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를 눈앞에 둔 인류 사회는 수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지만, 인간 복제도 엄청난 윤리적 파장을 몰고 올 심각한 문제의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인간을 복제한다는 일 자체가 가당찮은 일이라 생각하지만, 우리 사회의 경우 최근 어느 호사가의 조사에 의하면 대통령이 된 사람들 중 박정희 전 대통령이 복제하고 싶은 인물 1위를 차지했고, 또 복제하고 싶지 않은 인물 1위가 김영삼 대통령으로 나타났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군인 출신으로 18년간이나 독재 정치를 하다가 은밀한 술자리에서 중앙정보부장에게 암살당한 박정희 전대통령은 죽은 지 불과 또 18년 만에 가장 복제하고 싶은 대통령이 되었는가 하면, 야당 지도자로서 박정희 정권 때부터 군사 독재 정권에 맞서서 민주화 운동을 한 "공적"으로 군사 정권 30년 후 처음으로 문민 정권을 성립시킨 김영삼 대통령은, 임기를 불과 1년 남긴 시점에서 한보사태 등 엄청난 실정(失政)을 함으로써 가장 복제하고 싶지 않은 대통령이 되었다고 한다. 사람의 일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고 인심이 아침 저녁으로 변한다는 말이 실감난다고 하겠다.
해방 후 공화주의 시대 반세기 동안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 현직까지 합쳐 7명인데, 그 중 이승만 대통령은 국민의 저항으로 쫓겨났고, 윤보선.최규하 두 대통령은 자의건 타의건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는 상황이 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현직에서 암살당했고, 전두환.노태우 두 대통령은 퇴임 후 징역을 살고 있다. 그 위에 김영삼 현직 대통령은 국민들이 가장 복제하고 싶지 않은 대통령, 다시 말하면 두 번 다시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대통령이 되었다니 우리 국민의 대통령 복도 어지간히 없는 셈이다.
그런 대통령들 중에서 누가 복제하고 싶은 사람이 되건 또 누가 그렇지 않건 관심할 것 못 된다 하고 예사롭게 넘겨 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 달리해 보면, 군사 정권 30년 후 대망리에 성립된 문민 시대에 군사 독재 정권의 원조라 할 수 있을 박정희 전대통령에 대한 일종의 신드롬이 생겨나고 있다는 사실은 결코 예사롭게 넘겨 버릴 수 없는 일이 아닌가 한다. 더구나 최근에는 그를 빗대 놓고 "찬양"하는 장편 소설까지 나와서 읽히고 있다니, 이러다가는 박정희 찬양론이 본격화되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겠는가.
돌이켜보면 박정희 정권의 "유신" 체제 아래서 그 매서운 독재에 진저리치고 종신 집권이 되리라 지겨워하던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은 10.26의 돌발 사태를 들었을 때, 차마 박수까지는 칠 수 없었다 해도, "결국 그렇게 끝났구나"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새로운 민주화 시대를 기대했던 것이 사실이다. 기대했던 새로운 시대가 전두환 소장 등 이른바 신군부에 의해 박정희 정권의 재판(再版)이 될 상황이 되었을 때, 저 처절한 광주의 5.18이 터졌음을 우리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아무리 문민 정권이 기대에 어긋나는 정치를 한다 해도 그가 암살된 지 불과 20년이 채 안 되어 박정희 신드롬이 생겨나고 있다면, 우리 사회의 역사 건망증도 중증(重症) 상태라 진단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 건망증이 심한 민족 사회는 역사 실패를 거듭하게 마련이다. 도대체 박정희란 어떤 사람이었으며 어떤 정치를 하다가 암살되었는가, 다시 한 번 일깨워서 역사 건망증을 치유할 필요를 느낀다.
박정희는 누구이며, 그 정권은 어떻게 성립되었는가
불행했던 일제 강점 시대의 조선 사람으로서 제국주의 일본의 군인이 되어 그 침략 전쟁을 도운 사람들은 대개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일본 제국주의의 육군사관학교나 그 괴뢰 만주국 군관학교를 졸업하고,일본군 및 괴뢰 만주군의 장교가 된 사람들이다. 둘째는 강점 시대 말기에 이른바 지원병으로 가서 그 하사관이나 병졸이 된 사람들이고, 셋째는 역시 강점 시대 말기에 학병으로 끌려가서 간부후보생이 되거나 병졸이 된 사람들이다. 넷째는 일본 제국주의가 패망하기 직전에 강제 징병으로 끌려가서 그 병졸이 된 사람들이다.
이 가운데 학도병이나 징병도 목숨을 걸고 피한 사람들이 있었으나, 대체로는 부득이 끌려갔다고 할 수 있다. 지원병의 경우 철없이 우쭐거리며 제발로 간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나, 가난한 농촌 청년들이 살 길을 찾아서 나간 경우가 많았다. 일본의 육군사관학교에 간 사람들의 경우 대한제국 시대에 유학 갔다가 한일합방으로 그대로 일본군에 편입된 사람들이 있고, 그 밖에는 모두 제 뜻으로 간 사람들이다. 만주 괴뢰 군관학교 출신도 전적으로 제 뜻으로 간 것은 마찬가지이다.
많이 알려진 일이지만 다시 상기해 보면, 박정희 전대통령은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 사람을 모두 일본인으로 만들기 위해, 그 교육의 제일선에 세운 초등교원 양성 기관이었던 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자의로 만주 괴뢰 군관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군관학교 졸업생 중 성적이 우수하고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충성심이 강한 사람만이 갈 수 있는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유학간 후, 괴뢰 만주군 육군 중위로 근무하다가 해방을 맞았다.
해방 후 귀국한 그는 국방경비대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육군 소령으로 근무하던 중, 군대 내의 좌익 조직에 상당히 중요하게 가담했다가, 여순 반란 사건 후의 숙군(肅軍) 과정에서 다른 많은 사람들과 함께 사형을 선고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군대 내 좌익 조직 조사에 적극 협력함으로써", 또 "군의 공산당 비밀 조직을 소상히 불어 숙군 작업을 손쉽게 진행할 수 있게"함으로써 유일하게 살아 남았다.
이 일은 국방부 정보국장으로서 숙군 작업을 총지휘했던 백선엽 예비역 대장과, 1946년부터 35년간 한국에 있으면서 국방경비대 창설 요원에서 시작하여 주한미군사령관 특별고문 등을 지낸 미 육군 대위 출신 하우스만 등이 증언하고 있다. 하우스만은 특히 "한국군 내부의 거의 모든 적색 조직을 샅샅이 폭로한 것은 확실히 그의 목숨을 건질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권력에 대단히 집착한 군인이었던 것 같아서 이후 군사 쿠데타를 세 번이나 기도하여 결국 성공하게 된다. 첫 번째 기도는 이승만 정권의 첫 임기가 끝나게 되었을 때, 미국의 대한(對韓) 정책에서 벗어나면서까지 집권연장을 위해 "부산 정치 파동"을 일으킨 시점이었다. 이 때 박정희를 포함한 한국 군부의 일부가 주한미군의 지원을 받아 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한 쿠데타를 기도했으나 결행하지는 못했다.
