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나이 8살대 이곳으로 이사왔죠
밑에 동생이 4살
그리고 이곳에서 두명의 동생이 더 태었났답니다
부모님은 이곳에서 돌아가셨구요
239번지 ...이곳은 저에게
슬픈기억과 아픔이 있는곳이지요
그옜날 그시절은 왜그리도 가난하고
어려운 시절이였는지...
덕산 님과는 서로 얼굴도 모르겠군요
서로가 어릴때 떠나고 들어오고 했으니까요
아참! 삼장리 ..그곳에는 저희외가가 있죠
저희 엄마가 변氏거든요
그래도 239번지는 다쓰러져가는 초가집에서
지금은 현대식 양옥으로 바뀌어
그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더불어 주인도 바뀌었지요
초가집도 양옥집도 우리가족 모두가 꿈을꾸고
그 꿈을 일구던 곳인데.....
지금은 다른이가 주인이되어...
그곳에서 또 꿈을 꾸고 그 꿈을일구기 위해
열심히 살고있을 봉강리 239번지.......
--------------------- [원본 메세지] ---------------------
회천면 봉강리 168번지!!!!
나의 본적이고 내가 태어난 곳이다
어릴적 선생님께서 "본적말해봐"하면 큰소리로 외첬던 그곳이다
수많은 서식을 작성할때 눈감고도 유창하게 갈겼던 그곳이다
이렇게 입에 달고 다녔던 회천면 봉강리 168번지를
정식으로 마음먹고 찾았던때가 둘째아이가 생길때였다
불현듯 고향그리는 마음이 일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가족을 데리고 향하게 되었다
설레임을 안고서 말이다......
사실 6살때 떠난 곳이라 어럼풋하게만 상상될뿐 확실히
아는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집아래 우물이 생각나고 우물위 동백나무가 뚜렷이 생각날뿐
.....
어느 순이라는 친구가 있어나 보다
순이라는 이름외 누구도 기억나는 것은 없다
어느겨울 언덕아래서 띠뿌리 파먹던 기억도 아련하다
어느가을밤이였던가 시장터에 내려가 영화를 보앗던 기억도
꿈인듯 생신듯 아련할 뿐이다
이런 조각난 모자크된 기억들을 꾀맞추어 고향으로 향하였던 것이다
물론 삼장에 게신 친척을 뵈는 일은 가끔있었고 ...
일림사뒤에 영면하신 선친성묘을 위해 들렸지만
내가 태어나고 어릴적 보냈던 봉강리168번지를 찾지 않았다
바쁘기도 하였지만 누가 날 알아볼것이며
누가 반겨줄것이가에 대한 두려움이였을지도 모를일이다
오후 2시쯤 동구밖에 도착하자
동구밖 정자에 몇몇 어르신들이 담소를 나누고 계셨다..
단지 고향어른신이란 반가움으로 차에서 내려 인사를 올렸다
역시 날 알아보는 분은 아무도 안계셨고
인사를 받긴 받았지만 낱선 이방인으로 설레이는 마음으로
고향찾은 날 이해하는 분 반겨주는 아무도 안계셨다....
하지만 잠시 서멋한 분위기는
선친의 함자를 대고 ㅇㅇㅇ의 자식입니다 하였더니
그대부터 혈육처럼 반색을 하시며 반가워 하시며 반전되었다
어릴적 코흘리게 였을때 고향을 떠나
자식 둘을둔 아버지가 되어 고향을 찾았으니......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내가 태었났던 봉강리168번지가
궁금하였다....
그래서 동네어른신께 물었더니
서쪽을 가르키면서 "저기였는디...집은 헐러브렸어!"
하며 짠한듯 한말씀하셨다
가리키는 쪽을 보니 ...
오호라.......
그래 저곳이였지 그래 저곳이야.....
그아랫길돌아 우물도 있었는데.....
하지만 상상하였던 초라하였던 초가집은 흔적도 없이
무성한 잡초만 사람대신 살고 있고
그 우물또한 메꾸어져 자취를 감취었고 우물위 크디큰
동백나무도 세월가 더불어 덧없이 사라졌나보다
과거에 봉강리 168번지는 초가집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봉강리168번지는 띠풀만 우거져
옛주인을 알아본듯 바람에 흐느적 거린다.......
모처럼 찾은 봉강리 168번지...
내가 아는 자취를 아무것도 찾을수 없었던 허망한곳
그냥 세월무상만 느낌을 주었던 봉강리 168번지.....
그래도 봉강리를 떠나올땐
나는 뇌까렸다.....그때 수수꺽어 보자기에 싸 수수떨어 먹었던
소굽친구가 순희일까 순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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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이야기(대화)
Re:회천면 봉강리 239번지!
수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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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8.01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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