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획 : 박 희 설
제작지휘 : 이 현 석
극 본 : 이 환 경
연 출 : 장 형 일
<야인시대 68회>
씬 애기보살의 집 외경 (밤)
씬 동 집 방안
여전히 모두들 표정이 두한에게로 와있다. 개코가 거듭 말한다.
개코 두한아.... 설마 친구가 잘못혔다고 만나자고 하는디... 거절하는 것은 아니겄제?
김무옥 개코, 지금부터 입 닫아야겄다.
신영균 계속 지껄이면 너는 맞는 수가 있다고 했어.
개코 두한아.... 진영이가 널 만나보겠다고 혔어. 진영이가......?
그때 '이 새끼' 소리와 함께 신영균이 막 마시던 물김치 사기 그릇을 들어 그대로 내리 찍었다. 그릇이 부서지면서 곧 피가 주르르 흐른다.
신영균 더 하면 다친다고 그랬지...? 이 새끼.... (또 걷어찬다) 너... 어느 쪽 식구야? 빨갱이야, 아니면 우리 우미관 식구야? 이 새끼 끌어내.
김영태 무슨 짓들이야? 오야붕 앞에서....?
신영균 하지만 형님....
개코 (피투성이가 되어서) 두한이..... 난 아무래도 괜찮어.... 우린 광교 다리 밑에서 함께 자란 친구들이여. 진영이가 잘못했다고 혀도 한번만 봐주더라고... 한번만 말이여.
문영철 개코를 끌어내라, 삼수.
삼수 네, 형님. 야, 아구, 갈치.... 개코 형님을 끌어내.
그들 우 나간다. 방안은 한동안 우울한 침묵이 계속된다. 눈치를 보다가 김무옥이 비장하게 말한다.
김무옥 개코 말은 들으면 안되여... 때가 이젠 늦었당께. 진영이는 죽이지 않으면 안되여.
문영철 나도 동감이야. 아니, 모두 동감했어. 두한아.... 진영이는 이제 친구가 아니다.
그래도 두한은 대꾸가 없다. 묵묵히 술잔을 털어 넣는다. 김영태가 재촉한다.
김영태 어차피 나온 말이야. 이 자리에서 오야붕의 뜻을 말해줄 필요가 있어. 사실 모두 많이 참았어.
두한 (한참만에) 개코가 저토록 애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린 같이 자란... 친굽니다. 한번만 더....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김무옥 이미 틀렸다니께...? 그건 친구가 아니여. 참을 만큼 참은 것이여. 사정 볼만큼 봐주었고.... (핏대 올리며) 너를 쐈단 말이여, 너를.....
문영철 두한아.......?
두한 내게 맡겨줘. 어차피 난 죽었다 살아난 몸이야. 한번 더 만나볼 필요는 있어. 마지막으로 말이야.... (마신다) 마지막으로.... 한번 더...
씬 정진영의 아지트 외경
씬 동 아지트 안
정진영이 놀라서 김천호, 김해숙, 대원 1, 2를 보고 있다.
정진영 그게 무슨 소리인가? 금강이라는 자가 명동 서북청년회를 갔어?
대원1 그렇다고 합니다. 우리 대원들이 멀찌감치 뒤를 밟았는데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고 합니다.
김천호 난리라니...?
대원2 그곳에서 황병관이를 집어던지고 그 부하들을 수십 명 때려눕혔다고 합니다.
김해숙 그 자가 머리가 어떻게 된 게 아니오? 호랑이 굴을 제 발로 들어갔단 말이오? 그래서 어떻게 됐소?
대원1 아예 명동 그놈들 아지트 밑에 있는 술집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시라소니를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정진영 시라소니를.....? 그렇다면 저들을 때려눕혔는데도 저들이 가만히 있었단 말인가?
대원1 네, 일단은 그렇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시라소니와 한바탕 결투가 벌어질 것 같습니다.
김천호 돌았구만... 그 자가 돌았어. 도대체 당에서는 어떻게 그런 괴상 망측한 인물을 내려보냈단 말인가? 여기가 무슨 주먹판인 줄 아나?
정진영 하지만 대단하긴 하군.... 황병관이를 던졌다면 말이야. 황병관은 동양레슬링 챔피언을 지냈어. 일단 놔둬 보자구. 당에서는 우미관의 김두한이와 서북청년회의 시라소니, 이화룡이가 모두 우익 쪽에 있는 것을 보고 조치를 취한 것이야. 주먹은 주먹끼리 해보라고 말이야. 일리는 있어. 박헌영 동지가 권한 일이기도 하고... 그보다도 이봐, 김천호 동무?
김천호 네, 대장동지.
정진영 김두한이..... (생각이 많다) 나왔다고 했나?
김천호 네, 그렇습니다. 지금 그 부하들과 함께 그 애기보살이라는 여자가 운영하는 요정에 가있다고 합니다.
정진영 ............ (끄덕인다)
김천호 태릉 국군준비대 사건은 완전히 엉터리로 끝나는 것 같습니다. 피해자가 가해자로 둔갑하고 서로 합의를 보는 선으로 끝났다고 합니다.
정진영 어차피 경찰은 우익들 편이니까. 지난 것에 더 연연할 수는 없어. 전위대 전 조직을 계속 점검하고 비상대기하라구. 곧 총파업에 돌입한다는 연락이 왔어.
김천호 네, 동지.
정진영 남반부 전국이 암흑이 될 거야. 이제부터 피와 신음소리가 전국을 뒤덮을 거야. 우리 당의 힘과 위력을 바야흐로 보여주는 것이야. 총파업 말이야.
김천호 네, 동지.
씬 미군정 외경 (낮)
씬 동 사무실
하지와 아놀드, 페어드, 워태커 등과 함께 여러 장성들이 모여있고 조병옥, 장택상, 이승만, 이기붕 등이 함께 해 있다. 당시 신문들이 여러 개 놓여 있다.
하지 신문마다 조선공산당 노동조합인 전평이 총 파업을 한다고 난리들이오.
페어드 저들의 구호는 아주 자극적입니다. 쌀을 달라고 하고 있어요. 말하자면 배가 고파서 못살겠다 하는 것입니다. 노동자들이 그 말에 일제히 일어나고 있어요. 골치 아파요.
이승만 일리는 있소이다. 거듭 흉년이 든 대다가 공산당들이 뿌려놓은 위조지폐로 물가는 폭등했어요. 이 모든 것이 자신들의 잘못이면서도 군정과 민족진영의 책임으로 돌리자는 수작이오.
조병옥 박사님 말씀이 맞습니다. 더 염려되는 것은 이런 파업자체가 북쪽으로 도주한 박헌영이의 지시라는 것입니다.
장택상 이번의 이 파업을 막지 못한다면 군정자체가 붕괴될 수도 있어요.
워태커 그렇게까지야 되겠습니까?
하지 아니야... 일리가 있어. 총파업이란 모든 산업기반이 다 마비되는 것을 의미하는 거야. 그렇다고 우리 미군이 총으로 막을 순 없는 것 아닌가?
장택상 이게 다 그 동안 당신들이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마냥 좋게 하려다가 키운 일이에요. 단호한 조치가 필요해요.
조병옥 조선공산당이 이 나라 전체의 노동자들 대부분을 조직에 가입시키고 있어요. 그걸 전평이라고 하지요. 그 조직 속에는 없는 게 없어요. 철도, 출판, 항만, 전기, 전화, 건설까지.... 이 모든 게 마비된다면 그 누구도 대책을 세울 수가 없어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파업을 초기에 막는 일입니다.
하지 일단 조선경찰들이 그 방법을 찾아보도록 하시오. 합법적인 법 안에서 말이오. 우리 미군도 파업을 자제해 달라는 성명을 내겠어요.
