면 그들의 나올 때마다 다윗이 사울의 모든 신하보다 더 지혜롭게 행하매 이에 그 이름이 (다윗) 심히 귀중히 되니라
여러분, 위기는 한번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지난번의 위기를 잘 극복했던 다니엘에게 또 다른 위기가 온 것입니다. 다니엘이 이번의 위기는 어떻게 대처했습니까?
단6:10 /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한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다니엘은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전에 하던 대로 행하였습니다. 이를 책잡은 신하들의 성화를 못이긴 다리오 왕은 다니엘을 사자 굴에 넣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전에 하던 대로의 습관은 다니엘을 살렸습니다. 살릴 정도가 아니라 더 잘 되었습니다.
단6:23-24 / 왕이 심히 기뻐서 명하여 다니엘을 굴에서 올리라 하매 그들이 다니엘을 굴에서 올린즉 그의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자기의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 왕이 말하여 다니엘을 참소한 사람들을 끌어오게 하고 그들을 그들의 처자들과 함께 사자 굴에 던져 넣게 하였더니 그들이 굴 바닥에 닿기도 전에 사자들이 곧 그들을 움켜서 그 뼈까지도 부서뜨렸더라
단6:25-28 / 이에 다리오 왕이 온 땅에 있는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조서를 내려 이르되 원하건대 너희에게 큰 평강이 있을지어다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하지 않으실 이시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의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이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라 하였더라 이 다니엘이 다리오 왕의 시대와 바사 사람 고레스 왕의 시대에 형통하였더라
여러분들은 어떤 습관을 가지고 계십니까? 2019년 새해에는 다니엘을 살렸던 거룩한 습관으로 날마다 승리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고 기도하는 습관
여러분,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고 기도하는 다니엘의 행동이 이해가 됩니까? 지금 다니엘을 참소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노리고 있습니까?
단6:13 / 그들이 왕 앞에서 말하여 이르되 왕이여 사로잡혀 온 유다 자손 중에 다니엘이 왕과 왕의 도장이 찍힌 금령을 존중하지 아니하고 하루 세 번씩 기도하나이다 하니
다니엘이 어떤 인물입니까?
단6:3 /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고관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한지라
이렇게 민첩한 다니엘이 대적의 의중을 파악하지 못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위기를 대처하는 비결을 정확히 알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셔서 불가능이 없으심을 믿었습니다.
위기를 대처하는 비결은 그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항상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고 기도했습니다. 하루도 빠짐이 없이 하루에 3번씩 기도했습니다. 어려울 때도 기도하고, 좋을 때도 기도했습니다. 포로로 붙들려온 혹독한 고난 속에서도 기도하고 총리가 되어서 온갖 부귀 영광을 누리면서도 기도했습니다. 지금 그를 시기하여 대적들이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도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고 하루 세 번씩 기도했습니다.
대하6:38-39 / 자기들을 사로잡아 간 적국의 땅에서 온 마음과 온 뜻으로 주께 돌아와서 주께서 그들의 조상들에게 주신 땅과 주께서 택하신 성과 내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성전 있는 쪽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그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의 일을 돌보시오며 주께 범죄한 주의 백성을 용서하옵소서
솔로몬이 성전을 헌당하며 했던 기도입니다. 하나님이 이 기도에 불로 응답해 주셨습니다.
대하7:1 / 솔로몬이 기도를 마치매 불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서 그 번제물과 제물들을 사르고 여호와의 영광이 그 성전에 가득하니
다니엘은 적국에 포로로 끌려가 있을지라도 온 마음과 온 뜻으로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하면 응답해 주시겠다는 이 약속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약속을 붙들고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고 기도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다니엘과 같이 어떤 상황에서도 상황을 보고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창문을 열어야 합니다. 어떤 창문입니까? 기도의 창문입니다. 예루살렘을 향한 기도의 창문을 열어야 합니다.
오늘 많은 성도들조차 세상을 향한 창문을 열어 놓고 기도의 창문을 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창문,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닫아놓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을 향하여 창문을 열 때 하나님께서 그 창문을 통하여 우리에게 갖가지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의 창문이 너무 많이 열려져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세상의 창문 속에서 행복을 얻으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 세상을 향해 열린 창문을 통하여 온갖 죄악과 유혹, 시험과 범죄가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현대인들의 탈선과 방황과 좌절은 세상을 향한 창문을 너무 열기 때문입니다.
위를 향한 창문을 여는 사람,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여는 사람, 기도의 창문을 여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위를 향해 창문을 열면 세상의 창문도 열려집니다. 그러나 위를 향한 창문을 닫고 세상을 향한 창문만 열면 온갖 상처와 고통, 수치와 아픔을 당하게 됩니다.
오늘날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죄악의 창문, 유혹의 창문을 열어 놓았습니다. 향락과 술 취함과 음란과 방탕의 문을 열어 놓고 있습니다. 바다가 좋다고 해서 바다를 향하여 문을 열어 놓고 있습니다. 산이 행복을 주고 건강을 주는 줄 알고 산으로 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 세상을 향한 문을 많이 열면 열수록 바쁘고 피곤할 뿐입니다. 다니엘이 출세했으니까 얼마나 바쁘겠습니까? 일이 많습니다. 찾아오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에게 부귀영화 향락 기쁨의 창문이 많이 열려 있지만 그런 문을 닫고, 그는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고 하루 세 번씩 기도했습니다. 그럴 때 승리했습니다. 그의 축복은 이어져갔습니다.
단6:28 / 이 다니엘이 다리오 왕의 시대와 바사 사람 고레스 왕의 시대에 형통하였더라
그를 시기한 세력들이 다니엘을 넘어뜨리기 위해서, 사자 굴에 넣기 위해서 별의별 음모를 했지만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고 하루 세 번씩 기도한 그를 쓰러뜨릴 수가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하면 적이 없는 줄 압니다. 많은 사람들이 출세하고 나면 이제는 안심해도 된다고 생각하여 세상의 창문을 다 열어 놓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시기하고 미워하는 사람이 더 많이 생깁니다. 지금 다니엘에게 왜 이런 위기가 온 것입니까? 출세했기 때문이 아닙니까?
단6:3-4 /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고관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한지라 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고자 하였으나
대개 다른 사람들보다 승진이 빠르고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여 인정을 받게 되면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됩니다. 더구나 다니엘은 사로잡혀 온 유다 자손 중에 한 사람입니다.
단6:13 / 그들이 왕 앞에서 말하여 이르되 왕이여 사로잡혀 온 유다 자손 중에 다니엘이
그런 다니엘이 메데 파사의 기존 권력자들을 재치고 제일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된 것입니다. 총리와 고관들 중에는 그동안 목숨을 걸고 페르시아 왕을 위해 정복 전쟁에서 싸워온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개국 공신인 자기들을 재처 놓고 사로잡혀 온 유다 자손 중에 한 사람인 다니엘을 더욱 높여 전국을 다스리게 한다고 하니 견딜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출세하고 성공하니까 바쁘다는 핑계로 하나님을 향한 창문을 닫아 놓고, 세상 문을 열고 높은 사람이나 사귀는 사람들은 다 큰 시험을 당합니다.
잘 믿고 복을 받으면 아무 염려 없는 것이 아닙니다. 복 받을수록 여러 사람들에게 시기의 대상이 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복 받을수록, 잘 될수록 하늘을 향한 창문을 열어서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컴퓨터의 문을 엽니다. 휴대폰의 문을 엽니다. 시간을 거기 다 보냅니다. 오늘 현대인들이 많은 유혹을 받아 죄를 짓는 것은 세상의 윈도우를 열어서 그런 것입니다. 하늘의 윈도우를 열어야 합니다.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어야 합니다. 기도의 창문을 열어야 합니다.
