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20일 오늘의 역사
2023년 국민 게그맨 서세원 사망
2022년 러시아 일본 히로시마 원폭보다 2000배 되는 미사일 발사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악마의 미사일’로 불리는 차세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RS 28 ‘사르마트’의 시험발사에 성공했다. 사르마트에 장착된 핵탄두의 위력은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2000배다. 프랑스 전체나 미국 텍사스주 정도의 지역을 한 방이면 초토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협적인 핵무기를 내세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서방까지 압박하는 모양새다.
타스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국방부는 20일(현지시간) 오후 3시 12분 러시아 북부 플레세츠크 우주기지에서 사르마트를 발사했다고 밝혔다. 또 시험용 탄두가 약 6000㎞ 떨어진 캄차카반도의 목표물에 명중했다며 테스트 과정이 끝나면 전략 미사일 부대에 실전 배치될 것이라고 전했다. 전쟁 후 핵무기를 종종 언급한 러시아가 ICBM을 발사하며 실질적인 핵위협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18냔 남북정상간 핫라인 개통
2015년 6·25 참전영웅 스피크먼, 영국 최고 무공훈장도 한국 기증
1951년 11월 4일 새벽, 임진강 지역의 ‘317 고지’. 중공군의 강력한 기습 공격으로 고지를 방어하던 근위 스코틀랜드 수비대 소속의 수많은 병사가 부상을 당했다. 육탄전이 벌어졌고, 전세는 적이 우세했다. 이때 이등병 윌리엄 스피크먼(88)을 비롯한 6명의 병사는 적의 기세를 꺾기 위해 목숨을 걸고 과감한 수류탄 공격을 감행했다. 국가보훈처는 6·25 전쟁에서 무공을 세워 영국연방 최고의 무공훈장인 ‘빅토리아십자훈장(Victoria Cross)’을 받은 스피크먼씨를 비롯한 영연방 4개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출신 참전 용사와 가족 85명이 오는 20~25일 방한한다고 밝혔다. 스피크먼씨는 이번 방한에서 빅토리아십자훈장을 비롯해 자신이 받은 훈장과 메달 10점을 한국에 기증할 계획이다. 그는 “우리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지킨 한국에 대한 사랑의 표시”라고 했다. 2010년에도 한국에 온 적 있는 스피크먼씨는 “죽어서도 317 고지에 묻히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317 고지 전투에서 부상당한 뒤 1952년 1월 영국으로 돌아간 그는 귀국 3개월 만에 자진해서 돌아와 그해 8월까지 전장에서 싸우는 투혼을 보였다. 영국 정부가 그에게 준 빅토리아십자훈장을 받은 6·25 참전용사는 4명뿐이며 이 가운데 생존자는 스피크먼씨뿐이다.
이번 한국 방문단 85명 중에는 6·25 참전부대인 영국 왕립포병부대와 후크부대의 현역 군인 31명도 포함됐다.
2013년 중국 쓰촨성서 진도 7.0 강진 여진 30여 차례 사망·실종 200여명 부상 1만2천여 명 이재민 18만 명
2010년 미국 멕시코만 기름유출사고
2010년 4월 20일 미국 멕시코만 해저 석유시추시설 ‘딥워터 호라이즌’호(號) 폭발로 유정과 시추선을 연결하는 2개의 관이 터지면서 기름 유출 사고가 발생하였다.
원유유출 지점이 해저 1500m에 위치하여 1㎠당 635㎏에 달하는 수압과 낮은 수온에 기름과 함께 분출되는 메탄가스가 슬러시(slush 질척한 얼음)을 만드는 등 극단적 환경에서 로봇 잠수정을 통한 원격 작업으로 차단 작업을 진행했다.
일일 2만~10만 배럴이 유출되는 등 사태가 장기화 되자 버락 오바마(Obama) 미 대통령은 2010년 6월 15일 위기 극복을 위한 ‘오벌 오피스(Oval Office)’ 연설을 하였다. 이전 오벌 오피스 연설은 9년 전인 2001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했던 9.11 직후였다.
원유 유출 발생 후 85일 16시간 25분 만인 2010년 7월 15일 해저 시추공에 무게 75t짜리 차단캡을 설치하여 원유 유출을 차단하는데 성공하였다. 영국 석유회사 BP는 사고 5개월만인 9월 17일 멕시코만 해정 유정이 매장 기름과 유정 사이를 연결하는 시추 파이프에 구멍을 뚫어 밀도 높은 시추용 기름과 시멘트를 주입해 올라오는 기름을 차단하는 ‘바텀 킬(bottom kill)’ 방식으로 완전 밀봉됐다고 발표했다.
2010년 MBC PD수첩, 검사 스폰서 의혹 보도
2010년 4월 20일 MBC PD수첩이 경남의 N건설 전 대표인 정모(51)씨의 제보로 경남과 부산 지역 검사 60~70명의 스폰서 의혹을 보도했다. 정씨는 지난 20여년간 자신이 작성한 접대목록 문건을 일부 언론에 전달했으며 대검찰청도 PD수첩 방송과 함께 사실확인 작업에 착수했다.
