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카미노 32일차
오늘은 하네스와 약속한 산타 이레네까지 17km만 가면 되니 여유만만이다.
이렇게 시간과 거리가 여유와 풍요로움으로 다가오는 줄도 모르고 무작정 달리기만 하고 살아왔으니. . .
정말 나는 참 바보스럽게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위 경관이 너무 아름다워서 푹 빠지기도 하고 멋도 부리면서 천천히 걸었는데도
12시쯤 약속한 알베르게에 도착을 하였다.
알베르게는 2시쯤 되어야 문을 연다고 하기에 입구 그늘에서 아이패드를 꺼내 놓고서 글을 쓰고 있는데
주인 아줌마가 2층에서 내려다 보더니 들어오란다.
오늘은 정말 운이 좋은 날이다.
햇살이 가득한 정원에 배낭과 침낭등을 모두 꺼내 햇볕에 늘어 놓고서 말리면서
혼자서 마음껏 여유를 즐겼는데 . . .순례자의 길을 걸으면서 이런 호사를 누려 보다니. . .
나도 모르게 지나온 한 달이 넘는 나날들이 생각이 났다.
사실 처음에 순례자의 길을 걸을 때는 정말 내가 해낼 수 있을까에 대한 불안과 걱정이 태산 같았었는데 . . .
한번 도전해 보자는 의지와 깡(?)이 그런 걱정과 우려를 잠재웠고. . .
내 발에도 물집이 생기고 주위 사람들에게서도 각종 문제가 발생을 하였을 때는 . .
모두가 거쳐가야 하는 통과의식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지나쳤었다.
그러다가 2층 침대에서 떨어져서 구급차에 실려갈 때의 그 심경과 . . .
떨어져서 잠시나마 의식을 잃었을 때 전광석화 같이 스쳐간 간절한 소원 . . .
무조건 죽기 살기로 하느님께 빌어야겠다는 원초적인 본능! !
다행히 병원에서 큰 문제가 없다고 할 때 나도 모르게 나온 기도는 "주님, 감사합니다!" ~! ~!
팔렌시아 대성당에서 얼마나 많이 눈물을 흘리며 통회를 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마도 다치고 눈가에 멍도 생겨서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을 때는 . . .
잠시 부끄럽기도 하고 카미노를 그만 두고싶기도 하였지만. . .
그런데 성령의 도움 때문일까?
아직도 성치않은 몸이지만 언제부턴가 나도 모르게 힘이 불끈 솟아서 30km 이상을 5~6일은 걸은 것 같다.
가슴과 오른쪽 어깨가 많이 아팟는데도 12kg 이상의 배낭을 메고서 카미노를 씩씩하게 걸을 수 있었던 것은 . . .
분명 나의 의지만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이제 내일이면 산티아고에 입성을 할 수가 있겠다.
표준 일정이 33일인데 사고를 치고서도 이 날자를 맞출 수 있다니. . .
주님께서 참으로 나에게 많은 은총을 주신 것 같다.
오후에 여기서 만나기로 한 하네스와 사라양을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않는다.
하네스가 몸이 안좋다던데 탈이 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오늘 묵은 알베르게에서는 10여명의 각국 사람들로 붐볐는데
저녁 식사를 하면서 참으로 많은 친교를 나누었다.
주로 지금까지 걸어 오면서 겪은 일들과 내일 코스 공략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는데
모두들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 새삼 느낀 것인데 스위스, 항가리, 이태리 등에서 온 사람들은 모두 독일어를 아주 잘 한다.
대화를 하는데 반은 독일어로 한다.
우리가 기를 쓰고 일본어와 중국어를 구사하듯이 독일 주변국의 나라들도 예외는 아닌듯 하다.
돌이켜 보니 일본이나 중국 사람들은 언어 구사 능력이 없다며
꼭 자기네 국가 언어를 사용하여 소통하려고 하였는데 . . . 변방의 핸디캡이 이런건가 보다.
모쪼록 대자연의 풍요로움과 여유를 알고 그 속에 고난을 심은 의미깊은 카미노도
내일로서 끝이 난다고 생각을 하니 아쉽기만 하다.
2011.10.22. C H Park
![](https://t1.daumcdn.net/cfile/cafe/130F73504F69A4DE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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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변에 설치된 식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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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왔을까? 주말을 맞아 단체 트래킹을 하고 있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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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욱한 안개에 쌓인 농촌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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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t1.daumcdn.net/cfile/cafe/151509484F69A5151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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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마을의 풍요로운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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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승마를 즐기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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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t1.daumcdn.net/cfile/cafe/152C2C504F69A53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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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 밭의 수확에 열심인 농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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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 그림으로 카미노 도장을 그려주는 바-의 여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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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게에서의 저녁식사 모습, 맨 왼쪽이 스위스에서 온 노인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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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호젓한 알베르게에는 항상 독일 사람들이 제일 많았다 |