왜 새벽기도를 나옵니까? 하늘을 향한 창문 열려고 나오는 것입니다. 교회에 왜 나옵니까?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창문을 열기 위해서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창문을 여는 자는 다 다니엘같이 사자 굴에 들어가도 삽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새해에는 아무리 바빠도 하나님을 향한 창문을 열고 기도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면 담대함이 옵니다.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낙심도 사라집니다. 비전이 생깁니다.
그리고 범죄의 문이 닫힙니다. 유혹의 문이 닫힙니다. 마귀가 물러갑니다. 길이 열립니다. 잘 됩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처럼 하루에 세 번을 열지는 못하더라도 하루에 한 번이라도 하늘을 향한 창문을 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하나님께 감사하는 습관
여러분, 지금 다니엘이 처한 상황은 속이 상해서 속이 부글부글 끓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아닙니까? 다니엘이 뭘 잘못했단 말입니까?
단6:4 / 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고자 하였으나 아무 근거, 아무 허물도 찾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샅샅이 조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허물도 찾을 수가 없었다면 다니엘을 존경하지는 못해도 더 이상 해치려는 시도는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 그를 끝까지 죽이려는 상황에서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는 행동이 이해가 됩니까?
지금 다니엘이 기도 응답을 받고 그 하나님께 감사한 것이 아닙니다. 전에 행하던 대로 감사했습니다. 몸에 밴 습관이 다니엘로 하여금 그런 상황에서도 감사하게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거룩한 습관이 하나님의 손길을 움직인 것입니다.
시50:23 /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살전5:16-18 /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부분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민14:29-30 / 너희 중에서 이십 세 이상으로서 계수된 자 곧 나를 원망한 자 전부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마귀가 즐겨 쓰는 무기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원망과 불평입니다. 원망 불평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잃고 불 뱀에 물리고 맙니다.
민21:5-6 /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여호와께서 불 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그러나 고난 중에도 감사하면 하나님께서 평탄대로를 열어 주시고 감사할 일을 주십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시험을 당한 사람이 바로 욥인데 욥은 원망하지 않습니다.
욥1:21-22 /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욥은 10명의 자녀가 다 죽고 그 많은 재산을 다 잃고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그의 아내가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할 때에도 입술 범죄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욥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요? 입술로 원망 불평하지 않는 것이 습관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욥을 하나님께서 마침내 갑절로 복을 주셨습니다.
지독하게 가난한 미혼모에게 태어나 어머니의 품이 아닌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고, 9살에 사촌 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오빠 친구들에게 성폭행을 당해 아빠가 누군지도 모르는 아이를 임신하여 14살에 출산과 동시에 미혼모가 된 여인이 있습니다. 아이는 태어난 지 2주 만에 죽었고, 그 충격에 가출하여 마약 복용으로 하루하루를 지옥같이 살았던 여인이 있습니다. 살고자 하는 의욕이 전혀 없는 107Kg의 몸매를 가졌던 여인은 바로 오프라 윈프리입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눈부신 존재로 우뚝 섰습니다.
전 세계 1억4000만 시청자를 웃고 울리는 토크쇼의 여왕으로 영화배우로 자산 6억 달러의 부자로, 미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여성으로 사람들이 인생에서 가장 얻고 싶다는 인기, 존경, 돈을 모두 가진 여인이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바쁜 사람 중의 한 사람인 그녀가 하루로 빼먹지 않고 하는 일이 있다고 합니다. 날마다 감사 일기를 쓰는 일인데, 하루 동안 일어난 일들 중에 5가지를 찾아 기록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거뜬하게 잠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유난히 눈부시고 파란 하늘을 보게 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점심 때 맛있게 스파게티를 먹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얄미운 짓을 한 동료에게 화내지 않은 저의 참을성에 감사합니다.
좋은 책을 읽었는데 그 책을 써준 작가에게 감사합니다.
오프라 윈프리의 감사 내용을 보면 거창하거나 특별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지극히 일상적인 것에 감사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감사 습관은 오늘의 그녀를 만든 힘이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승리하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의 인생을 더욱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들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좋은 습관을 갖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2019년 새해에 다니엘 같은 좋은 습관을 익힙시다. 전에 행하던 대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도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하는 습관입니다.
다니엘이 좋은 습관으로 승리하고 다리오 왕의 시대와 고레스 왕의 시대까지 형통했던 것처럼, 여러분도 좋은 습관을 몸에 익히심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끝까지 형통한 삶을 살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니엘의 감사
단6:1-10 / 주병열 목사
가이드 포스트에 실린 이야기입니다. 캘리포니아에서 Gift Shop을 운영하는 다나 베트슨이라는 주부의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전 남편에게서 낳은 스물 한 살 된 Jason이라고 하는 아들이 있습니다. 지금은 다시 결혼해서 낳은 열 두 살 된 Lucky라는 딸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네 살 된 꼬마가 있었는데 이 꼬마가 심각한 병에 걸려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악성 바이러스가 이 아이의 간에 침투되어서 간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열 두 시간 안에 간이식을 받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이었습니다. 의사가 말했습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유일한 소망은 살아있는 간 기증자를 구하는 겁니다." 신장이 아니라 간입니다. 사람은 신장은 둘을 가졌지만, 간은 하나뿐입니다. 신장이라면 혹 하나를 나누어 줄 수가 있지만은 간은 절반을 잘라서 주어야 합니다. 그것도 열 두 시간 안에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모두가 염려하고 걱정하고 있습니다. 이 꼬마의 엄마는 발을 동동 구르면서 초조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전 남편의 아들인 제이슨이 자기의 간을 나누어주겠다고 자원했습니다. 이들 둘의 간이 체질적으로 맞을까 하는 것이 걱정이었지만, 다행히 맞을 것 같다는 진단이 되었습니다. 이런 불안한 가운데서 이제 수술을 받게 됩니다. 제이슨(21)이라고 하는 아들과 네 살 난 딸을 이렇게 수술실에 넣어 놓고 수술 받는 동안 그녀는 열 두 살 된 딸의 손목을 잡고 수술실 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잘못하면 두 자식을 한꺼번에 잃어버리게 됐습니다.
