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통 -양해열 ('시와 사람' 09 가을호)
울 하납씨 三冬이 오면 놋쇠자라통 꼭 보듬고 龜旨歌 가락 읊조리다가 괭이잠이 들곤 했는뎁쇼 늙고 식어가는 몸이 부른 노래치곤 너무 틉틉하지 않습니껴
개잘량1) 깔고 앉아 등딱지 갑골문자에 가슴팍 문지르며 움퍽짐퍽했던 선대의 문벌 흠모도 했겠지만 몽톡한 자라모가지 비비대며,
거북이나 남생이나 자라나 영물이긴 매 한 가지, 대감지야 나오니라 안 나오면 구워먹는다 대감지야 나오니라,
소캐이불2) 뒤집어쓰고 밤새도록 어르지나 않았을깝쇼
남색짜리3)는커녕 깻잎나이 열셋에 위 아랫니 다 뽑히고 보쌈에 실려 별실로 첩실 든 언년이, 칠순 넘은 영감 물컹한 다리밋자루4) 움켜쥐고 허구헌날 끄윽끅 끄윽끅 노랑목이나 빼던 그 당골네집 딸년, 삼 년도 못 넘기고 아구창 앓아 흰등5)에 옥비녀 꽂고 야반 성황당길 돌아나간 등글게첩6),
그 부르터진 아꾸주둥이가 눈에 아른거려 매코롬한 눈물이나마 두어 방울 흘리지 않았을깝쇼
손가락에 장을 지지소 고깃근께나 축내던 그 냥반 육집 내 보아허니, 장닭 홰치는 새북녘엔 미지근헌 물주댕이에 아랫도리 살살 문질렀을 것이구먼 성냥꼬타리맨치로 빼꼼 타오르다 꺼뻑, 뒈지기도 했을 것이여,
아믄이라 처납씨도7) 고 짓만으론 족했을 리 웂제라 북바리 좆 죄대끼8) 잇몸 잉깔라지고 쎗바닥에 백태 끼도록 자라모감지를 오물딱오물딱, 언년이 허던 짓을 안 했을상 부르요,
요런 해괴망측하고 자발없는 이바구를 밤쥐가 들었는지 낮새가 들었는지 바리깡 기계독 오른 개버짐처럼 쏘삭쏘삭 휫대휫대 옹글옹글 신작로 타고 샛길 타고 부샄 부샄 타고 들병이9) 초병이 병주둥이 타고 웃돔 아랫돔 근동 원동에 쫘르르르 쭈르르르 뽀르르르 번졌는뎁쇼
허나, 진흙밭 속에서 금거북이가 걸어 나온다는 金龜沒泥10) 땅세에 반해 지리산 밑에 대궐집을 지었다는 울 하납씨, 큰 산 밑에 사는 죄로 한 번도 좋은 꼴은 못 봤다는 울 하납씨,
니미럴 쎼를 빼서 개 주둥이에 물려도 아까울 눔덜, 모가지 채 뽑아 똥장군통 마개로 쑤셔 박아도 시원찮을 눔덜, 니깟 농투산이11)들쯤이야,
근동의 왜자한12) 입소문을 근엄한 기침소리로 걸쭉한 몽둥이찜으로 삼칠 사륙 소작료 인상으로 니부 산부 장리빚 독촉으로 꽉 꽉 틀어막고, 이녘 자라통 일화를 남의 집 개망나니 짓거리로 딱, 잡아뗐는뎁쇼
아 湯婆13)의 계절도 흐르는 세월의 서늘한 피를 덥히진 못했습죠 하납씨 꺾인 손목이 뱃가죽 허연 江기러기처럼 하늘에 내걸리는 날이 오고야 말았습죠
헌데, 아 글쎄 이게 웬 조홥니껴 하납씨 애지중지 아끼던 그 놋쇠자라통이 감쪽같이 사라졌지 뭡니껴
쥐새끼가 알 낳을 일이로다 꼭 찾으럈다!
개기일식 앓는 얼굴로 집사 어른, 부랴사랴14) 머슴 다섯을 풀어 살강 밑에서 마구간 칫간 속까지 온 집안 다 뒤지고 옆집에 앞집 뒷집 온 동네 개고랑창까지 사흘밤낮 발칵 뒤집어엎었는데도 끝내 찾아내지 못 했는뎁쇼
허, 아흔아홉 칸 집 대청마루 밑에 백 칸 째 쪽방이 있는 줄 누가 알았겠습니껴 하룻날은 사내아이 꿈속으로 섬진강 자라 한 마리 눈알 끔벅끔벅 솟을대문 밀고 떠억허니 들어와 지리산 山손님이 며칠씩 묵어갔다는 그 방으로 쏙 들어가지 뭡니껴 내 넉장거리15)로 구운몽에 떨어졌다가 후다닥 일어나 거적 치우고 판자뚜껑 열고 엉금엉금 따라 들어가 보니 이게 웬일입니껴
棺 속 같은 흙방 한구석에 놋쇠자라통 하나가 푸른빛 뿜으며 엎드려 있었는뎁쇼
아이고 아부지 아부지 아부지
여수순천 사흘천하를 끝으로 노고단으로 피신한 아부지, 꽃 피는 화개동천 뒤로 두고 에망소총 메고 없지 아니한 긴 등길 不無長嶝稜線16)을 오른 아부지, 어떤 시인 말씀처럼 꽃 그려 새 울려놓고 세석평전으로 떠난 아부지, 젊은 아내 남산만한 배 한 번 어루만지고 웅석봉이라 달뜨기능선으로 숨어들어간 아부지, 얼굴도 생사도 모르는 여수 신월동 14연대 중대장 아이고 울 아부지, 이 백동백 지면 올랑가 저 피철쭉 피면 올랑가 꼰짓발17) 닳도록 눈썹 새도록 기다렸던 아부지 아부지 아부지,
