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일차(21. 6. 29/화) 오후
‘큰’산행
발전소 옆 나무계단에서 능선으로 이어지는 산길이 나있습니다,
풀 우거진 오솔길 옆으로 밭들이 보입니다.
척박한 땅이지만 고구마와 감자, 그리고 시호(柴胡)라는 약초도 재배한다죠.
뻥 뚫린 능선에 올랐습니다.
가슴까지 시원하게 해주는데요, 신비스런 돌섬들이 감성을 자극합니다.
능선 따라 천천히 전진하며, 길가의 딸기와 오디를 따먹기도 합니다.
힘든 곳은 나무 Deck이 도와줍니다.
코끼리를 닮았다는 내/외마도가 나란히 손짓합니다.
밀려드는 해무에 앞산과 주변 섬들은 여전히 숨바꼭질중입니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산 아래 집들이 앙증스럽습니다.
풍광에 홀려 등한시했던 주변 야생화에도 눈길을 주며 한없이 시간을 흘려보냅니다.
굴업도에 이어 또다시 잊지 못할 섬이 될 것 같네요.
‘마구’산(등대)
드디어 가장 높은 ‘마구’산(177m)을 터치합니다.
마구산정에 외롭게 서있는 등대도 친견합니다.
이곳에 있는 할아버지 ‘당’숲 그늘에서 잠시 쉼을 갖습니다.
땔감이 부족하던 시절에도 절대 손을 대지 않을 만큼 신령스럽게 모셔온 숲이랍니다.
[상대를 존중하는 말 한마디는, 듣는 이를 움직이고 세상을 훈훈하게 합니다.
반상(班常)이 엄격하던 시절 양반 둘이서 '김'씨네 푸줏간을 찾았습니다.
한 양반은 '이봐 백정, 쇠고기 1근 줘' 했고, 다른 양반은 '이보게 김씨, 나도 1근 주시게' 했습니다.
백정은 말없이 1근을 달아 먼저 양반에게 줬고, 다른 양반에겐 '어르신, 여기 있습니다' 하며 육질 좋은 고기를 공손히
건넸습니다.
먼저 양반이 '왜 고기가 다르냐?'며 화를 내자 백정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그쪽은 백정이 자른 것이고, 이쪽은 김씨가 자른 것이라 그렇습니다'
상대방을 업신여겨야 자기가 높아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끼리끼리 편 가르고는 상대방을 시샘하며 애써 무시합니다.
별로 알아주는 사람도 없는데 말입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습니다] (펌)
있는 자와 가진 자의 ‘갑’질이 끊이질 않습니다.
밟혀도 꿈틀댈 수 없는 지렁이보다 못한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을’들에게 힘찬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만재도 정상에서의 ‘갯바위’ 단상(斷想)입니다.
하산
돌아가야 합니다.
아쉬워 자꾸 뒤를 돌아봅니다.
불편한 접근성으로 외지인의 발길이 뜸했기에 생태환경은 잘 보존되어있습니다.
파도소리에 강약을 맞춘 새소리에 덩달아 즐겁습니다.
원시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온갖 소음에 찌든 뭍사람들은 진정한 휴식을 누립니다.
오전에 다녀온 앞산도 멋집니다.
저곳에서 바라봤던 'T'자형의 섬 능선에 우리가 올라온 것입니다.
“야호~!”
노인네들의 힘없는 외침만 망망대해로 흩어집니다.
참 멋진 View입니다.
누군가는 비행기 타고 공항에 내리는 기분이라 했던가요?
View에 취해 몽롱한 노인네들을 지나가는 어선이 깨웁니다.
알비렁
내마도가 코앞으로 보이는 ‘알비렁’암석해안까지 내려가 보기로 합니다.
끝없이 펼쳐진 망망대해 -.
길쭉한 돌기둥이 잇달아 붙어있는 아찔한 주상절리벼랑은 현기증이 날 정도입니다.
‘나바론’요새 같은 기암절벽은 홍도절경이 부럽지 않다는데, 바다에서 볼 수가 없어 아쉽네요.
오랜 세월 파도에 깎인 바위절경이 입을 벌려놓습니다.
영혼이 빠져 나갈까봐 얼른 다물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시시각각으로 변모하는 모습에 다시 환호성을 지릅니다.
염소들이 무리지어 오솔길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낭떠러지로 떨어지면 어쩌나싶지만, 염소들은 절벽타기 선수들입니다. ㅎ
옛날 서해안 황도에서의 염소사냥(^^) 생각에 피식 헛웃음만 짓습니다.
잘 발달된 해식애들이 자태를 뽐내는데요, 그사이로 야생화들이 수줍은 듯 몸을 뒤척입니다.
아찔하지만 원시모습에 발길이 떨어지질 않습니다.
아~ 잊지 못할 풍경입니다!
‘물센’산
다시 능선으로 올라 송신탑을 지나 ‘물센’산을 오릅니다.