그 시간이 얼마나 초조하고 불안했겠습니까? 어쩌면 두 자식을 다 잃어버릴 수 있는 있는 상황에서 그녀의 마음은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상태였을 것입니다. ‘왜 하필이면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하는가?’ ‘전생에 무슨 죄가 있어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 것입니까?’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감사한 일이 있습니다.엄격히 말하면 자기 친동생도 아닌 이부형제에게 생명처럼 소중한 간을 나누어주겠다고 수술실에 들어갔어요. 그 자원하는 마음이 너무 고마워요. 내게 이런 아들이 있다는 것이 너무 고마운 것입니다. 이들은 친형제도 아니었습니다. 어머니는 같지만, 아버지는 다릅니다. 이같이 강퍅한 세상에 '그래 이렇게 사랑스러운 내 아들이 여기에 있다.' 사랑과 그 고마운 마음이 너무 고마워서 한편으로는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수술 자체를 생각하면 걱정이지만, 이렇게 소중한 아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우리 가정에 이렇게 거룩한 사랑이 있고 내 아들이 이렇게 귀한 사람이라는 것에 감사합니다. 한편으로 걱정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감사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깊이 생각할 점이 있습니다. 감사와 염려는 항상 같이 온다는 것입니다. 한쪽으로는 걱정이 됩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감사합니다. 이쪽에서 보면 걱정 투성이입니다. 그러나 저쪽으로 보면 감사할 것이었습니다. 앞서 한 두 사람의 간증을 들으면서 무엇을 느끼셨습니까? 그들의 삶 가운데 고난이 있었습니다. 근심이 있었습니다. 아픔이 있었습니다. 그 아픔 때문에 울기도 했습니다. 고통스러운 기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서 정말 소중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감사입니다. 감사는 결과가 아니라 믿음이며 의지이고 순종입니다. 감사하려고 마음먹는 사람이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과 자세가 그의 인생을 바꾸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 말씀에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감사를 약속하시지 않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감사는 삶이 회복되기 전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삶이 회복되고, 좋은 일들이 일어나서 감사할 수 있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감사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고 난 후에 그들의 삶이 회복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다니엘의 이야기를 봅니다. 다니엘은 이스라엘에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사람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바벨론에서 총리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느부갓네살 왕 밑에서 총리가 되었고, 이어서 벨사살 왕 밑에서 총리가 되었습니다. 이어서 페르시아가 다스리던 때 다리오 왕 밑에서도 총리가 되었습니다. 당시 다리오 왕은 나라에 120명의 방백들을 세워서 전국을 120개로 나누어 통치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 위에 총리 셋을 두어서 120명의 방백들을 관리하도록 했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바로 다니엘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리오 왕은 이 세 명의 총리들 중에 다시 다니엘을 가장 으뜸으로 세웠습니다.
다니엘은 본래 이스라엘에서 잡혀온 포로였습니다. 그의 출신은 바벨론과 페르시아 백성들 입장에서 보면 포로였고, 천민들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니엘을 시기했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다니엘을 제거할 기회를 엿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관리하는 국정에서는 흠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부득이 그의 신앙에서 흠을 찾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다리오 왕에게 30일 동안 왕 외에는 누구에게도 기도할 수 없게 하는 법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이 법을 어기게 되면 사자 굴속에 넣도록 하는 법이었습니다. 말도 안 되는 법을 만들어 놓고는 그곳에 왕의 도장까지 찍어서 왕 자신도 고칠 수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다니엘을 잡기 위한 음모였습니다. 나중에서야 왕도 그것을 알게 되지만, 10절에 나오는 다니엘의 행동이 얼마나 우리를 놀라게 하는지 모릅니다.
10절에 보면 다니엘에 대해 이렇게 기록합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으로 전에 행하던 대로 ---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자기를 잡으려고 모함하는 함정이 엄청난 정치적 힘을 등에 업고 결정된 사실을 알면서도 다니엘은 여전히 동일한 모습으로 하나님께 감사하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실 다니엘이 지금 감사의 기도를 드릴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의 기도에서 몇 가지 특징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다니엘의 감사는 전에 행하던 대로의 감사였습니다(10절). ‘전에 행하던 대로’가 무슨 뜻입니까? 그는 이런 어려움이 있기 전에도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이 조서에 어인이 찍한 것을 알고도’ 집에 돌아가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엄청난 음모가 일어나는 그 상황에서도 동일한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생각해 봅시다. 다니엘은 정직하게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습니다. 진실했습니다. 다니엘의 정적들도 그의 흠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충성스럽게 살았는데, 왜 죽어야 합니까? 왜 다니엘이 사자굴 속에 들어가야 합니까? 다니엘이 원망한다면 원망할 거리가 있는 사람입니다. 염려와 원망, 불안과 불공평한 세상에 대해 저주를 퍼부어도 뭐라 못할 사람입니다. 하나님 어디 계십니까? 내가 어떻게 하나님을 위해 살아왔는데, 내가 왜 이렇게 죽어야 하는 것입니까?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전에 행하던 대로 여전히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왜 이렇게 인도하십니까? 왜 이런 자리에서조차 감사를 받으시기 원하시는 것입니까? 폴 틸리히라는 신학자가 ‘존재의 용기’라는 책에서 ‘신앙이란 용기’라고 정의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부르셔서 가나안으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그의 고향, 조상 대대로 살던 그 땅 갈대아 우르를 떠나게 하셨습니다. 야곱을 부르실 때 하나님은 그를 고향 가나안을 떠나서 그의 삼촌 라반이 사는 밧단아람으로 가게 하십니다. 그것은 매우 힘들고 어려운 길이었습니다. 야곱은 그 길을 가면서 거의 죽음을 각오했습니다. 하나님이 요셉을 부르실 때 하나님은 요셉을 애급으로 인도하십니다. 애급으로 가지 않을 수 없도록 하셨습니다. 그것은 정말 힘들고 어려운 길이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17세에서 30세까지 노예로, 죄수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곳에서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이란 용기입니다. 신앙이란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면서 떠나는 여행과도 같습니다. 다니엘에게 있어서 바벨론과 바사의 총리는 그의 삶의 근거가 아니었습니다. 다니엘이 바사 나라의 총리 자리를 내려놓는 것은 엄청난 용기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그를 더 안전하게 세워놓으십니다. 그는 사자굴 속에 들어갔다 나온 후 더 확고한 자리를 얻게 되었습니다. 인간적인 안전지대에서 일어서서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전혀 새로운 자리로 떠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그렇게 떠날 때 성도는 전에 서 있던 그 자리가 삶의 근거가 아니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것을 경험하는 것이 바로 신앙인의 용기입니다. 다니엘이 ‘전에 행하던 대로’ 여전히 기도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있는 것만이 가장 확실한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유가영 자매의 간증을 들으면서 참 마음에 가장 와 닿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기를 포기하는 단계에 까지 갔다는 것입니다. ‘생명포기각서’라는 그의 표현을 들으면서 그가 정말 얼마나 힘들었을까 상상하게 됩니다. 유가영 자매의 힘든 것을 통해 하나님이 정말 가르쳐주고 싶었던 것은 바로 그 아이의 생명은 내가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사실이었을 것입니다. 이 아이가 여전히 내 품에 있지만 영적인 면에서 내 품을 떠나 하나님의 품에 안길 때 이 아이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계획하신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의 삶의 근거가 이처럼 바로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할 때 우리는 비로소 감사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다니엘의 감사는 ‘하루 세 번씩’ 드리는 감사였습니다.