이승만 성명....? 그런 게 통하리라고 보오? 이미 공산당의 마각이 드러났어요. 빨리 남한만이라도 선거를 하고 국민의 대표들을 뽑고 정부를 세워야 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민주국가를 세워야 합니다. 내가 미국에 가서 설득을 하겠어요.
하지 조선의 군정은 내 책임입니다. 지금은 소련과 미국이 의견을 같이 하는 게 중요합니다. 남쪽, 북쪽이 서로 다른 정부를 세운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건 조선이 반쪽으로 갈라지는 겁니다. 아직은 더 두고봐야 합니다.
이승만 두고 본 결과가 이렇게 어지럽게 된 거요. 난 당신들 못 믿겠소. 남한만의 정부를 세울 것이오.
하지 그건 허락 못합니다.
이승만 그렇다면 마음대로 하시오. 마음대로... 폭동이 일어나던지, 데모가 일어나던지, 파업을 하던지... 다 당신 잘못이오.
하지 어쨌든 파업은 경찰이 막도록 하세요. 군인이 나설 일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세요, 조박사.
조병옥 허허, 이거 참.... 갈수록 캄캄해지는구먼... 갈수록....
씬 거리 (인서트)
데모행렬이 지나치고 있다. '쌀을 달라', '밥을 달라', '미군정 물러가라' 구호들을 외치며 까맣게 몰려가고 있다. 경찰들이 그 주변에 서서 만약을 대비하고 있다.
씬 수도경찰청 외경
많은 경찰들이 이동하고 있다. 트럭들이 계속 오가고 있고 부대 단위로 움직이는 것이 보인다. 부장이 간부들에게 소리소리 지르고 있다.
부장 서울과 경기도 경찰들이 총출동하는 거야. 공산당들도 총을 가졌어. 그걸 대비해야 한다구. 비상이야, 비상... 모두 정신들 바짝 차려.
씬 동 근처 해장국 집
이정재가 술들을 마시고 있다. 곽영주가 눈치를 보며 해장국을 먹는다. 그 옆에 조열승이 앉아 있다.
곽영주 형님, 한번만 더 신경 써 주십시오.
이정재 나 시간 없다. 우리 경찰 지금 비상이야. 공산당 애들이 총파업이래. (술 마시고 해장국 먹는다) 빨리 먹어라. 또 들어가야 돼.
곽영주 아, 형님... 한번만 더...
이정재 야 임마, 전국적으로 천 명이나 넘게 뽑았어. 그 시시한 경찰시험도 떨어지냐? 한글만 읽을 줄 알고 구구단 알고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만 알면 붙는 시험이야.
곽영주 이미 한번 떨어진걸 가지고 자꾸 그러시면 어떡합니까? 곧 시험이 또 있다고 하는데 거기만 좀 붙게 해주십시오.
조열승 들어보니까 사정이 딱하네요. 한번 해주시죠?
이정재 아 내가 무슨 힘이 있어야지. (해장국 다 먹고) 야, 어떻게 거기도 떨어지냐? 너 그래도 소학교는 다녔잖아? 아, 이 꼴통이 이거... 이봐, 아우님....?
조열승 네, 형님.
이정재 경찰학교 쪽에 뇌물 좋아하는 놈 있나 한번 알아봐.
조열승 알겠습니다. 형님 일인데 알아보면 길이 왜 없겠습니까?
곽영주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형님...
이정재 (일어나며) 공부 좀 해라, 응? 공부 좀 해... 자, 나 들어가 봐야된다. 들 가봐.
조열승 아, 그리고 형님, 이거... (돈 뭉치를 준다) 제일극장의 임화수씨가 형님 드리라고 하데요. 용돈이 너무 적어서 설렁탕 집만 다니신다고 고기도 좀 넉넉히 사 잡수시라고 하데요.
이정재 그래....? 그런 돈 있으면 아우님이 얘 경찰학교나 좀 알아봐. 난 설렁탕이면 족하니까 말이야.
조열승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건 가져가시죠? 경찰학교는 나름대로 알아볼 수 있어라우.
이정재 알았어. (돈 봉투 한번 들어보다가 곽영주에게 던진다) 너나 써. 간다...
이정재가 휭 하니 가버린다. 조열승이 고개를 갸웃한다.
조열승 바로 저거여. 저것이 오야붕의 매력이여. 사람 환장하게 한당께. 어이, 이보쇼. 젊은이... 경찰이 그렇게 되고 싶소?
곽영주 아 그러니까 여기까지 계속 오는 것 아닙니까?
조열승 알아봅시다. 돈으로 안 되는 게 어디 있겄소? 정재 형님도 돈 줄이라면 꽤 괜찮소. 옛날 미나도 극장의 임화수라고... 재주꾼이 하나 있거든. 배짱도 있는 독종이고... 헌데 정재형님은 돈을 모른다 이 말이여. 허, 참....
씬 제일극장 외경
씬 동 극장 사무실
임화수가 성질이 나서 의자를 걷어찬다. 눈물이 거기 한쪽에서 눈치를 보며 비켜서 있다.
임화수 시라소니라구....? 미치겠구만... 자주 오겠다구...? 어이구.... 살다가 별일을 다 보는구만. 용돈에다가 뭐, 애들 취직까지 시키라구...? 이거 독종 임화수가 그렇게 어리숙해 뵈나..? 야, 눈물?
눈물 네, 사장님.
임화수 너 보기에도 내가 그렇게 어리숙해 보이냐?
눈물 아닙니다. 그냥 좋아 보이십니다.
임화수 (내지른다) 좋아...? 내가 그렇게 보여...? 야, 임마.. 내가 임화수야, 임화수. 그렇게 해벌레 한 것이 바보 같이 보인단 말이야?
눈물 아,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임화수 그럼 어떻게 보여?
눈물 아주 독해보이십니다. 정말 지독해 보이십니다.
임화수 (또 내지른다) 내가 임마, 뭐가 지독해...? 이 새끼 이거 누구 복장 지르나...? 신문이나 읽어봐.
눈물 저, 사장님...
임화수 뭐야? 신문 읽으라는데....?
눈물 저... 그만 사표 내겠습니다.
임화수 뭐를 내...?
눈물 사표... 말입니다. 제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아서....
임화수 (한참 보다가 어이없다) 온지 하루밖에 안 됐어. 무슨 사표고, 적성이야, 임마...? 그리고 누구 맘대로 관둬..? 올 땐 마음대로 왔지만 (몇 번 내지르며) 갈 때는 아니야, 이 자식아...
눈물 (울며) 그런데 왜 자꾸 때리십니까.....? 말로 하십시오....
임화수 이게 그런데 대꾸도 할 줄 아네....?
벌떡 일어나더니 마구 걷어찬다. 그리고 밖에 소리지른다.
임화수 야, 쪽박, 멸치 다 들어와.
그러자 우르르 험상궂은 사내들이 들어온다.
임화수 눈물 이 새끼 끌고 가서 좀 태워. 아직 우리 세계를 너무 몰라. 좀 가르쳐주란 말이야.
쪽박 알겠습니다. 오비서님, 나가실까요?
눈물 사장님, 사장님... 왜 이러십니까?
임화수 빨리 데리고 가서 이 바닥 돌아가는 것 좀 가르쳐 놔.
눈물 (다급하다) 사장님.... 사장님.......?
그렇게 끌려가고 문이 닫힌다. 닫히면서 밖에서는 마구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 태연히 신문을 이리저리 보는 임화수 하지만 알 턱이 없다. 화가 나는 듯 구겨 던져버린다.
임화수 젠장.... 그러길래 공부 좀 해놓는 건데.... (한참 생각하다가) 거, 어제 일은 생각할수록 열 받는단 말이야... 시라소니 지가 뭔데.... 어이구.....