정씨가 작성한 문건에 따르면 박기준 부산지검장과 한승철 대검찰청 감찰부장을 비롯해 법무부 고위직 인사와 부장검사가 언급돼 있고 적어도 100명 이상의 전·현직 검사들이 향응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씨는 1980년대 경남 일대에서 대형 건설 회사를 운영했으며 1984년부터 검사들과 인연을 맺기 시작, 지난 25년 동안 그 지역 고위직 검사들에게 접대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박기준 부산지검장은 방송 하루전인 19일, MBC 김재철 사장과 편성제작본부장, 시사교양국장 등에게 공문을 보내 방송 재고를 요청하기도 했다.
정씨는 2009년 8월 사기 등의 혐의로 부산지검에 구속됐다가 한달여 만에 구속집행정지로 풀려났으며 2010년 2월에 이미 부산지검에 같은 내용의 진정서를 냈다.
대검찰청은 검사 스폰서 의혹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23일 진상규명위원회 위원 9명을 위촉했으며 27일부터 본격적인 조사활동에 들어갔다.
의혹을 폭로한 정씨는 23일 오후 변호사 사무실에서 약물복용으로 자살소동을 일으키기도 했으며 박기준 부산지검장은 이날 사의를 표명했다. 역시 스폰서 의혹을 받고있는 한승철 대검찰청 감찰부장은 26일,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전보 조치됐다.
이후 6월 10일 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정씨의 진정서는 일부 과장됐지만 현직 검사 45명에 대한 접대의혹은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법무부는 6월 24일 검사징계위원회를 열고 박기준 부산지검장과 한승철 전 대검 감찰부장 등 검사장 2명의 면직을 의결했다.
2009년 '미네르바' 무죄석방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허위 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미네르바’ 박대성(31)씨가 무죄를 선고받고 석방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 유영현 판사는 지난해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에 정부 경제정책에 대한 허위 사실의 글을 게재하고 유포한 혐의(전기통신법 위반)로 구속기소된 박씨에게 2009년 4월 20일 무죄를 선고했다.
유 판사는 “인터넷 경제토론방의 성격 등을 고려할 때 과장되거나 정제되지 않은 서술이 있더라도 박씨가 전적으로 허위 사실이라고 인식하면서 글을 올렸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설사 허위 사실이라고 해도 공익을 해할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무죄선고 이유를 밝혔다.
유 판사는 박씨가 지난해 말 ‘정부가 달러 매수를 금지시키는 긴급명령을 발령했다’는 허위 글을 올려 정부의 환율 방어정책 수행을 방해했다는 검찰의 주장에 대해 “박씨의 글 때문에 달러 매수가 증가했다고 단정할 수 없고, 설사 이를 인정해도 정도를 계량화할 수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한 박씨가 지난해 7월 30일 ‘외환 예산 환전업무가 전면중단된다’는 내용의 글을 올려 우리나라 외환보유고가 고갈된 것처럼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당시 실제로도 외환보유고가 감소하고 있었고, 인터넷 뉴스에도 이 같은 내용이 게시되자 박씨가 글을 올린 것으로 보인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박씨는 이날 오후 경기도 의왕 서울구치소 정문을 나서면서 “개인이 권리를 지킨다는 게 얼마나 힘든 고난의 과정인지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면서, “(이제) 못 쓸 것 없지 않겠느냐”라고 말해 계속 인터넷에 글을 쓸 것임을 시사했다.
박씨의 변호를 맡은 박찬종 변호사는 선고 직후 “시국사건이라 무죄를 예상하지 못했다”며 “무죄가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씨를 기소한 서울중앙지검은 “재판부가 증거 선택을 잘못했고, 공익을 침해하려는 목적에 대한 법리를 잘못 적용했다”며 “즉시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의 이헌 변호사도 “박씨처럼 인터넷상에서 거짓말을 하더라도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현실적으로 없다”며 “‘공익’이나 ‘허위사실’과 같은 추상적인 개념을 좀 더 자세하게 규정해 처벌조항을 조속히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2009년 이재창 교수, 국제통계기구 회장에 선출
'통계 중진국'으로 분류되는 한국에서 국제통계기구(ISI) 회장이 나왔다.
국제통계기구(ISI)는 최근 넉 달에 걸쳐 세계 2300여명의 통계학자 및 국제 통계기구 회원들을 대상으로 우편 투표를 실시, 2009년 4월 20일 한국의 이재창(66) 고려대 명예교수를 차기 회장으로 선임했다. 한국인으로서는 첫 ISI회장이고, 아시아인이 회장이 된 것은 1983년 일본 도쿄대 교수 이후 26년 만이다.
ISI는 네덜란드 헤이그에 본부를 둔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통계기구. 각국 통계청장과 국제연합(UN)·국제통화기금(IMF)·경제협력개발기구(OECD)·세계은행의 통계국장, 그리고 통계학자 등 133개국 5600여명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 ISI가 논의해서 결정한 새로운 통계 분류체계와 통계 기준 등은 UN, OECD 같은 국제기구의 통계방식으로 채택된다.