즉 다니엘의 감사는 일상성 속에서 드리는 감사였다는 것입니다. 매일 세 번씩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그의 감사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감사는 체질이 되어야 하고, 성품이 되어야 합니다. 오랜 동안 같은 행위가 반복되면 습관이 되고, 습관이 오래 가면 성품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감사의 체질화를 연습해야 합니다. 감사를 연습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감사의 계절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일 년 내내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침에도 하고, 점심에도 하고, 저녁에도 감사해야 합니다. 아침을 먹으면서도 식사를 차려준 주부에게 감사하고, 점심을 먹으면서도, 그리고 저녁을 먹으면서도 언제나 진정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감사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고마운 일이 있어도 고맙다고 말 한 마디 할 줄 모르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지극히 작은 일에서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느 도시에 착한 이발사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한 신부가 이발소에 왔습니다. 정성껏 이발을 잘 해드린 다음에 ‘그저 하나님께 봉사했다고 생각하겠습니다. 이발료는 내지 마시고 그냥 가시지요. 저도 하나님의 일을 좀 하고 싶습니다.’ 하고 보내드렸습니다. 신부님은 ‘정말 감사합니다’하고 가서 생각하니 너무 고마웠습니다. 그래서 우편으로 기도문 책을 몇 권 메일로 보내드렸습니다. 며칠 지난 후 경찰이 와서 이발을 하게 됐습니다. 이발을 다 마친 후 다시 이발사가 이렇게 말합니다. ‘이발료는 내지 마십시오. 저도 지역 사회에 봉사한 셈치고 좋은 일 한 번 하고 싶습니다.’ ‘그러세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가만히 돌아가서 생각해 보니 참 감사했습니다.참으로 고마워서 그도 도너츠 몇 개 사서 봉투에 넣어가지고 그 안에 엽서 한 장 써가지고 문 앞에 갔다 놓고 갔습니다. 다음 날 국회의원이 왔습니다. 역시 이발을 다 해드린 다음에 ‘이발료는 안 내셔도 됩니다. 저도 국가에 대한 봉사라고 생각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 날 보니까 국회의원들이 문 앞에 줄을 섰더랍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에 보면,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합니다. 감사를 잘 하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감사할 조건과 감사하기 힘든 조건을 같이 갖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감사할 수 있지만, 반대로 보면 감사하기 힘든 상황을 만나게 됩니다. 아니 대부분 우리 앞에 있는 상황들은 감사하기 힘든 것들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다시 살펴보면 그 안에서 우리는 다시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감사가 우리의 인생을 바꾼다는 사실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삶이 바뀌어서 감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감사할 수 있을 때 인생이 바뀌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21살 아들과 4살 딸이 병실에서 생명의 기로에 서 있는 것을 보면서도 절망하지 않고, 이런 아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었던 한 어머니의 모습처럼, 하나님은 오늘 우리들도 그렇게 감사하는 인생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총리자리를 내려놓고 ‘전에 행하던 대로’ 하나님 앞에 감사했을 때 다니엘은 더 든든히 세워졌습니다. 여기에 감사의 원리가 있고 법칙이 있으며 능력이 있습니다. 그것은 결코 쉬운 길은 아니지만, 그 안에 진정한 능력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런 은혜가 모든 성도님들 가운데 충만하시길 축원합니다.
인격과 신앙
단 6:1-10 / 조병남 목사(김제연정교회)
신앙 인격이 바로 서야 ‘성숙한 신앙인’
다니엘처럼 인격 갖추는 일에 힘쓰는 사람에게 ‘형통’ 예비하신다
“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고자 하였으나 아무 근거, 아무 허물을 찾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단 6:4)
사람은 누구에게나 실수가 있고 허물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삶을 살아온 분이라 하더라도, 실수나 허물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실수나 허물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있는 실수와 허물도 살피지 않고 안하무인으로 살아가느냐, 아니면 자신의 약점이나 허물을 줄이기 위해서 노력하느냐에 있습니다. 우리가 크리스천으로서 많은 축복을 받는 것도, 여러 가지 능력과 조건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인격을 갖추는 것입니다. 본문을 통해 다니엘의 인격과 신앙이 그의 인생을 얼마나 아름답고 빛나게 했는지 살펴봅니다.
포로 청년이 총리가 되다
이스라엘 왕국의 역사를 훑어보면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나라가 나누어진 뒤 북이스라엘은 주전 722년에 앗수르에 의해, 남유다는 주전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 당했습니다. 당시 세계 강대국이었던 바벨론은 유다를 세 번 침공해서 그 때마다 유다의 관리들과 똑똑한 청년들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다니엘은 첫 번째 바벨론 침공 때에 포로로 잡혀갔던 유대 청년이었습니다. 급기야 바벨론의 총리가 되었고, 역사에 빛나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그 후로 70년이 지난 때의 일입니다.
막강한 권력을 자랑하던 바벨론이 페르시아에게 멸망당했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은 페르시아 초대 왕이었던 다리오 왕에게 등용되어, 그 나라의 120도를 관리하는 세 명의 총리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세 명의 총리가 관할하다 보니까 효율성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다니엘을 수석총리로 세워 나라 전체를 관할하도록 계획합니다. 그러자 그 계획에 다른 두 명의 총리와 관리들이 불만을 갖고 다니엘을 몰아낼 음모를 꾸밉니다. 그들은 먼저 다니엘의 뒷조사를 합니다. 하지만 본문 4절을 보면 “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고자 하였으나 아무 근거, 아무 허물을 찾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다니엘의 인격
지난 70여 년 동안 바벨론의 관리로 생활해왔기 때문에 얼마든지 허물을 찾으면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들은 다니엘의 뒷조사를 해보았지만 결국 아무런 허물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다니엘은 이미 느브갓네살 왕 때부터 높은 권력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권력이 있으면 돈의 유혹이 많습니다. 다니엘에게 줄을 대서 좀 더 출세해 보겠다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때로는 성적인 유혹 등으로 다니엘에게 접근해 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온갖 것들로 유혹을 해 왔을 때에도 거기에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한국교회사가 이만열 교수가 한 세미나에서 한국교회에 대해 “오늘날 한국교회와 교직자들의 타락을 보면 고려시대 불교와 승려의 그것을 보는 것 같다”고 질타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지금 온갖 부정부패에 기독교인들이 연루되지 않은 곳이 없다. 교회 장로 집사 권사들이 성경에 손을 얹고도 거짓 증언을 한다”고도 했습니다. 믿음의 선배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바르게 살았고 그 결과 우리 사회로부터 존경을 받았습니다. 비록 적은 수였지만 그 시대 사람들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구 1/4에 이른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반대로 사회의 존경을 잃었습니다. 영향력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오히려 부정부패에 연루된 그리스도인들이 점점 늘어만 가고 있습니다. 또한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교회가 갈라지고 배척하고 싸웁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다고는 하지만 예수님의 마음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니엘을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다니엘처럼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로부터 잃어버린 명예를 되찾아야 하겠습니다. 사회에 대한 잃어버린 영향력을 되찾아야 합니다. 깨끗한 마음과 깨끗한 삶이 가장 큰 재산입니다.
다니엘의 신앙
다니엘은 젊은 나이에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왔습니다. 그 때부터 70년 이상을 그는 변함없는 확고한 신앙으로 살아왔습니다. 다니엘 1장에 보면, 그는 바벨론의 왕궁학교에서 교육을 받을 때부터 우상의 제물이었던 고기와 포도주를 거부했습니다. 그 학교에서 퇴교당하면 다른 유다의 포로들과 마찬가지로 바벨론 사람들의 노예로 살아가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포기할 수 없다는 아주 단호한 결단을 내립니다. 그리고 70년 이상을 그렇게 신앙생활 해왔습니다.
그러자 다니엘의 흠을 잡지 못한 사람들이 이번에는 종교적인 문제를 가지고 음모를 꾸몄습니다. 앞으로 30일 동안 왕 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왕께만 경배토록 한다는 칙령을 반포케 한 것입니다. 다니엘은 왕의 조서가 내려진 것을 알면서도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평소대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다니엘에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단 6:10)
‘알고도’라는 단어에 주목합시다. 그가 지금 기도하면 위험하다는 사실, 사자 굴에 던져져 죽게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기도했습니다. ‘전에 하던 대로’라는 표현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쭉 그런 신앙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죽을 줄을 알면서도 평생 지켜온 신앙만큼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확고한 신념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확고한 신앙의 보상
다니엘은 결국 사자굴에 던져집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사자굴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해 버리셨습니다.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의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하지 못하게 하였으니.”(단 6:22) 하나님께서 이미 사전 조치해 놓으신 것입니다. 차라리 기도하다가 죽겠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기도하니 하나님이 지켜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손에 잡히는 것 없고, 눈에 보이는 것 없고, 귀에 들리는 것 없어도,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우리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주인은 자기 가족과 자녀를 책임집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당신을 의지하는 백성을 책임지십니다.