두 번째는 이승만 정권 말기 그 독재와 폭정 때문에 국민의 지지도가 급격히 떨어지고 학생과 청년층 중심의 진보 세력이 급성장하는 사실을 미국이 우려하게 되었을 때였다. 또다시 박정희를 중심으로 하는 한국 군부의 일각에서 쿠데타 계획이 있었으나, 4.19의 폭발과 이승만의 하야로 유보되었다. 그러다가 세 번째로 장면 정권 성립 후 야기된 정치적, 사회적 혼란이 1961년으로 들어서면서 다소 가라앉고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아 갈 무렵, 박정희 소장을 중심으로 한 군부 세력이 서둘러서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하게 되었다.
하우스만은 회고록에서 5.16이 일어나기 45일 전, 즉 1961년 3월 1일자로 한국군 내에 쿠데타 계획이 있음을 그의 상부에 보고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당시 주한유엔군사령관이던 맥아더도 적어도 한 차례 이상 장도영 육군참모총장에게 군 내부의 쿠데타 기도에 주의하라고 경고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쿠데타가 일어난 2일 후인 5월 18일에는 박정희가 직접 하우스만의 집에 가서, 그와 함께 "광범위한 군사 혁명 과업들을 얘기했다"고 했다.
결국 일본 제국주의의 괴뢰 만주군 장교 출신으로서 군대 내 좌익 조직에 깊숙히 가담했다가 "한국군 내부의 거의 모든 적색 조직을 샅샅이 폭로하여" 목숨을 건진 경력을 가진 박정희 소장 중심 군사 쿠데타가, 역설적이게도 미국 쪽의 묵인과 방관과 협조 아래, 민주적으로 성립된 합법 정부를 뒤엎고 성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이후 한국은 길고도 어두운 군사 독재 시대로 들어가게 되었다. 수녀원에 3일간이나 숨어 있다가 나와서 정권을 군인들에게 넘겨 준 민주당 정권 국무총리 장면은, 외부와의 연결을 일체 끊고 숨어 있었던 이유를 질문받고 뒷날 그 진실을 밝히겠다고 했으나 결국 밝히지 못하고 죽었다.
박정희 군사 정권은 어떤 정치를 했는가
복잡한 경력을 가진 박정희 소장을 중심으로 한 군사 쿠데타를 미국이 미리 알고도 묵인, 방관, 협조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 보면, 그 가장 중요한 이유는 4.19와 장면 정권 성립 후 급격히 번져 나간 민간 평화 통일 운동의 활성화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불과 7년 전까지 북쪽 군대와 전쟁을 한 한국 군부와 미국이 한국 민중 세계의 평화 통일 운동 확산에 불안을 느꼈던 것이다.
그 때문에 박정희 세력은 쿠데타 "공약"의 첫머리에서 "반공을 국시의 제일로" 했고, 쿠데타에 성공하자마자 평화통일론을 다시 이적론으로 몰아 대규모 탄압을 가했다. 그리고 그 통치 기간 전체를 통해서 평화 통일론과 민주화론을 모두 이적론으로 둔갑시켜 엄청난 희생을 강요했음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박정희 시대에도 7.4 공동성명에서와 같이 정부 당국이 평화 통일론을 거론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이 "유신"을 하기 위한 핑계였음은 이미 알려진 일이다.
미국이 군사 쿠데타를 묵인, 방관, 협조한 덕택으로 성립된 박정희 정권은 미국의 요구에 영합하여 한일협정을 맺고 월남 파병을 했다. 한일 협정은 경제 건설 자금이 필요했음을 들어 부득이한 일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졸속한 협정 체결에서 온 부작용은 너무도 크고 중요하다. 협정 체결 후에도 일본이 계속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도 그 중의 하나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일본 제국주의가 35년간 한반도를 강제 점령한 사실이 협정문에서 완전히 빠지고, 그 때문에 배상 조약이 되지 못한 사실이다.
이 문제는 앞으로 북한과 일본의 국교 정상화 조약 체결 과정에서도 선례가 될 위험성이 있지만, 장차 한반도가 통일되고 일본과의 조약이 단일화할 경우에도 역시 일본 제국주의가 한반도를 침략하고 강점한 역사적 사실이 은폐될 가능성이 크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이 경우 20세기 전반기 한.일간의 역사적 진실은 영원히 왜곡될 것이다. 이것이 어찌 얼마간의 경제 개발 자금과 바꿀 일이겠는가.
월남전쟁 희생자들에게는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지만 통일된 월남과 국교를 맺으면서 참전에 대한 유감을 표시한 사실을 보면, 월남 파병의 역사적 의미도 반공 전선 확대라는 명분이 그다지 서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월남 민족의 통일을 방해한 일이 되었다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파병이 우리의 경제 건설에 도움이 되었다고 말하면 또 용병이니 하는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게도 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영구 집권 계획으로서의 3선 개헌이나 "유신"체제로의 전환이 반역사적 사실이었음은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변칙적 3선 개헌 후의 선거 과정에서 야당의 김대중 후보는 박 정군이 총통제를 실시하리라 예언했다. 이에 대해 박정희 후보는 당선만 시켜 주면 다시는 더 출마하지 않겠다고 눈물로 호소했고, 국민들은 그 말을 믿고 재당선시켰다. 그러나 그는 3선이 되자마자 "유신"체제로의 전환을 구상했고, 남북 대화를 핑계로 유신을 단행한 후 통일주체국민회의의 간접 선거로 6년 임기 대통령이 되고 영구 집권의 길을 열었다.
이런 폭정에 저항하는 유신 헌법 개정 운동이 일어나자 그는 헌법에 대한 부정, 반대, 비방 행위와 그 개정, 폐지를 주장하는 일, 개정이나 폐지를 발의, 제안, 청원하는 행위 일체를 금지하는 긴급조치를 발동하는 전대미문의 정치적 폭거를 감행했다. 그러나 결국 부마항쟁과 YH 여성 노동자 농성 사건 등을 겪고 당시 중앙정보부 부장인 김재규에게 암살당했다.
박정희 정권 18년간을 통해 가장 두드러진 업적으로 흔히 경제 건설을 든다. 박정희 신드롬도 설마 그의 독재 정치를 흠모해서 생긴 것은 아닐 것 같고, 대부분 성공적인 경제 건설에서 온 것이 아닌가 한다. 그의 집권기간에 수출 신장률이 연평균 40.7% 증가했다.
구체적으로는 1960년에 약 3300만 달러에 불과했던 수출액이 1977년에는 100억 달러를 넘었다. 그 밖에 외자 저축 증가율이 연평균 20%나 되었으며, 경제 성장률이 연평균 8.9%나 되었다. 이 같은 경제 성장은 1966년에서 1970년 사이에 59개 개발도상국 중 경제 성장률 1위, 수출 신장률 1위, 제조업 고용 증가율 2위를 차지하여 국제적으로 모범적 성장국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그 성과도 결코 박정희 대통령 개인의 것일 수 없다. 우리 민족은 중세 시대까지 아시아 지역에서는 중국을 제외하고는 문화 수준이 가장 높은 민족이었다. 서양식 근대화에 한 걸음 앞선 일본의 침략으로 그 식민지가 되었으나, 해방과 함께 중세 시대의 문화적 기반을 바탕으로 높은 교육열을 발휘하여 경제 개발을 담당할 만한 많은 인재를 양성했다. 1960년대로 오면서 6.25의 피해를 딛고 한 단계 높은 경제 건설을 추진할 준비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 때문에 4.19 후의 민주당은 7.29 총선거의 공약으로 부정 축재 회수, 특혜와 독점의 배제, 국민 소득의 공정한 분배, 실업자 구제, 농어촌 부흥, 중소기업 육성, 금융의 대중화 등을 내세웠다. 선거 결과 성립된 장면 정권도 총투자액 400억 원 규모의 "국토건설사업"을 계획하는 한편, "중소기업육성을 위한 종합 대책"을 마련하고 경제 개발 개혁을 세워 자립 경제 수립의 기초를 마련하려 했다. 그러나 극심한 정쟁 때문에 미처 착수하지 못하다가 5.16으로 무산되고 말았다.
