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가 주인인 세상
허정 정성록
참 한심한 일이다. 사람이 우선이기 보다는 개가 우선인 세상으로 바꿔어 버렸다.
딸아이 핸드폰에 130여 장의 사진이 들어 있다. 그 사진 속에는 딸이 키우는 개 '애봉'이 것이 열 장도 넘는다. 포메라니안 이라는 종류인 애봉이는 오 년 동안 딸 집에서 산다. 온갖 포즈를 취하며 찍은 애봉이의 사진들이 많지만, 어딜 봐도 내 사진은 한 장도 없다. ‘미친년’. 딸 카톡 사진을 본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나오는 욕이다.
어느 날 딸 집에 들른 적이있다. 딸은 키우는 개의 사윗감을 구한다며 난리였다. 애봉이 사진을 애견 카페에 올려놓고 선을 보고 있다. 사위가 되려고 카페에 올려온 개들이 아주 많았다. 나이 몸무게 따위의 신상과 사진이 쫙 올라져 있다. 몇 번 후보는 다리가 짧고 운동을 안 해서 비만이고, 몇 번 후보는 털 색깔이 안 예쁘고, 또 다른 후보는 정통 혈통이 아닌 것 같고, 어떤 후보는 귀가 쫑긋하지 않다는 둥.... 결국 사위 고르기까지 포기하고 말았다.
딸 가족이 이번 연말에 외국에 해외 주재원으로 나간다. 키우던 개 애봉을 데리고 간다고 했다. 사람보다 더 비싼 비행기 표와 켄넬을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있다. 굳이 가족이라며 개를 데리고 가야 한다는 딸을 보면 쓴맛보다 배신감마저 든다. 지난번에도 육 년 동안 딸은 해외에 있을 때. 나는 어린 외손자 보려 여러 번 오갈 때마다 내가 손수 항공권을 구매해서 타고 갔었다. 딱 한 번 어버이날 비행기 표를 보내 준 것 외엔. 부모한테 쓰는 돈보다 개 애봉이에게 더 아낌없이 쓴다.
“개한테 하는 것 백 분의 일 정도만이라도 엄마한테 해라.” 가끔 쏘아붙이는 말이다. 내가 매일 개처럼 똥을 싸고 오줌 싼다면 개 패드 갈아주듯 나한테는 하루라도 해주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면 섭섭하기 짝이 없다. 먹을 것 먹지 않고 아껴가며 저들 살기 힘들까 봐 엄마로서 최선을 다했던 마음이 튕겨 나온 적도 있다. 어느 때는 내가 왜 어디 상대할 것이 없어서 개를 상대로 질투하는가? 라며 마음 고쳐먹다가도 화가 날 때도 있다.
요즘은 자식은 낳지 않고 개만 키우며 사는 젊은 부부들을 많이 본다. 더구나 사회의 고급 지식층에서 자식을 낳아야 좋은 인재들이 태어날 텐데, 자식을 낳지 않은 그 자리에 개가 자식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면 볼수록 나라의 미래가 답답하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야 있겠지만 국가의 기초가 가정인데, 아이가 자라나는 가정이 되어야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지 않는가? 자식을 키우고 대를 잇는 것이 사람의 흔적 하나라도 남겨두는 게 아닐까 싶다. 그것이 바로 이 세상에 왔다가는 보람이며 사람으로 살아가는 도리라는 생각을 저버릴 수 없다.
시골에는 동네마다 개 짖는 소리는 들려도 아기울음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세상이다. 점점 고령사회로 가고 있어 앞으로 미래 세대가 걱정이다. 셋째를 낳으면 장려금을 천만 원까지 준다는 지자체가 있다고 한다. 로봇이 병간호를 대신 한다지만 내 살붙이의 사랑이 담긴 마음의 눈빛과 따뜻한 손 한번 잡아주는 것에 비할까. 이럴 때일수록 대선 주자들은 젊은이들의 애로를 귀담아들고, 그들이 가정을 꾸리고 나라의 미래를 끌고 갈수 있도록 애를 써야지, 서로 다투어 개만 찾아다닌 꼴들이 보기가 역겹다.
지금 대선 후보들의 작태는 이른바 '펫심'*1잡기 대 작전이다. 오백만 반려동물 가족들에게 표를 구걸하는 모습이 가증스럽다. 어느 여권 후보는 새해 첫 공식 행보가 동물 보호 시설을 찾아가는 한심한 작태를 보였다. 그리고 반려동물 테마파크 시설 현장을 둘러보는 사진이 또 등장한다. 이에 질세라 반려동물 동행 시설 안내 서비스 협약식을 체결하며 개를 안고 찍은 장면이 보였다. 양복을 입고 한강공원에서 대형견을 산책시키는 어색한 사진을 기재할 정도다.
야권 후보도 마찬가지다. 어느 유력 후보자는 개와 고양이를 여러 마리 키우는 사진이 자주 등장한다. 이에 질세라 또 다른 후보도 고양이까지 사진에 올리는 것을 보면서, 지금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을 뽑는 것인지 반려동물의 대통령을 뽑는 것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나 어릴 시절 대통령 선거와 지역행사 때는 으레 어린아이를 안고 있는 사진과 나라를 걱정하는 노인들의 모습, 현장에서 힘든 일하는 곳을 찾아다니며 노동자들을 위로하며 희망을 주는 사진들이 많았다.
