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7일 오늘의 역사
2021년 서울(오세훈) 부산(박형준) 보궐선거에 야당후보 압승
2014년 28사단 윤 모 일병 선임병 구타 등으로 사망
2012년 거침없던 전설의 리포터 마이크 월리스 별세
미국 CBS방송의 대표 시사프로그램인 ‘60분(60 Minutes)’의 전설적인 진행자 마이크 월리스(93)가 코네티컷주 뉴헤이븐 자택에서 별세했다.
월리스는 미국 TV 시사 프로그램의 대명사 격인 ‘60분’의 터줏대감으로, 1968년 첫 방송 때부터 2006년 은퇴까지 38년간 이 프로그램을 지켜오며 도발적이고 독특한 인터뷰 기술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미시간대학에서 방송학을 전공한 뒤 1940년부터 라디오 기자 생활을 시작한 월리스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뒤 1951년 CBS에 합류했다. 반세기가 넘는 언론인 생활 동안 그와 마주앉은 인물은 존 F 케네디를 비롯한 미국 전직 대통령 7명, 덩샤오핑(鄧小平)·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 이란의 아야톨라 호메이니,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 파나마의 마누엘 노리에가 등 수천 명에 달한다.
그는 1980년 이란 혁명 직후 호메이니의 면전에서 “당신을 미치광이 성직자라고 부르는 이들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고, 2000년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에게는 “당신은 독재자가 아니냐”고 했다. 로스앤젤레스의 최대 범죄조직을 이끌던 미키 코헨에게는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느냐”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월리스는 2006년 은퇴 뒤에도 종종 ‘60분’에 출연해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 마흐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 등을 인터뷰했으며, 2008년 1월 미국 프로야구(MLB) 투수인 로저 클레멘스와의 인터뷰를 끝으로 방송계를 사실상 떠났다.
그는 에미상을 21차례 수상했고, 듀폰-콜럼비아 언론상과 ‘피바디상(Peabody Awards)’을 각각 5차례 받았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박연차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문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9년 4월 7일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정관계 로비의혹에 자신의 친인척과 측근들이 연루된 데 대해 국민에게 사과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에 대국민 사과문을 올렸다.
노 전 대통령은 '사과문'에서 정 전 비서관이 받았다는 10억원과 관련, "저의 집에서 부탁하고 그 돈을 받아서 사용한 것"이라며 "미처 갚지 못한 빚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측에 따르면 '저의 집'이란 표현은 노 전 대통령의 부인인 권양숙 여사를 지칭한다.
즉 권양숙 여사가 정 전 비서관에게 "빚을 갚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고 요청했으며, 정 전 비서관이 박연차 회장에게 받은 10억원을 권 여사에게 건넸다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이 이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부부 사이인 권 여사와는 법률적으로는 독립적인 관계이지만, 사실상 '특수한 관계'로 해석할 수 있고, 노 전 대통령이 사전에 알았다면 부하인 정씨를 통해 '빚 갚을 돈'을 받아오라고 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직무는 특정한 이권뿐만 아니라 국정 전반을 아우르는 것이기 때문에, 이 경우 구체적인 청탁이 없더라도 뇌물수수 혐의를 폭넓게 적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 법조계의 일반적인 의견이다. 그렇게 되면 권 여사나 정씨는 뇌물죄의 공범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은 7일 브리핑에서 "(노 전 대통령 소환 문제는) 좀 더 봐야 한다"면서 신중한 태도를 보였지만, '시기 결정만 남았다'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검찰은 일단 이날 오전 체포한 정 전 비서관 등에 대한 조사를 통해 입증 자료를 충분히 확보한 뒤, 우선 권양숙 여사를 소환조사하고, 노 전 대통령 본인을 직접 조사하는 단계를 밟을 것으로 관측된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에게 조카사위인 연철호(36)씨가 박연차 회장에게 받았다는 '500만달러'의 실소유주가 노 전 대통령이 아닌지도 확인할 예정이다.
권양숙 여사가 정 전 비서관을 통해 박연차 회장에게 받았다는 10억원의 성격이 어떤 식으로 규정되느냐에 따라, 노 전 대통령이 퇴임 직후인 지난해 3월 박 회장에게 차용증을 쓰고 빌렸다는 15억원의 성격 역시 '단순한 채권·채무'로 끝나지 않을 공산이 크다.