박정희 정권에 의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경제 개발은 결코 집권자 개인의 능력이나 추진력에 의한 것이 아니다. 1950년대 전쟁의 시기를 겪고 1960년대의 우리 사회에 되살아나고 있었던 건설 의욕과 그 가능성에 박정희라는 개인의 추진력 등이 합쳐져서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1960년대의 경제 개발은 특정인 박정희가 아니라도 다른 지휘자에 의해서도 추진될 수 있는 일이었다.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의욕과 능력이, 일본 제국주의 교육을 받은 그 괴뢰 만주군 출신으로서 일본과의 유착에 의한 경제 건설에반 몰두했던 박정희라는 군인 출신 지휘자에 의해 급진적으로 또는 졸속적으로 개발되고 이끌려짐으로써, 점진적 자립 경제 수립의 길이 아닌 급격한 외채 경제 체제 수립의 길로, 또 민주당 정권이 의도했던 중소기업 중심 체제가 아닌 재벌 경제 중심 체제로 나아갔다고 할 수 있다.
재벌 중심 경제 체제로 간 결과 정경유착이 고질화되어 박정희 대통령의 후계자들인 전두환, 노태우 등 두 전직 대통령의 천문학적 비자금을 낳게 했고, 문민 김영삼 정권에 와서도 그 후유증 때문에 국가 경제 전체가 흔들리게 되었다. 우리 경제가 언제쯤에나 재벌 중심의 경제 체제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예상하기 어렵지만, 문민 정권까지를 마구 뒤흔든 재벌 경제 체제와 독재 권력 결합의 산물인 정경유착의 원조가 바로 박정희 전대통령이었음을 부인하지 못한다.
박정희 정권을 역사적으로는 어떻게 볼 것인가
하나의 정권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결코 어느 한 부분만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고, 그 정권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업적을 종합해서 평가하게 마련이다. 1950년대 전쟁의 시대를 지나 1960년대의 재건 의욕이 높아진 사회적 분위기를 업은 박정희 정권이 이후 20년간 어떤 정치를 했는가를 따져 봐야 한다.
정치적으로는 유례가 드문 독재 체제였음을 부인할 수 없으며, 사회적으로는 권력 및 경제력의 격심한 편중으로 엄청난 불평등과 갈등을 낳아 전태일 등 노동자의 전에 없던 분신 자살 사건 등이 있었는가 하면, 문화적으로는 각 분야의 깊숙한 곳까지 군사 문화의 획일성, 경직성, 졸속성, 조악성 등이 스며들어 지금도 그것을 씻어 내기 어렵다. 다만 경제 부분에서 유일하게 일정한 성공이 있었다고 하지만, 그것도 재벌 중심 체제에서 오는 부의 편중 현상 등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어서 지금도 그 폐해가 계속 드러나고 있다.
박정희 정권에 대한 평가를 이렇게 해놓고 보면, 그때는 경제 건설과 절대 빈곤에서 당장 벗어나기 위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지 않았는가 하고 변명해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길 법하다. 그런 것을 역사 이해에서의 "상황주의"라 할 수 있는데, 역사적으로 부정적인 사실일지라도 그때의 상황으로서는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해 버리면, 역사적 진실이니 가치니 하는 것이 인정되지 않게 된다. 역사적으로 옳고 그른 것의 구분이 없어지면, 이완용도 그때 상황으로서는 어쩔 수 없었고 이광수도 어쩔 수 없었다는 식의 역사 인식이 되고 말 것이며, 역사에서 배울 것이 없어지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역사는 귀걸이 코걸이가 되고 말 테니까.
그러나 모든 개인의 생활에 목표와 이상이 있는 것처럼 민족 사회나 인류 사회 전체도 일정한 이상과 나아갈 방향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향해 그 구성원들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역사적 이상과 목표가 없고, 옳고 그른 것의 구분이 없다면, 민족 사회나 인류 사회 전체가 취생몽사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민족 사회나 인류 사회는 결코 취생몽사하는 것이 아니며, 어떤 이상을 위해 그리고 가치 있는 것을 향해 부단히 전진하고 있는 것이다.
민족 사회와 인류 사회 전체의 발전을 위해 인간의 역사가 끊임없이 걸어왔고 또 가고 있는 방향을 우리 생각대로 간추려 말해 보라 하면 이렇다. 정치적으로는 모든 사람이 권력의 속박에서 해방되는 길, 경제적으로는 생산력이 발전하면서도 그것에서 얻어진 재부(財富)가 부단히 균점(均霑)되는 길, 사회적으로는 만민 평등을 지향하는 길, 문화와 사상적으로는 사람만이 가진 고귀한 속성으로서의 생각하고 말하는 자유가 계속 확대되는 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길에는 굴곡도 있고 난관도 있지만, 자치있는 삶을 추구하는 대다수 사람들의 의지에 의해 결국 열리게 마련이었다.
박정희 정권 18년간의 통치를 되돌아보면, 정치적으로는 국민 개개인에 대한 권력의 속박이 어느 때보다도 더 강화된 시기였다. 경제적으로 생산력은 일단 향상되었으나, 그것으로 얻어진 재부가 일부 재벌 중심 세력에게 극도로 편중되어 빈부 격차가 극심해진 시기였다. 사회적으로는 권력과 재력의 편중 때문에 군부와 재벌 중심의 특권 계급이라 할 만한 것이 생길 만큼 만민 평등에 역행한 시기였다. 사상, 문화적으로도 전에 없던 중앙정보부를 두고 이른바 안보 논리를 앞세워 사람들의 생각하고 말하는 자유를 극도로 제한한 시기였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지금 일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박정희 신드롬은 역사 건망증이 원인인 반역사적 현상임이 분명하다.
(1997년 5월)
.
박정희
영구 집권을 위한 10월 유신헌법
유시민의원이
그랬지요. `박근혜씨가 독재자의 딸이어서가 아니라 박정희의 독재를
미화하기 때문에 비판한다`고...
요즘
젊은 세대는 도대체 박정희가 어떻게 했길래 그러는지 잘 모르실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20여년 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학교에서도 잘 가르치지
않습니다.
저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박정희가 평생 대통령을 하기 위해서 어떻게 헌법을
유린했는지를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런 독재체제로부터 지금의
자유로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려 싸웠는지를
생각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우리가 친일파의 후손들이 떵떵거리고 살고 있다고 가슴 아파하면서도
20여년 전, 국민들을 속이고, 국민들의 입을 틀어막고, 눈을 가리고,
곤봉을 내려치면서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누려왔던 독재세력의 잔재에
대해서는 너무도 모르고 있다고 생각해서..이 자료를 내놓습니다.