이 교수는 이제부터 2년간 차기 회장으로 회장단에 참여해 활동하고, 2011년부터 2년 임기의 회장에 취임한다. ISI후보추천위원회는 이 교수와 필리핀 학자를 차기 회장 후보로 추대했고, 양자 대결에서 이 교수가 선출됐다.
이 교수는 이미 국제통계학계에서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 1980년대부터 한국통계학회와 한일통계학회, UN통계위원회, 국제통계계산학회 등에 빠짐없이 참석해왔다.
1963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3학년 때 미국 존 F 케네디(Kennedy) 대통령과의 만남을 계기로 국제활동에 관심을 갖게 됐다. 당시 세계 경제학 분야 대학생 지원단체인 국제경제산학학생연합회(아이섹) 한국 대표단으로 미국 백악관에 초청됐다. 이 자리에서 케네디 대통령은 한국 학생들에게 "4·19 혁명의 주역이다. 대단하다"며 칭찬했다. 그 말에 고무된 그는 앞으로 국제활동을 하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을 불과 몇 개월 앞두고 6·3사태 연루자로 지명수배를 받자 미국으로 건너가 오하이오주립대 경제학과에 입학했고, 같은 학교에서 수학 석사, 통계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78년 14년 만에 한국 땅을 다시 밟은 그는 고대 교수 시절인 1995년이 돼서야 서울대에서 학사학위 졸업장을 받을 수 있었다.
2005년 교황 베네딕토 16세 선출
새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20일 시스티나 성당에서 추기경들과 함께 첫 미사를 집전하는 것으로 공식 활동을 시작했다. 베네딕토 16세는 시스티나 성당 내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벽화 아래서 ‘루빌라테 데오(신을 찬송하라)’ 라는 성가를 부르며 미사를 시작했다. 교황은 라틴어로 행한 첫 강연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개혁을 계속 실현해나갈 것” 이라고 다짐했다. 교황은 이어 향후 교황직을 모든 기독교들의 통합과 재건을 위해 사용하겠다며 교계의 단합을 촉구하고 타종교와의 대화 필요성도 역설했다.
베네딕토 16세는 “주님은 나를 선택하심으로써 모든 이들이 자신있게 딛고 설 수 있는 바위가 될 것을 주문하셨다. 나는 주님의 양떼를 위해 대담하고 진실한 목자가 될 수 있도록 나약함을 채워주실 것을 간구했다” 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교황에 선출된 직후 자신이 교황으로 부적절하다고 느꼈지만 전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자신을 교황직으로 이끈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새 교황탄생을 알리는 흰 연기가 피어오르고 종소리가 울린 지 46분 지난 오후 6시 46분. 석양이 비치는 성 베드로 성당 발코니에 나타난 교황은 “우르비 엣 오르비”(바티칸과 전세계에)라며 첫 축복을 했다.
2004년 주민등록등본 등 민원서류 5종 인터넷으로 발급 시행
2004년 4월 20일부터 주민등록등(초)본, 건축물 대장, 장애인 증명, 농지원부등본, 모자가정증명 등 5종류의 민원서류를 가정이나 직장에서 인터넷으로 발급받을 수 있게 됐다.
주민등록등(초)본 등을 발급받고자 하는 주민은 읍·면·동사무소를 방문하지 않고, 인터넷 전자정부 홈페이지(www.egov.go.kr)에 접속해 민원을 신청하고 문서를 출력해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서비스 시간은 오전 7시부터 오후 9시까지로, 단 건축물대장은 우선적으로 서울지역에 대해서만 서비스가 실시돼 단계적으로 지역을 확대할 방침이다.
인터넷 발급 민원서류 중 본인 확인이 필요한 주민등록등(초)본, 농지원부등본, 장애인 증명서, 기초생활수급자증명 등 4종류의 민원서류를 발급받기 위해서는 ‘공인전자서명인증서’ 가 있어야 한다. ‘공인전자서명인증서’ 는 은행, 증권사, 우체국 등에서 발급받을 수 있으며, 이미 인터넷 뱅킹 등을 사용해 인증서가 있는 시민들은 별도로 발급받을 필요가 없다.
서류 발급에 사용 가능한 프린터는 총 701종으로 시중에 나와 있는 대부분의 프린터에서 출력이 가능하다. 출력가능 프린터 기종은 전자정부 홈페이지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2004년 제108회 보스턴 마라톤대회서 케냐 남자부 1~4위-여자 1위 제패
케냐가 108회 보스턴 마라톤을 휩쓸며 ‘마라톤 왕국’ 의 명성을 재확인했다. 케냐의 티모시 체리갓은 20일 오전(한국 시각)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대회 풀코스(42.195㎞) 남자부에서 2시간10분37초를 기록, 1위를 차지했다.
케냐는 로버트 체보로가 2시간11분49초로 2위를 차지하는 등 남자부 1~4위(3위 마틴 렐·4위 스테픈 키오고라)를 휩쓸었다. 케냐는 1991년 이후 이번 대회까지 이봉주가 우승한 2001년을 제외하고 매년 남자부 우승자를 배출했다.