2004년 `의사-간호사 상호 존중 선언식`,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개최
대한의사협회(회장 김재정)와 대한간호협회(회장 김의숙)는 7일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의사-간호사 상호존중 선언식’을 가졌다.
병원 내에서 의사와 간호사는 ‘일심동체’로 환자를 돌보아야 하지만, 실제 수술 등을 하다 보면 갈등과 함께 폭행사건까지 발생하고 있는 것이 현실. 이에 따라 두 단체는 ‘의사·간호사 협력위원회’를 만들어 의료현장에서 발생하는 의사와 간호사의 갈등을 적극 중재하기로 했다.
계기가 된 것은 작년 12월 경남의 모 병원 외과 중환자실에서 전공의가 간호사를 폭행하면서이다. 전공의는 “환자 생명이 위급한데 제대로 된 인공호흡기를 빌려주지 않았다”며 담당 간호사와 다투는 와중에 목을 졸랐다는 것.
이후 문제의 전공의가 병원측에서 감봉 1개월 처분을 받자, 수간호사 출신인 병원 노조위원장이 “솜방망이 징계”라며 항의, 일부러 전공의의 뺨을 때린 뒤 자신의 징계를 자초하는 사건으로 확대됐다. 다시 전공의들이 항의하는 사태로 이어지면서 의사협회가 나서게 된 것이다.
2004년 일본 후쿠오카법원, 고이즈미총리 야스쿠니참배 첫 위헌 판결
2004년 4월 7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 행위는 정교분리를 규정한 헌법 위반이라는 일본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후쿠오카(福岡) 지방법원은 이날, 재일 한국인과 규슈(九州)·야마구치(山口) 시민 등 211명이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인해 정신적인 피해를 받았다’며 국가와 고이즈미 총리를 상대로 낸 위자료 청구소송에서 이같이 판시했다. 일본 법원이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리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가메가와 기요나가 재판장은 판결문에서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종교법인인 야스쿠니에서 ‘내각총리대신’ 자격으로 행한 종교적 활동”이라며 “국가의 종교적 활동을 금지한 헌법 20조3항을 위반한 것”이라고 판시했다.
이번 판결에 대해 고이즈미 총리는 “개인의 신념에 따른 참배가 왜 헌법위반인지 모르겠다”며 향후 계속 참배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당시 후쿠오카 외 도쿄 등 6개 법원에서 동일한 소송이 진행되고 있어 향후 판결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됐다.
2000년 강원도 고성-강릉-삼척 등 영동지방 큰 불
산불은 동해시와 경북 울진까지 확산, 동해시 시민들 한때 대피, 울진 원전 2호기 가동 중단, 4월 15일 강원도 일대 비 내려 꺼질 때까지 9일간 계속된 게릴라성 산불 사망 2명 부상 16명 산림 1만4272ha 불 탐
2000년 고 최석채 선생, `언론자유영웅(Press Freedom Heroes)` 선정
1991년 서거한 대쪽 논객 고 최석채 선생이 2000년 4월 7일 미국 보스턴 훼뉴얼 홀에서 열린 IPI(국제언론인협회)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언론자유영웅(Press Freedom Heroes)으로 선정됐다. IPI가 20세기 언론자유수호에 기여한 전세계 언론인 가운데 각국의 추천을 받은 후보자 중 50명을 언론자유영웅으로 뽑아 발표한 것. 이 중엔 미국 워싱턴포스트 회장 캐서린 그레이엄 여사, 영국 더 타임스 전편집인 해럴드 에반스, 독일 슈피겔지 발행인 루돌프 아우그쉬타인 등도 함께 선정됐다.
IPI는 최선생이 1960년 조선일보 논설위원 시절 4.19혁명에 불을 지핀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사설 `호헌 구국운동 이외의 다른 방도는 없다`와 1955년 대구매일신문 주필 시절 쓴 사설 `학도를 도구로 이용말라` 등을 언론자유수호의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1999년 한나라당 서상목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
‘국세청을 통한 대선자금 모금 사건’에 연루된 한나라당 서상목 의원의 체포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됐다.