희망 없는 개의 나라, 21년 7월 5일 자 어느 일간지에는 풍산개 곰이*2가 원래 데리고 있던 개 마루 사이에서 새끼를 7마리 낳았다며 청와대(SNS)에서 받은 사진을 공개했다. 개집 철창 안에서 개와 놀아주며 우유를 먹이는 장면이 공개되었다. 곰이의 남편인 마루는 경남양산에서 키우던 개인데 청와대로 데려왔단다. 개를 데리고 온 대통령은 정작 자신의 어머니를 청와대에 모셔 와서 살아 보았을까. 개를 씻기는 인력도 혹시 국민의 세금이 아닐까. 목도리를 한 개들의 모습이 그리 예쁘게만 보이지 않는다.
전 국민은 코로나 19와의 사투와 치솟는 물가와 전쟁하느라 주머니 뒤집어 쥐어짜며 연일 찌는 더위에 지쳐가는 국민들은 보이지 않고 개만 보인다. 내 딸한테처럼 미친 나라라고 욕을 해본다, 아이들 웃음소리 사라지고 정치인들의 개 짖는 소리만 들린다. 민생 현장을 살펴보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다. 국민들은 웬만한 개보다 못한 대접을 받고 살고 있다. 사람 사는 현장을 살피는 사진이 올라오기를 기대해본다.
아이들은 다음 미래 세대를 짊어지고 갈 희망이다. 개보다 아이들 머리를 쓰다듬으며 격려해 주는 모습이 보고 싶다. 주객이 전도된 한심한 개 세상이 아닌, 사람이 우선인 사람 사는 세상이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 아닐까?
* 1펫심=애완동물(pet)과 마음 '심'(心)의 합성어로,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주인의 마음을 뜻함.
* 2 곰이=2018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정은이가 선물한 풍산개 2마리 중 암컷의 이름
첫댓글 우하하하~^^ 아주 재밌고 신랄하게 비평하신 수필입니다.
정성록 선생님, 우리 주변 생활에서 일어나는 주객전도 현상을 아주 정확히
치밀하게 지적해 주신 칼럼형 수필입니다. 당장 정론지에 실어도 손색이 없습니다.
(제가 이번 칼럼을 게재해서 많은 독자들이 읽도록 해면 어떨까요?단 대통형 어머니 청와대
모시고 와서 살아 보았을 까? 현행법은 불가한 걸로 압니다. 이 부분은 제외해야 할겁니다.ㅎㅎㅎ
아주 평이하면서 설득력 있게 쓰신 수필을 처음부터 미소로 시작해 웃으며 재밌게 잘 읽었어요.하하하
지나친 애완견 사랑 풍조를 적나라하게 개탄한 글, 진짜 개가 사람보다 떠받쳐 사는 세태를
멋지게 풍자한 글 공감합니다.
신랄한 충자 정신 돋보이는 글입니다.
네 안홍진 선생님 제 글을 높이 평가 해주셔서 아직 제가 글 쓰기 초보라 글을 쓰기는 쓰는데 칼럼지에 올릴만 한 글이 되는지 모르겠네요 . 저야 실어만 주셔도 영광이지요. 요즘내 딸이지만 세태가 한심스러워요 내가 개 한테 밀린 노인이 되는것 같아요. 딸집가면 딸 안볼때 개를 때립니다,
일경 선생님 향상 제글을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과연 주객이 전도 입니다
일일이 맞는 말씀 이구요 모처럼 속이 시원합니다
전 국민은 코로나 19와의 사투와 치솟는 물가와 전쟁하느라
주머니 뒤집어 쥐어짜며 연일 찌는 더위에 지쳐가는 국민들은 보이지 않고 개만 보인다.
내 딸한테처럼 미친 나라라고 욕을 해본다, 아이들 웃음소리 사라지고 정치인들의 개 짖는 소리만 들린다.
민생 현장을 살펴보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다. 국민들은 웬만한 개보다 못한 대접을 받고 살고 있다.
사람 사는 현장을 살피는 사진이 올라오기를 기대해본다.
아이들은 다음 미래 세대를 짊어지고 갈 희망이다.
개보다 아이들 머리를 쓰다듬으며 격려해 주는 모습이 보고 싶다.
주객이 전도된 한심한 개 세상이 아닌, 사람이 우선인 사람
사는 세상이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 아닐까?
선생님 같으신 분들이 국회에 많아지면 더욱 좋겠습니다.
하하하 에스텔님 저한테 한표 주셔요. 국회로 보내주셔요.
들꽃 선생님, 정말 개같은 세상을 신랄하게 지적하셨습니다. 풍자 수필로
훌륭한 작품입니다.
세상이 개판이니 개가 더 우대받는 세상이 된 것 같습니다. 샘님의 예리한
필력에 경의를 표합니다.
정확하게는 표현 하셔서 후련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