여자부에서도 케냐의 캐서린 은데레바가 2시간24분27초로 우승의 기쁨을 안았다. 케냐가 보스턴마라톤 남녀부에서 동시에 우승한 것은 지난 2000년과 2002년에 이어 세 번째. 이날 레이스에는 세계 2만344명이 참가해 1만6743명이 결승선을 끊었으며, 한국은 미국(1만8022명)·캐나다(1477명)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165명이 참가했다
2004년 이수종 서울대 교수, 독일 베셀상 수상
서울대는 20일 물리학부 이수종(45) 교수가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독일 훔볼트재단이 주는 2004년 ‘베셀(Bessel)상’ 수상자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베셀상은 전 학문 분야를 대상으로 매년 45세 이하의 젊은 학자 10명에게 주는 상으로 수상자는 상금 5만5000유로(한화 7700여만원)와 1년간 독일 연구기관을 방문할 수 있는 경비를 지원받게 된다.
이 교수는 우주의 기원과 생성을 밝히는 ‘초끈이론(Super string theory)’ 에 관해 지난 10여년간 100여편의 논문을 SCI(과학논문인용색인)급 국제학술지에 발표, 2700여회 이상 인용되는 연구성과를 인정받아 수상자로 선정됐다고 서울대측은 밝혔다.
이 교수는 2001년 한국인 최초로 고에너지물리학 분야 유네스코 국제이론물리센터상을 수상했으며, 2002년에는 서울대 자연과학대학 연구상을 받기도 했다.
2003년 홍콩 2대 여(女)재벌, 바오융친 사망
바오융친은 지난 1992년 3기 유방암 진단을 받은 후 회복됐고, 이후 또 한차례 폐암 진단을 받았지만 오뚝이처럼 회복돼 ‘항암용사(抗癌勇士)’ 라고 불려왔다. 그러나 작년 말 신장병이 겹친 데 이어 지난 14일 고열까지 나면서 이날 사망했다.
바오융친은 지난 1998년 4억홍콩달러(약 640억원)재산으로 홍콩 2대 여재벌로 떠올랐고, 당시 라디오 방송 DJ와 사귀고 있다고 시인해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바오융친은 현재 1600억원 상당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지난 2000년 재산의 60%를 아들(22)에게 주고 나머지 40%를 딸(19)에게 넘긴다는 유언장을 작성한 바 있다. 그녀는 주식·부동산 투자 등으로 재산을 불려왔다. 그녀는 지난 1992년 유방암 진단을 받았으나 6개월 만에 완치했으며 1995년 암세포가 다시 폐까지 번졌으나 미국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건강을 회복했다. 작년 12월에는 신장에 이상이 생겨 중국 주하이(珠海)에서 신장 이식 수술을 받았다. 당시 신장이식 비용으로 23만홍콩달러(3700만원)를 사용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03년 미국 프로농구 NBA 선수 마이클 조던, 팬들에 작별인사 신문광고에 게재
“사랑하는 농구에게(Dear Basketball).”
20일자 워싱턴포스트·뉴욕타임스·LA타임스 등 미국의 유력 신문엔 ‘농구 황제’의 고별사가 전면 광고로 실렸다. 지난 17일(한국시각)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와의 원정경기를 끝으로 통산 15년간의 미 프로농구(NBA) 활동을 마감한 마이클 조던(40)은 이날 신문광고를 통해 팬들에게 작별인사를 보낸 것이다.
조던은 “나의 NBA 인생은 분명히 끝났지만 우리의 관계는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며 은퇴를 다시 한번 확인하면서도 계속 농구인으로 남을 것임을 암시했다.
미국 농구 역사상 가장 많은 팬을 확보했던 조던은 “우리집 주차장 뒤편에서 부모님의 소개로 당신(농구)을 처음 만난 지 벌써 28년이 흘렀다”며 “당신은 나의 인생이자 열정 그리고 삶의 원동력이었다”고 밝혔다.
조던은 82년 미국대학농구(NCAA) 챔피언전에서 조지타운대학을 상대로 천금의 결승골을 성공시켜 63대62로 역전승을 거둔 순간이 농구 인생에서 큰 전환점이 됐음을 회고했다.
지난 84년 NBA 전체 드래프트 3번으로 시카고 불스에 입단한 조던은 이듬해 신인왕을 차지하며 프로무대를 화려하게 수놓아갔다. 시카고 불스에서 뛰던 13년 동안 조던은 단 한번도 플레이오프 진출을 놓치지 않았고 통산 6회 우승을 이끌었다. 우승의 순간마다 챔피언전 최우수선수(MVP)는 그의 차지였다. 2001년 워싱턴 위저즈 유니폼을 입은 조던은 올 시즌 팀을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키기 위해 마지막까지 노력했으나 실패했다. 통산 평균 득점 1위(30.12득점), 득점왕 10회, 정규리그 최우수선수 5회 등 최고의 자리는 언제나 그의 것이었다.