박정희와
전두환은 하나입니다. 박정희의 계승자가 전두환입니다. 그리고 전두환과
노태우가 대법원으로부터 반란의 수괴로 유죄판결을 받은 이상, 그가
조직한 국가보위입법회의와 민정당은 범죄단체라고 해도 크게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민정당이 신한국당으로 이름을 바꾸고, 신한국당이 한나라당으로이름만
바뀌었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지금도
그 10월 유신의 독재세력은 정계, 관계, 학계, 재계, 문화계의 상층부에서,
지역의 유지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반면, 이들과 싸웠던 민주인사들은
여전히 `좌경용공분자`로 낙인찍혀 살아갑니다.
친일잔재,
독재잔재를 청산하지 않고서는 우리 역사는 한 발도 나갈 수 없습니다.
박정희가
5.16 쿠테타 이후 부정선거로 대통령을 3번하고나서, 평생 집권을 위해서
1972년에 게엄령을 선포한 후에 만든 유신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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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조
①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국민은 그 대표자나 국민투표에 의하여 주권을 행사한다.
☞
국민은 대표자인 국회의원이나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을 통해서만
주권을 행사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국민들의 주권행사를 막았습니다.
지금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되어 있지요?
제3장
통일주체국민회의
☞
이 조직이 바로 국민들의 주권을 강탈하기 위해서 박정희가 만든 꼭두각시들의
모임입니다. 이른 바 10월 유신의 핵심입니다.
제35조
통일주체국민회의는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추진하기 위한 온 국민의
총의에 의한 국민적 조직체로서 조국통일의 신성한 사명을 가진 국민의
주권적 수임기관이다.
제36조
①통일주체국민회의는
국민의 직접선거에 의하여 선출된 대의원으로 구성한다.
②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의 수는 2,000인이상 5,000인이하의 범위안에서 법률로 정한다.
③대통령은
통일주체국민회의의 의장이 된다.
④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의 선거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제37조
①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으로 선거될 수 있는 자는 국회의원의 피선거권이 있고 선거일
현재 30세에 달한 자로서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하여 국민주권을 성실히
행사할 수 있는 자라야 한다.
②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으로 선거될 수 있는 자의 자격에 관하여는 법률로 정한다.
③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은 정당에 가입할 수 없으며, 국회의원과 법률이 정하는 공직을
겸할 수 없다.
④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의 임기는 6년으로 한다.
제38조
①대통령은
통일에 관한 중요정책을 결정하거나 변경함에 있어서, 국론통일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통일주체국민회의의 심의에 붙일 수 있다.
②제1항의
경우에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재적대의원 과반수의 찬성을 얻은 통일정책은
국민의 총의로 본다.
제39조
①대통령은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토론없이 무기명투표로 선거한다.
②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재적대의원 과반수의 찬성을 얻은 자를 대통령당선자로 한다.
③제2항의
득표자가 없는 때에는 2차 투표를 하고, 2차 투표에도 제2항의 득표자가
없는 때에는 최고득표자가 1인이면 최고득표자와 차점자에 대하여, 최고득표자가
2인이상이면 최고득표자에 대하여, 결선투표를 함으로써 다수득표자를
대통령당선자로 한다.
☞
박정희가 죽을 때까지 집권하기 위해서 만들어놓은 제도입니다. 체육관에
통일주체국민회의 사람들을 모아놓고, 토론없이 대통령 선거를 합니다.
감히 박정희가 대통령을 해야 되느니 하면 안되는니 하는 불경스러운
토론을 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지요. 이를 통해서 박정희와 전두환이
대통령을 해먹었습니다.
1972년 12월 23일 단일후보인 박정희 대통령이 재적의원 2,359명이 참석한 가운데 실시된 투표에서 서울시, 부산시, 도별로 마
련된 11개
기표소에서 투표를 실시한 결과 찬성 2,357표, 무효 2표로 박정희가 제8대 대통령이
자리에 다시 앉습니다. 2359명중 반대표가 단 1표도 나오지 않았지요.
국민들이
대통령을 내손으로 뽑아야 한다고 나선 것이 1987년의 6월 시민항쟁이었습니다.
대략 20년만에 대통령선거를 하게 된 것이지요. 이렇게 대통령 선거를
내손으로 하기 위해서 20년을 싸웠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시민과
학생들이 군사독재권력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고,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그런
투쟁을 통해서 얻어낸 대통령 선거권은 매우 소중한 것입니다. 그 때문에
노무현대통령이 소중하기도 하구요.
제40조
①통일주체국민회의는
국회의원 정수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수의 국회의원을 선거한다.
②제1항의
국회의원의 후보자는 대통령이 일괄 추천하며, 후보자 전체에 대한 찬반을
투표에 붙여 재적대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대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당선을 결정한다.
③제2항의
찬성을 얻지 못한 때에는 대통령은 당선의 결정이 있을 때까지 계속하여
후보자의 전부 또는 일부를 변경한 후보자명부를 다시 작성하여 통일주체국민회의에
제출하고 그 선거를 요구하여야 한다.
④대통령이
제2항의 후보자를 추천하는 경우에,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선거할 국회의원
정수의 5분의 1의 범위안에서 순위를 정한 예비후보자명부를 제출하여
제2항의 의결을 얻으면, 예비후보자는 명부에 기재된 순위에 따라 궐위된
통일주체국민회의선출 국회의원의 직을 승계한다.
☞
유신헌법의 또하나의 희극이 바로 이 조항입니다. 당시 국회의원 선거법에
의하면 한 선거구당 2명을 뽑습니다. 그래서 보통 박정희의 민주공화당이
한명 뽑히고, 야당이 한명 뽑힙니다. 개중에는 민주공화당만 2명 뽑히는
농촌선거구도 있었습니다.
여기에
박정희가 전체 의석의 1/3을 추천해서 통일주체국민회의가 이를 선출합니다.
이것은 100% 통과지요. 이들의 이름이 바로 유신정우회(유정회)라는
조직입니다. 세상에 대통령이 국회의원의 1/3을 지명하는 나라가 민주공화국입니까?
웃기는 것은 박정희가 세운당의 이름이 민주공화당입니다.
이렇게
되면 국회의 의석분포는
박정희의
유신정우회 (1/3) + 박정희의 민주공화당 (1/3 + α ) + 야당 으로
됩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박정희가 국회의 2/3 이상을 장악하는
것이지요.
자연스럽게
국회는 박정희가 내어놓은 법안, 예산안을 절대 다수로 통과시키는 거수기들의
집합소가 되었지요. 아무리 야당이 국민들의 지지를 받더라도
국회 과반수는 상상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제41조
①통일주체국민회의는
국회가 발의·의결한 헌법개정안을 최종적으로 의결·확정한다.
②제1항의
의결은 재적대의원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
희극적인 통일주체국민회의는 박정희가 장악한 국회에서 헌법개정안을
발의하면 이를 확정하는 권한이 있습니다. 때문에 헌법의 개정에 대해서
국민은 아무런 권한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이게 박정희가 만든 10월
유신입니다.
