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기행 취소합니다.) 죽령 옛길과 안동의 봉정사, 예천의 초간정을 거닐다.
2023년 8월 15일 광복절에 백두대간 사이 단양과 영주를 연결하는 국가 명승으로 지정된 죽령 옛길을 걷고,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이 다녀간 안동의 봉정사에서 개목사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소나무 숲길을 걷고, 예천의 금당실 마을과 초간정 그리고 용문사 일대를 걷다가 돌아올 예정입니다.
소백산을 지난 백두대간이 하나의 큰 고개를 열었으니 그 고개가 죽령이다.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과 충북 단양군 대강면 사이에 있는 고개인 죽령은 높이가 689m로 대재, 죽령재라고도 부른다. 백두대간이 영남과 호서를 갈라놓는 길목에 해당하며, 신라 제 8대 임금인 아달라 이사금이 길을 열었고, 삼국시대 이래로 봄․가을에 나라에서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조선시대에는 죽령사라는 산신당이 있었다.
조선 초기의 문신 서거정이 '소백산은 태백산에서 이어져 서리서리 백리길이 구름 속에 갇혀 있네. 분명히 동남계(東南界)를 구획하여 하늘과 땅을 이루니 귀신도 인적을 깨우쳤다 '고 노래한 이곳 죽령을 무대로 설치던 도둑 떼를 잡아 수호신이 된 할머니의 제사를 지내는 곳은 일명 국사당이라고 불리는 대강면 용부원리의 산신당이다. 다자구 할머니(주막집 할머니 이름)가 죽어서 죽령의 산신령이 되었다고 믿는 사람들이 지어 불렀던 노래는 다음과 같다.
다자구야 들자구야 언제가면 잡나이까
들자구야 들자구야 지금오면 안됩니다
다자구야 다자구야 소리칠 때 기다리소
다자구야 다자구야 그때 와서 잡아가
대강면 용부원리 죽령역에서 풍기읍 희방사역으로 빠지는 중앙선 철도가 길이 4,500m의 똬리골(죽령터널)을 통하여 죽령 산허리를 통과한다. 단양과 풍기 간 국도가 지나는 용부원리 쪽 죽령터널 입구 부근에 제 2 단양팔경의 하나로 꼽히는 죽령폭포가 있다.
나라 안의 절집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 바로 봉정사 극락보전입니다. 이 절을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찾았던 유서 깊은 절입니다, 개목사에서 봉정사로 넘어가는 길이 얼마나 고적하고 아름다운지 그리고 영산암은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라는 영화가 촬영된 곳입니다.
다시 이어질 여정은 초간 권문해 선생이 지은 초간정이고 그 위에 유서 깊은 절 용문사가 있습니다, 어리이 날 하루 동안 돌아다닐 이번 여정에 참여를 바랍니다.
“17세기 초에 안동의 지리지 「영가지」를 편찬한 권기는 안동의 지세를 “산은 태백으로부터 내려왔고, 물은 황지로부터 흘러온 것을 알 수 있으며... 산천의 빼어남과 인물의 걸 특 함과 토산의 풍부함과 풍속의 아름다움과 기이한 발자취”가 이곳에 있다 하였다. 멀리로 태백, 소백의 백두대간이 지리산으로 흐르고 낙동강의 물줄기가 아슴프레하게 보이는 천등산은 안동의 서쪽에 있고 그 산에는 봉정사, 개목사 같은 고색창연한 옛 절이 있다.
천등산(575m)은 그렇게 높지 않지만 소나무와 잡목들이 울창하고 산세가 온화하며, 수려하다. 주차장을 지나 산 길을 접어들면 숲길은 아늑하고 계곡 물소리가 제법 요란한 좌측에 정자가 한 채 있다. 퇴계 이황이 이 봉정사에 묵으면서 공부하다가 자주 나가 쉬었다는 정자의 옛 이름은 낙수대였다. 밋밋한 그 이름을 퇴계는 정자에서 듣는 물소리가 옥을 굴리는 듯 아름답다고 하여 명옥대로 바꾸었다. 바위 사이를 흐르는 시내물소리가 멎기도 전에 「천등산 봉정사」라고 쓰여 진 일주문에 들어서고 나무숲이 우거진 길을 계속 올라가면 봉정사가 나타난다.
빼어난 문화재들이 보석처럼 숨어있는 천등산 기슭에 있는 봉정사(鳳停寺)는 의상이 세운 절로서 창건설화는 이렇다.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스님이 부석사에서 종이로 봉황을 만들어 도력으로 날려 보냈는데 종이로 만든 봉황새가 앉은 이곳에 절을 짓고 봉정사라고 이름 지었다. 또 다른 일설에는 의상이 화엄기도를 드리기 위해서 이산에 오르니 선녀가 나타나 횃불을 밝혀 걸었고, 청마가 앞길을 인도하여 지금의 대웅전 자리에 앉았기 때문에 산 이름을 천등산이라 하고 청마가 앉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절 이름을 봉정사라고 지었다 한다.