조던은 두 차례 은퇴와 복귀를 반복했다. 93년 정신적 지주이던 아버지가 총에 맞아 사망한 충격으로 코트를 떠나 프로야구 선수로 활동하다 95년 복귀했다. 99년 1월에는 “정신적으로 지쳤다”며 두 번째 은퇴를 선언했지만 2001년 9월 “농구를 너무나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다시 돌아왔다. 63년생으로 올해 40세인 조던이 앞으로 다시 복귀하는 일은 없을 듯하다. 우주 공간을 유영하듯 공중을 가르던 ‘에어 조던’의 모습, 곡예 같은 슬램덩크와 환상의 페이드 어웨이 슛은 이제 화면 속에서만 볼 수 있게 됐다.
조던은 팬들과 그가 만난 5명의 감독, 그가 상대했던 다른 NBA 팀들에도 “나를 지도해 줘서 고맙다”며 감사의 말을 잊지 않았다. 그의 고별사는 “사랑과 존경을 담아, 마이클 조던”이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
2003년 호주, 헤로인 밀반입하려던 북한 선박 나포조사
호주 정부가 마약인 헤로인을 호주로 밀반입하려던 북한 선박을 20일 나포했으며, 선장과 선원을 체포해 조사 중이라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AFP는 북한 선적 상선인 4000t급 봉수호에 2400만달러 상당의 헤로인이 실려있었다고 현지 언론을 인용해 전했다.
호주 특수부대는 이날 함정과 헬리콥터를 동원,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에서 약 65㎞ 떨어진 공해상에서 봉수호를 나포했다. 호주 관리는 당초 해안경비대가 봉수호에 대한 수색을 실시하려 했으나 거부당했기 때문에 헬기와 해군 함정이 출동했다고 말했다. 체포된 뒤 시드니로 호송된 봉수호 선장과 29명의 선원은 1주일 정도 조사받게 된다.
호주 정부는 지난주 싱가포르·말레이시아 국적 등 4명의 남자가 50㎏의 헤로인을 소지한 혐의로 빅토리아주에서 체포되자 봉수호에 대한 감시를 계속해왔다.
2003년 영화 `살인의 추억` 개봉
2001년 이탈리아 지휘자 주세페 시노폴리 연주 도중 사망
이탈리아 출신 지휘자 주세페 시노폴리가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다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그는 2001년 4월 20일 베를린에 있는 국립 독일오페라극장(도이체오퍼)에서 베르디의 전4막 오페라 `아이다`를 지휘하다 3막 연주 때 심장쇼크로 쓰러져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곧 사망했다. 그의 사망소식에 음악인들은 "바그너 작품 연주에서 탁월한 통찰력을 보여준 지휘자를 잃었다"고 애도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태어난 시노폴리는 만능음악가로 통했다. 의학박사 학위를 받고 인류학박사 과정을 밟았으며 작곡가로도 활약했다. 지휘자로는 오페라 무대서 이름을 얻어 빈·베를린 오페라극장 음악감독,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상임지휘자를 지냈다.
조선일보가 창간 80주년을 맞아 2000년 1월 시노폴리와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를 예술의전당으로 초청한 연주가 국내 마지막 무대가 됐다.
1999년 한반도에서만 번식하는 `저어새` 이동 경로 첫 확인
전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한반도에서만 번식하는 희귀종 저어새의 이동 경로가 번식지와 월동지 6개국의 합동 노력에 의해 최초로 확인됐다. 저어새는 전 세계 600여마리만 보고된 세계적 희귀종으로 환경부가 멸종위기종으로 분류했으며, 지금까지 번식지인 남-북한과 월동지인 중국, 대만, 일본, 베트남 등에서만 발견됐다.
한국 자연환경과학연구센터가 지난 1월과 3월 홍콩과 대만에서 위성발신기를 달아준 저어새 각 4마리와 8마리중 각각 2마리씩, 모두 4마리가 중국 동해연안 습지대 2000㎞를 거쳐 비무장지대(DMZ)로 날아든 것을 확인했다고 1999년 4월 20일 발표했다.
저어새는 10월쯤 번식지인 한국에서 남하를 시작, 11월에 월동지인 중국,일본, 대만, 베트남 등에 도착해 3월까지 머물다 다시 북상해 4월쯤 우리나라에 돌아와 번식한다. 북한 평남 온천 군덕도, 남한 전남 칠산도 등 7∼8개 무인도가 번식지로 확인됐으며 비무장지대도 번식지로 확인됐다.
1999년 미국 콜로라도주 컬럼바인 고등학교서 총기 사고… 15명 사망, 20여명 부상
20일 오전 11시 30분(현지 시각) 미국 콜로라도주 리틀턴시. 컬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울린 총성과 폭발음이 조용한 봄날을 찢어놓았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검은 트렌치코트(레인코트의 일종) 차림에 스키 마스크를 뒤집어 쓴 괴한 2명이 학교 주차장에서부터 소총을 난사하며 학교 안으로 진입했다.
