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아버지의 일들에 몰두하여 있어야 할 줄을
당신들은 아시지 못하셨나이까?(룩2:49)
이 구절은 제가 아주 좋아하는 성경구절들중의 하나입니다!
이 구절에 대하여 올바르게 아신다면 당신도 이 구절을 매우 좋아하게될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번역들은 이 구절을 잘못 오역하고 있습니다. 왜 그것들이 잘못되었는지 등에 대해서는 제가 나중에 < 성경번역상의 쟁점과 해설> 이라는 책을 발간할 때에 설명할 것이며 지금은 그냥 차이만 지적할 것입니다.
KJV
And he said unto them, How is it that ye sought me? wist ye not that I must be about my Father's business?
YLT
And he said unto them, `Why [is it] that ye were seeking me? did ye
not know that in the things of my Father it
behoveth me to be?'
Darby
And he said to them,
Why [is it] that ye have sought me? did ye not know that I ought to be [occupied] in my Father's business?
개역개정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1)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또는 아버지의 일에 관계하여야)
개역개정은 킹제임스 성경에 자극을 받았음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과거 개역한글에서는 이런 주 곧 < 아버지의 일에 관계하여야> 하는 말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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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는 말에서 집이라는 말은 원문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킹제임스 성경, 영, 다비 모두 집이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위클리프 성경과 영스리터럴은 흡사하고, 틴데일, 제네바 성경 또한 아버지의 Business 로 번역하였습니다.
이 집이라는 말이 들어간 것은 아마도 그분께서 성전에 계셨기 때문에 바로 예수님도 성전을 사랑하셔서 그곳에 계셨었을 것이라는 선입관이 번역자의 머리속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추측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NIV,
NASB, NLT,TLB( The Living Bible), ASV, RSV, NRSV, GNT, ESV, HCSB 등의 많은 현대역은 아버지의 집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세 가지 점에서 크게 모순됩니다.
예수님은 요한 2장 19절에서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만에 일으키리라, 하셨습니다.
성전이 그토록 중요하다면 왜 헐라 하십니까? 또 예수님은 성전보다 더 크신 분이 아닙니까?(마 12:6) 또한 예수님은 그 성전이 돌 하나도 돌위에 남지 않고 무너뜨리우리라(마 24:2) 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조주께서 그토록 성전을 애지중지하셨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했기 때문에 성전에 남아계셨다면 그분의 부모가 찾아왔을 때에도 계속해서 성전에 남아계셨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부모를 따라 돌아가셨습니까?
더 중요한 것은 원문에 집이라는 단어 오이코스는 없다는 것입니다.
NIV
Why were you searching for me?” he asked. “Didn’t you know I had to be in my Father’s house?”[f]
NLT
But why did you need to search?” he asked. “Didn’t you know that I must be in my Father’s house?”[
NASB
And He said to them, “Why is it that you were looking for Me?
Did you not know that I had to be in My Father’s [u]house?”
TR
καὶ
εἶπεν
πρὸς αὐτούς Τί ὅτι
ἐζητεῖτέ με οὐκ
ᾔδειτε
ὅτι ἐν τοῖς
τοῦ
πατρός
μου
δεῖ
εἶναί
με
영문 번역중 다비역이 가장 정확합니다.
형제모임의 창립자는 아니지만 초창기의 중요 인물이었던 존 넬슨 다비는 이 부분을 정확히 번역하였습니다.( 다비는 형제모임운동을 처음 시작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아버지의 일들에 전념하여야 할줄을 아시지 못하셨나이까? 로 번역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일들에 몰두하여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번역한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루카 2장
49 그분이 저희에게 이르시기를
“어찌하여 저를 찾으셨나이까? 당신들은 제가 아버지 일들에 몰두하여 있어야 할 줄을 아시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나 ( 하토브역)
앞서 말한바와 같이 이 부분 번역이 왜 그렇게 되는지는 훗날에 설명하겠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항상 아버지의 일들에 몰두하시는 분이셨음을 배웁니다.
우리에게 닥쳐있는 수많은 문제들은 우리가 아버지께 몰두하여 있지 않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각양 모든 은사와 모든 은혜와 자비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과 죽으심에 의지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전념할 수 있다면, 우리의 모든 문제들은 사라지고 우리에게 평안이 넘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다음의 목표를 하나님을 향하여 갖는 것은 큰 축복이라 믿어집니다.
전심전력, 전력집중, 전력투구, 전적순종, 전적신뢰-
그리고 세상에 대하여, 죄에 대하여, 자아에 대하여 결사항전의 정신입니다.
2015. 8. 12 하토브
첫댓글 로마천주교의 계속성을 유지하기 위한 천주교 신학자들의 기획과 연관되어 있지 않을까 상상해 봅니다. 형제님께 더욱 깊은 말씀의 은사가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아버지의 집'이라는 이 한마디로 지구촌의 모든 교회'당'에 에너지가 넘치고 생기발랄했겠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교인들은 교회를 가야만 주님의 호흡을 느낄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의존감이 있을 겁니다.
(저 역시 '쉐카'를 몰랐을 때는 그랬습니다).
그러니 예배후 교회 문턱을 넘을 때는 주님과 "다음주에 만나요~빠이~빠이~.."가 되는 거지요.
형제님의 성경번역본이 언제쯤 나올지 궁금합니다.
아니면 지적하시는 오역된 부분이라도 간추려 미리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선 이곳의 사본/번역 게시판에 올려진 글만 차근히 읽어보시면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토브님이,, 누가 안오면 (손자) 유익한 시간을 갖지요. 라고 쓰신 댓글을 많이 묵상하며
그후론 안오면 오히려 더 유익한시간을 갖었고 지금은 그말 묵상 안해도 되게 되었지요.
전심전력. 전력집중. 전력투구.전적순종. 전적신뢰.
그리고 결사항전. 이건 좀 쉬운것 같습니다. 나이탓이 있기도....
새롭게 마지막인생 표어로 삼고 싶습니다.ㅎ.
기도응답도 받고요.ㅎ. 자녀들 구원 점검과 주님께 헌신 입니다.
희망님은 전심전력 등이 쉽다 하셨는데
전 세상과 양다리라 어렵네요.
무엇 그리 기웃거릴 게 많은지.
주님께 올인하는 전력투구만이 살길이라는 걸 알면서도 아직도 세상의 잡다한 것들이
예수님 따라가는 길을 막고 있네요.
예수님 사랑한다 하면서
오늘 하루도 얼마나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보냈나 회개합니다.
하토브님
좋은 깨달음 나누어 주심 감사드립니다.
전심전력 전력투수 전적순종 등은 참으로 어려울 것입니다만, 우리가 그것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께서만 행하실 수 있으므로 우리는 그분을 바라보고 그분안에서 안식하고 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실제로는 아주 쉬운일이 될 것입니다만 우리의 육신은 자꾸만 두려워하고 피하려 할 것이므로 그점에서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육신의 저항이 크기 때문에. 여기서 우리가 율법 준수믿음을 바라볼 때에도 결국에는 성령님만을 바라보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NIV, NASB, NLT,TLB( The Living Bible), ASV, RSV, NRSV, GNT, ESV, HCSB 등의 많은 현대역은 아버지의 집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집으로 번역하고 있는 NIV 등의 목록을 보완 수정하였습니다.
1번항에 추가되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그 성전이 돌 하나도 돌위에 남지 않고 무너뜨리우리라(마 24:2) 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조주께서 그토록 성전을 애지중지하셨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