국회는 7일 오후 본회의를 열어 재적의원 296명 중 국민회의(104명), 자민련(52명) 등 공동여당 156명과 한나라당 133명, 무소속 의원 3명이 참석한 가운데, 서 의원 체포동의안에 대한 표결을 실시, ▲찬성 136 ▲반대 145 ▲기권 7 ▲무효 4표로 부결시켰다.
서 의원 체포동의안의 가결 정족수는 출석의원 과반수인 147명이었다. 지금까지 51년의 헌정사상 여당이 주도한 현역 의원 체포-구속동의안이 부결된 것은 제헌의회 때의 조봉암 의원을 비롯, 3-4대 국회에서 1건씩, 전부 3건 뿐이었다.
이번 사태와 관련, 국민회의 한화갑 총무는 표결 직후 열린의원총회에서 “책임감을 통감한다”면서 원내총무직 사임의사를 밝혔고,조세형 총재 권한대행도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해, 국민회의 내부가 인책 소용돌이에 휘말리거나 국민회의 지도부 대개편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예상된다. 자민련 구천서 총무도 사의를 표명했다.
한나라당은 이와 관련, 긴급성명을 내고 “우리 국회에 의회 정의와 양심이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한 역사적 쾌거”라면서, “김대중 정권은 이제라도 도덕성을 회복하고, 민심의 소재를 직시하라”고 말했다. 서상목 의원은 “오늘 표결 결과는 국회의 승리”라면서, “정파를 떠나 현명한 판단을 내려준 의원들께 감사한다”고 말했다.
국회는 또 이날 서 의원 체포동의안에 이어 박상천 법무장관 해임 건의안과 김태정 검찰총장 탄핵소추안도 표결처리 끝에 부결시켰다.
1998년 규제개혁위원회 설치
1997년 한보 청문회
한보특위가 7일 구치소에서 한보 총회장을 시작으로 한달 가까운 청문회 무대의 막을 올렸다. 정 총회장을 상대로 한 이날 청문회에서 여야 의원들은 세간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리스트’와 한보의 지난 92년 대선자금 지원설, 각종 특혜대출 및 정·관계 커넥션 등 한보 비리의 ‘몸통’ 캐기에 주력했다. 여야는 청문회에 앞서 구수회의를 갖고 ‘공략’ 대책을 최종 점검하는 등 긴박한 움직임을 보였다.
청문회는 당초 9시 정각에 열릴 예정이었으나 신한국당이 국민회의 김원길 의원의 자격문제를 제기하는 바람에 지체돼 20분 늦게 시작됐다.
한보 대출비리사건에 대한 국정조사특위의 구치소 청문회가 시작된 7일 시민들의 눈과 귀는 청문회를 생중계하는 TV와 라디오에 쏠렸다.
이날 역과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등에 설치된 TV 앞에는수십여명씩의 시민들이 모여들었으며 각 회사 사무실에도 직장인들이 잠시 일손을 놓고 삼삼오오 모여앉아 지난 88년의 5공(共) 청문회에 이어 9년 만에 생중계된 이번 청문회를 지켜봤다.
시민들은 그러나 이날 증인으로 나선 한보그룹 정태수(鄭泰守) 총회장이 “모른다”거나 “기억나지 않는다”,“현재 재판중에 있으므로 답변을 거부한다”는 등의 회피성 증언으로 일관하자 실망과 분노를 나타냈다. 이들은 또 여야 특위위원들이 진상규명을 위한 ‘송곳’ 질문보다 자기 당 지도부의 연루설을 부인하는 장광설을 늘어놓으면서 의원들끼리 티격태격하는 모습마저 보이자 ‘청문회 무용론(無用論)’까지 내놓았다.
