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그늘로 나의 다른 하늘을 삼으리라
그의 모습이 눈에 보이지 않았으나
그의 안에서 나의 호흡이 절로 달도다.
물과 성신으로 다시 낳은 이후
나의 날은 나의 날로 새로운 태양이로세!
뭇사람과 소란한 세대에서
그가 다만 내게 하신 일을 지니리라!
미리 가지지 않았던 세상이어니
이제 새삼 기다리지 않으련다.
영혼은 불과 사람으로! 육신은 한낱 괴로움.
보이는 하늘은 나의 무덤을 덮을 뿐.
그의 옷자락이 나의 오관에 사무치지 않았으나
그의 그늘로 나의 다른 하늘을 삼으리라.
정지용 시인의 <다른 하늘> 이라는 유명한 시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그분의 유명한 시는 <향수>입니다.
이렇게 시작합니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정지용 시인은 프란치스코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은 천주교 신자입니다.
그분의 아들 한 분이 사제의 꿈을 키웠다고 전해지기도 합니다.
<다른 하늘> 이라는 시에서 다른 하늘은 하느님을 말합니다.
눈에 보이는 하늘은 그저 나의 무덤을 덮을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포근한 그늘 속에서 생명이 살아 움직임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하느님의 그늘로 다른 하늘을 삼겠다고 노래합니다.
정지용 시인의 <호수>라는 시가 있습니다.
충청도 옥천, 시인의 생가에 이 시가 걸려있습니다.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 싶은 마음
호수만 하니
눈 감을밖에
세상일이야 손바닥 하나로 가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보고 싶은 마음은 호수보다 더 커서 두 손으로 가려도 가릴 수가 없네요.
그저 뵙고 싶은 마음 간절하니 눈 감을 수밖에 없습니다.
눈 떠야 보이지 않는 하느님, 눈 감아야 뵐 수 있을 뿐입니다.
하느님은 그렇게 눈으로 보아 알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분은 기운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정지용 시인은 그 기운을 <그늘>이라 표현합니다.
하느님의 그늘로 나의 하늘을 삼으리라.
우리 말에 '그느르심', '흠이나 잘못을 덮어주심'아라는 뜻을 갖는 말입니다..
동사 원형은 '그느르다'입니다.
이 '그느르심'이라는 단어가 혜화동 신학교 교가에 나옵니다.
"성신(聖神)의 그느르심, 아늑한 이 동산에
우리는 배우리라 구원의 Veritas(베리타스)!"
'그느르심'이라는 단어는 아마도 '그늘'에서 왔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그늘로 나의 다른 하늘을 삼으리라'는 부분은 이렇게 써볼 수 있겠지요.
"그분의 그느르심으로 나의 다른 하늘을 삼으리라."
"그분의 도움과 보호로 나의 하늘을 삼으리라."
성령은 위로해 주고 격려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성령은 우리를 보호해 주고 변호해 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별명이 '위로자'요, '변호자'입니다(파라클리토/paraclito).
우리를 당신의 그늘로, 당신의 그느르심으로 덮어 보호해 주시고 위로해 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성령송가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가장 좋은 위로자 영혼의 기쁜손님, 생기 돋워주소서.
일할 때 휴식을, 무더울 때 바람을, 슬플 때 위로를
허물은 씻어주고, 마른 땅 물 주시고 병든 것 고치소서.
굳은 맘 풀어주고, 찬 마음 데우시고 바른길 이끄소서.
주님 도움 없으면 저희 삶 그 모든 것 이로운 것 없으리라.
어린아이는 엄마 품속에서 행복합니다.
믿는 이들은 하느님의 품속에서 행복합니다.
어린아이는 엄마를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의 그늘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의 그느르심 안에서 보호받고 위로받고 있음을 압니다.
그래서 오늘은 정지용 시인의 시를 통해 우리의 믿음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보이는 하늘은 나의 무덤을 덮을 뿐...
보이지 않아도 하느님의 그늘로 나의 다른 하늘을 살으리라."
박신부의 묵상 산책
ㅡ모든 것 안에 놀라운 축복이 있습니다ㅡ5권 중에서
서울 대교구 상도동성당 주임사제이신 박성칠 미카엘 신부님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