맺는말
“다니엘은 고레스 왕 원년까지 있으니라.”(단 1:21) 고레스는 바벨론이 무너지고 세워진 왕국 페르시아의 왕입니다. 다니엘서는 다니엘을 포로로 잡아왔던 왕 느브갓네살 때부터 시작합니다. 포로 신분임에도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하나님을 성실하게 섬기기로 했고, 느브갓네살 왕의 꿈을 해석하여 중용됩니다. 훗날 느브갓네살 왕의 아들이었던 벨사살이 왕이 되었을 때 벽에 나타난 글씨의 사건이 생기고(단 5:24~28), 그날 밤 벨사살 왕이 죽임을 당하며 다리오가 왕이 됩니다. “이 다니엘이 다리오 왕의 시대와 바사 사람 고레스 왕의 시대에 형통하였더라.”(단 6:28)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형통’입니다.
무엇이 다니엘로 하여금 바벨론에 이어서 페르시야에서도 총리의 자리에 앉게 하였습니까? 그것은 인격적으로 깨끗했고, 변함없는 확고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모든 사람이 다니엘이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다니엘처럼 우리도 신앙의 인격이 바로 되어 있을 때 ‘성숙한 신앙인’이라 부를 수 있고, 이런 모습으로 살아갈 때 존중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니엘의 결단
단 6:10 / 이영훈 목사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다니엘 6장 10절)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수없이 크고 작은 위기를 만납니다. 이 세상에 문제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다가오는 문제보다 중요한 것은 문제를 어떻게 극복하는가에 있습니다.
주전 586년 남왕국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한 후 다니엘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지만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셔서 총리까지 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에게도 예외 없이 사자 굴에 던져지는 위기가 다가왔습니다.
본문을 통하여 우리는 다니엘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살펴보고 시시각각 다가오는 위기에서 어떻게 승리할 수 있는지 함께 생각해보기를 바랍니다.
1. 위기를 만난 다니엘
다니엘은 바벨론에 잡혀온 포로였지만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셔서 고위 관직에 등용되었습니다. 그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왕이었을 때부터 벨사살 왕, 바벨론이 바사국에 멸망당한 후 메대의 다리오 왕, 바사의 고레스 왕에 이르기까지 4대 왕을 섬기며 고위 관직에 있었습니다.
특히 다리오 왕은 제국을 120개의 도로 나누어 지방 장관을 세우고 그 위에 3명의 총리를 세웠는데 이때 다니엘을 수석 총리에 임명하여 전국을 다스리도록 하였습니다. 그러자 이를 시기한 자들이 다니엘을 몰아내기 위해 고발할 근거를 찾으려 하였으나 어떤 허물도 찾지 못했습니다. 다니엘 6장 4절은 말씀합니다. “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고자 하였으나 아무 근거, 아무 허물도 찾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그러자 그들은 다니엘이 하나님께 늘 기도하는 것을 문제 삼았습니다. 그들은 왕을 제외한 어떤 신이나 사람에게도 무엇을 구하지 못하게 하고 이를 어기는 자는 사자 굴에 던져 넣는 조서를 내리도록 왕에게 청원했습니다. 다니엘 6장 7절은 “나라의 모든 총리와 지사와 총독과 법관과 관원이 의논하고 왕에게 한 법률을 세우며 한 금령을 정하실 것을 구하나이다 왕이여 그것은 곧 이제부터 삼십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의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이니이다”라고 말씀합니다. 다리오 왕은 이 내용이 다니엘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한 것인 줄 모르고 도장을 찍어 조서를 반포했습니다. 이로 인해 다니엘은 사자 굴에 던져질 큰 위기에 처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길을 걸어가다 보면 이와 같은 위기를 만납니다.
사도 바울도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며 걸어가는 길에 많은 위기를 만났습니다. 그는 고린도후서 11장 23∼27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위기에 처한 다니엘은 하나님께 기도하기로 결단합니다. 우리도 신앙과 세상 사이에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설 때가 있습니다. 또 신앙을 선택할 경우 생명의 위협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1999년 미국 콜로라도 주의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총기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당시 총을 든 남학생 한 명이 레이첼 스코트(Rachel Joy Scott)라는 한 소녀에게 하나님을 믿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그 학생의 눈동자를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여전히 하나님을 믿는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네가 믿는 하나님 곁으로 가라”며 그녀의 가슴을 향해 총을 발사하였습니다. 그녀가 살해되기 1년 전에 기록한 일기에는 이런 내용의 글귀가 발견되었습니다. “나는 예수님의 이름을 말하는 것에 대해 변명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계속해서 예수님에 대해 말할 것이다. 내가 가장 친한 친구인 예수님과 동행한다는 이유로 모든 친구들이 나를 원수로 여긴다고 해도 나는 예수님과 함께할 것이다. 나는 하나님께서 내 안에 넣어주신 빛을 숨기지 않을 것이다. 그 빛으로 인해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한다면 기꺼이 희생할 것이다”
핍박이 오는 것을 이상한 일로 여기지 마십시오. 그것은 우리가 주님께 속했다는 증거요, 그리스도인이라는 증거요, 세상과 구별되어 말씀대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산다는 증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5장 18절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니엘이 사자 굴에 던져질 위험에 처한 이유도 하나님께 경배하며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사는 것을 미워하기 때문에 세상을 통해 우리를 핍박합니다. 디모데후서 3장 12절은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핍박당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벧전 4:16).
하나님의 뜻대로 걸어가는 길에는 우리의 힘으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인생의 위기, 신앙의 위기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다니엘처럼 기도하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2. 기도하는 다니엘
다니엘은 생명을 위협 받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하나님만 바라보며 기도했습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단 6:10). 여기서 우리는 네 가지 기도의 원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창문을 열고 성전을 향해 기도했습니다.
다니엘은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숨어서 기도하지 않고 떳떳하게 창문을 열고 하나님을 향해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같은 담대한 믿음의 사람, 기도의 사람을 찾으십니다. 세상의 유혹 앞에 굴복하지 마십시오. 악한 세력의 도전 앞에 물러서지 마십시오. 강하고 담대하십시오. 여호수아 1장 9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야훼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둘째, 시간을 정하고 규칙적으로 기도했습니다.
다니엘은 하루에 세 번씩 시간을 정하고 기도했습니다. 규칙적으로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예수님은 바쁘신 중에도 기도를 소홀히 하지 않으셨습니다. 무리들을 고치고 돌보시다가도 때가 되면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셨습니다(눅 5:15∼16). 또 수시로 감람산에 올라가서 기도하셨습니다(눅 22:39). 이것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영원한 승리를 이루신 비결입니다.
마틴 루터(Martin Luther) 목사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만일 내가 새벽에 두 시간 이상 기도하지 않았다면 그날의 승리는 마귀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나에게는 너무나 할 일이 많았다. 그러나 날마다 세 시간 이상 기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었다. 그 기도가 모든 일을 지탱해 나가게 하는 힘이 되었다”
셋째,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며 겸손하게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지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 50:15).
넷째,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다니엘은 포로 생활 중에도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찬양하며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사람과 함께 하십니다.