씬 명동 이화룡의 사무실 외경
시라소니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씬 동 사무실 안
시라소니는 여전히 술병을 들고 있다. 몇 모금 마시다가 중얼거린다. 이화룡, 정팔, 황병관, 맨발들이 함께 해 있다.
시라소니 북경 곰이라...? (한참 생각하다가) 북경 곰....? 기래, 기래... 들어봤어. 내레 봉천에 있었을 때 오다가다 여러 번 들어본 이름 같구만. 북경을 통째로 휘어잡고 방구께나 끼는 조선인이 있다고 들었디. 체격은 보통인데 나처럼 몸이 좀 빠르다고 하는 것 같았는데...
이화룡 맞아, 맞아... 틀림없어. 덩치에 비해서 몸이 무척 빨랐어. 황병관이를 집어 던졌다구.
황병관 아주 순식간이었습니다. 잡혔다 싶었는데 공중으로 날아갔어요.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이래뵈도 내가 만만한 놈은 아니지 않습니까?
시라소니 기렇디, 기렇디.... 황병관이가 만만하다면 세상이 잘못된 것이디. 기런데 날 찾으러 왔다, 그 말이야?
정팔 그렇습니다. 본래 목적은 김두한이라고 했어요. 하지만 형님이 김두한씨를 눌렀다는 소문을 듣고 이리 온 거예요.
시라소니 그것 참... 오랜만에 반가운 소식을 듣는구만 기래. 기래, 그 북경 곰이라는 친구는 지금 어디 있네?
맨발 근처 술집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소니 형님을 만날 때까지 그곳에 있겠다고 했거든요.
시라소니 기래...?
맨발 형님을 만나면서 한쪽으로는 김두한씨를 만나고 싶어하는 눈치였습니다.
시라소니 재미있구만. 재미있어... 두한이까지...? 하하하.... 아무튼 날 만나러 온 손님 아니갔어...? 천천히 주변에 찾아보라우. 만나야디.. 암, 만나야 하고 말고... (돈 봉투 던진다) 이거이 제일극장 임화수라는 친구가 준 거이야. 용돈 하라고 말이디. 밑에 아새끼들 밥 못 먹는 애들 좀 노나주라우.
정팔 아니, 임화수까지 만나고 오셨습니까?
시라소니 기래.. 불알 밖에 없는 아새끼들 취직도 시켜야되고 뭔가 해줘야 되지 않갔어?
이화룡 하여간 자네하고는.... (하다가) 아참, 그리고 이보게, 소니?
시라소니 와 기래..?
이화룡 서북청년회에서 말이야. 아무래도 자네한테 감찰부장을 맡아줘야 되겠다고 하더구먼.
시라소니 뭐이, 어드래? 듣기 싫다 야. 감찰부장은 무슨... 나 그런거 싫어한다고 하디 않아서...
이화룡 좋아서 하고 싫어서 안 하는 거이 아니야. 지금 공산당들이 말이야, 거 위조지폐인가 뭔가 하는 사건이 있고 나서 미군들이 단속을 하니까 총파업으로 나오기 시작했어요. 우리 서북청년회하고 김두한이의 대한민청하고 모두 다 바빠지게 됐다고.. 아, 도울 건 도와야디.
시라소니 글쎄 관두라우.
정팔 이번만입니다, 네....? 저놈들 기선을 제압해야 합니다. 거기 형님 얼굴만 비추면 된다구요. 한번만 말이에요.
시라소니 글쎄 기딴 건 난 몰라. 귀찮게 하디 말라우. 거 북경 곰인가 뭔가 하는 놈부터 얼른 찾아보라우. 거 괜히 김두한이하고 먼저 붙으면 내가 할 일이 없어질 수가 있으니께니... 고런 재미있는 친구는 내가 먼저 봐야돼 야. 고럼, 고럼.... 날래 찾아보라우.
맨발 알겠습니다, 형님.
시라소니 북경 곰이야...? 북경 곰....? 심심하던 차에 정말 잘 됐구만 기래. 잘 됐어...
씬 우미관 외경
씬 동 우미관 안
일부 젊은 부하들과 삼수, 아구, 갈치들이 아직도 우울한 표정이다. 개코가 머리에 붕대를 감고 한숨을 푹푹 쉬고 있다.
삼수 거 형님은 왜 하지 말라면 하지 말아야지... 계속 엉기다가 이런 꼴이 됐어요?
개코 너희들은 모를 것이다... 우리가 어떤 사인지 너희들은 몰러. 안되제... 진영이하고 두한이가 그러면 안되제.
아구 아이 참... 아 오야붕이 죽다 살은 거 몰라서 그래요? 이미 저쪽에서 쐈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하단 말입니까?
개코 그래도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여. 진영이도 얼마나 불쌍하게 자란 놈인디...
그때 노크소리와 함께 금강의 부하 두 명이 들어선다. 불쑥 묵례를 하고는 묻는다.
부하 김두한 별동대장을 만나러 왔습니다.
삼수 당신들 누구야?
부하 북경 곰 금강이라는 분이 보내서 왔습니다.
개코 북경 곰이여........?
부하 네, 그렇습니다. 저희 대장이십니다. 대장께서는 김두한 별동대장과 맞짱을 뜨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아구 뭐야.....? 맞짱......? 기가 막혀서.... 야, 너희들 어느 쪽에 있는 놈이야?
부하 공산당 전위대와 함께 있습니다.
개코 뭐, 전위대...?
삼수 이 새끼들... 전위대에서 감히 여기를 왔단 말이냐? 겁도 없는 것들.... 죽고 싶어?
부하 저희들은 심부름을 왔을 뿐입니다. 언제든지 (종이 내밀며) 이쪽으로 연락 주십시오. 도전장입니다. 오늘도 좋고 내일도 좋다고 하셨습니다. 다음 만날 때는 바로 결투로 들어가시는 걸로 아시라고 했습니다.
갈치 뭐야.......? 이거 어디서 개뼉다구 같은 놈들이 와가지구...
개코 아, 그만혀라... 다시 말해봐. 니들 대장이 누구라구? 정진영이가 아니라 누구여...?
부하 사람들은 북경 곰이라고 부릅니다. 저희 대장은 북에서 내려오셨습니다.
개코 북에서....?
부하 그럼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그들 돌아간다. 개코와 삼수들은 생각이 많다.
개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것이여? 북경 곰이라는 게 또 뭐여..? 진영이가 아니고 북경 곰...?
그들 곁으로 데모대들이 계속 지나가고 있다. (지난 회 데모 씬 참조) 사람들이 더욱 더 늘어나며 북을 치고 확성기를 들고 '쌀을 달라', '밥을 달라', '미군들 물러가라'를 외치고 있다. 그 규모가 엄청나 보인다. 미군들이 찦차를 세워놓고 가두설득작업을 하고 있다.
미군 (서툰 한국말로) 여러분... 진정하십시오.... 이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파업은 사회질서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씬 명동 어느 술집
술을 마시고 있는 금강과 그의 부하들이 보인다. 금강은 마시기만 한다.
부하1 동지, 이미 파업이 부분적으로 시작됐다고 합니다.
금강 나는 그런 거 별 관심 없어.
부하1 하지만 동지와 우리들의 목표는 파업현장에 뛰어드는 김두한의 기를 꺾는 일입니다.
금강 그러니까 계속 기다리고 있는 것 아닌가? 우미관에도 사람을 보냈고 말이야. 시라소니나 김두한, 둘 중의 하나는 이리로 올 거야.
부하1 그건 그렇겠습니다만...