창건이후의 확실한 역사는 전하지 않으나 참선도량으로 이름을 떨쳤을 때에는 부속암자가 9개나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한국전쟁 때 사찰에 있던 경전과 사리 등을 모두 불태워 역사를 제대로 알 수가 없다.
이절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하화마을과 이곳 봉정사를 찾았고 그때부터 이절은 입장료를 받게 되고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나라 안에 가장 오래된 건물
이 절에는 고려 때 지은 극락전(국보15호)과 더불어 조선 초기 건물인 대웅전과 조선후기 건축물인 고금당과 화엄강당이 있어서 우리나라 목조건축의 계보를 고스란히 간직해왔기 때문에 건축박물관 같은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일주문을 지나 나무숲 길을 걸어가면 돌계단에 이른다. 한 발 두 발 숨이 가쁘게 올라가
면 봉정사의 강당인 덕회루 밑으로 지나게 된다. 마치 부석사의 안양루를 지나 무량수전 석등 앞으로 올라가듯이 그 문을 들어서면 석축이 나타나고 대웅전을 중앙에 두고 요사채와 화엄강당이 눈 안에 들어온다. 그 좌측으로 같은 위치, 같은 높이에 극락전이 고금당과 함께 있다. 봉정사 극락전은 정면 3칸, 측면 4칸의 단정한 맞배지붕으로 나라 안에 현존하는 건물중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알려져 있는데 그러한 사실이 알려지게 된 것은 1972년 9월 봉정사 극락전을 해제 보수하는 과정에서 였다.
중도리에 흠을 파고 기문장처(기록이 들어있는 곳)이라고 표시한 곳을 열어보자 극락전의 상량문이 들어있었고 그 상량문의 내용은 이러했다. “안동 부 서쪽 30리쯤 천등산 산기슭에 절이 있어 봉정사라 일컬으니 절이 앉은 자세가 마치 봉황이 머물고 있는 듯하여 이와 같은 이름으로 부르게 됐다. 이절은 옛날 능인대덕이 신라 때 창건하고… 이후 원감 안충 등 여러 스님들에 의해 여섯 차례나 중수되었으나 지붕이 새고 초석이 허물어져 1363년(공민왕 12년)에 용수사의 대선사 축담이 와서 중수했는데 다시 지붕이 허술해져서 수리하였다.” 이 상량문이 밝혀짐으로서 그때까지 가장 오래된 건물이라고 알려졌던 무량수전은 1376년에 중건했는데 봉정사의 극락전은 그보다 13년이나 앞선 1363년에 중수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13년이라는 년대의 차이보다 봉정사 극락전은 대체로 고구려식이라는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극락전은 1972년의 해체와 복원공사 때에 금, 은, 구리의 옛날식 삼색 단청이 지워져 버렸고, 그 중요한 일부분이었던 귀중한 벽화가 뜯겨 포장된 채로 내버려져 옛 맛을 상실하고 말았다. 이 건물은 배흘림기둥에 기둥위에만 포작이 있는 주심포식 맞배지붕이며 법당으로서 소박하고 간결하게 지어진 필요한 구조만 있지 장식이 거의 없는 고려중기의 단아한 건물이며, 바닥에는 검은 전 돌을 깔았다. 이런 방식은 고려시대의 일반적인 양상이었는데 중요한 것은 보수 할 때에 대웅전․화엄강당․고금당이 새집같이 지어져서 몇백년을 세월 속에 묵어온 온갖 풍상이 돌이킬 수 없게 되어 찾는 이들의 마음을 섭섭하게 한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대웅전에서 전면에 보이는 누각이 덕회루의 누마루다. 법고와 목어 사이로 봉정사의 오랜 역사를 적은 편액들이 걸려있다. 나는 스님들이 머무는 무량해회(無量海會)라는 요사채를 돌아 영산암으로 향한다. 원래에는 천등산에서 흐르는 골짜기 그대로가 길이던 것이 영화「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 촬영되고서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골짜기를 메우고 계단을 만들었다. 영화「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89년에 네 개의 해외영화제 그랑프리를 비롯 특별상을 받아 한국영화의 우수성을 널리 알린 작품으로서 늙고 어린 승려 3명의 구도적 삶을 담고 있다. 투철한 수행으로 득도의 경지에 오른 노선사 해곡이 “사방이 몹시도 어두우니 마음의 심지에 불을 밝히고 갈 길을 비추어라”고 어둠 속에서 석등의 심지를 돋우던 장면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장면이다.
지조암과 더불어 봉정사에 딸린 암자중의 하나인 영산암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지인의 집을 찾아가는 느낌이다. 봉정사 대웅전 앞에 있다가 옮겨진 우화루의 작은 문을 지나 영산암의 마당에 들어서면 큰 바위 곁에 잘 드리워진 소나무가 한그루 있고 목백일홍 나무와 여러 가지의 나무들이 요사채, 삼성각, 응진전 등 다섯 채의 건물들이 묘한 조화를 이루며 서 있다. 지난날 봉정사의 스님들의 공부방이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이절 영산암에는 상주하는 스님이 없다. 나는 하얀 고무신 두 켤레가 놓인 요사채 마루에 기대 앉아 세상에 찌든 내 마음을 풀어 놓는다. 풀어진 내 마음은 솜털처럼 가벼워지고 그 가벼움으로 산길에 접어든다. <신정일의 암자기행> 중
“금곡천변을 조금 올라간 곳에 1582년에 지은 초간정(草澗亭)이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는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을 지었고 1580년에서 91년까지 11년 동안 일상생활에서 국정에 이르기까지 주변의 일들을 기록한 초간일기(草澗日記)(보물 제879호)를 남긴 초간 권문해(權文海)가 1582년에 지은 별채 정자가 초간정이다.