제42조
통일주체국민회의의 조직·운영 기타 필요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제53조
①대통령은
천재·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경제상의 위기에 처하거나,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공공의 안녕질서가 중대한 위협을 받거나 받을
우려가 있어, 신속한 조치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할 때에는 내정·외교·국방·경제·재정·사법등
국정전반에 걸쳐 필요한 긴급조치를 할 수 있다.
②대통령은
제1항의 경우에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이 헌법에 규정되어 있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잠정적으로 정지하는 긴급조치를 할 수 있고,
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관하여 긴급조치를 할 수 있다.
③제1항과
제2항의 긴급조치를 한 때에는 대통령은 지체없이 국회에 통고하여야
한다.
④제1항과
제2항의 긴급조치는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
⑤긴급조치의
원인이 소멸한 때에는 대통령은 지체없이 이를 해제하여야 한다.
⑥국회는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긴급조치의 해제를 대통령에게 건의할 수
있으며, 대통령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에 응하여야 한다.
☞
박정희는 국회를 장악하고도 불안했던지 긴급조치라는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이 제도에 의하면 대한민국은 항상 게엄령과 같은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보시는 것처럼 박정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국민의 기본권을 정지하고,
심지어 법원의 권한까지도 정지할 수 있습니다. align="right">
다시말해서
게엄상태를 유지하면서, 입법부 뿐 아니라 사법부까지 장악한 셈이지요.
그래서 이것을 총통제라고 하는 것입니다.
당시
긴급조치 1호, 4호 같은 것을 보면 기가 막힙니다.
헌법에
대하여 일체의 논의를 금하였으며 이를 어기면 영장없이 체포되어 구속되고,
비상군법회의에서 15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습니다
아니..
어느 나라에 헌법이 잘못되었다고 말을 한다고 15년 징역을 살리는 곳이
있습니까?
하지만
박정희는 그렇게 했습니다. 그래서 박정희 헌법을 비판한 사람들이 군법회의를
거쳐서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을 마구 욕하고 비판이 아니라 비방하고 모욕합니다.
조중동 신문은 없는 것도 펑튀기를 해서 보도를 하지요.
박정희
독재는 헌법에 대해서 비방하면 영장도 없이 군법회의에 넘겼습니다.
이걸 독재라고 하는 겁니다.
군사독재의
계승자들인 한나라당과 자민련이 노무현정권을 독재정권이라고 합니다.
기가 막힙니다.
제59조
①대통령은
국회를 해산할 수 있다.
②국회가
해산된 경우 국회의원총선거는 해산된 날로부터 30일이후 60일이전에
실시한다.
☞
박정희는 허수아비 국회도 불안했던지 국회해산권을 장악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라고 국회를 해산합니다. 위 조항을 보면 그 이유도
정하지 않았습니다.
제82조
①국회의
정기회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매년 1회 집회되며, 국회의 임시회는
대통령 또는 국회재적의원 3분의 1이상의 요구에 의하여 집회된다.
②정기회의
회기는 90일을, 임시회의 회기는 30일을 초과할 수 없다.
③국회는
정기회·임시회를 합하여 년 150일을 초과하여 개회할 수 없다.
다만, 대통령이 집회를 요구한 임시회의 일수는 이에 산입하지 아니한다.
④대통령이
임시회의 집회를 요구할 때에는 기간과 집회요구의 이유를 명시하여야
한다.
⑤대통령의
요구에 의하여 집회된 임시회에서는 정부가 제출한 의안에 한하여 처리하며,
국회는 대통령이 집회요구시에 정한 기간에 한하여 개회한다.
☞
박정희는 국회가 활발한 활동을 하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국회가 놀고 먹는다고 뭐라고 하는데, 박정희는 국회가 1년에 150일
이상 열어서는 안된다고 못박았습니다. 그대신 자신이 필요할 때에는
국회를 열도록 했습니다. 국회 소집을 국회의장이 하는게 아니라 대통령이
합니다.
※
기타 자료 : 박정희가 잡아간 사람들
유신체제 아래 자행된 인권탄압의 실상은 장기간에 걸쳐 극히 광범위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개별 사례를 분석하기에는 지면이
허락하지 않을 정도이다.
여기서는 1970년대 양심수 구속.구류 사례만을 대상으로 통계적 차원에서 인권탄압의 특징을 정리하고자 한다. 한국기독교협의
회 인권위원회의 조사에
의하면 1970년부터 1979년까지 양심수의 총계와 관련 법조항 그리고 직업별 분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관련법규와
구속(구류)자 수 국가보안법.반공법 261명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 72명
공무집행방해및폭행 38명
국가보위법.노동법
46명 게엄포고령 53명
내란죄 8명 방화죄 9명
경범죄처벌법 1,184명
긴급조치 1호 48명
긴급조치 4호
142명
긴급조치 9호 580명
소요죄 108명
기타.미상 155명
양심수의 직업 학생.청년 1,197명
노동.농업242명
성직자 82명
종교단체종사자 50명
언론인.문인 84명
교직 52명
정치인 70명
회사원.연구원 33명
군인.공무원 5명
상업.사업 35명
무직 25명
기타 6명
미상 805명
* 구류자는 일괄 경범죄로 분류. `기타`에는 범인은닉죄, 선거법 등 위반, ` 미상`은 적용법률이 불명확한 경우. 1979년 구류
자가
많은 것은 `부마민중항쟁` 때문임.
고려대학교 교수 강만길은 호남사람으로 악당이네.....박정희 =전두환이다 라고 평가를 하고 학생들에게 엉터리로 가르쳤다고 본다. 교수가 지역감정으로 학생들에게 옳바르지 않게 가르치니 한심하다.쯧쯧 이것도 교수의 자료라고 보는가? 보리고개 배고픈시절을 지낸 60대~70대 그시대를 살았던 훌륭한선생님 정호영
교장선생님(정년퇴직)과 김용희 교장선생님(명예퇴직)께 난 반듯하게 역사를 배웠다. 가난한나라는 미국의 밥이 되어도 좋다는 말인가? 36년 일제 탄압에서 독립운동가들이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얼마나 외쳤는가? 첫째도 나라,둘째도 나라가 있어야 된다. 나라 없는 서러움은 40대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
은 박정희 대통령을 정확하게 평가하지 못한다. 한사람의 대통령을 악평하며 떠드는자는 북한에 살아봐야 알고,이라크에 살아 보아야 그분의 고마움을 알게 될것이다. 국력은 힘이요.부강하게 잘사는것은 바로 미국이라는 나라가 한국을 업신여기지 않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이다. 사심이 없는 분이 어찌 ~
원귀되어 통곡하는 피맺인 소리가 다시금 방방곡곡에 메아리처 들려올 듯 하다~ 아버지가 했던 개인생각이든 혼자지나온 역사인양 이곳에 올린것은 나만큼은 정녕 거절하고파 한마디 거들어봅니다~ 홀라당=발라당ㅎㅎ~ 늘 건필하시구 간접적으로 가끔은 보고 있데이~건강은 산에 잘다니고 있음으로~~~~
님의 박대통령 비판 내 복사 다해 놓았음ㅡㅡ> 전화 한통이면 박근혜씨와 연락됨. 우리의 진정한 적은 북한 김정일이지 왜 박대통령이오!~ 독재정치는 김정일이오. 가난과 배고픔/해방시켜준 이가 바로 박대통령이오. 내가 카페지기라면 당신을 추방시키고 싶소이다. 박근혜씨가 당신을 해꾸지 하던가요? 다칩니다.
