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평에도 수도원이 있다고?
송 용 식
수도원은 책에서 읽거나 영화 속 알프스 산맥 어디쯤 있다는 봉쇄수도원이 떠오르는 이미지의 전부다. 스스로 세상과 거리를 두고 멀리 떨어져 하늘을 향했던 고립(孤立)의 섬같은 곳. 정 사장이 가까이 있는 수도원에 가보지 않겠냐고 했다. 남평에도 수도원이 있다고?
남평읍 강변도시 끄트머리에서 화순쪽 지방도를 조금 가다 보니 우측에 ‘가톨릭 글라렛선교수도회 글라렛영성의 집’이라는 안내 문주가 있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나이 든 벚나무와 꽝꽝나무 울타리 길을 오르다 보니 파란 하늘과 맞닿아 있는 수도원 건물이 보인다. 수도자들의 영적 공간이라는 선입견 탓인지 적막과 경건함이 온몸으로 스며드는 것 같았다. 수도원 창고’라 이름 지어진 카페에서 김 비안네 신부님을 만났다. 자그마한 키, 평안한 모습의 미남이었다. 차 한 잔 나누고 수도원을 둘러보기로 했다. 건물 입구 넓은 마당 주위는 잡초가 무성했다. 한때는 그늘막 역할을 톡톡히 했을 파고라 위엔 등나무 넝쿨이 계절을 잃은 채 말라 있었다. 밑둥을 잘라 버렸단다. 산자락 끝 잡초 속에 풀과의 전쟁을 포기해 버려진 듯 서 있는 하얀 성모상. 내가 죄를 지은 듯 불편했다. 그러나 ‘십자가의 길’은 깔끔했다. 들르는 사람마다 소망을 빌지 않았을까 싶었다. 만여 평의 넓은 장원(莊園)은 버릇없이 자란 귀공자 같지만 아늑하고 평화로웠다. 하늘을 찌를 듯한 메타세쿼이아를 보며 수도원의 연륜을 가늠해봤다. 도시 가까운 곳에 이런 수도원이 있다니….
건물 내부로 들어서자 맞은편 벽에 걸린 커다란 그림 한 점이 눈에 들어온다. 홍성담 화백의 ‘사시사철-봄’. ‘1980년 오월의 봄. 그 해 오월은 사람이 아팠다.’로 이어지는 작품 설명을 읽어보며 얼핏 수도원에 어울리지 않는다 싶었는데 그 순간 예수를 안고 있는 피에타 조각이 떠오른다. 피 흘렸던 시대, 사람이 아팠던 그 해 오월을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 2층 성당 앞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빛깔이 신의 손길처럼 신비롭다. 커다란 문을 열고 아담한 성전으로 들어서니 하나둘 불이 켜지고 비로소 하느님과 만남의 장이 드러났다. 신음 같은 탄성이 저절로 나왔다. 제대(祭臺) 뒤 십자가 위에서 흘러내리는 빛. 천장과 벽의 등기구가 연출하는 또 다른 빛의 어울림. 경건함을 다독이는 창. 작지만 수채화처럼 예쁜 공간이다. 순간 세속적인 ‘작은 결혼식’을 떠올렸다. 멋지겠다는 생각. 책들로 가득 채워진 3층 도서관은 2개 층을 오픈한 높은 공간이었다. 커다란 통창을 통해 수도원 정원과 드들강의 들녘이 한 눈에 들어오고 멀리 무등산이 아스라했다. 도서관이지만 피정⁰ 온 신자들이 먼 산을 바라보며 스스로 성찰하는 장소로도 괜찮을 것 같았다. 나도 어쩌면 시름을 안고 와서는 글을 쓰거나 깊은 회억(回憶)에 잠겨있지 않을까. 피정객들이 묵는 숙소와 식당이며 신부님들의 내밀한 공간까지 살짝 엿보았다.
신부님이 내가 가장 궁금해 하는 내용을 쉽게 설명해 주신다. 글라렛은 1849년 수도회를 창시한 안토니오 마리아 글라렛이라는 스페인 성인의 이름(성)이며 글라렛선교수도회 본부는 로마에 있고 전 세계 70개국에 있단다. 국내에는 서울 성북동 본원과 부천 이주민센타, 낙산분원 그리고 남평 네 군데에 있다. 정릉시장 안에 ‘청년식당 문간’을 열어 배고픈 청년들에게 단돈 3,000원으로 한 끼를 해결하게 하는 이문수 신부도 서울 성북동 본원 소속이란다.
가톨릭 사제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일반 성당에서 접하는 사제들은 교구 사제라 불리며 서울, 광주, 대전, 부산 같은 특정 지역 교구장 산하에서 활동한다. 또 한 부류는 수도 사제들로, 지역이 아니라 베네딕토회, 프란치스코회와 같은 수도회 소속으로 그 수도원만의 고유한 영역에서 활동한다. 또한 수도회도 몇 부류로 나뉜다. 수도원 울타리 안에서만 기도와 노동으로 살아가는 관상수도회와 사회와 교류하며 필요한 일들에 헌신하는 활동수도회. 그 중간쯤의 반관상 수도회들이 있다. 글라렛수도회는 활동수도회로서 소외되고 영적 위로가 필요한 이들을 선교하며 살아간다. 이런 사제의 길은 맨 처음 교구와 수도회 중 소속을 택하면서 시작된다. 신학 과정은 똑같지만 교구는 병역을 포함해서 8~10년, 수도회는 수도회 자체 교육이 필요해 2~3년 더 걸린다.
건물 머릿돌을 보니 축성일이 1996년 10월 27일. 신부 세 분과 수도원을 지을 때부터 진두지휘했던 수사님, 그리고 신학생 모두 다섯 분이 생활하고 있었다. 수도원은 기부금과 피정 수익금으로 운영되는데 기부금은 줄어들고 코로나 사태로 피정은 할 수 없어 운영이 매우 어렵다고 한다. 신부님들도 주머닛돈 정도의 생활비를 받는데 요즘에는 매달 30만원씩 받는 것도 힘든 형편이라고 했다. 이를 어쩌나. 방법은 없는 것일까.
피정⁰(避靜) :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성당이나 수도원 같은 곳에서 묵상이나 기도를 통하여 자신을 살피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