권문해는 마흔아홉에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하여 초간정을 지었는데, 처음에는 작은 초가집이었으며 초간정사라고 하였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불에 탔던 것을 17세기에 다시 세우고 1870년에 연이어 중수하여 권문해의 유고(遺稿)를 보관하는 전각으로 삼았다.
금곡천변에 소나무와 여러 나무들이 우거진 곳에 자리 잡은 초간정 앞에 서면 권문해가 30 년을 동고동락하던 아내를 잃고 90일장 장사를 지내면서 아내에게 바쳤던 뼈에 사무치는 제문이 떠오를 것이다.
“… 나무와 돌은 풍우에도 오래 남고 가죽나무․상수리나무 예대로 아직 살아 저토록 무상한데 그대는 홀로 어느 곳으로 간단 말인가. 서러운 상복을 입고 그대 영제 지키고 서 있으니 둘레가 이다지도 적막하여 마음 둘 곳이 없소. 얻지 못한 아들이라도 하나 있었더라면 날 가면서 성장하여 며느리도 보고 손자도 보아 그대 앞에 향화 끊이지 않을 것을, 오호 슬프다.
저 용문산을 바라보니 아버님의 산소가 거기인데 그 곁에 터를 잡아 그대를 장사 지내려 하는 골짜기는 으슥하고 소나무는 청청히 우거져 바람소리 맑으리라. 그대는 본시 꽃과 새를 좋아했으니 적막산중 무인고처에 홀로 된 진달래가 벗되어 드릴게요. …
이제 그대가 저승에서 추울까봐 어머님께서 손수 수의를 지으셨으니 이 옷에는 피눈물이 젖어 있어 천추만세(千秋萬歲)를 입어도 해지지 아니하리다.
오오, 서럽고 슬프다.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우주에 밤과 낮이 있음 같고 사물이 비롯과 마침이 있음과 다를 바 없는데, 이제 그대는 상여에 실려 저승으로 떠나니 그림자도 없는 저승 나는 남아 어찌 살리. 상여소리 한 가락에 구곡간장 미어져서 길이 슬퍼할 말마저 잊었다오. 상향.”
임을 여윈 슬픔이 이다지도 깊으랴. 흐르는 물위에 노란 은행잎이 떨어지고 해 뜨지 않은 아침녘의 초간정은 쓸쓸함으로 가득하다.
그곳에서 멀지 않은 예천군 용문면 죽림리에 중요민속자료 제 201호로 지정되어 있는 예천 권 씨 종택이 있다. 임진왜란 이전에 지어진 주택 건물로 남아 있는 것이 매우 드문데 이 지의 사랑채 건물은 15세기 말에 지어졌으며 보존상태도 아주 좋은 편이라서 보물 제 457호로 지정되어 있다.“
<신정일의 신 택리지 경상도> 중에
1. 일시: 2023년 8월 15일(화요일)
2. 출발 시간 및 장소: 서울 아침 7시, 양재역 12번 출구 서초구청 앞
전주 아침 6시 전주 종합경기장 입구, 6시 20분 월드컵경기장 싸우나 입구,
서울과 전주 한대가 출발할 때는 시간이 변경될 수 있습니다.
3. 참가비: 6만원
4. 어디로 가나요: 죽령 옛길(명승) 나라 안의 최고의 절집 중 한 곳인 봉정사에서 개목사로 가는 아름다운 길, 예천 금당실 마을, 초간정(명승)
5 안내 도반. 신정일(문화사학자, 우리 땅 걷기 대표, <신 택리지>의 저자,
신 택리지( 경상도의 저자)
6. 신청방법: 댓글로 신청하고 참가비 입금해야 완료(코로나 접종을 마친 사람)
7. 참가비 입금계좌: 국민은행 754801-01-479097 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
8. 참가비 입금 후 취소 시 환불 규정
(1) 행사일 5일전 인지: 은행 수수료를 공제 후 전액 환불
(2) 행사일 4일전부터 3일전까지: 참가비 50%를 공제후 환불
(3) 행사일 1일전부터 당일까지(미참가 포함): 환불액 없음
위와 같이 행사 참여 취소 시 행사비 환불을 명심하시어 불필요한 낭비를 줄이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회비를 입금하시고 대기자로 기다리셨다가 참여를 못하시는 회원님들의 불편함을 없게 하고자 함이오니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9. 문의전화: 010-9144-2564 다음 카페, 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
10. 주의사항: 모든 걷기의 안전에 대해서는 참석자 본인이 책임을 지셔야 합니다. 카페나 진행자는 안전사고에 대하여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예천 금당실 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