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5월 이달의 작품 심사평 및 심사 결과
선정작 없음
2024년 5월 문학의봄 창작방에 올라 온 작품 중 운문 부문에서 박현우 시인의 시 「변기는 고래의 꿈을 꾸는가?」, 이영박 시인의 시 「갈대와 바람」, 황을선 시인의 시 「연극쟁이」, 안태영 시인의 정격시조 「누룩앓이」 등 총 4편이었고, 산문 부문에서는 신이비 작가의 단편소설 「퍼플섬에 보라 꽃이 피었대요」 1편이었다.
박현우 시인의 시 「변기는 고래의 꿈을 꾸는가?」
의인화된 사물, 양변기가 위치한 공간적 특성으로부터 연유한 특이한 발상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양변기에서 수시로 나는 ‘뿌우웅, 끼잉, 삑삑’ 소리를 혹등고래의 소리로 들어낸 청각이 발칙하다. 시에서 양변기는 화장실 안의 다른 물건들, 즉 소변기나 세면대, 거울만큼 인기가 많지는 않다. 그 장면에 관한 묘사는 외로운 그늘에 방치된 인생을 떠오르게 한다. 마지막 연에서 등장하는 ‘혹등고래’는 그 의미가 매우 크다. 외면받는 현실에서도 꿈을 놓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혹등고래는 모든 고래 가운데 소리를 가장 잘 내는 종류다. 신음이나 울음소리에서부터 윙윙거리는 소리나 코 고는 소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리는 5~35분 동안 노래로 배열되는 특성을 가진 존재다.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소리가 폐쇄된 공간을 넘어 대양의 중심에서 수직으로 잠수하는 혹등고래의 노래로 들리는 것은, 시인이 양변기의 소외감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전환적 발상을 담고 있어서다. 양변기 같은 삶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위로와 응원을 보내는 시인의 방식으로 읽힌다.
이영박 시인의 시 「갈대와 바람」
갈대와 바람이란 두 자연물의 상호작용에 대한 작품이다. 이 시에서 바람은 동적인 이미지인 데 반해 갈대는 고정적이다. 그래서 갈대는 바람에게 잠들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굳이 자기의 범위 안에 잡아두려고까지 하진 않는다. 바람의 속성인 자유를 꺾지 않겠다는 갈대의 너그러움과 이타성 덕분이다. 우리는 외로움 때문에 종종 상대를 자기 안에 묶어두려는 집착을 서슴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시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작품은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궁극적으로 자신이 아닌 타자를 향해 있어야 하는 이유를 정확히 짚어주는 데 의의가 있다. 또 이 지점에서 서정윤이 쓴 ‘사랑한다는 것으로’란 작품의 발상과 유사점을 갖기도 한다. “새의 날개를 꺾어 / 너의 곁에 두려 하지 말고 / …/ 종일 지친 날개를 / 쉬고 다시 날아갈 / 힘을 줄 수 있어야 하리라” 자연을 노래해 잠언 같은 교훈을 성찰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이영박 시인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서로에게 갇힌 둘은 더 외롭다’는 깨달음의 언어가 가슴을 파고든다.
황을선 시인의 시 「연극쟁이」
인연과 사랑이란 명분 앞에서 실제론 그것이 상대를 향한 것이라기보다는 초라한 자기애였음을 성찰하는 고백적 작품이다. 인연이 이루어진다는 건 시인의 말처럼 ‘서로 인생을 걸쳐놓는’ 일이다. 아름답기 그지없는 이 보통의 진술은, 그러나 다음 행에서 충격적이게도 모든 것이 ‘진심만은 아니었다’는 고백을 통해, 인연이란 게 과연 오롯이 ‘더하기’ 일변도였을까 하는 의문을 우리에게 건넨다. 한편, 이 시는 첫 문장부터 시선을 사로잡는다는 점에서 구성 측면에 공을 크게 들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의 근거로써 2연에서 화자가 상대와 경계를 짓고 살았던 삶을 ‘빼기’로 계산해보았을 때 결국 자신에게 향해있던 손금만 남았다는 성찰에 이른 부분에서 확인된다. 이런 확인 작업을 통해 ‘붉은 낯빛’으로 부끄러워진 화자가 발견한 것은 낮의 시간을 마무리하고 밤에 바통을 넘겨주는 노을이다. 노을은 삶을 일구어 온 시간을 삭제하거나 ‘빼는’ 것이 아니라 다시 다음날 ‘해’로 재생하고 부활하기에 ‘더하기’의 속성을 갖는다. 이런 믿음 아래 화자는 그간 부지불식간 ‘빼기’에 골몰했던 자신의 생각을 고쳐먹고 덧칠을 할 용기를 내어보는 것이다. 따라서 이 시는 삶의 무대에서 한 편의 연극을 올리고 내리는 가운데 드러나는 인간의 한계성을 인정하는 자기 고백 차원에 머물지 않고, 이를 승화하고 바꾸어보려는 의지를 비친다는 점에서 작품성을 획득하고 있는 걸로 보인다.
