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의 불의 재난
불이 붙어 발화가 된 시작점은 여러 가지 원인들이 있다. 하와이의 산불의 첫 발화된 곳에서 “도라(DORA)”라는 허리케인의 영향에 의해서 전선이 끊어진 데서, 스파크가 일어나 발화가 되었다고 하는데, 아직 진상규명이 확실치는 않는 모양이다.
이번 하와이의 산불은 오랜 가뭄과 때마침 아래쪽에서 불어온 허리케인 도라의 영향으로 강렬한 산불이 되고, 8월 19일 현재 불타고 파괴된 집이 2,700여채나 되고, 사망자만 114명이 된다고 한다. 그런데 실종자 1,200명이 넘는다고 하니 인명피해가 상당히 클 것이라고 한다. 인명 피해를 입은 시신들이 현재 신원확인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니, 얼마나 강렬한 불길에 처참하게 죽어갔는가를 생각하면 정말 아찔하고 끔찍스럽다. 생(生) 사람들이 순식간에 다가온 화마(火魔)에 의해 피할 사이도 없이 화장을 당한 격이 되었으나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미국에서는 옛날 100여년 전, 1918년에 미네소타주 북부 칼턴 카운티 등의 산불에 의해서 453명이 숨진 이후로 최대의 인명피해가 발행하였다고 한다. 이번 하와이 마우이 섬의 불은 전선에 의해서 발화가 되었든지, 아니면 인재에 의해서 발화가 되었던 간에 산림과 가옥과 인명피해를 가져온 것은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다. 어마어마한 피해를 준 것은 명백하다.
작년에는 호주에서 6개월 이상의 산불이 있었다. 올 해는 캐나다에서 몇 달간 상상을 못할 남한 면적보다 더 넓은 지역에서의 산불이 지금도 계속 불붙고 있다고 한다. 캐나다는 이에 지쳐서 뉴스화하는 일도 포기한 모양이다. 또 얼마전에는 그리스의 어느 섬에서 대형산불이 나서 관광객 수만명이 대피하느라고 난리난 것을 보도되었다. 이처럼 곳곳에서 크고 작은 산불과 대형 화재들이 쉴새없이 일어나고 있다.
성경에서 보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소멸하고, 태우고 화와 재앙을 입는 “불”을 보내신다고 한다.
“... 내가 그 성읍들에 불을 보내어 그 성들을 삼키게 하리라(호 8:14)”고 끔찍한 경고의 말씀을 하신다. 그리고 의의 선지자 아모스를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 불을 보내리니(1:4)”라는 말씀을 여러 차례 반복해서 경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이 보낸다는 “불”은 주로 화와 저주의 진노를 의미하지만, 실제 “불”일 수도 있음을 간과해서 안 될 것이다.
“불(火)”을 보내는 이유는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았”음을 밝혀준다. 불로 보내는 그 표적(標的-target)은 분명 “죄, 죄”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떤 죄든, 죄는 불을 끌어들이는 화근이 되고, 하나님의 심판의 불쏘시게가 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불(火)”을 보내는 목적은 “... 내가 그 벌을(암 1:6)” 주기 위함인 것을 명시한다. 하나님이 보내는 불은 그 의미한 바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하는 벌이요, 또한 징치하는 벌이며, 또 다른 의미는 고난과 고통과 또는 연단의 의미를 가진 벌을 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불을 보내시리니”라는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서 자기 백성 유다와 이스라엘만 아니라 이방나라 아람, 블레셋, 두로, 에돔, 모압에까지 죄가 있는 곳이면 진노의 불, 심판하는 불을 보낸다는 것이다. 아모스를 통해서 불을 보내는 현장은 하나같이 그 나라의 핵심 권력과 영화의 현장인 궁궐에 불을 보내어 “궁궐들을 사르리라”고 하신다.
여기서 하나 더 생각할 것은 인류의 최후종말의 나타날 나팔재앙에서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피섞인 우박과 불이 나와서 땅에 쏟아지매 땅의 삼분의 일이 타버리고...(계8:7)” 했다. 이는 분명 최후 종말의 때에 나타날 재앙을 예언해 주는 계시이다. 이 예언을 생각하면 빅사이즈의 엄청난 대화재가 각나라의 큰도시에서 일어나고 또한 산불들이 발생한다는 예언의 말씀이 아닌가?