금강 기왕이면 시라소니가 왔으면 좋겠어. 센 놈을 먼저 거꾸러뜨리면 그 다음은 한결 수월해지거든. (마신다) 기다려 보자구. 파업현장은 그 다음이야.
씬 수도경찰청 외경
경찰들이 출동대기하고 있다. 그 모습들이 끝도 없고....
씬 동 장택상 사무실
조병옥과 장택상, 경찰간부들이 함께 해 있다.
부장 각하, 공산당들의 파업이 시작됐습니다. 어제 저녁 부산철도청에서 칠천명의 조합원이 파업을 시작한 이래로 대전, 대구, 그리고 서울에 이르기까지 하루사이에 급속히 커지고 있습니다.
조병옥 이보시오, 창랑. 경찰은 지금 어찌하고 있소?
장택상 어찌하기는요. 출동명령을 기다리고 있지요. 하지만 역부족이에요. 이 신문을 보세요. 이놈들이 이거 아주 계획적이고 노골적이에요. 봐라. 우리는 이렇게 할 것이다. 미군정과 우리 경찰과 우익들은 백기를 들어라 이렇게 말이오.
조병옥 청년들을 동원할 수밖에...
장택상 암요... 방법이 없어요. (신문 가리키며) 자, 보세요. 부산에서 파업이 일어난 이래로 그 다음날은 서울전국철도종업원 4만명이 총파업을 시작했어요. 그 다음에는 출판노조가 들고 또 일어났어요. 내일부터 신문이 안 나옵니다. 노조원들이 신문발행을 안 하는 거예요.
조병옥 큰일이구만... 큰일이에요.
장택상 또 있어요. 내일까지 정부의 조치가 없으면 다음에는 우체국, 전화국, 전기회사들까지 다 파업에 들어간다는 거예요.
조병옥 뭐요...? 우체국과 전화, 전기까지 말이오?
장택상 그렇소. 이미 열차가 운행이 중단됐어요. 전국으로 나가는 길이 막혔단 말이오. 거기에 전화가 안 되고 전기가 끊어진다면 어찌 되겠소? 신문도 안 나오고 말이오. 나라 전체가 마비되게 생겼소.
조병옥 엄청난 발악이구만. 공산당의 발악이오. 물리적 힘을 동원하는 수밖에... 전평, 이놈들.... 이렇게까지 거세게 나올 줄 정말 몰랐소. 전평, 이놈들.....
해설 전평. 조선공산당 산하의 노동운동단체의 약칭이다. 그리고 조선공산당 최대의 단체이다. 45년 11월 초에 결성되어 금속, 철도, 교통, 토건, 어업, 통신, 섬유, 광업, 조선에 이르기까지 열 여섯 개의 산별 노조에 그 지부의 수가 1194개에 이르렀다. 명예의장은 모택동, 김일성, 박헌영이었고, 그 위원장은 허성탁이었다. 인물들로 보아 이미 이 단체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 민족진영은 대한노동총연맹이 무려 반년 가까이 뒤늦게 결성되어 그 세력과 영향력이 이들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조선정판사 사건에 이어서 공산당이 전격제재를 받으면서 영향력 만회를 위해 총파업을 시작한 것이다.
장택상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걷잡지 못하게 될 거요. 일단 기선제압이 중요하오.
조병옥 (끄덕인다) 많은 노조들 중에서도 가장 큰 세력이 철도노조요. 인원도 많고 말이오. 우선 그걸 부셔야 하오.
장택상 그렇소이다. 무려 4만명이오. 저들은 지금 용산으로 집결하고 있어요. 저들을 해산시키느냐 못하느냐가 총파업의 실마리를 푸느냐 못 푸느냐로 연결될 거요.
조병옥 대한민청의 별동대는 어떻게 됐소?
장택상 이미 유진산 회장이 김두한 별동대장을 현장에 투입시키기로 했소.
조병옥 다행이로구만... 청년단을 모두 모으라고 하시오. 서북청년회도 그렇고 말이오.
장택상 이미 그렇게 하고 있어요. 이 나라 모든 좌익이 일어났어요. 당연히 모든 우익청년들도 일어나야지요. 곧 무슨 연락이 올 거요.
씬 유진산의 사무실 외경 (밤)
씬 동 사무실 안
유진산과 박용직, 김후옥 그리고 김두한과 김영태가 함께 해 있다.
유진산 그 동안 고생이 많았네.
두한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유진산 다른 식구들은...?
두한 저녁을 먹고 모두 돌아가 쉬라고 했습니다.
유진산 그랬구만... 그 동안 자네를 위해서 열심히 주변을 챙긴다고 챙겼는데 몸만 바빴지 별로 결과가 없었어.
두한 그렇지가 않습니다. 이렇게 일찍 사건을 마무리 짓고 나올 수 있었던 것도 다 회장님께서 애쓰신 걸 알고 있습니다.
김후옥 사실일세. 회장님께서 두발 벗고 뛰셨지. 알겠지만 자네 일이라면 만사를 제쳐놓고 나서신다네.
유진산 하하하.. 무슨 소리를... 당연한 거지. 헌데 두한군, 이거 또 미안한 부탁을 하게 생겼네. 공산당들이 총파업을 시작했어. 벌써 이삼 일 사이에 전국의 절반이 마비되기 시작했어.
두한 알고 있습니다.
유진산 그렇다면 내가 무슨 부탁을 할지도 알겠구먼 그래. 실은 내 부탁이라기 보다도 이승만 박사를 비롯해서 조병옥, 장택상 같은 우익 어른들이 모두 부탁한 일이야. 자네가 아니면 안 돼.
두한 말씀하십시오.
유진산 용산철도청 기관구에 4만명이나 되는 노조원이 모여들고 있어. 저들을 해산시켜야돼.
김영태 4만명입니까........? 4천, 4백도 아니고........?
박용직 그렇다네. 엄청난 숫자지.
유진산 하지만 저들 중 절반은 그저 뭣도 모르고 참가한 자들이고 나머지 절반 중에서 십분의 일 정도가 아주 극렬한 공산주의자들이야. 물론 그들은 무기도 들었고 죽을 각오가 되어있는 놈들이야.
김후옥 거기에 전위대 애들도 포함돼 있어. 들려오는 정보로는 북쪽에서 특별히 뽑아서 내려보낸 자들도 있다더군.
유진산 명동의 서북청년회도 참가하기로 했네. 하지만 선봉은 자네들이 서줘야 해. 여러 청년단체를 다 합쳐서 한 2천명 정도 필요해. 경찰들도 3천명이 대기 중이야.
김두한들 .............? (긴장한다)
김후옥 저들은 수류탄과 기관단총도 가지고 있어.
유진산 해보겠나?
두한 해야지요.... 어차피 나는 내 부하들과 더불어 조국에 목숨을 바치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공산당을 잡는 게 애국이라면 해야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유진산 고맙네... 그러면 일단은 한숨 돌리겠네. 이번 파업은 너무 심각해서...미군이나 민족진영의 어른들 모두 긴장하고 계신다네. 자네 역할이 커. 저들 속으로 진입해서 주동자를 잡아 해산시키는 거야.
두한 알겠습니다. 해보죠.
유진산 이젠 됐네. 그러면 그 우미관부터 옮기도록 하게. 자네가 쓰기에는 너무 좁아. 우미관 식구 뿐 아니라 하부조직의 수많은 대원들이 있지 않은가? 적산가옥 한 채를 보아두었네. 동본원사라고... 일본인들이 쓰던 큰 절이야. 거길 쓰게. 이미 내부를 다 손질해 두었어.
두한 고맙습니다. 사실 그런 장소가 좀 필요했습니다. 당장 옮기겠습니다.
유진산 자, 모두들 급한 것 같네. 즉시 좀 움직여주게. 자네 부하들도 소집을 하고... 준비를 해주게. 내일이 아마 제일 바쁜 날이 될 거야.