어제 어버이날인데.......박근혜씨는 아버지 어머니 다 총살당하고~~~~~얼마나 울었겠소.불쌍하지도 않습니까? 김재규 그 친구가 모든것을 사전에 음모계획하고 만찬석자리를 만들었다오.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하려고~차지철을 더 신임을 하기때문에 시기 질투에서 살인한거요. 결국은 사형당하였지만, 비극이요.비극!
존경할 만한 또 한사람 탄생했군..우리 지금 국민교육헌장을 외우고 국기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던 유신시대에 살고있나..아직도 이렇게 착각을 하고 사는 사람이 있군..부산의 부마사태가 왜 일어났는지 반지님은 알고 있는지, 생각이나 해봤는지....?? 정말 읽을 때마다 짜증나는군...!!
손에 쥐어줘도 돌인지 떡인지 분간못하고 남의 말또한 전혀 귀담아 듣지 않는 독불장군이니 평생 저렇게 살수 밖에..무식한 것은 죄가 아니지만 배우려 하지 않는 자세, 모르면서 아는척 하는것, 깨우쳐줘도 알아듣지 못하는 어리석음은 죄가 되는것..이제 그만 엉터리같은 소리로 게시판 도배 그만하길....!!
닥치시오!~~~~그러면 김대중 재임기간에 왜 남북통일 하나 못이루었소!~2007년 정동영씨가 되나 박근혜가 대통령 되나 두고 봅시다. 노령화시대 그분들의 진솔한 평가를 국민 투표에 한번 봅시다.~ 60대,70대의 보리고개 주인공이 산증인 입니다. 두고봐요 여인천하시대가 안 열리나? ~~~정동영 그사람 말실수 했소.
정치는 행동으로 해야지..............앵커출신이라 말은 번지르르 잘하더군요. 희망의정치!~하자고 ....박근혜씨는 실천하는 정치를 하자고 제의~~~~~4년후에 결과가 나오겠지. 두사람이 결정할일도 아니고 판단할일도 아니고..........자신의 일이나 충실합시다. 나 당신 처음보는닉이지만 기분 무지 나쁘다.
학계에서 인정받은 교수까지도 발아래로 보고 저명한 역사학자보다 자신의 시골학교 교장이 더 위대하다고 떠벌이질 않나, 할말없으니(사실은 누군지 모르니까) 난데없이 호남을 들먹이는 꼴이라니!! 정말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하더니 최소한의 상식도 없이 마구 떠드는 모습이 정상상태인가 의심스럽군..ㅋㅋ
이건 의견이 아니라 숫제 박근혜 광신도,한나라당 선전선동이군..4년후 선거운동을 벌써부터 하나? 간판 하나 바꾼다고 본질까진 달라지진 않는다는걸 모르는 모양이군. 여기엔 그따위 엉터리같은 말에 넘어갈 님들 없으니 한나라당이나 가서 충성하길!! 닥쳐야 될것은 바로 당신이야~!
악당? 정말 웃기는군.지금 만화영화 보시나? 성인이면 최소한 단어선택하는 법부터 좀배우길..이렇게 수준이하니 한나당에서도 안받아주겠다..갸들도 이번 총선에서 물갈이가 많이 됐거든..ㅋㅋ 그리고 핵 그렇게 염려되면 최다 핵보유국인 미국이나 강대국에 대해서는 왜 한마디 말도 못하시는지? 쯧쯧..
애국심이 활활 불타는 마음 내 알겠읍니다. ~~~~~~~~~~~깊은강님도 앞으로 그 넘치는 에너지를 나라를위해 투자하십시오. 오늘 즐거웠읍니다. 우리의 숙제는 안전과 행복입니다. 가정에 충실합시다. 나라 걱정은 이 정도로 그칩시다. 역사는 흐릅니다. 우리가 걱정 한다고 됩니까? 속만 타지요. ㅎㅎㅎ 밥하러 갑니다
비공개가 아니라 카페에서 수정하라는대로 다했는데 뭐가 불만이지? 로빈훗, 불의에 맞서 힘없는 이들을 위해 싸우는 정의로운 의적인줄 알았더니 이제보니 친일파, 독재자나 칭송하고 힘센 미국에 무조건 굽실거다니 앞뒤가 안맞는군..로빈훗 더이상 욕뵈지 말고 닉이나 바꾸는게 어떠신지?
여기도 만화영화 한편..북한은 악당이고 미국은 착한 사람이라 ㅋㅋ 로빈후드님은 김정일이 북한주민 200-400만 학살하는거 봤나?근데 뉴스에 왜 안나왔지? 지금 미국의 학살과 인권유린은 세계가 다보고 있으니 부정할순 없고..음,그렇다면 북한은 우리보다 약하니까 마음껏 인권이니 뭐니 욕해도 되고 미국은 힘센 나라
니까 아무리 잘못해도 말하면 안된다? 적어도 인권에 대해서 논하려면 최소한 공정한 잣대는 가지고 있어야지 이렇게 왔다갔다하니 아무도 안믿지.이젠 이런 레파토리 지겨울때도 됐는데 뭐좀 다른 히트곡 없나..이번 용천사고에서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이 변한 이유..이런말론 더이상 장사가 안된다는걸 깨달았기 때문이지!
로빈후드님이 비공개라는 것이 아니라 유리반지님이 그렇다고 얘기 한거죠 로빈후드님이 먼저 훌라당님, 들향기님, 깊은강님들이 비공개라고 하셔서 일러 드린것 뿐이네요 그렇게 자세히 설명 안 하셔도 됩니다 알고 싶지가 않네요 글 흐름을 자세히 읽으시고 답변하세요. 님의 프로필은 제가 아까 열어 보았거던요.
로빈훗드님...죽을 죄를 졌사옵니다....실은 지가 배운게 없어서 비공개로 했슴다.....으하하하하하하~(웃는 이유)유리반지님의 "님의 박대통령 비판 내 복사 다해 놓았음ㅡㅡ> 전화 한통이면 박근혜씨와 연락됨"...이 대목에서 강금실 법무장관의 .."코메디야~~코메디~~!
첫댓글 글쎄 고마해!지금 바빠죽겠는데 언제 이글 다 보고 나가라고 우리 친척 옵빠도 박 정권때 데모하다 고문받고 돌아 버렸어 허나 어찌해?역사에 흐름인걸 홀라당 옵빠마음은 알겠는데 꼭 찍어 먹어봐야 맛을 아는건 아냐 안먹어 봐도 알수잇는것이 맛이야 옵빠 내일 덕유산에서 만나자 알았찌?
홀라당님, 눈 아파요. 좀 정리를 해 주세요
라당님아...밥은 묵고 옯겼나?? 이구 마 고마하고 밥묵고 낼 보자~~~~앙.
어렸을때 부터 박정희의 이름은"개새끼 " 인줄 알았읍니다. 울 아버지 티.비 뉴스만 보면 하는 소리였으니까요 인터넷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던 사람들 뭘 좀 알게 될것같네요 존경한다고 글쓴분도 넘 몰라서 그랬겠지요?