그런데 우리가 간과하지 말하야 할 일은 그러한 때가 가까울수록 이와 유사하고, 비슷한 재난과 재앙이 국부적으로 곳곳에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지금 세계적인 항상 이슈가 되는 문제인, 온난화를 통한 기후변화를 지적하고 있다. 해마다 지구의 온난화는 조금씩 조금씩 지속적으로 상승한다는 것도, 결국 최후 종말의 때에 나타낼 하나님의 심판의 프로그램이 서서히, 조금씩 작동되고 있다는 것을 성경과 영적인 지각을 가진 우리는 그리스도인(Christ人)들로써 눈치채는 영성을 가진자가 되어야 한다.
또한 말세를 만난 오늘의 우리 크리스천(Christian)들은 이러한 큰 경고성의 사이렌들을 귀담아 들으면서 각성, 경성을 도모(圖謀)하여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물을 이용한 심판도 행하시지만, 종말로 갈수록 불(火)을 심판의 도구로 많이 사용하심이다.
소돔과 고모라의 땅에 “유황과 불을 비같이 내리사(창 19:24)” 다 엎어 멸하시는 일을 하셨다. 유튜브를 통해 소돔과 고모라 주변에서 유황의 잔해들이 수없이 발견되는 것을 보고, 성경의 사실이 고고학적으로도 낱낱이 증명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유다서를 통해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유다 1:7)” 여기 “거울이 되었다”는 것은 소돔의 타락과 범죄의 곳에, 변태적인 남색죄가 남다르게 성행했던 그곳에 하나님의 엄중한 진노의 본보기가 되고,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됨을 가르쳐주지 않는가?
광야에서 고라의 반역에 함께 동참했던 유명한 족장들 250명은 “여호와께로서 불이 나와서... 소멸하였더라(민 16:35)”고 했다.
하나님의 회막에 술에 취해 다른 불을 드렸던 나답과 아비후 제사장이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 죽은지라(레 10:2)”고 하였다. “불”로 인한 화(禍)가 우연한 것이 아닌, 하나님앞에서 곧 하나님에 의해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나타난, 하나님의 진노요 심판이심을 가르쳐준다. 심판에 대한 아주 엄중한 경고성 메시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성경적 사실을 두고 생각할 때, 하와이의 불의 재난이 우연한 것이 아님을 생각하게 한다.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엄중한 경고성의 발언이심을 알게 한다. 그리고 하나님 없는 불신과 불의의 삶에서 회개를 하기를 촉구하는 말씀이시기도 하고, 영적 각성을 촉구하는 하나님의 사인(sign)이요 회개를 촉구하는 강한 메시지를 주는 말씀이라 생각케 한다. 예수님께서 사역하시던 때에, 두 사건을 통해서 불행한 일이 있던 사실을 두고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으므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눅 13:2)”고 하셨다. 또 그때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으로 인하여 당시 사람들이 많이들 놀란 큰 사건이었다. 이를 두고 예수님께서는 “....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눅 13:4)” 하시며 “...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같이 망하리라” 하셨다.
이번 하와이 사건이나 우리나라에 큰 충격을 주었던 대형 사고였던 삼풍백화점, 세월호 사건 등 때와 모양과 사건 사이즈와 다르지만, 이 사건들을 통해서 주는 메시지는 한결같이 같은 의미를 던져주는 것이 아닌가?
이번에 하와이에서 불의 화재를 통해서 산불에 의해서 가옥 건물들이 엄청나게 소실이 되었다. 그때 화마(火魔)가 순식간에 덮칠 때 사람들이 제대로 피신을 못하고, 피신할 곳이 바다밖에 없어서 다급하게 바다로 뛰어든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그 광경을 느껴보게 되는데, 애굽에서 모세의 의해서 재앙이 내려질 때, 일곱 번째 우박재앙이 내리게 할 때에 출 9:23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지팡이를 들매 여호와께서 우렛소리와 우박을 보내시고 불을 내려 땅에 달리게 하시니라....” 하였다. 북쪽에서든, 서쪽에서든 한쪽에서부터 시작해서 온 세상이 다 무너지는 것 같은 우렛소리를 내면서 주먹만 한 우박보다 크고 작은 덩어리들이 마구 쏟아져 내리고, 또한 불덩이와 함께 섞여서 내리쏟는데, 그 광경을 직접 눈으로 목격할 때, 그 공포감은 상상할 수 없이 클 것이다. 그런데다가 먼데서 시작한 이 무서운 상황이 점점 신속하게 내게로 확 다가올 때의 분위기를 생각해 보라. 이 광경을 직접 접한 애굽인들이 밖에 있다가 달려오는 대재난에 얼마나 공포에 질려 아우성치며 혼비백산하지 않았겠는가?
