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楚汉志) 1-047
* 亡秦者胡也
方士卢生은皇帝의 명에 의하여 서시를 찾아 나서기는 했으나, 조선땅이 바다 건너 어느 곳에
있는지도 알 길이 없었다. 그렇다고 황제의 명령을 무시한 채 되돌아 갈 수도 없는 일이므로
노생은 어쩔 수 없이 太岳이라는 깊은 산속에 숨어 살기로 하였다.
어느 날 노생이 산속을 배회하고 있노라니까, 커다란 洞窟 입구에서 호호백발 늙은이 하나가
네 사지를 쭉 뻗고 낮잠을 자고 있었다. 나이는 백수도 넘어 보였으며, 몸에는 남루한 옷을 걸치고
머리는 헝클어져 있는데, 첫눈에 보아도 범상치 않은 늙은이 같았다.
(이 깊은 산중에 웬 이런 노인이..... , 이 노인이야말로 神仙인지도 모르겠구나.) 노생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자, 그 노인의 잠자는 모습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문제의 노인은 낮잠을 늘어지게 자고 있는데, 몸은 皮骨이 상접하도록 여위어 있건만, 코 고는
소리는 천둥소리 같이 요란스러웠다. (이 노인은 암만 보아도 신선이 틀림없구나,
깡마른 저 체구에서 무슨 기운이 남아 있어서 코고는 소리가 이다지도 요란스러운 것인가.)
문제의 노인은 낮잠을 한 나절이나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서 노생을 보고 깜짝 놀란다.
"아니 이 깊은 산중에 당신은 무엇 하는 사람이오?"
노생은 노인에게 정중하게 머리를 수그려 보이며 대답한다. "저는 노생이라고 합니다,
시황제의 어명에 의하여 长生不老草를 찾아 다니는 사람이옵니다."
노인은 그 소리를 듣더니 하늘을 우러러 보며 呵呵大笑하며 조롱하듯 말했다.
"뭐? 황제의 어명에 의해 장생불로초를 찾아 나섰다고? 도대체 장생불로초라는 것이 이세상
어느 하늘 아래 있다고 합디까. 始皇帝라는 자가 무력으로 天下统一을 하고 나더니, 이제는
정신이 돌아 버린 모양이구료."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이더니, 다시 이렇게 말한다.
"秦王政은天数가 다 되어서, 이제는 大患을 면하기가 어려울 것이오."
始황제가 들으면 길길이 날뛰며 진노할 소리를 대수롭지 않게 지껄이고 있었다. "엣! 天数가 다 되어
大患을 면하기가 어렵다는 말씀은 무슨 뜻이온지요?" 그 말에는 대답 조차 아니하고,
노인은 동굴 속으로 들어가 书 한권을 들고 나오더니 노생에게 던져주며 말한다.
"이 书에는 생사존망의 天数가 자세히 적혀있소. 秦王보고 이 책이나 자세히 읽어보고
长生不老草를 구하라고 하시오."그 书의 겉장에는 <天籙秘诀>이라는 네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노생은 즉석에서 <천록비결> 한두 구절을 읽어 보았다. 그러나 그 내용을 자기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책을 읽어보면, 생사 존망의 천수를 다 알수 있사옵니까?"
"물론이지. 진왕이 다소라도 슬기를 가진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보면 장생불로약을 구하는
어리석은 짓은 아니할 것이오. 이 책을 가지고 가서 진왕에게 빨리 읽히도록 하시오."
노인은 그 한마디를 남기고 인사도 없이 숲속으로 표연히 사라져 버렸다.
노생은 함양으로 돌아 와서 그 책을 시황제에게 바치면서 그간의 사정을 자세히 고하며
용서를 빌었다.始황제는 즉석에서 <천록비결>을 읽어 보았으나, 모든 문장이 隐语로 구성되어 있어서,
자기로서는 알아 볼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유명하다는 학자들을 모조리 불러들여 읽혀 보았으나
<천록비결>을 제대로 해득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시황제는 丞相李斯를 불러 말한다. "승상은 학문도 해박하고 역사에도 밝으시니, 이 책에 어떤 내용이
적혀 있는지 한번 읽어 보아 주시오." 이사도 천록비결의 내용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책의 문장은 은어로 구성되어 있어서, 쉽사리 알 길이 없사옵니다. 그러나 시일을 두고 연구해보면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옵니다." 이 책을 아무도 해득하지 못하니 시일이 걸리더라도
경이 직접 연구하여 빠른 시일내에 알려주시오.
이사는 그날부터 <천록비결>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수많은 은어들을
하나씩 계통적으로 분류 종합적으로 취합 분석하여, 석달만에 마침내 간단한 成文하나를
해득할 수 있었다. "황제폐하! <천록비결의>의 내용을 마침내 알아 볼수 있게 되었사옵니다."
시황제는 그 보고를 받고 크게 기뻐하며, "오랫동안 수고가 많으셨소이다.그래, 그 책에는 어떤 내용이
씌여 있소?" 그러나 이사는 대답을 못하고 머리만 조아리며, "내용을 알아 내기는 하였사오나,
내용이 너무나 흉악하고 차마 입에 감기가 민망스럽사옵나이다." "아무리 흉악하더라도
알것은 알아야 할것 아니오. 개의치 말고 사실대로 말해 보시오."