1996년 박찬호 메이저이그 첫승
코리아 특급 박찬호가 1996년 4월7일 메이저리그에서 첫승을 기록했다. 미국으로 간지 3년째 맞는 박찬호는 이날 시카고 리글리구장에서 벌어진 시카고 컵스와의 원정경기에서 2회 구원등판 4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내면서 승리투수가 되었다
1990년 노르웨이 남쪽 북해상서 미국 카페리여객선 스칸디나비아 스타 호 화재로 침몰 사망 75명 실종 70명
1990년 미국의 흑인 목사.민권운동가 애버내시 사망
1982년 영국 포클랜드 주변을 전쟁구역으로 선포
1982년 미국 베일러의대, 인간유전자 복제성공 발표
1980년 미국 이란과 단교 선언
1980년 경찰, `수사권 독립`으로 검찰과 마찰
1979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중국 가맹을 승인
1976년 독립운동가 오광심 별세
1976년 등소평 `천안문 사태`의 배후자로 지목돼 세번째 실각
1976년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수상에 화국봉 임명
1973년 핀란드, 남북한 동시승인 발표
1971년 서울 - 인천, 서울 - 수원 간 전철 착공.
1969년 시인 신동엽 사망
신동엽 시인은 1930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나 전주사범과 단국대 사학과를 나왔으며 195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장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 가 당선됨으로써 문단에 데뷔했다.
그는 농촌의 서정이 짙게 밴 민요적 분위기로 민중과 민족의 삶을 이야기해 고 김수영 시인과 함께 1960년대 참여문학의 대표주자로 꼽힌다. ‘대지의 맥박’ 이 느껴진다는 평을 듣는 그의 시세계는 1980년대에 들어와 민족-민중문학의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우리 문학의 확고한 기반의 하나로 재평가 받았다.
특히 동학농민운동을 주제로 한 서사시 ‘금강’ 은 강렬한 민중의 저항의식을 시화한 것으로 그의 대표작이다. ‘금강’ 은 한민족 근대사의 가장 장엄하고 처절한 장면들을 때로는 유장하게 때로는 급박하게 노래하고 있다. 그는 시론과 시극운동에도 참여해 ‘시인정신론’ 등의 시론을 출간했으며, 시극 ‘그 입술에 파인 그늘’ 이 시극동인회에 의해 상연되기도 했다.
1965년 미국, 위험천만 파워보트 경주
1961년 미국 유엔(UN) 감시하 총선 통한원칙을 재확인
1961년 유엔(UN) 총회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비난의안 채택
1957년 한국신문편집인협회 발족, 한국신문윤리강령 선포
1957년 4월 7일 한국신문편집인협회(편협)가 발족되고, 한국신문윤리강령이 선포됐다. 이날은 우리나라 최초 민간신문인 ‘독립신문’ 창간일(1896년)이자 제1회 맞는 ‘신문의 날’(1957년)었기에 우리나라 언론인들에게 그 의미가 더했다.
이날의 단행은 편협 구성과 윤리강령 제정은 이승만 정권이 출판물 단속법과 국가보호 임시조치법 등으로 언론의 목을 조여왔고, 정부와 자유당도 언론이 무책임한 보도를 일삼는다며 비난의 강도를 높이자 권력에 언론탄압 구실을 주지 않기 위해 언론계 스스로 책임과 권위를 지키는 제도를 구성할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비롯됐다.
윤리강령은 5ㆍ16 군사정변 후인 1961년 7월 30일 수정ㆍ보완되었고 이 해 8월 3일 ‘한국일간신문발행인협회’와 ‘한국통신협회’에서, 그리고 1963년 3월 5일 ‘한국신문인협회’에서도 채택해 명실공히 우리나라 언론헌장으로 자리잡았다. 자유, 책임, 보도와 논평의 태도, 독립성, 타인의 명예, 품격 등 여섯 항으로 되어있다
1957년 캄보디아 시아누크 내각 성립
1957년 제1회 신문의 날
1957년 4월 7일, ‘신문의 날’을 기해 한국신문편집인협회가 창립돼, 처음으로 신문윤리강령이 제정됐다.
1957년 4월 7일 한국신문편집인협회(편협)가 발족되고, 한국신문윤리강령이 선포됐다. 이날은 우리나라 최초 민간신문인 ‘독립신문’ 창간일(1896년)이자 제1회 맞는 ‘신문의 날’(1957년)었기에 우리나라 언론인들에게 그 의미가 더했다.
이날의 단행은 편협 구성과 윤리강령 제정은 이승만 정권이 출판물 단속법과 국가보호 임시조치법 등으로 언론의 목을 조여왔고, 정부와 자유당도 언론이 무책임한 보도를 일삼는다며 비난의 강도를 높이자 권력에 언론탄압 구실을 주지 않기 위해 언론계 스스로 책임과 권위를 지키는 제도를 구성할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비롯됐다.