저질체력이 자꾸 경고음을 보내는지라 송신탑 언저리에서 더 이상의 전진을 멈춥니다.
바다와 접한 절벽 위 아슬아슬한 길은 ‘여울목’님과 ‘재스민’님 차지입니다.
발아래로 멋진 파노라마가 펼쳐집니다.
저 멀리 수평선엔 섬들이 줄을 섰습니다.
한눈에 들어오는 마을풍경은 그야말로 옛날 Calendar에서나 보던 비경입니다.
파란 색깔로 치장한 마을지붕들이 그림입니다.
북서쪽으론 내마도와 외마도가 두둥실 떠있습니다.
마을을 지켜준다는 외마도 '코끼리바위'가 가슴 아래까지 물에 담그며 파도를 막아서고 있습니다.
파도가 만든 하얀 포말이 섬 아래에서 덩실거려 어지럽기까지 합니다.
어부바위 유감
터덜터덜 내려갑니다.
근데 기대하며 찾았던 어부바위가 보이질 않습니다.
누워있는 사내얼굴을 닮았다는 일명 미남바위를 찾질 못해 아쉽습니다.
방파제와 연결된 작은 바위섬이라는데, 물이 들어오면 잠긴다고 하네요.
쌍꺼풀진 눈, 뾰족한 코, 약간 벌린 입, 그리고 구릿빛 얼굴에 풍파가 스치며 만든 주름에 검은 턱수염까지 억겁의 세월을
견뎌온 뱃사람을 닮았다는데 아쉽습니다.
사진하나 훔쳐왔습니다. ㅎ
30여 성상(星霜)을 해군과 함께 뱃사람으로 살아온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칩니다.
검푸른 파도 물 가르며, 깊은 정 새겼는데...
남쪽 벼랑아래 ‘달 피미’짝지해변도 저질체력으로 포기합니다.
낚시꾼도 탐방객도 없어 섬이 텅 비어있는 듯합니다.
참 조용한 섬입니다.
1도 급할 게 없이 걸어냈지만, 노인네들에겐 제법 빡센 산행이었습니다.
만찬
저녁상을 받습니다.
자연이 한상 가득합니다.
‘우럭’회와 ‘문어’숙회 -.
중년부부가 5년 전 여수에서 귀어(歸漁)하여 열었다는 민박집입니다.
수줍음 타는 남편과 목소리 시원시원한 여인네의 지나친(?) 호의가 앙상블을 이룹니다.
어려운 고비를 수없이 넘기고서야 이곳에 정착했다는 여인네의 손맛에 감동합니다.
정성이 가득담긴 상차림으로 매끼마다 즐겁습니다.
먼데서 어렵게 들어온 섬 나그네들이 보상받는 순간입니다.
섬 밥상 때문에 더 묵고 싶어집니다.
파도소리와 함께 밤이 깊어갑니다.
낙조
낙조를 보려면 다시 뒷산으로 올라야 합니다.
낙조사냥은 ‘정이품’님께 맡기고(^^) 푹~ 쉽니다.
[지금껏 누구의 가슴이 저렇듯 뜨거웠을까.
태워도 태워도 남겨진 불덩이
출렁이는 붉은 하늘빛
가슴 뛰게 하는 황홀함
오늘을 마지막처럼 살다가 물 주름 사이로 숨는 너
내 눈빛 거두게 하고
열정의 발자국 남기고 사라지는 낙조여!] (‘최장순’)
낙조를 보면 자신도 모르게 감탄하는데요, 거느린 하늘의 웅장함과 장엄한 낙조의 표정 때문입니다.
어디 그뿐일까요?
저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가질 때까지 겪어온 바람과 구름을 헤아린 마음도 함께 있습니다.
열심히 살아왔을 열정에 대한 박수와 존경도 함께 있습니다.
인생 황혼기 -.
낙조를 보면 열정 없이 흘려버린 젊은 시간이 안타깝습니다.
만재도의 밤
[여행은 인생이다.
여행은 떠나는 일이다.
오늘의 나를 떠나, 어제의 나와 내일의 나를 만나는 일이다.
힘들여 살아가는 나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나와 소통하는 일은 살아가면서 얼마나 중요한가.
타지에서의 깊은 밤 -.
낯선 침대에 누워 어둠에 안기노라면, 내가 두고 온 많은 일들이 그동안 내 삶을 얼마나 꽁꽁 묶어놓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사람에 치이고 생활에 찌든 현실의 무게는 늘 버거웠고, 사랑에 배고픈 일상은 언제나 외로웠다.
오늘 아무리 삶이 버겁고 외로울지라도 언제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한마디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에게 행복은 늘
품안에 있다] ('고도원')
우리도 이곳에서 오늘 하루라도 자유인이 된 기분입니다.
섬은 자유인들의 이정표입니다.
생각해보니 오늘이 연평해전이 있었던 날이네요.
참여하진 못하지만, 명복을 빕니다.
다음날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