안태영 시인의 정격시조 「누룩앓이」
누룩이 익어가는 과정을 사랑에 빗댄 작품이다. 연인 사이에 걸맞는 ‘추억’, ‘그리움’, ‘인연’ 등의 시어들이 등장한다. 마치 연인의 사랑이 무르익어가는 과정이 누룩이 발효되는 과정과 유사하다는 발상을 확산시킨 것으로 보인다. 이 시조의 특징은 내면화와 외연화의 이중성이다. 사랑의 열병을 앓는 당사자는 내면적으로 그리움을 숙성시킨다. 누룩은 술을 만드는 효소를 갖고 있는 곰팡이를 곡류에 번식시킨 것으로 천연발효의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완성된다. 이불을 씌워 띄우는 과정을 지나 숙성되는 과정 끝에 곰팡이의 발산이란 최종점에 도달한다. ‘옹알’은 ‘옹알거리다’의 어근으로 나직한 목소리로 똑똑하지 않게 혼자 입속말을 자꾸 재깔이는 의미로, 여기선 차마 밖으로 뚜렷이 말하지 못하고 혼자 밀어를 내뱉는 사랑의 고백으로 해석된다. 그리고 종장에 등장하는 ‘우담바라’는 불교 세계관에서 일컫는 신성한 꽃이라는 점에서, 일차적으론 누룩곰팡이의 모양을 그리는 것이면서 동시에 불교의 인연설을 함축한 시어로 읽힌다. 이 시는 누룩이 익어가는 과정을 사람 사이 특별한 인연의 유사적 모티프들을 찾아 전개한, 깊은 울림을 품은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
신이비 작가의 단편소설 「퍼플섬에 보라 꽃이 피었대요」
인간의 외로움에 관한 소설이다. 화자는 8살 연하의 아내가 있는, 두 딸을 둔 우체부 배달원이다. 3초에 하나씩 배달을 해야 하는 정신없이 바쁜 일상 속에 우울증에 시달리는 아내의 ‘퍼플섬에 데리고 가 달라’는 부탁을 외면한다. 어느 날 아내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했다.’며 느닷없이 이혼을 요구한다. 그 남자를 만나보니 유부남이다. 상간남은 아내의 임신 이야기를 듣고도 무책임하다. 그를 죽이겠다고 칼을 품고 찾아갔지만, 실행을 하지 못하고 그의 딸을 향한 협박만 남기고 돌아온다. 남자의 부인이 찾아와 자기 남편을 용서하라며 돈 봉투를 건네지만 거절한다. 해결된 일 하나 없이 다 묻어둔 채로 살면서 아내를 용서하기란 쉽지가 않다. 어느 날 평온을 되찾은 듯하던 아내가 자살하고 만다. 절반쯤 읽으니 언뜻 단편으로 소화하기에는 좀 벅찬 소재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자칫 요약본으로 읽힐만한 대목엔 반전 기법을 영리하게 사용해 잘 커버하고 있음에도 어쩔 수 없이 덜컹거리는 과속 때문에 속도 조절에 완벽하게 성공하고 있다고 읽을 여지가 다소 부족하다. 최소한 중편 정도로 놓고 개작을 하면 어떨까 하는 조언을 하고 싶다. 하지만, 잘 다듬어진 문장에 스토리를 부드럽게 넘기는 내공은 가히 베테랑급이다.
만만찮은 작품성에도 불구하고, 선정작을 내기엔 못내 마뜩치 않다. 고심 끝에 2024.5월에는 선정작을 내지 않기로 한다. 문봄 가족들의 또 다른 역작을 기대한다.
2024.6.22. 문학의봄작가회 이달의작품심사위원회
첫댓글 촌음을 쪼개어 심사하셨군요. 경의를 표합니다.
심사평을 통해 공부할 게 많습니다.
박현우 시인님, 이영박 시인님, 황을선 시인님, 안태영 시인님, 신이비 작가님~
모두 축하합니다.
훌륭한 작품 거듭 섭렵합니다.
선생님 존경합니다ㆍ제가 딱 들켰습니다ㆍ원래는 중편인데 그 한부분만 단편으로 썼던 것입니다ㆍ아무래도 단편에 담는 게 무리였나 봅니다ㆍ공부했습니다ㆍ감사합니다ㆍ
이제야 이 페이지를 봅니다
늘 글 같지 않음이 부끄러웠는데
이런 기회조차 영광입니다
마음 알아주심만도 위안이라
너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