윤리강령은 5ㆍ16 군사정변 후인 1961년 7월 30일 수정ㆍ보완되었고 이 해 8월 3일 ‘한국일간신문발행인협회’와 ‘한국통신협회’에서, 그리고 1963년 3월 5일 ‘한국신문인협회’에서도 채택해 명실공히 우리나라 언론헌장으로 자리잡았다. 자유, 책임, 보도와 논평의 태도, 독립성, 타인의 명예, 품격 등 여섯 항으로 되어있다.
1956년 스페인 프랑코 정부, 모로코 독립 승인
1956년 이집트-이스라엘 가자지구서 교전
1953년 하마슐드 유엔 사무총장에 피선
1953년 4월 7일 다그 하마슐드가 노르웨이의 트리그베 리 유엔 사무총장의 뒤를 이어 임기5년의 새 유엔 사무총장으로 취임했다. 이날 하마슐드는 "세계평화와 진보를 위하여 헌신적으로 유엔기구를 지도하겠다"고 공약했다.
하마슐드의 사무총장 선출은 소련과 서방의 교착 상태를 해소하고 한국전쟁의 휴전협상 이후 최초로 양측이 서로 합의한 중요한 움직임이었다.
유엔 사무총장에 취임한 후 하마슐드는 중동에서 이스라엘과 아랍국가 사이에 일어나는 싸움과 위협에 관심을 가졌다. 1956년에 일어난 수에즈 운하 위기를 해결했고, 1958년 레바논-요르단 위기에서도 활약했다. 또한 1960년 6월 30일 벨기에령 콩고가 `콩고 공화국`으로 독립하자 이 지역에서 일어나기 시작한 내전을 종식시키기 위해 UN군을 파견했다. 1961년 모이즈 촘베 대통령에게 평화사절로 가던 중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했다. 사망 후 노벨평화상이 수여됐다
1949년 뮤지컬 `남태평양` 초연
1949년 4월7일, 리처드 로저스가 작곡하고 오스카 해머스타인2세가 노랫말과 대본을 쓴 뮤지컬 ‘남태평양’이 뉴욕 브로드웨이의 마제스틱 극장에서 처음 공연됐다. 남태평양의 작은 섬을 무대로 프랑스인 농장주와 미국인 종군 간호사의 사랑을 그린 ‘남태평양’은 1925회나 공연될 정도로 인기를 끌어 이듬해 토니상 뮤지컬 부문에서 9개나 되는 상을 휩쓸었다.
로저스와 해머스타인은 미국 뮤지컬의 기념비적인 작품 ‘오클라호마’(1943년) 때 처음 호흡을 맞춰 ‘왕과 나’(1951년) ‘사운드 오브 뮤직’(1959년) 등과 같은 명작을 잇따라 내놓은 뮤지컬의 명콤비. 오락수준에 머물렀던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예술의 반열에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원작 ‘남태평양 이야기’(1947년)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제임스 미치너는 2차대전과 한국전에도 참전한 군인출신의 작가로, 1953년 라이프지(誌)에 연재된 북한군의 보급로 다리 폭파작전을 소재로 한 ‘도곡리 철교’도 그의 소설이다. 미치너는 1997년 90세로 사망할 때까지 스포츠에서 인종차별에 이르는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세계 각지를 여행하면서 이들 지역을 소재로 한 베스트셀러들을 수없이 내놓았다. 믹ㄱ 텍사스의 역사를 소설화한 '텍사스', 소설 자체를 테마로 삼은 '소설' 등 40여 편의 작품을 남겼다.
1948년 세계보건기구(WHO) 발족
세계인 모두가 가능한 한 최고의 건강 수준에 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국제연합의 전문기구로 세계보건기구가 제네바에 본부를 두고 발족하였다.
