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면 찬가(裏面讚歌)
정현수
부조리하고 자기 실리만을 추구하는 건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세상사를 공통적 시야로 볼 때 공공의 이익이나 가치를 위해 능력을 다 하는 이들은 정의로운 사람이 아닐까? 책임을 다함은 능력자의 필수 불가결한 의식이며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삶의 가치다. 반대로 자기만족에 국한되고 사회적 책임에 무성의 한 사람은 자기 실리만을 동기로 삼는다. 그들, 넓으러 저 있는 욕심은 무책임으로 결국 숨길 수 없는 파멸로 이끌어 갈 뿐이다. 이러한 이해의 양면은 우리 모두가 잘 판단해야 하고 가져야 할 의식이다. 정의적, 창의적, 보편적 일에 자기 의무나 책임을 다하는 사람들은 절대 자기 생을 허투루 낭비하지 아니한다. 좀 더 바르고 윤리적인 사회로 이끌어 감을 최우선인 대전제(大前提)로 삼기 때문이다. 정의로운 일에 자기희생을 다 해야 하며 창의적 일에 어떤 수고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또 보편적 일엔 모든 걸 함께하는 동반자적 삶을 같이 하여야 한다. 한마디로 그것들의 특징인 정의적, 창의적, 보편적 삶은 선한 사람들이 가져야 할 공통의 숙제다. 그러므로 어느 순간에 해야 할 일을 주저하거나 단순한 잣대로 바라보는 것은 크나큰 실수가 아닐 수 없다. 어떤 기준이 모호해지고 책임을 느끼지 않으면 필요 없이 남아버리는 불필요한 잉여적 존재가 될 수 있다. 그건 정말 슬픈 일이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모든 이와 같이 하는 사회적 동물이 아닌 금수 같은 존재로 살아가는 것은 자기가 가진 값진 숙명을 저버리는 것과 같다. 지금, 동기부여가 필요하고 반추하는 삶에 다시 한번 서로 연결하며 살아야 하는 가치 있는 생활을 아니 생각할 수 없다.
벌써 새벽 4 시가 훌쩍 지나고 있다. 엄연히 자연적으로 돌아오는 하지의 여름을 맞이하듯 밖엔 보슬비가 소리 없이 내리고 있다. 상처받은 자연은 인간 문명의 배신으로 크게 저항하지 않으며 쓸쓸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잠을 못 자게 시련을 주는 귓병은 이젠 나와 땔 수 없는 동반자다. 약간의 통증과 가려움은 벌써 몇 년째 정상적인 잠을 못 자게 한다. 해남 남창 살 때부터 몇 번 의원에 가 보았지만 별 신통한 진전이 없어 이젠 아예 방치하고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무관심으로 이어 저 왔다. 하여 새벽 대여섯 시쯤에 자기 시작해 낮 정오까지 잠을 잔다. 이게 벌써 4년째인가? 이젠 이골이 나 별 부담 없이 그걸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니 내 생활은 낮과 밤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밤에는 그저 한자라도 쓰거나 가끔 지루할 때 텔레비전을 본다. 자연히 어디 여행을 가거나 하다못해 일요일 성당 미사조차도 가지 못한다.(저녁 미사도 있지만 도통 게을러 있을 뿐이다.)
새벽 4 시 반쯤인가? 갑자기 반쯤 열린 창문 밖이 환해지면서 지지직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전봇대 변압기(내 사는 곳과 10여 미터)가 불이 붙어 사정없이 소리를 내며 타고 있다. 비가 스며들었나? 한 삼사십여 초 타는 걸 지켜보다가 재빨리 119 소방서에 전활 했다. 사 오 분 후에 소방차가 왔을 땐 불은 꺼져 있고 창문 밖 소방수는 내가 가리키는 전봇대를 살핀 후 바로 한전에 전화를 했다. 이어 한전 직원이 오고 작업에 들어갔다. 그 작업은 6 시가 훌쩍 지난 후 끝이 났다. 그때까지 소방수는 자리를 비우지 않고 혹시 모를 2 차 사고에 대비하고 있다. 이 모든 것에 책임을 끝까지 다하려는 소방수의 모습은 과히 존경할만하고 믿음직스러웠다.
공익인, 특히 소방수는 내가 젊었다면 꼭 해보고 싶은 일이다. 우리가 위험에 처하거나 도움을 요할 때 언제든 어느 곳에서든 나타나는 쾌걸 조로 같다. 그들은 만능 재주꾼들이며 정의의 사도다. 그들은 생명 경시의 풍조에서 자기들 일에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지 않으며 어떤 위험한 일이든 주저하지 않고 그런 일에 과감히 덤벼든다. 과정에서 각종 수고의 고통이나 어려움이 따르지만 그들의 희생봉사로 뭔가 꼭 해결해야만 하고 그것에 끊임없이 도전한다. 그들은(구조, 구급, 화재진압대원) 사회적 문제에서 가장 도전적으로 해결하는 해결사이며 우리들의 한 방편이다. 어려움이나 위험에 찬 우리와 동화하면서 자기 일을 지배하고 어떤 일에서는 과감히 결정하기도 한다. 위험한 일에 스스로 얽매일 때 확실한 판단을 하며 자기 책임을 다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그들은 국민의 안녕과 재산을 지키는 최 일선의 파수꾼들이다. 일에 열정을 쏟으며 힘찬 몸짓으로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러나 가끔 그들이 위험에 빠져 도리 없이 생을 마감하는 보도도 듣는다. 사람들을 구하거나 동료를 위하여 자기를 희생하는 기사를 읽을 땐 가슴이 저미는 숙연함에 젓게 한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인생을 살고 있다. 가정이나 일터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다. 무탈하고 무난한 평범한 삶을 지향하는 건 그들도 우리와 생각이 똑같고 틀림없는 같은 입장이다. 우리들이 어떤 고통에 휩쓸릴 때 그들은 우리의 구원의 소리인 애가 타는 소리에 젖은 듯 자신들을 내던지고 있다. 우리도 그들의 고통과 안타까움을 알아야 한다. 위험하거나 어려움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국가에선 특별히 보살피고 대우함은 누구나 다 공감하는 시대적 과제다. 그들이 마음 편히 자기들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근무 조건과 처우를 개선함은 그들이 노력한 만큼 수고의 대가가 오는 삶이 되어야 할 것이다. 같은 직종의 미국이나 다른 나라의 예를 굳이 들고 싶진 않다. 그들이 뭔가를 요구할 때 응답해 줄 수 있는 여유를 가짐은 어떨까?
2024. 6.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