ㅎㅎ태상경님 아버님과 울 아버님은 동기동창이셨나 봅니다
근데 그 개새끼 한테 가서 난 " 충성" 했으니 울 아버지 까무라치기 일보직전이었지요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사람 =대단한 사람
고려대학교 교수 강만길은 호남사람으로 악당이네.....박정희 =전두환이다 라고 평가를 하고 학생들에게 엉터리로 가르쳤다고 본다. 교수가 지역감정으로 학생들에게 옳바르지 않게 가르치니 한심하다.쯧쯧 이것도 교수의 자료라고 보는가? 보리고개 배고픈시절을 지낸 60대~70대 그시대를 살았던 훌륭한선생님 정호영
교장선생님(정년퇴직)과 김용희 교장선생님(명예퇴직)께 난 반듯하게 역사를 배웠다. 가난한나라는 미국의 밥이 되어도 좋다는 말인가? 36년 일제 탄압에서 독립운동가들이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얼마나 외쳤는가? 첫째도 나라,둘째도 나라가 있어야 된다. 나라 없는 서러움은 40대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
은 박정희 대통령을 정확하게 평가하지 못한다. 한사람의 대통령을 악평하며 떠드는자는 북한에 살아봐야 알고,이라크에 살아 보아야 그분의 고마움을 알게 될것이다. 국력은 힘이요.부강하게 잘사는것은 바로 미국이라는 나라가 한국을 업신여기지 않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이다. 사심이 없는 분이 어찌 ~
전두환 욕심장이와 같은가? 전두환 /노태우/김영삼 대통령은 다 자기 욕심을 차린사람이지만 박대통령은 투명한 정치를 한사람이다. 정호영 ,김용희선생님은 바르게 가르쳐 주셨다. 그리고 그분들은 훌륭한 선생님이라고 생각한다.
5.16 군사혁명~박정희씨가 살기좋은 나라를 이룩하기 위해 어쩔수 없는 투쟁이었다. 그러나 10년간 눈부신 나라 발전의 기초석을 다진사람은 아무래도 박대통령임에 틀림없다. 외세로 자주국방을 튼튼히 하였고 안으로는 경제발전에 도모하였다.
유리반지님..혹 정수장학회라고 아시나요...부산일보에 100% 지분을 갖고있는 재단이죠..그 재단 이사장이 박근혜입니다..박그네 그 분 평생 돈 벌어봤나요???어떻게 해서 그렇게 큰 재단을 운영하죠??
그래서 님이 틀렸다는겁니다..뭘 모르고 가만히 있으면 이쁘다고 할텐데..박정희 청렴결백 했다고요?..지나가는 소가 웃습니다....
그리고 나 부산놈이요...호남사람이 뭐 어쨌다는겁니까? 호남사람이 유리님한테 헤코지했습니까???당신이 틀렸다는건 벌써 지역이라는 감정...그것도 아직 못 놓고 있다는겁니다...
홀라당~아 쪽이당 ^^어찌하여 길게는 단군신화에 뿌리인것을.. 지역감정은 무신쯧쯧~그대의 애국가독창에 이나라에 한중탱이로 흰머리휘날리며 뜨거운 애국심에 다시금 감탄 지역에편견을 갖는사람이 누구를존경합네~ 가심에 뭉처있는울분을 건드리는지 무식한 뇨자를 구경하고프당~그때그시절 쥐도새도모르게꺼저간 영혼들
원귀되어 통곡하는 피맺인 소리가 다시금 방방곡곡에 메아리처 들려올 듯 하다~ 아버지가 했던 개인생각이든 혼자지나온 역사인양 이곳에 올린것은 나만큼은 정녕 거절하고파 한마디 거들어봅니다~ 홀라당=발라당ㅎㅎ~ 늘 건필하시구 간접적으로 가끔은 보고 있데이~건강은 산에 잘다니고 있음으로~~~~
홀라당 오라버니 유리반지님과 같은 부산사람이네~~~이제 고만하고 유리님과 악수하세요. 요기 많은회원들이 보는곳이므로 홀라당오빠가 반지님에게 욕하는것은 홀라당님이 지는것입니데이.....경상도 사람끼리 참말로 웃긴데이......경상도사람 무르다카더만...홀라당님을 두고하는 말이네. 저녁 먹었나요? 오라버니..
대통령 18년 ~저축하면 그정도는 되겠네예~`왜 그캅니꺼? 노무현 대통령도 차곡차곡 재산 모으대예~~1년만에 2억씩 불어나대예~~그만 하이소ㅡ오라버니가 다칩니데이....보니깐 49세던데. 실력 쌓아서 억울하면 축세 하이소 마!~ 출세 하이소...난 46세인데 아직은 괜찮아예~언제 한번 만나서 술한잔 사주이소예~~
로빈훗드님...제 얘기가 님의 어두운과거를 들춰 냈습니까? 님의 과거가 어두웠습니까? 윗글이 님의 과거와 일맥상통하십니까..이 방에 이런 얘기조차 못 쓰고 토론이 안된다고 하면 아직도 우리가 유신시대 있는거겠죠?
홀라당님!~~ 정신 차리소!.....부산일보 차장인 남동생한테 물어보면 님의 거짓말이 다 들통나요. 알것소,
님의 박대통령 비판 내 복사 다해 놓았음ㅡㅡ> 전화 한통이면 박근혜씨와 연락됨. 우리의 진정한 적은 북한 김정일이지 왜 박대통령이오!~ 독재정치는 김정일이오. 가난과 배고픔/해방시켜준 이가 바로 박대통령이오. 내가 카페지기라면 당신을 추방시키고 싶소이다. 박근혜씨가 당신을 해꾸지 하던가요? 다칩니다.
어제 어버이날인데.......박근혜씨는 아버지 어머니 다 총살당하고~~~~~얼마나 울었겠소.불쌍하지도 않습니까? 김재규 그 친구가 모든것을 사전에 음모계획하고 만찬석자리를 만들었다오.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하려고~차지철을 더 신임을 하기때문에 시기 질투에서 살인한거요. 결국은 사형당하였지만, 비극이요.비극!
존경할 만한 또 한사람 탄생했군..우리 지금 국민교육헌장을 외우고 국기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던 유신시대에 살고있나..아직도 이렇게 착각을 하고 사는 사람이 있군..부산의 부마사태가 왜 일어났는지 반지님은 알고 있는지, 생각이나 해봤는지....?? 정말 읽을 때마다 짜증나는군...!!
손에 쥐어줘도 돌인지 떡인지 분간못하고 남의 말또한 전혀 귀담아 듣지 않는 독불장군이니 평생 저렇게 살수 밖에..무식한 것은 죄가 아니지만 배우려 하지 않는 자세, 모르면서 아는척 하는것, 깨우쳐줘도 알아듣지 못하는 어리석음은 죄가 되는것..이제 그만 엉터리같은 소리로 게시판 도배 그만하길....!!