두한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씬 전위대 아지트 외경
여기서도 전위대원들이 수십 명씩 무리 지어 바쁘게 오고 간다. 곧 무슨 일이 일어날 것처럼 보인다. 대원 1이 소리소리 지른다.
대원1 열 명씩 조를 지어 조장의 지시를 따라라. 십중팔구 전투가 벌어질 것이다. 동무들과 떨어지지 마라. 저쪽에 무기를 준비해라.
씬 동 아지트 안
긴장이다. 김천호와 김해숙, 전평위원장 허성탁이 함께 해 있다.
허성탁 그예 투쟁의 불길이 올랐소. 미군놈들은 완전히 당황하고 있소. 전국의 전 산업기관이 다 일어났소.
김천호 이미 우리 대장동지께서 다 파악하고 계십니다.
허성탁 물론 그렇겠지요. 박헌영 동지의 지시를 충실히 수행하는 것은 당원의 의무요. 이제 사람들은 차례차례 이 남한이 어둠 속으로 변해 가는 걸 보게 될 거요. 하지만 말이오. 이 모든 게 전위대장동무의 힘을 필요로 하오.
정진영 나 또한 당원의 의무를 게을리 하지 않을 거요.
허성탁 바로 그거요. 그래서 당에서도 특별히 김두한을 능가하는 큰 주먹잡이를 내려보냈소.
정진영 알고 있소. 그러나 당 사업에는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아야하오.
허성탁 하하하.... 내가 지도자 동지에게 듣기로는 아직 사상학습이 덜 되어서 그렇다고 들었소. 중국천지를 돌아다니다가 팔로군에 잠시 있었다고 하더구먼. 한번도 진 적이 없는 무쇠주먹이라고 하오. 그래서 이름도 금강이고... 이번에는 선봉을 그 금강동무에게 주라는 지시요.
김천호 뭐요...? 선봉을 줘요? 그런 엉터리가 뭘 안다고...?
김해숙 수만명이 혈전을 벌리는 싸움이오. 우리 전위대장동지가 계시는데 누구에게 선봉자리를 준단 말이오? 그런 말이 어디 있소? 이건 우리 대장동지께 큰 결례요.
허성탁 아, 아... 흥분하지 맙시다. 지도자 동지의 말씀이오.
정진영 ............?
허성탁 그리고 내가 알기로 지금 북경 곰 금강 동무가 명동에 가있다고 알고 있소. 시라소니, 김두한 두 사람에게 도전장도 띄웠고 말이오. 그렇다면 어떤 위인인지 가부간 대답이 나오지 않겠소?
정진영 ............ (끄덕인다) 하긴... 그렇게 시시한 자를 당에서 내려보냈겠소? 당원은 당의 명령을 따를 뿐이오. 동무 말대로 합시다.
김천호 하지만 대장동지....?
정진영 그렇게 해. 끝없이 싸워야해. 한두 번 싸울 자리를 내준다고 섭섭할 것 아무것도 없어. 이번에는 뒤에서 좀 쉬도록 하자구. 그 금강이라는 자가 지휘권을 받았다니까 말이야.
김천호 하지만........
허성탁 좋게좋게들 생각합시다. 다 당을 위한 것 아닙니까? 내일 날이 저물기까지 그 금강동무를 우리가 데려갈 겁니다. 일단 그쪽 통제를 받도록 합시다.
정진영 알았소. 그렇게 합시다.
씬 명동 어느 빠 안
금강은 여전히 술을 마시고 있다. 음악이 계속 흐르고 있다. 부하들이 함께 해 있다. 김두한에게 다녀온 부하들도 보인다.
금강 김두한이 없었다고...?
부하 네, 동무. 하지만 도전장은 전달했습니다.
금강 그럼 됐어. 아무래도 여기가 명동이니 만큼 시라소니부터 만나 확률이 더 높겠지.
부하1 그렇지 않아도 조금 전까지 시라소니 부하들이 동무를 찾느라고 여기저기 소란을 떠는 것을 우리 동무들이 보았다고 합니다.
금강 그렇겠지... 그럼 곧 이리로 오겠구만. 자, 서두를 것 없어. 너희들도 마셔.
술을 따르는데 함께 있던 부하 하나가 얼굴색이 변하며 눈으로 한쪽을 가리킨다. 금강이 보다가 그 시선을 따라가 보면 졸린 눈의 시라소니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다. 그들은 그렇게 점차 가까워지고 서로를 본다. 양쪽 부하들이 바짝 긴장하며 싸울 태세를 취한다. 그렇게 금강과 시라소니는 마주친다. 그리고 한동안 눈싸움을 한다.
시라소니 님자가 북경 곰이가...?
금강 (씩 웃는다) 뭐가 그렇게 바빠서 보기가 어려운가? 한참을 기다렸어.
시라소니 (앉으며 술을 마신다) 님자 이야기를 두어 번 들은 기억이 있어. 봉천과 장춘에서 말이야.
금강 나도 임자 이야기를 자주 들었어. 아직 상대가 없었다지?
시라소니 그런 편이디...
금강 김두한이는 어땠나?
시라소니 붙지를 않아서 모르갔어. 내가 서너 살 많다 보니께니 어거지로 형님이 되어버렸거던.
금강 그랬구만...
시라소니 (계속 살피다가) 역시 관록이 붙어 있구만. 빈틈이 안 보여.
금강 마찬가지구만. 상대가 되겠어.
시라소니 큰소리 친 이유가 있었구만. 해볼만 하겠어.
금강 고맙구만. 인정을 해주어서... 그렇다면 나갈까?
금강이 소리나게 술잔을 놓는다. 시라소니도 술잔을 마시고 놓는다. 둘이 그렇게 서로를 본다.
시라소니 좋디.... 가자우.
그들 그렇게 사이 좋은 친구처럼 실내를 나간다. 모두 우 쫓아나간다. 음악소리는 여전하다.
씬 동 밖
두 사람이 자세를 취했다. 어느새 사람들이 가득 둘러쌌다. 그들은 서로 자세를 취하며 돌기 시작한다.
금강 대단해. 소문이 헛소문이 아니야. 하지만 오늘은 임자가 운이 나빴어.
시라소니 난 말 많은 걸 제일 싫어해. 좋아. (자세 훔쳐보며) 아주 좋아... 자, 기럼 들어오라우.
금강 받아봐.
주먹이 날아간다. 그와 동시에 치열한 접전이 시작된다. 불과 몇 초 사이에 수십 번의 주먹과 발이 오고간다. 한참을 붙었다 떨어진 그들은 서로가 놀란다. 만만치 않은 것이다. 다시 기합소리와 함께 시라소니가 공중을 두 바퀴 돌며 금강의 안면을 순식간에 강타하고 떨어진다. 휘청거리는 금강. 구경하던 사람들이 우 놀란다. 금강은 씩 웃는다. 그들은 다시 붙는다. 이번에는 시라소니가 그의 발차기에 맞아 몇 걸음 비틀거리며 거듭 물러난다. 시라소니 입가에 피가 흐른다. 사람들이 또 놀란다. 시라소니가 맞았던 것이다.
시라소니 제법이구만... 정말 좋아...
금강 여기 온 걸 후회하지 않는다. 좋은 상대를 만났다. 오늘 끝장을 보자.
시라소니 기어야 당연하디...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디... 간다우...
또 다시 날아간다. 그대로 공중으로 뜨며 이마로 금강을 받았다. 금강이 비틀거리며 뒤로 서너 걸음 물러난다. 피가 줄줄 흐른다. 사람들이 탄성을 지른다. 어느새 이화룡과 정팔, 황병관들이 와서 보고 있다.