그 재앙의 재난의 상황이 얼마나 스펙터클(spectacle-거대하고 웅장함)한 영화같은 효과인 것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이러한 대재난이 이번 하와이에서도 산불이 화마(火魔)가 되어 때마침 허리케인 도라의 강한 바람의 영향에 의해 인가로 급속하게 다가와 가옥들을 불태우는 순간들을 접한 사람들, 경악하고 종말의 대재난임을 직감하지 않았겠는가? 그 옛날 애굽에서의 난리나 이번 하와이에서 난리 현상이 모양만 다를 뿐이지 거의 유사하다고 생각이 든다.
다들 하와이하면 평소에 지상낙원과 같다고 하였다. 그런데 60년 전에는 쓰나미가 덮쳐 큰 인명과 재산피해가 있었고, 이번에는 미국에서 최고의 불의 피해를 입은 곳으로 기록을 다시 쓰고 있다. 땅에서 그 어디에도 지상낙원은 없다. 타락한 인생이 살고, 죄가 주장되는 그 어느 곳인들 지상낙원같은 환경도 벼락같은 화가 입고, 재앙이 넘쳐나는 슬픔과 통곡의 자리로 바꾸어지는 것을 보게 된다.
히브리 저자는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히 12:29)”하였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부각시켜주는 말씀이다.
아모스서에서는 하나님께서 불같이 되어 임하여 벌하심을 표현하면서 “그가 불같이... 임하여 멸하시리라(암 5:6)” 하셨다.
단 7:10 “불이 강처럼 흘려 그 앞에서 나오며” 했다. 이 불은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나아와서 작은 뿔과 그 세력을 징벌하는 진노와 심판을 의미한다. 이 불이 –9절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앉으신 “그 보좌”가 진원지인 깊이 상기하자.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이 없고, 하나님 상관하지 않고 산다는 그곳에는 평안이 없고, 진정한 행복도 없는 것이다.
다윗이 블레셋에서 안주하려 할 때, 그와 그의 사람들이 안주하던 시글락 성읍에 이르러 본즉 “성읍이 불탔고(삼상 30:3)” 곧 잿더미가 되었다는 말이다. 다윗은 젊은 날에, 피신하여 생활했던 시글락의 성읍이 자신들이 비어져 있는 때에, 아말렉군대가 틈을 타고 그 보금자리가 다 불타게 하고, 잿더미로 만든 것이다. 이 일로 더 걱정되었던 일은 가족들까지 다 잃고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때의 상황을 성경은 “다윗과 그의 함께 한 백성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더라(삼상 30:4)”고 했다. 기가막힌 절망감에 사로잡힌 것이다. 얼마나 당황스럽고 처절하면서 암담하였는가를 표현해 준다. 이러한 일의 결과를 만들고 제공한 자가 다윗이라고 생각할 때, 이성(理性)을 잃는 현상이 나타났다. 다윗을 돌에 쳐 죽이자는 황당한 일을 맞게 되었고, 거의 죽을 뻔한 상황도 연출되었다.
그때 다윗은 “...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삼상 30:6)”고 했다. 그리고 회복의 길을 나아갈 수 있었다.
오, 하와이인들이여, 오 슬픈 잿더미같은 상황에 처한 자여!
다윗과 같이 하나님을 바라고 의지하면서 힘을 다시 입고 얻는 자가 됩시다. 우리에게 잿더미같은 극한 상황들이 다른 모양으로 변장해서 찾아오고, 다가올 수 있고, 화와 고통을 입을 수 있다. 정말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 ....”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다윗은 삶의 위험과 온갖 재난들이 난무할 때 하나님만이 자신의 참 보호와 지킴과 평안이심을 믿고 “...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시 17:8)”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그는 과감한 믿음의 액션을 행하면서 “인생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 피하나이다(시 36:7, 참조 시 57:1, 61:4 63:7)”고 하였다. 정말 멋진 경건한 자의 처신이다.
찬송가 386장 3절 “이땅위에 평안없고 기쁜일을 몰라도 주예수의 참사랑을 내가 이제 알았네 만세반석 열린곳에 내가 편히 쉬리니 나의 반석 구주 예수 나를 숨겨 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