이처럼 우리가 위기에서 승리하기를 원한다면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도의 골방으로 들어가 겸손한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3. 사자 굴에 던져진 다니엘
다니엘이 금령을 어기고 기도하는 모습을 본 무리들은 왕에게 달려가 그를 사자 굴에 던질 것을 강청했습니다. 다리오 왕은 다니엘을 매우 신뢰하였기 때문에 그를 살리고자 하였으나 본인이 도장을 찍은 법령이므로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단 6:15). 결국 다니엘은 사자 굴에 던져졌습니다. 다니엘 6장 16절은 말씀합니다. “이에 왕이 명령하매 다니엘을 끌어다가 사자 굴에 던져 넣는지라 왕이 다니엘에게 이르되 네가 항상 섬기는 너의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 하니라”
다니엘을 아끼던 다리오 왕은 금식하고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이른 새벽에 사자 굴에 가서 다니엘을 불렀습니다. 다니엘 6장 19∼20절은 “이튿날에 왕이 새벽에 일어나 급히 사자 굴로 가서 다니엘이 든 굴에 가까이 이르러서 슬피 소리 질러 다니엘에게 묻되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들에게서 능히 너를 구원하셨느냐 하니라”고 말씀합니다. 이때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호하셨다고 왕에게 답하였습니다.
“다니엘이 왕에게 아뢰되 왕이여 원하건대 왕은 만수무강 하옵소서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의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하지 못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에게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단 6:21∼22). 하나님은 생명을 걸고 기도한 다니엘의 기도를 들으시고 사자들의 입을 봉하여 다니엘을 보호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위기를 만나더라도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음대 지휘-오페라 코치과 최고과정 재학 중인 유수연 씨는 고등학교 1학년 때 ‘급성 골수성 백혈병’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온몸에 암세포가 퍼진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새벽에 꿈속에서 요나를 물고기 뱃속에서 삼일 만에 살리신 말씀을 응답으로 받고 간절히 기도하며 두려운 시간을 견뎌냈습니다.
그리고 ‘욥이 고난 가운데도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을 때 그를 치료하시고 살려주신 하나님이 나를 살려주실 것이다’라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했습니다. 결국 3개월 후 기적처럼 모든 기능이 회복되어 2000년도에 총신대 작곡과에 들어가 수석으로 졸업하였습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 국제 성악 콩쿠르에서 오페라 코치 부문 1등상과 특별상을 수상하였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무슨 퍼즐 조각을 맞추시듯 제 인생을 끌고 가셨습니다. ‘왜 이런 일이?’ 하는 일도 나중에 보니 다 필요한 퍼즐 조각이더라고요. 저는 내가 무엇을 계획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어떤 위기 가운데서도 건져 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에게도 위기가 변하여 큰 축복이 되었습니다. 살아난 다니엘을 본 다리오 왕은 오히려 다니엘을 참소한 자들을 사자 굴에 넣고 다니엘이 믿는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다니엘 6장 26∼27절은 말씀합니다.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하지 않으실 이시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의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이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라 하였더라”
기도는 위기를 축복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어떤 위기에서도 의인을 보호하고 악인을 멸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악을 악으로 갚지 마십시오. 오직 주님만 의지하고 기도하십시오. 사자 굴에서 건짐 받고 다리오 왕을 넘어 고레스가 왕이 되었을 때까지 형통했던 다니엘의 형통을 경험하시는 우리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어떤 고난과 문제가 다가와도, 어떤 슬픔과 괴로움이 다가와도 절대긍정과 절대감사로 엎드려 기도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다니엘처럼 위대한 승리와 축복을 가져오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다니엘의 기도
단 6:1-10 / 조성노 목사
다니엘은 주전 605년 16세의 어린 나이로 바벨론 포로가 되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유다를 침공해서 3차에 걸쳐 유다 사람들을 잡아갔는데, 다니엘은 제1차 때 끌려갔습니다. 여호야김 왕과 또 여러 귀족들과 함께 바빌로니아로 끌려갔습니다. 당시 바빌로니아는 다니엘 같은 유다의 어린 영재들을 많이 잡아갔습니다. 그들에게 바빌론의 언어와 종교 문화를 주입해 장차 그들을 이용해 유다를 보다 효과적으로 다스리려는 전략을 썼습니다.
우리나라도 병자호란 때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제 발로 걸어 나와 송파나루 삼전도에게 칸에게 세 번 이마가 땅에 닿도록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며 항복을 선언하자 칸이 터무니없는 요구를 합니다. 그때 수많은 조선 사람들이 청나라로 끌려갑니다. 세자부터 대군, 대신들, 양반 자제들이 다 볼모로 끌려갑니다. 그때 무려 50만 명이 끌려갔습니다. 말로는 잘 지내게 하다가 좋은 시절에 되돌려 보내겠다고 하면서 귀족들의 자제를 많이 잡아갔습니다. 막상 데려가서는 절반은 청나라에 당도하자마자 조선의 전리품이라면서 황제의 하사품으로 고관들에게 배분했습니다. 주로 여성이었습니다. 나머지 절반은 당시 청나라 수도였던 심양 저잣거리에 수용해놓고 팔았습니다. 인신매매를 한 겁니다. 조선의 대신들은 앞 다투어 선양으로 가서 비싼 값을 치르고 되사왔습니다. 그때 생긴 말이 <화냥년>입니다. 돌아온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돌아온 사람들은 자살을 강요당하거나 이혼 당했습니다. 정상적으로 살지 못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60여 년 전의 일인데 지금도 우리의 탈북 여성들이 말도 안 되는 값에 이리저리 팔리고 있습니다.
2600년 전의 바벨론도 360년 전의 청나라만큼 무지막지하지는 않았습니다. 3차에 걸쳐 바벨론으로 잡아간 포로도 3만 명이 넘지 않았습니다. 제일 많이 잡아간 1차 때도 1만 명 정도였습니다. 바벨론은 청나라처럼 볼모로 잡아간 사람들을 시장에 내다팔지 않았습니다. 다니엘 같은 사람은 왕의 진미를 먹고 고등교육을 받았습니다.