모두 우 한다. 수많은 주먹이 교차되고 금강이 공중 돌며 시라소니의 어깨 위를 밟고 서는가 했더니 그대로 떨어지며 턱을 돌려차고 거듭 주먹을 날린다. 시라소니가 쿵 하고 떨어졌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람들은 서로 자신의 눈을 의심한다. 그러자 금강이 서서히 다가가는데 시라소니가 그대로 날아오르며 회전을 하더니 연거푸 또 주먹과 이마를 날린다. 금강이 휘청거리며 주저앉았다가 일어선다. 서로 빚을 갚은 것이다. 둘은 그렇게 다시 대처한다.
금강 너 같은 놈은 처음이다.... 지독하구나... 맷집이 아주 좋아.
시라소니 내가 할 말이야... 아직까지 누구에게 주저앉은 적이 없었어.... 임자는 오늘 정말 칭찬 받을만 해. 둘 중의 하나는 오늘 여기서 죽는 걸로 하자우.
금강 좋지... 자, 들어간다.
또 다시 접전이다. 계속 싸워도 끝이 나질 않는다. 일진일퇴... 이화룡들은 믿기지 않는 사실에 그저 입을 다물지 못한다. 둘은 계속 다음을 생각하며 빈틈을 찾으며 돌고 있다. 그들의 면면... 사람들의 면면에서...
씬 동본원사 (김두한의 새 아지트) 외경
곳곳에 불빛이 밝다. 절이라지만 현대식 삼층건물이다. 수많은 대원들이 짐을 옮기고 부산하다.
씬 동 아지트 안
복도와 더불어 계속해 방이 연결되어 있다. 김두한이 김영태와 돌아보고 있다. 신영균, 문영철, 김무옥, 홍만길들이 함께 보고 있다.
김영태 건물이 쓸만하구만... 역시 우미관보다는 좋아.
문영철 그러게 말입니다. 대단해요.. 안 그러냐, 두한아? 진작 이런 데로 왔어야했어. 대한민국 최고의 청년단체본부가 이쯤은 돼야지.
김무옥 그렇고 말고... 저쪽이 대장실이고... 그 다음이 우리들 방이고... 회의실에다가 조사실에다가... 저쪽에 영창까지 만들어놨네...? 참말로 그럴 듯 하구만 잉....
홍만길 됐어... 이 정도는 돼야지.
신영균 그러게 말입니다. 아주 끝내주는 건물입니다. 몇 백명은 들어오겠어요.
김영태 유진산 회장님이 좋은 건물을 선사하셨구만.
두한 그런 것 같습니다. 마음에 듭니다. (저만큼 말없는 개코를 보고) 야, 개코... 상처는 좀 어떠냐?
개코 괜찮구먼...
두한 니가 가고 나서 우리 식구들한테 니 생각을 따르자고 했다.
개코 나도 들었구먼...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다 날라고 하는구먼... 사실 얼마나 어려운 부탁이여, 그것이... 정말 고마워, 두한이...
두한 그래.... 좌우간 이 급한 불을 끄고 나서 진영이를 한번 만나보도록 하자.
개코 고마워... 고마워....
두한 자, 아마 곧 출동하라는 지시가 올 것이다. 대원들 준비시키고 작전을 짜도록 하자. 준비들 해.
신영균 준비들 해, 준비들 하라구..... 전부 회의실로 모여...
김영태 정말 쓸만한 건물이야.
두한 그러게 말입니다.
그들은 계속 만족한 표정으로 둘러보며 끄덕인다. 사무실 쪽에서 전화벨이 다급하게 울린다. 두한들이 본다. 홍만길이 달려간다.
씬 그곳
홍만길이 전화를 받는다. 김후옥이 목소리가 다급하게 들려온다.
김후옥 (소리) 나 김후옥이오. 누구요?
홍만길 홍만길입니다.
김후옥 (소리) 아, 홍동지... 일이 급하게 됐소. 잠시 후면 전기를 끊을 거라고 하오. 전평 놈들이 말이오. 서울 전체에 전기가 나간다는 거요. 서두르시오. 김두한 동지에게 서두르라고 하시오.
홍만길 알았습니다.
그때 우 하며 김두한, 김영태들이 들어선다. 홍만길이 말한다.
홍만길 큰형님, 놈들이 곧 전기를 끊을 거라고 합니다. 서두르라고 합니다.
두한 .............(끄덕인다) 불이 나가면 아무것도 못해. 횃불들을 준비해. 그리고 파업현장으로 갈 인원들을 다시 한번 파악해. 모두들 서둘러.
대답하며 흩어지는 식구들... 그 부산한 모습에서....
김영태 아 참, 얘기 들었나? 우리가 없을 때 우미관에 누군가가 도전장을 들고 왔다고 하더군...
두한 도전장이오....?
김영태 이 살벌한 세상에 재미있는 일 아닌가? 그런데 그게 전위대 애들이 보냈다는 거야.
두한 예......? 진영이가 말입니까?
김영태 진영이는 아니지만 그곳에 소속되어 있다는 거야. 북쪽에서 내려왔다고 했대. 별호가 북경 곰이라고 하더구만.
두한 북경 곰.......?
김영태 시라소니에게도 도전장을 던졌다는구만. 아무래도 자네를 의식해서 전위대 애들이 큰 주먹을 데려온 것 같아.
두한 그래요....? 전위대가 말입니까?
그 위로 전화벨 소리가 계속 울린다.
씬 전위대 아지트 외경
트럭들이 즐비하게 서있고 수백 명의 전위대원들이 부산하게 오가고 있다. 대원 1, 2가 그들을 단속하고 있다. 전화벨 소리는 계속된다.
씬 동 아지트 안
정진영이 전화를 받고 있다.
정진영 여보세요...? 전위댑니다.
허성탁 (소리) 나, 전평위원장 허성탁이오. 용산 기관구에 노조원들의 집합이 끝났소. 그리고 상하연계조직의 2차 파업이 시작됐소. 곧 전 서울시내에 전화가 끊기고 전기가 나갈 거요. 대원들을 모았으면 용산에 지정된 장소로 이동하시오.
정진영 알겠소.
허성탁 무장을 단단히 하시오. 경찰과 우익 청년단 놈들이 선봉에 서서 우리를 부수러 오고 있어요.
정진영 알고 있소.
허성탁 일전에 말했듯이 용산 일은 금강 동무가 앞을 설 거요. 명동 쪽에 사람을 보냈어요. 전위대는 그 다음 명령을 따르시오.
정진영 알겠소.
전화기를 놓으면 김천호, 김해숙들이 긴장돼서 본다.
김천호 출동입니까?
정진영 (끄덕인다) .......... 곧 전화, 전기가 다 끊긴다. 빨리 현장으로 이동하도록....
김천호 알겠습니다. (급히 나간다)
김해숙 전화, 전기가 끊기면 어찌되는 것입니까? 열차도 멈추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정진영 본래 새로운 세상이 오려면 지난 세상은 어둠 속에 감춰지게 마련이오. 그저 시간 가는 대로 우리들을 맡겨 봅시다. 어딘가로 흘러가겠지요.
김해숙 ................?
정진영 준비합시다. 권총을 잘 간수해요.
김해숙 제발 조심하세요, 동지.
끄덕이는 정진영. 와락 포옹에 안겨드는 김해숙.
김해숙 왠지 모르겠습니다. 갈수록 이 김해숙이가 당성이 아무래도 약해지는 모양입니다. 오로지 동지 걱정뿐입니다.
정진영 괜찮을 거요. 아무 일 없을 거요..... 괜찮을 거요.... 자, 서둡시다. 곧 불이 나갈 거요.