우리 나라는 1949년에 가입하였고, 1973년에는 이날이 제1회 보건의 날로 지정되었다
1973년부터는 나병의 날, 세계보건일, 국제간호원의 날, 세계 적십자의 날,
구강보건일, 귀의 날, 약의 날, 눈의 날 등을 통합하여 보건의 날로 정함
1947년 미국 자동차왕 헨리 포드 사망
포드 자동차의 창설자이며 ‘자동차 왕’으로 불리운 헨리 포드가 뇌출혈로 1947년 4월 7일 사망했다. 83세였다. 포드는 16세에 기계공이 되어 1903년, 40세 때 포드 자동차를 설립했다.
1908년에는 자동차의 대량생산을 가능케 한 ‘T카’를 개발, 당시 미국에서 대당 1천달러 이하의 차가 전무한 상황에서 대당 850달러라는 파격적인 가격으로 판매해 자동차의 대중화에 기여했다. ‘T카’는 가격이 저렴했을 뿐만 아니라 견고성과 실용성에서도 뛰어났다.
‘T카’의 또 다른 특징은 간결한 설계와 튼튼한 차체구조였다. 4기통 20마력이라는 당시로서는 힘 좋은 엔진을 탑재했다. 운전조작이 용이하고 설계가 표준화되어 있어 초보자라도 쉽게 고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었다. ‘T카’가 등장할 당시의 미국은 대기업 시대의 도래와 대량생산, 대량소비 시대로 진입하고 있었다. 포드는 ‘기업은 저가격과 고임금으로 사회에 봉사하는 기관’이라는 경영이념을 평생 유지했다.
1945년 일본전함 `대화` 오키나와 근해서 침몰
1939년 미국 영화감독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출생
1939년 이탈리아, 알바니아 점령
1896년 서재필, 최초의 민간신문 독립신문 창간
매년 4월 7일은 ‘신문의 날’이다. 우리나라 최초 민간신문 ‘독립신문’의 창간일인 1896년 4월 7일을 기념하기 위해 1957년 처음 제정돼 지금까지 기념해오고 있다. 한국신문편집인협회가 발족되고 ‘한국신문윤리강령’이 선포된 날도 1957년의 이날이므로 우리나라 언론인들에게는 뜻깊은 날이 아닐 수 없다.
독립신문 발간이 본격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1894년 서재필이 망명지 미국에서 돌아온 뒤부터였다. 서재필이 발의하고 온건개화파가 나서 신문발간을 서두르자 정부도 창간자금 4400원과 사옥, 심지어 생계비까지 지원하며 독려했다. 창간 후에도 지방관청과 각급 학교에 구독을 권장하며 부수확장을 도왔다. 창간호는 타블로이드 크기로 4면 발행이었다. 1∼3면은 순한글판, 4면은 영문판(The Independent)이었다. 초대 사장 겸 주필은 서재필이 맡았고 직원은 고원(告員) 또는 탐보원(探報員)으로 불린 기자 2∼3명을 포함, 10명 안팎이었다. 신문값은 동전 1푼, 즉 동전 한 닢으로 출발했다. 300부로 시작한 발행부수도 한때 3000부에 이를 정도로 성장했지만 재정자립을 이루지 못한 신문사에 파국은 예정된 운명이었다. 정부의 부패와 러시아의 이권침탈 비판에 앞장서자 정부가 사옥을 회수하고 친러 수구파가 탄압을 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1899년 12월 4일, 3년8개월 만에 종간됐다.
1884년 인류학자 말리노프스키 출생
1883년 초대 주한 미국 공사 푸트 인천항 입항(10일 서울 도착)
1864년(조선 고종 1) 동학 창시자 수운 최제우 대구에서 처형당함.
1836년(조선 헌종 2) 다산 정약용(1762~1836) 세상 떠남.(음력 2월 22일)
1823년 프랑스의 물리학자 샤를 사망. 샤를의 법칙 발견
1805년 베토벤 제3번 교향곡 ‘영웅’ 초연
1770년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윌리암 워즈워스 출생
1601년(조선 선조 34) 영의정 지낸 윤두수(1533~) 세상 떠남.
1590년(조선 선조 23) 영의정 지낸 노수신(1515~) 세상 떠남.
1506년 1622년 3월 12일 성인으로 추증된 근대 로마 카톨릭 교회의 선교자 하비에르 출생
1498년 프랑스의 왕(1480-98) 샤를 8세 사망
1465년(조선 세조 11) 원각사 준공.
1400년(조선 정종 2) 사병제도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