이사는 그래도 주저하는 빛을 보이다가, 마침내 용기를 내어 말한다. "이 책은 수많은 언어로
구성되어 있사온데, 결국은 <亡秦者胡也>라는 다섯 글자로 요약 할 수 있사옵니다," "뭐요?
<망진자호야>라면, 秦나라를 망칠 몸은 오랑캐(胡)라는 말이오?" 시황제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큰 소리로 반문한다.장장 26년 간이나 걸려서 통일해 놓은 진시황은, 大秦帝国의 망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자기가 이루어 놓은 <대진제국>은, 자기자신을 始祖로 하여, 대대손손이
통치권을 계승해 내려가게 되리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자기자신을 <시황제>라 부르고,
그 다음부터는 <이세 황제>, <삼세 황제>라고 부르도록 하라는 엄명을 내린 근거도 바로 그점에 있었다.
그런데 천만 뜻밖에도 <천록비결>에는 亡秦者胡也라는 글귀가 분명히 씌여 있다니,
시황제로서는 기가 찰 노릇이었다.그는 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서, 노생을 급히 불러들여
"그대에게 이런 요망스러운 책을 주었다는 늙은이가 어떤 놈인지, 그놈을 당장 잡아 올려라.
그놈을 짐의 눈앞에서 능지처참 하리라. 만약 그놈을 잡아 오지 못할 경우에는 그대를
능지처참할 것이니 그리 알고 반드시 잡아오라!" 하고 무시무시한 불호령을 내리는 것이었다.
노생은 어쩔수 없이, 성명 부지의 노인을 찾아 태악산에 들어갔다. 문제의 노인은 이날도
동굴 어귀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그는 잠에서 깨어나 노생을 보더니,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귀공은 나를 잡아 가려고 다시왔구려.그렇잖아도 귀공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소."
"엣!..... 제가 다시 올것을 선생은 이미 알고 계셨다는 말씀입니까?" 그런것을 몰라가지고 서야
어떻게 천수를 안다고 할 수 있겠소." "그렇다면 제가 무엇때문에 왔는지도 다 알고 계시다는 말씀입니까?"
그러자 문제의 노인은 呵呵大笑를 하면서 "진왕이라는 자가 어리석기 짝이없어서, 亡秦者胡也라는 글을
읽어보고 크게 노하여 나를 잡아 죽이려고 하지만, 天数가 이미 결정되어 있는데 나를 죽인다고
진나라가 망할 운수를 바꿀 수가 있을 줄 아시오. 힘만 믿고 천수를 모르는 전제군주라는 자들은
그토록 우매한 것들이라오. 그러니까 귀공도 어지러운 세상으로 돌아갈 생각 말고,
나와 함께 여생을 이 산중에서 보내기로 합시다." 문제의 노인은 먼 앞날까지 꿰뚫어보는 듯
돌아가기를 만류한다. 노생이 주저하는 빛을 보이자, 그 노인은 이렇게 말했다.
"귀공은 혼자서 돌아가도 죽고, 나를 붙잡아 가지고 돌아가도 결국은 폭군의 손에 죽게 될 것이오.
그러니까 나와 함께 산중에서 살아야 하오.그것도 귀공의 천수요."
노생은 그 말을 듣고 나니, 돌아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한편, 시황제는 노생이 <산중 노인>을
붙잡아 오길 날마다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달이 지나고 반년이 넘어도, 노생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시황제는 그럴수록 <천록비결>이라는 妖书에 실려있는 <王秦者胡也>라는 귀절이
신경이 쓰였다. "天下无敵인大秦帝国을 어떤 놈이 감히 망하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시황제는 자위책으로 그런 허세를 부려보았지만 마음속으로는 불안 함이 점점 더해 갔다.
그리하여 승상 이사를 불러 묻는다. "문제의 요서에 <亡秦者胡也>라고 나와 있는데 <胡>는 누구라고
생각하시오?" 이사는 심사 숙고하다가 대답한다. "胡라는 것은 오랑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오랑캐를 의미한다고?" "예, 그러하옵니다.지금 우리나라의 북쪽 변방에는 东胡와凶奴族들이 막강한
세력을 가지고 국가를 형성하고 있사옵니다.동호와 흉노가 다같은 오랑캐족들이온데
그들의 세력을 결코 무시할 것이 못 되옵니다. 생각하옵건데 <천록비결>에 나와 있는 胡란
북방 오랑캐를 뜻하는 말인듯 싶사옵니다.""음...., 듣고 보니 과연 경의 말씀이 옳은 것 같구료."
시황제는 이사의 해석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였다. (이것은 훨씬 휴일에 알게 된 일이지만,
이사의 해석은 잘못된 해석이었다. <천록비결>의 <胡>는, 오랑캐를 뜻하는 <胡>가 아니고,
둘째아들 <胡亥>의 <胡>였다. 나중에 알고보니 大秦帝国을 망친자는 오랑캐가 아니라
시황제의 둘째 아들 <胡亥>였던 것이다.
1-048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