어느 날 왕이 꿈을 꾸는데 아무도 해몽하지 못합니다. 왕은 바벨론에서 최고의 술사들을 수배해서 해몽하라고 하는데 아무도 풀지 못합니다. 그런데 다니엘이 그 꿈을 알아맞히고 명쾌하게 해석합니다. 다니엘 2장 31절 이하입니다. “[31] 왕이여 왕이 한 큰 신상을 보셨나이다 그 신상이 왕의 앞에 섰는데 크고 광채가 매우 찬란하며 그 모양이 심히 두려우니 [32] 그 우상의 머리는 순금이요 가슴과 두 팔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33] 그 종아리는 쇠요 그 발은 얼마는 쇠요 얼마는 진흙이었나이다 [34] 또 왕이 보신즉 손대지 아니한 돌이 나와서 신상의 쇠와 진흙의 발을 쳐서 부서뜨리매 [35] 그 때에 쇠와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서져 여름 타작 마당의 겨 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나이다 [36] 그 꿈이 이러한즉 내가 이제 그 해석을 왕 앞에 아뢰리이다” 이렇게 말하며 다니엘은 복잡하고 난해한 꿈을 해몽하자 느부갓네살은 이렇게 합니다. 46절입니다. “이에 느부갓네살 왕이 엎드려 다니엘에게 절하고 명하여 예물과 향품을 그에게 주게 하니라” 48절 이하도 보십시오. “[48] 왕이 이에 다니엘을 높여 귀한 선물을 많이 주며 그를 세워 바벨론 온 지방을 다스리게 하며 또 바벨론 모든 지혜자의 어른을 삼았으며 [49] 왕이 또 다니엘의 요구대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세워 바벨론 지방의 일을 다스리게 하였고 다니엘은 왕궁에 있었더라” 다니엘도 벼슬을 얻게 되고, 그의 세 친구도 지방관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또 사건이 터집니다. 느부갓네살이 금 신상을 세우고, 거기에 절하지 않으면 맹렬히 타는 풀부불에 던져질 계략을 세웁니다. 거기에 누가 걸려듭니까? 3장 12절 이하입니다. “[12] 이제 몇 유다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왕이 세워 바벨론 지방을 다스리게 하신 자이거늘 왕이여 이 사람들이 왕을 높이지 아니하며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아니하며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나이다 [13] 느부갓네살 왕이 노하고 분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끌어오라 말하매 드디어 그 사람들을 왕의 앞으로 끌어온지라 [14] 느부갓네살이 그들에게 물어 이르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한다 하니 사실이냐 [15] 이제라도 너희가 준비하였다가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 하니 [16]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17]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18]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결국 느부갓네살 왕이 풀무불을 평소보다 칠 배나 더 뜨겁게 하라고 명한 후에 세 사람을 결박해 거기에 던집니다. 그 불이 얼마나 뜨거웠던지 그 일을 집행하던 사람이 타죽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던져진 사람들은 타죽지 않고 분명 세 사람을 던졌는데 한 사람이 더 나타나 그 네 사람이 산책하는 듯 보였다고 합니다. 마지막 네 번째 사람은 신의 아들 같았다고 합니다. 3장 26절 이하입니다. “[26] 느부갓네살이 맹렬히 타는 풀무불 아귀 가까이 가서 불러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나와서 이리로 오라 하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에서 나온지라 [27] 총독과 지사와 행정관과 왕의 모사들이 모여 이 사람들을 본즉 불이 능히 그들의 몸을 해하지 못하였고 머리털도 그을리지 아니하였고 겉옷 빛도 변하지 아니하였고 불 탄 냄새도 없었더라 [28] 느부갓네살이 말하여 이르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가 그의 천사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들의 몸을 바쳐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 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 [29] 그러므로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니 각 백성과 각 나라와 각 언어를 말하는 자가 모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경솔히 말하거든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을 거름터로 삼을지니 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 하더라 [30] 왕이 드디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바벨론 지방에서 더욱 높이니라”
세월이 더 흘러 느부갓네살이 죽고 그 아들 벨사살이 왕이 되었습니다. 그때는 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왕이 천 명의 귀족을 초청해 연회를 베풀었는데 그 연회장 맞은편 회벽에 거대한 사람 손이 나타나 글씨를 씁니다. 당시 벨사살 왕의 얼굴이 변하고, 번민하여 무릎이 부딪칠 정도로 두려움에 사로잡혔다고 합니다. 그때도 그 난해한 현상을 해석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글을 그 누구도 해석하지 못합니다. 그때도 다니엘이 왕에게 불려나가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고 읽습니다. 하나님이 왕의 나라를 세어서 이제 그 시대를 끝나게 했다고 해석합니다. 하나님이 왕을 저울에 달아보니 함량 미달이어서 이제 이 나라를 망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날 밤 페르시아(바사)의 하수구로 잠입한 저격수에게 죽습니다. 그러고 나서 다리오가 왕이 되는데 오늘 본문이 다리오 왕 시대 때의 일입니다.
다리오 역시도 다니엘을 신뢰하고 총애했습니다. 다니엘은 당시 포로된 지 70년이 넘었습니다. 그러니 다니엘의 나이 80이 넘었습니다. 본문 1절 이하입니다. “[1] 다리오가 자기의 뜻대로 고관 백이십 명을 세워 전국을 통치하게 하고 [2] 또 그들 위에 총리 셋을 두었으니 다니엘이 그 중의 하나이라 이는 고관들로 총리에게 자기의 직무를 보고하게 하여 왕에게 손해가 없게 하려 함이었더라 [3]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고관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한지라 [4] 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고자 하였으나 아무 근거, 아무 허물도 찾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5절 이하를 보면 다른 총리와 고관들이 음모를 꾸밉니다.
그 음모는 오직 한 사람 다니엘을 잡기 위한 것임을 알지 못했던 다리오는 그 조서에 서명합니다. 그럼에도 그 모든 전모를 알면서도 다니엘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10절입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다니엘을 시기해서 그를 잡으려고 했던 사람들이 원했던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다니엘의 신앙생활을 노리고 왕까지 끌어들인 겁니다. 다니엘은 자기를 잡으려는 이 모든 것을 알고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던 대로 기도했습니다.
그는 우선 감사했다고 합니다. 그는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하되 감사했다는 겁니다. 다니엘 기도의 특징은 감사입니다. 이때만 감사한 것이 아니라 다니엘은 늘 감사했습니다. 그는 16세의 어린 나이로 바빌로니아의 포로로 잡혀왔습니다. 오직 고국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며 70년을 살았습니다. 우리 같으면 감사의 기도가 나오겠습니까? 원망, 불평, 비관, 체념, 한풀이가 더 많지 않았을까요? 다니엘은 그렇지 않고 감사했습니다. 그것도 하루에 세 번씩이나 감사했습니다. 전에 해오던 대로 말입니다. 다니엘에게는 기도와 감사가 같은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이 하루 세 번씩 기도했다고 하지 않고 감사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는 감사했을지라도 이 상황에서는 감사기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잡히면 사자굴에 던져질 판입니다. 이 얼마나 대단하고 위대합니까? 원래 기도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포로로 잡혀가도 감사, 70년간 고향에 못 돌아가도 감사, 사자굴에 던져진다 해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의 진수입니다. 다니엘은 실제 이렇게 했습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요?
그것이 내게 어떤 위기, 날벼락이라도 결국 하나님이 그 모든 것을 내게 복이 되게 하신다, 은혜가 되게 하신다는 하나님에 대한 태산 같은 신뢰가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지금은 더 할 수 없는 불행이요 저주 같지만, 결국 하나님은 이 모든 사태를 반전시켜서 내게 복이 되게 하신다는 믿음, 그 믿음으로 다니엘은 사자굴 앞에서도 감사의 기도를 계속 했던 것입니다. 다니엘이야 말로 진정한 기도의 모범이고, 위대한 기도의 전설입니다.
그는 늘 장소와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했습니다. 10절을 다시 보십시오.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13절도 보십시오. “그들이 왕 앞에서 말하여 이르되 왕이여 사로잡혀 온 유다 자손 중에 다니엘이 왕과 왕의 도장이 찍힌 금령을 존중하지 아니하고 하루 세 번씩 기도하나이다 하니” 고국 예루살렘에 있었다면 당연히 성전에 올라가 기도했겠지만, 만리타국, 지금으로 말하면 예루살렘에서 1,400km가 떨어진 이라크니까 기도 때가 되면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했다는 겁니다. 몇 년간 기도했습니까? 70년간입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기도할 수 있고, 또한 기도해야 합니다. 시간과 장소를 정해놓고 어떤 경우에도 어기지 않고 지키며 기도하는 것, 대단히 필요하고도 소중하고 유익합니다. 이것이 곧 기도생활의 생활화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정해진 시간과 장소를 지키려는 내 마음과 노력 그 자체가 이미 하나님을 향한 열심입니다. 주님에 대한 내 믿음과 사랑과 열정과 결단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별난 사람들의 별난 신앙생활이 아니라, 주님이 귀하게 보시는 성도의 아름다운 기도생활입니다. 기도의 대가였던 다니엘의 기도도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계획적이고 일정하고 한결같고 생활화된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런 기도생활, 신앙생활을 바라십니다. 우리의 기도생활, 신앙생활이 얼마나 불안정하고 두서없고 충동적이고 산만합니까? 내일부터 한 달간 특별새벽기도회로 모입니다. 한 달만이라도 최선을 다해 참여하셔서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우리도 얼마든지 그런 기도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주님께 보여드립시다. 다니엘은 늘 그렇게 신앙생활했습니다.