점심시간 구내 식당에 모여있던 학생들은 비명을 질렀고, 학교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범인들은 교실과 도서관을 차례로 돌며 총을 쏘고 수류탄과 사제폭탄을 던졌다. 이 학교 학생 돈 아놀드(16)는 “처음에는 불꽃놀이 하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눈 앞에서 친구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지기 시작했다. 다른 학생은“범인들이 권총과 소총을 들고있었고, 개머리판을 잘라낸 산탄총도갖고 있었다”고 전했다. 겁에 질린 학생들은 쓰러진 친구들의 시체를 넘어 피바다가 된 학교를 필사적으로 빠져나왔다. 미처 피하지못한 학생들은 화장실, 음악실, 과학실험실 등에 숨었다. 교실 옷장안에도 숨었고 책상과 사물함으로 문앞에 바리케이드를 쌓기도 했다. 피투성이가 된 학생 한 명은 2층 창문밖에 매달려 있다 구조됐다. 몸에 폭탄 파편 조각이 9개나 박힌 여학생도 있었다.
범인은 10대 후반인 에릭 해리스와 딜런 클레볼드로, 이 학교 중퇴생인것으로 밝혀졌다. 공범으로 보이는 학생 한 명은 수류탄을 던지다 경찰의 사태 진압 후 체포됐다. 범인들은 주로 학교에서 잘 나가던 운동선수나 흑인, 히스패닉계 등 소수민족 학생들을 표적 사살했다.
수색작전중 건물 내에서 시한폭탄이 터지기도 했다. 학교 안팎에서 발견된 폭발물은 12개로, 범인들은 승용차등에 폭발물을 넣어두었다.
사망한 학생과 교사들은 모두15∼16명, 부상자는 20여명으로 잠정 집계됐다. 자살한 것으로 보이는 범인 2명의 시체는 도서관에서 발견됐다. 이들은 몸에도 폭발물을 두르고 있었다.
1999년 충무공 이순신 장군 묘소에서 식칼과 쇠말뚝 발견
충무공 이순신 장군 부모 묘소에 이어 충무공 묘소와 현충사 경내에 있는 충무공 셋째 아들 면 등의 묘소에서 식칼과 쇠말뚝 53개가 무더기로 발견됐다.
충남 아산경찰서와 충무공 후손들은 1999년 4월 20일 오전 8시부터 경찰 20여명과 금속탐지기를 동원, 아산시 음봉면 삼거리 충무공과 그 부인이 합장된 묘소에 대해 정밀조사를 벌여, 오후 1시40분쯤 봉분 표면에서 20cm쯤 되는 깊이에 식칼 2개와 쇠말뚝 2개가 박혀 있는 것을 찾아냈다. 또 충무공 후손들 묘소에서 8개, 이 곳에서 9km 떨어진 현충사의 묘소 19기에서도 41개를 추가로 발견했다. 이로써 덕수 이씨 선영에서 발견된 식칼과 쇠말뚝은 식칼 55개, 쇠말뚝 47개로 모두 102개로 드러났다.
그러나 충무공 묘지 훼손사건은 어처구니없게도 한 무속인이 자신의 지병을 고치기 위해 저지른 범행인 것으로 밝혀졌다. 범인 양씨는 K철공소에서 식칼 200개를 구입한데 이어 D공업사에서 3차례에 걸쳐 쇠막대 60개를 주문했다. 경찰에 따르면 양씨는 1차로 3월 4일 충무공 묘소에 식칼과 쇠막대를 꽂았다. 이어 3월 중순과 3월말, 4월초, 4월 8일 등 모두 5차례에 걸쳐 충무공 부모 묘소와 현충사 등에서 범행했다.
범인 양모씨는 3~4년 전 경기도 구리시 건원릉(조선 태조 능), 서울 서초구 내곡동 헌릉(태종 및 태종비 능), 강남구 삼성동 정릉(중종 능), 경북 안동시 도산면 퇴계 이황선생 묘에도 식칼, 쇠말뚝, 동판 등을 꽂은 것을 자백했다.
1998년 독일 적군파 해체 선언
독일 극좌 테러단체로 한때 악명을 떨쳤던 독일 적군파(RAF)가 1998년 4월 20일 로이터통신에 보낸 서한에서 "오늘로서 우리의 과업을 종료한다. 도시게릴라 형태로서의 적군파는 이제 역사가 됐다"고 자진 해산을 선언했다.
독일 적군파는 1960년대 말 학생운동 쇠퇴 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적응을 거부한 소수의 급진좌파들이 결성했다. 창설 주역인 안드레아스 바더와 울리케 마인호프의 이름을 따 `바더마인호프 그룹`이라고 불리기도 한 독일 적군파는 마오쩌둥주의에 따른 사회주의 국가 건설이 목표였다. 마인호프는 함부르크 좌익계 잡지에서 활약했던 여성 저널리스트였고, 바더는 중산층 가정 출신의 직업운동가였다.
이들은 바더가 1968년 프랑크푸르트백화점 방화로 교도소에 수감되자 마인호프가 면회를 가장해 바더를 탈출시켜서 더 유명해졌다. 그래서 바더가 탈출한 1970년 5월 14일을 독일 적군파의 탄생일로 삼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나치 잔재 척결` `베트남전 반대` `반제국주의 전쟁` 등을 기치로 내걸고 1998년 4월 테러활동 중단을 선언할때까지 독일주둔 미군시설 및 병력, 경제인, 법조인 등을 주목표로 수많은 테러를 자행, 30여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특히 1977년에 악명을 떨쳤는데 1977년 4월 7일에는 검찰총장을 암살하고 7월 30일에는 드레스너 폰트 은행장을 사살했으며 9월 5일에는 슐라이어 독일경영자연맹 회장을 납치했다. 슐라이어는 나중에 프랑스에서 시체로 발견됐다. 1977년 11월에는 팔레스타인 테러범들과 연계해 승객 91명을 태우고 소말리아로 가던 루프트한자 여객기를 공중납치해 적군파 요원 11명의 석방을 요구하다 기장을 살해하기도 했다.