씬 다시 명동 그곳
기합소리와 함께 시라소니가 공중으로 빙글빙글 돌다가 떨어지면서 발차기가 이어진다. 금강이 맞으며 몇 걸음씩 비틀거린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시 금강이 주먹이 날아간다. 그리고 둘이 함께 뒹굴다가 내던지면 시라소니가 저만큼 나가 엎어질 둣 하다가 간신히 선다. 승부가 나질 않고 있는 것이다.
이화룡 백년에 한번 볼까 말까한 구경이야. 벌써 한 시간이 다 되어가.
정팔 그러게 말입니다.
맨발 곧 파업현장으로 가야하지 않겠습니까?
황병관 무슨 소리야? 승부는 보고 가야지. 형님, 저 북경 곰 말입니다. 저자가 오늘 우리를 아주 놀라게 하고 있습니다.
이화룡 그러길래 세상에는 반드시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고 했어. 시라소니 생에 처음 보는 강적일 거야.
싸움은 계속된다. 두 사람 모두 어지간히 지쳤다. 그러나 눈빛만은 날카롭다. 다시 시라소니가 대차게 공격을 시작하는데 갑자기 가로등 불빛이 꺼지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깜짝 놀란다. 그들도 놀란다. 그리고 싸이렌 소리가 길게 계속 울린다. 구경하던 사람들이 모두 하늘을 보고 주변을 본다.
이화룡 어떻게 된 기야? 왜 불이 나간 기야?
맨발 정전인 모양입니다. 이 일 때가 다 나갔습니다.
황병관 정전이 아닙니다. 파업입니다. 전기회사들이 파업을 하는 겁니다. 신문에도 낫지 않습니까?
이화룡 아하... 기렇구만.
그때 어둠 속에서 웬 찦차가 금강 곁에 와서 급히 멎는다. 그들은 싸우다 말고 뻥해서 서있었다. 허성탁이 차에서 말한다.
허성탁 금강 동지, 빨리 타시오. 제 2차 연계파업이 시작됐소. 전화, 전기가 모조리 끊기고 있어요. 어서 타시오. 빨리 가야 하오.
금강 아쉽게 되었구만. 이보시게, 시라소니...? 정말 아쉽게 됐어.
시라소니 내가 할 말이야. 정말 처음 좋은 상대를 만났는데 이게 무슨 낭팬가 말이야. 오늘은 안 되갔구만.
금강 다시 오겠어. 오늘은 볼 일이 또 있어. 기다리라구. 반드시 올 테니까. 무승부야, 오늘은...
시라소니 암... 승부를 가려야디... 꼭 오라우. 아니면 내가 갈 꺼야.
금강 기다리라구... 내가 꼭 다시 올 테니까... 동무들 가자.
금강은 허성탁의 찦차에 오른다. 그 부하들이 모두 함께 오른다. 차는 곧 그곳을 떠난다. 곳곳에 횃불이 밝혀지고 사람들이 우왕좌왕 시끄럽다. 시라소니가 툴툴거리며 걸어온다.
시라소니 왜 하필 이럴 때 불이 나간단 말이가, 왜...?
이화룡 공산당들의 파업이야. 자, 아주 잘 싸웠어, 오늘... 볼만 했다구. 자, 일단 우리도 파업현장으로 가야해. 우리가 맡은 구역이 있다구. 소니 자네도 같이 가세. 오늘은 같이 가야해.
시라소니 뭐이야...?
정팔 일단 오늘만 같이 가시자구요. 오늘은 형님이 감찰부장이에요. 야, 맨발 뭐해? 빨리빨리 움직여. 용산으로 간다.
맨발 네, 형님. 자, 서둘러라, 서둘러......
시라소니 나 이거야 원.....
그런 시라소니의 시선에서..... 계속되는 청년들의 움직임으로...
씬 길
불꺼진 어둠 속으로 수많은 트럭들이 지나쳐 가고 있다. 정진영과 김천호, 그리고 김해숙과 그의 부하들이다. 지나쳐 가면....
씬 또 다른 길
역시 찦차들이 계속해 줄지어 가고 있다. 김두한과 김영태가 앞차에 탔고 그 뒤로 문영철, 김무옥, 홍만길, 신영균들이 계속 뒤를 잇고 있다. 그 위로 소리
두한 (소리) 용산철도기관구에 수만 명의 공산당 노조원들이 몰려있다. 그 간부들을 해산하는 게 우리의 목표다. 놈들은 바리케이트를 치고 무기를 가지고 있다. 우리 부대는 각 중대로 나뉘어서 용산으로 진입한다. 내가 일중대를 맡고 이중대는 신영균이 맡는다. 삼중대는 영태형님이 맡고.... 우리 뒤로 경찰이 함께 들어갈 것이다. 각자 총기를 잘 간수해라. 공산당들도 총을 들었다.
씬 경무부 외경
이곳에도 전체의 불이 나갔다. 남폿불이 곳곳을 비추고 있다.
씬 동 경무부장실
조병옥과 하지, 아놀드가 마주해 있다. 그들은 휘발유로 쓰는 가스등을 켜놓고 있다.
하지 공산당들이 장담한 대로 서울이 암흑이 됐소.
아놀드 신문도 멈추었고 전화도 불통입니다. 역시 우체국도 파업했습니다.
조병옥 경찰들과 청년들이 해산을 하러 갔습니다.
하지 용산기관구에 있는 노조원이 4만명이라고 들었습니다. 저 사람들을 어떻게 해산시킨단 말입니까?
조병옥 청년들이 해낼 겁니다. 장택상 수도청장도 현장으로 갔습니다.
아놀드 좌우익 청년들이 부딪친다면 지난 번 국군준비대보다 몇 배 더한 상황이 나올 겁니다.
하지 이거 북쪽은 조용한데 왜 이렇게 남쪽만 시끄러운지 모르겠소.
조병옥 그 대답은 간단하오. 북쪽은 이미 질서가 잡혔다는 뜻이고 남쪽은 아직 그렇지 못하다는 거요. 당신들 책임이 큽니다. 대책이 없는 그 자유 때문에 말이오.
하지 거 조박사는 걸핏하면 우리 책임이라고 합니다. 이승만 박사하고 똑같아요. 우린 당신들의 자유를 존중해 준거요. 자유 말이오.
조병옥 어쨌든 결과는 이렇게 됐어요. 기다려 봅시다. 지금 서로 잘못을 탓한다고 될 것도 아니고... 기다려 봅시다.
씬 용산 파업현장 외곽
장택상이 경찰간부들과 저만큼 노조원들을 보고 있다. 삼층 건물 옥상에는 써치라이트가 달려있다.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기자들이 여기저기 모여들어 후레쉬를 터뜨리고 있다. 최동열도 그 중에 끼여서 상황을 암담하게 보고 있다.
최동열 결국 이 철도파업을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앞으로 총파업의 향배를 결정짓는 것 같습니다.
장택상 그렇소. 대단히 힘든 과정이 될 거요.
최동열 결과를 어찌 보시는지요?
장택상 미군정과 경찰은 특별성명도 발표하고 호소도 하고 달래기도 했어요. 하지만 소용이 없었소. 그래서 무력진압을 택한 거요. 아마 사상자가 상당히 나올 거요. 저들은 총을 갖고 있거든.
그들 한쪽으로 김두한의 부대들이 속속 도착한다. 대원들이 새까맣게 내린다. 그리고 한쪽으로 자리를 잡으며 배치된다. 김두한이 다가온다. 최동열을 알아보고 인사를 한다.
두한 선생님 오셨군요... 여긴 위험합니다.
최동열 자네는 늘 역사적인 현장 속에 서있구먼. 그것도 아주 위험한 곳에만 말이야.
두한 그렇게 됐습니다. 자, 청장님, 우리 대원들은 약속대로 도착했습니다. 서북청년회도 왔다구요?