다니엘은 외부조건, 여건,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다니엘은 그를 시기하는 사람들의 계략을 알았지만 주저하거나 당황하지 않고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침착하게 평소하던 대로 기도했습니다. 11절입니다. “그 무리들이 모여서 다니엘이 자기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간구하는 것을 발견하고” 13절도 다시 보십시오. “ 그들이 왕 앞에서 말하여 이르되 왕이여 사로잡혀 온 유다 자손 중에 다니엘이 왕과 왕의 도장이 찍힌 금령을 존중하지 아니하고 하루 세 번씩 기도하나이다 하니” 어쩌면 이럴 수가 있을까요? 하나님께 기도하다 붙잡히면 가장 끔찍한 방식으로 죽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도 어쩌면 이렇게 초연할 수 있을까요? 참수당하면 가족이 시신을 수습이라도 할 수 있지만, 굶주린 사자 밥이 되면 수습조차 불가능합니다. 그럼에도 그 무엇도, 그 누구도 다니엘의 기도를 방해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작은 건수만 있으면 그걸 핑계로 기도를 멈춥니다. 다니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16절입니다. “이에 왕이 명령하매 다니엘을 끌어다가 사자 굴에 던져 넣는지라 왕이 다니엘에게 이르되 네가 항상 섬기는 너의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 하니라” 왕이 최후의 순간에 사자굴에 던져지는 다니엘을 위로합니다. 19절 이하입니다. “[19] 이튿날에 왕이 새벽에 일어나 급히 사자 굴로 가서 [20] 다니엘이 든 굴에 가까이 이르러서 슬피 소리 질러 다니엘에게 묻되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들에게서 능히 너를 구원하셨느냐 하니라 [21] 다니엘이 왕에게 아뢰되 왕이여 원하건대 왕은 만수무강 하옵소서 [22]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의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하지 못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에게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 왕이 즉각 다니엘을 굴에서 올리게 하고, 다니엘에게 음모를 꾸몄던 자들을 잡아들이고 그들의 처자들까지 사자굴에 던집니다. 그들이 굴 바닥에 닿기 전에 사자들이 그들을 삼킵니다.
다니엘처럼 신앙생활하면 하나님이 내 앞의 모든 위기와 아픔을 해결하고 수습하고 평정하십니다. 반드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가장 아름다운 결말을 보게 하십니다. 우리는 사자굴에 던져지면, 우리는 풀무불에 던져지면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십니다.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게 하시고, 사자의 입을 봉하십니다. 오늘의 주인공 다니엘의 믿음과 기도생활이 우리에게 도전이 되고 귀감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위기 가운데 드러난 빛나는 믿음
단 6:1-10 / 전병욱 목사님
위기 가운데 드러난 빛나는 믿음
예수님을 믿으며 복음의 말씀대로 순종하면 강력해 질 수 있다.-프로근성과 헌신이 필요
대표적 인물 :다니엘
1. 다니엘 주변의 인물들이 2가지 음모를 꾸민다.(다니엘의 위기)
1) 다니엘의 뒷조사를 하였다.(개인적인 삶의 뒷조사(4절)
- 우리도 이런 평가를 받고 있는가?(남을 뒷조사하고 있지나 않고 혹은 뒷조사를 당해 도 떴떳한가
2)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법률을 개정했다.(7절) --무원칙한 기준
- 세상 사람들은 도덕적인 공격, 조직을 이용한 공격을 한다.
- 세상에서 명확한 한가지 기준을 가지고 사는 인생이 되라.(유태인:탈무드) 기준이 없
으면 가치관의 혼란을 초래한다.
2. 다니엘이 위기를 극복했던 믿음의 특징
1) 성령의 사람으로서의 믿음.
- 그는 나이 80이었지만 깨끗한 모습을 잃지 않고 있었다.
- 성령은 매일 사람을 refresh하게(신선하고 새롭게) 만든다. 다니엘은 refresh했고 민첩 하였다. 민첩하다는 것은 아주 놀라우신 하나님의 영을 소유했다는 뜻이다. 즉 성령의 새 바람이 있는 사람이었다.
-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같이 발육하리로다 여호와의 집 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궁정에서 흥왕하리로다 늙어도 결실하며 진액이 풍 족하고 빛이 청청하여 여호와의 정직하심을 나타내리로다 여호와는 나의 바위시 라 그에게는 불의가 없도다(시 92:12-15)
(기도:주여! 항상 성령으로 인하여 새롭게 하소서)
2) 기도의 사람으로서의 믿음
- 성령 충만함을 유지하는 방법은 기도밖에 없다.
- 다니엘은 평상시에 기도하던 습관이 있던 사람이었다.
- 지금 기도할 수 있을때 하라. 나중에 하겠다는 생각은 버리라 그때는 절대로 되지 않는다.(평상시에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 위기때에 기도 할 수 있다)
- 체질이 되도록 기도하라. 기도는 체질개선과 동등한 뜻이다.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다니엘 6:16)
- 기도가 습관이 되도록 하라.
(기도의 십계명)
①기도의 시간을 미리 정할것.(특히 새벽기도)
②정해진 시간에 환경과 기분에 개의치 말고 기도하라.
③기도의 방해가 되지 않는 은밀한 장소를 찾으라.
④짧은 기도라도 기도의 생활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⑤기도전에 말씀을 듣거나 묵상하라ㅡ말씀의 근거한 기도를 하라.
⑥중보기도에 힘쓰라 - 기도를 강하게, 폭넓게 하는 능력이 있다.
⑦소리내어 기도하라 - 집중해서 기도하라. 잡념이 사라진다.
⑧기도하면 받은줄로 믿으라. -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 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4)
⑨기도수첩을 마련하여 기도하라. 새벽기도때 간구한 기도들을 기도수첩에 기록하라. 그리고 체크해 보라.
⑩하나님의 뜻에 맞게 기도하라.
십계명을 충족시키는 것이 새벽기도이므로 새벽기도에 힘써라.
(기도: 다니엘과 같은 기도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3) 순결한 도덕적인 사람이었다.
- 탁월한 도덕성이 없으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될 수 없다.
- 우리의 삶을 보고 사람들이 변화될 수 있는 삶을 살라.
The American Leadership Tradition : Moral Vision from Washington to Clinton -- Marvin Olasky; Hardcover $17.50 + 배달료(www.amazon.com)이라는 책은 빌 클린 턴의 비도덕성에 대해 통탄한다. 16명의 대통령 개인의 신앙과 정책 결정과의 관계를 분석한 결과 한 부분에서 성실한 자는 나머지 부분에서도 성실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 예수믿는 사람들이 사회에서 영향력을 미칠 수 있기 위해서는 일반 세상사람보다는 도덕적으로 40%이상 차이가 나야 한다. (도덕적 우월성,정직성)
-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 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하나님 앞에서 쓰임받는 그릇이 되라.(딤후 2:20)
쓰임받는 그릇의 특징:깨끗함 (금그릇이라도 오물이 묻어 있는 그릇은 쓸모없음)
- 깨끗하게 죽는 법을 배우라.
당당하게 싸우라. 주님이 건져주지 않고 사자굴까지도 들어가게 하는 경우가 있으면 사자굴에 들어가라.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은 구해주신다.
(기도:주여! 깨끗하게 죽는 법을 알게 하옵소서)
결론:다니엘과 같이 위기,음모,시기와 질투 가운데 살더라도 다니엘이 성령의사람, 기도의사람,순결한사람으로 이겨낸 것처럼 성령의 새바람이 불어야 하고, 기도의 습관과 체질을변화시켜 기도하는 사람이 되고, 변별력 있는 도덕적 사람이 되어 세상을 충격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변화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