이후 잠시 숨을 고른 적군파는 1989년 독일 지멘스사 경영자의 승용차를 폭파해 사망케 하고, 1991년 4월에는 동독 산업민영화 책임자 로베더를 암살함으로써 건재를 과시했지만 이후 공식적으로 확인된 적군파에 의한 희생자는 없었다.
바더와 마인호프는 1976년에 검거돼 마인호프는 그해 5월 감옥에서 목을 매 자살했으며, 바더는 루프트한자 여객기 피랍이 실패로 돌아간 1977년 10월 18일 감옥에서 권총으로 목숨을 끊었다. 이외에도 적군파 주요 멤버들은 대부분 체포되거나 사망해 사실상 조직이 와해된 상태였다.
1997년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 망명
1997년 4월 20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회 위원장인 황장엽이 망명 요청 67일 만에 서울에 도착했다. 그는 1997년 1월 일본 도쿄[東京]에서 열린 국제문제연구협회 세미나에 참석한 뒤 베이징[北京] 북한대사관에 머물던 중 북한의 여광무역연합총회사 사장 김덕홍과 함께 한국대사관 영사부에 망명을 요청했다. 중국은 북한관계 등을 고려해 제3국행을 결정했다. 그는 필리핀으로 이송되어 32일 동안 지냈다. 함경북도 주을 태생인 황장엽은 소련에서 유학했고 1954년 김일성종합대학 철학강좌장, 1965년 김일성종합대학 총장을 역임했다. 1972년 최고인민회의 의장을 거쳐 1980년 10월 조선노동당 제6차 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과 비서국 비서가 되었다. 1984년 5월에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되었다. 김일성 주체사상의 이론화에 주도적 역할을 했으며, 1982년 김일성훈장을 받기도 했다.
1996년 제1차 북미 미사일 회담(베를린)
1995년 유고 반체제인사 밀로반 질라스 사망
공산주의 사회의 모순을 지적한 `새로운 계급`의 저자로 유명한 구유고의 반체제 인사 밀로반 질라스(84)가 1995년 4월 20일 베오그라드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향년 84세였다.
1950년대 초반까지는 티토이즘(티토를 비롯하여 I.V. 스탈린에 의해 수정주의자로 지목된 사람들에게 붙여진 용어)의 이론적 대변인으로, 이후에는 공산주의 관료주의에 염증을 느낀 반체제 지식인으로 일관해온 질라스는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베오그라드 대학을 마친 후 공산당원생활을 시작했다. 1937년 당시 공산당 서기장이던 티토를 만나 신임을 받으면서 두각을 나타낸 질라스는 티토의 후계자로 인정받을 정도로 열렬한 공산당원이었다.
그러나 공산당 관료가 새로운 귀족으로 등장하는데 염증을 느낀 나머지 이를 공개적으로 비판, 모든 공직을 박탈당하면서 반체제인사로 나섰다. 이후 `스탈린과의 대화`등 계속되는 공산당 비판 저술과 발언으로 투옥과 석방을 거듭해 총 10년간을 감옥에서 보내야만 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동구권이 붕괴하기 시작하자 질라스는 "유고의 평화가 유지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연방공화국이 유지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인종살육`을 막기 위해 국제사회에 호소하는 일에 적극 나섰다. 결국 질라스는 동구권의 멸망으로 공산체제에 대한 자신의 신념이 맞다는 것을 확인했으나 조국이 사분오열돼 피로 물들이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며 눈을 감아야 했다.
1994년 을사조약 부당성 폭로한 `헐버트 수고` 공개
1905년 일본과 체결된 을사조약의 부당성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고종의 밀사로 활약한 미국인 호머 헐버트 박사의 수고 및 회고록이 국내 학자에 의해 발견돼 1994년 4월 20일 공개됐다. 호머 베자릴 헐버트는 구한말 영어교사로 조선에 파견돼 조선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싸웠고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도 한국 땅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남기고 이 땅에 잠든 미국인이다.
이날 공개된 헐버트의 수고와 회고록은 구한말 대한제국 정부 편에서 중요한 외교적 활동을 했던 한 미국인의 생생한 증언이라는 점에서 높은 사료적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평가된다.
표지와 제1장이 떨어져 없어진 채 3백41쪽 24장이 남아있는 `수고`에는 일본이 을사조약 체결을 위해 압박을 가할 당시 고종이 1882년 `조미수호조약`에 따라 미국의 도움을 얻기 위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낸 영문 `주권수호협조요청서`가 실려있다. `한국사` `한국견문기`등 한국에 관한 헐버트의 일련의 저술이 이어지며 1930년대에 집필한 것으로 추정된다.