장택상 그렇다네. 저쪽에 있어.
장택상이 가리키는 쪽에 이화룡, 정팔, 시라소니, 황병관, 맨발들이 그들 부하들과 함께 전투복 차림으로 대기해 있다. 그 한쪽으로 경찰들이 전투태세를 하고 대기해 있다. 시라소니가 곧 두한을 알아본다. 손을 번쩍 든다.
시라소니 아우님 왔구만...
두한 아, 형님 아니시오. 이런데도 다 나오셨습니다..?
시라소니 말 말라우. 강제로 잽혀오지 않았갔어? 이야... 와보니께니 정말 전쟁이구만 기래..
이화룡 김두한씨, 오랜만이오.
정팔 오랜만이오.
두한 들 오랜만이오. 다 같이 싸우게 되어서 반갑소.
장택상 자, 자... 잘들 듣게. 저쪽 저 안에 보이는 삼층 건물이 있지. 써치라이트가 켜져있고 깃발이 꽂혀있는 저기 말이야. 놈들은 비상발전기를 돌리고 있는 것 같아. 불 켜져 있는 저기가 본부야. 저길 점령하면 끝나는 거야. 허나 상대는 숫자가 너무 많아.
모두들 ........... (끄덕인다)
장택상 곧 새벽이야. 새벽에 기습을 해서 날이 새기 전에 끝을 내야돼. 우리 경찰보다도 용감한 청년단이 앞을 서주면 좋겠는데... 김두한 동지가 어떻겠나?
두한 이미 그렇게 생각하고 왔습니다.
장택상 고맙네. 여기서 저기까지는 한 삼사백 미터 돼. 놈들이 총을 가지고 있어. 기관단총과 수류탄도 있어. 쉽지 않을 거야.
두한 그렇겠지요.
장택상 정확히 새벽 두시가 되면 공격을 하자. 십분 남았어. 드럼통을 굴려가면서 밀고 들어가게... 그렇지 않으면 갈 방법이 없어.
두한 알겠습니다.
시라소니 조심하게. 주먹잽이들이 총들고 싸우는 전쟁터는 맞지가 않아.
대답과 함께 대원들이 돌격준비를 한다. 시간이 흐른다. 모두 침묵이다. 그 노조원들이 있는 쪽을 보면....
씬 그곳
빈 열차들이 계속해 꼬리를 물고 있는 현장이다. 건물들과 세워진 열차들이 함께 해 있는 기관차 사무소 현장이다. 이미 노조원들의 물결로 바다를 이루고 있다. 그들은 격렬히 구호를 외치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곳곳에 횃불들이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그 한쪽에 정진영과 전위대원들이 보인다. 또 한쪽에는 금강과 그의 부하들이 보인다. 머리에 띠를 두른 노조원들이 바리케이트를 치고 총을 들고 있다. 총 지휘를 맡은 허성탁이 간부들과 마른침을 삼키고 있다. 한동안 기이한 침묵이 흘러간다.
씬 다시 그곳
장택상들이 그곳을 보고 있다. 그리고 다시 시계를 본다. 장택상이 확성기를 든다. 그리고 마지막 설득을 한다.
장택상 잘들 들으시오. 나는 수도경찰청장 장택상이오. (사이) 철도는 국가의 재산이오. 그리고 국민들의 손과 발이오. 따라서 그 누구도 열차를 세울 수는 없소. 마지막 기회요. 파업을 풀고 업무에 복귀하시오. 그렇지 않게 되면 처벌을 받게 되오. 다시 말하오. 파업을 풀고 복귀하시오.
모두들 ................ (결과를 기다린다)
장택상 복귀하시오.... 집에서 처자들이 기다립니다. 돌아들 가시오.
소리가 들려온다.
허성탁 (소리) 개소리 집어치워....... 이 미제의 주구들아. 우리는 당연한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다.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파업은 계속될 것이다. 가까이 오지 마라. 가까이 오면 죽는다...
장택상 정 그렇다면 역시 강제해산을 하는 수밖에 없소. 경찰에 저항하는 자는 모두 체포될 것이오. 총을 버리고 자수하시오.
허성탁 (소리) 개소리 집어치워....... 동무들 뭐해? 쏴... 놈들이 온다.
그리고 총소리다. 어둠 속에서 수 없는 총성이 콩 볶듯이 들려온다. 장택상이 고개를 끄덕이며 신호를 준다. 이미 이쪽에서도 대응발포를 시작했다. 수십 개의 드럼통들이 밀려가기 시작한다.
두한 자, 돌격해라. 밀고 들어가라. 저쪽 건물을 접수하는 거다. 저 건물을 접수하면 끝나는 거다. 밀고 들어가...
전투다. 계속되는 총성이 불을 뿜는다. 김두한 부대들의 이동이 시작된다. 이미 쓰러지거나 죽는 대원들이 속출하기 시작한다. 곳곳에 수류탄이 터진다. 노조원들 쪽에서 기관총이 불을 뿜기 시작한다. 경찰도 죽어나간다.
씬 노조측
계속해 총구에서 불이 뿜어 나온다. 김두한들과 경찰들이 돌격해 오는 것이 보인다. 곳곳에서 섬광이 일어난다. 이쪽서도 희생자가 나오기 시작한다. 허성탁이 중얼거린다.
허성탁 더러운 반동새끼... 역시 김두한이야. 김두한이 패들이 앞을 섰어.
금강 ..............?
허성탁 쏘라... 여기까지 오려면 어림도 없어. 몇백 명은 죽어야 될 거야. 쏴, 쏘란 말이야.
그러나 그 빗발치는 총격 속에서도 김두한의 부대들은 계속 밀려온다. 그리고 노조 쪽의 희생도 점차 늘어난다. 정진영과 김해숙들도 눈을 크게 뜨고 보고 있다.
김해숙 독종입니다. 저 쪽에 김두한입니다. 보세요, 동지... 도무지 겁이 없습니다.
정진영 .............?
김천호 (계속 쏘며) 와라, 이 반동 새끼들아.... 오란 말이다....
계속 쏘지만 희생은 더욱 더 늘어난다. 소나기 쏟아지는 듯한 총소리, 폭발소리. 한참보고 있던 금강이 주변을 보더니 허성탁의 확성기를 뺏어든다.
허성탁 동무, 왜 그래? 어쩔려고...?
금강 이렇게 해선 양쪽에 희생만 커집니다. 김두한이하고 내기를 합시다.
허성탁 내기.....?
말릴 사이도 없이 벌떡 일어서며 금강이 외친다.
금강 중지하라...... 중지해...... 모두 사격중지...... 사격중지.........
김두한들 쪽에서 그런 금강을 보았다. 사격을 멈춘다. 일시에 노조측에서도 사격을 중단했다. 바람소리만 정적을 깬다.
금강 야, 김두한......? 나 북경 곰이야..... 내가 엊그제 너한테 도전장을 보냈을 것이다.... (사이) 어떠냐....? 우리 맞짱 한번 뜨자. 이기는 쪽이 마음대로 하기로 하자....
정진영들 .................? (놀라서 본다)
반대쪽에서 두한도 놀라서 본다. 시라소니도 장택상도 그리고 최동열들도 모두 금강 쪽을 본다.
금강 어떠냐.......? 총을 쏘지 않을 것이다. 자신 있으면 일어서라... 김두한... 일어서라.........
그러자 김두한이 자리에서 일어서려 한다. 함께 옆에 붙어왔던 김관철이 만류한다.
김관철 저놈들이 수를 쓰는 겁니다. 일어나지 마십시오. 총알이 날라 올 겁니다.
두한 아니야.... 이미 저자도 일어서 있어.
김관철 하지만 형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