한번만 더하면 주인님 엉터리글 삭제해 주길 바라고 그래도 하고 싶다면 그토록 존경하는 한나라당이나 박근혜 홈페이지 들어가서 하길..박정희 찬양이면 밥안먹어도 배부를것 같은데 여기서 다른님들 불쾌하고 어이없게 만들지 말고..휴일날 글이나 조용하게 읽으려 했더니 기분 잡치게 만드는군....!!
닥치시오!~~~~그러면 김대중 재임기간에 왜 남북통일 하나 못이루었소!~2007년 정동영씨가 되나 박근혜가 대통령 되나 두고 봅시다. 노령화시대 그분들의 진솔한 평가를 국민 투표에 한번 봅시다.~ 60대,70대의 보리고개 주인공이 산증인 입니다. 두고봐요 여인천하시대가 안 열리나? ~~~정동영 그사람 말실수 했소.
정치는 행동으로 해야지..............앵커출신이라 말은 번지르르 잘하더군요. 희망의정치!~하자고 ....박근혜씨는 실천하는 정치를 하자고 제의~~~~~4년후에 결과가 나오겠지. 두사람이 결정할일도 아니고 판단할일도 아니고..........자신의 일이나 충실합시다. 나 당신 처음보는닉이지만 기분 무지 나쁘다.
구제불능!! 한나라당이나 박근혜에게 얻어먹은게 많나 보군..하긴 차떼기당이니 떡고물만해도 엄청나겠지..무늬만 푸른색, 속은 시커멓게 썩은당!! 그 실천하는 정치 50년동안 왜 못했지? 님은 아마 동네 반장이나 통장쯤 되나보군. 하지만 통장도 시대감각이 있어야 해먹지ㅋㅋ 21세기에 중앙정보부나 운운하고 쯧쯧..
학계에서 인정받은 교수까지도 발아래로 보고 저명한 역사학자보다 자신의 시골학교 교장이 더 위대하다고 떠벌이질 않나, 할말없으니(사실은 누군지 모르니까) 난데없이 호남을 들먹이는 꼴이라니!! 정말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하더니 최소한의 상식도 없이 마구 떠드는 모습이 정상상태인가 의심스럽군..ㅋㅋ
이건 의견이 아니라 숫제 박근혜 광신도,한나라당 선전선동이군..4년후 선거운동을 벌써부터 하나? 간판 하나 바꾼다고 본질까진 달라지진 않는다는걸 모르는 모양이군. 여기엔 그따위 엉터리같은 말에 넘어갈 님들 없으니 한나라당이나 가서 충성하길!! 닥쳐야 될것은 바로 당신이야~!
때찌!~~~~~" 당신도 악당이네. "
국민학교=초등학교. / 금성사 = LG / 중앙정보부=안전기획부 ~~~~~~~~~~~>같다.트집 잡을것이 없으니깐 별것 가지고 꼬투리를 잡네.원 참내.
학계도 부패하였고 국민정신도 부패하여 언제 남북통일 되나? ~~~~~~~~~~~> 쯧쯧쯧 3차 핵전쟁이 나야 정신이 번쩍들까? 에고!~~~~~불쌍한 인생들이여!~~~꽃처럼 풀처럼 시들다 갈 가련한 인생이여!~~~
으하하하하하하하~~~~~~~~유리반지님, 재밌다 해야 하는지..웃긴다고 해야 하는지....슬프다고 해야 옳은지......우하하하하하하~~
정아장미님, 휘트니님, 홀라당님,깊은강님...걍~~~웃고 말아야지 ....어쩝니까...이것이 바로 우리의 슬픈 현실인것을....
악당? 정말 웃기는군.지금 만화영화 보시나? 성인이면 최소한 단어선택하는 법부터 좀배우길..이렇게 수준이하니 한나당에서도 안받아주겠다..갸들도 이번 총선에서 물갈이가 많이 됐거든..ㅋㅋ 그리고 핵 그렇게 염려되면 최다 핵보유국인 미국이나 강대국에 대해서는 왜 한마디 말도 못하시는지? 쯧쯧..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들향기님 어서 오세요. 웃고 삽시다.
애국심이 활활 불타는 마음 내 알겠읍니다. ~~~~~~~~~~~깊은강님도 앞으로 그 넘치는 에너지를 나라를위해 투자하십시오. 오늘 즐거웠읍니다. 우리의 숙제는 안전과 행복입니다. 가정에 충실합시다. 나라 걱정은 이 정도로 그칩시다. 역사는 흐릅니다. 우리가 걱정 한다고 됩니까? 속만 타지요. ㅎㅎㅎ 밥하러 갑니다
로빈훗드님. 유리반지님도 프로필이 비공개이네요 더 이상하네?? 이제 고마 쩜 합시당.
비공개가 아니라 카페에서 수정하라는대로 다했는데 뭐가 불만이지? 로빈훗, 불의에 맞서 힘없는 이들을 위해 싸우는 정의로운 의적인줄 알았더니 이제보니 친일파, 독재자나 칭송하고 힘센 미국에 무조건 굽실거다니 앞뒤가 안맞는군..로빈훗 더이상 욕뵈지 말고 닉이나 바꾸는게 어떠신지?
여기도 만화영화 한편..북한은 악당이고 미국은 착한 사람이라 ㅋㅋ 로빈후드님은 김정일이 북한주민 200-400만 학살하는거 봤나?근데 뉴스에 왜 안나왔지? 지금 미국의 학살과 인권유린은 세계가 다보고 있으니 부정할순 없고..음,그렇다면 북한은 우리보다 약하니까 마음껏 인권이니 뭐니 욕해도 되고 미국은 힘센 나라
니까 아무리 잘못해도 말하면 안된다? 적어도 인권에 대해서 논하려면 최소한 공정한 잣대는 가지고 있어야지 이렇게 왔다갔다하니 아무도 안믿지.이젠 이런 레파토리 지겨울때도 됐는데 뭐좀 다른 히트곡 없나..이번 용천사고에서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이 변한 이유..이런말론 더이상 장사가 안된다는걸 깨달았기 때문이지!
로빈후드님이 비공개라는 것이 아니라 유리반지님이 그렇다고 얘기 한거죠 로빈후드님이 먼저 훌라당님, 들향기님, 깊은강님들이 비공개라고 하셔서 일러 드린것 뿐이네요 그렇게 자세히 설명 안 하셔도 됩니다 알고 싶지가 않네요 글 흐름을 자세히 읽으시고 답변하세요. 님의 프로필은 제가 아까 열어 보았거던요.
로빈훗드님...죽을 죄를 졌사옵니다....실은 지가 배운게 없어서 비공개로 했슴다.....으하하하하하하~(웃는 이유)유리반지님의 "님의 박대통령 비판 내 복사 다해 놓았음ㅡㅡ> 전화 한통이면 박근혜씨와 연락됨"...이 대목에서 강금실 법무장관의 .."코메디야~~코메디~~!
이 말이 생각나 웃지 않을 수 없습니다.....왠만하시면... 각 신문사의 자유토론방에라도 한 번 둘러 보시지 않코.....어떤 말들이 오고 가는지...지금 우리가 70년대를 다시 살고 있는건가??...으하하하하하~~
들향기님은 남자세요? 여자세요? 웃음이 으하하하하하하~~~~~해서 남자 같아요.
님들 덕분에 따라 다니면서 공부많이 했읍니다. 꾸벅!~~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