1985년 지하철4호선(상계-삼선교) 개통
1985년 마라톤선수 카를로스 로페스, 네덜란드 로테르담마라톤경기에서 2시간 7분11초로 세계신기록 수립
1981년 제1회 장애인의 날
세계적으로 증가추세에 있는 장애인들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유엔이 1981년을 `세계 장애인의 날`로 정하자 우리나라에서도 제1회 `장애인의 날` 기념식이 세종문화회관에서 1981년 4월 20일 거행됐다.
장애인들의 복지요구가 확대되자 정부는 이날의 `장애인의 날` 제정과 함께 장애인 복지를 위한 대책으로 1981년 6월에는 `심신장애자복지법`을 제정했다.
1991년부터는 장애인의 날이 법정 기념일로 지정되고 장애인 취업을 위한 `장애인 고용촉진법`이 발효돼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이끌어 내고 있으나 아직도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과 무지가 만연하다.
1981년 국정자문회의 발족
1980년 사상서 황산열차 전복
1978년 대한항공 902편 격추 사건
1977년 광주 무당촌에서 무허가 건물 철가하던 구청직원 4명, 동네청년에 의해 피살
1977년 광주 무당촌에서 무허가 건물 철가하던 구청직원 4명, 동네청년에 의해 피살
1974년 일본-중국 민간항공협정 체결
1973년 성년의 날 제정
1969년 대전 중앙시장 화재
1967년 한국개발금융(KDFC) 발족
1967년 스위스 여객기 니코시아공항서 추락(126명 사망)
1967년 그리스에서 무혈 쿠데타
1965년 한국-베네수엘라, 국교 수립
1964년 비타민연구의 권위자 빌헬름 스테프 사망
1962년 5.16기념 산업박람회 개막
1962년 한국-부르키나파소 국교 수립
1952년 동양통신 창간
1949년 초대 주한 미대사에 무초 취임
1949년 제1회 세계평화옹호자대회 파리서 개최
1938년 베를린올림픽 기록영화 `올림피아` 개봉
나치스 독일이 위신을 걸고 개최한 베를린 올림픽 기록영화 `올림피아`(1부 민족의 제전, 2부 미의 제전)가 히틀러 49번째 생일인 1938년 4월 20일 베를린극장에서 처음 개봉됐다.
히틀러에 의해 지명된 여류감독 레니 리펜슈탈은 1936년 8월 1일부터 14일간에 걸쳐 개최됐던 베를린올림픽을 40만미터에 달하는 필름에 담아낸 후 능숙한 솜씨로 편집해 400km의 필름으로 만들어냈다. 미국 흑인 육상선수 제시 오엔스의 멋진 육체의 움직임과 우리나라 손기정 선수가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모습 등을 다각적으로 잡아냈다.
그녀는 주제에 따라 때로는 시간적 흐름을 무시하고 약동하고 정지하는 인간의 아름다움을 대담하게 추구했다. 올림피아는 슬로모션과 줌 인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영상으로 그해 베니스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며 20세기 최고의 기록영화로 자리매김했다.
이 영화는 베를린 올림픽을 통해 권력기반을 굳건히 하고 독일 민족의 위대함을 전 세계에 선전할 생각이었던 히틀러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제작돼 `나치스의 선전영화`라는 비판도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다큐멘테터리를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찬사를 받으며 국제적인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젊은 시절 무용수와 배우로 활동했던 리펜슈탈은 1932년 '푸른 빛'을 통해 영화감독으로 데뷔했으며 이후 히틀러에게 감화돼 1934년 뉘른베르크에서의 나치 전당대회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 '의지의 승리'를 제작했다. 리펜슈탈은 '의지의 승리'를 통해 다큐멘터리의 신세기를 개척했다는 평을 받으며 최고의 영화감독 반열에 올랐으나 1945년 독일의 패망과 함께 평생 '나치'의 멍에를 짊어져야 했다.
1935년 조선산업박람회 경복궁에서 개막
1928년 서울에 시내버스운행 개시
1918년 브라운관 발명자 카를 페르디난트 브라운 사망
1909년 무선통신 개발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브라운 사망
1906년 소설가 강경애 출생 - 사회의식을 바탕으로 한 여성해방을 추구
1906년 치도국 설치를 위한 신작로 공사 착수
1605(조선 선조 38) 사명대사, 임란에서 납치된 3,000명과 함께 귀국
1902년 퀴리 부부 염화라듐 정제
1899년 프랑스 유기화학자, 광물학자 프리델 사망
1893년 스페인 화가 후안 미로 출생
1889년 히틀러 출생
1808년 프랑스 제2공화국 대통령(1850~52)이자 제2제정의 황제(1852~71) 나폴레옹3세 출생
1759년 독일 작곡가 헨델 사망
1745년 정신질환자에 대한 인간적인 치료에 선구적인 역할을 한 프랑스의 의사 피넬 출생
1527(조선 중종 22) 최세진 <훈몽자회> 편찬
한글 자모의 이름을 처음 정하고 순서와 받침을 정리
1447(조선 세종 29) 안견, '몽유도원도' 그리기 시작
121년 로마제국 제16대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우스 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