어쩌다 산짐승처럼 어둠을 내려와 집으로 숨어드는 날이면 아흔아홉 칸 다 비워두고 백 칸 째 캄캄한 사랑방에서
무릎 꿇고 자라통에다 찔끔찔끔
오줌을 누었을 아부지 아부지 아부지,
그래서 밤마다 雲鳥樓 뒷산은 입삣죽 입삣죽 맹랑한 삣죽새로 울고 그 소리 화답으로 하납씨는 수리루리루 수리루 어 이이 이히이히 산꾀꼬리로 날이 새도록 손목 꺾어 울었을까요 그래 엄니 가시던 날, 애먼 목 다 꺾는지 잘린 창자 다 뱉어내는지 핏새가 피피피피 피꺽 피 토하듯 사흘 온종일 울었을깝쇼
아 지금은 怨鳥18)樓가 되었는지, 귀촉도 귀촉도 不如歸라 招魂鳥는 앞강 합수머리 좌우로 다녀 제 목 조르며 울고 고리갹 까옥 까옥 갹 까마귀도 피아골 얼음 깨고 와 부리 던지며 울고 수루루루 수루루루 호반새는 오미리 둠벙이 좁다고 뵤뵤 꽁지로 水深 잡아 일으키며 울고 쑥국 쑥쑥국 쑥국새는 활을 들고 뒷산 시누대밭에서 화살 꺾어 앵 찬 눈으로 울고 이리 가며 팽당그르르 저리 가며 행똥행똥 이리로 가며 히삐죽 저리로 가며 까불까불 잔말 많은 할미새도 외아들이 보고 싶어 온 마당 뒹굴며 두드리며 울고 때그르르르 내리며 꾸벅 때르르르 뚜드럭 오르며 꾸벅 찍꺽 때쩌구리도 이 가지 저 가지 고목을 돌며 처량하게 울고 있을깝쇼
그리허여 어떤 날은 가슴에 든 돌덩이도 울고, 나는나는나는 뒷산 금대 은대를 모두 쳐서 입 시퍼런 죽창을 깎으리라 했습죠 아 어떤 날은, 누런 자라가 흙방에서 굼실굼실 기어 나와 싯누런 오줌을 누었습죠 한 줄기로 꼿꼿이 선 오줌발이 이엉차, 하늘로 오를 때 누런 자라도 둥싯, 떠올랐습죠 천하명당이 따로 있더냐! 고함소리 들리는 곳 쳐다보면 서쪽 하늘이 뻥 뚫려 있었습죠
그 후로 저 하늘 저 빛깔 저 향기 아래, 물소리 죽인 섬진강19)과 나는 한숨 자지 않고 죽창만 깎아대고 있습죠 가끔 물가로 내려오는 청천 한 자락을 쿡쿡 찔러 대고 있습죠
1) 방석처럼 깔고 앉기 위하여 털이 붙어 있는 채로 제작한 개가죽.
2) 목화 솜 이불의 전라도 방언.
3) 머리를 쪽지고 남색치마를 입은 스물 안팎의 새색시.
4) 남자의 성기를 일컫는 말.
5) 棺 없이 흰 종이에 싼 송장.
6) 등 긁는 첩.
7) 천하 없이도.
8) 북바리 좆 죄다: 쥐면 놓을 줄 모르는, 융통성 없는,
9) 병에 든 술을 팔러 다니는 장사꾼.
10) 金環洛地, 五寶交聚와 함께 3대 명당(吉地)으로 불림. 구례 토지면 오미리 운조루의 주인은 자기 집 안채가 상대 금구몰니이고 중대 금환락지는 행랑채 밖 연못자리이며 하대 오보교취는 면 소재지에 있는 돌탑 자리라고 한다. 1776년 조선 영조 때 삼수부사를 지낸 유이주가 세운 집이 운조루인데 원래 99칸 대저택이었으나 지금은 60여 칸이 남아 있다. 실제 집을 지을 때 금구몰니의 터에서 돌거북이 발견되어 집안의 가보로 내려왔으나 1980년대에 도둑이 들어 도난당했다고 한다. 운조루의 택호는 ‘구름 속의 새처럼 숨어사는 집’이란 뜻으로 도연명의 ‘歸去來辭’에서 따왔다고 한다.
11) 농사꾼을 하대하여 부르는 말.
12)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다.
13) 자라통의 한자 표기.
14) 아주 급히 부산하게 서두르는 모양.
15) 네 활개를 펴고 뒤로 나자빠짐.
16) ‘없지 아니한 긴 등선 길’이란 뜻으로 지리산 화개 뒤로 오르는 능선 이름. 지리산 남부 3대 능선의 하나로 불림.
17) 꼿발. 뒤꿈치를 든 상태.
18) 판소리 적벽가에서 조조의 군사들이 떼죽음 당하여 怨鳥가 되어 타령을 하는 대목, 이른바 ‘적벽가 새타령’이라고도 함.
19) 섬진강은 물소리가 나지 않는 강이다, 하여, 潺水라고도 일컫는데 운조루 남쪽으로 솟은 백운산 자락의 오산 밑 문척면에 잔수마을도 있다. 오산 四聖庵에서 수행하던 원효대사가 산 아랫마을에 기거하는 잠 못 드는 어머니를 위해 법력으로 물소리를 거둬갔다는 일화도 전해져 내려온다. (이 오산이 지리산 자락 명당 터를 향하여 절을 하며 예를 구한다하여 ‘求禮’라는 지명을 붙였다는 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