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이라는 계절과 여름 날씨가 오류를 일으켜
뭘 입고 나서얄지 고민되는 날들.
미국 리얼리티 화가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1882-1967)의 전시를 관람했다.
부지런히 얼리버드를 신청하고
더 부지런히 도슨트도 신청했건만
도슨트 일정 잡기에는 실패.
그만큼 인기있는 전시회지만,
크고 유명한 그림들이 별로 없었다.
삽화와 습작이 대부분이라
호퍼에 대한 공부는 엄청 시켜준다.
그림 보여주기보다 텍스트와 영상 같은 자료로 때우는 요즘 전시회 경향에 대해 투덜투덜
여자 모델은 으레 부인 조세핀
늘 그렇듯 친밀감 일도 없다.
당당한 자세에, 표정은 허무하고 무기력.
조세핀의 이런 표정들 때문에 뭔가 주워들은 사람들은 이 가정의 폭력을 떠올리게 되는데,
과연 이게 실제 조세핀의 표정이었을까.
남편을 성공시키고 자신의 화가일생을 닫아버린 조세핀은 호퍼와는 달리 활기찬 여성으로 전해지기에
이 작은 목탄화가 더 조세핀으로 다가온다.
150cm의 자그마함도 느껴지고
보기 드물게 여러 인물 등장.
그러나 역시 아무도 떠들고 있진 않다.
빠리의 카페 그림을 이렇게 싸늘하게 그리다니.
아무래도 주인공은 광대 같은데
노골적으로 주시하고 있는 여자를 비롯하여 좌우의 인물들은 낯선 광대를 경계하는 듯하고
차가운 경계의 푸른 색.
육십 넘어 그린 호퍼의 어린시절 집 계단.
계단이 내려가는 방향인 것부터 분위기 묘하다.
열린 문 밖에는 어둑한 숲이 허드슨강과의 사이를 막고 있다.
고향집에 대한 호퍼의 기억의 색이 한층 어두운 건
아이의 막연히 두려운 정서가 더해져서인지.
우리는 일층으로 내려오는 어린 호퍼와 발걸음을 같이 한다.
이 다소 초현실적인 그림이 나의 원픽.
이유는 별거 없다.
내 오피스텔 방에 걸어두면 사이즈와 색감이 맞을거 같아서.
2011년 '이것이 미국 미술이다'라는 직설적인 이름의 전시에 단 한 점 한국에 왔던 호퍼의 그림.
그때 도슨트가 광활한 미국, 고독 이러쿵저러쿵 호퍼를 설명하면서 거의 밑줄 치라는 분위기였다.
호퍼는 하나의 장르이기에, 무리도 아니다.
그림과의 재회가 반가워 또 마그네틱을 사고야 말았다.
을씨년한 밤거리를 다급히 지나가는 남자를 내려다 보는 구조의 에칭화.
무슨 일이 일어날 듯 아슬한 긴장감을 준다.
히치콕이 작품에 활용한 호퍼의 그림 중 하나.
호퍼는 그림의 공간으로 스토리를 열어 주고는
자신은 그 스토리에 대해 입을 열지 않는다.
묵직하고 침착하고 시종일관 비관적이고
은둔과 편견에 틀어박힌 남자.
그렇게 호퍼를 읽었다.
그가 펼치는 스산한 스토리에 빠져들기엔
우리 일행은 사뭇 유쾌했고
관람전 줄 서 먹은 맛집은 터질듯 시끌벅적했고
무엇보다, 요즘 모처럼 긍정모드로 단순설정해 놓은 상태라.
사진 찍듯 서둘러 눈에 익히고
조금씩 꺼내 보려 한다.
전시에 오른 그림은 아니고
호퍼의 마지막 작품이라기에 찾아봤다.
커튼콜을 하는 두 명의 코미디언
즉 호퍼와 조세핀이 관객에게 인사를 고하는 듯하다.
첫댓글 알마님 아침일찍 후기 올렸네요.역시!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그림과 설명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